벌처기
제1부. 범죄 사실
[편집]다음 기록은 피고인 모 중학교 허철수(許哲秀)가 여류화가인 그의 아내 선우란(鮮于簡)을 살해한 범죄 사실에 관하여 공판정에서 진술한 방대한 조서(調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골자만을 추려낸 것이다.
재판장!
지금에 이르러서 또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그러면 이제부터 그날 밤 제가 취한 저의 범죄 사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러나 재판장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있사오니 그것은 아까도 누차 말씀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저는 자기의 범죄 사실만을 숨김없이 고백하여 저의 죄상에 대한 벌을 받으면 그만이니까, 그 이상 범죄에 대한 상세한 동기 같은 것은 제발 물어주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니, 아무 재판장께서 동기를 물으신 대도 저는 절대로 내 입을 빌려 그것을 토하지 않겠사오니 그 점만은 미리 미리 양찰하시고, 저의 범죄 사실만을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래도 안 된다고 재판장께서 머리를 흔드신다면 정말 그러시다면 통 저는 함구불언 이 사건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도 토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네?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이제부터 그날 밤의 저의 범죄를 복장 없이 아뢰겠소이다.
그렇습니다. 그날 저녁 내가 혜화동 나의 집을 나선 것은 오후 다섯 시쯤이었을까요.
뽀얗게 깔린 매연 속에서 세(歲)말에 가까운 거리거리는 고 더러운 몸뚱이에다 마치 창부와도 같이 밤 화장을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올림피아’의 기록영화 ‘민족의 제전’을 기어이 봐야겠노라고——그것이 내 아내 란(簡)에 대한 나의 외출의 구실이었지요.
“호오, 호오, 호오! 당신두 활동사진 구경을 할 줄 안담! 어느 틈에 그처럼 개명을 하셨수?”
그리고는 잠자코 있는 나에게
“참, 해방두 하구 와야겠군요.”
하고 여전히 빈정대기를 마지 않었습니다.
사실 나의 입술은 그처럼도 보편화한 ‘영화’란 말을 그리 쉽사리 토하지를 못하지요. ‘영화’라는 것보다는 역시 ‘활동사진’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한층 감각적이었습니다.
그처럼 아직 ‘활동사진’이라는 19세기적 언어를 청산하지 못한 나의 뒤떨어진 감각과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목석과도 같은 감정을 핀잔과 멸시의 눈초리로 대하는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아내 란이 예술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요. 예술가이기 때문에 예술가가 못된 나의 감정 내지 감각과는 필연적으로 다른 점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비록 예술은 이해하지 못할망정 예술가의 성격만은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니, 재판장!
이야기가 좀 탈선하여 부질없는 말까지 말씀드려 송구합니다. 나는 재판장께 다만 나의 범죄 사실만을 이야기하겠노라고 그처럼 다짐을 다졌으니까요.
원래 같으면 아내를 동반하여 금년 국민학교 1학년인 내 귀여운 딸 소희(素姬)를 데리고 같이 구경을 가는 것이었습니다만, 그러나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날 밤의 나로서는 나로서의 엉뚱한 계획이 심중에 서리어 있었을 뿐 아니라 우리 화단에서는 그래도 당당한 규수 화가인 란은 해방 전 극장에서 이 ‘민족의 제전’을 봉절(封切)한 임시에 벌써 장안 명사들과 함께 시사회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날 밤 극장에서 재상연되는 ‘민족의 제전’으로 말하면 해방 전 약 67년 동안을 두고 시내 각 상설관에서 재탕 삼탕을 거친 낡은 필름이었지요.
“항상 당신이 경멸하는 소위 할리우드의 천박한 사상 밑에서 맹글러진 그러한 영화가 아니고 당신이 일상 숭배하는 게르만의 정신과 손으로 제작된 영화니만큼 당신이 무엇보다도 귀해하는 소희의 교육을 위해서도 한 도움이 될 것이라.”
고, 굳이 소희를 데리고 가라는 아내의 권유를 나는 또 나대로 그것을 굳이 거절하고
“어린 것이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있는 것이 얼마나 건강에 해로운가.”
를 역설하고 결국 온몸으로 집을 나섰던 것이다.
금년 오십이 가까운 식모는 바루 그날이 자기 아들의 생일이라나요. 저녁 준비를 일찌감치 해치우고 동대문 밖 자기 아들네 집엘 가느라고 바루 나보다 한 수 분 전에 나가버렸지요.
10시쯤 해서 돌아오겠다는 식모의 미안해하는 말을 나는 잘 기억에 담아 두었습니다.
“다섯 시간 동안에!”
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5시부터 10시 사이에 나는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아내의 존재를 이 세상으로부터 없애버려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내일부터 소희는 어미 없는 소희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벌떡 가슴에 치밀어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 어서어서 존 구경 잘 하구 오시라구, 소희의 유난히 쌔애한 두 손이 어득어득한 현관 밖에서 나비처럼 나불거렸습니다.
아무리 패덕지자를 죽인다손 치더래도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끊어 버리고저 할 때 거기에는 도덕이라던가 법률이라던가를 멀리 초월한 하나의 엄연한 자연법칙에서 오는 죄와 벌의 공포를 깨닫지 못한 바는 아니올시다만, 그러나 당시의 나로서는 그러한 것까지에 개의할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습니다.
혜화동 정류장에서 전차를 타고 종로 4가에서 내렸습니다. 극장은 바루 종로 4가와 5가 사이에 있는 더러운 삼류 극장이지요.
극장은 상하층을 막론하고 터져나갈 듯한 초만원이었습니다.
나는 아래층 맨 뒤로 비비고 들어가서 사람들의 등 뒤로 스크린을 바라보았지요. ‘민족의 제전’은 아직 시작이 안 돼 뉴스를 이것저것 몇 가지 해치운 후에 거의 7시가 가까워서야 ‘민족의 제전’이 상연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민족의 제전’이 아무런 흥미도 없었습니다.
사실을 말씀드린다면 나는 바루 그 전날 밤에도 이 S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화면을 바라보지 않고 나 혼자의 생각에 잠겨있다 치더라도 그 전날 밤에 본 기억으로서 충분히 이 영화의 장면 장면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가 있었으니까,
그날 밤 살인현장에 있지 않고 이 S극장에서 ‘민족과 제전’을 구경하고 있었다는 말하자면 한 개의 ‘알리바이’를 완전무결하다고는 나 역시 생각하지 않더래도 어느 정도의 현장부재증명(現場不在證明)은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생각하면 그것은 완전한 ‘알리바이’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지요. 어째 그러냐 하면 내가 극장에서 ‘민족의 제전’이 한창 상연될 무렵에 극장으로 빠져나와 혜화동 내 집으로 들어와서 아내를 살해하고 다시 곧 극장으로 달려가서 다른 관객들과 함께 사진이 끝난 후에 극장에서 나왔다고 합시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불안한 점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한 개의 우연이 개입하지나 않을까 하는 그것이었습니다.
가령 예를 들어 말하면 내가 극장에서 나와 내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를 죽이고 다시 극장까지 도착할 동안에 한 개의 우연——즉 극장 안에 잠시 동만 정전(停電)이 된다던가 관객과 관객 사이에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던가 하는 사실입니다. 후일에 이르러 살인의 혐의가 내게로 쏠리게 되면 당국에서는 필연적으로 사건이 발생된 시각에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가 문제 될 것이고, 그것이 문제 되는 한에 있어서 비록 ‘올림피아’의 기록영화인 ‘민족의 제전’의 장면 장면을 말할 수 있다 치더라도 그때 전연 예산에 넣지 않았던 정전이라던가 싸움이라던가의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나의 입장이 대단히 위험할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와 같은 우연성까지를 미리 방지할 수 없는 나 자신을 깨닫고 모든 것을 천운에 맡겼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여튼 그날 밤 여덟 시가 거의 가까웠을 즈음에 나는 마침내 극장을 살그머니 빠져나왔습니다. 나올 때에 나는 어둠 속에서 미리부터 주머니에 준비하여 두었던 가짜 수염을 코밑에다 붙였습니다. 그리고 중절모를 푹 눌러쓴 후에 때마침 지나가는 빈 택시를 잡아탄 것을 무척 기뻐하며 혜화동 정류장에서 택시로부터 내리기까지는 단 5분밖에 걸리지 않었지요. 거기서 내 집까지가 보행으로 역시 5분이면 도착할 수가 있으니까, 극장을 나온 지 수 분만에는 넉넉히 내 집 앞까지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정문 외등불에 비춰보니 팔뚝시계가 8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지요. 수염을 떼버리고 정문을 들어서서 2층을 바라보니 내 서재에 불이 환하니 켜져 있질 않겠습니까. 그뿐 아니라 전기축음기 소리가 들리며 아내의 목소리가 레코드에 맞추어 따르는 것입니다.
“또 아베마리안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즈음에 와서 아내의 음악적 취미가 변해질 사실에 다시금 부딪혔습니다. 지금까지의 란으로 말하면 ‘재즈’가 아니면 ‘트로트’ 기껏해야 ‘블루스’ ‘왈츠’―그런 종류의 것을 기뻐하게 하였지요. 그것이 요즈음 며칠 동안에 돌연 ‘아베마리아’로 변했고 저녁상 먹고 나면 반드시 내 서재로 들어가서 ‘아베마리아’를 두 번 세 번 연거푸 거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 나는 내 서재(사실은 나와 아내의 공동 서재이지요)를 통 아내에게 내맡기고 나는 이튿날 학생들에게 가르쳐 줘야 할 수학의 교재를 들고 아래층 온돌방으로 쫓겨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집의 서재는 나의 서재라기보다 화가인 아내의 서재였었다는 게 마땅할 것입니다. 나는 항상 아내의 예술을 위하여 나의 서재를 전부 아내로 하여금 독점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서재는 조선 사람의 가정으로서는 어느 정도까지 호화로웠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호화로운 서재를 가질 수 있고 적으나마 아담한 양옥을 쓰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일개의 중학교 교원인 나의 수입으로는 바라도 못 볼 수작이지요. 모두가 아내의 친정이 부유한 탓이었습니다. 옆방이 바루 저 ‘아틀리에’인 2층 서재에는 수학과 교육학에 관한 나의 빈약한 몇 권의 서적 이외에는 미술을 비롯하여 음악, 연구, 문학에 관한 수천 권의 서적이 예술가인 아내의 예술적 감흥을 풍부히 배양하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미켈란젤로’ ‘다빈치’ ‘베토벤’ ‘단테’ ‘입센’ 등의 위대한 예술가의 초상이 서재를 장식하였고, 서편 쪽과 남편 쪽 모퉁이에 놓인 ‘코너 테이블’ 위에는 전화기까지 설비되어 있었고, 바루 그 덮은 지금 ‘레코드’ 소리가 들리는 커다란 전축이 그야말로 예술가의 서재를 장식하는데 있어서 충분한 호화로움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아내는 항상 그 커다란 전축 앞에 고요히 앉아서 세계 명곡에 귀를 기울이며 창작의 구상에 몰두하고 있는 자신의 신세와 사회적 지위에 도취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밤도 필시 그러한 포즈려니!”
하고 나는 발자국 소리를 죽여가며 현관을 열었습니다. 아래층 온돌방에는 소희가 고스란히 잠들고 있었지요. 머리말에는 서너 권의 그림책이 펼쳐진 채 놓여 있었습니다. 나는 가만히 소희의 발그스레한 양 볼에다 입술을 갖다 대며
“소희야, 네 아버지는 참 나쁜 사람이로구나. 네게서부터 네 어머니를 빼앗아 버리고저 하는 네 애비!”
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후에 그 층으로 올라가니 과연 아내 란은 축음기 앞에 홀로 걸터앉아 있다가 ‘레코드’ ‘아베마리아’가 끝나는 것을 기다려서
“왜 벌써 돌아와요?”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재미가 있어야지. 조름만 오구......,”
그러나 나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내의 톡 내쏘는 비웃음이 바늘처럼 내 귀밑에 떨어졌습니다.
“오오! 둠프 둠프!”
아내는 이즈음에 와서 날 보고 곧잘 ‘둠프’란 말을 사용하였습니만, 그게 대체 무슨 소린지 검정, 검정시험을 쳐서 간신이 중학교 교원의 자격을 얻은 나로서는 아내가 보라는 듯이 뱉는 외국어를 항상 바보처럼 빙글빙글 웃어가면서 들어 넘길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습니다만, 후일에 이르러 같은 학교 영어 선생께 ‘둠프’의 해석을 청했더니만, 그것은 영어가 아니고 독일어로 ‘바보’라는 말이라던가요. 좀 더 듣기 좋은 말로 바꾸어 말한다면 예술적 민감히 좀 모자란다는 뜻이라고요.
그때도 나는 하는 수없이 그야말로 바보처럼 벙글벙글 웃어넘겼습니다.
아내는 오렌지와 다갈색의 굵다란 줄이 기다랗게 흘러내린 ‘파자마’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쌔애한 맨발을 전기 ‘스토브’ 앞에 뻗치고 가장 고상하다는 ‘심프손’ 머리 뒤에다 두 팔을 가지게 하듯이 갖다 대면서 마치 배우가 무대 위에서 관중에게 들으라는 것처럼
“오오, 평화는 장군을 죽이고 평범은 시인을 질식시킨다.”
그러면서 발딱 몸을 일으키는 바루 그 순간이었지요.
나는 미리부터 준비하여 두었던 아내의 쓰다 버린 헌 명주 목도리를 재빨리 외투 주머니에서 끄내자마자 아내의 등 뒤로 비조처럼 달려가서 힘껏 동여매었습니다.
“악―”
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찢어지는 것처럼 방 안을 울렸습니다.
아내는 두서너 번 팔을 허공중에 추켜올렸다가 그만 기운 없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다시 수염을 코밑에다 붙인 다음에 부살같이 밖으로 도망해 나왔습니다. 그리고 컴컴한 골목을 혜화 전차 정류장까지 달려오자 택시가 보이지 않음으로 할 수 없이 전차로 S극장까지 도착했을 때는 아직 8시 40분이 채 못되던 때였었지요.
나는 아까처럼 역시 사람들 등 뒤에서 ‘민족의 제전’을 끝까지 보았습니다만, 그러나 어찌 된 셈인지 무엇인가 한 가지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을 꼭 잊어버린 것만 같아서 가슴이 공연히 울렁거렸습니다. 무엇을 잊었는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잊은 것은 없었지요. 모자, 수염, 외투, 구두——모두 온전히 내 몸에 걸쳐 있었고 서재에 남겨두고 온 것이라고는 지금 란의 목에 매여 있는 아내의 헌 명주 목도리뿐이지요.
그러나 살인현장인 서재 안의 풍경이 무엇인지는 꼭 지적할 수 없었으나 한 가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점이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것을 나는 내 눈으로 보고도 살인 직전의 전율적 흥분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기억 속에 적어두지를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나는 지금도 모릅니다. 그러고 그것이 나의 범죄로 하여금 발각의 단서를 갖게 한 중요한 점이라고도 생각하였지요.
가령 예를 들어 말하면 ‘입센’의 초상화가 거꾸로 달려있었다던가 전축의 위치가 약간 바뀌었다던가 테이블 위에 항상 놓여 있던 송죽매(松竹梅)의 조그만 화분이 보이질 않었다던가......하는 그러한 일종의 불균형이 서재 안 어느 한구석에 존재해 있었던 것만 같이 생각되었습니다만 좀처럼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지적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단념을 하고 설사 그러한 종류의 불균형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하등의 위협을 가져올 리는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의 불안을 위로하며 붙였던 수염을 다시 떼어버리고 사진이 끝나기를 기다려서 다른 관객들과 함께 극장을 나섰을 때는 바루 10시가 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식모가 10시에는 자기 아들네 집에서 돌아온다고 하였으니까, 지금쯤은 시체로 변한 아내를 발견하고 울고불고하면서 경찰에 전화를 걸 것이라고 나는 식모의 반 광란의 자태를 눈앞에 그리면서 입가에 빙그레 웃음을 띠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악마의 웃음은 비탄에 잠겨있는 어린 소희의 가엾은 자태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중단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소희야, 이 아비를 용서하라.”
나는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검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두 손을 모두었습니다. 극장을 나선 나는 어째 그런지 곧 전차를 탈 생각이 나질 않어 종로 4가까지 터벅터벅 걸었습니다. 집으로 곧 돌아가기가 무척 무서웠고 그보다도 식모가 돌아오기 전에 내가 먼저 집으로 들어가서 아내의 참살을 발견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문득 머리에 떠오른 것은 어디 집에다 한번 전화를 걸어 보리라 하는 엉뚱한 생각이었습니다. 범죄자의 마음은 항상 범죄 현장으로 끌려간다는 그러한 심리일까요?
전화를 걸었다가 식모나 혹시 경관의 음성이 나오거든 뭐라고 말할까?......그러나 그러한 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막 극장에서 나오다가 음식점에 들려서 밤참을 먹고 가겠다는 말을 아내에게 전할 셈으로 전화를 걸었노라고 대답하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서는 아직 식모가 돌아오지 않았을 것만 같아서 전화를 건대짜 아무도 받을 사람이 없으리라는 것이었지요.
“하여튼 걸어 보자.”
나는 4가 공중 전화통으로 들어가서 내 집 전화번호를 불렸습니다. 그것이 바루 12시 20분경이었지요.
수화를 귀에다 대고 있는 동안 마음은 한량없이 설레대고 손은 중풍 환자처럼 떨렸습니다. 돈을 넣으라는 교환수의 고운 목소리가 마치 지옥에서 들리는 염마(閻魔)의 목소리와도 같었지요.
“딸랑——”
하고 돈이 떨어졌습니다. 떨어지자마자
“여보시오, 여보시요!”
하는 목소리가 저편에서부터 들려왔습니다.
“에크!”
나는 가슴이 덜컹하고 내려앉는 것을 전신에 깨달았습니다. 무서운 긴장으로 말미암아 온몸이 장작개비처럼 굳어졌습니다. 아아, 그것은 틀림없는 사나이의 굵다란 목소리가 아니겠습니까!
“당신은 누구시오?...... 란을 불러주시오, 란을......”
하고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이 억제하며 약간 언성을 높였더니 사나이의 목소리는 대번 온유해지면서
“아, 이 집 주인이십니까? 허 선생이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허철수요. 당신은 대체 누군데...... 내 아내를 좀 대 주시오.”
“허 선생 하여튼 곧 돌아와 주시오. 나는 모 경찰서 사법 주임인데 부인께서 무참한 죽음을......”
“엣? 뭐라구요. 아내가?......아니 란이 어쨌다구요?......”
“하여튼 즉시로 돌아와 주십시오. 부인의 신상에 중대한 불행이 생겼습니다. 곧 돌아오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일로 혜화동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이제 전화통으로부터 경찰서 사법 주임이라는 사나이의 굵다란 목소리와 함께 소희의 울고 있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리던 것을 문득 연상하였습니다.
“오오, 소희! 내 딸 소희!”
나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애당초부터 소희의 비탄을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올시다만, 어미 없는 소희의 울음소리가 이처럼도 나의 가슴을 뻐갤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소희로부터 어미를 빼앗은 아비!”
그러한 이 아비는 과연 소희를 참답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겠습니까?......
이윽고 자동차가 내 집 정문 앞에서 멎었을 때, 나는 사오 명의 경찰관이 내 집을 엄중히 지키고 있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느냐?”
고,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수비하는 경관들에게 그렇게 외치면서 부리나케 현관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아아, 이 대체 어찌 된 일이었을까요?......
2층 서재로 뛰어 올라가자 두 사람의 경관이 왈칵 달려들며 다짜고짜 나의 양어깨를 독수리처럼 붙들고 그중 한 사람이 빠른 솜씨로 쇠 수갑을 나의 두 손목에 철칵 하고 채워버리질 않겠습니까!
“오오, 당신네들은 나를 어떡헐 셈으로?......”
그 한마디 던진 후에 나는 비로소 서재 안의 광경을 살필 셈으로 머리를 돌렸을 때 한편 구석에서 울고 있던 소희가 마치 다람쥐처럼 달려오자
“아버지 어머니가......”
하고 고함을 치면서 왈칵 달려들어 쇠 수갑을 찬 나의 두 다리를 부여잡고 방안이 터져나갈 듯이 울어대기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경찰의(의사)는 저런 전축 앞에 쓰러진 란의 시체를 열심히 검시하고 있었지요.
그때 나의 눈에는 낯설은 젊은 사나이의 얼굴이 하나 경관들 뒤로 넘겨다 보였습니다. 부인네들의 퍼머넌트처럼 다리를 굽실굽실하게 뒤로 넘겨 재낀 젊은 사나이
“오오, 그때야 나는 그가 누구인지를 비로소 깨달을 수가 있었지요. 그는 문단에 새로이 등장한 신진 시인 정일호(鄭─湖)라는 사나이였습니다. 란이 생전 그의 시의 아름다움보다는 그의 용모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던 정일호를 나는 란의 ‘앨범’ 속에서 본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정일호가 대체 무슨 이유로 내 집에를 왔는지, 나는 통 알 수가 없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내 집엘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것은 하여튼 나의 치밀한 살인 계획에 어떠한 실책이 있었기로 그처럼 쉽사리 탄로가 되었는지?...... 그러한 커다란 의혹에 사로잡힌 채 나는 곧 경찰서로 붙들려 가는 몸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제2부. 범죄 동기
[편집]다음은 피고 허철수의 친구요 변호사인 심현도(沈玄道)가 피고의 침묵을 대신하여 이 살인의 동기가 필 듯싶은 사실들을 단편적으로 수집하여 진술한 기나긴 변론의 초록이다.
피고 허철수는 자기의 범죄 사실만을 진술하여 죄에 대한 벌을 받으면 그만이니까, 그 이상 더 본 살인사건에 관하여는 일언일구도 입을 열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는 마침내 허철수와 가장 절친한 사이에 본 변호인으로 하여금 피고의 굳센 침묵을 대신하여 본 살인사건의 동기가 될 듯싶은 몇 가지 사실을 들어보지 않으면 아니 될 입장에 서게 만들었습니다.
약 10년 동안을 계속해 온 피고와 본 변호인의 깊은 교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아무리 교분이 깊다손 치더라도 본 변호인은 피고 그 자신이 아니니, 그의 아내 란을 살해한 피고의 동기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수는 도저히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진술하고자 하는 본 변호인의 변론은 말하자면 피고의 동기의 몇 10분지 1에도 해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재판장 이하 수많은 방청 제 씨에게 미리부터 양해 구하는 바이올시다.
무엇보다도 먼저 피고가 대체 무슨 이유로 그처럼 그의 범죄 동기에 관하여 통 함구불언을 언명하는가?......그것이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문제시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 변호인은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자면 그의 교육자로서의 입장도 입장이려니와 또한 필연적으로 피고 허철수라는 성격이라던가 인품이라던가를 분석해 보지 않으면 것입니다.
피고 허철수?...... 그렇습니다. 단 한마디로 말하면 피고 허철수는 가장 평범하고 가장 충실한 시민의 한 사람이라는데, 그의 인격 전부가 포함되리라고 생각하는 바이올시다. 그렇습니다. 그는 가장 충실한 시민이었습니다. 자기의 직분을 충실히 다함으로써 자기의 행복을 구하고자 하는 인물——그가 란을 살해한 동기에 관해서 절대로 설명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말을 바꾸어 이야기하던 자기의 행동에 대한 결실만을 걸머지면 그만이지, 그 행동에 이르기까지의 불평이라던가 불만 같은 것을 소리를 높여서 이렇다 저렇다 할 필요를 감히 느끼지 않는다는 입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점이 가장 중대한 것입니다. 교육자인 피고와 예술가인 피해자를 구별하는 가장 큰 중심점이라 생각합니다. 예술가에게는 말이 많습니다. 불평이 많습니다. 불만이 많습니다. 그러나 가장 건전한 교육자에게는 불평이 적습니다. 자기의 할 바를 다하고 천명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추상적이어서 이제부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보기로 하겠습니다.
피고 허철수는 본래부터가 중학교 교원이 아니올시다. 어렸을 때 양친을 여읜 가난한 살린 속에서 그가 소학교 훈도로 시내 모 소학교에 봉직하고 있을 때, 그의 아내도 역시 같은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살림살이를 달게 여기면서 그는 가장 평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그의 아내 란으로 말하면 그 평범한 생에 싫증이 나면서부터 타고난 재주를 이용하여 전람회에다 한두 번 그림을 출품하기 시작하였지요.
그의 그림이 심사원의 눈에 띄어 특선이 되자 란의 이름이 사진과 함께 신문에 발표되었을 때 화단 한구석에서는 그의 작품보다도 그의 어딘가 육감적인 용모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더구나 석암(石巖)이라는 대가가 란의 작품을 신문에다 대대적으로 선전을 하였을 때, 란의 그 꿈많은 가슴속은 오주주하니 달려드는 흥분으로 말미암아 하룻밤을 딱꾹 뜬눈으로 새웠다는 것입니다.
“여보, 내가 인젠 정말 화가가 됐구려!”
하면서 란이 남편의 두 어깨를 꼭 껴안었을 순간, 허철수는 무척 기쁘면서도 한편 란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 같은 쓸쓸함을 느꼈습니다.
각 잡지사, 신문사는 다투어가면서 혜성처럼 나타난 규수 화가 란의 사진 내기를 즐겨했으면 란은, 또 란대로 한 달에도 몇 번씩 포즈를 달리한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습니다.
란은 외출이 잦아졌습니다. 어느 화가와 저녁을 같이 먹는다고요, 어느 소설가가 차를 같이 마시자고요, 어느 남성 화가와 미술에 관한 대담회를 연다고요——이리하여 란은 단지 하나의 진실한 미술가라기보다도 그의 재치는 대화와 글도 어지간히 쓸 수 있는 필채와 그리고 그의 미모를 이용하여 좁다란 화단에서 뛰쳐나와 널리 사회적으로 일약 출세의 기회를 엿보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란은 그때 바루 두 살 먹은 소희를 남편에게 맡기고 밤늦게까지 싸돌아다니기를 일삼았습니다. 그러한 때 남편 허철수는 성가시게 볶아대는 소희를 업고 12시가 가까운 밤거리를 헤매며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아내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났으며 남성들이 가장 매력을 느낀다는 그의 두 눈자위가 발그스레하니 붉어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생활이 3년을 계속하자 란의 이름은 저널리즘의 꽃이 되었고 하나의 당당한 여류명사로서 자처하게쯤 되었습니다. 그러하는 동안에 란의 단정치 못한 행동은 마침내 란으로 하여금 근무하던 소학교에서 쫓겨나게 하였고 그렇게 되자, 그의 소위 예술가적 생활은 글자 그대로 무궤도를 밟기 시작하였고 남편의 존재는 더 한층 무시되어 갔습니다.
중학교 교원 검정시험에 합격이 되어 현재 봉직하는 시내 B 중학 수학 선생으로 가게 된 것이 바루 란이 소학교를 쫓겨나는 직후였다는 사실은 실로 피고 허철수라는 인물이 어떠하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란이 가정을 저버리고 사회적 출세를 꾀하던 3년 동안을 피고는 소학교부터 중학교 교원으로 뛰어오르는 노력을 쉴 새 없이 계속하였던 것입니다. 피고를 가르쳐 노둔한 인물이라고 비웃을 사람은 비웃어도 좋습니다. 사람의 힘을 다하여 천 명을 기다린 피고 허철수의 모습이 여기에 뛰노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여튼 대체 예술이란 무엇이며 문학이란 무엇입니까? 피고 허철수는 예술을 모르고 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의 속인이라손 치더라도 그는 선량한 시민으로서의 건전한 도덕과 예의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란에게는 여자 동무보다도 남자 동무가 많었고 남자 동무는 태반이 소위 예술이 아니면 하루도 지날 수 없는 친구들뿐이었지요.
란은 그들과 함께 차를 마시고 술을 마시면서 담소 화락하기를 즐겨 하였으며, 그들과 더불어 예술을 토론하는 것을 무한한 영예라고 생각하셨습니다.
란의 일신상에 그때 한 가지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란의 친정아버지가 소위 적산(敵産)을 가지고 일금의 모리를 하자 란의 생활은 글자 그대로의 호화판을 이루어 명륜동 양옥에다 여류화가로서의 손색이 없으리만큼 훌륭한 아틀리에와 서재를 꾸미면서부터 남자 동무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출입을 하게 되었지요.
손님이 오면 철수는 반드시 소희를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옵니다. 그들과 함께 자리를 같이하면 반드시 철수의 얼굴을 확확 달게 하는 잡담과 추담이 아내와 그들 사이에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술은 독한 양주가 좋고 연애는 유부녀와의 그것이 으뜸이라는 둥—— 그들 사이에는 남녀의 교제에서 감히 넘어서는 아니 되는 성욕에 관한 이야기가 일수 잘 벌어집니다. 건전한 시민이면 반드시 입에 담기를 주저하는 화제를 그들은 일부러 그것을 끄집어내어 그것에서 윤리성을 박탈함으로써 스스로를 참다운 예술의 사도라고 믿는 것 같았습니다. 유치한 감정의 노출이 곧 예술가로서의 자격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재판장!
본 변호인은 예술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종류의 사람들을 가르쳐 예술가라고 말한다면, 예술가란 결국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패륜의 도(道)를 이름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피고 허철수가 그 외 아내 란을 살해하기까지 생각하게 된 것은 란의 무궤도의 생활과 ‘러브헌터’로서의 요부의 생활이 좀 더 구체화하였을 때부터라고 추측하는 바이올시다.
선후가 바꾸어졌습니다. 아까 말한 석암— 란의 작품을 대대적으로 선전을 한 석암과 란이 한 주일 동안 어떤 온천에서 묵었다는 소식을 나는 적어도 허철수만은 모를 줄로만 알았었고, 그외 모 신문인 모 영화인 모 문단인과의 애욕순례(愛欲巡禮), 애욕행진곡 등등...... 란의 행동이 전 조선을 휩쓸 때도 적어도 그의 남편인 피고의 귀에만은 들어가지 않을 줄로만 알았습니다만, 지금에 이르러 생각하니 나의 추측이 어그러졌던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리하여 피고는 란을 죽였습니다. 아니 란을 둘러싸고 있던 패덕자에게 복수를 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피고의 성격으로서 쉽사리 이해하지 못할 것은 그가 왜 정정당당히 란을 살해하지 못하고 암암리에 살인 행동을 취하고자 하였던 가에 대하여 본 변호인은 단 한마디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하고 이 변론을 마치고저 합니다.
“피고는 소희로 하여금 고아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3부. 범죄 발각
[편집]다음은 금만가의 아들이요 미남의 평이 높은 신진 시인 정일호의 증언을 간단히 약한 기록이다.
증인은 피해자 란의 부군이 진실한 청년 교육자라는 이외에는 그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와 란의 교제로 말하더라도 아직 2, 3개월도 못 되는 그러한 짧은 시일에서 더 지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맨 처음으로 란을 어떤 음악회에서 소개를 받은 순간 여러 가지 의미에 있어서 이름이 높은 규수 화가였습니다.
그리고 란의 얼굴로부터 그 어떤 강렬한 육감적 매력을 느낀다고들 말하지만, 그러나 적어도 나만은 그와 반대로 단지 그의 용모에서 받은 인상은 한 개의 더러움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란의 용모를 깎아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누구든지 한 번씩은 흥미를 느낄만한 그러한 종류의 용모이기는 하지만, 세상에는 그러한 용모에 단 한 번이라도 흥미를 느낄 수 없는 사나이도 있다는 것을 나는 어떤 기회에 란에게 고백한 적이 있지요. 그랬더니만 란은 대단히 좋지 못한 안색을 지었습니다. 란은 어떤 남성이든지 자기의 얼굴로 굴복시킬 수 섰다는 자신을 잔뜩 품고 있는 모양이었던 만큼 적지 않은 모욕을 느끼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러한 일이 있은 후부터 란은 자주 나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란의 성격으로 미루어보건대 그는 자기에게 많이 굴복하지 않는 남성을 어디까지나 한번 굴복시켜보려는 좀 향기롭지 못한 취미를 가진 것처럼 내게는 보였습니다.
란은 정말 귀찮으리만큼 나를 따랐습니다. 더구나 밤이면 나에게 전화를 몇 번이고 걸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 유치하기 짝이 없는 19세기적 ‘러브’를 부르지요.
나는 듣는 척할 뿐, 수화기를 테이블 위에 놓고 나 할 일을 계속하고 있노라면 왜 들어주지 않느냐고 독촉 전화를 걸지요.
제발 좀 그러지 말라고 애걸을 하면 그럼 이번에는 ‘레코드’를 걸 테니 들으라나요. 그래 하는 수 없이 수화기를 귀에다 대면 ‘재즈’가 나옵니다. ‘왈츠’가 나옵니다. 란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블루스’지요.
그래 그 야비한 음악적 취미를 좀 청산하고 고상한 것을 좋아하라고 그랬더니 참 당신은 ‘네로’라고 뾰르릉 짜증을 대더니만, 그래도 유순한 양처럼 그러면 성스러운 ‘아베마리아’를 들으라고요.
그날 밤도 바루 그것이었습니 다.
“오늘 밤 우리 집 ‘둠프’가 ‘민족의 제전’을 구경하러 갔어요. 아주 개명을 했어요! 호호호——”
그런 이야기를 한바탕 하고 나서 그 날도 ‘아베마리아’를 걸었는데 레코드가 끝나자
“왜 벌써 돌아와요?”
하는 란의 목소리가 들리겠지요. 뒤이어 굵다란 남자의 목소리가
“재미가 있어야지. 졸음만 오구.”
하는 것을 들으니 남편이 극장 구경을 중도에서 그만두고 돌아온 줄을 알았습니다. 이어서 란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면서 특히 나를 좀 들으라는 듯이 높은 음성으로 영탄하였습니다.
“평화는 장군을 죽이고 평범은 시인을 질식시킨다.”
란의 그러한 영탄이 끝나자마자 돌연
“악―”
하고 부르짖는 란의 숨넘어가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겠습니까. 나는 필시 무슨 불길한 일이 벌어졌음을 직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부리나케 전화통에다 입을 대고 란 이름을 불러 보았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란은 나오지 않었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집을 뛰쳐나와 혜화동으로 자동차를 몰았습니다. 그리고 란의 서재로 뛰어올 라가 과연 나의 예상대로 란은 축음기 앞에 길다라니 뻗어 있었습니다만, 만일 피고가 좀 더 침착하였다면 전화의 수화기가 ‘코너 테이블’ 위에 떨어져 있는 사실을 발견하였을 것이며, 더구나 매일 밤처럼 저녁만 먹고 나면 나한테 전화를 걸고 레코드를 들려주던 란의 행동을 통 모르고 있었던 것이 탈이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