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밤
누구든지 동대문 밖에 나서서 청량리 쪽으로 내려가노라면 안감내 정류장을 못 미쳐서 바로 바른편 길 옆 기단 담에 세워져 있는 커다란 조선식 건물을 볼 것이다. 이 건물은 지금 동방 신문 사장이요 청구 은행장으로 명망과 위세와 재산으로 유명한 한남윤씨의 주택이다. 씨는 본래 문안 필운동 막바지 삼층 양옥에서 살았다. 그런 것이 이태 전부터 씨 스스로도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 꼭 지적할 수 없는 병에 붙잡혀서 나날이 여위어 갔다. 삼 년 이른 봄에 어떤 유명한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다.
“이 병은 오래 되면 폐와 신경에 큰 관계가 되는 것이니 조용하고 공기가 좋은 데 가셔서 오래 요양하는 것이 대단 좋겠읍니다.”
이렇게 온공하고도 황공스러운 의사의 말을 들은 한남윤씨는 곧 병요양에 적당한 곳을 찾았다. 동래 온천이나 부여 같은 데로 갔으면 물론 좋겠지만 자기의 생명같이 아끼는 황금을 많이많이 펴놓은 서울을 멀리 두고서는 그 걱정에 도리어 병이 될 것이다. 그래 여러 사람과 의논도 하고 많이 생각한 끝에 서울도 가깝고 비교적 공기도 좋고 들도 넓고, 조용한 동대문 밖으로 옮기게 되었다. 요양지를 가린 후에 건축 도안을 꾸미는 데도 문제가 컸다. 양식이 좋다는 이도 있었고 조선식이 좋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씨의 의견을 좇아 조선식으로 지었다.
씨가 이리로 옮겨서 넉달 만에 을축년을 맞았다. 새 집에서 새 봄을 맞는 씨는 만찬회를 열고 여러 사원들을 불렀다.
이 아래 이야기는 금년 음력 정월 초하룻날 밤 이 명예와 권세가 등등한 재산가 한남윤씨의 만찬회 뒤끝에 일어난 활극이다. 나는 조금의 거짓과 꾸밈 없이 그 활극을 적는다.
기쁜 이에게 새로운 기쁨을 주고, 슬픈 이에게 새로운 슬픔을 주고, 바라는 이에게 새 희망을 주는 설날은 어느새 저물었다.
언땅 위에 흐르는 차디찬 공기를 데우던 햇발은 점점 장안 만호의 지붕에서 스러지고 남은 빛이 쌀쌀한 먼 하늘에 불그레 물들이게 되면서는 삼각산 쪽으로 슬슬 내리는 바람을 귀를 에이는 듯하다.
먼하늘 끝에 남은 열붉은 빛은 쌀쌀한 자주빛으로 변했다가 그거나마 흔적없이 사라지면서는 한두 개의 별이 반짝반짝 눈을 떴다. 별들이 하나, 둘, 셋…… 열, 이렇게 늘어갈 때 어디로부터 오늘 줄 모르게 슬근슬근 닥쳐오는 황혼빛은 문안, 문밖에의 집, 산, 들, 숲 할것없이 흐려 버렸다. 솔솔 내리던 바람은 솰솰 소리를 친다.
음력 설. 서울 거리는 고요하다. 종로의 전등은 의구히 켜졌으나 사람의 자취는 드물다. 서로 가지런히 마주 서서 건너다보고, 쳐다보고, 내려다보는 전등들은 바야흐로 닥쳐오는 저리고, 쓰리고, 차디찬 어둠 속에서 스러져 간 낮 자취를 그리는 듯하다. 꿈 같은 그 빛 속으로 간간이 지나가는 것은 미인 태운 인력거, 뚜- 뚜 하는 자동차, 술에 정신이 어리어서 다리를 바로 못 놀리는 패, 진창에서 금방 빠져 나온 돼지같이 허디헌 푸대 조각으로 몸을 싼 거지들이다.
밤이 깊어감을 따라 사면은 더욱 고요하였다. 간간이 즈르렁즈르렁 가고 오는 전차 소리가 고요한 공기에 요란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극히 조용한 때- 바람 소리까지 멀리 스러져 간 때면 어느 술집에선지 흘러나오는 노래 가락은 처량한 정조를 한껏 돋우었다.
밤은 한시가 넘었다.
바람 형세는 깊어가는 밤빛과 같이 더욱 맹렬하였다. 우우하고 고기 비늘같이 잇다은 지붕들을 스쳐서 거리를 지날 때면 누구누구 할것없이 허리를 굽히거나, 머리를 돌리거나, 손으로 코와 입을 가리거나, 흑 느끼고야 만다. 전간목에 기대어 서기도 하고, 어느 점방 현등 아래 가서 서기도 하고, 주정꾼들 뒤를 엉금엉금 따라 가면서,
“나리 돈 한 푼 줍쇼! 으응흥―.” 하는 거지들도 모진 바람이 그 몸을 치는 때면, 땅바닥에 엎드리거나, 어느 집 벽에 가서 붙어 선다.
이때였다.
어두워서 낯은 자세히 보이지 않으나 흰두루막 입은 키 큰 사내 하나가 양사골 어두운 골을 헤저어서 종로에 나섰다. 그는 종로에 나서서 동대문 정류장을 끼웃끼웃 보더니 동대문을 향하고 걷다가 동대문 파출소 건너편에 있는 자동 전화실로 들어갔다. 그는 수화기를 귀에다 대고 한참 무어라 무어라 하더니 부랴부랴 나와서 지금 막 떠나려고 종을 땅땅 우리는 청량리 전차에 뛰어올랐다.
사람들은 앉고 서고 하여 한 차가 꽉 찼다. 웃음, 이야기, 술 냄새에 차 안은 와글와글하는 선술집 같다. 그네의 이야기와 행동을 보아서는 술집, 기생집, 신마찌, 연극장을 찾아서 문안 왔던 사람이 많고 막차로 원산 가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사람을 실은 전차는 어득하고 고요한 레르 위로 기세 좋게 닫는다. 뚤뚤 구르는 바퀴 소리, 즈르릉 갈리는 트롤리 소리는 서로 어울려서 먼 하늘에서 우는 우뢰 소리 같다. 이따금 바퀴와 트롤러 끝에서 일어나는 푸른 불빛에 주위는 언득언득 엿보였다.
자동 전화실에서 나와서 전차에 오르던 키 큰 사나이는 맨 뒷문 어구에 뻣뻣이 서서 바깥만 내다보고 있다. 수목 두루막을 덤썩이 지어 입고 푹 눌러 쓴 방한모 아래에 세모진 두 눈 하며, 쑥 내민 관골 아래 좀 들어간 두 볼하며 두툼한 입술 위에 까츳까츳한 수염은 평범한 운명의 소유자로 보이지 않았다.
전차가 안감내 정류장에 못 미쳐서였다. 그 자는 차문을 슥 열더니 차장에게 표를 주고 쏜살같이 닫는 차에서 태연자약하게 뛰어내렸다. 저편 전간목에 달아 놓은 전등빛에 흐미히 보이는 길바닥에 내린 그는 한참 서서 아래 위를 휘휘 둘러보더니 저편 길 건너 기단 돌담 쌓은 집을 향하고 발을 옮겨 놓았다.
영도사 뒷산 송림을 스쳐서 안감내 앞넓은 벌판을 지나가는 바람은 우와 쑤우 쏴- 하는 것이 큰 폭풍우가 지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모진 물결이 들이치는 소리 같기도 하다. 길바닥은 꽁꽁 얼어서 구두 소리는 한껏 높이 울린다. 높은 하늘에 총총한 별조차 대지에 흐르는 찬 기운을 돕는 듯이 쌀쌀하다.
이 바람 속에- 한 옛날, 혼돈이 터지기 전, 빙산이 터져 나가는 듯한 이 처참한 포호 소리 속에 무엇이 어른거리랴? 사면은 고요하다. 바람이 한번 지나간 뒤면 한껏 고요하다. 이 처참한 빛과 소리 속 어느 구석에선지 자세히 기억할 수는 없으나 전신에 넌짓넌짓한 푸대 조각을 걸친 그림자가 어청어청 나타나더니 전차에서 내린 그 키 큰 자의 뒤를 따라가면서,
“엉 어엉 나리 마님 돈 한푼만 줍쇼! 흥 나리 마님!”
금방 죽어져 들어가는 고함을 친다. 그러나 그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저 뚜벅뚜벅 걸었다.
“네! 엉어엉 나리 마님! 배 고프니 보시를 하십쇼 네! 나리 마님 엉엉!”
그 거지는 그 자의 곁에 가서 그 자에게 몸을 주면서 울 듯이 애걸한다.
“저리 가! 없어!”
그자는 거지를 보고 뱉듯이 던졌다.
“엉엉 나리! 그러지 맙쇼. 한 푼만 줍쇼! 네!”
거지는 기어코 따라가서 이번에는 그자의 앞을 막아섰다.
“나리 마님 한푼만 줍쇼.”
“없다는데 웬 잔소리야! 저리 가!”
그 소리는 그리 높지는 않으나 엿 덩어리같이 엉키고 무겁게 울렸다.
“어엉! 흥! 그러지 맙쇼. 나리 마님! 한푼만. 네! 돈 한푼만 줍쇼. 으응흥!”
“이놈아 죽어라. 이 더러운 놈아!”
그자의 억센 주먹과 발길은 거지의 머리와 배에 내렸다
“아이구! 이잉 사람 쥑인다! 으응 흑흑.”
거지는 자빠져서 버둑버둑한다.
또 우우 쑤 쏴! 모진 바람이 지나갔다. 컴컴한 길 위, 무서운 바람 속에 어물거리면서 웅얼웅얼하는 두 사람의 그림자는 유령 같다.
“이놈이 아직도 설죽었나?”
그자의 두발은 자빠진 거지의 배, 가슴, 낯, 다리 할것없이 막 밟았다.
“으응! 끽!”
마지막으로 두어 마디 남긴 거지는 죽었는가 살았는가?
“이 더러운 놈들아! 응 이러구 살아서 뭘 하니? 응, 얘이 (배를 꽉 밟으면서) 못생긴 밍충이들아! 이 꼴이 되고도 두려운 것이 있니? 응? 네 힘이 이뿐이냐? 죽구두 볼 것 있니? 그까짓 한푼 두푼 받아서 뭘 하니? 글쎄 이 (이를 악물고 가슴을 탁 차면서) 밍충아! 차라리 ××밥을 가서 먹고 있지, 그 밥 먹을 줄도 모르더냐? 너희 같은 놈들은 죽어라! 어서 죽어라! 너 따윗 놈들 때문에 한가한 놈들이 더 늘어간다. 응! 한심하지!”
그자는 제풀에 웅얼웅얼하면서 찬 길바닥에 늘어진 거지를 이리 짓고, 저리 짓밟고, 이리 쥐어지르고, 저리 차고 하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던지 머리를 번쩍 들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자는 긴담으로 두른 집 대문간 앞에 가서 딱 섰다. 높다란 대문 위에 달린 전등빛에 그 근방은 환하였다. 대문 윗 턱에는 자개로 아로새긴 ‘한남윤’이란 문패가 붙었다. 그자는 온몸에 전등빛을 받고 서서 그 문패를 쳐다보고 흥 코웃음을 치더니 담을 옆에 끼고 아래 위로 가고 오고 두어 번이나 무엇을 살핀 뒤에 가만히 서서 머리를 기웃하였다. 잠깐 만에 무슨 결심이나 한 듯이 대문을 삐걱 밀면서,
“일오나라!”
불렀다. 대문은 잠가서 열리지 않고, 바람 소리에 들리지 않았는지 안에서도 잠잠하다.
“일오나라!”
이번에는 대문을 꽝치면서 불렀다.
안대문 열리는 소리가 달각하더니 큰대문이 삐걱 열렸다. 언제 깎았는지 더부룩한 대가리가 어둑한 문간으로서 쑥 내밀었다.
“댁 영감 계시냐?”
“네 어서 오셨는지요?”
“지금 전화 건 어른이 오셨다고 여쭈어라.”
그 소리는 거만스럽고 위엄 있이 들렸다.
만찬회는 일곱시 십 분에 열렸다. 정각보다 사십 분이나 늦었다. 이 회에는 없지 못할 동방 신문사 이 편집부장과 김 사회부장이 오 분 전에야 참석하게 된 까닭이었다. 그 두 분이 와서 담배 한 대를 채 태우지 못하여 일동은 주인 아씨의 인도로 식당에 들어갔다.
훈훈하고 구수한 공기가 흐르는 식당의 천정에는 가스 넣은 전등 두개가 간격이 알맞게 고요히 달렸다. 그 아래 방 한복판에 설백색 고운 보에 덮인 교자상이 길게 이어 놓였다. 교자상 아래 위와 양 옆으로는 아청선을 두른 붉은 비단 보료가 반듯하게 깔렸다. 마루 방문으로 들어서면서 바로 보이는 저편 벽과 이편 벽에는 화환에 싸인 기다란 체경이 걸렸다. 밖으로 통한 남창 좌우 미닫이 두껍집에는 지나 사람의 산수화가 붙었고 창 위에는 김해강의 육필현액이 달렸다. 북창은 유리창인데 아롱아롱한 회색 문장이 가렸고 그 위에 서양화가 걸렸다. 그 창 아래에 피아노가 놓이고 그 위에 두어 권의 보표책과 국화 화분이 놓였다.
일동은 비단 보료 위에 규칙 있게 앉았다.
방안의 모든 것은 한껏 빛났다.
교자상 위에 덮인 흰 보는 살근히 벗겨졌다. 하얀 보를 깐 긴 교자상 위에는 번들번들 윤기가 흐르고, 부드러운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온갓 음식이 화초문 놓은 그릇에 담겨서 가지런히 놓였다.
“자- 먹읍시다.”
“무어 변변치 못해서.”
주인 아씨 말은 퍽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이 아씨의 주인은 첩이다. 주인의 큰마누라는 시골서 농사를 짓고 있다. 이 아씨를 모셔 온 것은 금년까지 삼 년이다. 이 아씨는 지금 여자 음악 학교의 피아노 교사로 이름 있는 신경순 여사이다.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주인은 이 신경순 여자 전에는 어떤 기생과 살림하였다.
여러 사람들은 수저를 들었다. 주인 내외는 좌우 경계선- 아랫목은 여자, 웃목은 남자로 갈라 앉은 그 경계선에 마주 앉았다.
“자- 술부텀 먹고.”
풍부한 얼굴에 대모테 안경을 쓴 주인은 상 한 편에 놓인 주전자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제가 따르지요.”
주인과 상을 가운데 놓고 주전자 가까이 마주 앉았던 양복 입은, 머리긴 청년은 주인이 잡으려는 주전자를 잡았다. 이 청년은 소설 삽화와 초상화 잘 그리기로 평판이 자자한 박시언이다.
“우리는 밥 먹읍시다.”
주인 아씨는 공기에 밥을 담아서 여자들께 권하였다.
입 다시는 소리, 수저 소리에 고요하던 방안 공기는 부드럽게 흔들렸다. 사내들 편에는 술잔이 벌써 두어 순배나 돌았다. 주인은 누가 따라 주는 술잔을 건 듯이 들고 만족한 듯이 빙그레 웃으면서,
“그 편에서도 반주나 한 잔씩.” 하고 주인 아씨를 건너다보았다.
“아이그 망칙해라!”
눈을 햘끔하면서 주인을 건너다볼 때 아씨의 언뜻 나타난 흰 이빨과 씹던 밥을 밀어 넣어서 좀 봉긋한 왼 볼에는 애교가 담뿍 흘렀다.
“왜 한잔 먹어 보구려! 술도 예술이라우 하하.”
“하하하.”
일동은 따라 웃었다.
“참말 술도 예술인걸요!”
저편에서 술마시기에 분주하던 이 편집부장은 툭툭이 말하였다.
“그래서 부장은 술잔을 세, 넷이나 앞에 늘어 놓셨소! 하하하.”
“허허허.”
“하하하.”
일동은 편집부장 앞에 죽 벌여 놓은 술잔을 보면서 웃었다. 그것은 축배로 앞뒤에서 보낸 것이다.
“이군은 선술집을 벌였소? 어서 잔 내야 남두 먹지!”
“하하 허허.”
또 일동은 웃었다.
여자들은 서로 입을 막고 킥킥 웃으면서 이편을 보고는 수근거렸다.
아래 위에 배반이 낭자한 때였다. 창밖에서 들리는 이상스런 소리에 모두 귀를 기울였다. 이 찰나, 엷은 놀람의 침묵이 방안에 흘렀다.
“흐응 밥 한술만 줍쇼!”
우우- 땅 위에 삼라만상을 한꺼번에 쓸어가는 듯한 바람 소리 속에 울려서 때아닌 봄빛이 무르녹은 방으로 들어오는 그 소리는 퍽 처량하였다.
그 소리에 모두 그 무엇인 것을 깨달았다는 듯이 여전히 떠들고 술 마신다.
“아범, 그 문 잠그게! 거지 들오네.”
단단한 주인 아씨의 소리에 모든 시선은 한 번씩 아씨의 낯을 스쳤다.
“육신이 멀쩡한 놈들도 저 짓을 하던데!”
누군지 혼잣말처럼 뇌였다.
“먹을 것 없으면, 그래두 목숨은 아깝고 하니 흥.”
주인 아씨 위에 앉아서 밥만 움숙움숙 먹던 콧날이 우뚝하고 하관이 기름한 청년은 탄식같이 말하였다. 그 청년의 눈앞에는 보이는 환상이 있었다.
“없으면 벌지!”
또 누군지 반박 비스듬히 말하였다.
“벌어요? 어디 가서? 흥.”
그 청년은 머리를 번쩍 들어 건너다보더니 젓가락으로 산적을 집는다. 이 사람은 워낙 말이 적고 업무에 퍽 충실하다. 그러나 자기 고집을 세우게 되면 칼, 불이라도 뛰어들 듯이 세우는 것이다. 본래 서백리아서 나서 그곳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지금 동방 신문 기자로 연전에 공산당 혐의로 징역 삼 년을 하였다.
“어- 젊은 사람들이란 허는 수 없어! 그까짓 거지를 가지고 무슨 문제야. 자- 술 부어요."
주인은 잔을 내밀었다. 주전자 잡은 팔이 상위로 내밀더니 술을 따랐다.
“왜 김군은 술 안 먹누? 자 먹어요.”
안경을 콧등에 걸고 눈을 꺼불꺼불하고 상머리에 앉았던 얼굴이 거뭇한 사람은 자기가 마신 빈 잔을 김 사회부장에게 던졌다.
“난 권치 마라. 밥 먹을 테야!”
“왜 오늘은 술허고 불상면인가?”
“그럼 김군은 금향이가 있어야만 먹지.”
머리에 기름이 반질반질한 이쁘장한 은행 사원이란 사람은 싱긋 웃었다.
“어- 그래 그래 허허허.”
“에이 몸 괴로워! 이건 어째들 이러슈. 흥.”
사회부장은 잔을 마셨다.
“김 선생님! 금향이가 누구예요? 호- .”
얼굴이 핼끔한 여자가 이편을 보면서 상글 웃었다.
“아니에요. 그건 거짓말예요…….”
“이거 왜 이래?”
“하하하.”
“김 선생도 그런 데 가시우?”
웃음 소리 속에서 단단한 주인 아씨의 소리가 울렸다.
“가는 게 아니라, 출입은 좀 하나 봐요. 허허허.”
주인 곁에 앉았던 나이가 한 사십 되어 보이는 육영 학교 교장은 느릿한 소리로 말했다.
“에이 미친 년들!”
“금향이라구, 최석현이든가 한 사람의 첩재리가 아니우?”
육영 학교 교장은 누구에게라고 지적 없이 말하였다. 모두 대답이 없었다. 그네들의 시선은 일시에 주인 내외에게 언뜻 주었다. 교장도 비로소 정신차린 듯이 어색히 술잔을 들었다.
“저는 밥 좀 주셔요.”
이제는 밥 찾는 분이 서넛 되었다.
“자- 어서 잡수셔요!”
주인은 이 편집부장을 보면서 독촉이 꽤 심하다.
“이건 어찌라구 사람을 못 살게 구오!”
이 편집부장은 잔을 앞에 넷이나 놓고 또 두 손에 하나씩 들고 울 듯이 부르짖었다.
“여보 마누라! 이것 좀 대신 먹어 주구려!”
편집부장은 저편 주인 아씨 곁에 앉은 살이 유들유들한 부인을 건너다 보면서 외쳤다. 그 소리에 또 웃음이 터졌다. 그 부인은
“아 그럽시요. 하하하.”
쾌활히 웃기는 하면서도 술잔은 받지 않았다.
“어- 우리 마누라가 술을 잘 먹어요. 아주 シヨイ인걸! 허허허.”
흰 알콜 힘에 모든 신경이 가라앉은 소리다.
“하하 저 양반이 내가 술먹는 걸 언제 보았나?”
“왜 저거번에 식도원서…….”
“응! 하하하.”
그부인은 조금도 부인하려 하지 않는 수작이다.
“언제 그래서는 술먹은 걸세. 호호호.”
주인 아씨는 공기에 밥을 담으면서 물었다.
“왜 경희도 갔었지? ”
그 부인은 상 저편에 앉아서 생글생글 웃으면서 약밥을 먹고 있는 얼굴 해쓱한 젊은 여자를 건너다보면서,
“그 한 번 부인 기자까지……. 저…… 이거 깜짝 잊었네…….” 하고 머리를 깨웃한다.
“혁신일보 일 주년 기념 때지요. 흐흐.”
주인 아씨가 담아 주는 밥공기를 받던 동방 신문 사회부장은 얼른 기억을 끄집어내었다.
“그래그래 옳아, 혁신일보 일 주년 기념 때로군!”
그의 부인은 무슨 기쁘고 큰 자랑거리나 말하는 듯이 밥공기를 든 채 만족하게 말을 이었다.
“그때 우리가 포도주 한 잔 하고 위스키를 먹잖었나? 하하하.”
“그래서는 술잡순 것이 영애씨뿐이 아닙니다 그려.”
전깃불 아래 윤기나는 고수 머리를 삭삭 만지고 있던 그 은행원은 편집부장의 마누라를 건너다보더니 다시 경희란 여자를 슬쩍 보고 싱긋 웃었다.
“그까짓 한 잔 술도 술인가요? 호호호.”
경희란 여자는 입을 막고 몸을 뒤로 제치면서 다정스럽게 웃었다.
“일본에서 한 때 ‘청답파 여류 작가’들이 오색술인가 먹고 돌아 다녔다고 신문에 굉장하더니.”
이때까지 말없이 먹고 웃기만 하던 한양 여자 고등 학교 사감은 툭 쏘듯이 말하였다. 그 툭툭하고 멋없는 어성에 일동의 시선은 뚱하고 숨숨 얽은 그 여자에게로 잠깐 몰렸다.
“망했어. 엑! 세상은 말세야! 그러니 욕먹을 수밖에…….”
주인은 술이 취했다.
“그럼 우리두 욕먹어라고 술을 권하우?”
주인 아씨는 주인의 말에 신기가 불편한 듯이 실죽했다.
“하하하, 허허허, 호호호.”
남녀의 웃음은 또 터졌다. 그 웃음에 주인 아씨의 실죽과 주인의 분개가 풀렸다. 사실 주인의 멋없는 분개와 주인 아씨의 실죽을 풀기 위해서 억지로 웃는 이도 없지 않았다.
“모야!”
천정이 울리도록 부르짖는 소리와 같이 비단 방석 위에 떨어지는 윷가락은 모두 자빠졌다.
“중이로구나! 아 중이로구나.”
“호호호”
“내가 이번에는 모를 치네.”
안경을 코에 걸은 자는 팔을 걷고 윷가락을 빼아서 잡더니 머리를 기웃하여 말밭을 본다.
“무얼 보나. 어서 치세.”
콧날이 우뚝하고 하관이 기름한 청년은 말하였다.
“가만 있게. 이렇게 되면…… 가만 저 집은 석 동이고 우리는 두 동일세?”
안경 쓴 자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래 이제 모만 치면 저 놈을 잡네! 어서 쳐!”
“자 내가 모를 친다. 모야!”
“하하하.”
한가락은 천정에 퉁 맞아서 먼저 떨어진 세 가락 사이에 떨어졌다. 큰 소리와 모든 웃음 속에 떨어진 윷은 세 가락이 엎어지고 한 가락이 자빠졌다.
“아 좋아라. 그래 그래 토야 토야.”
저편에서 생글생글 웃던 낯이 해쓱한 여자는 똑똑 뛸 듯이 기뻐하였다.
“엑 토를 치면서 웬 소리가 그리 큰가 하하.”
하관 긴청년은 말을 이리저리 쓰고 있다.
“누가 칠 차롄가? 어서 쳐요.”
누군지 조급하게 재촉하였다.
“저야요!”
숨숨 얽은 여학교 사감은 흩어진 윷가락을 집었다.
“가만 계세요! 아직 말을 쓰거든.”
코안경 건 자는 한 손으로는 말을 잡고 한 손으로는 윷 치려는 것을 막았다.
“이 사람 그래서는 안 돼! 한 동이라도 먼첨 빼는 게 수지!”
하관 긴청년은 한복판 구멍에 놓였던 말을 빼고 토에 달았다.
“엑 밤 다 가네! 어서 그만 쓰게나! 자- 치셔요.”
술이 얼근한 이 편집부장은 얽은 사감을 건너다보았다.
“모를 못 치시면 토를 치셔요.”
누군지 말했다. 사감은 아무 소리 없이 윷을 던졌다.
“으이- 모야! 토야!”
“개가 되소서 하하.”
곁에서 소리가 굉장하였다. 결국 걸이 되었다.
“응 걸도 괜찮아.”
“자 우리는 걸에 다세. 그러면 다 가네!”
열시가 넘어서 식당으로부터 안방으로 건너온 모든 남녀는 열 한시가 치는 줄도 모르고 윷놀이에 열중하였다. 그네들 눈앞에는 손과 손을 거쳐서 올라 떨어지는 윷가락과 붓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놓은 윷밭과 말이 보일 뿐이다. 땅은 얼어 땅땅 갈라지고 바람은 지동 치듯 불건마는 그네들께는 상관 없다. 그 어둠 속을 스쳐가는 바람 속에는 벗고 굶주린 무리들이 처참한 삶의 싸움을 싸우건만 그네들에게는 상관 없다.
이 순간 그네들은 흐릿한 향락에 빠졌을 뿐이다.
불시에 마루방 전화종이 따르륵따르륵 울렸다.
주인 아씨는 급히 일어서서 마루로 나갔다.
“네! 네! 그렇습니다. 네! 계십니다. 네! 네! 잠깐만 기대리십시요.” 하더니 주인 아씨는 미닫이를 스르륵 열고 배를 만지면서 윷판을 들여다보는 주인을 향하여,
“김기선씨가 지금 막차로 오셨는데 지금 뵈옵고 여쭐 말씀이 있대요!” 하고 주인의 의견을 청하였다.
“기선군이 왜 벌써 왔누?”
김 사회부장은 의아히 주인 아씨를 보았다.
“설날이 되니까 시골서 싱숭그리던 게지.”
저편에서 구부정하고 윷판만 들여다보던 은행원이 맞장구를 쳤다.
“아무리 설날이라두 특파 간 사람인데!”
사회부장은 역시 의아타는 수작이다. 술기운에 불그레한 주인은 한참 있더니
“나오라구 하수.”
주인 아씨는 미닫이를 슥 닫더니,
“여보세요. 지금 어디 계서요? 네! 나오시랍니다. 네! 네! 지금 오셔요!”
주인 아씨는 방에 들어왔다.
“여보! 벌써 열 한시가 지났구려! 가야 할 텐데.”
영애란 여자는 남편인 이 편집부장을 건너다보았다.
“왜 무슨 바쁜 일이 있어요?”
주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건너다보았다.
“아뇨. 전차가 끊길 테니…….”
“글쎄 전차가 끊기기 전에 가야지.”
얼굴 해쓱한 여자도 걱정스럽게 뇌였다.
“원 퍽 몸 괴롭게 구네. 아 전화가 있겠다, ‘미까도 자동차’가 있겠다, 무에 걱정될 것 없겠네!”
주인 아씨는 선선하게 벙글벙글하면서 앉았다.
“흥! 오늘은 호사를 막하는구나!”
“바루 자동차 잡수시고 호호.”
“자 어서 쳐야지?”
“으이!”
“옳다. 중이다. 만세 만세!”
낯 해쓱한 여자는 좋아라고 손뼉을 친다.
“자 그러면 우리가 이겼지. 우리 ‘유다이구미’는 나앉고 이번은 내가 치지!”
얽은 사감이 ‘유다이구미’로 나앉고 머리가 긴 화가가 들어앉았다.
“우리 편은 모두 명문 거족들이야! 내가 이번에는 들앉아야지 원 두 구미나 쫓기다니 허허.”
진편의 대표로 주인이 나앉았다.
“쉬- .”
화가 윷은 토가 졌다.
“이거 웬 일이야. 허허허.”
“중- .”
주인의 뿌린 윷가락은 방석에는 떨어지지 않고 이리저리 가서 여러 사람의 무릎에도 떨어졌다. 결국 그것도 토다.
“그래도 남의 것을 잡으니 좋구려!”
“모야!”
이때 창문 밖에서,
“지금 전화하시던 손님 오셨습니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잠깐 침묵을 지켰다.
“들오시래라.”
주인은 흩어진 윷가락을 화가의 앞으로 밀어 놓으면서 머리도 들잖고 말하였다.
문소리가 삐걱 달칵 들렸다. 뒤따라 바람 소리가 맹렬하였다. 큰 파도 소리같이 우- 하고 비 소리같이 쏴- 하고 창을 스쳐 멀리멀리 스러져가는 그 바람 소리는 잠깐 사이 침묵을 지키는 온 사람의 마음을 먼 하늘 끝 어둑한 구름 속으로 끌어가는 듯하였다.
마루방 미닫이가 슥 열렸다. 일동의 시선은 그리로 쏠렸다. 거기는 키 큰 장정이 나타났다.
장정은 미닫이를 고요히 닫았다. 그는 덤석한 수목 두루막 앞섶으로 바른손을 넣더니 그 바른손을 힘있게 쭉 뻗쳐 들었다. 그 찰나! 언득 하는 빛이 일동의 눈을 쏘았다. 일동은 전기나 받는 듯이 몸을 으쓱하 더니 박아 놓은 장승같이 가만히 있다. 그 장정의 바른손에 잡힌 것은 자 남짓한 칼이었다. 서릿발 같은 칼날은 째듯한 전깃불 아래서 번쩍번쩍 빛났다.
“나는 강도다. 지금 김기선의 이름으로 전화한 사람이 나다. 어느 놈이든지 삐걱 덤비기만 해라.”
두툼한 입술을 스쳐 여러 사람의 머리 위에 떨어지는 그 소리는 나직하나마 천 근 쇳덩어리같이 무겁고 힘있게 울렸다.
쏴- 바람이 지나는 소리가 들렸다. 느긋하던 방안의 공기는 각일각 긴장하여졌다. 놀람과 두려움에 점점 푸르고 희어가는 일동의 낯빛은 긴장한 침묵 속에 죽음같이 보였다. 그네들은 모두 머리를 숙였다. 둘러앉은 이, 바로앉은 이, 삐뚤게 앉은 이, 윷놀이할 때 앉았던 그대로 불규칙하게 꼼짝 못 하고 앉았다. 말, 말밭, 흐트러진 윷가락까지 침묵의 세례를 받는 듯하였다.
“나는 돈이 욕심나 들온 사람이다. 너에게 있는 대로 다 끄집어 내야지 그렇잖으면 이 칼을 머리 위에 내릴 테다.” 하고 칼을 한 번 번쩍 휘둘렀다. 그 세모 눈으로 쏘는 날카로운 시선을 여러 사람의 머리 위에 던졌다.
일동은 피와 영혼이 빠져 버린 화석같이 가만히 있다. 몇 억만 년 옛적으로부터 몇 억만 년 미래를 향하여 초초분분 먹어들어가는 시계 소리는 그저 재각재각 깊어가는 밤을 재촉하고 있다.
“웬 일이냐? 응? 못 내놀 테야?”
장정은 한걸음 앞으로 다가서면서 칼끝을 일동의 머리 위로 겨누었다. 일동은 몸을 부루루 떨었다. 전깃불을 받은 몇 사람의 섬유 동백이 팔랑 팔랑 뛰는 것이 보였다.
콧날이 우뚝하고 하관이 기름한 동방 신문 기자는 두루막 옆구리에 손을 넣더니 두 모가 떨어진 지갑을 끄집어 내놓았다. 따라서 모두 부시럭 부시럭 지갑을 집어 내놓았다. 낯이 새파랗게 질린 여자들은 팔목시계까지 떼어놓았다.
“말끔 이리로 모아 오너라!”
장정은 첫머리에 앉은 코안경 쓴 자의 궁둥이를 발끝으로 지긋이 다쳤다. 그자는 부르르 떨면서 머리를 들려다가 그냥 푹 수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게걸음쳐 가서 지갑을 거두었다.
“이리 넣어라.”
장정은 허리춤에서 조그마한 견대를 뽑아 놓았다. 코 안경 쓴 자는 게걸음치는 바람에 어디서 안경이 벗어졌다. 그의 눈은 소믈소믈 오그라졌다. 그는 명령을 좇아 견대를 집더니 눈앞에 들이대로 겨우 견대 아구리를 찾아서 시계와 지갑을 집어넣었다.
“한남윤이 들어 봐라! 너는 겨우 네 포케트의 지갑만 뽑아 놓고 말 테냐!”
그 소리는 천정을 쯔르렁 울렸다.
주인 한남윤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히더니 부들부들 떨리는 혼나간 소리로,
“정초가 되다 보니 집에는 한푼도 없읍니다. 일후에 오시면…….”
말끝을 맺지 못하였다. 바로 이때 우우- 철석 하고 북창을 치는 소리가 났다. 장정은 그 편으로 귀를 기웃하였다. 그것은 바람 소리였다.
“흥! 일후에! 별놈 다 보겠네! 고사를 지내 봐라 일후 오나! 정초가 되어서 섣달 그믐날 남의 등심을 죽죽 긁어서 모아 들인 돈은 어따 두었니?”
그는 주인을 담박 꾹 찌를 듯이 노려 보았다.
“네- 은- 은행에 다 두었읍니다.”
“이놈아 은행 건 은행 거거니와 네 집에 것을 내란 말이다. 저 금고는 그래 못 열 테냐?”
장정은 아랫목 벽장 앞에 놓인 커다란 금고를 쓱 보더니 다시 주인을 노려본다.
“이놈이 칼맛을 보아야 뜨끔한 줄 알겠군! 이리 나오너라!”
장정은 허리를 굽혔다 폈다. 그의 왼손에는 멱살을 잡힌 주인이 끌려나왔다. 끌려나가는 주인의 바지가랭이 속에서는 쁘드득 소리가 났다. 퀴지근한 똥 냄새가 방안에 퍼졌다. 그러나 모두 그것을 몰랐다.
번쩍거리는 칼끝은 주인의 목에 닿았다. 모두 몸을 떨었다. 여자들은 낯을 가리고 무릎에 머리를 박았다. 흑흑 목메인 울음 소리가 극히 미미히 들렸다.
“살려주십요! 열어드리지요!”
주인은 모기 소리만치 지르더니,
“여보 저것 좀 열어드려요.”
하였다.
주인 아씨는 눈물에 젖은 눈을 번찍거리면서 일어섰다. 아씨가 앉았던 자리는 흠썩 젖었다. 장정과 주인의 모양과 아씨의 태도를 슬금슬금 곁눈질해보던 하관이 기름한 신문 기자는 아씨의 자리가 젖은 것을 보고 빙긋 웃었다. 그 웃음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금고는 아씨의 손에 열렸다. 속에 박힌 오동나무 서랍들은 밝은 천지를 보고 화! 한숨을 쉬는 듯하였다.
“그 속에 돈은 깡그리 이리 갖다 넣어!”
주인의 멱살을 잡은 장정은 옆에 놓인 견대를 눈으로 가리키고 주인 아씨를 보았다. 주인 아씨는 동전봉, 백동전, 은전봉, 커다란 지폐 뭉치 할것없이 한 서랍을 담아다가 견대에 넣었다. 떨리는 손으로 넣다가도 빗 넣어서 방바닥에도 흩어졌다. 어떤 돈봉은 터져서 전깃불 아래서 때룩때룩 주인 아씨를 쳐다보았다.
방바닥에 흐트러진 돈까지 한 견대 잔뜩 넣어 놓고 물러 앉는 주인 아씨를 보더니 장정은 주인의 멱살을 놓고 견대를 집어들었다.
"자- 이제는 큰 숨을 쉬어라. 나는 간다. 그러나 나는 날 때부터 이 짓을 배운 것은 아니다. 너무도 굶었으니 말이다. 내게는 밥도 없다. 그런 줄이나 아는 것 같지 않다. 이 취한 놈들아!"
말을 마친 그의 그림자는 방에서 사라졌다. 그 나가는 장정의 뒤를 멀거니 보던 동방 신문 기자는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새벽녘 바람 소리는 더욱 맹렬하고 처참하였다. 우우 쏴- 쑤 북창을 치고 지붕을 넘어서 뜰을 지나 멀리 가는 그 소리! 온 세계를- 음울과 비통에 싸인 온 세계를 금방 부수는 듯하였다.
두려운 침묵 속에 앉았던 방안의 모든 사람들은 몸을 또 한 번 부르르 떨었다. 그네는 그저 아까 앉았던 대로 숨도 크게 쉬지 않고 있다. 그네들은 그네들도 알 수 없는 무거운 저기압에 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