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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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파군의 사건이 있은 지도 달포가 넘었다. 주위와 친구들이 한바탕 떠들썩도 했고 그의 종적을 수색하노라고 발끈들 뒤집혔었으나 이제 와서는 벌써 실종(失踪)의 사실로밖에는 돌릴 수 없게 되었다. 날마다 내게 쫓아와서는 울고 보채고 하던 군의 부인과 식구들도 결론을 안 바에야 얼마간 가라앉은 것도 사실인 듯해서 요새는 그들의 자태를 보기도 드물게 되었다.

가장을 잃은 집안이 얼마나 쓸쓸하고 적막할 것을 생각하고 그들의 자태에 눈자위가 따끈해지기도 했으나 요새 와서는 나도 가라앉은 마음에 운파 자신의 몸 위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가 언제 돌아올는지 혹은 다시 안 돌아올는지도 모르는 일이요 어느 방향으로 길을 잡았는지도 모를 노릇이나 나는 조만간 그에게서 긴 편지를 받을 것을 예감하고 있다. 편지를 받게 될 때 모든 곡절이 확연히 알려질 것은 사실이나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도 그의 심중을 모를 바는 아닌 것이 오늘의 그의 심경이나 내 심경이나가 매일반인 까닭이다.

그의 마음을 그대로 내 마음속에 비춰 볼 수 있는 까닭이다. 그의 간곳이⎯수소문에 의해서 동경이나 신경이 아님은 알 수 있으나 어디인가를 캐려는 것이 어리석은 짓임은 다만 지금 이 눈앞의 분위기를 떠나자는 것이 그의 뜻인 듯했으니 말이다. 하기는 그가 가령 구라파의 그 어느 나라에 간다고 하더라도 그의 공기가 그 공기일 것이니 차라리 대담하게 남양군도의 한 귀퉁이나 아프리카의 복판에다 그의 자태를 환상함이 더 통쾌한 일이 아닐까.

그러나 이것이 너무 황당한 상상이라면 더 가까운 곳에 넘어지면 코 닿을 곳에 그의 종적을 생각하는 것도 무방한 것이다. 어떻든 답답한 방의 창을 깨트리고 창밖 물속에 펑덩 뛰어든 것이 그의 이번의 행동인 것이요, 물속에 고래가 있든 악어가 잠겼든 그것은 다음 문제이다.

물론 그의 그런 행동이 벌써 아무 해결의 방법도 되지는 못한다. 십년전만 해도 떠난다는 것은 위대한 열정의 명령이었고 따라서 즐거운 해결의 방법이었다.

오늘에 와서는 벌써 떠난대야 갈 곳이 없는 것이다. 하늘에 오르거나 땅속에 들어가기 전에는 땅 위는 무척 좁고 어디를 가든 같은 공기 같은 조수가 파도칠 뿐이다. 센 물살에다 여윈 다리를 곧추세우고 간신히 버티고 섰다가 기어이 견디지 못해 그 자리에서 곤두박질을 하면서 답답한 머리를 물속에 박은 것이 운파의 이번의 행동이다. 머리 속이 얼마만은 시원할 것이며 이 점에서 나는 그의 결단성을 한없이 부러워 여기면서 그의 뒷일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가령 로댕의 「생각하는 사나이」라는 조각을 방 한구석에 세웠다고 생각해 봐라. 그야말로 돌같이 입을 다물고 얼굴의 주름살 하나 움직이는 법 없이 언제까지든지 퉁명스럽게 잠자코 있는 꼴⎯최근의 운파와 나와 마주대할 때의 언제든지 어느 장소에서든지의 인상이 바로 그것이었다. 늠실하고 마주앉아서는 손으로 턱을 고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이쪽이 말을 걸기 전에는 결코 입을 여는 법이 없다. 물론 나는 그의 심중을 잘 읽을 수 있는 까닭에 두 사람 사이의 기분은 조금도 어색할 것이 없을 뿐더러 말없이 잠자코 있는 그편이 도리어 자연스럽고 편편함을 느낀다. 술좌석에서는 술 그것이 또 한낱의 벗이 되므로 말의 필요는 더욱 없어지고 자리는 감감해진다. 그날 밤의 그의 태도 역시 그런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모나미에 색다른 여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들리자 일주일을 못 넘어 우리도 발을 들여놓게는 되었으나 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요 운파군은 나와 아니면 행동을 하지 않는 까닭에 한 주일이면 한두 번의 출입 정도밖에는 못되기는 하였다.

마리는 바탕이 이지적인데다가 어느 정도의 풍파까지 겪어온 편이라 침착하고 이해가 빠르고 한 것이 그의 인상과 함께 우리의 호의를 끌게 되었다. 그러나 세 번 출입에 우리는 벌써 그의 마음속을 환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문학을 말해도 어느 정도까지는 분별하고 문학보다도 시대적 이론에 관한 책을 읽고 싶다고도 말은 하나 알고 보면 그것이 한 자태일 뿐이요 직업의식에 바싹 바스러져서 쉴새없이 설레는 태도에 너그러운 여유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흥을 잃고 실망한 날부터 잠깐 발을 끊었으나 다음부터는 말동무를 대한다느니보다 한 사람의 여급을 대한다는 정도의 뜻으로 이따금 가다가 심심파적으로 들려보곤 하게 되었다. 그날 밤도 물론 그 정도의 뜻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운파와 나와 말없을 때 마리는 곁에서 술을 따르는 재주밖에는 없어 무료한 공기를 부드럽혀 보려고 애쓰는 눈치였다. 그러나 따라 주는 술을 한 모금 머금고는 다시 입을 다물어 버리는 운파와 나였다. 실속을 말하면 결국 할말이 없는 것이었고 말의 실마리를 잡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윽고 마리가 성큼 자리를 일어선 것은 술을 가지러 가자는 것이었으나 뒤미처 한편 좌석에서 운파를 부르는 소리가 귀에 익는다면 익고 설다면 설은 참으로 놀라운 한마디가 들려왔다.

“박 동무!”

의아하면서 고개를 돌렸을 때 언제부터인지 구석 자리에 몇몇 친구들과 와 앉아 있는 신문사의 윤군의 짓임을 알기는 알았으나 그 의외의 한 마디가 주는 충동이 너무도 컸던 까닭에 운파는 한참이나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조롱일까. 야유일까. 홀 안의 뭇시선이 운파에게로 쏠린 그 당장에 있어서 그 당돌한 한마디가 적어도 명예로운 칭호는 될 수 없었던 것이다. 한 칠년 전만 해도 어디서든지 귀익게 들을 수 있던 그 한 마디가 칠년 후의 오늘 술좌석에서 돌연히 들려올 때 아닌게아니라 내 자신도 그 신선한 어감에 귀가 번쩍 뜨이는 판에 당시 그 칭호에 충분히 값갈 만한 일을 해온 운파에게야 얼마나 감개 깊고 충동적인 발음이었을까는 추측하기에 넉넉하여 그토록 사람의 가슴속을 불쑥 찌르게 한 것은 두말없이 경솔한 악의에서 온 것이 사실이었다.

원래 윤군이란 위인이 자랑스런 신문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주정꾼이요 경박한 거리의 소소리패의 한 사람인 것이다. 과거에 운파들과 같은 범위에 소속되었던 사실을 그 뒤 몇 번이나 발을 접질리우고 몇 고패나 굴러 떨어지고 떨어진 오늘에 있어서 아직까지도 자랑삼아 날름거리는 혀끝으로 어느 좌석에서든지 흘리곤 하는 그의 경솔을 운파는 당초부터 경계하고 멀리해 왔던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뜸이라는 것이 이런 점에서 시작되었다면 시작되었을 것이요 윤군은 자기 조롱에서 오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일종의 압박을 느끼게 되는 운파의 무거운 인격에 대해서 부질없이 공격의 화살을 마음속에 준비해 오던 중인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윤군도 역시 일종의 시대의 희생을 당한 가엾은 존재이기는 하다.

“박 동무! 술맛 어떤가?”

윤군이 성큼성큼 걸어와 우리의 탁자 옆에 섰을 때에는 벌써 그들 두 사람은 피차의 심리를 서로 속속들이로 파헤쳐 본 뒤요 일정한 의지의 방향조차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물론 운파의 어조는 침착하고 무거웠다.

“조롱인가?”

“조롱이라니 동무란 말이 그렇게 고전적으로 들리나?”

윤군은 한바탕 주정이나 부리려는 듯 숫제 자리에 앉아 버렸다.

“자네 낯짝에 되려 춤 뱉는 셈이네.”

운파군의 한마디에 윤군은 발끈하는 기색이었다.

“어차피 나서부터 지금까지 남의 춤만 받아온 낯짝이네. 자네같이 그렇게 도도하게 굳은 절개를 지켜올 수야 있겠나.”

“어서 자리에 가서 술이나 먹게나.”

“먹든 말든 왜 이리 주제넘은가? 자네가 이불을 쓰구 열 번을 운다면 나도 한두 번은 우는 사람이네.”

“그럼 어서 가서 이불 쓰구 울게나.”

“몇 푼 어치 양심을 가졌다구 사람을 이렇게까지 얕잡아봐?”

“왜 지근덕거리니 싸우자는 셈이냐?”

운파의 고래 같은 어세에 윤군도 벌떡 자리를 일어서는 눈치였으나 볼 동안에 다시 그 자리에 쓰러지면서 의자채 뒤로 나둥그러졌다. 모르는 결에 운파의 번개 같은 주먹에 맞은 것이다.

술을 날라 오던 마리가 기급을 하고 다시 카운터 쪽으로 피하는 동안에 다른 좌석의 주객들도 줄레줄레 일어서는 것이었다.

쓰러졌던 윤군은 의자를 들고 일어섰다. 이렇게 된 바에는 하고 운파도 양복 저고리를 벗어붙였다. 팔팔한 기운에 두 사람은 번개같이 화닥닥 겨뤄 붙었다. 탁자가 흔들리며 술병이 깨트러졌다. 창 밑까지 밀려갔을 때 창 기슭의 화분이 굴러 떨어지며 두 사람을 한꺼번에 맞췄다. 물론 나는 날쌔게 서둘러 전화로 차를 분부는 해놓았으나 아무도 말리는 사람 없는 동안에 싸움은 격렬해 갔다. 흡사 고래와 상어의 싸움이어서 서로 상하기는 일반이었다. 차가 달려왔을 때에 코피가 터지고 이마가 찢어져서 두 사람 다 참혹한 꼴이었다. 운파를 간신히 빼내서 끌고 나가 차에 앉히는 동안 아직도 화풀이를 못한 듯 등뒤에서 윤군의 고함이 구절구절 들렸다.

“그까짓 양심 몇 푼 어치나 돼. 넌 무어구 난 무언데……”

싸움에서 떨어졌을 때 운파는 또 그뿐 돌같이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렇다 저렇다의 한마디의 말도 피차에 없이 피곤할 그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나는 다시 그 차로 집을 향했으나 그때까지도 운파는 한마디 말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가 실종하기 직전의 마지막 말이라는 것을 듣지 못한 셈이 되었었다. 그날 밤의 그 차 속에서의 행동이 그를 만난 마지막이었던 까닭이다. 다음 다음날 아침 그의 부인이 집에 뛰어와서 남편이 전날 아침에 나간 채 밤을 지내도록 안 돌아왔다는 뜻을 황겁지겁 전했다. 그가 밖에서 밤을 새우는 일은 좀체 없는 까닭에 나는 일터에 나가는 길로 즉시 여러 군데 전화로 물었으나 그의 소식은 아득했다. 저녁때 부인이 또 달려왔고 날이 새면 또 달려와 그렇게 해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좇아오게 되었으나 운파의 소식은 그뿐 자취가 끊어진 채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넘고 달포가 되어 기어이 실종의 사실로 판명되었던 것이다.

운파의 ‘생각하는 사나이’ 의 자세가 시작된 것은 물론 훨씬 이전의 일이다. 한 반년 전 들어간 지 불과 몇 달도 못되는 어떤 교직을 그만두고 물러 나왔을 그때부터 무언 침묵의 그 표정이 얼굴에 새겨졌던 것을 나는 잘 안다.

‘우울’이란 말이 한동안 유행했던 것이 사실이긴 하나 그러나 그것이 헛되게 과장된 정이거나 혹은 차례차례로 전염된 모방만이 아니요, 역시 ‘우울’ 은 견디기 어려운 우울이다. 같은 계급 같은 공기 속에 산다 하더라도 날마다 얼마의 금전을 주머니 속에 준비해 넣고 술잔이나 찻잔에 엄벙해 지내거나 그렇지 않으면 집안에 들어박혀 책권이나 뒤적거리는 종류의 생활쯤으로는 도저히 ‘우울’ 의 진짬의 지독한 맛은 모르는 것이요 어떤 직업적 기관이니 단체 속에 객관과 직접으로 접촉할 때에 비로소 뼈를 가는 듯한 우울이라기보다 살인적 괴롬의 맛을 참으로 맛보게 된다.

운파가 교직에 있으면서 느낀 것도 그것이며 교직을 물러나온 것도 그 까닭이었다. 민첩한 신경이 피곤한 끝에 육체가 피로하고 무언 침묵의 표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가 얼마나 피곤했던가는 한 가지의 사실을 들면 그만이다. 거리에서 나와 함께 식사를 할 때 중도에서 문득 수저를 버리고 그대로 그만 식사를 중지해 버린다. 물론 식욕이 없는 것이나 그보다도 식사를 하기가 거추장스럽고 귀찮다는 것이다. 식당을 나와서는 으레 먹었던 커피를 게워버리고야 만다. 결코 빈약하지 않은 비교적 큰 편인 그의 육신으로 이 피로만은 어쩌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집으로 찾아와서 나와 마주앉으며 하는 소리가 세상 사람들이 무던히는 용감하다는 것, 왜 냉큼 죽지들 못하고 추접스럽게 살아가느냐는 것이었다.

“지렁이를 밟아 본 적이 있나. 몸이 두 동강이 나두 세 동강이 나두 동강마다 목숨이 붙어서 다시 꿈틀꿈틀 살아난단 말야. 밟히고 맞으면서 지싯지싯 살아가는 사람의 꼴이 바로 그것이 아니구. 먼저 내 자신부터가 죽지 않으면서 큰소리만 같으나 얻어들 맞거든 좀 사나운 꼴들 보이지 말구 그 자리루 차례차례 죽어 주었으면 하네. 악마 같은 생각인진 몰라두 생명의 행복이 더 중할까? 사람의 길이라는 게 더 중할까? 그까짓 결머리두 없이 살아선 또 무엇하나.” 하면서 싸움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겨루고 겨루다 기진맥진할 때까지 겨뤄 피를 흘리고 쓰러져 그대로 고요하게 거꾸러지는 그림⎯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냐는 것이다.

이어 단체의 운명이라는 것을 말하며 개인의 경우와 역시 같음을 설명한다. 바다 가운데서 폭풍우를 만나 파선의 지경에 이르렀을 때 선객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운명은 바로 기선 전체의 운명인 것이며 잠기는 선체와 함께 한 사람도 잠기지 않고 몽탕 그대로 한 치 두 치 바다 속에 가라앉는 광경⎯비장은 하나 이 또한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결국 나두 한 사람의 예술가인지두 몰라.”

픽 웃으면서 결론을 말하고는 창밖 화초포기 위로 시선을 돌린 채 그뿐 그만 입을 다물고는 언제까지든 꽃송이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패배의 이론이며 죽음의 예술이 도시 그의 ‘결머리’ 의 결백에서 나온 일종의 역설임을 나는 잘 안다. 죽음이라고 해도 물론 그 자신의 개인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요, 괴롬 끝에 나온 일종의 자포적 언설임을 나는 잘 안다. 하기는 요번의 실종으로 그는 죽음의 예술을 대신한 폭이 충분히 되기는 하나.

전무후무로 격에도 없는 돈 이야기를 꺼낸 것도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이제 보면 그것이 실종의 준비였던 듯하다.

든 돈 천 원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느냐는 의논이었으나 천 원의 개념과 실감이 없는 내게는 수수께끼보다도 어려운 과제였다. 운파는 자신 여러 가지 방법을 말하면서 나의 의견을 구하려는 것이었으나 방법의 판단도 내게는 인연 밖의 일이어서 다만 천 원의 돈이 빚어낼 아름다운 환상에 잠기는 것이 그 자리에서의 한껏의 정성이었다. 시골서 오는 추수로 집안의 일년의 생계는 이럭저럭 다스려 가는 운파이긴 하나 그에게도 역시 다따가의 든 돈 천 원은 어려운 과제인 듯싶었다.

도박행위에 의지하지 않고는 당장에 천 원을 구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그런 도박의 기관이 거기에 있을 성싶지는 않았다. 미두라야 세월 없는 노릇이요 마작이라도 그런 큰 판은 없을 듯하다. 안동현에 가서 경마나 해볼까⎯하품에 섞어 그런 소리도 하다가 나중에는 꾸는 수밖에는 없다고 작정하고 친히 거래하는 유한마담이 한 사람 있으니 그에게서 돌려보는 것이 단 한가지의 수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가 짜장 그 유한마담에게서 돈을 돌렸는지 혹은 달리 그 무슨 도리가 있었는지 후의 그의 일은 나의 알 바 못되나 어떻든 그가 나와 돈 이야기를 한 것은 그것이 단 한 번의 일이었으며 지금 생각하면 부합되는 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격이 아닌 돈 이야기로 해서 무의미는 하나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확실히 그와의 유쾌한 시간을 보냈음도 사실이었다.

따져 보면 그의 마음이 기둥을 잃고 헤매이기 시작한 지 칠년이 된 셈이다.

칠년 전 그가 몇 해의 고생을 겪고 그곳을 놓여 나왔을 때 그 순간이 바로 그의 전기가 갈려지는 한 큰 분수령이었다. 화려한 페이지는 벌써 벗겨져 넘어가고 다음날부터 바로 오늘날까지의⎯무슨 시대라고 할까. 역시 ‘칠년간’ 이라고 밖에는 부르는 수가 없으나⎯ ‘칠년간’ 이 시작된 것이다. 마음에 변화가 있은 것은 아니나 무기력한 팔을 꼲아보면서 지난날을 추억해 보는 길밖에는 없었다.

건강이 웬만큼 회복되었을 때 무료도 하고 답답도 한 판에 신문사에 자리를 얻고 들어가게 되었다. 분주한 분위기 속에서 ‘잡념’ 을 잊을 수는 있었으나 그러나 편집실 안에 어지러운 공기라는 것은 가령 회관 안의 공기에 비하면 너무도 무미건조하고 살풍경한 것이었다. 열정이라는 것도 없거니와 그 열정의 통일과 방향이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다. ‘회관’ 의 기쁨이라는 것은 참으로 그 안에서 친히 잠자고 모이고 이야기하고 한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듯하다.

비오는 날 눈 오는 밤 혹은 닭소리 들리는 새벽⎯그때그때의 회관의 정서라는 것은 그 어느 다른 세상에서는 구할 수는 없는 즐겁고 흥분되고 그 무엇으로 마음속을 흐붓이 채워 주는 그런 것인 듯하다. 역사를 꾸며가는 낮과 밤의 흥분⎯회관의 이 맛은 운파가 신문사 편집실 안에서 찾아내야 도리어 찾으려는 편이 무리였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항상 창조적인 군이 아무 속에 있어서나 열정의 방향을 찾지 못할 리는 없었다. 분주하고 요란한 그 속에서도 그는 머리 속을 정리하고 책권을 들치면서 위대한 논문의 제작을 남몰래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정의의 역사적 고찰이라는 방대하고도 대담한 계획의 전술이었다. 이 정의의 논문의 착상은 참으로 그에게는 일생의 대업이어서 논문의 완성 여부는 주위의 동무들의 다대한 관심을 끌고 있었던 터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탓은 참으로 너무도 큰 것이었고 사람은 환경의 구속에서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것인 듯하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의 논문의 미완성을 보고 하면서 마음속의 눈물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같은 편집실에서 숨을 쉬면서 그만 유독 떨어진 생활을 할 수도 없는 터에 휩쓸리는 동안에는 도리어 그들의 영향을 입게 되는 수도 많았다. 한 해 두 해 지내는 동안에는 술도 늘고 거리의 지도도 휑하게 익히게 되었다.

하루는 거리에서 조금 유축인 낯선 집에 들어갔다가 새로 왔다는 한 사람의 여급을 보고 깜짝 놀랐다. 괴이한 인연이라고 할까, 사년 전에 지방에서 같이 일보던 동무였던 것이다. 그 동안 산산이 흩어져 어떻게들 하고 살고 있는가 가끔 생각해 내던 중의 한 사람. 만나고 보니 그다지 변하지도 않은 얼굴에 분을 바르고 술잔을 권하게 된 그였던 것이다. 이야기를 주고받고 술을 마시고 하는 동안에 시간도 흘렀으나 그 의외의 반가운 기우가 금시에 피차의 화로 변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한 사람의 사복이 나타나 그의 옆에 앉더니 구면인 듯이도 그와 말을 건네는 것을 운파는 영문을 모르고 바라보고 앉았다가 이윽고 두 사람이 일어서면서 운파에게까지 동행을 요구했을 때에야 비로소 그는 뜨끔해지면서 곡절을 짐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자에게는 아직도 여죄가 남아서 수색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한마디의 시대적 해설을 붙인다면 이때에는 법도의 수준이 몇 곱절 더 옹색해지고 엄격해진 때였다.

그날 밤에 들어간 채 허물없이 반년 동안이나 부대끼는 동안에 외부의 사정도 퍽은 변해졌었다. 다시 나왔을 때에는 벌써 편집의 자리는 없어진 뒤였다. 축난 건강에 두 번째의 무료하고 답답한 시절이 시작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정의의 논문’은 어느 속에 들어가 묻혔는지 다시 그것을 들춰내서 논조를 계속할 기력조차 없게 되었다. ‘정의의 논문’ 은 새로 기괴한 일이 일어난 것은 그는 깊이 간직했던 몇 권의 책까지 불가불 불에 살라버리지 않으면 안될 처지를 당하고 있었던 판이다.

어디가 묻혔던지 마침 눈에 띠이지 않았던 까닭에 어쩌다 그때에 화장의 변을 모면한 ‘정의의 논문’ 의 신세가 다행이라면 다행이었고 불행이라면 불행이었다.

변화 혹은 변천이란 말이 나날이 그 내용을 드러내고 인상을 또렷하게 해 가는 시절이었다. 운파는 인제는 완전히 키를 잃고 초점 없는 시선을 허공에 멀끔히 던지고 지내는 날이 많았다. 빈속에 술을 고래같이 켜게 되었다.

하루아침 술이 깨인 맑은 정신에 문득 생각하고 일기를 적기 시작하게 되었다. 생각하면 연전의 정의의 논문의 뒤를 잇는 한 가닥의 방향을 찾으려는 같은 심정의 발로이던지도 모른다.

물론 번기는 날도 많았으나 정신이 맑은 날이면 반드시 몇 장씩 적어 놓는다. 간행물 위에 지성의 옹호라는 제목이 굵게 나타나 어중이떠중이 다 한마디씩 입 참례를 할 때 그는 그것을 비웃는 일기를 썼다가는 다시 다음날 반성의 붓을 들어 자신의 지성론을 한바탕 쓰는 것이며 또 어떤 날이면 집에 돌아가던 길에 개천에 빠진 노인의 양을 보고 가서는 세밀한 감상을 주관적 색채를 가미해서 길게 적어보군 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그 전부가 마음의 불안정한 방탕에서 나왔음은 그 일기조차도 때때로 가다가는 몇 달씩 끊어지는 때가 있었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그 무의미한 것에 싫증이 나서 그만 일기장을 찢어 버리는 동시에 어디서 뛰어나왔던지의 정의의 논문마저 같은 기회에 불살라 버리고 말았으니 오래도록 끌어 오던 정의의 논문도 기어이 여기서 끝나 버리고 만 것이다.

드디어 반년 전에 어떤 교직에 들어가게 된 것이 옳든 긇든 생활의 한 통일을 얻은 것이었으나 그의 결백으로 이런 사회에 맞춰나갈 수는 만무한 것이며 아까 말한 것과 같이 불과 몇 달이 못 돼 피곤한 신경과 육체로 그 자리를 물러 나온 것이다 이어 . 돌부처의 표정이 실종의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따져 보면 꼭 칠년 동안이다. 그 동안을 무슨 시대라고 했으면 좋을는지 별수없이 ‘칠년……’ 이라고 부를 수밖에는 없는 칠년간이었다. 무기력한 방탕에서 시작해서 실종의 사건으로 끝난 칠년간이었다.

이 칠년간의 이야기는 운파의 평생의 한 시기 동안의 간단한 약도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며 그의 칠년 전까지의 생활에 비기면 본론에 대한 한 부록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다. 더 크게 잡아 시대의 부록이라고 보아도 좋다. 어떻든 이 기록은 운파군에 있어서는 한 부록에 그치는 것이요 그러기를 나도 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군은 이 부록을 얼마든지 뛰어넘어 칠년 전의 본론에다 다음 본론을 연속해 달라는 것이다.

나는 마음속에 운파군의 자태를 부단히 생각하면서 이것을 써 온다. 이 조그만 기록이 군의 눈에 뜨일는지 안 뜨일는지 의문이나 만약 뜨인다고 해도 과히 낯을 찡그리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비록 짧고 거칠기는 하나 내 요량으로는 충실하고 바르게 군을 그려본 셈이다. 군이여, 불미가 있거든 용서하고 편지를 달라. 군의 편지를 날마다 고대하고 있는지 오래이다.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7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7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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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물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