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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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군! 나는 지금 그대가 일찍이 와서 본 일이 있는 C사(寺)에 와서 있는 것이다.

그때 이 사찰 부근의 지리라든지 경치에 대해서는 그대가 나보다 잘 알고 있겠으므로 여기에 더 쓰지는 않겠다. 그러나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숙사는 근년에 새로이 된 건축이라서 아마도 그대가 보지 못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 청렬(淸洌)한 시냇물을 향해서 사면의 침엽수 해중(海中)에서 오직 이 집안은 울창한 활엽수가 우거져 있기 때문에, 문 앞에 손이 닿을 만한 곳에 꾀꼬리란 놈이 와 앉아서 한시도 쉴 새 없이 노래를 불러 주는 것이다. 내 본래 저를 해칠 마음이 없는지라, 저도 그런 눈치를 챘는지 아주 안심하고 아랫가지에서 윗가지로, 윗가지에서 아랫가지로 오르락내리락 매끄러운 목청이란 귀엽기도 하려니와, 그 노란 놈이 꼬리를 까부는 것이 재롱스러워, 나에게 날아오라고 손을 내밀면 먼 가지로 날아가고, 어디선가 깊은 산골에서 뻐꾹새 소리가 들려 오곤 하는데, 돌틈을 새어 흘러가는 시냇물이 흰 돌 위에 부서지는 음향이란, 또한 정들일 수 있는 풍경의 하나이다.

S군! 그대와 우리들의 친한 동무들이 이 글을 읽을 때는 아마 나는 이 산사(山寺)를 떠나서 어느 해변이나, 또는 아무도 일찍이 가본 일이 없는 도서(島嶼) 속에서 있을지도 모르고, 내가 지금 붓을 들고 앉아 있는 책상 앞에는, 도회로부터 새로운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이 모여 앉아 화투를 치거나, 마장을 하는 따위의 다른 풍속이 벌어지리라, 그러므로 이런 생각을 하면 모처럼 얻은 오늘의 유쾌한 기억을 더럽힐까 소름이 끼칠 것만 같다.

S군! 그러면 내가 금번 이곳에 온 이유가 어디 있는가도 생각해 보리라, 그러나 이유란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은 내 서울을 떠날 때, 그대에게 부친 엽서와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행이란 이유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고 사무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행을 한다는 것은 여정(旅情)을 느낄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날씨가 개면 개었다고, 흐리면 흐렸다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분다고, 봄이면 봄이라고, 여름은 여름이라고, 가을은 가을이라고, 이렇게 나는 여정을 느껴 보고 산으로 가고자 하면 산으로, 바다로 가고자 하면 바다로 가는 것이다, 그도 계획을 한다거나 결의를 한다면 벌써 여정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니깐, 한번 척 느꼈을 때는 출발이다. 누구에게 알려야 한다든지, 또 여장(旅裝)을 차려야 한다면 그는 벌써 뜻대로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 출발시를 앞두고 그대에게 엽서 한 장을 쓴다거나, 내 아우에게 전화를 걸어서 지금 어디 가는데 언제 서울에 온다고 하면, 그것도 나에겐 일종의 여정이지 결코 의무의 수행은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속마음으로 어딜 좀 가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을 때는, 나는 벌써 여행중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짚신도 제 짝이 있는 법이라. 나와 같이 이런 사람도, 뜻이 비슷한 사람이 있어 마침 만나게 되자 그 C라는 동무가 바다로 가자는 말을 하였고, 나도 그러자고 의론이 일치하자 간다는 것이 도시로도 미완성이고, 항구로도 설익은 곳이라, 먼 데서 오신 손님을 대접하는 데는 아직 몰풍정(沒風情)하기 짝없었다. 그래서 하룻밤을 지나고 표연히 차에 오르니, 웬만하면 서울로 바로 오는 것이 보통이겠는데, 여기에 나라는 사람의 서울에 대한 감정이란 또한 남달리 델리키트한 것이 있어, 그다지 수월한 것이 아니란 것은 마치 명가집 가식이 성격에 못 맞는 결혼을 하고 별거를 하다가, 부득이한 사정이라도 있어 때때로 본가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될 그때의 심경과 방불한 것이다.

그래서 될 수만 있으면 술집에라도 들어서 얼글하게 한잔하고 오듯이, 나 역시 서울이 가까워 오면 슬쩍 옆길로 들어서서 한참 동안이라도 딴청을 떠보는 것인데, 금번 이 산사를 찾아온 것도 그 본의가 명산 대천에 불공을 드리고 타관 객지에서 괄시를 받지 않으련 게 아니라, 한잔 들고 흥청거려 보자는 수작이었는데, 웬걸 와서 보니 동천(洞天)에 들어서면서부터 낙락장송이 우거진 사이, 오줌 냄새가 물씬 나는 산협을 물소리 들으며 찾아 들면, 천년 고찰의 태고연한 가람이 즐비하고, 북소리 둥둥 나면, 가사 입은 늙은 중들은 읍하고 인사하는 풍습도 오랫동안 못 보던 거라, 새롭고 정중한 것이었다.

S군! 나라는 사람이 이순간 이곳에서 무엇을 느꼈으리라고 그대는 생각하는가? 속담에 절에 오면 중이 되고 싶다는 말이야 있지마는, 설마한들 내가 세상의 모든 사물과 일시에 인연을 끊고 공산나월(空山羅月)에 두견을 벗삼아 염불 공부로 일생을 덧없이 보낼 리야 있으랴마는 그래도 생각해 볼 것은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영원히 남에게 연민은커녕 동정 그것까지도 완전히 거부할 수 있는 비극의 '히어로'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결국 되는대로 살아지는 것이 가장 풍자적이고, 그러므로 최대의 비극은 최대의 풍자와 혈연(血緣)을 가지는 동시에 아주 허탈한 맛이 있는 것이다.

바로 이때다. 나와 동행한 C는 산비탈을 내려오며 목가(牧歌)를 부르는 것이었다.

아마도 '치를 알프스'를 오르내리는 양치는 노인을 생각해 낸 모양이었다. 석양도 재를 넘고 시냇물도 찬 기운이 점점 더해 오면 올수록 사하촌(寺下村)의 뜻뜻한 산채국이 여간한 유혹이 아닌 것이다. S군! 우리가 평소 도시에 살면 생활의 태반은 관능(官能)의 지배를 받는 것이지마는 이런 산간 벽지로 찾아오면 거의는 본능의 지배를 만족히 알면 그만이다.

S군! 이런 말은 이제 새삼스레 늘어놔 보았자 그대가 그다지 흥미를 느낄 것은 아니라 그만두거니와, 내가 여기 와서 진정 생각해 보는 것은 해당화다. 옛날 우리 향장(鄕莊)에는 화단에 해당화가 많이 심겨 있었는데, 내가 어릴 때 그 꽃을 꺾어서 유리병에 꽂아 놓으면 내 어린 아우들이 와서 그것을 제 책상 위에 가져다 놓는 것이고, 나는 다시 내 책상 위로 찾아오면 그것이 그만 싸움이 되고 했는데, 지금쯤 생각하면 어릴 때 일이라 도리어 우습긴 하나, 오늘 이곳에서 해당화가 만발한 것을 보니 내 동년(童年)이 무척 그립고저워라.

S군! 그런데 이곳 사람들을 보아 하니 산간 사람이라 어디나 할것없이 순박한 맛은 그리 없는 바 아니나, 기왕 해당화를 심으려면 그 맑은 시냇물가로 심었으면 나중 피는 놈은 푸른 잎 사이에 타는 듯한 정열을 찍어 붙여서 얕은 그늘 사이로 으수이 조화되는 계절을 자랑도 하려니와, 먼저 지는 놈은 흰 돌 위에 부서지는 물결 위에 붉은 조수(潮水)를 띄워 가면 얼마나 아름다움 풍정(風情)이겠나? 하물며 화판(花瓣)이 산 밖으로 흘러가서 산외(山外)에 어자(漁子)가 알고 오면 어쩔까 하는 공구(恐懼)하는 마음이 이곳 사람들에게도 있을 수 있다면, 아마 나까지 이 글을 써서 산외에 있는 그대에게 알리는 것을 혀의스리 하리라. 그러나 S군 ! 역시 산맹(山氓)들이라 밉기도 하려니와 사랑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오늘은 이만 하고 뒷산 숲 사이에 부엉이가 밤을 울어 새일 동안, 나는 이곳에서 꿈을 맺어 볼까 한다.

그러나 다음 내 글이 그대에게 닿을 때는, 벌써 나는 다른 산간이나 또는 해상에 별과 별 사이의 거리를 헤아려 보면서 지금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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