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조선음악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가져올 수 있는 것이라도 그것을 가져온 다음에 얼 마만치나 효과가 있을까? 하는 것을 먼저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가져오기 어려운 물건이고 보면 더구나 그 효과와 가치를 먼저 잘 생각한 후가 아니면 아니될 일 인줄압니다.
조선의 고악(古樂)은 우리 가정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니요,만일 필 요한 일이라면 지금으로부터 새로 들여와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이것을 가정에 들여온 결과 얼마나한 효과와 가치를 우리의 가정 생활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먼저 이것을 생각한 후에 다음으로는 고악 (古樂)을 가정에 들여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를 또한 아울러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나는 덮어놓고 서양 음악만을 좋다고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동시에 조선 음악을 조금이라도 값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양음악에는 서양 음악으로서의 값이 있는 것과 꼭 같이 우리 조선음악에는 조선음악으로서의 값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간단하게 말씀하자면 조선의 고악이란 것은 지 금 사람의 생활이나 감정과는 너무나 상통성(相通性)이 없다는 것이 무엇보 다도 큰 유감이다. 태평시절에 격양가 부르던 옛날 사람의 생활이 먹고 살 기 위하여 눈코뜰새 없이 분주히 지나고도 오히려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없 는 오늘날의 우리의 생활과 얼마나 그 거리가 먼가를 생각해 보라. 또 설혹 생활이 넉넉하다 치더라도 오늘의 사회 제도란 것은 움직여야 사는 것이지 편히 드러누워서 배를 두드리고 살 수 없는 세상인 것도 생각해야 한다. 그 렇다고 움직여야 살 수 있는 사람의 음악이란 또한 움직이는 음악이라야 쓸 것이다. 조선의 음악이라고 모두 그렇지도 않겠지마는 대체로는 동적(動的) 보다 정적(靜的)이고, 진취적보다 보수적이며, 적극적보다 오히려 소극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이 예술상으로 얼마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것은 오히 려 둘째 문제이다. 그러고 보니 첫째로는 시대에 적합한 음악이 못되는 것 을 알 수가 있다.
다음에 이것이 우리의 가정에 들어와 있었다면 별문제려니와 지금 새로 이 것을 들여온다는 데는 곤란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 같다.
첫째로, 학교에서나 혹은 그 밖의 어디서든지 이것을 널리 가르치지 않는 것이 큰 원인의 하나이고, 또 서양 음악과 같이 악보라는것이 완전히 되어 있지 않고 서로서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오던 것인만큼 조선 음악을 전문으 로 하는 음악가가 대단히 귀한 것이 둘째의 원인이며, 그밖에도 현시(現時) 의 교육에 이것이 적합하지 않은 까닭에 학교 당국자들이 이것을 머리에 생 각지도 않고 있으니 무슨 힘으로 이것을 우리의 가정에 들여 올 것인가. 그보다는 차라리 세계 공통의 음악을 가르치고 배우되 비록 악기의 모양은 다를지라도 가장 우리의 감정에 가깝도록 가장 우리의 가슴에 공명되도록 새로이 새 조선 음악을 건설하는 것이 그 요구되는 힘에 있어서도 오히려 가벼울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로 보아 시대에 적응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조선의 고악을 아주 잊어보리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방면에 뜻이 있는 분들은 더욱더욱 연구하여 후세 만년에 이것을 전해야 되겠고 또 그러할 의무도 우리에게 있지마는 옛날의 예술을 후세에 전한다는 것과 이 것을 보급시킨다는 것과는 의미가 다른 것인즉, 감상이 달라지고 사조(思 潮)가 바뀌어 가는 오늘날에 있어서는 오늘날의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위로를 줄 만한 것을 찾고 배워야 되겠으니 이러한 의미를 생각해서 나는 조선 가정에 재래의 고악을 들여 온 것에는 찬성을 못할 뿐만 아니라 차라리 서양 음악을 들여오되 이것을 토대로 하여 보다 더 조선의 마음에 합하는 새음악을 집집마다 가지게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 문제는 이같이 경솔하게 의논할 것이 아니지마는 일부러 물은 것이고 또 대중없이 많이 쓸 형편도 못되어 책임 없이 천박한 글을 드리게 된 것을 오직 미안하게 생각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