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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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된 여러 백 년 된 옛날이었습니다.

한적하고 고요한 시골에서만 자라는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는, 늘 이야기로만 듣는 서울이 그립고, 그 서울에 있다는 모든 것, 모든 곳이 모두 그리웠습니다.

그 중에도 가장 그리운 것은, 서울을 안고 있다는 서울의 삼각산이었습니다.

세모가 져서 삼각산인지, 세 봉우리가 있어서 삼각산인지……. 이름부터 부르기 좋고, 듣기 익은 좋은 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산에는 얼마나 좋은 숲이 있고, 골짜기가 있을 것이며, 그 골짜기마다 얼마나 좋은 절이 있고, 얼마나 깨끗한 물이 흘러내릴까…….

“아아, 삼각산! 서울의 삼각산!”

하고, 친한 사람이나 같이 그리워하였습니다.


소원을 이룰 때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로만 듣던 서울, 꿈에만 보던 삼각산을 보려고, 기어코 열세 살, 열네 살 또래의 어린 소년 스물한 사람이 일행을 지어, 멀고도 먼 길을 더듬어 올라갔습니다.

피곤한 것도 잊어버리고, 사흘 낮, 나흘 밤, 서울 장안 구경을 마치고, 그들이 동소문 밖 삼각산을 찾아들었을 때, 얼마나 반갑고 기꺼웠겠습니까.

따뜻한 봄 하늘 아지랑이 저 편에 우뚝 솟은 바위의 위엄! 그것은 하루 같이 장안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 산의 얼굴같이 반갑게 보였습니다. 골짜기마다 흘러내리는 맑은 물과 숲 사이마다 방긋이 웃는 두견화! 그들은 속 모르게 깊고 큰 이 집의 귀여운 귀여운 손자애 손녀애같이 사랑스러웠습니다.

길도 없는 등성이를 넘어만 가면 경치가 변하고, 흘러오는 물줄을 거슬러 한 굽이 휘돌면 딴 세상이 배포되어 있어, 그립던 어머니 품에나 안긴 것같이 기쁨에 만취하였습니다.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장안 사관(여관)으로 돌아갈 일을 생각하고, 산중에서 걸어나와 어귀에까지 나왔을 때, 일행을 세어 보니까, 큰일 났습니다. 한 사람이 빠지고 없어서 스무 사람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웬일일까? 웬일일까?”

서로서로 얼굴만 쳐다보았으나, 산 속에서 일행에 빠졌다가 이내 따르지 못하고 산 속에서 혼자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다 각각 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밤이 되더라도 우리가 도로 산으로 가서 다 각각 헤어져 이 골 저 골 찾을 수밖에 없다.”

여러 사람의 생각은 한결같았습니다. 어두워 오는 산 속이 무섭기도 하고, 위험도 하건만, 어린 마음에도 그들은 동무 한 사람을 남겨 놓고 돌아설 수는 없었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되었습니다. 인간 세상과는 딴 세상같이 인적 끊긴 깊은 산 속에 스무 명 어린 사람은 흩어져 헤매었습니다.

달이 밝아서 산 기슭 산 기슭을 낮같이 비취지만, 그래도 골짜기 깊은 숲 속은 마귀의 굴같이 무섭고 컴컴하였습니다.

낮같이 밝은 달밤, 두견화 쓸쓸히 핀 삼각산 기슭 골짜기마다, 나이 어린 소년들이 동무 이름 부르며 헤매는 애련한 소리가 처량하게 들렸습니다.

그러나 가엾게도 그 애타는 소리는 저희들 동무의 귀에는 들리지 못하고, 공연히 빈 골짜기에만 헛 울릴 뿐이었습니다.

아아! 저녁도 굶고, 길 서투른 산 속에서 밤이 새도록 동무 이름을 부르는 그들의 소리를 달님도 귀가 있으면, 눈을 가리고 울었을 것입니다.


이튿날이 되었습니다.

점심때가 지나고 또 저녁때가 되었건만, 산 속에 동무를 찾아 헤매는 어린 사람들은 동무도 못 찾고, 나아갈 길도 잊어버렸습니다.

가련하게도 기진 맥진하여, 더 걷지도 못하고, 더 부르지도 못하고 나무 밑 바위 옆에, 앓는 사람같이 늘어지게 되었으나, 그나마 뿔뿔이 흩어져서 당한 일이라, 스물한 사람이 서로 소식도 모르고 나무 밑에 쓰러졌습니다.

가련하고도 참혹한 일로는, 그 후 여러 날 여러 달이 되도록 그 산에서 살아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여름도 지나고, 가을이 되고, 가을 뒤에 겨울이 와서, 삼각산도 골짜기마다 하얀 눈에 덮혀서 겨울을 났습니다.

봄이 되니까, 희한하게도 전에 피지 않던 잡목나무 가지에 분홍빛 예쁜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그리고, 그 꽃이 골짜기마다 피어서 온 산이 기쁘게 웃는 것 같았습니다.

벌과 나비가 좋아하였습니다. 어느 틈에 전에 없던 꽃이 이렇게 예쁘게 피었을까 하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미친 듯이 펄펄 뛰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나무 꽃가지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나비는 꽃의 탄식을 들었습니다.

“무슨 일로 이렇게 예쁜 꽃이 탄식을 그렇게 하오. 이야기나 해 보구려”

하고, 나비는 꽃을 달래려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 나는 작년 봄에 동무들과 이 삼각산 구경을 왔다가 동무를 잃어버리고, 동무를 찾다 죽은 혼이라오. 이 나무 밑에서 죽어서 내 혼이 이렇게 꽃이 되어 나왔는데, 그 때 같이 왔던 스무 명 동무는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그런다오.”

나비는 그 말을 듣고 슬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옆의 골짜기의 나무에 가서도 그런 탄식을 들었습니다. 그래 나비는,

“옳지 옳지, 그 스물한 명이 모두 서로 소식을 모르고 이렇게 꽃이 되었구나.”

생각하고,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나비가 전하는 소식을 듣고 꽃들은,

“오, 그러면 우리 동무 스물한 사람이 다 같이 죽어서, 다 같이 꽃이 되어, 지금 이 산에 같이 피어 있구나.”

생각하였습니다.

그 뒤로는 늘 나비와 벌의 힘을 빌어, 서로 소식을 전하고 있다가, 꽃이 질 때가 되면, 서로 공론하고, 일시에 와짝 져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