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가 켜질 때에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봉화(烽火)가 켜질 때에

1

“이 가시내 어이 가지 야―.”

“내사 와 안 가기로.”

굼트러진 산길로, 귀영(貴英)이와 취정(翠晶) 이는, 서로 이끌어 영성산(瀛城山) 중턱에 올라섰다. 귀영이는, 요사이 날마다 푸른 빛이 짙은 푸나무떨기 사이로 거닐 적마다, 한 가지의 느릿한 시름을 느낀다. 그것은, 봄이 그리워짐이다. 오는 웃음보다도 가는 눈물이 그리울 세, 더구나 근심스러운 푸른 그늘보다는, 차라리 애타는 붉은 꽃숲이, 그리웠다.

그러나, 봄은 갔다. 꽃다운 봄은 가고 말았다. 온 탕의 모든 물건이, 애써 다투어 삶의 새 빛을 물들이느라고, 한창 버스럭거리며 속살거리던 그 얄궂은 봄은 가고 말았다. 사람마다 먼 데 계신 님 그리 듯하는 봄이언만은, 하루 저녁 애졸이던 옅은 꿈은 소소로쳐 깨울 때에, 그 봄은 슬그머니 가고 말았다. 봄아―. 이 야속하고 몹쓸 봄아―. 가려거든 너 혼자나 고이 가지, 일부러 꽃도 지우고 새까지 울리우고, 그리고야 갈 것이 무엇이 있노.

높이 올라갈수록, 누 아래 보이는 꽃이 점점 늘어간다. 영성산을 끼고, 동으로 부산진(釜山鎭)에서 서으로 송도(松島) 까지, 수만 호의 저자 거리는, 말굽모양으로 활등을 지며, 휘둘려 있다. 평지에는, 일본식 서양풍의 딴 나라 사람의 집들이, 온 부산을 버리여 있다. 조선사람들의 집은, 모두 옛날부터 교통과 살기가 불편한 산꼭대기에로만, 점점 쫓기어 올라와서, 가파른 언덕 비탈에다, 게딱지 집들을 제비집 모양으로 매달아 놓았다.

어느 때이라든가, 조선을 처음으로 오는 어느 서양사람이, 밤에 연락선을 타고 오다가, 절영도(絶影島) 밖에서 부산을 건너다보고, 너무도 뜻밖에 놀라며 “조선에도 저렇게 굉장히 큰 여러 층집이 있구나.” 하고 무한이 감탄하였다. 실상은 그것이, 여러 층의 큰 집이 아니라, 수천 호의 불켜 놓은 산비탈 오막살이를, 잘못 보고 놀란 것이었다―. 귀영이는, 그러한 생각을 하며, 뜻없이 쓴 웃음을 웃었다.

저러한 속에도, 즐거운 웃음이 있으려면 있고, 구슬픈 울음도 남 유달리 더 많이 있으며, 붉은 피에 날뛰는 청춘도 있고, 첫사랑에 애졸이는 어여쁜 시악시도 있기는 있지마는, 통틀어 보자면은, 아무러한 빛도 없고, 아무러한 생명도 없이, 다만 산송장들이 꿈틀거리는, 쓸쓸한 무덤같아 보인다. “나도 저 속에서 났구나, 저러한 속에서 나서 저러한 속에서 자라고, 저러한 속에서 이대로 시들었구나…….” 하고, 귀영이는, 애처로웁고도 쓸쓸한 시름을, 느끼었다.

귀영이의 얼굴은, 백골이 다 되다시피, 너무도 파리하고 핼쓱하였다. 그러한 얼굴에, 이상한 혈조(血潮)가 떠올라,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어여뻐 보인다는 것 보다도 무서워 보인다. 귀영이는, 자지러질 듯이 쇠기침이 터져나와서, 한참이나 어쩔 줄을 모르고 쩔쩔 매인다. 그러다가 연붉은 선지피를, 두어 덩어리나 턱턱 배았고, 꼬구라질 듯이 아찔하여서, 팔을 버티고 앉았다. 눈 아래 제일 많이 보이는 것은, 바다이다. 바다와 섬뿐이다. 커다란 바다가 휘둘쳐 아람을 벌리고, 온―부산을 덤썩 껴안았다. 이 부산은, 아니 육지는, 바다의 품안에서 산다.

―바다 바다, 오―보라 저 바다를. 얼마나 크며, 얼마나 거룩하냐. 절영도 저밖을 내여다 보라, 하늘이냐 바다이냐, 알기 어려운 바닥, 그윽한 바다.

그러나, 이 곳의 사람들은, 바다를 모른다. 바다는 아는 체 하건만은, 사람들은 모르는 체 한다. 바다가 주는 사랑을 받기는 하면서도, 바다가 성이 나 날뛸 때에, 그를 위하여 울어줄 줄은 모른다. 바다가 부르는 자장 노래를 듣고, 옅은 꿈자리에 조을 줄을 알아도, 성난 물결이 바위에 부딪히며, 굳세이게 부르짖음 무서운 쿤 울음을, 사람의 귀에 들리여 줄 때에, 사람들은 아무러한 말이나 뜻으로라도 대답할 줄을 모른다. 그리하려는 용기조차, 보려 하나 볼 수 없다. 다만, 남녘 나라 사람의 부드러웁고도 숫된 마음으로, 미지근하고도 나른한 피가, 빛이 사의에, 게을리 흐를 뿐이다. 사람들아―, 왜 억세이지 못하냐, 무서웁고 굳세인 힘이 없느냐. 그나마, 모질고 독한 성질조차 없느냐, 왜 끝을 모르고 뒤가 무르냐.

귀영이의 마음은, 여러 가지 생각이 너울져 엉크러질 때에, 한편으로 너무나 저의 몸이 외로웁고 쓸쓸함을 즈끼였다. 온몸에 찬땀이 흐르며, 이상하게 추운기운이 스쳐 가, 한 번 오쓸하고 추웠다.

부두에 대었던 기선은 물러간다. 시원치도 못하게 ‘우―웅’ 하는 소리를, 움층스러웁고 늘어지게 지르면서, 천천히 부두를 떠나간다. 무슨 근심스러운 큰 물건이, 원한을 머금고, 천천히 대지(大地)를 저주하면서, 물러가는 듯하다. 굵다란 굴뚝으로, 뭉게뭉게 쏟아져 떠오르는, 검푸른 연기는, 사방으로, 새삼스러이 꿈쩍거리는 이 인간의 생활의 그 무엇을, 상징(象徵)하는 듯한 이상한 느낌을, 귀영이는 느끼었다.

―아 ―부산! 몇 날 전에는, 자기가 이 땅을 벗어났다. 배를 타고 상해(上海)로 떠나갈 때에는 “이제는 영별이다. 다시는 이 땅에 발을 들이여 놓지 않으리라. 쓸쓸하나마 오랫동안 방탕 생활에, 물결치는 대로, 이 세상이 있는 데까지 떠돌아 다니리라. 그러다가, 아무 데나 쓰러져 죽으면은, 그 곳의 흙이 될 뿐이지. 죽은 뒤에라도 영혼이, 유랑해 떠돌아 다니는 넋이 되리라, 지긋지긋한 이곳을 또다시 오지는 아니하리라.” 그랬더니만, 아무리 하여도 잊지 못할 것은 고향이었다. 고국이었다.

힌 옷을 입고 사는 우리나라가, 그리웠다, 늘어진 사투리에, 흥타령을 노래하는, 우리의 시골이, 그리웠다. 나중에는 “우리나라에도 봄이 왔으리라. 우리 시골에도, 꽃이 피었으리라.” 하고 시들푼 걸음을 되돌이키여, 이곳의 땅을 또다시 밟게 되었다. 사람이란 얼마나 우스운 것이냐, 얼마나 모순된 것이냐.

그렇다, 자기가 이곳을 떠날 때에는, 기선을 탔고, 이곳에 다시 돌아올 때에는, 기차를 탔다―. 빛 바래고 나린내 나는 옛날 추억이, 귀영이의 눈물을 끄올려 내렸다. 서울서 오는 급행차인가, 배암처럼 기다란 차가, ‘삐―’ 소리를 강하게 지르며, 부산진에서 초량역(草梁驛)으로 달려온다.

―저 차에는, 각처의 사람이 탔으리라. 서울 사람도 탔을 터이지. 요사이 서울은 꽤 번창할 걸. 종로에는, 야시(夜市)도 섰으리라. 젊은이들은, 가벼운 옷에 탄력이 무르녹은, 강근한 몸으로, 새로운 이상에 붉은 가슴을 날리며, 다리니라. 자기도, 한창 시절에는, 몸도 건강하였었고, 이상도 있었다. 사나이들이 반할만치 얼굴도 어여뻤고, ‘잘 살자 일하자’ 하며 떠들고 다녀도 보았다. 또 어느 때에는, 알뜰한 사랑에, 말 못하는 애졸임도 있어 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이냐, 병! 약한 자! 나도, 서울이나 또 갈까. 병도 고칠겸, 서울로……. 김씨가 있는 서울에 사랑하던 이가 살던 서울에……. 그러나 못 가느리라. 아닌 갈란다. 결단코 다시는 가지 아니 하리라. 그렇다, 나는 나 까닭에 산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살아도 내가 사는 것이요, 죽어도 내가 죽는 것이다―. 귀영이의 가슴은, 날카로웁게 날뛰였다.

그의 몸에는, 이상한 소름이 쪽 끼치었다. 한 번 아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조금 있다가, 그의 얼굴은, 따끈따끈히 내려 쪼이는 햇빛을, 깨달았다. 그의 손은, 손바닥에 보들보들 스치이는 부드러운 김의풀을, 한 움큼 움키어 쥐었다. 그리고 손아귀에 억세인 힘을 주어, 잡아 뽑았다. 풀은, 손의 힘을 다 받기도 전에, 봄물이 오른 하얀 뿌리채로, 아무 힘없이 약하고도 유순하게 뽑히었다.

귀영이는 열이 나는 듯이, 뽑힌 풀을 발끗해 내어 던졌다. 그리고 어찌할 줄을 모르는 듯이, 한참이나 둥글었다. 그러다가 그 심술이 멈추어질 때에는, 또다시 말할 수 없는 이상한 시름이 떠올라, 냐중에는 그것이, 그럭저럭 눈물이 되어 버린다.

시름! 눈물! 머리 위에 마음 없이 떠돌아가는 뜬 구름도, 시름은 시름이요, 섬 모퉁이로 하염없이 그림자를 감추는 배돛대도, 눈물은 눈물이지만은, 그러한 설움과 눈물 가운데에도 귀영이는 새삼스러이 다른 설움을, 느끼었다. 그는 그가 드러누워 있는 그 땅이, 구슬프게 정다웠다. 누워 있는 그 자리에서, 눅웃눅웃한 김이 올라와, 그의 나른한 온몸을 휩쌀 때에, 아릿하고도 쌉살한 정다움을, 느끼었다. 그것이 곧 시름과 눈물이었다. “아― 나는 땅으로 가야겠다. 흙으로 돌아가야겠다.” 하고, 가늘고 힘없이 부르짖으며, 그만 큰 울음이 복받쳐서, 소리를 내어 운다.

꽃을 꺾는다고, 산 잔등으로 휘돌아 다니던 취정이는, 귀영이가 우는 바람에, 놀라, 뛰어 왔다. 귀영의 허리를 껴안아 일으키며

“형이요 우지 마소, 예? 우지 마소.” 귀영이는, 얼마만에 울음을 그치었다. 취정이가 웃으며

“오늘은 또 와 울었는게요” “내사 울기는 와” 하고, 귀영이도 웃었다. 취정이는 다리를 뻗고, 귀영이와 마주 앉아서, 꺾어 가지고 온 들꽃 떨기를, 입맛을 ‘쩍쩍’ 다시며 이윽히 들여다 보더니 “에이 내뿌릴란다.” 하고, 저의 등 너머로 내던진다. 그러는 꼴이, 매우 말괄량스럽기도 하고 익살스럽기도 하다. 취정이 저도, 제가 한 짓이 너무 우스운 지, 힐끗 귀영이의 얼굴을, 건너다 보며 ‘아하하’ 하고, 너털지게 웃음을 터친다. 귀영이도 따라서 힘없이 웃었다.

그리고 나서는 얼마 동안이나, 무슨 생각에 잠기어, 서로 아무 말도 없이 앉았다가, 취정이가

“형이요 이제 그만 내려가십시다.” “와? 내사 안 갈란다.” 취정이는, 물끄러미 귀영이를 건너다 보며

“아이 얄구저라. 그럼 예서 이리 울다가, 죽어뿌릴게요.” “글세…… 죽을 택가…… 살 택가.” …… 말소리가, 청승스러이 떨리면서도, 힘없이 가라앉았다. 취정이는 더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귀영이의 근심스러운 얼굴을, 힐끗 건너다보며, 저의 얼굴도 시르르 흐리어져 버리었다.

육자백이와 흥타령의 음울한 곡조는, 이 나라 사람들의 선천적으로 가진, 피도는 소리다. 실없는 에누다리에, 삼사월 기나긴 해도 다 넘어갔다. 귀영이와 취정이는, 울음과 웃음과 또한 미친 노래에, 저절로 지처서, 해가 저문 뒤에 산을 내려온다. 귀영이는, 취정이의 등에 업히었다. 피를 몹시 배았튼 까닭인지, 얼굴을 백지같이 하얗게 질리었다. 취정이는, 영주동 뒤 비탈길을 넘어섰다. 언덕밑 움집 앞을 지날 적에, 움집 할미가 쫓아나오며

“색시― 어디 갔다 오는고, 업힌 인 누고, 응 최백작 딸이가.” 할미가 저 혼자 허튼 수작을 하거나 말거나, 취정이는 못들은 체하고 아무 대답도 없이, 다만 달음 주어 귀영이의 집으로 들어갔다.

2

동래(東來) 읍내에서 서남쪽으로 삼마 장쯤 되는 곳에, 포실한 한 마을이 있다. 바다 같은 물논이, 사면으로 둘린 그 가운데에, 외따른 섬같이 열나문 채의 풀집이, 한 마을을 이루었다.

그 마을에는, 그 마을 사람만이 산다. 대대손손이 그 마을 사람만이, 서로 도와 살아왔다. 같은 고을에서도 딴 마을 사람이면은, 그 마을에서는 외방사람으로 보게 된다. 사람도 다 같고, 말도 한 나라 말이요, 옷도 다 같이 힌 옷을 입건만은……. 그들이, 세상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들을 돌린 것이다. 좇아서 그 마을은, 이름도 없다. 구태여 사람들이, 대접해 부르자면은, 그 마을은 백정촌(白丁村) 이요 그 마을 사람들은 백정놈이다.

귀영이는, 스물일곱 해 전에 그 마을에서 났다. 귀영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 마을 사람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귀천이라는 귀신에게, 쪼들리우고 계급이라는 도깨비에게, 구박을 받아, 때없이 눈물 섞어, 부글거리는 그 피를, 귀영이는 받았다. 귀영이의 조상들도, 그러한 피에서 나고 자라고 늙고 죽고 하였지만은, 귀영이도, 그러한 피로 나고 자라고 하였다.

설움의 나라로 쫓기여 눈물 속에서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만 외딸인 귀영이를, 퍽 사랑하였다. 그 중에도 어머니의 사랑이 더 많았었다. 그랬더니만. 귀영이가 일곱 살 먹었을 적에, 어머니는 어디로 갔다. 어머니가 스스로, 어디로 간 것이 아니라, 건넌 마을의 어느 양반이 잡아갔다. 한 번 잡히어 간 뒤로는, 도무지 소식이 없다. 아마 어느 곳에 종으로 팔아먹었는 게지.

그 때에 어린 귀영이는, 때없이 어머니가 그리워서 “어메 어메 어디 갔노.” 하고 보채이면은, 아버지는 너무도 억울하고 답답하여서, 차마 사정을 다 못하고 “어메는 죽었단다.” 하는 것이, 노상 버릇이었다. 그리고 힘줄 선 팔뚝으로, 굵은 눈물을 씻어버릴 뿐이다. 그런 것이 모두, 어린 귀영의 가습에는, 죽어도 썩지안을 모진 못이 되었다.

귀영이의 아버지는 무식하였다. 세상 사람들의 학문이라 일컫는 그것을, 배우지 못하였다. 그러나 배우지 못한 그만치, 진실하고 순박하였다. 좇아서 부지런하고 금소함으로, 돈도 많이 모았다. 그들이 사는 그 마을에서는, 제일 가는 부자였었다. 그러나 그가 애써서 모은 돈까지도, 가질 임자를 가리는지, 많은 돈이라는 그것으로 하여, 도리어 그의 몸이 괴로웠다.

불한당 같은 양반들의 집 대뜰 아래에서, 까닭 없는 죄명으로, 모말꿀림이나 마주거리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소외양간 한 구석에서, 결박지워진 채로 온 밤을 새우기도, 몇몇 차례였었다. 쓰지도 안은 빗물이에, 머리가 빠질 지경이다가, 나중에는 같이 사는 아내까지 빼앗기고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신세였었다.

한 번은, 이러한 일도 있었다. 아버지가 “백정놈도 미욱하나마 사람이외다.” 하고, 한 마디의 부르짖음이, 양반에게 발악한 것이라 하여, 건너마을 정생원의 집 사랑 마당에서 물볼기를 종일 맞게 되었다. 쫓아 갔던 귀영이도, 억세인 멈놈의 손에, 뺨 하나만 얻어 맞고, 울며 도망해왔다. 그 날 밤에,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거진 송장이었다. 잘 움직이지도 못하도록 맞은 다리와 볼기에는, 검푸른 멍이 부풀어 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무서움과 원망에, 입을 꼭 다물고, 정신없이 왔다갔다만 할 뿐이요, 매맞은 이를 간호하느라고 앉아 울기만 하는 이는 열 살 먹은 귀영이 하나뿐이다. 늦은 가을 기나긴 밤은 점점 깊어드는데,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다만 꽉 감은 눈에서, 눈물만 쉬임없이 흐를 뿐이다. 귀영이는, 첫 번에는 답답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였지만은, 나중에는 점점, 무서운 듯한 느낌도 떠돈다. 그리고 어머니도 간절히 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들기름 등잔의 심지똥이 튀느라고, ‘툭’ 하고 ‘푸지지’ 하는 바람에, 눈을 번쩍 떠보니, 잠깐 졸았던 것이다. 아버지도, 눈을 뜨고 두리번두리번 하다가 다시 감는다. 귀영이는, 점점 무서운 생각이 들어, 소름이 쪽쪽 끼칠 때에, 아버지는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윗목을 가리키는 듯이 바라본다. 윗목에는 소주가 담긴 오지병 하나가 놓여 있다. 귀영이는 그 병을, 아버지 앞에 갖다 놓았다.

아버지는, 한 사발이나 넘어 되는 소주를, 다 마시었다. 그리고 그 술기운이, 온몸에 무르녹게 돌 때에, 팔을 집고 다리를 부르르 떨며 일어난다. 귀영이도, 부축을 하느라고 일어섰다. 아버지는 비척거리며, 한 걸음 두 걸음 걸어, 윗목에 매인 시렁 밑으로, 간다. 그 시렁까지에는 헝겊으로 회회 감은 넓적하고도 길음한 물건이, 얹혔다.

그것은 칼이다. 소 잡던 칼이다. 하루 아침에, 십여 마루의 소를, 수고로움 없이 잡아 내뜨리던, 그 칼이다. 아버지는, 칼을 내리어 감긴 헝겊을 풀었다. 희미한 불빛에도, 칼날은 날카로웁게 번쩍거린다. 그리 큰 장검은 아니여도, 사람 하나는 넉넉히 죽일만한 비수였다. 아버지는, 푸른 칼날을 는적는적 놀리어도 보고 겨누어도 본다. 다른 때는, 굼뜨고 떨리는 그 손이, 칼을 쥐인 뒤에는, 몹시 날래고 민첩하였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모질게 다물었던 입을, 빙그레 쓴웃음 짓는 듯하며, 고개를 두어번 끄덕끄덕 하더니, 누구를 죽이려는지, 지게문을 향하여 걷는다. 이상하게 번쩍거리는 그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 찼다.

그 순간에, 귀영이는, 하도 놀라고 무서워서, 벌벌 떨다가 목이 갈라지게 “아배요” 한 마디 부르짖고, 정신없이 방바닥에 꼬구라졌다. 귀영이가, 다시 고개를 들어볼 때에는, 아버지는 돌아서서, 아무 말도 없이 마주 내려다만 본다. 눈에는 눈물이 어리였고, 입은, 응석 끝에 비죽거리는 어린애 입같이, 실룩실룩한다. 바른손에 늘어뜨리어 쥐었던 칼을, 윗목 구석으로 슬쩍 던질 때에, 다듬이돌에 부딪혀 ‘앵’ 소리가 살기스러웁게 나며, 두 동강에 부러진다. 독한 칼을 부러져버렸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 푹 주저앉는다. 귀영이는 아버지의 무릎에, 엎어져 운다. 아버지의 굵은 눈물방울도, 귀영이의 다방머리에 뚝뚝 떨어진다. 얼마 있다가, 아버지는 다시 일어나, 나무말코지에 걸린, 헌 무명 전대를 내려가지고, 윗목으로 간다. 귀영이는, 등잔걸이를 윗목으로 옮기여 놓았다.

아버지는, 쌀 담았던 오지항아리를 기울이고, 움쿰으로 쌀을 퍼내인다. 많아 보이던 쌀은, 얼마 아니 해 벌써 다 나왔다. 맨나중으로 헌벼 잠방이 쪽 하나를 끄집어내니, 항아리 밑창에는, 지전이 몇 뭉치가 있고, 또 번쩍번쩍 하는 은전이, 반이나 넘어 차있다. 아버지는 때묻은 전대에다, 그것을 집어넣기 시작한다. 맨 처음에는 지전을 넣고, 나중에는 은전을 넣는다.

번쩍번쩍 하고 소담스러운 반원(半圓) 짜리 은전, 그것이, 어린 귀영이의 가슴에 잠깐 부드러운 물놀이를 쳐주었다. 속으로 ‘그것 하나 나 주었으면…….’ 하였다. 그러다가, 돈을 움키여 넣느라고 부르르 떠는, 아버지의 손을 들여다 볼때에, 새로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다른 무서움을, 느끼었다.

첫닭이 울 때에, 귀영이와 아버지는, 나들이 새 옷을 갈아입고, 싸리문 밖에 나섰다. 아버지는, 돈전대를 짊어지고, 머리에 삿갓을 썼다. 한 손에는 귀영이의 손을 쥐고, 한 손에는 지팡막대를 잡아, 아프고 결리는 몸을 의지하여 걷는다. 그들의 수작은, 아무것도 없이 다만 눈물뿐이었다. 마을 앞 길뚝에서, 어두운 속에서도 길뚝매미의 욱욱이 익는 벼를, 아버지는 한참이나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소매로 눈물을 씻으며 다시 걷는다.

새벽 기운 찬 바람은, 뼛속까지 스며드는데, 그들은 이를 갈며, 그 밤이 다 새도록 걸었다. 쫓긴 이의 설움, 도망하는 이의 외로움, 그들은 목숨과 재물을 평안케 하기 위하여, 또다시, 비오고 바람부는 어지러운 세상의 길을, 나섰다.

그들이, 부산 항구 한 구석에, 오막집을 어리고 들게 되기는, 동래를 떠난 지 두 해 뒤이다. 아버지는, 소고기 장사를 하고, 귀영이는, 학교에 다닌다. 그리고 그 동안에, 귀영이는, 새어머니를 맞았다. 아버지도, 밤마다 국문을 배워서, 외상값 치부를, 손수 적는다.

귀영이가 서울로 공부하려 가기는, 열일곱 살 먹던 해 봄인데, 남들이 아니보는 밤에, 천외를 덮어쓰고 부산진으로 나와, 가만히 대구까지 가는 완행차를 탔다. 그것은 사람들이 보면은, ‘백정의 딸이라’고, 무슨 말을 할까 두려워 함이다. 그는 떳떳하게 할 공부도, 그렇게 그늘 속에서 하게 되었다. 귀영이가 서울간 지 삼 년 만에, 한 장의 편지가 그의 아버지께 왔다. “아버지 그만 두소, 백정 노릇마소” 하고, 몇 마디 눈물로 섞어 쓴 편지였다. 그것은, 귀영이가 고향 학생 친목회에서 ‘백정의 딸이라’고 쫓기여 나던 날 쓴 것이었다. 그 뒤부터 그의 아버지는, 소고기 장소도 내던졌다.

기미년 만세 운동이 일어날 때에, 귀영이는 서울서 고등여학교를 졸업하였다. 고요함에 반동은 움직임이라, 수백 년 동안 학대에 지질리어 잠자코 있던 귀영이의 피는, 임있게 억세이게 끌어올렸다.

몸이 옥에 들어가, 일 년 반을 예심에 있다가, 일 년 중역을 삼 년 집행유예로, 세상에 다시 나왔다. 그 때에 그가, 옥에서 나온 바로 뒤에는, 가장 즐거운 때였으니, 옥에도 같이 들어갔던 김씨라는 사나이 동지와, 사랑이 깊었음이다. 평생을 허락한 이성(異性)의 두 동지는, 전통을 부서버리고, 형식을 없이 한다는 의미로써, 결혼 예식도 치워버리고, 그저 삼청동 어느 조그마한 집에서, 꿀같은 사랑의 살림을 벌리었다.

웃음과 즐거움 속에도, 세월은 흘렀다. 귀영이가, 살림 사는 지도 벌써 일 년이었다. 만족과 즐거움의 일 년, 그 동안에도 귀영이의 가슴 깊은 속에는, 늘 한가지의 가만한 번민이 있었다. 그것은 자기가 백정의 딸인 것을, 아직껏 남편이 모름이다. 그것을, 사실대로 남편에게 말하고자 하였었으나 그리 기회도 없었고, 어떤 때에는 더러 말할 수도 있었지만은, 스스로 무슨 죄나 지은 듯이 가슴이 두근거리여, 몇몇 차례를 벼르기만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그러할수록 점점 어두웠다.

한 번은, 남편이 “장가든 지 일 년이 되도록, 처가에를 못 가보았으니, 가보아야겠다.”고, 서두르는 바람에 귀영이는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잠깐 돌리는 거짓말로, 간신히 멈추었다. 그 거짓말은 “사오 일 안으로 저의 아버지가 온다는 소식이 왔으니, 아버지가 오거든 같이 가자.” 함이다. 그리고 그 날 밤에, 저의 아버지에게로 편지를 써부쳤다. 아버지를 얼른 오라고……. “그러나 아버지는 백정이다, 무식하다.”하고, 상서롭지 못한 번민에, 혼자 머리를 앓았다.

귀영이가 편지한 지 나흘만에 과연 ‘아버지로라’고 중늙은이나 되어 보이는, 헙수룩한 시골노인이, 찾아왔다. 때에 마침 남편은 없었음으로, 귀영이가 친이 맞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로 온 그이는, 귀영이의 아버지는 아니었다. 불쌍한 이의 어리석음. 어리석은이의 약한 꾀, 그것이 점점, 사람을 못살게 하는 것이다. 귀영이에게 아버지로 찾아온 그이는, 부산바닥에서 학구질로 돌아다지는, 신생원(申生員)이라는 늙은이라. 그는, 돈 이백 원에 팔리어왔다. 까닭 없는 남의 아버지로……. 점잖은 아버지, 유식한 아버지, 양반 아버지로…….

아버지로 온 늙은이와, 귀영이와 남편, 세 사람이, 부산을 내려온 지 사흘만에, 모든 일이 탄로되었다. 남편은 아무 말도 없이 서울로 올라가 버리었다. 귀영이가, 울며 불며 쫓아가, 빌고 부르짖고 하였으나, 모든 것이 다― 허사였다. 남편은, 도문지 용서하지 않았다. 귀영이가 나중에는 “밥을 먹기 위하여 일하는 그것이, 무엇이 잘못이오.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드리는 직업이, 무엇이 천하오.” 하고, 소리쳐 부르짖었으나 남편은 들은 체 안하고 “더러운 년 백정의 딸년이…….” 하고, 마구 내쫓았다.

한창 시절에는 “동포다, 형제와, 자매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눈물에서 산다. 약한 자여― 모두 모여라. 한세인 삶을 찾기 위하여…….” 하며, 뒤떠들던 남편도, 알뜰한 사람을 저버릴 때에는, 모든 것이 다 거짓말이었다. 허튼 수작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아첨하고 발러맞추느라고, 쓰던 말이었다. 그도 또한, 남을 함부로 장난해 버려놓고, ‘가엾다’ 하는 인사도 없이 걸어가 버리는, 뻔뻔한 사나이였을 따름이다.

그 뒤에, 부산으로 돌아온 귀영이는, 아주 다른 사람이었다. 몇 번째 달라진 귀영이었다. 시들푼 사랑을, 허튼 주정같이 이에게도 주고, 저에게도 던져보며, 실없이 함부로 돌아다니는, 난봉이 되었다. 모든 사나이에게, 농락을 받는다는 것보다도, 차라리 농락을 해보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병이 들었다. 마음에나 몸이, 고치지 못할 깊은 병이 들었다. 그렇게 병까지 들은 귀영이가, 곧 부산에서 유명한 최백작의 딸이다. 백작은 사람들이 백정을 백작으로 고치어서, 조롱해 부르는 것이다.

귀영이가, 작년 여름부터는 어디로 갔는지, 얼마 동안 자취를 감추었더니, 한달 전부터 별안간에, 지나복(支那服)에 반양장을 차린 귀영이가, 가끔 영주동 뒷산으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닌다. 전에는 그의 동무가, 대개 애젊은 사나이들이더니, 이제는 늑대의 별호가 있는, 말괄량이 유취정(兪翠晶)이가, 안존히 그의 뒤를 따라다닌다.

세상은, 그릇된 지 오랜지라. 비웃음과 사나움으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싸운다. 처음에는 짐승과도 싸우다가, 거기에 고달픈 사람들은, 그 버릇을 힘약한 사람에게 쓴다. 그렇게 서로 싸우는 마당에서도, 귀영이는 조상 적부터 한 겨레가, 특별히 짐승의 대접을 받았다. 귀영이가, 처음에는 사람들을 무서워하였다. 무서움으로, 스스로 피하였었다. 그러다가, 자기도 힘이 있는 사람임을 깨달을 때에, 세상 사람이 미워졌다. 사나웁다 하는 그이들과 싸워, 원수를 갚고 싶었다. 오히려 싸우는 것보다도, 맨먼저 사나움에 지즐리어진 무리들을, 여러 사나운 이들보다도, 더 사나운 힘을, 갖게 하고 싶었다.

그러한, 한 실마리으 붉은 마음이, 그를 휘몰아, 고국을 떠나서 상해로 가게하였다. 그가, 상해로 간 지 얼마 아니 되어서, 그의 고질인 폐병이, 날로 심하여졌다. 몸은 열사단이라는 단체에 매여 있으나, 몸에 병이 깊었으니, 마음대로 일도 볼 수 없고……. 하는 수 없이, 못 잊을 고국의 그 땅을, 다시 밟게 되었다. 그가 돌아와 보니, 사람이 없다. 참으로 마음을 비춰, 일할 만한 사람다운 사람을, 보기 어려웠다. 그만큼 쓸쓸한 곳이었다.

하기는, 요사이 남 모르게 부부가 된, 전씨(田氏)도 있기는 있지만은. 그러나 그는, 같은 뜻으로 비밀한 일을 의론해 도모할 만한, 그러한 사이는, 되지 못하였다. 전씨는 귀영이가 병을 고치러 다니는 병원의 의사이였었는데, 하도 고맙게 애를 써서, 병을 보아주는 것이, 너무 신세스러웁기도 하고 민망한 듯도 해서, 그저 몸을 맡기여 내버려 두었을 뿐이요, 또한 전씨는 귀영이가 백정의 딸이나마, 돈이 많으니까 사람보다도, 돈이 먼저 넘기여다 보였었다. 귀영이는, 두루두루 사람을 찾아본 지 며칠 만에, 취정이를 만나보고, 가장 동지로 손목을 잡았다.

취정이는, 얼굴도 밉지는 않지마는, 매우 영리하고 초일한 재주가 있다. 붉은 등 아래에서 겨를 없이 배운 것이나마, 한문도 많이 알고 글씨도 잘 쓰고, 일본글도 더러 볼 줄 안다. 또한 보통 세상에서 많이 안나고 떠드는 사람들보다도, 한 가지 더 아는 게 있나니…… 몸이, 기생이라는 이 세상 제도의 가장 아래층에 있어서, 여러 사람 여러 가지의 희롱과 유린을 받아서, 인생이라는 그것이 어떠한 것인 줄을, 여러 가지의 모양으로, 보고 겪고 해서 알았음이다. 그리고, 영남 사람의 특징으로, 뜻이 멀고 속이 깊다.

거기에 마음과 행동은 말괄량이다. 그러나 그 말괄량이는, 세상의 풍파를 겪은 데에서 나온, 말괄량이다. 그럼으로 참뜻이 있는 곳에는, 죽을 때이라도 몸을 아끼지 않는, 그러한 용기가 있다. 그의 모든 것을 통틀어 말하자면은, 고요한 때는 가시덤풀이 욱욱이 우거진 속에, 은은히 웃는 한 송이 술깊은 꽃이지만은, 미친 바람이 날 때에는, 이 산 저 산 거침없이 나달어 다니는 호랑나비이다.

그러므로, 고운 마음이 거칠어지고, 거칠어진 마음이 미치게 된, 귀영이에게, 얼른 알아보게 되었고,취정이도, 귀영이를 얼른 알아보았다. 귀영이와 취정이가, 서로 만난 뒤로는, 날마다 영성산에 올라가는 것이, 일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마음대로 하고, 마음 답답한 때는 바람도 쏘이며, 보기 싫은 곳에 침도 배았고 욕도 함부로 한다.

3

밤은, 고요한 밤이다. 숨소리도 없이 죽은 듯한 커다란 땅은, 넋을 잃고 어둠나라 밑에, 널부러져 있다. 다만 흐릿한 하늘에는, 금방 떨어질 듯한 별 하나가 깜박러릴 뿐, 창호지 한 겹 밖이, 캄캄한 죽음의 나라이건만은, 사람들은, 바작바작 타들어가는 기름 불빛에서, 죽는 이의 목숨이, 얼마나 남았는지 몰라서, 시각으로 그것을 재고 있다. 귀영이는, 혼수 상태에 빠져,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이따금 괴로운 듯이 신음하는 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듯하다가, 힘없이 끊어진다. 깔닥깔닥하는 목에는, 가래가 끓어올라 ‘가르랑가르랑’ 하는 소리가, 가늘게 날 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취정이는, 아무 말없이 근심스러이 앉아서, 귀영이와 귀영이의 남편 전씨의 얼굴만을 번갈아 본다. 전씨는, 가끔 귀영이의 체온도 보고 맥도 보며, 점점 낙망하는 듯한 빛이, 얼굴에 나타난다. 방 안에 움직이는 소리는, 다만 다섯 사람의 숨소리뿐인데, 그 중에도 귀영이의 숨소리는, 들을 수도 없을만치 하여 고약하게 떨리는 듯하다. 푸르게 흐르는 남포 불빛은, 마음 답답한 사람들을 게으르고 졸리게 하는 듯, 간 밤 방안에 나릿한 공기는, 괴로웁게 묵었다.

귀영이를 들여다 보고 있는 사람의 눈들은, 모두 쓰러질 듯이 몹시 고달피었다. 취정이는, 너무 답답하고 안타까운 듯이 “아이고 답답해라” 하며, 손으로 저의 눈을 부빈다. 그러자 어머니는, 무슨 군호나 들은 듯이 입맛을 ‘쩍’ 하고 다시며, 사기 대접의 사탕물을 숟갈로 떠서, 타는 듯이 바싹 마른 귀영이의 입에다, 흘리여 넣는다. 귀영이는, 벌리어졌던 입을 다물며, 목에서는 시원치 못하게 ‘꼴각’ 소리가 난다. 아마 물을 삼키는 모양인지. 그러나 그의 눈은, 뜨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꾸부리고 앉아서, 게슴츠레한 눈에다 힘을 모아, 뚫어질 듯이 귀영이의 얼굴을, 들여다보고만 있다. 만일 누가 옆에서, 조금만 꼬닥이어도, 금방 울음이 터질 듯이, 그의 얼굴은, 청승스럽게 찌푸리었다. 얼마 있다가 어머니는, ‘휘―’ 하고 한숨을 한 번 속 깊이 쉬인다. 그리고 부시시 일어나 밖으로 나아가더니, 새빨간 적두(赤豆) 팥을, 한움큼 쥐고 들어왔다.

귀영이의 머리 맡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두 손을 어울러 팥을 쥐고, 두어 번 쩔레쩔레 흔들더니, 눈을 시르르 감는다. 무엇을 속으로 푸념하는지, 입을 가만히 벙긋거리며, 한참이나 잠잠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눈을 뜨고서, 손에 쥐었던 팥을 손바닥에 벌리어 놓고, 둘씩 둘씩 짝을 맞추어, 세이기 시작한다. 그 팥빛은, 이상하게도 밝았다. 세이던 팥은, 맨나중에 한 개가 남았다. 어머니는 “잘못 세이지나 않았나.” 하고, 그 팥을 두 번 세 번 다시 해보았다. 그러나 남는 것은, 틀림없이 한 알뿐이다. 어머니는 그것을 든 채로 물끄러미 귀영이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그것이 어머니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을 증험하는, 묘한 점이었다. 몇 알 아니 되는 팥이나마, 그것이 어머니에게는, 죽음이라는 그윽히 알 수 없는 수를, 풀어보는 데에, 묘하고도 신비스러운 구슬이었다. 그 팥을 세어 보아, 나중의 남는 것이, 짝이 맞으면은 사는 것이요, 맞지 않으면 죽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어머니의 손에는, 다만 한 개의 팥이 남아 있다. 그 팥은, 빛도조차 어머니의 눈에는, 붉다는 것보다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죽음의 빛으로 보였다. 근심에도 근심을 더 거듭한 어머니의 얼굴은, 점점 어둠의 빛으로 흐리었다.

첫닭이 울었다. 귀영이는 눈을 떴다. 오래간만에 눈을 떠서 그러한지, 기운 없어 보이는 눈이, 부시인 듯이 몇 번이나 감았다 떴다 한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일어나려 하는 듯하다가 그만 둔다. 피와 기름이 빠져서, 하얗게 여위어진 얼굴에, 가녈픈 죽이, 대중 없이 움직인다. 검은 머리는, 베개 너머로 흐트러져 깔리었다.

귀영이는 가슴 위에 뉘여 있는 손을 든다. 그 손은, 한 거미발같이 가늘게 마르고 파리하였다. 여러 사람을 향하여, 그 손을 두어 번 내저으며, 고개도 흔드는 듯하다. 여러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몰라서, 서로 쳐다보며 잠깐 주저하였다. 귀영이는, 또 손을 흔든다. 어머니가 “와 그러노.” 하고 물을 때에, 귀영이는, 손으로 지게문 쪽을 가리키며, 힘없이

“덜 나가소.” 한다. 방 안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몰라, 잠깐 머뭇머뭇하다가 일어선다. 취정이도 일어서려 하니까, 귀영이가 손을 들어, 취정이의 치마 앞에 놓는다. 방 안에는, 귀영이와 취정이 두 사람 뿐이다. 귀영이는, 이윽히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뜨며 횃대 끝에 매어 달린 손가방을 가리키었다. 취정이는, 얼른 그가방을 내려다가, 귀영이의 가슴 위에 놓아주었다. 귀영이는, 그 가방을 열려고 하다가, 기운없이 집어 취정이를 준다. 취정이는, 그것을 받으며

“이걸 열래요.” 하고 물었다. 귀영이는, 그렇다 하는 듯이, 고개를 한 번 끄덕한다. 그 가방을 열어보니, 조그마한 책 하나를, 밝은 비단으로 싸넣었다. 그 책은, 귀영이가 열사단에서 받은 수첩인데, 그 단의 강령과 비밀암호가 쓰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귀영이 자신에 관한 모든 비밀과 또한 장차 하려고 하던 일과 뜻이 기록해 있다.

그 책을, 취정이가 잠깐 보려 할 때에, 귀영이는, ‘급히 어디다가 넣어가지라’ 하는 듯이, 손으로 취정이의 무릎을 툭 치며 고개를 끄덕한다. 취정이는, 그 책을 얼른 치마 괴침에다 찌르고, 가방은 그 전대로 갖다 걸었다. 너무도 이상한 곳에서, 이상한 물건을 이상하게 받은 까닭에, 취정이의 가슴은 어쩔 줄 모르게 잠깐 두근하였다. 귀영이는 ‘이제 마음이 놓인다’ 하는 듯이, 빙그레 웃는 듯하며 눈을 감는다. 취정이는, 밖에 나갔던 사람들을 불러들이었다. ‘왜 그랬느냐 하는 듯이, 모두 잠잠히 귀영이와 취정이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귀영이는 다시 눈을 뜨며

“아배요―.” 하고 불렀다. 힘없이 떨어지는 목소리를 다시 내어 “다시는 백정노릇 마소.” 하고, 눈에는 눈물이 어리었다. 아버지는, 술 취한 사람 모양으로 정신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하고, 들여다 보기만 한다. 조금 있다가 귀영이는, 남편 전씨를 이윽히 아무 말없이 쳐다보다가, 쓴웃음을 지우는 듯하며, 눈을 시르르 감는다. 한 손을 슬며시 들어 아버지에게 주고, 또 한손을 들어 취정이에게 준다. 여러 사람들은, 정신을 들여 귀영이가 얼굴을 들여다본다.

귀영이의 얼굴 빛은, 별안간 붉어진다. 그러더니 또 하얘진다. 눈은 거더달리고, 코는 취여진다. 아버지와 취정이가 쥐고 있는 손에다, 힘을 들이여 바르르 떨더니, 긴 숨을 모아내쉰다. 하얗던 얼굴에 푸른 빛이 돌 때에는, 숨소리가 점점 들을 수 없을 만치 가늘어진다. 아마, 귀영이의 목숨도 고만인 것이다.

아버지는 ‘큭’ 하고 느끼며, 귀영이의 몸으로 엎드러졌다. 어머니는, 울음 섞여 목메인 소리로 “나무아미타불, 극락세계!” 하며, 귀영이의 벌어진 입을, 다물어준다. 취정이는, 참아 볼 수 없는 듯이 고개를 외로 꼬고, 한편 다리를 내어 뻗으며, ‘흑흑’ 느끼어 운다. 전씨는, “이런 때에 주사(注射)를 하면서 다시 살아난다.”고, 주사침을 찾기에 쩔쩔 매이며, 한창 부산히 굴다가, 여러 사람들이 우는 바람에, 멋적은 듯이 털석 주저앉는다. 그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어머니는, 울다가 눈물을 씻고 않으며

“그만 살고 죽는 것을…….” 하고, 한숨을 ‘휘―’ 쉰다. 그리고, 밥을 짓는다고 일어선다. 그 짓는 밥은, 사자밥이다. “조선국 경상도 부산 영주동 이십칠 세 최귀영 복…….” 하고, 눈물 섞어 외마디 소리로 외여치는, 소리는 고요한 새벽 하늘에, 처량히 떨린다.

사람이 죽는 데에도 ‘백정의 집이라’고, 딴 사람은 아무도 오는 이가 없었다. 귀영이의 혼을 부르는 데에도 사람이 없어서, 귀영이의 아버지가 울며 부르게 되었다. 밥 세 상, 짚신 세 컬레, 동전 세 닢, 그것은, 귀영이의 넋을 데리고 갈 저승사자를, 대접하는 것이다. 혼을 부르던 귀영이의 아버지는, 사자밥상 위로 정신 없이 꼬구라졌다.

귀영이의 아버지는, 날마다 술만 마신다. 그리고 운다. 울고나서는 미친 사람 같이 넋을 잃고 온 동네로 쏘다닌다. 그러다가 저녁 때가 되면은, 울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 기다란 두루마리에도 편지를 쓴다. 편지는, 죽은 귀영에게 하는 것인데, 사연은 대게 ……누구는 이쁘고, 누구는 미우며, 누구는 고맙게 굴고, 누구는 몹시 하며, 온종일 동네에나 또는 저의 집에, 무슨 일이 있었으며…… 별별 소리를 다 쓰다, 나중에는, 술 몇 잔 먹은 것까지 쓴다.

굵다랗고 서투른 글씨로, 사투리 섞어서 더러는 쓴말도 되쓰고, 정히 할 말이 없을 때는, 그냥 아무렇게나 먹장난도 해버린다. 그러다가 그 쓴 것이, 한 서너 발 넘어 되면은 ‘오늘 편지는 다 썼다’ 하는 듯이, 종이를 끊어 접는다. 그리고 푸나무 한 단을 옆에 끼고 누가 볼까 보아서 연방 뒤를 살피며, 남몰래 영성산 꼭대기로 기어 올라간다.

밤마다 영성산 봉오리에서는, 이상한 불빛이 번쩍거린다. 그것을 보는 마을 사람들은, 때로 모여 서서 서로 가르키며 “도깨비 불이 보인다.” 하고, 떠든다. 더구나 그 중에도 똑똑하게 잘아는 사람은 “높은 곳에는 도깨비가 없는 법이니, 저것은 반드시 산신령의 조화라…….” 하고, 지껄인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지껄이고 있는 판에, 매양 가슴이 서늘하게 놀라는 것이 있나니, 그것은 별안간에, 말괄량이 취정이가 어디서 뛰어나오, 소리를 높이 쳐부르짖음이다.

“불질러 버려라. 불질러 버려라. 모든 것을 불질러 버려라.” 하고, 부르짖는다. 저 혼자 미친 듯이, 사나웁게 성도 내이고, 허트러지게 웃기도 하며, 늑대처럼 날뛰여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또 쉬웁게 손가락질을 하며 “귀신이 들리어 불지랄을 한다”고, 욕과 비웃음에, 뒤섞어 버린다.

약한 자의 불짖음, 서러운 이의 목놓는 울음! 평안치 않은 곳에는, 봉화를 든다. 고요하던 바다는, 물결쳐 부르짖는다. 오랫동안 길고 길게, 논개울 산돌채로 꾸겨져 소리 없이 흐르든 물은, 큰 바다를 이루어, 바람이 일 때에, 바위에 부딛힐 때에, 소리쳐 큰 설움을 부르짖는다. 그 소리를, 온 땅의 사람과 귀신이, 다― 알아 듣기 전에는, 이 봉오리는 저 봉오리 높은 곳마다, 서로 응하여 성히 붙는 마음의 불꽃은, 길이길이 번쩍거리여 꺼지지 아니 하리라. 그것이, 곳곳마다 난리를 보도하는 봉하가, 켜질 때에.

라이선스[편집]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7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7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주의
1923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물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