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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덕이네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1

“앞집 명녀(明女)는 도로 왔다지요.”

“저의 아버지가 함경도까지 찾아가서 데려오느라고 또 빚이 무척 졌다우.”

“원 망할 계집애도…… 동백기름 값도 못 벌 년이지, 그게 무슨 기생이야. 해마다 몇 차례씩 괜히 왔다 갔다 지랄발광만 하니…….”

“이번엔 그 데리고 갔던 절네 마누라가 너무 흉칙스러워서 그랬답니다. 같이 간 점순이와 모두 되국놈한테로 팔아먹을 작정이었더래.”

“저런…….”

“그래 명녀 아버지가 찾아가니까 벌써 점순이는 어따가 팔아 버리고 절네 마누라는 어디로 뻉소니를 쳤더라는데…….”

“저런, 세상에 몹쓸 년이 있나, 고 어린 것을……. 그래 저이 아버지는 그 소릴 듣고도 가만히 앉아만 있나?”

“그럼 가만히 앉았지 어떡하우, 더구나 그 해보가…….”

“하긴 멀쩡하게 마누라를 뺏기고도 말 한 마디 못하고 됩데 그 집으로 어슬러어슬렁 밥이나 얻어 먹으러 다니는 위인이니까…….”

북악과 인왕산이 앞으로 치받쳐 그늘진 골짜기 돌각다리 메마른 산마을이라 사내 장정들은 대개가 첫새벽에 무거운 등짐을 지고 자하문턱을 넘어서 벌이를 하러 들어만 가면 온 동네가 날이 맞도록 한갓 한가한 오막살이 돌담짐 속― 그 속에는 저절로 여편네들만의 오붓한 세상이 되어버린다. 남의 흉이나 제 사정이나 새벽동자 늦은 밤참도 수가 좋아야 제 때에 두 끼를 끓이게 되는 시들픈 살림들……. 그러니, 심심하고 할 일 없이 이 집 저 집으로 서로 찾아다니며 게으른 하품에 뒤섞여서 한바탕 지껄이고 나니 그것이 저절로 모두 쓸데없는 이삭다리들뿐이다.

어떠한 이인(異人)이 있어서 그렇게 실없게 던지고 간 예언인지는 몰라도, “조석(照石) 고개가 뚫리면 동네가 폐한다. 물문이 헐리면 음란한 일이 많아지리라!”

하는 무슨 수수께끼같이 야릇하고도 너무나 영절스럽고 흉물스러운 구비 전설이, 아직도 몹시 어수룩하고 아늑한 이 산골짜기에 그윽히 서려 있다.

위 아래 부침바위에다 나날이 새로웁게 갈아 놓은 흠집 자국은 그 어느 청춘들의 아프고 안타까운 가슴으로 모질게 긁어 놓은 생채기인지? 뒷절 돌부처는 어두운 밤마다 아무 죄 없이 생코를 깎아버리는 참혹하고 가엾은 형벌을 수없이 치르건마는 억울한 하소연도 사뢰올 곳이 바이 없어, 그대로 우두머니 감중련(坎中連)만 하고 서 있을 뿐이다.

예전에는 깡조밥이나 보리꼽사리가 아니면 주린 배를 채울 줄 모르던 이 마을 사람들인데, 요사이는 집집마다 잡곡 대신에 오이씨 같은 흰 이밥도 맛있는 반찬이 없으면 못먹을 지경으로 입맛을 모두 드잡이해 놓은 모양이다. 그러나, 그 대신 몇 해 전까지 잡곡을 심던 산비탈 밭이랑까지도 어느 틈에 모조리 문안 낯설은 사람들로 임자가 갈려져 버렸다.

새벽 골안개를 마시며 도시락을 끼고 공장에 다니는 처자들이 해마다 그 수효가 늘어만 가는데, 저녁이면 어두운 거리에서 주정꾼, 노름군, 쌈꾼, 온갖 흑책꾼들의 거칠은 목소리가 세검정을 들레인다. 등이 곱은 늙은이들은 다 닳은 괭이자루를 둘러메고 조석고개로 기어 올라가서 땅이 꺼지도록 긴 한숨을 쉰다. 그러나, 젊은 아들딸들은 삼베로 단단히 동여매어 놓기 전에는 열의 열 골물이 한데로 합수쳐서 천방져 지방져 돌더미를 굴리며 홍예 불문을 북질러 터져만가는 자연의 힘을 어떻게 막을 수 있으랴.

건너 마을 북실이는 초례 전날 밤에 밤봇짐을 싸가지고 어느 공장으로 달아 나서 선 채로 받았던 논을 도로 벌어서 갚겠노라고 애를 무진 쓴다 하더니 그만 어느 틈에 애비 모를 아기를 배어 오는 달이 산삭이라고 포대기 걱정이 부산하게 되었다 한다. 뒷골 큰아기는 어느 술집으로 돈벌이를 하러 갈 터인테, 까다롭게도 호적 초본에 친권자 승락서까지 들게 된다는 둥 요사이도 날마다 애처로운 소식만이 늘어갈 뿐이다. 그런데, 절네 마누라가 데려다 팔아먹었다는 점순이의 내력은 더구나 한 가락 구슬픈 이야기였다.

2

점순이의 어머니는 가늘골(細谷洞) 어떤 과수의 외딸로서 터밭 뙈기나마 홀어미의 손으로 부지런하고 알뜰하게 부쳐 먹고 사는 살림이라 어려서는 그리 굶주리거나 헐벗지 않고 고이 가꾸어 길렀었다. 아가씨 나이가 열다섯 살― 차차 색시꼴이 배이자 점순이의 외할머니는 데릴사위감을 삼 년이나 두고 고르는데, 앞뒷골 열두 동네 하고 많은 총각 중에서 석용(石用) 이라는 부모도 없고 봍일 곳도 없이 이 집 저 집 새경살이로 떠돌아다니는 떠거머리 늙은 총각 선머슴꾼을 제일 잘난 사람으로 뽑아 놓게 되었다.

석용이는 정말 착실한 신랑감이었다. 기골도 장대하거니와 심지도 무던하였다. 몸은 부지런하고 마음은 유순하였다. 온통을 들어 말하면 차리리 천치에 가까웁게 착하고 무능하고 뼈가 없는 ‘헤― 보’ 였었다. 일생 어느 때 누구에게 든지 그저 ‘헤―’ …… 좋은 일을 보나 나쁜 일을 보나 도대체 아무러한 말이 없었다. 그에게는 완급이 없고 세월도 없었다. 동살이 휜하면 날이 새었나 보다 미역국에 밥사발을 두둑하면 생일날인가 보다 그가 한 번이나 성내는 것을 동네 사람들은 본 일이 없었다. 만일 그에게 어떻게 엉뚱한 희망이나 야심이라고 있었던들 잘 되면 성현 못되어도 영웅은 갈 데 없이 되었을 것을…….

그러나, 그러한 기적도 나타나 보이지 않는 동안에는 그저 그를 ‘천황씨(天皇氏)’ 라고 동네 사람들이 별명을 지어 부를 뿐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그렇게 아주 천치 바보도 아닌 모양이었다. 가다가 뜻밖에 의사스러운 돈지(頓智)도 가끔 보인다. 한 번은 섣달 대목에 등지을 지고 밤늦게 넘어오다가 자하문턱에서 연말 경계하는 경관을 만나 성명을 잡히게 되었는데

“석용이요, 헤―.”

“무슨 자 무슨 자야?”

“무슨 자요? 네― 그건, 저― 문 안 들어가서 찾아와야 하겠습니다.”

“찾아오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정신 차려!”

언귀를 어울러 따귀가 철썩―. “헤― 암만 정신 차려 보아도 밭문서 잡히느라고 도장을 그만 문 안에다 갖다 둔 걸요 무얼.”

석용이가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얼마 동안은 천하 태평의 봄이더니, 그야말로 고목나무에 꽃이 피었다. 제비는 물을 차고, 청개구리 신상투할 제 너울너울 진달래……. 그러나 꿈결 같은 그 봄빛은 너무나 덧없이도 빨라 버렸었다. 강철이 닿은 곳은 가을도 봄이라 하더니 시월에도 상달 대동에서 산제(山祭) 모시던 날 저녁 나절에 석용이의 장모가 별안간 바람을 맞아 쓰러지게 되었다. 이어 말도 못하고 손발도 못쓰는 전신불수로 오줌똥을 받아내는 불쌍한 산 송장이 되어 누워 있게만 되었다. 그러다가, 그럭저럭 일곱 해 째 되는 해 봄에 그만 시들픈 목숨이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하건마는…….”

그 동안에 병구완 약 시세로 집터까지 다 올라가 버리었고, 열 냥 스무 냥 취해다가 쓴 장리돈도 모두 모으니 여러 백냥― 변지 변리 자리의 손주 변리까지 받으려고 악장을 치는 세속 인심이라, 별안간에 장모의 초상을 당한 석용이는 머리를 기둥에 때린 듯이 고개를 돌이킬 겨를도 없이 되었다. 너무도 불쌍한 장모의 죽음이었건마는 하는 수없이 거적 송장으로 밤 중에 석용이 혼자서 짊어져다 묻게 되었다.

가만히 눈물 속에서 점순이 외할머니의 육십 평생 마지막 길도 흐지부지 치르고 나니, 이제부터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그 날 그 날마다 입을 메꾸어 나갈 길도 아주 어둡게 캄캄하여졌다. “산 입에 설마 하니 거미줄 끼라.”

고 하지마는 아내는 벌써 첫아들 점용(點用) 이를 낳아 다섯 살이요, 다음 딸 점순이를 난 지도 겨우 몇 달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산후부조섭(産後不調攝)으로 누렇게 떠서 밤낮 드러만 누워 있는 몸이 되었고, 밥먹이 젖먹이 어린 것들은 죽어라 하고 아귀같이 보채기만 한다. 게다가 알뜰한 일가 친척도 변변히 없는 고단한 신세…….

두 손길 마주 잡고 앉았던 석용이는 하는 수 없이 허구헌 날 날품팔이로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버는 날은 돈냥간……. 죽이더라도 끓여 끼니를 이어가게 되지마는 그나마도 일자리가 없는 날이거나, 날이 궂은 때는 며칠식 그대로 솥 가시는 일도 없게 되었다.

3

이제 겨우 돌이 지난 점순이는 저녁이 되어도 자지를 않고 엄마 젖꼭지에서 매달려서 보채기만 한다. “오―아가 자자, 자. 자꾸 보채기만 하면 어떡허니. 에미가 무얼 먹은 것이나 있어야 젖인들 나지 않니!”

점순이 엄마는 하는 수 없이 무거운 몸뚱이를 억지로 일으키며 떨리는 한숨을 쉰다. 벌써 며칠째나 끓일 것도 없어졌다. 이 집 저 집에서 얻어온 청둥호박도 그럭저럭 다 삶아 먹었고, 그나마도 어린 것이 들이덤비어 죄다 퍼먹느라고 걸신을 하는 통에 엄마는 변변히 목구멍에 넘길 것도 없었다. 영양 부족― 거기다가 해산한 뒤에 소복할 겨를도 없이 이내 노상 드러만 누워 있게 되었으니 몸을 마음대로 추스를 수도 없고, 더구나 젖은 물밖에 날 까닭이 없었다.

“이제 아빠 들어오면 맘마 주지……. 그러나, 아버지는 어디로 돌아다니는자, 배가 오죽이나 고플라구…….”

겨울철이 들어서면서부터는 품팔이할 곳도 길이 끊어져서 점순이 아버지는 며칠째 집에만 드러엎드려 있었는데, 거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들어 있는 오두막살이까지 이제는 내쫓기게 되었다. 작년까지도 다섯 간 돌담집에 스무 남을 주의 감나무 밭뙈기나마 그들의 살림으로는 오붓한 천 냥인 듯싶었건마는 그나마도 빚에 치어 남의 손으로 한 번 너머가 놓으니 올 봄부터는 매삯 일 원씩의 사글세를 물고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매삯 일 원 그것인들 또박또박 치를 돈이 어디 그리 쉬웠으랴. 상년 겨울에 집 밭 문서를 이동쳐 갈 적에는 아주 형제골육이나 되는 것처럼 하도 몹시 정다웁게 구는 통에 그만 “설마……”

하고 모두 넘겨준 노릇인데, 시방 와서 보니 인정사정 도무지 모르는 도척이보다도 더 지겨웁고 야속하게 구는 흉악한 집 주인이었었다. 석용이는 벌이자리도 찾아 볼 겸 또 집 임자도 다시 한 번 더 만나 군색한 사정도 하소연해볼 겸 오늘 아침 일찍이 맨입으로 문 안에 들어갔다.

점순이 엄마는 우는 점순이를 헌 포대기 쪽에 싸서 두리쳐 업고 일어나 부르를 떨리는 다리를 비척거리며 바깥마당으로 나섰다. 방 안에는 점용이가 어린 것이 그만 시진해 늘어져 자니까 설움이 복받치는 어두운 가슴을 밖에 나와서 한 번 소리쳐 마음대로 터놓고 싶었던 까닭이다. 어둠 속에 잠긴 외딴 산마을은 죽음가이 몹시도 쓸쓸하였다. 점순이 엄마는 어둠을 향하여 얼마를 실컷 울고나니 속은 더 쓰려도 가슴은 다소 후련한 듯하였다. 점순이 아버지의 돌아오는 그림자는 아직도 보이지를 않는다.

소림사(小林寺)에는 불공이 들었는지 ‘꽝!’ 하는 쾌징 소리와 ‘또드락 똑독……“ 하는 목탁 소리가 이따금 멀리서 바람결에 들려온다. 점순이 엄마는 언뺨의 눈물을 씻고 우두머니 서서 목탁 소리가 들리는 곳을 일없이 바라다본다. 점순이는 어느 틈엔지 그만 잠이 들었다. 아마 울다 보채다 그대로 지쳐 버린것이다. 첫겨울의 산바람은 뼈가 저리게 품 속으로 스며든다. 점순이 엄마는 시르르 방으로 들어와서 점순이를 고이 내려 자리에 뉘였다. ”엄마 밥 좀…….“ 하고 헛손질을 하며 일어나는 점용이를 다시 달래어 뉘고 쓸쓸한 화로 옆에 가만히 웅숭구리고 앉았다. 멀리서 바람결에 아랫마을 개짖는 소리……. 등잔거리에 등잔불은 근심스럽게도 끄물끄물…… 맨재 화로에 불씨를 불어가며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 싸리문짝이 버썩하고 나서 저벅저벅 하는 귀에 익은 발자취…….

“옳지, 이제야 오는구나!”

석용이는 풀이 없이 들어와 앉으면서

“몹시 배고팠지? 어서 저거나 끓여 먹어.”

“그게 무어요.”

“술찌끼…….”

눈물이 앞을 서는 듯 목이 메어 말을 못하는 석용이……, 입은 옷은 갈기갈기 찢어 가지고 들어왔다.

“그런데 어쩐 일이유. 누구하고 싸웠수?”

석용이는 아무 대답없이 방바닥에 엎드려 느끼어 울 뿐……. “그런데 어쩐 일이야, 속시원하게 말이나 좀 하우.”

점순이 엄마도 울음이 금방 터질 듯하였다. 얼마 뒤에 석용이는 일어나 앉아 주먹으로 눈물을 씻고 나서 띄엄띄엄 굼뜨게 옮기는 사연은 대강 이러하였다.

아침에 집주인을 가게(집주인은 모물전을 한다)로 찾아가서 갖은 사정을 다 해보았으나 동냥은 주지 않고 쪽박만 깨뜨린다는 셈으로 됩다 ‘날부랑당 같은 도적놈’ 이라고 길길이 뛰며 불호령 ‘금년치 밀린 것 팔 원하고 명년치 선세로 십이 원, 도합 이십 원을 당장에 가져오지 않으면 내일이라고 문짝을 떼고 방고래를 헐어놓겠다’ 는 등 별안간에 산벼락이 내린 셈이었다.

그래도 석용이는 그대로 올 수가 없어서 속으로 ‘날 잡아잡수’ 하며 지칫거리고 앉았노라니까 ‘왜 남의 영업터에 와서 떠드느냐’ 고 애매한 책망을 하더니, 그 동안에 무슨 군호를 하였는지 거간꾼놈(모두 거간인 동시에 일수받이 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둘 웅기중기 모여들어서 잡담 제하고 밟고 차고 뭇매를 주어 끌어내린 것이었다. “그래, 이것 좀 보아…….”

석용이가 찢어진 저고리를 벗고 나니 먹구렁이가 감긴 듯이 울퉁불퉁 밭고랑이 져서 터져 부풀은 몸뚱이……. 남편과 아내, 잠들었던 두 어린 것까지 서로 어우러져 목을 놓고 울었다. 초상이 난 집같이…….

석용이는 평생 처음 원한과 분노의 열에 들뜬 뜬 눈으로 긴 밤을 새웠다. 창밖 감나무에서는 아침을 이르는 까막까치 소리……. “끓일 것도 없는 집에 아침은 일러 무엇하노!”

“이제는 꼭 죽었지. 엉덩이를 붙일 곳도…….”

“목구멍은 무엇으로 넘기우.”

“그야 움집이라도 있으면…… 벌어서 먹고 살지.”

“벌긴 무얼 벌어…….”

“어저께 술찌끼 얻어 온 금충교 바침술집에서도 두 동이들이 술장군을 세검정까지만 져다 주면 십 전씩 주마는데…….”

“그럼 하루에 몇 장군이나 지우.”

“다섯 장군이야 넉넉히 지니.”

조반이라고 돼지죽이나 다름이 없는 술찌끼 죽을 허겁을 하며 퍼먹은 뒤에 점순이 엄마는 몇 달 만에 비로소 머리를 가리어 빗고 점순이를 업고 나들이를 나섰다. 날은 저물었다. 점순이 엄마는 아직도 아니 돌아왔다. 석용이는 점용이를 무릎에 뉘고 눈만 꺼먹꺼먹 하고 앉았다. 등잔불은 기름이 잦아져 잠깐 끄물끄물 하다가 그대로 꺼져버렸다.

밤은 차차 이슥하여졌다. 어두운 방 안에는 찬 바람이 휘돈다. 어디서인지 다듬잇 소리가 은은히 들려온다. 가엾은 아내는 아직도 아니 돌아온다. 어쩐 일일까……. 이십 전도 어려운 이 판에 이십 원은 어디서나 혹시 무슨 일이나 생긴 것이 아닌가? 어디서 이렇게 늦는담! 석용이의 어지러운 머리가 금방 거꾸러질 듯이 한참이나 꾸벅거리는 동안에 모진 잠도 근심인 양 기나긴 밤도 다 새었다. 그런데 점순 엄마는? 때마침 문살이 훤한 방문이 부시시 열리며 점순이 엄마는 고달픈 걸음으로 들어온다. 석용이는 비로소 입을 ‘헤―’ 하고

“그 추운데 어디를 갔다가 이제 와……”

“옛수. 이만하면 됐지?”

방바닥에 널어진 십 원 지폐 석 장…….

“나는 오늘부터 점순이만 데리구 저 아래 절, 범허(泛虛) 스님이 시왕전의 행화 불사를 하는데 화주(化主)로 가 있을 터이니, 이 돈 가지고 집세도 주고 양식도 팔구 또 술장군 나르는 벌이도 부지런히 잘 해서 아무쪼록 점용이 하고 배고프지 않게 지내우.”

너무도 꿈속 같은 일이라 석용이는 어안이 벙법해서 아무말도 못하였다. 점순 엄마는 그 자리로 일어나서 되나가 버렸다. 그 뒤에 점순 엄마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범허와 점순이 엄마가 조석고개 밑에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미고 비공식에서 공식으로 사랑의 단꿈을 꾸게 된 지도 어느덧 벌서 열다섯 해이다. 그런데 점순이의 아버지인 석용이는 십 년을 하루가이 여전히 아무러한 말 없었다. 불평도 없었다. 오히려 불평은 커넝 들어있던 그 집도 그대로 배겨 살 길이 없어서, 몇 해 전에 아래 뜸새 마을로 거산을 해가지고 내려오게 되었다. 하늘에는은하수를 가로 놓고 베틀 할미와 짚신 할아버지가 서로 내려오게 되었다. 하늘에는 은하수를 가로 놓고 베틀 할미와 짚신 할아버지가 서로 건너다만 보고 있다더니, 탕춘대(蕩春臺) 로 감돌아 내리는 돌시내 하나를 가운데 두고, 여남은 걸음 상거에서 마주 건너다 보는 두 오막살이…….

북쪽에는 점용이 부자가 사는 집이요, 남쪽에는 점순이 모녀가 깃들인 보금자리다. 앞 개울에는 오작교 대신에 징검다리를 새로 늘어놓고 굶주리는 점용이의 집식구들이 때없이 오락가락하게 되었다. 나날이 변해가는 시속 인심이 그 동안에 더 다시 거악스럽고 야속해진 탓인지 석용이는 술장군을 져나르는 그 알뜰한 벌이 구멍도 자전거 배달 등쌀에 잃어버린 지가 오랫었는데, 다행히 가까운 몇 해 동안은 석용이 부자 모두가 서서 문 안 음식점의 돼지 밥거리를 거둬 모아 져다가 범허 화상 집에 바치고, 그 값으로 그럭저럭 입에 풀칠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일이 처음 생겼을 적에는 무슨 큰 야단이나 난 것처럼 위아래 동네가 모두 들끓어 떠들엇지마는 몇 달이 못가서 흐지부지 그대로 잠잠하여졌다. 이제는 아주 ‘그렇게 이상한 천생연분도 더러 있는것’ 이라고 슬쩍 돌려버리었고 “중 서방을 해 온 뒤에 배는 그리 굶주리지 않게 디었지마는 어린 점순이를 돈 백 원에 팔아먹게까지 되었으니 그런 가엾은 일이 어디 있수.”

하고 그들의 험궂은 팔자를 무척 동정하게까지 되었다.

더구나, 이 일은 십여 년 전……. 물문도 아직 허물어지지 전에 일이었으니까 “애꿎은 물문의 탓은 아니라”고 마을 사람들은 그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어 주기 위하여 발을 벗고 나서 애를 쓴다. 다만 옛날 얘기 책에도 ‘산 남편을 두고 후살이를 간’ 그러한 여편네가 더러 있었으니, 효녀 심청이의 옛일을 빌어다가 ‘점순이’를 ‘뺑덕이’로 ‘뺑덕 어머니’라 일컫게 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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