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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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이 처녀작이라 할 만한 것을 낸 것은 없습니다마는 어렸을 때, 내가 지은 글이 처음 활자로 인쇄되어 지상에 발표되었을 때, 끝이 없이 기뻤던 기억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분명히 열아홉 살 때였습니다. 그 때까지 집에서 한학 공부를 한다고 노(老)선생 한 분을 모시고 집에서 한서(漢書)를 읽을 때인데 우연한 기회로 최남선(崔南善) 씨의 《청춘(靑春)》잡지를 보고 흥미가 끌리어 ㅈㅎ이라는 익명으로 작문을 투서해 놓고는 마음이 퍽 조이었습니다. 신문에 광고 나기를 고대 고대하다 못하여 신문관(新聞館)으로 전화를 걸면 으레 당국에서 허가가 나오지 않았으니 더 기다리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신문지에서 광고를 보면 책이 우편으로 오기를 기다릴 사이 없이 뛰어나가서 종로 거리의 책점에 가서 학교에서 성적 발표를 기다리던 때나 조금도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맨 먼저 독자 문예난을 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거기에 자기 익명을 발견하였을 때, 무슨 기술(奇術)이나 본 것처럼 몹시 신기해 하면서 선 채로 내리 읽었습니다. 읽고는,

“내가 그 때 정말 이렇게 써 보냈던가?”

싶어하면서 집에도 책이 있을 것을 뻔히 알면서 기쁜 마음에 돈 주고 사 가지고 와서는 읽은 것을 또 읽고 또 읽고 하여 그 글자 한 자, 한 자가 무섭게 강한 친밀성(親密性)을 가지고 머리에 스며들어 덮고도 어느 쪽에 제목과 성명이 어떻게 씌어 있는 것까지를 눈에 번하게 보게 되기까지 반복해 읽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글을 반복해 읽을 뿐 아니라 그 책에 내 글과 함께 실려 있는 여러 사람의 글을 모두 정다운 친우의 편지 읽듯 몇 번씩 반복해 읽으면서 그 미지의 벗들을 만나 사귀었으면……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퍽 마음이 어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떄에 지상으로 성명을 익히고 편지로 사귄 사람으로 지금까지 사귀어 온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 외에 더 길게 말씀할 것은 없으나 내 손으로 학생 문예를 모아 소잡지(小雜誌) 《신청년(新靑年)》을 처음 간행하던 때와 그 후, 여러 해 뒤에 늘 뜻하던 《어린이》를 처음 간행할 때에도 그에 지지 않는 기쁨을 느끼어 세 번째 기뻤던 기억이 다 같이 사라지지 않고 있고 또 앞으로도 용이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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