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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관의 봄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모두들 빈둥빈둥 놀고 있는 몸이라 아침엔 으레 경쟁을 하다시피 늦잠을 잤고, 그래선 늘 11시가 지나서야 겨우 부산하게 밥상을 대했다.

그 시각이 거의 약속이나 한 듯이 한결 같아서 비록 선후는 있었지 만 10분 이상의 차이가 나는 때는 별로 없었으므로 우리들 세 사람은 매일 아침-낮인지도 모르지만-세면소에서 흑은 식당에서 얼굴을 대할 때마다 서로 계면쩍게 웃었고, 그리고 짧은 사이에 급속하게 친밀해졌던 것이다.

밥만 먹고 나면 텅 비인 부상관(扶桑官)은 우리들 세상이다.

10여 명이나 되는 하숙인들은 우리들이 아직 자릿 속에 있을 때에 모두들 제각기 일자리를 찾아 나갔고, 집 지키는 사람이라곤 방기(芳紀) 18세의 하마에 하나뿐이다.

하마에는 우리들더러 잠꾸러기라고. 된장국 식는 것도 걱정이려니와 설거지가 늦어서 더 탈이라고, 제발 좀 일찍 일어나 아침만이라도 잡수신 후에 또 주무시든지 말든지 하시라고, 매일 아침상 볼 때마다 넋두리 모양으로 되풀이하는 것이나 그뿐, 그 이상은 이쪽에서 먼 저 이야기를 꺼내어도 대답조차 잘 안 하는 말없는 색시이라 낮이면 어느 구석에가 틀어박혀 있는지 그 존재마저 잊을 지경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혈기 방장한 우리들이 기세를 안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내 맞은편 제일 큰 8죠(2죠는 1평 정도) 방을 차지하고 있는 아사오는 이 집에서 대학을 나왔고, 그 대학 나온 지가 지금부터 2년 전이라니 도합 5년간을 한 하숙에 있는 셈이라 거의 주인과 가릴 바 없었으므로 그와 같이 행동을 한다면 사실 부상관에 있는 한 거리끼는 것도 두려운 것도 없었던 것이다.

아사오뿐 아니라 바른편 구석방에 자리 잡고 있는 무라이도 역시 부상관에 온 지 2년 반인가 3년인가 된다 하여 이 집에서 셋째 손가락에 꼽히는 손님이니, 나야 아무리 옮겨온 지 한달이 채 못 된다 하지만 우리들 세 사람의 컴비네이션 속에는 말하자면 이 하숙의 원로 가 두 사람이나 섞여 있는 셈이라서 아무도 감히 우리들의 행동을 비난한다거나 우리들에게 대해 괄시를 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하여간에 그들은 대체 이 다 낡아빠진 부상관에서 어떠한 매력을 느끼는지 한번 이 집에 들기만 하면 모두들 그대로 눌러 앉는 모양이어서 나 같은 말하자면 뜨내기손님으로는 겨우 아래층 문턱 방에 있는 타이피스트 한 사람뿐, 그 외에는 제일 최근에 온 사람이 라도 1년은 넘는다는 것이다.

무장야철도(武將夜鐵道)의 시이나마치역이 바로 문 앞이면서도 무척 한적한 것이 취할 점이라면 취할 점이겠으나 그것은 교외에만 나가면 동경에서는 아무데서나 구할 수 있는 것, 별로 신기할 것도 수중히 여길 것도 못 된다.

따지고 보자면 이 한 가지 외에는 미점커녕은 매력커녕은 도리어 흉잡힐 데뿐이어서, 집은 헐었고 다다미는 더러웠고, 벽이 얇아서 옆방 이야기 소리가 모조리 들렸고, 방이 어두워 항상 침울했고, 거기다 주인마누라는 나이 값도 못 하는 70노파, 조주(하녀)라는 게 겨우 열여덟 살밖에 안 된 얌전하기만 한 하마에 하나, 그러니 먹이는 밥찬조차 시원하게 입에 맞을 리 없어-이러고 보니 비록 방값이나 밥값은 다른 데보다 약간 싸다 하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그들이 이 부상관에 눌러 붙어 있는지 내게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수작이다.

언제까지 여관에 묵어 있을 수도 없어 하룻날 문득 입교대학 뒷골목을 무턱대고 걷다가 우연히 이 부상 관을 발견하고,

-아무데라두 내년 봄에 학교에 들 때까지 있어 보자꾸나,

그런 뱃심으로 그날로 짐을 옮겼던 것인데 그 짐이라는 것이 겨우 슈트케이스 하나, 이부자리 한 벌, 그뿐이었으므로 그 초라한 꼴에 맨 먼저 놀란 사람이 실로 하마에가 아니요 이제나 저제나 낮이면 집 지키기에 바쁜 아사오*무라이의 양 군이었던 것이다.

문어귀에서부터 물끄러미 나의 이사하는 꼴을 바라보고 섰던 두 사람은 내가 채 방도 치우기 전에 나란히 불쑥 들어서며 제각기 느릿느릿한 말투로 자기소개를 하고나서,

"이거 온, 지가 먼점 인살 여쭤야 헐 껄, 죄송허게 됐습니다. 잘 지도해주십시오."

이렇게 황송해 하는 내 말은 귀에도 담지 않고,

"거 대체 무슨 짐이 고거뿐이오."

난데없이 이런 실례되는 말을 묻고는 퍽도 신기하다는 듯이 소리를 높여 껄껄대는 것이다.

"네, 저어, 동경에 온 지 며칠 안 돼서."

어리둥절해서 더듬는 내 대답이 또 한번 재미있는지 그들은 다시 소리 내어 웃고,

"허어, 그럼 아직은 아무것두 안 허시겠구려."

"네, 내년 봄꺼진 시험 준빌 헐 작정입니다."

"거 잘 됐소이다. 우리 동지로군. 자아 우리 악수합시다."

그러며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이 바로 내 앞 방에 있는 아사오였다.

10여 명 하숙인 중에서 직업을 안 가진 사람은 그들 둘뿐이었다. 아사오는 2년 전에 명대(明大)를, 무라이는 올 봄에 조대(早大)를 졸업했다는 것이나 무엇 때문인지 그들은 취직할 생각도 집에 내려갈 생각도 아니하고 여전히 이 부상관 음산한 방 속에 처박혀 하는 일 없이 유들유들 놀고만 있다는 것이다.

하마에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아사오는 고문(高文)이 목적이요 무라이는 작가 지망이라 하지만 당자들은 그것을 긍정도 안 하고 그렇다고 강경하게 부인도 안 하고, 그저 농담으로 얼버무려 깔깔댈 뿐이므로 나도 따라 웃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달 남짓한 동안 거의 매일같이 접촉하면서도 아직도 나는 그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런 것은 알던 모르던 간에 나에게 친절하고 또 내 울적한 심사를 풀어줄 수 있는 동무를 만났다는 것은 하여간 내게는 다행한 일이었다.

또 마침 외롭게 동경으로 건너와 고독을 느끼려고 하던 차이므로 나는 주저 없이 그들 두 동무 사이에 뛰어들어, 취미도 성격도 지향도 어긋나는 우리들이었으나 환경이 같고 틈이 있다는 그 점에서 손쉽게 한데 어울리어 매사에 행동을 같이하고 뉘우침이 없었던 것이다. 그 들로 하더라도 둘뿐이어서는 좀 적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던 차에 나같이 색다른 동무가 뜻하지 않고 생기고 보니 적지않이 반가웠던지 나의 그런 태도를 무척 환영하는 빛이었다.

늦은 아침밥을 먹고 나선 의논이나 했던 듯이 우리들은 대개 아사오의 방으로 몰려간다.

아사오의 방이 제일 넓고 밝을 뿐 아니라 장기니, 바둑이니, 화투니 하는 그런 오락 도구가 완비되어 있었고 장서가 방 사면에 가득 차서 장난이나 잡담에 지쳤을 때 그대로 번쩍 드러누워 아무것이고 손에 닿는 대로 집어 읽기에 편했기 때문이다.

한가함이 낳는 우리들이 운 축을 기울인 잡담이란 실로 범위가 넓고 방면이 많은 것이어서 때로는 시대의 사회니 정치니 그런 것을 논하고 때로는 문화니 예술이니 민족이니를 말하고 하는 것이었으나, 그러나 그것은 극히 드문 일, 대개는 아무 짝에도 못 쓸, 그리고 혹간 가다 하마에가 엿듣고는 얼굴을 붉히며 도망질치는 그런 종류의 상스럽지 못한 이야기로 웃고 떠들고 하는 게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종일 줄기차게 장기판이나 바둑판을 뚝딱거리다 그것에도 지치면 이번엔 또 무라이 방으로 와르르 몰려가는 것이다.

무라이의 방은 제일 구석져 아늑한데다 무라이가 음악을 애호하는 탓으로 바이올린*만돌린*기타*실로폰 등 가지각색의 악기와 고금동서의 명곡 레코드 수백 매가 우리들을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라이의 방으로 몰려갈 때는 대개 세 중의 누구든 한 사람 심사가 편치 않을 때다. 그렇기 때문에 무라이의 방문턱을 넘어서자마자 제각기 맘에 드는 악기를 집어 들어 집이 떠나가라고 톤이 맞지 않는 합주도 하여보고 흑은 가령 한 사람이 <G선상의 아리아>를 흉내낸다 면 이편에선 <노영의 노래> 또 한편에선 <지나의 밤이여> 하고 서로들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맘 내키는 대로 찧고 까불고 하다가 또 그것에도 지쳐서 잠시 동안 멍하니 앉았노라면,

-아아 아아 아아아

흔히 무라이는 이렇게 길게 비명 같은 한숨을 토하고 차이코스키의 <비창>을 걸어놓고 창에가 걸터앉아 비참한 얼굴을 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하마에가 빗자루나 총채를 들고 층계를 을라오거나 복도를 지났단 야단이다.

"하마짱."

무슨 긴급한 일이나 있는 듯이 은근한 목소리로 부르는 것은 아사오였다.

"하마짱. 이리 잠깐만 와."

"왜요?"

밤낮 당하는 실없는 짓이나 그대로 묵살하고 지나치지 못하는 것이 하마에의 성실이다.

"글쎄 좀 와?"

"왜요?"

그렇다고 하마에는 또 그것을 농담으로 받아 넘기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마지 못한다는 듯이 방안으로 한걸음 들어서서 대개는 내 등 뒤로 돌아간다. 나를 방패삼고 여차직하면 들고 뛰려는 자세이다. 그래도. 아사오는 개의치 않고 추근추근하게,

"이거 봐, 하마짱, 올에 몇 살이랬지."

"몰라요."

"신랑감이 하나 있는데 말야……"

"또, 또."

"아냐, 끝까지 들어봐. 저어, 하마짱더러 말이지‥‥‥ 아 이리 좀 와, 왜 이렇게 꽁무닐 뺄까, 사람이."

그리고 쏜살같이 덤벼들어 하마에의 손목이라든가 옷자락이라든가를 잡아낚을 것 같으며 하마에는 질겁해서 내 등에나 팔에 매달리어 어쩔 줄을 모르고, 그러면 그럴수록,

"옳지, 너 긴상헌테만……."

나중에 아사오의 입에서 그런 말까지 나오면,

"어쩌면, 어쩌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하마에는 쩔쩔매며 얼굴이 새빨개져 있는 힘을 다 써서 뿌리치고 달아나고 잠시 잠잠했던 방안엔 다시 폭소가 터지는 것이다.

사흘에 한 번씩 나흘에 한 번씩 우리들 세 사람의 한 뭉치가 된 생활이 주석으로 변하여 밤 11시, 12시까지 연장될 적이 있었으나 대개는 저녁상과 함께 끝마치는 것이 예이다.

하숙한 사람들 거의 전부가 돌아오고 주인마누라와 제대(帝大) 독문과에 다니는 그 아들도 돌아오고 하여 그때부터, 부상관은 완전한 우리들 세 사람만의 부상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그들과 헤어져 나의 조그만 3죠 방으로 묵묵히 자리를 옮긴다. 그날 하루를 웃고 떠들며 지냈으면 웃고 떠들며 지냈을수록 밤을 대한 나의 마음은 반비례로 침침히 가라앉고 마는 것이다. 불안과 고독을 느끼는 것이다.

어느덧 가을도 지났다. 아니 세루 옷 벗은 지도 오래니까. 이미 겨울이 시작된 지 한참인지도 모른다.

마음 편할 때뿐 아니라 괴로움에 마비되어 세월 가는 줄 모르는 일도 더러는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다지 계절에 무관심할 수는 없었다.

도망하다시피 하여 집을 나온 게 곰곰 생각하니 늦은 여름이었다. 10여 일 남짓한 동안 거의 밤잠을 못 잘 지경으로 열 번 백 번 고쳐 생각한 나머지 아버지를 배반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나는 그 파라독스와도 흡사한 진리에 충실하리라 겨우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나이에 결혼한다는 것은 일렀다. 더구나 학교도 마치기 전에 안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슬프기까지 한 일이었다. 그것을 백방으로 알려드리려고 나는 거의 울가망이 되었으나 아버지는 종내 고개를 홰홰 젓을 뿐이었다.

애비가 네게 그릇된 길 지시하겠느냐고, 나이 30이 낼 모렌데 왜 이 자식아 늙은 부모의 맘 몰라주느냐고 연로한 어머니마저 한패가 되어 애정을 방패로 나를 힐책하실 때, 나는 그만 말문이 막히어 고개를 수그리고 말았던 것이다. 고개는 수그렸어도 진실로 아버지 앞에 머리를 숙인 것은 아니었다. 머리를 숙이어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한 생각은커녕, 아버지의 음 성이 높아갈수록 내심에 지닌 반항의 덩어리는 점점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결혼에 대한 반감이 그렇게도 굳세일 줄은 내 스스로 얼마 동안 의식치 못하고 있었던 바이다. 그 이유가 내 나이가 어리다던가, 학업을 마치지 못했다던가, 그런데만 있는 것 같다고는 내 자신으로도 단언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물론, 사진밖엔 보지 못했으나 당자에게 불만이 있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것들도 내가 결혼을 기피하는 커다란 원인의 하나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결코 그것 만에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이르러 돌아보니 진실로 그 근본에 가로놓여 있는 것은 어리석다고 할 만큼 단순한 꿈이었다. 몸도 마음도 순색으로 자라났던 만큼 나는 어린애같이 천진한 꿈을 오랜 동안 고이고이 키워 왔었다. 그 꿈은 도저히 부모가 택한 이성을 상대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그것은 내게 있어 한 개의 신앙과도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구한국 시대의 완고함만을 몸에 붙이고 살아오신 아버지가 그러한 어린 자식의 꿈을 알아주실 리 없었다. 아버지에겐 오로지 그것은 한 개의 어리광으로밖엔 생각되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동시에 자식으로서 부모의 말에 거역한다는 것은 인륜에 어긋난 일이라고, 아무리 못생긴 자식이기로 그것쯤야 모를 리 있겠느냐고, 그리하여 아버지는 억지를 트시기 시작하셨던 것이다.

중매쟁이 출입이 잦았고, 사주가 오고 가고, 일진을 보신다 하여 때 묻은 책력은 하루하루 더 낡아갔다.

그러할 즈음에 뜻하지 못했던 기회가 닥쳐왔다. 닥쳐왔다느니보다는 그 뜻밖의 기회가 나를 못 살게-충동이었는지도 모른다.

역시 내 혼사일 때문에, 그날, 아버지는 아침부터 읍에 들어가 안 계셨고, 어머니마저 공교롭게 밖에 나가시어 딴 때 없이 안방엔 인기척이 없었다.

그 고요함이 몹시 내 마음에 거슬리어 나는 무심코 안방으로 건너가서 아버지 문갑 서랍을 열어보았던 것이다.

바른대로 고백하거니와 그 순간 전까지도 나는 그러한 맘보를 가지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 500원짜리 지폐 뭉치를 보았을 때, 나는 무슨 영감과도 같이 머릿속을 스치는 상념에 사로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해결하는 방법이 여기 있다고 나는 굳게 믿을 수 있었다. 그 500원이란 돈이 내 혼수 비용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나는 모든 것을 얼른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때의 불효는 머지않은 장래에 2배 3배로 하여 갚아드릴 자신이 있었다. 또 머지않은 장래에 내가 취한 길이 자식으로서 어긋난 짓이라고만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드릴 자신이 있었다. 아니 그릇된 길이라면 비록 부모의 말씀에라도 맹종 안 하는 것이 진실한 효도라는 것을 설명해드릴 자신도 있었다. '터무니없는 자기변호여.'

겨우 장성한 자식 하나 잃었다고 땅을 치며 통곡하실 늙으신 부모의 슬픔과 쓰라림, 헤아릴 여지가 내게는 없었다. 나는 그 당장으로 그 지폐 뭉치를 훔쳐 들고, 몰래 집을 빠져나와 곧장 동경으로 건너오고 말았던 것이다.

다니던 학교에는 연락선 속에서 퇴학원을 써 보냈다. 다섯 해 후엔 반드시 성공해서 집으로 돌아가겠아오니 몸조심하시고 기다려주십사하고, 집에도 간단한 사연을 적어 보냈다.

"아 이 사람아, 별안간에 웬일인가?"

역에까지 마중 나온 중학 동창 P군의 손을 잡고 나는 커다란 결의를 얼굴에 나타내며,

"나 고학허러 왔네."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림에서만 본 역전의 마루비루(빌딩 이름)를 한참 동안 노려보았던 것이다.

그 P군에게도 알리지 않고 나는 몰래 부상관으로 숙소를 옮겼다. 아무리 굳게 약속은 했어도 어떤 기회에 어떻게 나 있는 곤이 아버지 귀에 들어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세상에서 숨다시피 하여 나는 혼자 파묻혀 인제부터 살아가고 학교에 다닐 방도를 궁리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생소한 타향에서 500원이란 돈이 얼마나 한 가치밖에 못 가진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앞일을 생각하기 전에 나는 먼저 내가 저지른 과거의 죄악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했다.

아무리 내 자신 대의명분을 내세워보아야 역시 죄인이란 범주를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아무도 나를 지탄하는 사람은 없다 하더라도 그런 감정은 날이 갈수록 치역(熾烈)하게 내심에서 불타올라 더욱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망막한 괴로움 속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아사오와 무라이라는 유쾌한 동무를 만났다는 것은 한없이 반가운 일이었다. 적어도 그들은 내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었다.

옳다, 내년 봄까지, 내년 봄까지, 나는 쥐 죽은 듯이 틀어박히어 커다란 비약을 위하여 준비함이 있으리라. 그리고 내 자신을 키우기 위하여 기초를 닦으리라.

"하마짱 ?"

나는 번뜩 자릿속에서 엎드렸던 반신을 일으켰다. 누구인지 문을 두드리는 듯하였기 때문이다.

"네에. 저어……."

"들어와요."

바시시 문이 열리고 약간 홍조된 둥근 하마에의 얼굴이 갸웃한다. 하마에는 내가 밤잠 못 자는 줄 알고 매일 저녁같이 나를 위하여 밤참을 준비해다 주는 것이다.

"벌써 잠을 자나 ?"

"그러문요."

하마에는 채 방안에 발도 들여놓지 않고 한 손으로 우동남비를 조심스럽게 내밀며,

"자정 넘었에요‥‥‥어서 주무세요‥‥‥그리구 이거……말을 마치지 못한 채 무엇인지 뒤에 숨겼던 것을 얼른 이불 밑에 파묻고 그대로 하마에는 도망치듯이 층계를 내려가는 것이다. 유단포(탕파)였다.

나는 약간 눈시울이 뜨끔 하는 것 같아 다시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발을 뻗어 발끝으로 그 유단포를 매만져보았다. 어머니의 손끝 같은 따사로움이 가만하게 부드럽게 기어오르고 스며드는 것이다.

"얼른 자랬으니 얼른 자야지."

어느 사이에 유단포가 필요하도록 날이 바뀌고 달이 바뀌었다. 나는 그 유단포에서 우러나는 훈훈한 온기를 마음속으로 얼싸안듯하며 그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생각하려들지 않고 가만히 눈을 감아보았다.

금방 진눈깨비라도 내릴 듯이 아침부터 찌뿌둥한 날씨였다. 거기다 바람까지 불어 끊일 새 없이 창문이 덜컹거려서 어두운 방안엔 더욱 음산한 기운이 떠돌았다.

나는 자릿속에서 오정 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일어날 생각을 먹지 않았다. 입안이 깔깔하고 골치가 띵해서 밥 먹을 생각도 없었다. 눈을 뜬 채 멍하니 자릿속에 구부리고 드러누워 천장을 쳐다보며, 공연히 어제 술을 많이 먹었다고, 아마 그 술이 나빴던가 보다고 그런 것을 생각하였다.

어젯밤, 자릿속에 들려던 나를 억지로 술 먹자고 끌어낸 사람은 아사오였다. 날도 춥고, 술이 먹고 싶으니 덮어놓고 같이 나가자는 것이었다. 문밖에서 무라이마저, 다른 때와 똑같은 탁한 어조로 떠듬떠듬, 같이 갑시다. 응, 가요, 하는 데는 평소의 우의를 생각하여 나로서는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뎅집에서부터 시작한 것이 어디를 어떻게 먹고 다녔는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만취해서 돌아와 쓰러져 잤던 것이다.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집에서 무슨 불쾌한 편지가 왔다고 웅얼대던 아사오의 넋두리뿐이다.

-인젠 절주를 좀 해야……. 동경에 온 지 벌써 석 달이 넘었다. 입학할 학교조차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에다가 가진 돈이라고는 이미 207원이 될락 말락이다. 학교 든 후의 생활까지 생각하면 까마득하여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 덧없는 반성이랄까 결심이랄까를 거듭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든 헛된 반성이요 결심이었다.

"인젠 정 말……."

부지중 그렇게 입 밖에까지 내어 중얼거리다가 나는 문득 귀를 기울였다.

맞은편 아사오 방에서 총채질 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하마짱이요 ?"

나는 드러누운 채 불러보았다. 소제하는 것을 보니 아사오는 벌써 일어난 모양이다.

총채질이 잠깐 그치더니, 대답은 없이 하마에의 발자취 소리가 복도를 건너오며,

"네, 안 일어나세요?"

하면서 방문이 반쯤 가만히 열린다.

"왜, 일어나야 헐텐데 머리가 아퍼서-다들 일어났수?"

"일어나시기커녕 벌써 진지 잡숫구 나가셨는데요."

"나갔어? 희한헌 일두 있네."

"모르겠어요. 두 분이 한데 일찍 나가셨어요. 급헌 일 있다구. 9시쯤 해서."

"흥, 무슨 일일까. 어저께 밤꺼지두 암말 없든데."

다스키(어깨띠)를 걸고 수건으로 머리를 동인 하마에는 잠깐 머뭇하다가 다시 문을 살짝 닫고 돌아섰고, 나는 혼자 떨어진 외로움을 잠깐 느끼어 더욱 일어날 생각이 없어져서 다시 한번 잠들어보려고 이불을 얼굴 위까지 끌어올렸다.

그렇게 눈을 잠깐 붙였을까말까 한 때에 다시 하마에가 밥상을 들고 들어와서 나를 깨웠다. 그대로 한 술만이라도 뜨고 다시 자라는 것이다.

나는 마지못해 자리 위에 일어나 앉으며,

"노서아 귀족인가, 자릿속에서 밥 먹게, 허허."

머리가 아찔하는 것을 너털웃음을 쳐 참고 그리고, 다스키도 수건도 벗어 치우고 급하게 매만진 듯한 하마에의 얼굴 위의 희끗희끗한 분 자국을 나는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순간 나의 텅 비인 부상관 안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곤 하마에와 나와-그렇게 단 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아래 ‥‥‥아무두 없지 ?"

그것을 숨기려 이런 말을 물어보는 것이나 하마에라고 그것을 모를 리는 없어, 역시 약간 떨리는 말소리로

"네."

짧게 그렇게 한마디 대답하고 얼른 자리를 옮기어 밥을 푸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 한 공기만 먹어보까."

태연함을 꾸미려 하나 내 말소리도 역시 떨리는 것을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입때까지도 하마에를 귀애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일종의 애정을 느낀 일조차 없지도 않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같이 그것이일종의 연정에까지 승화한 감정을 가져본 일은 없다.

단 둘이서만 한 집에 있다는-그것도 그러한 분위기를 자아낸 원인의 하나는 될 수 있으나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렇다. 전에 없던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 지금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대해온 하마에의 내게 대한 태도가 전에 없이 깊이 내 생리에까지 배어들어 오고 스며들어 온 때문일 것이다. 나는 비로소 하마에를 한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지금까지의 하마에의 행동 한 가지 한 가지를 모조리 머릿속에 생각해내고, 그것은 틀림없는 애정의 표현이라고 그렇게 단정을 내리면서 또 한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하마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고 취해온 행동인지도 모른다. 또 사실 족히 그래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 진실로 하마에가 내게 애정을 느꼈다고 자각했다면 하마에는 도리어 나를 멀리 했고 내 앞에 아까이 오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그 의식치 못하는 감정은 어느 새에 퍽도 크게 자란 성싶었었다. 나나 하마에나,

우리들은 얼마 동안 말이 없었다.

말없이 나는 공기를 내밀었고 하마에는 밥을 펐다.

그러나 그런 침묵이, 처음 당하는 내게는 몹시 거북할 뿐 아니라 가슴이 울렁거리도록 두렵기까지 하여 그것을 외면하려고 나는 한숨에 남은 밥을 입 속에 털어 넣고나서,

"대체 어디들 갔누."

혼잣말 비슷이 딴 쪽을 보며 무척 노력하여 입 안에서 웅얼거렸다.

이튿날도 아사오는 일찍이 아침에 외출을 하고 늦은 밥상을 대한 것은 나와 무라이 둘뿐이었다.

"어저껜 어디들 갔었소 ?"

"응, 저어 ‥‥‥정거장에 ……."

그렇게 대답하는 무라이의 말소리는 무척 탁했고, 또 그 여운에 그런 것 묻는 것이 귀찮다는 듯이도 탐탁치 않다는 듯이도 울려 나오는 무엇이 있어,

"정거장엔 왜 ? ‥‥‥응, 정거장에……."

나도 말끝을 얼버무려버리고, 힐끗 그의 표정을 살피니 전에 못 보던 침울한 얼굴이요 맥이 풀린 태도다.

나는 즉각적으로 무엇인지 느끼는 바 있어 더 말을 건네려 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우리 둘은 서로 고개를 수그린 채 거의 의무적으로 젓가락을 놀리며 국을 마셨다.

먼저 밥을 먹고 나서 화롯가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무라이는 내가 수저 놓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서서 나오려는 내 등 뒤에 따라 나서며,

"긴상, 내 방으로 갑시다."

하면서 은근한 태도로 나를 잡아끄는 것이다. 셋 중 누구의 방으로든지 아침마다 몰려가는 것이 일과이기는 하였으나 일찍이 이렇듯 간곡하게 초대를 받은 일은 없어, 나는 얼른 그러한 무라이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러나 그렇다고 물론 그것을 거부할 것은 아니므로 나는,

말없이 가만히 끄덕이고 앞서서 그의 방으로 바로 뚫린 층계를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방에 들어온 무라이는 화로를 끼로 앉아 불만 쑤시며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이윽고,

"레코드나 들을까 ?"

입가에 쓸쓸한 웃음을 띠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럽시다."

나도 부지중 가만히 웃어 그러한 이유 모를 동무의 우울에 대답하고,

"뭐가 좋을까 ?"

그러면서 한편 구석에 있는 레코드 케이스를 집어 들었다.

"째즈나 들읍시다. 날두 이렇구 허니-"

"글쎄, 날이 웬일야, 눈이 오려나."

어제도, 오늘도 장마 때가 그대로 겨울로 옮겨 앉은 듯한 그러한 시무룩한 날씨가 계속된다. 바람은 좀 잤으나 사람의 맘을 초조하게 하는 음산함과 침울함은 어제보다도 더한 듯하다. 창밖으로 멀리 내다보이는 황폐한 벌판, 좁다란 길거리를 싸고 군데군데 서 있는 문화주택들의 소조한 풍경, 그런 것들이 시커먼 하늘 밑에 웅크리고 있는 것도 구슬펐고, 사이를 놓고 들려오는 무장야철도의 전차 소리도 어둠 속을 빠져나오는 듯하여 구슬프다.

그런 사위에 에워싸인 부상관 구석방에서 루디 밸리의, 데니스 킹의 명랑한 목소리가 울려 나온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런 부자연함이 지금의 우리들의 감정에는 곧잘 조화된다.

그렇게 우리들은 화로 하나를 사이에 놓고 무척 오랜 동안 달빛같이 새파란 우울의 바다 속에 잠겨 있었다.

"긴상."

한참 만에 무라이는 슈발리에의 노래를 중간에서 꺼버리고,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긴상, 당신은 어떤 때 제일 고적합디까?"

무슨 수수께끼와도 같이 불쑥 그런 것을 물었다.

"글쎄……."

나는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잠깐 망설인 후에,

"별안간에 그건 왜 ?"

"아마 당신에겐 부모님이 다 계시니까 별루 그런 일 없을걸."

"왜 ? 당신두 다 계시댔지 ?"

"……"

무라이는 얼른 대답을 않고 잠깐 동안 무엇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별안간에 다른 것이나 생각난 듯이 화제를 바꾸어,

"어저께 아사오상 춘부장 오신 거 아우."

"몰라, 그래서들 정거장에 나갔었구려."

"응, 그래 오늘은 시내 구경시켜 드린다구 모시구 나갔지."

"난 아주 몰랐어, 어저껜 그럼 늦게들 들어왔구려."

"들어오니까 당신은 잡디다‥‥‥전에두 뵙기는 했지만, 이번에 뵈니까 참 좋은 어른야."

"왜 ?"

"완고허시긴 허지만 한번 맘이 풀리면 그땐 꼭 부처님 같으시거든. 우리 집 부모님네들 허구 비교해보니까 딱한 생각만 납디다."

"뭣허러 우셨누 ?"

"아사오상 혼인 말 때문에."

"혼인 ?"

"응"

무라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잠깐 말을 끊은 후 화로 속에 숯을 넣고나서 ,

"아사오상헌테 애인이 있는 거 당신 아우……"

"모르지. 언제 그런 거 당신네들이 나헌테 들려줬수?"

"그랬나. 그럼 내 이야기 허까?"

천천히 담배를 한 대 물고나서 무라이는, 이야기를 시작하자 좀 얼었던 마음이 녹았는지 평소의 어조로 돌아가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조리 있게 들려주었다.

아사오에게는 대학에 다닐 때부터 다에꼬라는 연인이 있었다. 그러나 고향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정해둔 약혼한 사람이 아사오의 학교 마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흔히 대중 소설에 나오는 것과 똑같은 경로와 쟁투를 거쳐, 드디어 아사오는 집안 사람들과 반목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사오는 굳은 결심으로 완고한 아버지가 반성할 날을 믿고, 다에꼬에게도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라고, 그래서 정정당당하게 정식으로 결합하자고 그렇게 타이르고, 맑게 굳게 몸을 가지며 이리하여 이미 다섯 해, 아사오는 아사오대로, 다에꼬는 다에꼬대로, 무라이의 말에 의하면 '사랑을 위하여' 그들은 아무것에게도 지지 않고 이때까지 싸워왔다는 것이다. 드디어 아사오의 아버지가 꺾일 날이 왔다. 얼마 전에 일간 한 번 상경해서 잘 의논하겠다는 편지를 하고서는 별안간 5년 동안이나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찾아 상경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저께 다에꼬까지 한자리에 모여 흉금을 털어놓고 각자의 신념을 이야기랬다. 아사오의 아버지는 비로소 그들의 '꿈꿈하고도 바르고 충실한 사랑'(무라이의 말)에 압도되었고, 또 다에꼬의 단정한 태도라든가 영리함에 크게 감동되어 당장 그 자리에서 그들의 결혼을 허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은 이번에 올라와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너를 데리고 내려가서 강제로라도 결혼을 시키려던 것인데, 와놓고 보니 일이 거꾸로 되고 말았다고, 내 태도가 이렇게 표변한 줄 알면 집에선 큰 소동이 일어날 것이나 그것은 내가 무슨 짓을 해서든지 무마하마고, 이런 색시라면 나라도 반하겠다고-아사오의 아버지는 나중에는 그런 농담까지 하며 여간 기쁜 낯이 아니었다 한다.

아사오는 아버지 앞에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수그릴 뿐이었다. 약혼한 상대자도 지금까지 자기를 기다려주었고 또 그 집안은 아버지의 장사의 큰 고객인만큼 이제 와서 파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버지에게 정신상 물질상으로 타격을 줄지를 잘 아는 아사오는 감히 입 밖에 내어 무엇이라 치하할 수조차 없었다더라고-그런 이야기를 차근차근히 마치고나서 무라이는,

"참 착헌 어른입니다. 소설에 나오는 노인 같애……"

"응, 그렇다, 그럼 아사오장헌테 한턱먹어야겠군 그래."

"암, 먹어야지, 내일쯤은 그 어른 내려가신다니까‥‥‥그런데 그런 부몰 뵈니까 내 부모 생각이 나서 오늘은 당최 우울해 죽겠구려."

"……"

"두 분 중 어느 분 한 분만이라두……."

"왜 ? 당신에게두 애인 있소?"

또 어두운 얼굴로 돌아가려는 무라이 보기가 민망하여 나는 이렇게 웃음엣소리를 던져보았으나 무라이는 그것을 받아주지 않고,

"그렇진 않지만……."

그렇게 한마디 내뱉듯 하고나서 다시 침울한 태도로 레코드 장을 고르기 시작하였다.

1주일가량 고향에 다녀오겠다고 아사오는 그 다음다음 날이던가 아버지와 함께 시골로 내려갔고, 전송하고 돌아오다가 나와 무라이는 무척 고적함을 느끼어 늘 가는 오뎅집에서 밤 늦도륵 또 술을 먹었다.

트리오의 일각이 무너졌으니 어떻게 하느냐고, 자아 인제부터는 우리 손목 맞잡고 공부나 하자고, 나도 내일부터 또 소설 쓰기 시작하겠다고- 무라이는 전에 없이 취하여 집에 와서까지도 그런 것임을 토하며 나중엔 눈물조차 흘리며 흐늑흐늑 느끼면서 잠이 들고 말았다.

이튿날부터 무라이는 밥술만 뜨고나면 자기 방에 틀어박혀 무엇인지 열심으로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말 소설을 쓰기 시작했나보다고 나도 차차 시험 준비를 시작해야겠다고 결국 그것을 기회로 나도 다른 모든 것을 잊고 앞날의 계획을 세우기에 바빴다.

때때로 집안일이 마음에 거리끼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몇 해 동안은 내 자신만을 키우기로 결심한 후이라 이를 악물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으리라 맹서한다.

그리하여 지극히 평온한 날이 계속되었다. 낮이고 밤이고 부상관은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도록 조용하였다.

1주일이면 온다던 아사오는 달포가 되도록 상경하지 않고, 여러 가지 해결할 문제가 있어 뜻대로 못 하고 부득이 시골서 과세하게 될 것 같다는 간단한 엽서가 왔을 뿐이었으며 무라이는 전과 달리 매일같이 얼굴은 대했으나 간단하게 인삿말을 주고받을 뿐, 제각기의 세계로 즉시 파고들어 좀체로 한자리에 모여 볼 기회를 얻기 어려웠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나나 무라이나 서로 그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덧 섣달도 거진 다 지나고 머지않아서 새해라 하여 이 한산하던 교외의 한구석에도 부산한 공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여러 날 계속해서 봄날같이 따뜻한 바람까지 불었다.

그러한 어느 날 무라이가 불쑥 내 방으로 들어오더니, 앉지도 않고 선 채

"나두 시골 가서 과세 허겠소."

밑도 끝도 없이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시골? 아니 이거 모두 별안간에 웬일들야. 죽어두 안 간대드니 개과천선했구려 ?"

"글쎄, 그랬나봐……."

그렇게 대답하고 무라이는 잠깐 쓸쓸하게 웃더니,

"내가 져야허까봐‥‥‥ 당신은 어디 안 가겠소?"

"내야 어디 갈 데 있나?"

"그럼 부상관이나 지키구려. 하마짱허구 둘이서, 하하."

"이건 또 무슨 소리 ……."

"내 그럼 갔다 오리다……."

"아아니 이건 모두들 나만 내버려두구 고향에들 가기람!"

"글쎄‥‥‥고향엘 가게 될지 어딜 가게 될지 누가 아우. 중간에서 맘 변허면 온천이나 한바퀴 휘돌아오지."

"그래 언제 떠날 작정요?"

"밤차루……."

"그럼 같이 나갈까?"

일어서려는 나를 무라이는 한사코 말리며,

"아냐, 아냐, 고만둬, 가면 아주 간댑디까, 뭐, 가방두 안 가지구 떠나는데-금방 갔다 올걸, 뭘."

무라이는 무엇 때문인지 방 속으로 나를 떠다밀듯 하여,

"그럼 갔다 오리다."

그런 말은 한마디 남긴 후 문을 닫고 사라졌다. 나는 한참 동안 어안이 벙하여 책상머리에 구부리고 앉은 채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문득 내 머릿속에는 무라이나 아사오가 모두 다시는 이 하숙에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아니 반드시 안 돌아오리라는 그런 생각이 떠올라 나는 별안간에 내 주위가 허전해진 성싶은 공허감을 느끼고 말았다.

그렇게 단정할 아무 근거도 없었으나 까닭 없이 꼭 그렇게만 믿어지는 것이 일종의 불길한 예감을 주기조차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앞길에도 무슨 암시를 주는 듯하여 두려웠다.

거의 매일같이 무척은 가까이 지내왔으나 바른대로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그들을 잘 모른다.

아사오나 무라이나 하루 종일 농담으로 사는 사람이었으나 그것은 역시 농담에 그쳤을 뿐, 그들의 진심까지를 토하지는 못했다. 그들이 항상 무슨 검은 그림자를 짊어지고 있는 것만은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었고, 또 그것이 나와 비슷한 일종의 가정의 불화라는 것도 짐작쯤은 갔으나 거기서 한걸음만 더 나가도 나는 의연코 그들의 정체를 잡지 못했다. 그들도 달갑게 그것을 내게 알리려 하지 않았다. 무라이의 이야기로 아사오의 사정만은 뚜렷이 구명된 것 같기도 하나 나는 즉각적으로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사실이 그것만이라면 도저히 아사오와 같은 침울한 성격의 남자를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라이만 하더라도 그랬다. 언제이던가 술이 취한 나머지,

"난 죽어도 집에 안 간다. 안 가."

그런 소리를 하며 눈물을 흘린 일이 있으나 역시 그 이상은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더구나 무라이는 작가에 뜻을 둔만큼 신경도 섬세하여 아사오보다도 한층 더 자기의 내면을 남에게 들추어 보이려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미루어 생각하면 그의 가정의 내막이란-아사오도 비슷하겠지만-무척 추악한 것이 아니면 입에 담지 못하도록 참혹한 것인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애써 알려 하지 않은 것도 그런 점이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슷비슷한 처지에 놓인 우리들 세 사람이 급속하게 친해진 데는 그런 점-서로 암암리에 느껴온 그러한 일맥상통한 점에 그 원인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하여간에 그들이 이대로 정말 다시 이 하숙에 안 돌아온다는 것은 몹씨 섭섭한 일이다. 그런 일이 있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중의 한 사람만이라도 하시 내 곁으로 잡아와야 하겠다. 나는 그런 것을 한참 생각하다가 아사오에게 편지를 쓰리라고 책상서랍을 열려는데, 등 뒤에서 빠른 속도로 그러나 조심성스럽게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밤참 갖다놓는 하마에일께다.

"하마짱!"

나는 과장해서 말하자면 구세주나 만난 듯이 기쁘고 반가워 당황해서 그를 부르고, 그 목소리가 높은데 스스로 놀라며, 다음엔 벌떡 일어나서 내 손으로 문을 열고 수줍어하는 하마에에게 들어오라고 가만히 손짓하였다.

하마에는 복도 어두운 구석에 몸을 숨기고 망설이는 듯, 꼼짝도 않는다. 어둠 속이라 몰랐지만 분명히 홍당무같이 붉어졌을 것이다.

"하마짱."

나도 그러한 하마에의 태도를 대한 순간 잠깐 멈칫했으나 내게 조금도 사심이 없다는 것으로 스스로 변명하며 용기를 내어 이번엔 좀 낮은 목소리로 또 한번 부르고,

"무라이상 언제쯤 온댔지 ?"

겨우 조심성스럽게 방안에 들어선 하마에에게 그런 동애도 닿지 않는 말을 물으며 나는 무엇 때문에 하마에를 불렀는지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며, 다음엔 아무리 사심은 없다 하지만 밤늦게 나이 어린 하숙 조주를 끌어들였다는 부끄러움만은 느끼고 만다.

초하룻날 밤은 아무리 낯이라도 늦잠 잘 수 없어, 내 딴엔 무척 일찍 일어난 모양이었으나, 그래도 세수를 마치고 식당에 들어가니 벌써부터 상을 준비해놓고 모두들 나를 기다리고 있는 판이었다. 거의 전부가 고향에 갔거나 여행을 떠났고, 하숙인으로 부상관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은 나와 아랫층에 있는 타이피스트와 나 두 사람뿐이다. 사실 이 허물어져가는 부상관에서 신춘을 맞이한다는 것은 적지 않이 우울한 노릇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로서는 그것에 만족하는 밖에 별도리가 없다.

주인 할머니와 그의 아들 제대생과, 예쁘지 않은 타이퍼스트 나 그리고 하마에와 나, 이렇게 다섯 사람이 조촐하게 설상을 대했다. 몇 잔씩의 모소에 모두들 얼굴을 붉히어, 상이 나간 후에도 오랫동안 다섯 사람은 그 방에 눌러 앉은 채 잡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모두들 말이 없는 사람들이라 별로 신기하고 재미있는 화제도 없었으나 다만 그 나이 찬 타이피스트만이 혼자서 킬킬거리며 하숙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흥을 잡는 것이 흥겨웠을 뿐이다. 그것에도 지쳐 잠시 방안이 잠잠하였을 때 나는 주인 아들 쪽으로다가 앉으며,

"아사오상이나 무라이상헌테서 무슨 소식 없에요?"

늘 이유 없이 걱정되는 그것을 물었다. 그 대답으로 올해의 내 운명을 점치려는 마음인지 모른다.

"정초에 온 댔는데요. 긴상헌텐 편지 안 왔에요?"

"안 왔에요. 가서 즉시 엽서 한 장 왔을 뿐예요."

"아마 금명간에 두 분이 같이 올겝니다."

"같이 와요. 어떻게-같이 만났나요?"

"뭘, 군은 다르지만 한 고향인 걸요. 모르셨어요?"

"몰랐에요. 그래요-그럼 며칠 안 있어서 부상관이 또 떠들썩허겠군."

"그럼요, 그분들이 안 계시니까 아주 적적해서‥‥‥하하."

얼마 후에 나는 네 사람을 방에 남겨놓고 혼자서 이층으로 올라갔다. 옷이나 갈아입고 이사쿠사에나 가볼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두 동무가 돌아을 때까지 나는 끽 소리 말고 부상관을 지켜야 한다. 낡고 헐었으나 그믐날 하루 종일 하마에가 애써 닦고 쓸고 문지르고 한 탓으로 그래도 제법 유리창이 새봄답게 밝고 복도에도 윤이 돈다. 창밖, 따뜻한 햇볕에 쌓인 거리에는 사람의 왕래가 제법 잦고, 눈 녹은 벌판에선 아지랑이라도 뭉게뭉게 피어오를 듯하다. 그러한 희망을 가지게 하는 좋은 날씨였다.

복도 창 너머로 그런 것을 넘겨다보며, 동경에 온 후 처음으로 안온하게 가라앉은 마음속에서, 이런 마음 언제까지든지 지니고 이대로 곧장 살아 나가리라, 아무 술책도 필요치 않고 아무 흉계도 쓸 것 없으니 그저 정직하게만 살아 나가리라, 그러면 결국 모든 번잡스런 문제가 스스로 해결되리라고-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것을 생각하고 나는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맨 먼저 책상 위에 놓인 휜 종잇장이 눈에 띠었다. 그리고 다음엔 왼편 벽에 걸린 내 낡은 아와세(겹옷)와 하오리(짤은 겉옷)가 눈에 띠었다. 그뿐 아니라 방안은 반듯이 정돈되었고, 책상머리 화병에는 꽃까지 꽂혀 있는 것이다.

나는 잠깐 멈칫하고 형용 못 할 감격에 가늘게 몸을 떨며 부지중 눈시울이 뜨끔 하는 것을 금할 길 없다.

나는 거의 책상 앞에 펄썩 주저앉듯 하며 그 휜 종잇장을 집어 들었다.

새해엔 학교에 꼭 입학하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오래 부상관에 계셔주십시오.

그런 간단한 사연이었다. 그러나 천자 만자보다도 더 무게 있고 애정에 넘치는 순진한 글이었다.

뜨끔 하는 것을 느끼며 이번엔 얼굴을 들어 벽에 걸린 내 옷을 쳐다보았다.

입고 딩굴어 때 묻고 찢어지고 주름 잡혔던 옷이다. 그것이 어느 사이에 저렇게 말짱하게 새 옷으로 변하여 단정하게 벽에 걸려 있는 것일까. 터진 데는 꿰매였고, 주름진 덴 펴졌고, 동정 때도 말짱하게 뽑아놓았다. 어쩌면 향수까지 뿜어두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입었던 도테라(솜을 둔 덧옷)를 벗어 던지고 벽에 걸린 옷을 재빨리 갈아입었다. 에서,

"하마짱!"

그러고 입안서 무한한 애정을 섞어 가만히 불러본 후, 인제부터는 쓸쓸해하지도 말리라고 결심하며,

"하마짱!"

또 한번 부르고 그 무명옷의 감촉을 비단결같이 부드럽게 곱게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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