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대선자금 의혹 관련 기자회견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이 저작물은 공개적으로 행한 정치적 연설이나 공개적으로 법정, 국회, 지방의회에서 행한 진술이므로 대한민국 저작권법 제24조에 의해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동일한 저작자의 연설이나 진술을 편집하여 이용하는 경우에는 해당 조항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작년 12월 국민 여러분께 "한나라당의 대선자금에 관한 최종책임은 대통령 후보였던 저에게 있고, 제가 모든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이미 검찰에 출두해서 "대선자금 문제는 제가 지시한 일이며, 설혹 제가 몰랐던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총체적 지휘의 책임은 저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한나라당의 대선자금에 관한 일은 모두 제가 시켜서 한 일이며, 이 문제로 구속된 사람들은 모두 실무자나 전달자에 불과합니다. 이 사람들이 저를 보호하기 위하여 무슨 말을 하더라도, 대선자금에 관한 책임은 모두 후보였던 저에게 있습니다.

이러한 저의 생각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으며, 지난 5개월 동안 저는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자중해왔습니다.

그러나 어제 검찰이 발표한 수사결과를 보고 저는 실망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대선후보였던 저와 노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총선 이후로 연기한다고 한 검찰의 결정입니다. 만약 검찰이 노대통령과 형평을 고려하여 저에 대한 사법처리를 연기하는 것이라면 이는 검찰이 정치적 계산을 하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검찰수사는 공정하지도 못했습니다. 5대 그룹의 경우 검찰이 지난 5개월 동안 수사한 결과가 700대36이라면, 이것을 과연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수사를 발표하는 당일에 와서야 30억원이 새로 발견되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법과 원칙이 바로선 제대로 된 나라를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대통령 후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참담한 심정이지만 오히려 이 상황에서 제 몸을 던져 불행한 과거와의 단절을 이루어내는 일이 저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법과 원칙이 바로 선 깨끗한 새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미 모든 책임을 지고 국법의 심판을 자청했습니다. 검찰은 저에 대한 수사를 하루 속히 마무리짓고 국법에 따라 저를 사법처리하기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 지금 나라는 어둡고 해야 할 일은 태산과 같습니다. 나라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미래는 불안하기 짝이 없으며, 그로 말미암아 국민이 겪어야 할 고초는 말로 다 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국민의 힘과 뜻을 모아 장래를 개척해야 할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를 마무리짓고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검찰은 기업수사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기업인들이 경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랍니다. 대선자금과 같은 과거청산의 문제는 책임질 사람이 책임을 짐으로써 깨끗이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과거와 단절된 깨끗한 터전 위에서만 우리는 정치를 혁신하고 새 시대를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나 노 대통령이나 대선자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다시 강조하건데 저는 저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감옥에 가겠습니다. 노 대통령은 대의에 따라 스스로 판단하기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한나라당 당원 동지 여러분!

대선자금 사건으로 상처투성이가 된 오늘의 한나라당 모습을 보면서 저는 비통한 심정을 누를 길이 없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발생한 한나라당의 모든 불미스러운 문제는 후보였던 제가 모두 감당하고 가겠습니다.

한나라당은 뼈를 깎는 자기혁신으로 기필코 환골탈태하여 주기를 바랍니다. 흔들리는 나라의 운명과 국민이 겪어야 할 고초를 깊이 헤아려 국민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는 정당으로 거듭나 주기를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께 간절한 부탁말씀을 감히 드립니다. 이제 한나라당에 대한 노여움을 푸시고 못난 자식을 아끼는 부모의 안타까움으로 채찍과 격려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4년 3월 9일

이회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