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HappyMidnight/조선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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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교회사 (Histoire de le̓́glise de Corée) 제2권 256쪽부터

1842년은 유럽과 극동 간의 관계의 역사에 있어서 유명한 해로 길이 남을 것이다. 처음으로 유럽인들, 중국식 표현으로 하자면 동방의 야만족들이 천자(天子)의 제국, 중국과 직접 맞대결한 것이었고 또한, 겉만 번지르 할 뿐, 오만과 부도덕으로 가득 찬 거인의 연약한 모습에 믿기지 않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최초의 영중 전쟁으로서, 아편 전쟁이라는 이름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두 단어만으로 그 원인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영국 상인들은 인디아에서 준비된 아편을 중국인에게 판매하여 큰 이득을 맛보았다. 그 반대편의 중국인들은 마취제의 사용으로 점점 치명적인 열정에 몰두해 갔다. [...]

257쪽 제3단락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1842년 2월, 그는 마카오에 있는 외방전교 수도회의 재무 담당관 리브와 씨에게, 당분간 그와 함께할 한국인 청년 학생을 그에게 맡겨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것은 그가 한국에 갈 경우에 통역자로서 역할을 할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리브와 씨는, 그로써 수년 전부터 중단된 한국 교회와의 연락이 다시 이어지기를 희망하며, 그 제안을 기쁘게 수락하였다. 한국인 학생 둘 중 하나인 안드레 김은 에리곤 호(號)에 승선하였다. 그는 프랑스어를 매우 조금밖에 못하여 그의 직무를 제대로 하기는 어려웠고, 라틴어를 한국어로 통역해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258쪽) 메스트르(Maistre) 씨가 그를 동행하였다. 그는 또한 상황이 되기만 하면, 그 자신이 한국에 침투하려는 임무도 가지고 있었다.

앙브르와즈 메스트르(Ambroise Maistre) 씨는 1808년 9월 19일, 안시(Annecy) 교구 앙트르몽(Entremont)에서 태어났다. 수년간 성무(聖務)를 연마한 후, 서른한살의 나이에 그는 이교도의 구원에 헌신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외방전교회의 신학원에 들어갔다. 그는 시메옹 베르뇌(Siméon Berneux)라는 다른 사제와 함께 1840년 1월 8일 프랑스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