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삼국사기/권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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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물 이사금[편집]

9년(364년)[편집]

9년 4월 여름 왜병이 크게 다다르니, 왕이 그를 듣고 그들을 대적하지 못함을 두려워하여 수천 개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병사의 옷을 입히고, 토함산 밑에 놓았다.부현 동쪽 평야에 용사 1천명이 잠복하였다.왜인의 무리들이 직진하니, 복병들이 나와 그들을 격퇴하여 왜인들이 크게 패하여 도주하니, 그들을 추격하여 죽였더니 그들의 수가 다하더라.

11년 (366년)[편집]

11년 봄 3월 백제인이 내빙하였다. 여름 4월 홍수가 나 산 13곳이 무너졌다 十一年 春三月 百濟人來聘[1] 夏四月 大水 山崩十三所

13년 (368년)[편집]

13년 봄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어, 좋은 말 두 필을 바쳤다.

18년(373년)[편집]

백제의 독산(禿山)성주가 사람 삼백명을 이끌고 와서 투항하였다. 王納之 分居六部 百濟王移書曰 兩國和好 約爲兄弟 今大王納我逃民 甚乖和親之意 非所望於大王也 請還之 答曰 民者無常心 故思則來 斁則去 固其所也 大王不患民之不安 而責寡人 何其甚乎 百濟聞之 不復言 夏五月 京都雨魚

26년 (381년)[편집]

二十六年 春夏旱 年荒民飢 遣衛頭入苻[2][3] 貢方物 苻[4]堅問衛頭曰 卿言海東之事與古不同 何耶 答曰 亦猶中國 時代變革名號改易 今焉得同

37년(392년)[편집]

三十七年 春正月 高句麗遣使 王以高句麗强盛 送伊湌大西知子實聖爲質

38년(393년)[편집]

三十八年 夏五月 倭人來圍金城 五日不解 將士皆請出戰 王曰今賊棄[5]舟深入 在於死地 鋒不可當 乃閉城門 賊無功而退 王先遣勇騎二百 遮其歸路 又遣步卒一千 追於獨山 夾擊大敗之 殺獲甚衆

46년(401년)[편집]

四十六年 春夏旱 秋七月 高句麗質子實聖還

47년(402년)[편집]

四十七年 春二月 王薨

주석[편집]

  1. 原本 誤刻. 三國史節要·鑄字本에 의거 수정.
  2. 原本 「符」. 三國史節要·鑄字本에 의거 수정.
  3. 原本 誤刻. 三國史節要·鑄字本에 의거 수정.
  4. 原本 「符」. 三國史節要·鑄字本에 의거 수정. 朝·權·烈 「符」.
  5. 原本 「弃」. 棄의 古字. 以下 同.
  1. 실성 이사금
  2. 눌지 마립간
  3. 자비 마립간
  4. 소지 마립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