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서투른 도적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창의문 밖 살림을 차린 뒤로 안잠자기 때문에 약간 머리를 앓지 않았다.

개똥에 굴러도 ‘문안이 좋지 그 두메에 누가……’ 하고 그들은 처음부터 오기를 싫어한다. 일갓집들의 연줄 연줄로 간신히 하나 구해다가 놓으면 잘 있어야 한두 달 그렇지 않으면 단 사흘이 못되어 봇짐을 싼다. 속살 까닭은 여러 가지겠지만 드러내 놓는 이유는 한결같이, ‘뻐꾹새와 물소리가 구슬퍼서……’ 한다. 불행한 인생의 길을 걷는 그들에겐 집을 에두르는 시냇물 노래와 뒷산 속에서 새어 흐르는 뻐꾸기의 울음도 시름을 자아낼 뿐인 모양이다. 어둑어둑한 소나무 그늘 밑에 그들은 하염없는 눈물을 씻게 되고 햇빛에 고요히 깃들인 풀그림자도 까닭 없이 그들의 맘을 군성거리게 하는 듯.

도회의 번잡과 조음이 도리어 그들의 신경을 무디게 해 주고 심장을 지질러 주는 듯.

아모튼 안잠자기가 붙어 있지 않았다. 병약한 안해의 단손으로는 도저히 살림을 꾸려나가는 수가 없고 사람은 있어야 될 판이라, 나이 늙든 젊든, 일을 잘하든 못하든 안잠만 자 준다면 우리는 감지덕지로 위해 올리는 판이었다.

황해도 할멈이 올 때에도 우리는 사람이 없어서 무진 애를 쓰다가 드나드는 기름장수의 연줄로 간신히 그를 구해 온 터이라 인품과 일새를 볼 겨를도 없었다.

보통집 같으면 대개는 그 할멈을 싫어하였으리라. 첫째 나이 많아 육십오 세나 되었으니 세찬 일을 바랄 수 없고, 둘째 너무 추해서 불쾌한 감정을 일으킨다. 얼굴은 늙은 일본 호박 모양으로 위아래가 내밀고 눈과 코언저리 가 움쑥 들어갔는데 검붉은 버섯으로 덮였고, 가을바람도 일어난 지 오래인 음력 팔월인 이때 땀이 차서 헤어진 광당포 적삼 하나를 걸쳤고 잠뱅이 비슷하게 짧은 베치마가 갈기갈기 찢어졌는데 그 조각마다 기름때가 켜켜이 앉았다. 요새 명색 안잠자기라도 위아래를 인조견으로 휘감고 버듬적하게 양산 한 개쯤 들고 다니는 데 비하면 그야말로 소양지판이다.

그러나 우리는 와 준 것만 감지덕지다.

“저 나이에 저 꼴을 하고야 설마 오래 붙어 있겠지.”

안해도 나를 보고 해죽이 웃으며 도리어 안심하는 눈치를 보였다.

안해의 전하는 말을 들으면 그 할멈은 황해도 안악 사람으로 농토를 빼앗기고 살길이 없어 아들 부부만 제 시골에 처뜨리고 저는 열세 살 먹이 손자 하나를 데불고 벌이 곳을 찾아 걸어서 서울을 올라왔다. 공덕리를 중심으로 한 기름 장사의 틈에 끼어 삼 원이란 전 천량을 들여 장사를 시작해 보았으나 처음 일이라 단골도 없고 모든 일에 서툴어서 밑천조차 깝살려 버리고 필경 남의 집에나 살아보자고 나섰더니 그나마 뜻같이 되지 않아 오늘날까지 동향의 기름 장사꾼의 신세를 입다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한다.

하로 이틀은 무사히 지나갔다. 사흘이 못 되어 피차에 얼골이 조금 익어지 자 그의 호소와 하소연이 육칠월 장마 모양으로 끈칠 줄 몰랐다. 그는 안해를 졸르다가 못하여 인제는 나만 보면 졸르기 시작한다.

“나으리 마넴, 저 새끼(제 손자를 가리킴)를 어떻게 하면 좋쉬까? 댁으로 데불고 와요? 열세살이라도 못 할 일이 업쉬다…….”

“저 건네방이 비지 않았쉬이까? 우리 아들 내외께 좀 빌려주시깡요.…… 이 거록한 댁에서 살게 해 주소.”

“돈을 십 원만 선 월급으로 미리 좀 주시까요? 서울에 올라올 때 동리 사람에게 진 빚냥을 갚어야 되겠쉬다. 나으리 마넴, 사람 좀 살리소…….”

그는 제 일신의 모든 어려운 사정을 한꺼번에 해결해 보려는 듯하였다.  처음에는 허허실수 지나치는 말로만 여겼더니 웬걸 차차 그의 하소연이 물론 진정으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깨달았다. 물에 빠지는 사람이 한 오래기를 부여잡는 모양으로 그는 죽을 힘을 다해서 우리에게 매어 달리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우리에겐 물론 그런 여유가 없었다. 다달이 몇 푼 월급으로 겨우 꾸려 가는 우리에게 그의 손자를 기르고 그의 아들 부부를 살릴 힘은 어데를 쥐어짜도 나올 턱이 없었다. 식구라야 우리 내외와 다섯 먹이 딸 하나, 집이 멀고, 명색 밭이라고 산기슭에 몇 고랑 있는 탓에 문안 심부름과 집 거두기에 열아홉 살 먹은 대욱이란 아이를 들인 터이라 안잠자기 외에 사람 더 둘 필요는 절대로 없었다.

나의 말은 무거웠다. 그에게 동정을 하면 할수록 나의 고통은 컸다. 험난한 인생의 길의 산 표본을 눈앞에 보는 듯하여 나의 가슴만 어두워질 뿐이다.

낮보담도 밤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낮에는 나도 집에 붙어있지 않거니와 자기도 일이 바쁘니 조를 겨를이 없으되 밤엔 저녁을 먹고 앉으면 그의 애원은 쉴 새 없이 나의 귀를 울리고 머리를 들먹인다. 두 방에 불 때기가 어려워서 장지로 막은 안방에 우리는 아랫간에 자고 그는 윗간에 자니 한방이나 진배가 없었다. 그의 한숨과 호소는 장지 하나를 격해 폭포수같이 쏟아진다. 그는 좀처럼 잠도 자지 않았다. 내가 깨어 있는 듯한 눈치만 보이면 자기의 원정과 설움과 슬픔을 늘어놓는다. ‘이 거록한 댁에서 자기를 안 살려 주면 누가 살리겠느냐?’ 내가 꼭 그를 구해야만 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추근추근하게 굳세게 줄기차게 조르고 볶고 호소하고 애원한다. 불면증이 있는 나는 이따금 뜬눈으로 새기까지 되었다.

잠꼬대처럼 호소를 중얼거리다가도 그는 흔히 고단한 꿈을 맺는 모양이나 이 꿈이 도모지 길지 않았다. 높던 숨소리는 이내 깊은 한숨으로 변한다.

그렇다! 그것은 정말 깊은 한숨이다. 바다속 깊이 파도가 이는 모양으로 ‘우후우’ 하는 처창한 울림을 낸다. 그의 천 마디 만 마디 말보담도 이 한 숨이야말로 그의 슬픔과 번민과 고통을 가장 웅변으로 설명해 준다. 나는 잠결에도 이 한숨 소리만 들으면 번쩍하고 눈이 떠진다. 열 손, 스무 손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한들 이 인생의 최후의 휘파람 같은 무겁고 우렁차고 비통한 이 울림처럼 나의 맘을 뒤흔들고 맘을 움직이지 못하였으리라. 나는 고만 잠을 잊어버린다. 그 산란한 괴로운 숨결! 그 탄력 없는 늙고 무거운 팔다리가 이리로 저리로 뒤척거리는 둔한 음향!

그는 청을 하다 하다 듣지 않으니까 대욱이를 미워하기 시작하였다.

‘저 놈만 없으면 내 손자가 있게 될 텐데.’ 하고 내심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세 끼의 밥도 잘 찾아주지 않고 더구나 된장 찌개 하나 잘 맨들어주지 않았다. 나종에는, 저 애는 다 컸으니 어데를 가도 제 구실을 할 터이니 고만 내어 보내고 자기 손자를 갖다 두자고 노골적으로 안해를 졸랐던 모양이다.

눈 여린 안해는 처음엔 그를 위하여 눈물까지 흘린 일이 있었으나 이 요구에는 어이가 없었다.

“아모리 제 자식을 위한다 한들 어쩌면 있는 사람을 내보내라고까지 한단 말요? 다 같은 처지에……심청이 나빠.”

하고 눈의 밖에 나게 되었다.

할멈이 온 지 한 열흘쯤 지냈으리라.

그는 내일쯤 제 손자를 찾아보고나오겠다고 청했다. 우리는 물론 허락하였다. 오늘 낮쯤 갈 터인데 오늘 아츰에 생긴 일이다.

나는 어젯밤에도 잠을 잘 못 자고 심지가 좋지 못한 대로 뒷동산을 한 바퀴 휘돌아 나려오니까 안해가 파랗게 질려서 할멈과 무어라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그 사단은 이러하다. 할멈이 일어나 나간 뒤로 안해가 나가 보니 마룻바닥에 쌀낟이 흩어져 있었다. 밥쌀을 내다가 떨어뜨린 것인가 하였더니 자세히 살펴보니 마루로부터 뜰로, 뜰로부터 우물 가는 길로 쌀이 줄을 그은 것처럼 흘러 있었다. 하도 이상해서 할멈 뒤를 쫓아가 보니까 그의 걷는 대로 쌀이 줄줄 흘러나린 것을 발견하였다. 필경 할멈의 품속에 쌀을 감추어 둔 것이 발견되었다 한다. 그는 헌털뱅이전에 하나를 주워서 쌀을 불룩하게 집어넣어 가지고 가슴 밑에 찼는데 전대의 구멍이 뚫어져서 그의 걷는 대로 쌀이 흐르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대로 출근했다가 저녁때 돌아와서 할멈을 물었더니 그는 품속에서 훔친 쌀을 도로 내어 놓고 백배 사죄하며 제 손자한테로 갔다 한다. 손버릇이 나쁘니 물론 집에 둘 수가 없어서 날짜를 따서 월급을 주어서 아주 보내 고 말았다 한다.

우리가 한번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니까 대욱이가 뒷간에 갔다가 나오더니 씽글씽글 웃으면서 우리 앞에 동전 세 푼을 내어 놓는다.

“그 도적년이 이걸 뒷간에 내어 놓고 갔어요. 파출소에 끌고 간다고 했더 니 아마 겁이 난 게지요. 어린애가 가지고 놀던 동전까지 다 훔치고…….

망할년 같으니…….”

대욱이는 자못 분개한 중에도 어이없어 웃는다. 이번 사건에 대욱이가 제 일 치를 떨었다. 고지식한 그는 그런 짓을 하니까 없는 사람이 대접을 못 받는다고 펄펄 뛰면서 할멈을 맞대해 놓고 욕지거리를 하며 징역을 살린다고 울림장을 놓았다 한다.

나는 그 할멈의 한 일을 서투른 도적의 노릇으로 웃어 버리기엔 너무 맘이 저리었다.

대욱의 말마따나 할멈은 과연 파출소를 겁내었을까? 아모도 몰래 안전하게 제 품속에 든 동전 세 푼이 귀신 아닌 사람에게 발각되리라고 믿었을까? 사랑하는 손자에게 옥춘당으로나 변할 그 귀중한 동전 세 푼을 확실치 않은 겁결에 그리 쉽사리 내어 놓았을까?

그는 일부러 동전 세 푼을 내어 던진 것이다. 네 보라는 듯이 내어 던진 것이다!

“섬으로 있는 쌀을 몇 줌 훔친들 어떻단 말이냐? 굶주린 내 손자에게 한 끼 이팝을 해 준들 어떻단 말이냐? 무슨 대사냐? 품속에 넣은 쌀까지 우벼 뺏는 알뜰한 요것들아, 이 동전 서 푼이나마마저 받아라! 그리고 잘 살아라!”

맘속으로 외치며 이 동전을 던진 것이다. 우리의 얼굴을 향해서, 심장을 향해 이 동전 서 푼을 후려갈긴 것이다!…….

라이선스

[편집]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5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5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주의
1929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