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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에 그린 닭이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사흘이면 끝을 내던 이 굵은 넉새 삼베 한 필을 나흘째나 짜는데도 끝은 안 났다. 오늘까지 끝을 못 내면 메밀알 같은 그 시어미의 혀끝이 또 오장육부까지 한바탕 할쿼낼 것을 모름이 아니다. 손에 붙지 않는 베라 하는 수가 없다.

박씨는 몇 번이나 이래서는 안 되겠다 마음을 사려먹고, 놓았다가는 다시 북을 들어 들고 쨍쨍 놓고 쨍쨍 분주히 짜보나 북 속에 잠긴 실은 풀려만 가는데도 가슴에 얽힌 원한은 맺혀만 가, 그만 저도 모르게 북을 놓고는 멍하니 설움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생각하면 참 눈에서 피가 쏟아지는 듯하였다. 하기야 애를 못 낳는 죄가 자기에게 있다고는 하지만 남편까지 이렇게도 정을 뗄 줄은 참으로 몰랐던 것이다. 어떻게도 섬겨 오던 남편이였던고? 돌아보면 그게 벌써 십 년 전- 시집이라고 와 보니 남편이란 것은 코 간수도 할 줄 몰라서 시퍼런 콧덩이를 입에다 한입 물곤 훌쩍거리지를 않나, 대님을 바로 칠 줄 몰라서 아침 한동안을 외로 넘겼다 바로 넘겼다 - 남이 볼까 창피하여 시부모의 눈을 피해 가며 짬짬이 코를 닦아 주고, 아침마다 대님을 쳐까지 주어 자식같이 길러낸 남편이요, 그날그날의 끼니에 쫓아 군색하여 먹기보다 굶기를 더 잘하는 가난한 사람살이를 어린 몸이 혼자 맡아 가지고 삯김, 삯베, 생선자배기는 몇 해나 였으며, 심지어는 엿광주리까지 이어, 그래도 남의 집에 쌀 꾸러는 아니 다니게 만들어 신세를 고쳐 놓은 것이 결코 죄 될 일은 없으련만, 이건 다자꾸 애를 못 낳는다고 시어미는 이리도 구박이요, 남편은 이리도 정을 떼는 것이다.

글쎄 뉘가 애를 낳고 싶지 않아 안 낳나? 성주님께 빌기는 몇 번이나 했는데 - 불공도 드리기를 철 따라 게을러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안 생기는 것을 어쩌자고…….

생각할 때마다 아픈 눈물이 가슴을 찢으며 나왔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의 죄임에는 틀림없다. 집안의 절대를 생각해도 그렇거니와, 나이 근 사십에 남 같으면 벌써 아들이라, 딸이라, 삼사 형제를 슬하에 오롱오롱 놓고 흥지낙지 할 것인데, 도무지 사람 사는 것 같지가 않게 밤낮 수심으로 한숨만 짓고 앉았는 남편이 하도 가긍해서 언젠가는,

“이전 난 아들 못 낳갔넝거우다. 첩이라두 얻어 보구레.”

하니,

“글쎄 첩을 얻으문 집안이 편안하야디. 그르문 님재레 더 불쌍하디 않갔습마?”

이렇게 자기를 위하여 자제까지 하다 얻은 그러한 첩이다.

그렇게 얻은 첩에게 이제 남편은 빠졌다. 처음에는 그래도 며칠 만에 한번씩은 자기 방에도 들어와 잘 줄을 알더니, 이 봄을 잡으면서는 그림자도 얼른하지 않는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꼬. 시어미야 아무리 구박을 주어도 남편의 정만 있으면 살지 하고 한뜻같이 그 시어미를 섬겨 왔고, 남편은 또 어머니를 글타고 자기 편을 들어 왔다. 그러나 이젠 남편마저 어머니 편이다.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 아무캐서도 첩년보다 자기가 시퍼런 아들을 하나 먼저 낳아 가시 돋친 시어미의 혀끝을 다듬고 첩년에게 빼앗긴 남편의 정을 온통 끌어다 평화로운 가정을 만들어 놓아야 할 텐데 그래서 어디 선달네 굿에나 한 번 더 가서 애를 빌어 보리라 총알같이 별러 왔으나, 그것도 임의롭지 못하다. 어제도 굿 이야기를 했다가 퉁바리를 썼다.

그러나 오늘 밤까지 굿은 끝나고 만다. 아무리 생각해도 욕이 무섭다고 이 좋은 기회를 놓치기는 차마 아깝다. 박씨는 다시 잡았던 북을 놓고 베틀을 내려 건넌방으로 건너갔다. 한 번 더 시어미의 의향을 품해 보자는 것이다.

“오마니! 아무래두 굿에 가 보야가시오?”

시어미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머리를 숙인 그대로 겯던 꾸리만 그저 결을 뿐이다.

“그래두 알갔소, 선앙님(성황님)이 복을 줄디.”

“아아니 이년이 요즘엔 바람이 났나 보더라. 짜래는 베는 안 짜구 날마다 먼산만 멍하니 바라보고 앉았더니 글쎄, 무슨 일을 내구야 말디. 시퍼렇게 젊은 년이 가랑이를 벌리구 서나덜이 우굴부글하는 굿구경을 간다!”

과하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다. 이렇게도 말을 할 수가 있나? 분한 생각을 하면 마주 대항을 하여 될 대로 되라 가슴속에 구긴 분을 풀어도 보고 싶었으나 시어미의 말대답을 며느리 된 도리에 받는 수가 없다.

“아이고 오마니! 거 무슨 말씀이요? 그래두 내 몸에 자식이 나야 안 되갔소? 온나제(今夜[금야]) 오마니 제레 아무래두 명미 한 되만 개지구 가볼래요.”

“아이구 참 집안이 망헐내문 페난이나 망하디. 메느리 바람 닐었대는 소문 냉기구 망할건 머잉고. 귀떼기레 있으문 너무 동내서 너까타나 쉴쉴 허는 소리를 들었갔구나, 에 이년아.”

“놈이야 아무랬댐 멜 허우 나만 안 그랬음은 되디요. 아무래두 갔다올내요.”

“아 이년아! 아무래두 갔다 오갔댐엔 나 있는 덴 와 와서 이리 수선이냐? 수선이. 응, 이년이 굿 핑계를 대구 무슨 수를 푸이누라구? 다 알디 다 알아, 이년 네, 오늘 저녁 선달네 굿엘 어디 갔단 봐라 내 집 문턱에 발을 못 들여놓으리라, 볼래 야(子息[자식])레 미물이디 미물이야, 그래두 데따운 년을 에미네라구…….”

박씨는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만일 남편이 이 소리를 들었으면 나를 화냥년이라고 당장 내어쫓을까? 아니, 아무리 정은 첩년에게 갈렸다고 하더라도 십여 년을 같이 살던 내 마음을 몰라줄 리는 없을 거야. 그 입에 담지 못할 험담으로 나를 집어먹으려는 그 입놀림을 남편이야 마뜩해 곧이들으리! 박씨는 도리어 남편이 이 소리를 좀 들었더면 오히려 속이 시원할 것 같다. 아무리 몰인정한 사람이기로 애매한 누명을 뒤집어쓰는 이 나를 보고 짐승이 아닌 다음에야 내 이 터져오는 가슴을 마음으로라도 어루만져는 주겠지 하니, 남편이 그립기 그지없다. 장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이런 소리를 반반이 외어 바치고 가슴속에 서린 분을 풀어 보고 싶다. 그래서 남편이 내 맘을 알아만 준다면 명미도 아니 줄리 없을 것이니…….

생각을 하며 박씨는 가슴에 넘쳐 흐르는 울분을 삼키고 다시 베틀로 돌아왔다.

참으려야 참을 수 없는 눈물이 가슴을 할퀴기 시작한다. 마음 놓고 실컷 울기나 하면 분이 풀릴까, 참기도 어려웠으나 참으려고도 아니하고 그냥그냥 울다 보니 벳바닥 위에는 어느 새 벌써 은하수같이 기다란 해 그림자가 꼬리를 길게 달고 가로누웠다.

벳바닥 위에 해 그림자가 가로누우면 또 저녁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박씨는 치마폭을 걷어들어 눈물을 씻고 일어섰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나 돌아오려나 문 밖에 나서니 은은히 들려오는 선달네 굿 소리!

둥 둥둥 둥둥둥!

둥 둥둥 둥둥둥!

한참 흥에 겨워 치는 장구 소리다.

이 소리에 박씨의 마음은 더욱 초조하다. 그래도 달려가기만 하면 신령님은 복을 한 아름 칵 안겨줄 것 같다.

아이, 그이가 오늘은 또 속상하는 김에 술을 잡수셨나 보지, 들락날락, 기다리나 어둠이 짙어 가는데도 돌아오는 기척이 없다. 박씨는 안타까웠다.

어둠은 점점 짙어 가는데 그러다 굿이 끝나면 하는 생각은 그대로 참지를 못하게 했다. 아이를 못 낳는 한 그러지 않으면 시어미의 그 욕을 면해 볼 도리가 있을까? 시어미 눈이야 얼마든지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나 시어미의 치마끈에 매달린 고방문 쇠를 어찌할 수 없으매, 복을 빌 명미를 낼 수 없음이 자못 근심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또한 이 밤을 그대로 보낼 수는 없다. 생각다 못하여 박씨는 애지중지 농 밑에 간직해 두었던 은바늘통을 뒤져냈다. 이것은 어머니가 시집올 때 노리개도 못 해 주는데 이것이나 하나 해 줘야 된다고 옥수수 엿 말을 팔아서 만들어 주던 것으로 자기의 세간에 있어선 다만 하나의 보물이었다. 그러나 박씨는 이제 자식을 빌러 가는 명미의 밑천으로 그것을 팔자는 것이다.

바늘통을 뒤져 들은 박씨는 한 점의 미련도 없이 그것을 들고 동구 앞 주막집 뚜쟁이 늙은이를 찾아가 일금 이 원에 팔아서 입쌀 한 되, 백지 두 장을 사들고 부랴부랴 선달네 굿터로 달려갔다.

굿은 한창이었다. 사내, 계집, 어린이, 큰 애,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은 거의가 다 모인 성싶게 마당으로 하나 터질 듯 둘러섰다.

보니, 그 앞에선 떡이라, 고기라 즐비하게 차려놓은 상을 좌우로 놓고 남색 쾌자에 흰 고깔을 쓴 무당이 장구에 맞추어 흥겨운 춤이 벌어져 있다.

박씨는 선달네 마누라에게 온 뜻을 말하고 놋바리 두 개를 얻어 담뿍담뿍 쌀을 담아 정하게 백지를 깔고 굿상 위에 받쳐 놓았다. 복을 빌러 온 사람은 박씨 자기만이 아니었다. 남편이 앓아서 무꾸리를 온 색시, 자손들을 잘 살게 해 달라 공을 드리러 온 늙은이, 소를 잃고 점을 치러 온 사내 - 무어라 무어라 꼽을 수 없이 수두룩하다.

무당은 춤을 한참 추고 나더니, 복 빌러 온 사람들을 차례로 불러 복을 주기 시작한다. 박씨는 여덟째 번이었다.

“야들아!”

큰무당은 한참 장구에 흥겨운 시내들을 소리쳐 부른다.

“에에이!”

“어허니야 시내들아! 너희들 들어 봐라. 김해에 김만복이 서얼훈에 무자하여 목욕 재계 사흘 후에 성수님께 자식 빌려 명미 놓고 등대했다. 성주님을 모셔다가 오옥동자 금동자를 오늘루서 주게 해라. 자아 노자! 노자 노자 아 하!”

큰무당은 다시 팔을 벌려 춤을 을신을신 추기 시작하니 시내들은 또 엉덩춤에 장구다.

둥둥 둥둥 둥둥둥…….

둥둥 둥둥 둥둥둥…….

큰무당은 한참이나 춤을 추고 나더니, 박씨를 불러 자기가 입었던 쾌자를 벗어 입히고 고깔을 씌운다.

박씨는 자못 그것이 사람 많은 가운데서 부끄러운 노릇이나, 그것을 가릴 차비가 아니다. 무당이 시키는 대로 정성껏 받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근심은 추어 보지 못한 춤이라 어떻게 팔을 벌리고 다리를 놀려야 할지 알 수 없는 것이요, 그것이 서툴러서 뭇 사람들이 웃음거리가 되면 하는 것이 순간 낯을 붉히었으나 자식을 비는 춤이어니 하면 저도 모르게 온 정신이 춤에만 쏠려 들었다.

“성주님 오셨나이까, 김해에 김만복이 임전에 자식 빌려 가노이다. 금동자를 주소서. 금동자를 주옵소서. 야들아! 시내들아! 자 - 때려라, 노자 조자 -.”

“에에이!”

큰무당의 호령에 시내들은 또 일제히 받으며 춤 장구를 울린다.

“쿵!”

박씨는 한 팔을 들었다.

“쿵! 쿵! 킁덕쿵!”

장구 소리에 맞추어 박씨의 팔은 올라가고 내려오고 처음 그 한 팔을 들기가 힘이 들었지 들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다. 들었다 놓았다 춤도 아주 곱다.

얼마 동안을 추고 난 뒤, 큰무당은 또 시내들을 불러 장구 소리를 멈추게 하고 박씨를 붙들어 쾌자와 고깔을 벗긴 다음, 명미 바리에 쌀을 한 줌 집어내어 공중으로 올려던졌다. 다시 그것을 잡아 가지고는 그것이 쌍이 맞나 안 맞나를 검사하여 안 맞으면 버리고, 맞으면 박씨를 준다. 그러면 박씨는 그것을 받아서 잘근잘근, 그러나 경건한 마음으로 씹어서 삼킨다. 그것이 복인 것이다. 무당은 그 쌍이 맞는 쌀알이 박씨의 나이와 같이 될 때까지 몇 차례를 거듭하고 나더니,

“어허니야아……어허니야아…….”

큰무당은 춤을 얼신얼신 추며,

“성주님이 김해에 김만복이 무자하사 천복 디복 다 주시다. 서른 여슷 다섯 쌍이 다 맞아떨어졌다. 옥동자 금동자가 머지 않아 생기리라. 성주님을 박대 마라. 선앙님을 박대 마라. 야! 박씨야아!”

하더니, 굿상 위에 괴어 놓았던 흰떡 한 개를 박씨의 치마를 벌리래서 집어넣는다.

“이건, 금동자니라.”

또 한 개를 집어넣고,

“이건, 옥동자니라.”

그리고 나서 냉큼냉큼 세 개를 연거푸 집어 두며,

“옥동자 금동자 오형제를 두었더라. 이 복 받아 성주님께 물러 주고 성공을 드려라 아아하아!”

하니, 박씨는 받은 떡을 떨어질세라 조심히 치마귀를 둘러싸 안고 대문으로 빠져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무당이 가르친 대로 뒤란 밤나무 밑 구석 오쟁이에 싸고 온 떡을 정성스레 하나하나 집어넣고 공손히 읍을 하여 허리를 굽혀 절을 하였다.

“성주님! 아무케두 자식을 낳게 해 줍소사.”

또 한 번 절을 하고 나서,

“시어머니 마음을 고쳐 줍소사.”

또 절을 한 다음,

“남편을 제 방으로 건너오게 해 줍소사.”

그리고 또 한 번 절을 하고는 조심조심 물러나 뒤란을 돌아왔다.


변씨의 방에는 불빛이 익은 꽈리처럼 지지울리게 창을 비친다.

남편이 장에서 돌아왔나 가만가만히 문 앞으로 걸어가 엿들으니 사람이 없는 듯이 방안은 고요한데 남편의 고무신도 변씨의 그것과 같이 가지런히 토방 위에 놓여있다. 돌아오기는 왔다. 그러나 아직 잘 때는 아닌데 왜 이리 조용할꼬? 해어진 창 틈으로 가만히 엿보니 남편은 술이 취한 양 아랫목에 번듯이 누웠고 변씨만이 등잔 앞에 펄짝이 앉아 남편의 해진 양말 뒤축을 꿰매고 있다.

박씨는 전에 달리 남편이 더욱 그리웠다. 행여나 오늘 밤은 제 방으로 건너와 주무시지 않으시려나? 자기의 돌아온 뜻을 알리려고.

“아까 어둡뚜록 안 돌아오시더니 언제 돌아오셨나.”

하며, 발칵 열었다.

그러나 남편은 세상 모르게 잠에 취했고, 변씨가 한 번 힐끗 마주 쳐다보더니,

“아니! 이 밤뚱에 함자 어딜 갔더랬소!”

가시가 숨은 말을 그저 한 번 던질 뿐 눈은 다시 양말 뒤축으로 떨어진다. 남편이 그리운 생각을 하면 그 옆에라도 좀 앉았다 나오고 싶었으나 눈에 가시같이 변씨가 거슬린다.

“술을 또 잡디?”

박씨는 남편의 얼굴을 한 번 들여다보고는 돌아나와 자기 방으로 건너왔다. 등잔에 불을 켜고 앉으니 울적한 마음 더한층 새롭다. 이불도 펴 놓을 생념이 없어 그대로 초조하게 앉아서 혹시 남편의 잠이 깨지나 않나 정신을 변씨 방으로만 모았다.

그러나 아무리 앉아서 기다려야 남편이 깨는 기척은 들리지 않는다. 한 번 더 건너가 보리라 문을 여니 어느새 변씨 방에는 불이 없다. 불 없는 방에 건너가선 안 된다. 우두커니 문을 열어잡고 새카만 변씨 방을 건너다보는 박씨의 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울고 싶도록 마음은 아프다. 그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서러운 한숨을 저도 모르게 꺼질 듯이 쉬고 힘없이 문을 되닫았다.


새벽녘에야 겨우 눈을 붙였던 박씨는 참새 소리에 그만 잠이 깨었다. 처마 밑에 배겨 자던 참새가 포득포득 기어나올 때면 아침밥 차비를 하여야 되는 것이 습관적으로 그의 잠을 깨우는 것이었다.

박씨는 졸림에 주름지는 눈을 애써 비벼 뜨며 뒤란으로 돌아가 재삼태를 들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부엌에 발을 막 들여놓으려는 순간 박씨는 뜻밖의 사실에 놀라고 문득 걸음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새 언제 나왔는지 전에 없이 시어미가 부엌에 나와 앉아서 쌀을 일고 있는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박씨는 한참이나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아니 오마니! 와 일찌거니 나오셨소?”

한 발을 마저 문턱 너머로 들여놓았다.

시어미는 일던 쌀만 그저 일 뿐 아무 대답도 없다.

“아이구 오마니두! 아침엔 요좀두 추운데.”

박씨는 자기가 쌀을 일려고 함박을 붙들었다.

“해가 대낮이 되도록 자빠져 자다가 이제야 나와서 이리 수선이야 이년이! 어드메 가서 밤을 밝케 개지구 와선……. 너 같은 더러운 년이 짓는 밥은 이젠 더러워 먹을 수 없다. 이거 썩 놔! 어즌낮엔 어디멜 갔든 게냐 이 년!”

박씨는 쥐었던 함박을 놓지도 주지도 못하고 섰다.

“야, 이년이 더럽대두 안 나가구 버티구 섰네. 안 나갈 테냐? 그래! 야 있네? 야! 야! 만복이 있네? 아, 이년을 그래, 그대루 둔단 말이가? 계집년이 밖에 나가 밤을 새고 들어온 년을!”

시어미는 소리를 질러 아들을 부른다.

이에 응하여 쿵 하는 건넌방 문소리가 난다고 듣고 있는 순간 턱 하는 소리와 같이 박씨는 함박을 쥔 채 바닥에 엎드러졌다. 어느새 남편은 달려와 발길로 사정없이 중동을 제겼던 것이다.

“이년! 이 개만두 못한 쌍년! 어즌낮에 어드메 갔드렌? 나래는 새끼는 못 낳구 한대는 게 서방질이로구나 엉? 이년! 제 서나두 모르게 바늘통을 내다 팔아 개지구 밤을 새와 들어오는 년이 화냥년이 아니고 그럼 뭐이가? 바늘통을 몰래 팔문 내레 모를 줄 알았든? 내레 주막에서 다 들어서. 이년, 그래 내레 이년을 에미네라우 데리구서 에! 참 분하다.”

박씨는 기가 막혔다. 정은 변씨한테 빼앗겼다 하더라도 그래도 어디론지 한껏 믿고 있던 남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참으로 몰랐다. 아무리 시어미가 불어 넣었기로서니 밉지만 않다면야 이런 행동 까지는 차마 없었을 것이다. 분한 생각을 하면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같이 맞싸워 보고 싶으나 그래도 남편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아니 여보! 이게 무슨 일이요? 난 당신이 이렇게 내 속을 몰라줄 줄은 몰랐수다레. 굿이 어즌나쥐꺼지래기 당신은 당에 가서 오시지 않구 해서 아, 거길 갔다가 이내 와서 잤는데 뭘 그르우?”

박씨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치마를 털고 일어서 청백한 나를 좀 보아 달라는 듯이 남편의 턱 아래로 기어들었다.

“이전 네까진 쌍년 소린 백 번 해두 곧이 안 듣겠다. 이 쌍년 같으니 썩 게나나가라.”

그 억센 손이 끌채를 덥석 감아쥐는가 하니 사정없이 흔들며 끌어낸다.

“이년! 다시 내 집에 발길을 또 들여놓아라. 어디 가서 뒤지든지 도와허는 놈허구 맞붙어 살든지 내 집엔 다시 못 두로리라.”

휙 잡아 둘러 놓으니. 박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비칠비칠 힘을 주다 못해 개바자 굽에 번듯이 나가 자빠진다.


박씨는 다시 일어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죽고 싶었다. 남편에게까지 이 더러운 누명을 쓰고 살아서는 무엇 하나? 차라리 죽는 것이 편하리라. 그러나 목숨을 임의로 하는 수가 있나? 죽지 못할 바엔 남이 볼까 창피하다. 박씨는 일어났다.

그러나 대문은 걸렸다. 갈 데가 없다. 갑자기 몰렸던 설움이 물에 밀리는 모래처럼 터져나왔다. 친정이나 있으면 남같이 어머니나 찾아가지 않겠나?

아버지의 뒤를 쫓아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지 오래다. 박씨는 생각다 못해 이 집에서 학대를 받고 붙어 사느니보다는 어디로든지 가는 것이 차라리 편하리라. 가다가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아무리 계집이기로 제 몸 하나야 치지 못하리. 또 치기 어려우면 시집이래두 가지. 남이라구 두 번 세 번 서방을 얻을까? 에구 그 시어미 딸년, 첩년의 눈독 - 그만한 시집이야 어딜 가면 없으리 생각을 하며 박씨는 마을을 어이돌아 신작로 큰길을 더듬어 나섰다.

하지만 무슨 미련이 뒤에 남았는지 차마 발길이 앞으로 내달아지지 않았다. 한 발걸음 두 발걸음 촌중을 살펴보고, 그리고 자기의 집을 찾아 내고는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다 방향조차 없는 길이라, 가다가는 산모퉁이에 힘없이 주저앉아 한숨을 짓다가는 다시 일어서 걷고, 걷다가는 또 쉬고 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을 하다가 이윽고 해는 저물어 색시 적에 같이 엿장수를 다니던 조씨라는 엿장수 늙은이의 집을 찾아 들어가 그날 밤을 쉬기로 하고 저녁을 얻어먹었다.

그러나 먹고 누워서 피곤을 풀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기가 이까지 떠나온 것이 열 번 잘못 같게만 생각되었다. 비록 갈 데는 없으되 어디나 가서 자리를 잡고 정을 붙이면 못 살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악한 시어미요, 이해 없는 남편이라 하더라도 이미 자기는 그 집 사람이었다. 어떠한 고초가 몸에 매질을 하더라도 그것을 무릅쓰고 그 집을 바로 세워 나가얄 것이 자기의 반드시 하여야 할 의무요, 짊어진 책임 같았다. 욕하면 먹고, 때리면 맞자. 욕도, 매도, 다 참으면 그만이 아닌가. 내가 왜 그 집 대문을 떠나 시퍼렇게 젊은 년이 뉘 집이라고 이 늙은이네 집에서 자려고 할까? 그만 것을 참지 못하여 마음을 달리 먹고 떠나온 것이 여간 마음에 뉘우쳐지는 것이 아니다. 병풍에 그린 닭이 홰를 치고 우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 집은 못 떠나야 옳다. 죽어도 그 집에서 죽고 살아도 그 집에서 살아야 할 몸이다.

박씨는 다시 발길을 돌렸다.

이미 어둡기 시작한 날이라 이십 리나 걸어야 할 밤길이 적이 근심 되었으나 가다가 죽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아니 돌아설 수가 없었다. 아득한 밤길을 헤엄이나 치듯 갈팡질팡 어릅쓰러 마을 앞까지 이르렀을 때는 밤은 이미 자정에 가까웠으리라. 고요한 정적에 잠겼는데, 이따금 개 소리만이 겅겅 하고 건너 산에 반향을 일으킨다.

박씨는 요행히 주막집에 불이 켜 있는 것을 보고 달려가 아직 주머니 귀에 남아 있는 바늘통을 판 밑천으로 양초 두 자루, 백지 다섯 장을 사들고 우선 뒷산 서낭당으로 올라갔다. 자기의 지금까지의 그 잘못을 서낭님께 뉘우쳐 보자는 것이다.

초에다 불을 켜서 서낭님의 앞에 가지런히 한 쌍을 꽂아 놓고 공손히 읍을 하고 서서 오늘 하루의 지난 일을 눈물을 흘리며 뉘우쳤다.

그리고 시어미의 마음을 고쳐 달라 빌고, 남편을 이해시켜 달라 빈 다음 아무럭해서도 자손을 보게 하여 남편의 그 수심을 하루바삐 풀게 해주고 집안의 대를 이러 달라 간곡히 빌었다. 그리고 다시 절을 하고 나서 백지 다섯 장을 연거푸 소지를 올렸다.

그런 다음, 집으로 발길을 돌리며 내려다보니 남편의 방에도 시어미의 방에도 아직 불은 빨갛게 켜져 있는데, 오직 자기의 방만이 홀로 어둠에 싸여서 어서 주인이 돌아와 밝혀 주기를 기다리는 듯하였다.

박씨는 불빛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했다.

개 짖는 소리가 사탁 아래 또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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