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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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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도락(自動車 道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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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을 때에 말로만 들었더니 남산 위에 조선신사라는 것이 생기고 갈 적에는 화강석 나부랑이 시멘트 가루에 황토흙이 울멍줄멍하던 것이 돌아와 보니까 찰떡을 내리 굴려도 흙 한 점 아니 묻도록 편편하고 아름다운 길이 된 데다가 양쪽으로 은행수를 늘여 심고 그 사이에 우유로 굳혀 만든 듯한 전등을 비단옷에 수정알 박듯 하였으나 저녁이나 되면 깨끗한 길 위로 산뜻산뜻한 바람을 마시며 푸른 나무에 수박 같은 우유등이 달려 있는 것을 쳐다보는 것이 어찌 경개가 아니라고 억설을 내릴 수야 있으랴.

더구나 그 길을 밟아 올라가면 경성의 명승지 남산이 있음에랴.

몸이 병들어 조선에 돌아오던 날 그것을 보고 그 경승에 놀래었더니 차차 한 가지 더욱 기괴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였다. 즉 몸을 일지 못하므로 항상 자리에 누워 있고 밤이면 신열로 전전반측하는 터임으로 대개 밝을 녘이나 되어야 잠깐 잠이 드는데 어디서 그렇게 쏟아지는지 자동차가 낙택부절(絡繹不絶) 쉴새가 없이 소리를 지르고 바로 내가 누워 있는 이층 앞으로 지나간다.

내려오는지 올라가는지 그저 1분이 못 되어 돼지소리 같은 소리를 지르고는 달아나고 또 5분이 못 되어서 개소리 같은 소리를 지르고 지나가니 가뜩이나 잠 못들어 하는 사람에게 이것이 웬일이냐?

나도 다소간의 추측은 하였지마는 그래도 더 자세히 알기 위하여 누구더러 물어보니 헤헤 웃으며,

『그것 기막힌 자동차요. 그것 보면 아직까지도 돈이 있는 데는 있는 모양입니다. 기생 싣고 요릿집 다니고…』

하며 탄식처럼 대답을 한다. 나는,

『그럼 이리로 해서 한강에를 나가나요?』

하니까,

『한강이 무어요. 새로 남산 꼭대기까지 신작로를 놓아서 남산을 한바퀴 돌아나간다우』

나는 그러렸다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강의 달 구경, 청량리의 녹음, 몇몇 군데만 자동차 바람에 돌아다니는 줄 알았더니 이제는 신사(神社)에도 기생이 탕자와 자동차 소풍을 하게 되었으니 내가 와서 새로이 안 것이라고는 그것 하나밖에는 없다.

자동차를 타고 기생을 싣고 무슨 짓을 하든지 무슨 관계할 바가 있으랴마는 돈 있으면 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나를 이렇게 비웃을 사람도 있을는지도 알지 못하지마는 실상 안 해본 짓도 아니요 샘도 아니나는 바가 아니지마는 내가 이 말을 끝맺기 전에 한 가지 말을 하여두려는 것은 자동차 속에서 건곤(乾坤)이 돈짝만하여 보여서 네 활개를 치는 사람들의 지붕 용마름하고 자동차 키하고 얼마만한 차이가 있으며 그 집 대문 앞에 자동차를 대이면 대문 키와 자동차문 키하고 어느 것이 더 큰지 조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본시 취미라는 것을 모르고 조금 안다 하더라도 취미 생활을 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조선 사람이니까 다시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자동차 바람에 휘 한 번 남산을 도는 것이 천박한 사람의 저열한 취미와 흥취를 일으킬는지는 모르지마는 그렇게 싱겁고 몰취미한 것이 어디 또다시 있으랴.

옛말에 인력거가 처음 생기니까 하도 좋고 신기해서 하루종일 인력거를 타고 시중을 돌아다닌 사람도 있었다고. 내가 목격한 바로는 인력거 병문에서 인력거꾼끼리 서로 술 사주기로 타고 끌고 하는 일도 있었으며 인천을 하루에도 기차 타는 맛에 몇 번씩 왔다갔다 한 사람도 있다.

그런 이야기를 자동차 타고 남산을 도시는 호기있는 사람들에게 하면 『미친 놈, 참 어린애 장난이로군. 호랑이 담배 먹을 때 말일세』 할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로 여행을 하는 이 세상에 누가 미친 놈이며 어느 때가 호랑이 담배먹는 때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달과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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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고치는 데는 약을 먹어야 한다. 그렇다고 반드시 병이라고 약으로만 고치지도 아니하는 모양이다.

병든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여 주거나 눈에 보기 좋은 것을 보여주는 것도 그 병을 고치는 데 크게 효과가 있는 듯싶다.

그런데 약은 반드시 과학적이어야 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과학적 진리에서 벗어나서는 그 병을 못 고치는 것은 고사하고 도리어 그 병에 해를 끼치는 일이 있다.

그렇지만 그 마음을 즐겁게 하여 주는 데는 반드시 과학적이 아니요 도리어 어떤 때는 엄청나게 비과학적일 때가 있는 때도 있다.

내가 자리에 누웠을 때 밤이면 창 밖으로 멀리 깜박거리는 별들과 혹간 뚜렷한 달이 나의 병상을 들여다도 보고 내려살피기도 한다.

달과 별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고독한 병상에 누웠을 때는 유난히 친근한 생각이 나며 더구나 미신적으로 자기의 생명을 생각할 때에는 측량키 어려운 공상과 환상이 눈앞에 어른거려서 말할 수 없는 감정의 변동에 심신이 도리어 피로하여질 적이 있다.

달과 별은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와 같은 병자에게도 그만한 미감을 주는 것은 없다. 옛날의 유명한 동화 중에는 달과 별로 된 것이 많다. 어렸을 적에 들어 둔 예수교의 전설에도 달과 별에 대한 것이 많다. 그리하여 이것들은 나의 머리속에서 지우려 하나 지울 수 없는 비과학적 사실로 남아 있어서 언제든지 달과 별을 볼 때에는 아름다운 「콩쥐」나 신데렐라를 눈 앞에 보여주며 천사나 동방박사를 생각케 하여 아름다운 비과학적 사실로써 마음을 순결하고 아름다운 지경에서 취케 하는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다. 이 잠깐이 언제든지 아까웁다.

나의 과학적 이지는 그것을 눈으로 만들었던 물형을 깨뜨려 버리듯 깨뜨려 버리기는 아무러한 주저도 소용없다.

달은 지구를 싸고 도는 위성인데 거기에는 초목금수가 살지 못하고 물이 없는 바삭바삭한 한 죽은 별에 불과하는 것이나 별은 태양계의 일원으로 무한대한 우주의 한 점을 이룬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며 또는 그 거리며 대소며 회전하는 속도를 생각할 때는 머리속에다가 왕모래 한 줌을 쓸어 넣은 것 같이 깔끔거리고 바삭거려서 세상은 조그마한 끈기와 윤택이 없는 것 같다.

이와 같은 사람에게는 달이나 별이 위안이 되지 못한다. 더구나 의원의 말이 믿어지지 않아서 걱정이다. 십 년 동안 착실히 쫓아다니며 믿던 예수교가 비거석 향풍한 지 오랜 오늘에는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 더구나 의사랴.

나에게는 과학적 의약도 약이려니와 요놈의 신앙을 얻어야 하겠다. 달이나 별이 소용없다. 더구나 다 죽은 상에 이 앓는 소리들을 하는 친구들의 위문이란 고맙기도 하고 오히려 뾰족한 신경을 흥분시킬 때가 있다.


천하제일 엄복동(天下第一 嚴福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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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워 있는 방 바로 옆이 골목이다. 골목이라야 보기에 아무 볼상없는 조그마한 골목이지마는 그 골목 안에 조선 사람이 많이 살 뿐 아니라 남대문 밖에서 남산 방면 선혜청 방면을 향하고 오는 사람은 모두 그 길을 이용하므로 대단히 소란하다.

그까짓 소란한 것은 지나가는 사람의 발자취 소리나 이야기 소리에 불과하지마는 진정으로 못 견딜 일이 있으니 어린애들 우는 소리다. 초가집 한 채면 방마다 딴 식구가 들어 있어 그 우물우물 꿈질꿈질하는 목숨들을 볼 때 가련하고 한심하고 나중에는 무서운 생각까지 나는 그들의 생활에 본능에 가까운 생식작용으로 아이들은 남보다도 하나 둘씩은 더 낳는 모양이다. 어머니가 문 밖에만 나와도 코가 덕지덕지한 고만고만한 어린애들이 아우성을 치며 따라나온다. 나와서 어머니에게 매달린다. 무엇을 사달라고 칭얼댄다. 그러면 어머니의 손은 보기좋게 대강팽이를 갈긴다. 볼기짝을 부친다. 어린애는 기절할 듯이 울어댄다. 그러면 어머니는 어디다가 넣어두었었던지 듣기에도 살을 찌르는 듯한 소리로 악을 쓴다. 그러자 아버지가 이 소리를 듣는다. 사유를 묻는다. 눈을 경두뜨고 한참 그러다가는 또 한 번 훔쳐 갈긴다. 어린애는 기절할 듯이 숨이 막혀가며 운다. 그래 울기 시작하면 이삼십 분에는 끝이 안 난다.

목구멍이 원수다. 아침 훤히 밝기만 하면 벌써 옆의 집에서는 어린애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꺄르르꺄르 하면서 오장육부의 힘을 다하여 우는 소리는 당장에 그애 목숨이 넘어가는 것 같다. 이것이 삼십 분 한 시간 계속하기는 예사다. 하도 신산하기에 사람더러 물어보니까 옆의 집에서 아침 죽 장사를 하는데 우는 것을 돌아볼 겨를이 없어 그대로 둔다고 한다. 악착한 생활이다.

동리에 전라도 여자 하나가 있는데 나이는 한 사십 된 모양이다. 그 집 애가 골목 안에서 논다. 어떤 짖궂은 어린애가 건드린다. 때린다. 운다. 그러면 거기 따라서 강파른 전라도 사투리로 역성이 나온다. 자기 자식을 때린 애를 죽일 듯이 벼른다. 악담이 나온다.

그러면 이곳에도 사람 없으랴. 애쌈이 어른쌈이 된다. 한참 동안은 일장풍파가 일어났다 흐지부지한다.

이것이 날마다 계속된다. 숨 넘어가는 듯한 어린애 울음소리는 새벽부터 밤중까지 그칠 새가 없다.

이런 곳에 누웠으니 송구하고 맘이 졸여 못 견디겠는데 그런 중에도 사람을 웃기는 일이 있다.

하루는 내 동생 중에 일곱 살 먹은 놈이 동리집 아이를 때렸다 하여 골목 안이 야단났다. 맞은 애는 울고 있고 그애 어머니는 내 동생을 향하여 얼러댄다.

본시 눈이 쑥 들어가고 아래 위가 찍은 듯한 것이 당돌하고 겁없기로 그애들 축에서는 상당한 완력이 있는 모양이다. 뉘게 지랴. 그대로 서서 변명이다.

『왜 어린앨 때려?』

하고 그애 어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먼저 욕을 하니까 그렇죠』

『무엇이라고 욕을 해 ?』

『엄복동 ⎯─ 자전거 잘 탄다는 ⎯─ 이라고 하니까 그렇지요.』

마누라는 내 동생을 멸시하는 어조에 조소하는 웃음을 섞어서 득의스럽게 말했다.

『얘, 엄복동이만큼만 되어라. 엄복동이 어때서 그래. 나는 무슨 큰 욕이나 하였다고…』

이만큼 암매한 속에서 어린 생명이 자라나는 것을 생각하면 기밖에 막히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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