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여름의 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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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채소를 먹을 수 있어 좋다.

시금치, 쑥갓, 쌈, 얼마나 미각을 돋우는 대상인가. 새파란 기름이 튀여지게 살진 싱싱한 이파리를 마늘장에 꾹 찍어 아구아구 씹는 맛 더욱이 그것이 찬밥일 때에는 더할 수 없는 진미가 혀끝에 일층 돋운다.

그러나 같은 쌈, 같은 쑥갓이로되, 서울의 그것은 흐뭇이 마음을 당기는 것이 아니다. 팔기 위하여 다량으로 뜯어다 쌓고 며칠씩이나 묵혀 가며 시들음 방지(防止)로 물을 뿌려선 그 빛을 낸다. 여기 미각이 동할 리 없다.

여름철이 아니고는 이런 것이나마 역시 맛볼 수 없는 것이기는 하나, 싱싱한 채정(採精)이 다 빠지고 취김 물에 겨우 제 빛을 지니어 가는 그 가난한 이파리가 비위에 틀린다.

그래서 이 이삼 년 챈 쌈이 그리운 여름이 와도 여름을 잊은 듯이 그처럼 좋아하는 쌈 한번 마음 가득히 먹어 보지 못했다. 언제나 시골서처럼 채원에다가 푸른 식량을 한 밭 심어 놓고 식욕이 움직일 때마다 먹으면 뱃속까지 새파랗게 물들 것 같은 싱싱한 정기가 담뿍 담긴 그 푸성귀를 아구아구 씹어 먹어 볼는지―.

아내도 그런 것이 무척 그리운 모양으로 가게에서 사오는 그것보다 어떻게 좀 생기가 돌게 만들어 먹을 수 없을까 한 번은 파를 사다가 서울집 하고도 유별히 좁은 그 마당 한귀의 물독 옆에다가 세네 포기를 꽂아 놓고 물을 주어 키웠다.

이걸 하루는 고향에서 손님이 왔다가 보고 “저게 뭐 채원(菜園)인가?”

해서 고성소(高聲笑)를 한 일이 있기도 했거니와, 이런 것에 구애가 없이 사는 시골 사람이 무척 그립다.

어떻게도 우리 집 마당이 좁은 것인가는 여기에 그 평수를 숫자적으로 따지 어 밝히기보다 좋이 설명해 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작년 봄이었다. 시골서 입학시험을 치러 올라왔던 어떤 여학생 하나가 마당 한복판에 서서 사방을 두루 살펴보더니 “마당은 어디 있어요?” 해서 웃었다면 그 마당의 넓이가 얼마나한 정도일 것인가는 가히 짐작해 알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심어 먹기를 즐기는 아내이었건만 그 파 다섯 포기(꼭 다섯 포기)밖에는 여기에 더는 생념을 내지 못하고 넘석거린다.

“그 뒤꼍 바위 위에다가 흙을 좀 사다 붓고 쌈이나, 그런 것을 좀 못 심을까요?”

“장독은?”

“장독 옆으로 말이에요.”

“사다가 먹는 게 그저 싸지.”

“그래두―.”

아내는 되건 안 되건 한번 시험을 해 보았으면 하는 심정이다.

그러나 그 바위 위에다가 흙을 덮으려면 한 자 두께는 덮어야 할 게니 한자 두께면 흙이 한 마차, 한 마차면 비용이 사 원, 그리 많은 돈은 아니나, 장마를 한 번 겪고 나면 꼭 사태(沙汰)질에 나중에는 그 흙을 쳐내는 인부 삯까지 처넣어야 될 것만 같으니 아내의 그 심경을 헤아려 보잠도 딱한 노릇이다. 이유를 설명하고 승낙을 않았더니 아내도 그건 그럼즉이 생각이 들었던지 다시는 더 아무 말이 없이 그저 그 마당귀의 파 다섯 포기에만 일심으로 손을 넣으며 이즘엔 한 포기를 더 늘여 여섯 포기가 담 짬에서 새파랗게 자라나며 반찬의 양념을 돕는다.

하지만 가게에서 사오는 시들은 백채(白菜)엔 아무리 신선한 파가 들어가도 그토록 맛을 돕는 것이 되지 못된다. 모처럼 애를 쓰고 키워서 만든 김치를 맛이 없달 수 없어 잠자코 먹기는 하지만 결국은 아내의 손만 좀더 분주하게 만드는 수고밖에 더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겨울밤 찬밥에다 동치미를 썰어 비빈 그 기운찬 맛, 미미각(美味覺)의 여성적인 추과(秋果), 고사리, 맛이나물 같은 가지가지의 춘채(春菜), 철철이 미각의 대상이 계절을 자랑하지 않는 것이 없으나, 여름철의 그것이 내게는 좀 더 유혹적이건만…….

참외와 수박이 결코 추채류(秋菜類)에 떨어지는 미각이 아니거니와, 쑥갓, 쌈이 또한 산채에 지는 것이 아니건만…….

먹는 데도 역시 그 운치가 반은 더 미각을 돋우는 것이어서 수박은 다락 위에서 꿀을 부어 한가히 먹어야 맛이 나고, 참외는 거적문을 들치고 들어가는 원두막 안에서 먹어야 맛이 난다. 그런 것을 서울선 기껏 골랐대야 따다 두어서 익힌 속 곤 놈을 그것도 마루 위에서밖에 앉아 먹을 데가 없으니 제 맛이 돋귈 리가 없다.

이즘 한참 수박과 참외를 수레에다 잔뜩 싣고 거리거리 돌아가며 외쳐내는 하나 쑥갓이나, 쌈 매한가지로 내 비위는 그렇게 흐뭇이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다.

“쥔치 사라우?”

채소에 맛이 없어 하니 아내는 생선장수를 불러 세운 모양이다.

“외이를 사지?”

“글쎄, 생생한 게 여기에 올라와야지요.”

“그럼 거리에 내려가 보지?”

“아까도 내려가 봤는데요. 뭐 소경 눈 뜨나 감으나예요.”

오늘도 김치는 또 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