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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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저어 정옥이는 가방매고 학교에 가”

아침밥을 먹고 좀 가뻐서 방바닥에 그대로 드러 누워 있던 경애의 가슴은 이 소리에 바늘로나 찔리는 것처럼 뜨끔하였다.

‘저게 머 내자식인가 아무 때든 제 애비가 찾아가면 고만일걸’ 하고 아주 정떨어지는 생각을 하다가도, 아무리 외할머니가 흠살굽게하고 엄뚜드린다 하더라도 외삼촌의 변변치않은 벌이로 겨우겨우 입에 풀칠만 하다시피 살아가는 외가라 밥먹을 때면 눈칫밥을 먹이는 것 같고 조금만 시침한 소리를 들어도 눈총을 받는 것 같아 아무튼 제 간줄기에서 딸려진 자식이라 가슴이 뭉클하고 두눈에서 더운 눈물이 핑 돈다. 그럴적마다 시골 제 애비한테로 당장 내리쫓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났다. 허나 몇 번 편지로 데려 내려가라고 하여도 지금 같이 사는 새로 얻은 여자가 뭐라고 했는지 더 좀 맡아두라고 하면서 종시 안 데려갈 뿐만 아니라 혜숙이년조차 한사하고 외할머니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며 어머니 역시 외손녀에게 애미 이상으로 정을 쏟아 사부주가 드러맞어 오늘날까지 미적미적거려 내려온 것이다.

한 달동안을 두고서 학교 논란을 신이기듯 논이기듯 하다가 건넛집, 혜숙이의 동무요 같은 동갑인 정옥이만이 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혜숙이는 민적이 없어서 그만 미끄러져 버리고 말았다. 그래 개학날인 오늘에 정옥이가 호기있게 우쭐거리며 학교에 가는 꼴을 혜숙이가 바깥에 놀러 나갔다가 부러운듯이 한참동안 넋잃고 바라보다 말고 안으로 뛰어들어와 무슨 신기한 것이나 발견한 듯이 또는 하소연 하는 듯이 어머니를 불러 정옥이가 학교 가는 것을 말한 것이다.

드러누웠던 경애는 일어나 앉으며 방문둑겁다지에 기대 선 혜숙이를 바라보았다. 제또래를 둘셋씩 윽박지르는 왈패요 부끄럼과는 아주 담을 쌓고 누구 앞에서나 깔딱대고 수선만 피는 말괄량이로 소문난 혜숙이지만 지금만은 평상시와 걸맞지 않게 새치무례한 그 모양이라든가 얼굴에는 밖에서부터 부러워하던 기색이 아직까지 가시지 않은 것을 본 경애의 가슴은 전기나 통한듯이 찌르르하게 쓰라렸다. 그 모양이 측은하고 가엾어 보였다.

“이제 너도 학교 보내주마”

“뭘, 거짓말…난, 다 안다”

“알기는 뭘 다 알어”

“할머니가, 너는 민적이 없어서 학교 못 들어…”

“예이 요년! 꼴베기 싫다. 어서 나가 놀아라.”

경애가 이렇게 소리를 버럭 지르는 바람에 가뜩이나 서먹서먹하게 서서 풀 없이 하던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무안당한 사람처럼 슬며시 돌아서서 방문 밖으로 나가는 뒷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억제할 수 없는 더운 눈물이 앞을 가려 그만 고개를 돌이켰다.

경애는 참으로 진정할 수 없는 자기의 가슴을 두 손으로 지그시 누르고 있다가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따금씩 꿈틀거리는 만삭된 배위로 슬며시 손이 내려가 옷 위로 통통한 배를 어루만지니 기막힌 생각이 더한층 복받쳐 올라 방 한구석에 볼품없이 쌓아 논 이불귀퉁이에 픽 쓰러져 얼굴을 폭 파묻고 흑흑 느껴가며 울기를 시작하였다.

어린 것 하나도 부모를 잘못 만나 남과 같이 먹이지도 못하고, 입히지도 못하는 것도 원통하고 원통한데 더구나 가르칠 시기에 가르치지 못하고 배울 때 배워주지 못하고 그만 때를 놓쳐 눈뜬 장님을 만들고마는 비극을 눈앞에 뻔히 보면서 빚어내고 있는것도 사람으로서 그 태도 뜻 있는 부모로서 차마 못 볼 노릇인데 지금 이 뱃속에 들어 앉은 새로운 생명 조차 불운한 혜숙이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경우를 만들성 싶으니 차라리 두생명이 함께, 아니 자기만 죽는대도 뱃속의 것은 저절로 힘 안들이고 죽을 것이니까 당장 죽어 없어져 버리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난다.

경애는 구차한 집안에 태어나서 자시로 가난한 살림살이에 찌들고 게다가 첫 번 만난 남편과 처음부터 서로 성미가 맞지 않아 겉으로 남보기에는 정답고 구순한듯해도 실상은 밑으로 흐르는 알력이있어 그게 큰 원인이 되어 결국 헤어지고 말았지만 그와 살림이라고 할 때도 비할 때 없는 갖은 고생을 다 하였고 지금 같이 사는 둘째 번 남편과도 단칸방을 얻어 가지고 망측하게 살림이라고 버린거 조차 지탱할 수 없어 혼자 아이날 수 없다는 핑계로 자기 혼자만 오라범집에 더부치기로 와 있는 신세이지만 지금처럼 죽고 싶은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이처럼 섧게 울어본 적도 일찍이 없었다.

비록 개인 생활로는 궁하나 오직 강하고 씩씩하게 조금도 지지 않고 희망에 살면서 남을 위하여 사회를 위하여 명랑한 명일을 위하여 맘과 몸을 정성껏 받쳐 온 것의 보수라고는, 애당초부터 보수같은 것을 바라고 한 노릇은 아니지만, 지금와서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매 애쓴 보람이란 오직 그들의 아내가 구식이라는 이유, 또는 이상이 안 맞는다는 조건으로 민적도 가르지 않고 엉거주춤한 채 그대로 헤어져있는 사나이와 단지 이상이 같고 사회적으로 하려는 일과 하는 일이 같음으로 그것을 더 크게 생각하였기 때문에 개인 문제를 그리 대수롭지않게 여기고, 두 번 다 예식도 하지 않고, 민적도 따지지 않고 어린 걸, 낳아 사생자 그대로 어물어물 그저 살아본 것이 결국 애비다른 민적상에 오르지 못하는 사생아를 이미 하나, 그리고 머지 않아 또하나를 만들어내는 기막힌 기계. ‘눈물겨운 비극을 빚어내는 애미로서 자식에게 대하여 차마 못할 노릇을 시키는 망쇠년이 되고 말았구나’하고 마음먹으매 이 사실은 가난보다도 더 앞으로 죽음보다도 더 쓰라리다 서자로라도 입적을 시켜가지고 데려다가 공부를 시키도록 만들었으면 좋으련마는 무슨 심사인지 그는 그렇게 하기를 즐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지금 생각하고보니 ‘자기는 오직 과도기의 한낫 희생밖에 더 안된 가엾은 여성이 되고 말았구나’하는 안타까운 심회에 못이겨 더한층 소리를 높여 울었다.

한시 한때를 쉬지 않고 애를 부득부득쓰며 고생살이를 고생으로 여기지 않고 가난과 싸우면서 그래도 여러사람을 위하여 무엇을 해보겠다고 하루를 살아도 뜻있게 살아보겠다고 악파듯 갈팡질팡 헤매던 여자의 몸으로서 힘에 벅찬 과거를 더듬어 올라가보니 지금의 자기 처지와 환경이 새삼스럽게 더욱 외로운 듯 하고 쓸쓸해져 마음이 점점 부지할 수 없게 군성거려지며 천갈래 만갈래 생각이 어수선하게 꼬리를 물고 머리에 떠오른다.

서로 동지라고 부르던 여러 사내 동무들은 모조리 자기의 주위를 떠나고 말았다. 그와 한번 갈린 뒤로, 사실 그와 내가 헤어지고 만 것은 누구나 뜻밖으로 생각하였을 것이고, 속모르는 사람은 병들어 죽게된 더구나 갈 곳도 변변치않은 불쌍한 남편을 배반하였다고 천하에 죽일년이라고 욕할 것은 정한 노릇이다. 더구나 동지애로 만나 갖은 고생을 다 겪어가며, 참 그때를 돌이켜보면 눈물겨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으니 쌀이없으면 나무가 없고, 나무가 없으면 쌀이없으며 반찬이라고는 상위에 두가지를 올려놔 보기가 드물고 밖에 나갈래야 입을 옷이 없어 한달이고 두달이고 간에 죽치고 들어 앉아서도 본래 한낱, 시시거리는 소리한번 들어보지 못하던 여러 동무들이라 아주 갈리고 말았다는 소문을 간접으로 듣거나 자기한테 직접 듣고는 모두가 뜻밖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동무는 길에서 보아도 외면을 하고 누구는 편지로 욕을 써 보내기도 하고 누구는 자기를 모델삼아 소설로 여우같은 년이라 하였고, 누구는 서방에 미쳐서 보고, 약해진 남편을 박차 버렸다고 소문을 내기도 하였다. 나는 그때에 남편이 병들었다고 그를 내댓든가? 아니다. 병들기 전에 갈리기로 작정되어 그로 말미암아 더 컸을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자기는 오늘날까지 아무러한 변명이고 간에 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비난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고, 또 한가지는 우리들 사이를 잘 알아 갈리지 아니치 못할 부득이한 사정과 서로 양해하고 헤어지게까지 이르는 경우를 아는 사람은 잘 이해할 것이고 또 누구보다도 당자가 더 잘 알것이니까 구태여 누구에게 대해서나 변명하려 하지 않았다.

단지 섭섭한 것은 그처럼 친하던 여러동무들이 이제는 아주 딴사람같이, 심하면 원수와 같이 영영 멀어지고 만것이다. 어째서 깊은 사정은 자세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한쪽으로만 몰아쳐 죽을 년이니 망할 년이니 음란한 년이니하고 비난만하는 까닭이 어디있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아마 남자는 상처를 할라치면 사흘이 멀다하고 후취 고르기에 골몰하는 대신 여자만은 과부로 일생을 살아야 옳은 일이고 뒷 공론이 없는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또는 여자 말은 단 한번이라도 다른 남자와 관계하면 죄가 되어도 남자가 탁 터놓고 첩을 둘 셋씩 두는 것은 예사요. 하룻밤에 몇 여자와 오입을 하여도 무방한 것같이 그들도 이런 생각이 들어, 그리고 여자라고 한손 치우쳐 가지고 자기만을 마음대로 찢고 까부르는게 아닌가?

자기만은 발려내고 저쪽으로만 달려가는 이유가 어디있는지 암만 알려도 도제 알 수 없다. 그로 말하더라도 자기와 헤어진지 얼마 안 되어서 버젓하게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고 있지 않는가? 선후를 말할 게 아니지만 자기보다도 먼저 그렇게 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뭇 사람이 자기만을 나쁘다고 거들떠 보지도 않고 뒷공론을 맘대로하며 있는 말 없는 말을 늘이고 보태서 흉한 소문만 내며 심지어 음란한 잡년으로 돌려 세상에 거처를 못하게 만드는 심사를 암만 애써 알려고 해도 모르겠다.

아무리, 남의 흉이 좋아라면 신이나 보기를 일삼고, 남의 말하기를 알뜰히 좋아하는 세상이지마는 이번 일은 과시 야속하고 억울하였다.

자기가 만약 돈있는 사람과 관계를 해가지고 살림을 벌였더라면 이번에는 나 아는 사람이란 사람은 모조리 타락한 년이니 허영에 뜬 여자니 돈없는 사내를 박차고 봉을 물었느니 그렇게 고생을 하더니 이제는 호강을 좀 해보려구 장괘서방을 얻었느니하고 갖은 잔소리를 지금보다 몇배 이상으로 찌지고 발리고 빈정거리고 욕하고 심지어 비단옷을 입고 길거리 가는 자기를 만나면 동물이라고 온몸에다 서슴지 않고 끼얹었을 것이다.

사실 그러한 유혹이 아주 없지도 않았다. 한때는 그런 일이 있기 때문에 여러 동무들 사이라든지 또는 헤어지기로 작정한 뒷일이지만 갈라고만 그에게까지 의심을 산적도 있었고, 자기 자신도 한때는 솔깃해 하여 고생살이에 진절머리나서 이럴까 저럴까하고 망상거려 본적도 사실 없지 않았다. 허나 그때는 세상의 여론이 어려운것 보다도 자기의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렇지만 몇몇 동무는 그와 헤어질 무리에 내가 돈있는 그이에게로 가려는 마음을 먹고 그와 아주 헤어지려는 심산이라고 믿은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영영 갈리고만 그로서도 그처럼 생각했을런지 모른다. 대개는 그렇게 생각들 하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그렇게 했던 편이 내 자신을 위하여서는 좋은 일이오 영리한 짓이 되었을른지도 모른다.

먼저 살림살이와 똑같은 길을 되풀이 하듯이 밟아온 궁한생활! 예전처럼 입고 나갈 옷 한가지가 변변치 않아서 한동안씩 죽치고 들어 앉았는 가엾은 신세라든지, 당삭이 닥쳐와도 포대기 한입, 살낏한낫, 기조기하나 장만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해산제구는 물론이요 미역 한오라기 준비해 놓지 못한 이 궁상을 생각할 적마다 무능한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일주일 전부터 돈 십원 구하러 다녀도 어제까지 빈손 쥐고 풀없이 돌아오는 남편이 사실 가엾기도 하고 밉살머리스럽기도 하였다. 새삼스럽게 돈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게되어 아차 실수하였구나 돈 있는 그 사람과 결혼을 했으면 이런 고생을 또 안 할걸! 아무리 훌륭한 생각을 품어 남을 위하여 일하고 사회를 위하여 몸을 바치려고하나 당장 먹지않고, 입지않고, 또한 살아가는데 반드시 알아야만 할 것은 쓰지 못하고서 어떻게 살림을 지탱해 나갈 재주가 있느 냐? 하지만 자기로서 돈있는 사람을 얻으면 허영에 들뜬 년이라고 침뱉을 것이요, 비록 가난하나 서로서로 이해가 있고 그래도 뜻있게 살아보겠다고 살림살이를 벌이면 안으로는 궁기가 끼어 고생을 떡 떼먹듯하고 밖으로는 그년이 서방에 기사가 나서 폐인같은 병든 남편을 떼처버리고 되는대로 날탕패 서방을 맞았다고 변보듯 흉보듯 떠들어대니 도대체 어떻하란 말인지?

도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이 요지막 자기의 심경이었다.

또 한 가지 야속하고도 섭섭한 것은 먼저 남편과 자기의 둘 사이를 누구보다도 자세히 잘 아는 계성씨가 정초에 자기 어머니께 세배차 삼년만에 비로소 처음 찾아온 때 자기를 보더니 그의 태도와 말씨가 아무리해도 서먹서먹한 품이 그 전과 판이하게 달라 이상한 눈치를 보이면서도 종시 지금 남편과 자기의 사이를 모르는척하고 내색도 내지 않았다. 자기와 단둘이만 앉아서도 다른 이야기만 하였지 지금 남편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끄집어내지 않았다.

이 년만에 거기서 나와 며칠 안되었지만 발이 너른 그로서는 자기들의 나이를 그처럼 전혀 모를리 없건만 어쩐 일인지 끝끝내 화제에 올리지 않는다.

사실 그때 자기로서는 지금 우리들의 사이를 자초지종 낱낱이 이야기하고 싶었다. 먼저 남편과 서로 갈려야만 될 경우에까지 이른 부득이한 사정을 알알이 샅샅이 아는 그에게 지금 새로 얻은 남편의 이야기를, 그와 어찌되어서 서로 살게까지 되었다는 말을 자세히 하고 싶었으나 그는 우리들이 지금 살림하고 있는 줄을 번연히 아는 듯하면 서로 끝끝내 그 말만은 입밖에 내지 않고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그 뒤에는 길거리에서도 한번 만나보지 못하였다. 물론 어머니댁에도 그후에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자기를 오해하고 여러 가지로 도와주어 사실 친오빠 이상으로 또는 신뢰할 만한 동지로 굳게 믿던 계성씨조차 자기를 오해하고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내버리는구나 싶어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자기를 다른 사람들처럼 욕하고 비방하고 헐뜯지는 않을 터이지만 자기를 자주 만나지 않는 것만은 여간 섭섭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바로 요 며칠 전 계성씨한테서 편지 한장이 왔다. 물론 어머니집으로 온 것이다.

엎드려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느껴가며 울고있던 경애는 불현듯 그 편지가 다시 보고 싶어 어느 책 틈에 끼워 있던 것을 찾아 내려고 머리를 들며 앉은 채 미적미적 책놓인 앞으로 가서 있음직한 책갈피를 뒤적인지 얼마 만에 그 편지를 찾아내 가지고 먼저 앉았던 자리로 다시 돌아와 읽기를 시작했다.

너무나 적조하였습니다. 어머님과 오빠 두분 다 안녕하십니까? 풍편에 듣자니 또 어머니댁에 가 계신다고요. 그리고 입고 나갈 치마하나 저고리 한 입 변변히 없어서 오래 외출도 못 하셨다구요. 언뜻 생각하니 박해군과 살던 그 시절을 또 되풀이하시는 거 같애 그때 지내시던 일이 눈앞에 환하게 살아납니다. 그때도 장하였지만은 지금도 역시 장하십니다. 이 말을 절대로 빈정대는 허튼 소리로 오해 하지 마십시오. 내가 오래간만에 경애씨에게 편지를 쓰게된 것은 꼭 한가지의 부탁이 있는 까닭입니다. 명심해 들어주십시오.

박해군과 살던 때보다 몇 곱절 고생살이를 하더라도 유봉군과는 또 헤지지마십시요. 끝끝내 갈리지 마시오.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내가 그안에 있을 때 일이다. 경애씨와 유봉군이 같이 산다는 것을 처음 알 게 될 때 경애씨가 실수 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유봉군으로 말하면 이혼도 할 수 없는, 하려 들지도 않는 등처가였고, 게다가 나 알기만도 두 번씩이나 어떤 여자와 살림을 하다가 어느 편에 잘못이 있었는지 깨끗하게 갈리고 만 그가, 어느 때까지 경애씨의 사랑만이 물리지 않고 싫증나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증하겠습니까. 그래서 실수하였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뒤 거기를 나와서 몇몇 사람한테 들은 말인데 경애씨가 뭘 보고 유봉군같은 인간을 택했을까 어디로 ? 보더라도 박해군만 못하지 않은가. 재주로나 사회적 명성으로나 박해군을 따를 수 있나… 이렇게 저울질하기도 하고 또 누구의 말은 ‘머지않아 갈릴 것일세 유군이 본시 계집에 있어서 오래 살려는 성질이 아니며 설령 이번만은 오래살려는 마음이 있더라도 가난이 훼방 칠 것일세’ 이런말을 들을 때 내자신도 어느 편이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떠한 트러블과 알력으로 헤어진다손 치더라도 경애씨가 앞으로 영원히 독신생활을 하지 않는 이상 세 번째나 사내를 공공연하게 걸어드렸다면 나부터라도 음분한 여자로 생각해 평소에 존경하던 마음이 없어질 것이며, 세상사람들은 반드시 갈보와 같다느니 노나지 같다느니 밀매음과 마찬가지니하고 멸시하며 욕하고 흉보면서도 그들은 서로서로 은근히 경애씨를 호리려고 유혹의 손을 펼른지도 모릅니다. 두렵지 않습니까? 무섭지 않습니까? 만약 경애씨 편에서 유봉군을 박차는 날이면 이번에는 틀림없이 궁한 살림과 그처럼 씩씩하게 싸우다가 아무리 강한척해도 약한여자라 여지없이 가난에 패북한걸로 밖에 더 알려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애당초에 먼저번 경험도 있고 하니 유봉군같은 구차한 사람을 구할게 아니라 이렇게 말하면 성격상 결함으로 맘이 맞지 않아 참고 견디다가 헤어진 줄을 번연히 알면서 남을 놀리느라고 일부러 그런다고 하실는지 모르지만 크면은 베천하는 부호,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의식주에 그리 궁색지 않은 사람을 구하여 몸을 맡길것이지 이상이니 주의니하고 껄떡대다가 개인생활에 있어서 가뜩 잘못해 여자로서 자칫하면 저지르기 쉬운 몸까지 망치고 마는 정말 남한테 손가락질을 받으며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면 전후를 한번 깊이 생각해볼 일이 아닌가 합니다. 만일 그렇게 사람으로서 아주 타락해 버리고 만다면 차라리 개인 생활이나 유족하게 호강스럽게 하다가 일생을 마치는 편이 훨씬 낫지 않습니까. 허나 경애씨는 물론 이 길을 취하지 않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애초에도 돈 없는 유봉군을 취한 줄 나로서 짐작하는 바이니 유군이 사실 세상에서 아는바와 같이 하잘 것 없는 변변치못한 사람이요 무능력자라고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둘 사이만이 서로 지혜를 주고받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또는 가난과 싸우면서 참, 경애씨는 몇차례나 직업 부인이 되었던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두사람이 아무 짓을 해서라도 다만 뜻있게 살기 위하여 하나가 죽기 전에는 행여 끝끝내 헤어지지 마십시오. 부탁입니다.

편지를 단숨에 내리읽고난 경애는 저번 처음 읽을 때에는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였지만 지금와서 다시 읽어보니 헤어지지 말고 끝끝내 살라는 구절이 몹시 온당치 않았다. 허나 마지막 <하나가 죽기 전에는> 한 구절만은 퍽 맘에 들었다 . 쉽게 죽으라든가, 자결하라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전에는 또다시, 자기가 오래살면 살수록 교육 못 시킬 성한 불구자를 하나씩 더 늘릴 뿐이 아닌가하고 생각해보니 자지러지게 몸서리가 처진다. 그렇다고 편지말 맞다나 지금 남편을 또 버리고 다른 사내를 차마 또다시 얻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 손에 들었던 편지를 꾸깃꾸깃해 손아귀에 넣고서 무엇을 결심한 듯이 윗니로 아랫입술을 지그시 악물어 편지든 채 주먹을 힘 있게 쥔다.

마침 이때에 마당에서는 어머니와 오라범댁 목소리가 난다. 우물로 김치거리를 씻으러 나갔던 그들이 이제야 돌아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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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사흘만에 경애는 아들을 낳았다. 그리하여 어린애도 별 이상 없이 날로 충실하고 산모도 약한품 봐서는 퍽 건강한 편이다. 젖도 나올만치 나왔다. 아이 아버지는 물론이고 첫 번으로 외손자를 본 어머니와 오라범 내외도 다들 좋아하는 모양이다. 혜숙이년도 얼굴에 갓난애 귀애하는 기색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경애만은 조금도 기쁘거나 좋은 줄 몰랐다. 아들이라는 사실이 그로 하여금 더 한층 마음을 괴롭히고 그늘지게 하고 초조하게 만들뿐이었다.

이따금씩 며칠전 혜숙이가 학교에 못 가 하소연하던 말 소리가 귀에 징한 듯하고, 어미핀잔에 멀쓱해서 풀없이 쫓겨나가던 그 가여운 뒷모양이 당장 보는것처럼 눈앞에 선하게 떠오른다.

그럴적마다 반드시 핏덩이 어린 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가벼운 한숨을 길게 내쉬지 아니치 못하였다. 그리고는 괴로웠다. 가슴이 아팠다. 끝없이 우울해졌다.

속모르는 집안 식구들은 단지 산후에 몸이 불편해서 기색이 좋지 못한가보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날이 지나감에 따라 어린 것이 커갈수록 경애의 숨은 고민도 남몰래 커갔다.

두이렌가 지나고 삼칠일이 머지 않은 어느 날 밤이다.

경애는 모진 맘이 들었다가 무엇에 놀란 것처럼 소스라쳐 버렸다. 불현듯 이미 결심한 바를 당장 실행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억제할 수 없이 복받쳐 오른다.

내가 죽으면 애미없는 이 핏덩이가 뭐되니 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자 죽고 싶은 마음이 좀 잦아지는 것 같다. 다음 순간!

‘뱃속에 끼고 죽인 것 보다는 낫지.’

이렇게 입안으로 가만히 중얼거리며 벌떡 일어났었다. 윗목에서는 그의 어머니가 혜숙이를 끼고서 세상모르고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곤다. 쌕쌕하고 가벼운 숨을 내쉬며 곤히 자는 혜숙이를 바라다 볼 때 불시에 측은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치밀어 오르면서 두 눈에는 더운 눈물이 핑돈다.

‘몹쓸 애미도 많다.’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이런 말이 입밖에 나왔다. 그리고는 가벼운 한숨을 좀 길게 내쉬었다. 경애의 눈은 다시 어린애에게로 돌려졌다. 죄없는 어린 생명이 자기 죽은 뒤에 즉시 죽지 않고 내내 산다면 갖은 고생을 다 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가 막혔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현기증이 나타난다. 그래 두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서 잠깐 진정한 뒤에 머리맡에 놓인 만연필과 편지를 집어 들었다. 벽에 기대앉아 한쪽 다리를 무릎 위에다 올려서 꺾고 왼손에는 편지를 놨다. 그리고 바른손에 든 만연필을 편지지 위로 올렸다. 그는 이리하여 지금 유서를 쓰려는 심산이었다.

넋 잃은 사람처럼 한참동안 멀거나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는 듯 하다가 마침내 한자도 쓰지 못하고 그대로 만연필을 방바닥에 놓는다.

그가 처음 생각하기는 세사람에게 한 장씩 쓰려고 마음먹었다. 한 장은 지금 남편에게 그리고 또 한 장은 먼저 남편에게 다음 한 장은 계성씨에게……이렇게 생각했다가 속이 떨려 안 써질 뿐 아니라 죽은 뒤에 세상이 뭐라든, 또는 제 자식들을 어쩌든 뉘 아니 하는 마음이 들어 유서쓰려는 것을 그만두기로 작정하였다. 그리하여 편지지마저 내려놓고서 잠든 어린 것의 얼굴을 또다시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때마침 싱긋싱긋 웃으며 배냇짓을 한다. 지금의 그 웃음은 경애에게 있어서는 칼날이었다. 가뜩이나 미어지는 듯한 그의 가슴을 더 괴롭게 만드느라고 사정없이 에이는 듯한 날카로운 비수와 마찬가지였다. 경애는 강잉히 쓰라린 가슴을 억제하면서 깨지도 않고 포근히 잘자는 어린애 입에다 젖꼭지를 틀어 넣었다. 마지막으로 젖 한모금이라도 먹여 보겠다는 애미로서의 안타까운 생각에….

경애는 다시 일어나서 혜숙이 옆으로 가까이 가 앉았다. 이 날 이때까지 고생만 시키던 변변치않은 애미지만 당장 무슨짓을 하려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세상모르며 잠만자는 딸년이 무척 측은하였다. 눈칫밥을 먹여가며 옷 한자기를 남과 같이 해 입히지 못하고 외가에서 잔뼈가 굵어진 혜숙이를 내려다 볼 때 경애의 가슴은 저리고 앞이 터지는 것 같다. 눈물 방울이 이내 양쪽 볼 위로 주르르 흘러 옷깃에 떨어진다. 그는 손등으로 두눈을 비빈 뒤에 허리를 약간 굽혀 혜숙이 이마 위에다 해쓱한 그의 입술을 좀 떨리는 그대로 가만히 갖다댔다.

금시로 눈물이 또 쏟아질 것 같아 자는 얼굴에 눈물 방울이 떨어지면 누가 보기 급하게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손으로 도화빗같이 발그스름 꽂힌 혜숙이의 한쪽 볼을 살짝살짝 문질러 보았다 그는 그때만치 자식에게 대하여 그윽한 애정을 느껴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어머니로서의 자식에게 대한 지극한 애정은 그의 죽을결심을 약간 무디게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을 잠깐 맛보았다. 허나 그의 한번 굳은 결심은 용이하게 풀어질 줄을 몰랐다.

경애는 벌떡 일어섰다. 서서는 자기 어머니를 내려다보며 이내 걱정만 시키다가 마지막에는 어머니 앞에 자결하는 망난이같은 불효의 딸년을 용서해 달라는 듯이 두손을 마주잡고 합장배례나 하는 것처럼 공손히 그리고 정성껏 묵례를 하였다. 그리고나서는 두 어린 것을 번갈아 내려다 보았다. 그의 두눈에는 또다시 눈물이 스물거려 앞을 가린다.

경애는 방문을 열려고 문끈을 잡고서도 또다시 고개를 돌이켜 곤히 자는 두 생명을 정이겨운 안타까운 눈초리로 차례차례 둘러보았다. 경애는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소름이 쭉끼친다. 이것은 죽음의 공포를 느낌이었다. 이때에 더구나 자기를 붙들기만 하면 아무리 철썩같은 결심을 하였더라도 안 죽을성 싶었다. (사실 요때만 피하면 그로 하여금 자살을 내내 면하였을른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어머니가 깨지 않고 그대로 자기만 하고 있는 것이 무척 야속하였다. 원망스러웠다. 경애는 한동안 주저주저 하다가 방문을 살그머니 열고서 마루로 나가 방문을 다시 닫으려다가 방안에 누워있는 어머니의 얼굴로부터 혜숙이의 얼굴! 그리고 아랫목에 동그마니 혼자누운 어린 것의 꼴을 차례로 쏘아 보았다. 자기의 숨소리가 자기 귀에도 역력히 흥분된 모양이다.

그는 눈물이 어리어 더 들여다 볼 수 없다. 그래 이를 악물고 방문을 소리 없이 살며시 열고서 마루 끝으로 사뿐사뿐 걸어왔었다.

경애는 며칠 전부터 유념해 두었던 양잿물 담긴 탕께를 마룻구녕 한편 구석에서 손쉽게 집어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서 이것저것 생각할 나위도 없이 덩이가 풀어져 물이다 된 것을 그대로 들이 마시고 말았다. 그 양잿물은 아이 낳던 전날 빨래를 하려고 그의 어머니가 혜숙이를 시켜 사온 것인데 아이를 낳기 때문에 오늘까지 빨래를 못해 그 양잿물이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그것도 사위한테서 십전을 얻어 사온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경애는 외마디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마루 위에 쿵소리를 내며나가 자빠졌다. 이 바람에 꿈속에서 헤매이고 있던 집안 식구들은 모조리 놀라 깨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그의 어머니가 뛰어 나왔고 뒤미처 건너방에서 그의 오빠와 오라범댁이 눈이 휘둥그레 뛰어나왔다. 혜숙이도 어쩐 영문인지 모르고 할머니를 부르며 마루로 나왔다. 오직 핏덩이만이 깨지 않고 여전히 자고 있을 뿐이다. 밖으로 나온 그들은 마루 끝에 놓인 탕께를 보고 경애가 양잿물을 먹었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경애는 벌써 혀가 오그라져 말을 못하고 먹은 양잿물이 속으로 퍼져 곤두박질을 치기 시작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이게 웬일이냐! 이게 웬일이냐!”

할 뿐이었다.

그의 오빠는 부지를 못해 몸을 비비꼬는 경애의 머리를 들고 어머니와 오라범댁은 한다리씩 들어서 건넛방으로 들여다 눕혔다. 그래도 조심성스러워 그들은 어린애 있는 방을 피한 것이다.

경애는 여전히 펄펄뛰며 두 주먹으로 쾅쾅소리가 나도록 가슴을 두드린다.

어머니는 며느리를 시켜 비눗물을 풀어오라고 재촉하고, 아들에게는 어서 빨리 의사를 좀 청해 오라고 일렀다. 그들이 다 나간 뒤에 자기만은 안절부절 못하고 온방안을 미친 사람처럼 날뛰며 헤매는 딸의 손을 잡고서 같이 따라다니며,

“이게 웬일이냐! 이게 웬일이란 말이냐!”

할 뿐이다. 이 광경을 한구석에 서서 바라보는 혜숙이는 다만 엄마와 할머니를 번갈아 부르며 무지듯키 울고만 있을 뿐이다.

얼마동안에 둘이서 입을 벌리고 비눗물을 퍼 넣었다. 뒤미처 검붉은 피를 토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더욱더욱 차마 보고 들을 수 없는 고민을 계속하였다. 조금 지나니 기운이 지쳐서 아까처럼 펄펄 뛰지는 못하고 그대로 축늘어져 오직 사람으로서 차마 들을 수 없는 신음하는 소리만이 차차 높아갈 뿐이다. 피는 여전히 계속해 토하고 있다.

얼마간 지나고 의사가 왔다.

이미 쏟아논 피와 진구좇는 것을 엉거주춤하고 서서 내려다 보고는 너무많이 먹어서 손댈 길이 없으며, 매우 구하기 어렵다는 말을 연해하면서 대강대강 의사의 본분을 다하는 척만 하고 그만 돌아가고 말았다.

경애가 양잿물을 먹은지 이틀만에 스물 다섯을 일기로 그의 몸은 이상을 이루기 전에 다만 공부 못 시킬 눈뜬 장님인 사생아를 둘씩이나 남겨 놓고, 혀가 오그라져 아무에게도 유언한마디 못하고서 그만 원통히 죽고 말았다.

이리하여 그는 과도기에 완전히 희생되고만 것이다. 지루한 과도기를 하루라도 속하게 막아 보려고 자기 자신이 남자만 못지않게 애쓰며 날뛰다가….

1936.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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