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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과실/탄실의 초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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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많은 어머니의 품에
머리 많은 처녀는 웃었다
그 인자(仁慈)한 뺨과 눈에
작은 입 대면서
그 목을 꼭 끌어안아서
숨막히시는 소리를 들으면서.

차디찬 어머니의 품에
머리 많은 처녀는 울었다
그 냉락(冷落)한 어머니를 보고
어머니 어머니
우왜 돌아가셨소 하고 부르짖으며
누가 미워서 그리했소 하고 울면서.

춘풍에 졸던 탄실(彈實)이
설한풍(雪寒風)에 흑흑 느끼다
사랑에 게으르던 탄실이
학대에 동분서주하다
여막에 줄 돈 없으니
돌베개 베고 꿈에 꿈을 꾸다.

꿈에 전(前)같이 비단이불 덮고
풀깃 잠들어 꿈을 꾸니
우레는 울어 오고
빗방울이 뚝뚝 듣는다
탄실은 화닥딱 몸을 일으키어
벽력소리에 몰리어
힘껏 달아났다
달아날수록 비와 눈은
그 헐벗은 몸에 쏟아지고
요란한 소리는 미친 듯 달려들다
그는 나무 그늘에 몸을 숨겼다.

온 하늘이 그에게 호령하다
“전진하라 전진하라”
그는 어린양같이
두려움에 몰리어서
헐벗은 몸 떨면서도
한없이 달아났다
그동안에 날은 개었더라
청(靑)댑싸리 둘러 심은 푸른 길에
누군지 그의 손을 이끌다
그러나 그는 호올로였다.

(서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