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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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여자에게 비한다면, 진달래는 이미 춘정을 잊은 스무 고개는 훨씬 넘어선 여인 같으면서도 또 정숙하여 보입니다. 그리고 확호한 인생관이 유행이라는 데는 눈도 뜰 줄 모르는, 그리하여 속세의 풍정과는 높이 담을 쌓은 점잖음이 속속들이 깃들여 있어 보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꽃은 나비를 기다려 춘정을 느끼건만 진달래는 나비도 오기 전에 산간 깊숙이 홀로 피어서 스스로 봄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진달래와 같은 시절의 피는 꽃으로 두봉화(杜蜂花)가 있습니다. 두봉화는 꽃도 잎도 그리고 나무까지 분간할 수 없이 진달래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이 두봉화인 것같이 벌을 방비하는 약을 지니고 있는 것이 다만 진달래와 다른 것뿐입니다. 꽃을 싼 화판 밑에는 어교(魚膠)보다도 거센 진이 꽃이 시들 때까지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제아무리 큰 벌이라도 와서 어르다니기만 하면 발이 붙고, 일단 붙으면 헤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봉화의 지조도 아니 가상타 할 수 없습니다만 진달래는 그러한 것의 방비책으로보다는 마음으로 그것을 이기어 내는 데 좀 더 고상한 뜻이 담긴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두봉화와 진달래는 같은 형상, 같은 빛의 꽃이로되 우리는 진달래를 좀더 알고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진실로 진달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놓는 힘은 큰 것입니다.

화전(花煎)이라면 진달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진달래가 봄 일찍이 피는 꽃이니까 한겨울 동안 그리웠던 춘정에서 빨리 서두는 것이 진달래를 찾게 되는 원인 같으면서도 진달래보다 빨리 피는 개나리를 찾아 화전을 노지는 않습니다. 다른 어느 꽃보다 붉은 꽃이 좀 더 유혹적이기는 하지만 그 빛의 유혹에서라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우리는 진달래의 그 높은 품위와 아름다운 마음씨에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보는 것만으로서는 만족하지 못하고 그 꽃을 먹어까지 보자는 것이 화전의 목적으로 찹쌀가루에 꽃잎을 따 넣어서 꽃전을 지지어 먹는 것입니다. 술병을 지니고 진달래를 찾는다 해도 우리는 반드시 그 술잔에다 꽃잎을 뜯어 띄워서 마시고야 만족합니다. 이것은 높은 뜻을 지닌 진달래 꽃빛 물이 내 마음속에도 물들어지고 싶은 그러한 심정에서가 아닌가 합니다.

봄이면 그리운 진달래입니다. 해마다 한식절(寒食節)이면 선조의 선영(先瑩)으로 성묘를 가서 그 산 속에 핀 진달래꽃을 따 먹어 보며 노닐던 어린 날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이 봄에서 성(盛)히 피었을 그 선영의 그 진달래꽃, 그 진달래는 내가 그렇게도 저를 그리워하는 줄이나 알고 피었는지? 아니, 속진(俗塵)에 무젖은 나를 잔뜩 피어서 비웃고 있는 것인 아닐는지? 진실로 한 잔 술에다가 진달래 꽃잎을 마음껏 따 넣어 실컷 마셔 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속을 새빨갛게 물들여 진달래 마음이 되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