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사랑의 선물/꽃 속의 작은이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볕 잘 드는 마당 꽃밭에 장미꽃 나무가 있고, 그 나무에 어여쁜 꽃이 함빡 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제일 아름답고 소담스럽게 핀 꽃 속에 조그마한 사람이 하나 살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이는 두 어깨에 날개가 돋혀서 발끝까지 내려오고, 몸은 작고 하여 여간하여서는 사람의 눈에도 얼른 띄지 않았습니다.

작은이는 그 속에 방을 정하고 침대를 놓고 사는데, 그 방 속에는 향긋한 향내가 가득하고 사면에 꽃 화판으로 된 벽은, 비단결보다 곱고 깨끗하게 비치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이의 얼굴이 이 세상 누구보다도 어여쁘고, 마음이 끔찍이 착해서, 아무 짓도 하지 않고, 그 향내 많고 따뜻한 꽃 속 집에서 날마다 날마다 평화롭게 놀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하도 볕이 따뜻하게 비치니까, 꽃 속의 작은이는 그 꽃잎에 나와 앉아서 가늘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볕을 쪼이고 앉았는데, 어디서 부스럭하는 소리가 났으므로, 작은이는 깜짝 놀라 바라보았습니다.

“에그! 사람들이 온다!”

정말 어여쁜 색시 한 사람과 잘생긴 남자 아이 한 사람이 손목을 잡고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오더니, 장미꽃 나무 앞에 와서 앉았습니다.

꽃 속의 작은이는 이 어여쁜 어린 남녀의 이야기하는 소리를 재미있게 듣고 있었습니다.

색시와 어린 남자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 친하게 놀면서 한시도 못 만나면 섭섭해 하는데, 색시는 무서운 악한 남자에게 잡혀 와서 꼼짝 못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악한 남자는 장차 그 색시를 자기 아내로 삼을 욕심이었습니다. 오늘도 넌지시 이 남자 아이가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암만해도 너와 나와는 이별을 하게 되었다. 그 못된 악한 놈이 너를 잡아다 두고 꼼짝도 못하게 하니 어떻게 하니…….”

하면서, 남자 아이가 탄식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다시는 서로 만나서 놀지를 못하게 되었으니 하는 수 없다. 어느 때까지든지 다시 만날 때까지 몸이나 성하게 있어라.”

하면서 가려고 하였습니다. 색시는 아무 말없이 자꾸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한참이나 울다가 눈물을 씻고, 좋은 장미꽃 하나를 꺾어서 남자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그 꽃을 남자에게 줄 때에 색시는 그 꽃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꽃은 색시와 입을 맞추더니 활짝 피었습니다.

그 때, 이 때까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작은이는 훌쩍 날아서 색시가 남자에게 주는 꽃 속으로 들어가 앉았습니다.

“잘 있거라.”

“잘 가거라.”

슬픈 인사 소리까지 자세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앉은 채로 그 꽃이 남자 아이 양복 가슴에 꽂힌 것도 알았습니다. 색시와 작별하는 남자의 가슴이 어찌 뛰는지 벌럭벌럭하고 가슴이 자꾸 뛰어서, 그러는 대로 꽃이 자꾸 흔들려 꽃 속의 작은이는 조용히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잠깐 지난 후에는 가슴이 진정된 모양이어서 조용하여졌습니다. 남자는 가슴에 꽂힌 꽃을 빼어 다시 손에 들고 깊은 소나무 숲 속으로 혼자 걸어가면서 자꾸 그 꽃을 입에 대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어찌 입술을 대고 누르는지 꽃 속에서 자고 있던 작은이는 눌려서 찌그러질 뻔하였습니다. 그 남자의 입술은 불같이 뜨거웠으므로, 그 기운이 옮아서 꽃잎까지 뜨거워졌습니다.

색시가 준 꽃에 입을 연해 맞추면서 남자 아이는 자꾸 걸어 어둔 숲 속 길로 깊이 들어갔습니다.

그 때, 별안간 사납게 생긴 남자 한 명이 어디선지도 모르게 달려들었습니다. 사납게 생긴 그 남자는 색시를 잡아다 기르는 악한 남자였는데, 손에 들었던 시퍼런 칼을 번개같이 번쩍 들더니 꽃에 입맞추는 아이를 한 번에 찔러 죽였습니다. 그리고, 악한은 죽어 넘어진 아이의 목을 베어 잘라서 따로따로 내어 가지고 느티나무 밑에 한꺼번에 파묻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파묻어 버리면 어느 놈이 알 수가 있을 테냐…….”

하고는,

“다시 이놈 때문에 그 애가 그렇게 못 잊어 하는데, 이젠 이놈을 없앴으니까 시원하다.”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어느 틈에 몹시 어두워졌으므로 악한 놈은 모자를 집어 쓰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때, 모자를 쓰기 전에 느티나무 잎사귀 하나가 머리 위에 떨어지자, 그 속에 있던 작은이가 얼른 그 나뭇잎에 똘똘 뭉쳐서 머리 위에 앉았는데, 그런 줄은 모르고 악한 놈은 그냥 그 위에 모자를 쓰고 돌아갔습니다. 모자 속은 몹시 캄캄하고 갑갑하였으나 작은이는 그래도 참고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올 때는 밤이 꽤 깊었습니다. 악한은 모자를 벗어 들고 색시의 방으로 먼저 들어갔습니다. 그 때, 색시는 침대 위에 누워 그리운 남자 아이를 꿈꾸면서 자고 있었습니다. 지금쯤 그 남자 아이는 자기가 준 장미꽃을 가슴에 꽂고, 숲속을 지나 고개를 넘고 넘어, 먼 길을 가는 줄고 알고 있었습니다. 선녀 같이 깨끗하고 복스러운 얼굴은 고요하게 잠이 들고, 다만 코 고는 소리가 가늘게 조용히 들렸습니다 악한 놈은 바싹 가서 고개를 숙여 그 잠자는 평화로운 얼굴을 들여다 보고 빙그레 웃었습니다. 얼마나 귀신같이 무서운 웃음이었겠습니까. 그 때, 작은이는 느티나무 잎과 함께 떨어져서 색시가 덮고 자는 이불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악한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 방으로 자러 갔습니다.

악한이 돌아가는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서, 아주 안 들리게 된 후에, 작은이는 나뭇잎에서 나와서 잠자는 색시의 옥 같은 하얀 귓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귀 속에서 마치 꿈 속에 이야기하듯이 착한 그 아이가 장미꽃에 입을 맞추면서 가다가, 깊은 숲 속에서 이 집 주인 악한의 칼에 찔려 죽은 이야기와 그 송장이 느티나무 밑에 파묻혀 있는 이야기까지 자세자세 하고 나서,

“내가 한 말은 정말입니다. 결코 꿈으로 알아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이 꿈이 아닌 증거로, 당신 이불 위에 느티나무 잎이 하나 있을 터이니 그리 알고, 그 느티나무 잎은 아이가 파묻힌 그 나뭇잎이 여기까지 온 겁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작은이가 정성껏 이야기한 이 말은 색시가 꿈을 꾸면서 자세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얼른 깨어서,

“에그, 나쁜 꿈도 꾸었다!”

하고 보니까, 과연 이불 위에 느티나무 잎이 있으므로 색시는 서러워 자꾸자꾸 울었습니다. 눈물은 마를 새 없이 자꾸 흐르고, 밥도 안 먹고 자꾸 울기만 하였습니다.

작은이는 들창이 열려 있으니까 어디론지 날아가면서 갈 수가 있었으나 색시가 불쌍하여 차마 떠날 수가 없으므로,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고, 들창 옆 장미꽃 핀 꽃나무 분이 놓여 있으므로, 그 장미꽃 속에 들어가 불쌍한 색시를 보고 있었습니다.

악한은 가끔가끔 색시를 들여다보고 가는데,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도 퍽 마음이 편하고 즐거운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나 색시는 도무지 입을 벌리지 않고 말 한 마디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날 밤이 되어서 색시는 넌지시 나와서, 숲 속으로 느티나무를 찾아갔습니다. 정신없이 한참이나 가서, 기어코 느티나무를 찾아 땅을 파 보았더니, 과연 사랑하던 아이의 송장이 목은 목대로 몸은 몸대로 따로 파묻혀 있었습니다. 색시는 송장을 붙들고 소리쳐 울었습니다. 울고 울고 자꾸 울면서 자기도 죽게 하여 달라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한참이나 울면서 눈물을 씻고 나서, 어떻게든지 이 가엾은 송장을 가지고 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송장을 가지고 가는 수는 없었습니다. 만일, 그 송장을 가지고 갔다가 들키거나 하면, 그 흉악한 사람이 또 무슨 짓을 할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생각다 못하여 그 몸은 다시 잘 묻어 주고, 떨어진 목만 가지고 가기로 하여, 가지고 왔던 보자기에 싸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넌지시 자기 방으로 들어와서는 제일 커다란 항아리 같은 화병에 그 목을 잘 파묻고, 그 위에 매화꽃 나무를 꺾어다 꽂았습니다.

“나는 갑니다. 나는 갑니다.”

하고, 장미꽃 속에 있던 작은이가 인사를 하였습니다. 불쌍한 색시의 울면서 하는 짓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훨훨 날아서 자기의 꽃집을 찾아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장미꽃은 모두 빛이 여위어 늘어지고 어떤 것은 벌써 지기를 시작하여, 서너 조각 꽃잎이 흩어져 잔디 위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아, 왜 이렇게 착하고 어여쁜 것이 일찍 죽게 되는가.”

하고, 작은이는 탄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는 수 없이 다른 꽃을 골라서 집을 정하고 옮기어 살기로 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작은이는 매일 아침때마다 악한의 집 색시방 들창 옆에 와서 색시의 안부를 보았습니다. 올 적마다 색시는 언제든지 매화나무를 꽂아 논 화병 옆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색시의 애끓는 눈물은 자꾸 흘러서 매화나무 가지를 적셨습니다. 이렇게 날마나 날마다 울고만 있으므로 색시의 그 화색 좋던 얼굴을 점점 파리해져 가고, 그 대신 매화나무 가지는 점점 생기 있게 커 갔습니다. 그렇게 커 가더니 이상도 하지요. 철도 아닌데 파란 싹이 돋고, 하얀 꽃봉오리가 맺혔습니다. 색시는 거기다가 입술을 대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악한은 그것을 보고 ‘어리석은 짓도 한다!’ 하고 생각하였으나, 하도 열성으로 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무슨 일로 저렇게 날마다 울고만 있으며, 무슨 일로 반드시 눈물을 화병 위에 흘리는가, 아무리 생각하여도 알 수가 없습니다.

악한은 그 꽃병 속에 자기가 죽인 아이의 얼굴이 파묻혀 있는 줄은 꿈에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날마다 이 말라 가고 얼굴이 파리해져 가는 불쌍한 색시가, 하루는 꽃 핀 화병에 고개를 기대고 기운 없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꽃 속의 작은이가 그 색시의 잠드는 것을 보고 귓속으로 들어가서, 꿈에 하는 소리같이 전에 귀여운 사내아이가 살아 있을 때, 장미꽃 나무 밑에서 얘기하던 일이며, 그 때 꺾어 준 장미꽃이 향내가 좋던 것과 그 꽃을 가지고 가면서 입을 자꾸 맞추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잠든 색시는 그대로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색시는 그대로 그 황홀한 꿈 속에 깊이 들어 버렸습니다. 색시의 혼은 점점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색시는 꿈을 꾸면서 조용하게 죽어 갔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를 따라간 것입니다.

희고 향기 좋은 매화꽃은 활짝 피었습니다. 그러나, 그 꽃나무에 날마다 눈물을 흘리던 색시는 벌써 이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대신으로 그 후에는 그 집 악한이 그 꽃을 보고,

“이것은 우리 색시가 정성껏 기른 꽃이니까, 그 색시가 두고 간 표적이다. 내 머리맡에다 갖다 놓고 보아야지…….”

하고, 자기방으로 옮겨다 놓고는 매일 그 꽃 향기를 맡았습니다.

장미꽃 속의 작은이는 화병의 매화나무의 꽃마다 찾아갔습니다. 그 꽃에는 꽃마다 혼이 있었습니다. 작은이는 그 꽃마다 찾아가서, 그 혼을 보고 예쁜 사내아이가 칼에 찔려 죽은 일과, 그 얼굴이 병 속에 파묻혀 있는 일과, 악한의 일과, 불쌍한 색시까지 따라 죽은 일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도 다 알고 있다.”

고, 혼은 고개를 끄덕이었습니다.

“우리도 다 알고 있다. 매화꽃은 우리 뿌리 밑에 있는 그 얼굴에서 나왔단다! 자세히 알고 있다. 염려 마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꽃의 혼들이 저희끼리 모여서 수군수군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면서 무슨 일인지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작은이는 또 이번에는 꽃에서 꿀을 모아가는 벌을 찾아갔습니다. 찾아가서는 어여쁜 사내아이 죽은 일과, 악한의 일과, 불쌍하게 죽은 색시 일을 모두 왕벌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왕벌은 대단히 노해서,

“그런 못된 놈은 내일 아침에 죽여 버려라!”

하고 벌 떼에게 명령하였습니다. 벌 떼는 모두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 밤이 색시가 죽던 그 날 밤이었습니다. 매화꽃 병이 그의 머리맡에서 냄새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꽃마다 활짝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꽃 속에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조그만 혼들이 창과 칼들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 창과 칼 끝에는 모두 독한 냄새가 묻어 있었는데, 혼들은 우선 악한의 귓속에 들어가서 그놈의 나쁜 짓한 죄적을 외우고, 사형을 집행한다는 소리를 지르고 다시 튀어나와서, 일시에 악한의 혓바닥을 창으로 찌르고, 칼로 찢고, 코를 쑤시고, 그리고는 다시 꽃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밤이 새고 날이 밝아서, 그 방 들창으로 작은이와 왕벌이 선봉 대장이 되고, 모든 벌 떼가 악한을 쏘아 죽이려고 몰려들어가 보니까 벌서 악한은 간밤에 죽어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침대 옆에 사람들이 모여 서서,

“이 매화꽃의 냄새가 너무 독하여 그 독한 냄새를 마셔서 죽었다.”

고 하고들 있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작은이는,

‘옳지! 그 꽃 혼들이 죽였구나!’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왕벌에게 하니까 왕벌은 좋아하면서, 여러 벌 떼와 함께 그 꽃나무를 에워싸고 훌훌 날았습니다.

사람들이 그걸 보고,

“에그, 웬 벌들이 이렇게 덤비나!”

하면서 벌을 쫓았습니다. 그러나, 한 마리도 달아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는 수 없이 쫓던 사람이 그 꽃병을 번쩍 들어 방 밖으로 내어 갔습니다. 그것을 보고 벌 한 마리가 얼른 가서, 그 화병 든 손을 쏘았습니다.

“에그, 따가!”

소리를 치고, 그는 화병을 떨어뜨렸습니다. 화병은 조각 조각으로 깨어졌습니다.

그 속에서 하얀 해골이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비로소 그 죽은 주인이 사람을 죽인 악한인 것을 알았습니다.

왕벌은 여러 벌 떼를 데리고 공중을 날며,

“악한 놈은 죽었다! 악한 놈은 죽었다!”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작은이는 춤을 추면서,

“악한 놈은 죽었다. 원수는 시원히 죽었다!”

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악한 놈은 죽었다! 색시 원수 갚았다! 신랑 원수 갚았다. 악한 놈은 죽었다.”

고 꽃 속에서 꽃의 혼들이 합창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