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과실/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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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의 처녀가 남방을 생각하면
울렁줄렁 달린 밀감 밭을
허울 벗은 몸으로 지나더라도
명주옷을 입고 임을 만나러 가는 듯이
가슴이 두근두근거려서
첫 일월에 우렛소리가 휘어진 가지를 흔들고
황금의 열매를 딴다지요.

북방의 처녀가 남방을 생각하면
빨간 동백의 비인 동산을
철을 모르는 몸으로 지나더라도
임이 오시다 마신 듯이
심란한 한숨이 쉬어져서
초사월의 비가 푸르른 잎을 궁글고
빨간 꽃을 떨어뜨린다지요.

북방의 처녀가 남방을 생각하면
초가집 처마 아래 우산 걷어들고
우두커니 서서 눈물 지우더라도
조약돌 틈에 속삭이는 샘물같이
유랑하는 노래가 저절로 들려서
초저녁에 불 비친 미닫이가 열리고
책상 앞의 석상이 움직인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