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권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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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13

수충정난정국찬화동덕공신 개부의동삼사 검교태사 수태보 문하시중 판상서이예부사 집현전대학사 감수국사 상주국(輸忠定難靖國贊化同德功臣開府儀同三司檢校太師守太保門下侍中判尙書吏禮部事集賢殿大學士監修國史上柱國)으로 퇴임한 신하 김부식(金富軾)이 임금의 말씀을 받들어 편찬하다.

고구려본기 제일 시조 동명성왕(始祖東明聖王) 유리왕(琉璃王)

동명성왕[편집]

시조 동명성왕은 성이 고(高)씨, 휘는 주몽(朱蒙)이다. 또는 추모(鄒牟), 중해(衆解)라고도 한다 이에 앞서, 부여왕 해부루(解夫婁)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제사를 지내어 후사를 구하였다. 그가 탄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러, 큰 바위를 보고 〔말이〕 눈물을 흘렸다. 왕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굴리게 하니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금빛 개구리 모양이었다. 혹은 ‘개구리’가 아니라 ‘달팽이’라고도 한다. 왕이 기뻐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하늘은 나에게 내려준 자식이로구나!” 하였다. 이에 맡아서 그를 키웠다. 이름하여 '금와(金蛙)'라 부르고 그가 장성하자

爲太子 後其相阿蘭弗曰 日者天降我曰 將使吾子孫立國於此 汝其避之 東海之濱有地 號曰迦葉原 土壤膏腴宜五穀 可都也 阿蘭弗遂勸王 移都於彼 國號東扶餘 其舊都有人 不知所從來 自稱天帝子解慕漱 來都焉 及解夫婁薨 金蛙嗣位 於是時 得女子於太白山南優渤水 問之 曰 我是河伯之女 名柳花 與諸弟出遊 時有一男子 自言天帝子解慕漱 誘我於熊心山下鴨邊室中私之 即往不返 父母責我無

태자로 삼았다. 후에 그의 재상 아란불이 이르되, "하루는 하느님이 내게 말씀하시기를 '장차 나의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울 것이니 너는 여기를 피하여라. 동해에 가섭원이라 불리는 땅이 있다. 토양이 기름지고 비옥하여 오곡을 기를 만하니 도읍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아란불이 왕에게 권하니 도읍을 이곳으로 옮겨 나라 이름을 동부여라 하였다. 그곳의 옛 도읍에도 사람이 있어 어디로부터 왔는지는 모르나 자칭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는 이가 와서 도읍한 적이 있었다. 해부루가 붕어하고 금와가 후사를 이었다. 이때 〔금와는〕 태백산 남녘 우발수에서 한 여자를 얻어, 〔사연을〕 물으니 〔그 여자가〕 말하기를, "저는 하백의 딸이고 이름은 유화입니다. 여러 자매들과 함께 놀러 나왔습니다. 때마침 한 남자가 있었고 스스로 말하기를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 하였습니다. 〔그가〕 저를 유혹하여, 웅심산 아래 압록강변에 있는 방 중에서 관계를 가졌는데, 그 뒤 〔그는〕 가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버이께서 질책하시기를, 제가

媒而從人 遂謫居優渤水 金蛙異之 幽閉於室中 爲日所 引身避之 日影又逐而之 因而有孕 生一卵 大如五升許 王棄之與犬豕 皆不食 又棄之路中 牛馬避之 後棄之野 鳥覆翼之 王欲剖之 不能破 遂還其母 其母以物裹之 置於暖處 有一男兒 破殼而出 骨表英奇 年甫七歳 嶷然異常 自作弓矢射之 百發百中 扶餘俗語 善射爲朱蒙 故以名云 金蛙有七子 常與朱蒙遊戯 其伎能皆不及朱蒙 其長子帶素言於

중매도 없이 , 〔외간〕 사람을 따랐다 하니, 마침내 우발수에 귀양와 살게 된 것입니다.” 금와가 이를 괴이하게 여기어 방 속에 〔그 여자를〕 가두고 닫았다. 해가 그곳을 비추어 〔그 여자는〕 몸을 움직여 이를 피하였다. 햇빛이 다시 따라가, 비추어, 이로 인하여 잉태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그 크기가 다섯 되 쯤 되었다. 왕이 이를 개 ·돼지에게 버렸으나 모두 먹지 않았고, 또 길 가운데 버렸으나 소와 말이 피하였고, 후에 들에 버렸더니 새가 날개로 덮어주었다. 왕이 이를 쪼개고자 하였으나 깨뜨리지 못하고 마침내 그 어미에게 돌려 주었다. 그 어미가 이를 물건으로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한 남자 아이가 있어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 골격과 외모가 뛰어나고 기이하였다. 겨우 나이 일곱 살에 철이 들어 남달랐고,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니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의 속어에 활 잘 쏘는 이를 주몽이라 하므로, 그것이 이름이 되었다. 금와에게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언제나 주몽과 더불어 놀았으나 모두 그 재주가 능히 주몽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 맏이 대소(帶素)가 왕께 말하여 이르되,

王曰 朱蒙非人所生 其爲人也勇 若不早圖 恐有後患 請除之 王不聽 使之養馬 朱蒙知其駿者 而減食令痩 駑者善養令肥 王以肥者自乘 痩者給朱蒙 後獵于野 以朱蒙善射 與其矢少 而朱蒙殪獸甚多 王子及諸臣又謀殺之 朱蒙母陰知之 告曰 國人將害汝 以汝才略 何往而不可與 其遲留而受辱 不若遠適以有爲 朱蒙乃與烏伊摩離陜父等三人爲友 行至淹水 一名盖斯水 在今鴨東北 欲渡無梁 恐爲追兵所迫 告水曰

“주몽은 사람에게서 나지 않아 그 사람됨이 날래므로 만약 일찍 도모하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두려우니 그를 제거해 주소서.” 라 하였다. (그러나) 왕이 듣지 않고 그로 하여금 말을 기르게 하였다. 주몽이 준마[駿]를 알아내어 먹이를 줄여 여위게 만들었고, 둔하고 느린 말을 잘 길러 살지게 하였더니 왕이 살진 놈은 자신이 타고 여윈 놈은 주몽에게 주었다. 그 뒤로, 들판에 사냥하러 갔는데 주몽이 잘 쏘므로 그 화살을 적게 주었으나 주몽이 한 살에 쏘아 죽인 짐승이 심히 많았다. 왕자와 여러 신하들이 또다시 그를 죽이려고 꾀하였으나 주몽의 어머니가 이를 몰래 알아채고 알려 이르되, "나랏사람들이 장차 너를 해치려 한다. 너의 재주와 꾀로써 어느 곳인들 갈 수 없겠느냐? 만약지체하여 머무르면 욕을 보게 될 것이니 멀리 가서 장래를 기약하는 것만 못하다." 하였다. 주몽은 이에 오이 · 마리 · 협부 등 세 사람과 벗이 되어 지엄수로 가서 개사수라고도 하며, 지금은 압록강 동북쪽에 있다. 건너고자 하였으나 다리가 없어 쫓아오는 병사이 다가올까 두려워져서 물에게 이르되,

我是天帝子 河伯外孫 今日逃走 追者垂及如何 於是 魚鼈浮出成橋 朱蒙得渡 魚鼈乃解 追騎不得渡 朱蒙行至毛屯谷 魏書云 至普述水 遇三人 其一人着麻衣 一人着衲衣 一人着水藻衣 朱蒙問曰 子等何許人也 何姓何名乎 麻衣者曰 名再思 衲衣者曰 名武骨 水藻衣者曰 名默居 而不言姓 朱蒙賜再思姓克氏 武骨仲室氏 默居少室氏 乃告於衆曰 我方承景命 欲啓元基 而適遇此三賢 豈非天賜乎 遂揆其能 各任以事

“나는 천제의 아들, 하백의 외손이오. 오늘 달아나고 있는데, 쫒는 자들이 거의 다가왔으니 어찌하리오?”라 하였다. 이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이루어 주몽은 건널 수 있었고 물고기와 자라는 이내 흩어져 쫓아오던 기병들은 건널 수 없었다. 주몽이 모둔곡에 이르러 위서에서는 ‘보술수에 이르러’라 이른다. 세 사람을 만나니 그 한 사람은 삼베옷을 입었고, 한 사람은 장삼옷을 입었고, 한 사람은 수초로 만든 옷을 입었다. 주몽이 물어 이르되, “그대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입니까?”라 하자, 삼베옷 입은 사람이 말하기를, “이름이 재사(再思)라 이르오.”라 하였고, 장삼옷 입은 사람이 말하기를, “이름이 무골(武骨)이라 이르오.”라 하였고, 수초옷 입은 사람이 말하기를 “이름이 묵거(默居)라 이르오.”라 하되, 성은 말해주지 않았다. 주몽은 재사에게 극(克)씨, 무골에게 중실(仲室)씨, 묵거에게 소실(少室)씨 성을 주고 곧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네는 큰 명을 받아 으뜸이 되는 터를 열려고 하는데 마침 이러한 세 어진 분들을 만났으니 이 어찌 하늘이 내리지 않았으리오? 하고 그 재능을 헤아려 각각 일을 줌으로써 임무를 맡기고

與之 倶至卒本川 魏書云 至升骨城 觀其土壤肥美 山河險固 遂欲都焉 而未遑作宮室 但結廬於沸流水上居之 國號高句麗 因以高爲氏 一云 朱蒙至卒本扶餘 王無子 見朱蒙知非常人 以其女妻之 王薨 朱蒙嗣位 時朱蒙年二十二歳 是漢孝元帝建昭二年 新羅始祖赫居世二十一年甲申歳也 四方聞之 來附者衆 其地連靺鞨部落 恐侵盜爲害 遂攘斥之 靺鞨畏服 不敢犯焉 王見沸流水中 有菜葉逐流下 知有人在上流者 因以獵往尋 至沸流國 其國王松讓出見曰

함께 졸본천에 이르렀다. 위서에 이르기를 승골성에 이르렀다 한다. 〔주몽이〕 그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과 강이 험하고 굳은 것을 보고는, 나아가 도읍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미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어, 다만 비류수 위에 임시거처를 짓고 거기에 머물러 국호를 고구려(高~)라 하였는데 이는 고(高)씨를 성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혹은 주몽이 졸본부여에 이르렀는데 왕에게 아들이 없어 주몽을 보고는 비상한 사람임을 알고 그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고, 왕이 죽자 주몽이 후사를 이었다고도 한다. 이때 주몽의 나이는 스물두 살, 한 효원제 건소 2년, 신라 시조 혁거세 21년 갑신년(기원전 37년)이다. 사방에서 듣고 와서 따르는 자가 많아 그 땅이 말갈 부락에 닿았는데 (그들이) 침임하고 노략질하여 해가 될까 두려워, 마침내 그들을 물리치자, 말갈이 두려워서 복종하고, 감히 범하지 않았다. 왕이 비류수 가운데 나물과 이파리가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는 상류에 사는 사람이 있음을 알고서 사냥을 하다 찾아가 비류국에 이르렀다. 그 나라 왕 송양이 나와서 보고는 이르되,

동명성왕[편집]


王見沸流水中 有菜葉逐流下 
知有人在上流者 因以獵往尋 至沸流國 
其國王松讓出見曰 
寡人僻在海隅 未嘗得見君子 
今日邂逅相遇 不亦幸乎 
然不識吾子自何而來 
答曰 我是天帝子 來都於某所 
松讓曰 我累世爲王 
地小不足容兩主 
君立都日淺 爲我附庸可乎 
王忿其言 因與之鬪辯 
亦相射以校藝 松讓不能抗

"과인이 바다 끝 후미진 곳에 살아 일찍이 군자를 본 적이 없는데
오늘날 우연히 만나게 되었으니 또한 다행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나의 아들 그대는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 수 없구나!" 하자
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느님의 아들, 아무 곳에 와서 도읍을 하였습니다." 하였다.
송양이 이르되, "나는 대를 이어 왕이 되었고,
(이곳은) 땅이 좁아 두 주인이 (함께) 발을 딛고 얼굴을 맞댈 수 없네.
자네는 도읍한 날이 얕으니 나의 속국이 되는 것이 어떠한가?" 하자
왕이 그 말에 성을 내고 말다툼을 벌이고,
또 재주를 견주어 서로 활을 쏘았는데 송양이 능히 막아낼 수 없었다.


유리왕[편집]

  1. 유리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