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황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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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마씨(사마정 자신)가 이르기를, 태사공(사마천을 높임말)이 사기를 지었는데, 옛날과 현재, 군신(君臣), 마땅히 위로는 천지개벽으로부터, 아래로는 당대에 까지 기록을 하는것이 한 국가의 머리부터 꼬리(즉,처음부터 끝)까지 역사를 다 기록하였다 할 것이다. 이제 마땅히 기록해야할 삼황(三皇)을 빠뜨리고, 오제(五帝)로써 머리로 삼아 사기를 기록하였으니, 《대대례(大戴禮)》에 있는 '오제덕'편으로써 바르게하였다. 또 오제가 세상에 다 펼친것은 황제로부터 그후 얼마 되지 아니하여 밑에서 한 것이니, 그러므로 인하여 (삼황본기를)오제본기의 머리로 한 것이다. 실제의 사정에 있어서는 삼황본기가 이미 돌아온 것은 서책이 드물게 갖추어졌음이라. 그렇기는 하지만 군신의 비롯함, 교화의 우선함이, 이미 옛 역사에서 논하여졌는데,모두 빠지는 것은 합당한 것이 아니다. 근대에는 황보밀이 제왕대기를 지었다. 다 가지런히 하여 삼황 오제 연대를 지어, 대개가 삼황 이후의 일을 논하고 있다. 이 또한 과히 멀지 않은 예전의 한 증거로, 이제 아울러 선택하고 모아 지으니 삼황본기다. 비록 깊숙한 맛이 없이 얕게 보충하지만, 애오라지 없었던것을 채움이라.

— 사마정(司馬貞)

태호(太皞) 포희씨(庖犧氏)는 풍성(風姓)이다. 수인씨(燧人氏)를 대신해 하늘을 이어 왕이 되었다. 어머니는 화서(華胥)이다. 뇌택(雷澤)에서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성기(成紀)에서 포희씨를 낳았다. 용의 문양으로 몸에 치장을 하였고 머리는 사람 머리 그대로 했다.

살펴보건대 복희씨의 풍성은 <국어>에서 나왔다. 화서의 아래부분은 제왕세기에서 나왔다. 뇌택은 연못 이름이다. 곧 순임금이 고기잡던 곳의 땅이며, 제음에 있다. 성기 또한 지명이다. 살펴보건대 천수(天水) 성기현이 있다.


성인의 거룩한 덕을 지니고 있었다. 우러러 하늘의 상(象)을 관찰하였고, 구부려 땅의 법을 관찰하였고, 널리 새와 짐승의 무늬를 관찰하여, 그 놓인 처지와 더불어 알맞게 하였다. 가까이는 자신에게서 상을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상을 취하여, 비로소 팔괘를 획하여, 신명의 덕을 통함으로써, 이로써 만물의 실상(實象)을 나누었다. 서계(부호)를 만들어 결승의 정치를 대신하였다. 이제야 비로소 장가들고 시집가는 제도를 하게 되었다. 암수 한 쌍의 사슴가죽으로써 예물로 하였다.

살펴보건대 초주(譙周)의 《고사고(古史考)》를 보면, 복희씨가 가취(장가들고 시집가는것)제도를 정할 때, 여피(한쌍의 암수 사슴가죽)로써 예물로 하였다.


그물을 매어서 이로써 사냥하고 고기잡는 것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복희씨라고 했다.

사실을 살펴보건대 <한서.력지>에서 나왔다. 복은 음이 복이다.


희생을 맡아 길러서 부엌에서 익혀서 먹는법을 가르쳤고, 그러므로 일러서 포희씨라 한다. 용의 상서로움이 있어서, 용으로써 벼슬 이름에 붙여, 부르기를 용사(龍師)라고 한다. 35현의 거문고를 짓고, 목덕(木:음양오행중 木의 기운)으로 왕을 하였고 봄에 물을 대도록 명을 내렸으며, 그러므로 <역>에 일컫기를 제(帝)가 진(震)에서 나온다했다. 음력 정월 초봄에 하는 월(月) 행사에, 그 제(帝) 태호가 이분이다.

살펴보건대 동방에 자리하여 있고, 상(象)이 태양(日)의 밝음으로, 고로 태호라고 칭하였다. 호는 밝음이다.


진(陳)에 도읍을 하였다. 동쪽 태산에서 봉(封)하고, 111년간 제위에 있다 붕하였다.

살펴보건대 황보밀이, 복희씨는 남군(南郡)에 장사지냈다하고, 혹자는 이르기를 무덤이 산의 남쪽 높고 평평한 곳의 서쪽에 있다고 한다.


그 후예가 춘추의 때를 당하여, 임, 숙, 수, 구, 전유가 있었으니, 다 풍성의 후손이다.

여와씨 역시 풍성이다. 뱀의 문양으로 몸에 장식을 하고 사람의 머리를 하였고, 신성의 덕이 있어 복희씨 대를 이어 즉위하였는데, 여희씨라 불렀다. 고치고 새로 지은것없이 [여희씨는 태호씨를 물려받았으며], 오직 생황만을 만들었다.

살펴보건대 예기(禮記) <명당위(明堂位)> 에서 <계본(系本)>까지 다 이르기를 여와씨가 생황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역에 싣지 않았고, 오운(五運)도 잇지 않았다. 한결같이 말하기를 여와씨 또한 목덕의 왕이라 한다. 대개가 복희씨의 뒤로, 이미 수 세대가 경과하였다. 금목(金木)의 세대가 순환하고, 돌고 돌아 다시 시작하였다. 특별히 여와를 들어서, 그 공으로써 높여서 삼황에 채워, 그러므로 자주 목왕(木王)이라 한다.

그 말년에 당하여는 제후 공공씨가 있어 지혜와 형벌을 맡아다스렸고 강함으로써 패자가 되었으나 왕노릇은 하지 않았다. 수운(水運)으로서 목운(木運)의 시대를 계승하여, 마침내 축융과 더불어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자 노하였다. 마침내 머리로 부주산을 받자 무너졌다. 하늘 기둥이 꺾이고 땅을 받드는 밧줄이 이지러져, 여와가 이에 오색돌을 반죽하여 하늘을 수리함으로써 자라의 다리를 조각하여 사방의 극처를 세우고, 갈대와 석회를 쌓아서 넘치는 물을 멈추게하고, 기주를 구제하였다.

살펴보건대 그 사실은 회남자에서 나왔다. 이에 천지가 평화롭게 다스려지고 옛 문물을 고치지 않았다. 여와씨가 죽고 신농씨가 일어났다.

살펴보건대 삼황기록은 같지가 않다. 송균은 축융을 삼황으로 하고, 정현은 춘추에 의하여 여와씨를 삼황으로 하여 복희를 계승하였으며, 황보밀 또한 같으니 이제 의거하여 설명한다.


염제 신농씨는 강성(姜姓)으로 어머니는 여등(女登)이다. [여등은] 유와씨 자녀로 소전(少典)이 비(妃)로 삼았다. 신룡(神龍)과 감응하여 낳았는데 염제이다(아마도 태몽일 것임).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장식하였으며, 강수(姜水)에서 성장하였다. 이로 인하여 강성으로 하였다.

살펴보건대 <국어>에 염제,황제가 다 소전의 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또 다 유와씨의 여자다. 여러 아들과 <고사고>를 증거삼아, 염제의 뒤로 무릇 8대 500년이 지나 헌원씨의 시대이다. 어찌 염제,황제가 이 형제,아우로 같은 어머니씨이겠는가? 황보밀이 소전(少典)은 유와씨의 제후국 이름이라 하였는데, 그런즉 강(신농씨)·희(헌원씨) 두 임금이 같이 소전씨에서 나와, 황제의 어머니는 또 이 신농 어머니씨의 후대의 여자로, 처소가 같은 지역인 이 유와씨의 딸이다.


화덕왕은 고로 염제를 말한다. 불로써 관직 이름(名)을 하였다. 나무를 깎아 보습을 만들고, 나무를 휘어 굽정이를 만들었다. 굽정이를 김매는데 쓰도록, 이로써 만인에게 가르쳤다. 농사(農事)를 처음 가르쳐 농업의 신, 신농으로 불렀다. 이에 납제을 지어서 지내고, 자편으로써 초목을 내리쳤다(독성이 있는지 보았다). 처음으로 백초를 맛보아, 비로소 의약을 두었다. 또 오현의 거문고를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날(日)의 가운데를 정하여 거래를 하도록 가르쳤으며, 물건을 서로 바꾸고 교환하여 물러가게하니, 모든 물건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게 되었다. 마침내 팔괘를 거듭하여 육십사효로 하였다. 처음 도읍지는 진(陣)이었고, 후에 곡부에 거처하였다.

살펴보건대 지금의 회양현(河南省 淮陽縣)에 신농의 우물이 있다. 또 좌전에 노나라에 대정씨의 곳간이 있었다는 것이 이것이다.


즉위한지 120년에 붕하였고 장사(長沙)에 장사지냈다.

신농은 본래 열산에서 일어났는데, 그러므로 좌씨가 칭하기를 열산씨의 아들이라 했고 가로되 주(柱)라 하고 또 가로되 여산씨라 했다. <예기(禮記)>에 가로되 "여산씨가 천하를 두었다." 라고 한것이 이것이다.

살펴보건대 정현이 이르기를, 여산에서 신농씨가 일어났고 또 이르기를 열산에 있었다 하였다. 황보밀은 이르기를 여산은 지금에 따르면, 여향(厲郷)이라고 했다.


신농은 분수씨의 딸을 들였다. 이르기를 '청발'이라하고 비(妃)로 삼았다. 분수의 딸 발(詙)은 제괴(帝魁)를 낳았고, 괴는 제승(帝承)을 낳았고, 승은 제명(帝明)을 낳았고, 명은 제직(帝直)을 낳았고, 직은 제이(帝氂)를 낳았고, 이는 제애(帝哀)를 낳았고, 애는 제극(帝剋)을 낳았으며, 극은 제유망(帝榆罔)을 낳았다. 무릇 8대에 계속되었고 530년에 이어졌다. 헌원씨에서 창성하였다.

살펴보건대 신농씨의 뒤에 무릇 8대이니, 사실이 보이기를 <제왕세기>에서부터 <고사고>까지이다. 그런데 고전이 없어졌으니, 하물며 임금의 두 씨는 누구인가, 다 이전에 들어보았던 임금의 아들이니, 깊이 헤아려 살펴보건대 고서는 이 설명을 하고 있다. 어찌 지금 빈공론이다하랴? 이 단서가 증거를 보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역>에서 이르기를 신농씨가 죽고, 곧 유망이니 유망은 오히려 신농의 이름을 물려받은 것이다.


그 뒤에 주를 두었는데 보·감·허·희·로·제·기·이·향·신·여이고, 다 강성(姜姓)의 후예들이고 아울러 제후를 하였으며, 혹자는 나누어서 사악을 관장하였다. 당시 주 왕실에는 보후, 신백이 왕의 어진 재상을 하였다. 제는 제후들의 반열을 허락하고 중국에서 패왕이 되었다. 대개가 성인의 덕이 광대했으며, 그러므로 그 자손의 번창이 오래고 길었다한다.

일설에 삼황을 일컬어 천황, 지황, 인황이라 하여 삼황으로 하였다한다. 이미 이 개벽의 시초에 군신의 비롯함이다. 도위(圖緯)에 기재된 바이니 모두 버리는 것이 불가하여, 그러므로 서문에 겸하였다. 천지가 이루어지고 처음 즉위할때에, 천황씨와 12명의 우두머리가 있었다. 아무탈없이 편히 지내며 베풀어 무엇을 함이 없어도, 백성들의 풍속이 스스로 천황씨의 덕에 교화되었다. 목덕으로 왕노릇을 하였다. 인월(寅月)로 세수(歲首)를 일으켰다.

형제가 12사람이었는데, 즉위하여 각각 18,000년을 다스렸다.

대개가 천지가 이루어지고 처음 즉위할때는 신인(神人)의 수장(首長)이 나와서 교화(敎化)를 하였는데 그러므로 그 시대의 세대가 길고 오래되었다. 그래서 말하기를 12 우두머리이니, 한사람 몸을 일컫는것이 아니고 12명의 우두머리가 있음이다. 대개가 옛날에는 품질을 조수(鳥獸)의 머리 숫자로 비유했던 까닭이라(수렵의 시대).


지황씨 11명의 우두머리는, 화를 덕으로 하는 왕들로 성씨가 11로 다른 사람들이었다. 웅이, 용문 등의 산에서 흥하였으며, 또한 각 18,000년을 다스렸다. 인황씨 9명의 우두머리는 운거를 타고 수레(가륙)에 깃장식을 하고 곡구를 나왔다. 형제가 아홉사람이고 나누어 구주의 우두머리를 했고, 각각 고을을 세웠으며 무릇 150세에 이르렀고, 합하여 4만5천6백년이었다.

천황의 시대가 끝나고 내려오면서 <하도(河圖)>에서 <삼오력(三五曆)>까지 함께 나왔다.


인황으로부터 이후에 오룡씨(五龍氏)가 있었으며,

오룡씨는 형제가 다섯 사람이고 나란히 용을 타고 오르고 내렸으며, 그러므로 오룡씨라고 일컬었다. 수인씨는 살펴보건대 그 임금이 부싯돌을 (비벼서) 뚫어 불을 내었으며, 사람들에게 불에 익혀서 먹는것을 가르쳐주었으며, 복희씨 이전에 있었다. 초주는 (수인씨를) 삼황의 머리로 하였다.


대정씨, 백황씨, 중앙씨, 권수씨, 율륙씨, 여련씨, 혁서씨,존로씨, 혼돈씨, 호영씨, 유소씨, 주양씨, 갈천씨, 음강씨, 무회씨, 이 모두는 삼황이 이미 오고서 천하를 둔 자들의 이름이다.

살펴보건대 황보밀이 대정으로써 아래로 열다섯 임금이라했는데, 다 포희씨의 이름을 물려받았다하였다. 그 일이 경견(經見)은 아니며, 그러나 가히 의지하여 따르기는 어렵다. 그러나 옛날 태산에서 봉한것을 살펴보건대, 머리에 무회씨가 있었는데 더구나 태호씨 전에도 있었으니 어찌 황보밀이 설한바와 같음을 얻으랴?


다만 서책에 계통을 세워 기록하지 못한 막지(莫知)의 성(姓)은 왕의 연대 때 도읍지에 거처했다. 한시(韓時)에서 "예로부터 태산에서 흙더미를 쌓고 양보에 터를 닦았다는 자가

<晉書卷21/封禪之說,經典無聞。禮有因天事天,因地事地,因名山升中於天,而鳳皇降,龜龍格。天子所以巡狩,至於方岳,燔柴祭天,以告其成功,事似而非也。讖緯諸說皆雲,王者封泰山,禪梁甫,易姓紀號。秦漢行其 ... 自古革命受符,未有不蹈梁父,登泰山,刊無竟之名,紀天人之際者也> <四庫全書 緯畧(宋代高似孫 撰)/風俗通曰古封泰山禪梁甫舊説岱嶽上有金篋玉策能知 ... 舜祠絃歌聲  羅含湘中記曰衡山九疑皆有舜廟太守至郡遣官屬致祀則 ... 辛菜  字林曰蔊一作〈日焊〉辛菜也辛菜 ... 河圖真紀鉤曰王者封泰山禪梁父者七十二君史記封禪書曰齊威公 ... 洛水無冰  春秋説題辭曰洛之為言繹也水繹繹光耀也述征記曰 ... 八紘八極>


정주(鄭注, 정현의 주해)의 <효경설>에서 "封乎泰山, 考績燔燎 : 禪乎梁甫, 刻石紀號也." 에 대해 정의하기를, '封乎泰山者'는 '謂封土為壇'이다. 즉, 흙더미를 쌓아서 단을 만든 것을 이르고 태산의 위에 있어서 관리(官吏)들의 성적(成績)을 상고(詳考)하고 섶을 때면서 하늘에 제(祭)를 지낸것이고, 제후의 공적을 깊이 헤아려 고하였으며 섶을 사르고 희생을 바치고 제사를 지내며 이로써 하늘에 고(告)하였다. 양보에 터를 닦았다는 것은 선은 제사터 선(墠)으로 읽으며, 제사터를 하기 위하여 땅을 손질하여 청소한것을 말하며, 양보(山)에 있으며 이로써 고하는 곳이다. 양보는 이 태산의 방계되는 작은 산이다. 돌을 새겨 글로 하되 당대의 이름과 시호를 기록하는 것이다.


대단히 많은 가(家)들이 있었고 중니가 볼 때 다 알수가 없었다." 라고 하였다. 관자가 또 가로되, 옛날 무덤이 태산에 72가(家)며 내가 아는 바로 잘못이 12이다 라고 하였다. 머리에 무회씨가 있고,그런즉 무회씨 이전은 천황의 이후이며, 자세한 연보가 멀고 아득한데 하물며 왕이 어떻게 올라가서 고하였겠는가. 단지 옛 서적이 없을 뿐이다. 없는 서책을 갖추어 놓함은 불가하니, 어찌 없어진 제왕을 설명하여 분명히할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춘추위(春秋緯)>에 칭하기를 개벽으로부터 획린 때까지 무릇 327만6천년이고 나누어 10기(紀)이다 라고 하였다.

인간 세상(속세)으로 7만6백년이니, 1기는 구두기(九頭紀)로 인황씨의 시대로 인황씨의 형제가 아홉으로 구두(九頭)이다. 2기는 오룡기(五龍紀)로 황백씨,황중씨,황숙씨,황계씨,황소씨의 다섯 성씨가 같은 시기에 용을 타고 다녔기에 오룡기라 하며

'청장관전서'의 '기년아람'에 "인황씨를 이어서 다스렸으며,형제가 다섯 이었고,다섯방위로 나누어서,오행을 맡아 산악에 베풀었다." 라고 하였다. <춘추명력서>의 "오룡기"에 '황백씨,황중씨,황숙씨,황계씨,황소씨의 다섯성씨는 같은 시기에,모두 용을 타고 다녔기에 오룡이라한다." 라고 이른다.


3기는 섭제기, 4기는 합락기, 5기는 연통기, 6기는 서명기, 7기는 수비기(또는 순비기),

수비기는 22대이며,순비는 그 시대에 덕이 두터워서 사람들이 그 교화에 따르기를 마치 새가 날 듯 빨랐다하여 붙여진 것이다한다.


8기는 회제기(또는 인제기),

인제기는 13대이며 세대만 따져서 전해 왔으므로,세대만 있고 칭호는 없다.인제는 그 시대에 모든 것이 제작되어 있어서,후세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따라 그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하여 붙여진 것이다.


9기는 선통기, 10기는 유글기(또는 소흘기)이다. 대개가 유글기는 황제의 때에 해당하니, 9기의 사이에서 마름질하고 이로써 여기에 기록하여 보태어서 계통을 세워 적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