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장헌대왕실록/즉위년/현대어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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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년 8월[편집]

8월 11일[편집]

근정전에서 즉위 교서를 반포하다[편집]

○무자/임금이 근정전에 나아가 교서를 반포하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태조께서 홍업(洪業)을 초창하시고 부왕 전하께서 큰 사업을 이어받으시어, 삼가고 조심하여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충성이 천자(天子)에게 이르고, 효하고 공경함이 신명(神明)에 통하여 나라의 안팎이 다스려 평안하고 나라의 창고가 넉넉하고 가득하며, 해구(海寇)가 와서 복종하고, 문치(文治)는 융성하고 무위(武威)는 떨치었다. 그물이 들리면 눈이 열리듯이 대체가 바로 서매 세절(細節)이 따라 잡히어, 예(禮)가 일어나고 악(樂)이 갖추어져 깊은 인애와 두터운 은택이 민심에 흡족하게 젖어들었고, 융성(隆盛)한 공렬(功烈)은 사책(史冊)에 넘치어, 승평(昇平)의 극치(極致)를 이룸이 옛적에는 없었나니, 그러한 지 이에 20년이 되었다. 그런데 근자에 오랜 병환으로 말미암아 청정(聽政)하시기에 가쁘셔서 나에게 명하여 왕위를 계승케 하시었다. 나는 학문이 얕고 거칠며 나이 어리어 일에 경력이 없으므로 재삼 사양하였으나, 마침내 윤허를 얻지 못하여, 이에 영락 16년 무술(戊戌) 8월 초10일에 경복궁 근정전에서 위에 나아가 백관의 조하(朝賀)를 받고, 부왕을 상왕으로 높이고 모후를 대비(大妃)로 높이었다. 일체의 제도는 모두 태조와 우리 부왕께서 이루어 놓으신 법도를 따라 할 것이며, 아무런 변경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거룩한 의례에 부쳐서 마땅히 너그러이 사면하는 영을 선포하노니, 영락 16년 8월 초10일 새벽 이전의 사건은 모반 대역(謀叛大逆)이나 조부모나 부모를 때리거나 죽이거나 한 것과 처첩이 남편을 죽인 것, 노비가 주인을 죽인 것, 독약이나 귀신에게 저주하게 하여 고의로 꾀를 내어 사람을 죽인 것을 제하고, 다만 강도 외에는 이미 발각이 된 것이나 안 된 것이거나 이미 판결된 것이거나 안 된 것이거나, 모두 용서하되, 감히 이 사면(赦免)의 특지를 내리기 이전의 일로 고발하는 자가 있으면, 이 사람을 그 죄로 다스릴 것이다. 아아, 위(位)를 바로잡고 그 처음을 삼가서, 종사의 소중함을 받들어 어짊을 베풀어 정치를 행하여야 바야흐로 땀흘려 이루어 주신 은택을 밀어 나아가게 되리라."

하였다. 처음에 임금이 지신사(知申事) 이명덕(李明德)을 보내어 상왕께 아뢰기를, “"원컨대 존호(尊號)를 태상황(太上皇)으로 올리고자 하나이다."” 하니, 상왕이 말하기를, “"상왕을 태상왕으로 높히고, 나는 상왕으로 함이 마땅하다. 내가 겸양하는 것이 아니다. 천륜(天倫)으로 말하는 것이니, 주상이 나에게 효도하고자 할진댄, 모름지기 내 말을 좇아야 할 것이라."” 하고, 상왕도 또한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태상(太上)의 칭호는 내가 감당할 바가 아니다."” 하여, 이에 태상왕으로 높이는 예는 거행하지 아니하였다.


예조에서 상왕전에 전(箋)을 올리는 절차를 아뢰다. 임금이 본궁으로 돌아오다[편집]

○예조에서 임금이 친히 상왕전(上王殿)에 나아가 전(箋)을 올리는 거동에 대하여, 그 절차를 아래와 같이 아뢰었다.

"그날에 이르러 북을 쳐서 엄(嚴) 을 삼고, 통례문(通禮門)이 문무 백관의 자리를 대궐문 밖에 설치해 놓되, 문관은 동(東)으로, 무관은 서(西)로 서로 상대하게 겹줄로 항열을 이루되, 북쪽을 위로 한다. 문무 백관은 각각 조복을 갖춘다. 북을 쳐서 2엄(嚴)을 삼고, 판통례(判通禮)가 꿇어앉아 중엄(中嚴)을 아뢰면, 문무 모든 관원이 궐문 밖에 모이고, 병조(兵曹)가 대가(大駕)와 노부(鹵簿) 를 궐문 밖에 진열한다. 북을 쳐서 3엄(嚴)을 삼고는, 모든 위(衛)의 소속원이 각각 자기 대(隊)를 감독하여 전정(殿庭)에 들어와 정렬하고, 봉례(奉禮)가 문무 백관을 인도하여 문 밖의 자리에 나아간다. 시위(侍衛)하는 관원들은 각기 그들의 해당한 옷을 입는다. 총제(摠制) 이하 좌우 시신(侍臣)들은 모두 근정전 서쪽 섬돌에 나아가 봉영(奉迎)하고, 판사복(判司僕)이 근정문 앞에 상로(象輅)를 대령하여 남향하고, 천우 장군(千牛將軍) 한 사람이 큰 칼을 잡고 상로 앞에 북향하여 서고, 지통례(知通禮)는 판통례(判通禮)앞에 자리하고, 통찬(通贊)과 사인(舍人)은 지통례 앞에 자리한다. 그리고 판통례가 꿇어 엎드려 납시라고 아뢰면, 판사복이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올라가 바로 서서 고삐를 잡는다. 전하는 면복(冕服)을 입고 여(輿)를 타고 나와서 서쪽 섬돌로부터 내려온다. 그러면 풍악이 연주되고, 천우 장군이 앞에 나아가 고삐를 잡는다. 전하는 여(輿)에서 내려 상로(象輅)에 오르고, 판사복(判司僕)이 서서 수(綏) 를 준다. 총제(摠制) 이하의 시신(侍臣)들은 상례(常禮)대로 옆에서 모시고, 지통례가 상로 앞에 나아가 꿇어 엎드려 거가(車駕)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아뢰어 청하고 엎드렸다가 일어나 물러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어가가 움직이면, 지통례가 통찬(通贊)과 함께 어가를 옆에서 인도하여 모시고 나아가고, 천우 장군은 어가 옆에서 달려 간다. 어가가 궐문 밖에 이르러 시신상마소(侍臣上馬所)에 이르면, 지통례가 꿇어 엎드려 아뢰어 어가를 잠깐 멈추도록 청하고 문무의 시신들을 말에 오르라 하고, 판통례는 앞으로 승지(承旨)는 뒤로 물러나와 이르기를, ‘가(可)하다고 하옵신다.’ 하면, 통찬·사인이 이를 받아 창하기를, ‘문무 시신들은 말에 오르라 하옵신다.’ 하면, 모든 시위하는 관원들이 각각 자기 소속의 부하들을 독려하여 좌우에서 어가를 호위하고, 상서관(尙瑞官)이 어보(御寶)를 받들어 앞으로 인도하고, 총제 이하 좌우 시신들이 어가 앞에 갈라 서서 시위하며, 문무 시신들이 말에 오르기를 마치면 지통례가 아뢰어 어가 오른편에 오르게 하기를 청하고, 판통례는 앞으로 나가고 승지는 뒤로 물러나와 이르기를, ‘가하다고 하옵신다.’ 하고, 지통례는 물러나와 제자리에 돌아간다. 그리하면 천우 장군이 올라 타기를 마치고, 지통례가 아뢰어, 어가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청한다. 어가가 움직이면 취타(吹打)가 울리고, 문무 여러 신하들은 현무대(玄武隊) 뒤에 상례와 같이 따른다.

어가가 이르려 할 때, 문무 시신들은 말에서 내려 나누어 서서 허리를 굽히고 있고, 어가가 전문(殿門)밖에 이르면, 어가를 돌려 남쪽을 향하게 하고, 천우 장군이 내려서 어가의 오른편에 선다. 지통례가 어가 앞에 나아가 어가에서 내려오시기를 아뢰어 청하고, 엎드렸다가 일어나 돌아와 시립(侍立)한다. 전하는 어가에서 내려 악차로 들어가고, 통례문이 문무 여러 관원을 나누어 인도하여 전정(殿庭)에 나아가, 문관은 동쪽에 서고 무관은 서쪽에 서되, 중심이 머리가 되게 하고, 다른 품위를 겹줄로 하여 북향하여 서게 한다. 판통례가 전하를 인도하여 전문(殿門) 안의 욕위(褥位)에 이르러 북향하여 서고, 산(繖)·선(扇)·화개(華蓋)가 문 밖에 있게 하며, 판통례가 아뢰어 사배(四拜)를 청하면 전하가 사배하고, 통찬·사인이 ‘여러 관원은 사배하라.’ 창하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모두 사배한다. 그리하고 나서 전(箋)을 올려 읽기를 마치고, 판통례가 사배하기를 아뢰어 청한다. 전하가 사배를 하고, 통찬·사인이 ‘여러 관원들은 사배하라’고 창하여, 자리에 있는 이들이 모두 사배한다. 그러면 판통례가 전하를 인도하여 밖으로 나와, 악차(幄次)에 나아가 면복(冕服)을 벗는다. 통례문이 문무 백관을 나누어 인도하여 전문 밖으로 나와서 평상시의 복장으로 옷을 입고 차례대로 선다. 어가가 움직이면, 평상 의례의 절차대로 시종한다."

고 하였다. 이날 임금이 면복을 갖추고 연(輦)을 타고 백관을 거느려 상왕전(上王殿)에 나아가 사은(謝恩)의 전(箋)을 올리니, 그 글에,

"성군(聖君)의 대명(大命)이 그릇 어둡고 어리석은 이몸에 내리시니, 신자(臣子)된 심정으로 놀랍고 두려움을 어찌 견딜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하여도 저에게는 마땅치 않사오며, 중난한 짐을 어찌 감당하오리까.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은 성품과 자질이 어리석고 느슨하오며 학문이 천박하와, 일찍이 동궁에 있을 때에도 종사[宗祧]를 받듦에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요, 단지 양궁 을 받들어 모시고 시선(視膳) 이나 삼가 보살필까 하였사오며, 또한 신은 정사에는 어두우니, 돌이켜 보건대 어찌 족히 백성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뜻밖에 조그마한 이 몸이 갑자기 신기(神器)를 받잡게 되오니, 이는 대개 자애하시는 마음이 두터우시고 덕이 너그럽고 어지시어, 이르시되 뒷사람을 선도하여 어진 계책을 주기에는 모름지기 위를 전하여 뒤에 복을 내리게 하리라 하시와, 드디어 잔약한 이 몸으로 외람되이 큰 자리에 임하게 하시오니, 감히 나라를 초창하실 때에 어려움과 편안히 쉬실 겨를이 없으셨던 일을 우러러 생각치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부탁하옵신 책임이 중난한 줄을 생각하여도, 오직 길이 도모할 바를 마음에 품고 힘쓰겠나이다."

하였다. 임금이 악차에서 물러나와 면복을 벗고 상왕에게 나아가 뵈오니, 상왕이 말하기를,

"마땅히 장의동(藏義洞)의 본궁(本宮)으로 돌아가서 창덕궁(昌德宮)의 역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라."

하였다. 임금이 본궁으로 돌아왔다.


세자의 사빈을 겸했던 박은·이원·유창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편집]

○박은을 좌의정 영경연사(左議政領經筵事)로, 이원(李原)을 우의정 영경연사(右議政領經筵事)로, 유창(劉敞)을 옥천 부원군(玉川府院君)으로, 변계량을 예조 판서 지경연사(禮曹判書知經筵事)로, 유관(柳觀)을 예문관 대제학 지경연사(藝文館大提學知經筵事)로, 탁신(卓愼)을 예조 참판 동지경연사(禮曹參判同知經筵事)로, 이지강(李之剛)을 호조 참판 동지경연사(戶曹參判同知經筵事)로, 이명덕(李明德)을 이조 참판(吏曹參判)으로, 하연(河演)을 지신사(知申事)로, 원숙(元肅)을 좌대언(左代言)으로, 성엄(成揜)을 좌부대언(左副代言)으로, 사재감 정(司宰監正) 이수(李隨)를 동부대언(同副代言)으로, 윤회(尹淮)를 판승문원사 경연 시강관(判承文院事經筵侍講官)으로, 정초(鄭招)를 판군자감사 경연 시강관(判軍資監事經筵侍講官)으로 삼았다. 박은·이원·유창·유관·이지강은 모두 세자의 사빈(師賓)을 겸한 까닭으로 벼슬을 고쳐 제수하였다. 처음에 상왕이 왕위를 전위하고 나서 임금에게 이르기를,

"이명덕은 지신사(知申事)가 된 지 한 달이 넘지 않았으나, 내가 이미 왕위를 내어 놓았으니 명덕도 역시 벼슬을 내놓아야 하며, 주상이 일찍이 이수에게 배웠으니, 지금 비록 직위가 낮다 하더라도 대언(代言) 벼슬을 줄 만하니, 모두 특진 발령하도록 하라."

고 하였다. 시속에서 벼슬의 임기가 차서 갈리는 것을 다 거관(去官)이라고 말한다.


8월 12일[편집]

전위를 받았음을 종묘에 고하다[편집]

○이원을 보내어 종묘에 고하기를,

"공을 쌓고 인(仁)을 쌓아 나라를 세우고, 덕을 닦아 후손에게 복을 내림을 깊이 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부왕(父王)이 그를 계승하여 20년을 내려오시다가, 근일에 병에 걸리시어 청정(聽政)하시기 어려우매, 이에 덕이 적은 이 몸에 명하여 대업을 이어받게 하시었습니다. 생각하옵건대, 위로는 조종(祖宗)의 유업을 계승하지 못할까, 아래로는 신민(臣民)의 기대에 맞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그리하여 재삼 사양하였으나 마침내 부왕의 윤허를 받지 못하고, 이에 영락 16년 8월 초10일에 공손히 대위를 받자왔사오니, 이로써 감히 고하나이다."

하였다.


당상관들과 의논하여 관직을 제수하다[편집]

○임금이 하연(河演)에게 이르기를,

"내가 인물을 잘 알지 못하니, 좌의정·우의정과 이조·병조의 당상관(堂上官)과 함께 의논하여 벼슬을 제수하려고 한다."

하니, 하연이 아뢰기를,

"상왕께서 일찍이 경덕궁(景德宮)에서 정승 조준(趙浚) 등과 상서사 제조(尙瑞司提調)와 함께 의논하여, 벼슬을 제수하시었사온데, 이제 전하께서 처음으로 정치를 행하심에 있어, 대신과 함께 의논하옵심은 매우 마땅하옵니다."

하였다. 임금이 명하여 좌·우 의정과 이조·병조의 당상관과 의논하여, 허지(許遲)를 대사헌(大司憲)으로, 허조(許稠)를 공안부 윤(恭安府尹)으로, 박광연(朴光衍)을 경상도 수군 도절제사(水軍都節制使)로, 정수홍(鄭守弘)을 우사간(右司諫)으로, 박관(朴冠)을 사헌 집의(司憲執義)로, 정기(鄭其)를 사헌 지평(司憲持平)으로 삼았다.


상왕과 대비에게 책보 올리는 일을 위해 봉숭 도감을 설치하다[편집]

○봉숭 도감(封崇都監)을 설치하여 박은과 이원으로 도제조(都提調)를 삼고, 박신·허지·허조·이명덕으로 제조(提調)를 삼았으니, 이는 장차 상왕 및 대비에게 책보(冊寶)를 올리려 하므로 도감을 설치하여 그 일을 맡아 보게 한 것이었다.


사도를 별사엄, 좌패를 좌금위, 우패를 우금위로 고치다[편집]

○사도(司導)를 별사엄(別司嚴)으로, 좌패(左牌)를 좌금위(左禁衛)로, 우패(右牌)를 우금위(右禁衛)로 고쳤다.


지경연·동지경연·시강관 1명씩을 더 두기로 하다[편집]

○경연관(經筵官)으로 지경연(知經筵) 1인, 동지경연(同知經筵) 1인, 시강관(侍講官) 1인을 더 두기로 하였다.


새로 가설찬 좌군 신사를 용분, 우군 신사를 호아라고 칭하다[편집]

○좌우군(左右軍)에 각각 1사(司)를 가설하였으나, 아직 명칭이 없었더니, 이에 이르러 좌군 신사(左軍新司)를 용분(龍奮)이라 하고 우군 신사를 호아(虎牙)라고 하였다.


상왕과 대비에게 각도에서 바치는 진상과 사은 숙배 등을 예전대로 하게 하다[편집]

○임금이 명하여 상왕과 대비의 이전(二殿)에 각도에서 진상하는 것은 모두 예전대로 바치도록 하고, 조관(朝官)이 벼슬을 제수받고 사은하는 것과, 배사(拜辭) 복명(復命)과 상왕전(上王殿)에 숙배(肅拜)와, 종친이나 대소 신료의 문안과 사사로이 진상하는 것도 그전대로 하게 하였다.


좌금위·우금위·사금·내금위·내시위의 절제사들을 임명하다[편집]

○판부사(判府事) 이화영(李和英)과 총제(摠制) 문효종(文孝宗)을 좌금위(左禁衛) 일번 절제사(一番節制使)로 삼고, 한평군(漢平君) 조연(趙涓)·동지총제(同知摠制) 이식(李植)을 이번 절제사(二番節制使)로 삼고,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이담(李湛)·총제 유은지(柳殷之)를 삼번 절제사(三番節制使)로 삼고, 청평군(淸平君) 이백강(李伯剛)·장흥군(長興君) 마천목(馬天牧)을 우금위(右禁衛) 일번 절제사로 삼고, 평양군(平壤君) 조대림(趙大臨)·총제 곽승우(郭承祐)를 이번 절제사로 삼고, 도총제(都摠制) 이징(李澄)·동지총제(同知摠制) 박실(朴實)을 삼번 절제사로 삼고, 총제 권희달(權希達)을 사금(司禁) 좌변 절제사(左邊節制使)로 삼고, 총제 우박(禹博)을 우변 절제사(右邊節制使)로 삼고, 길창군(吉昌君) 권규(權跬)·동지 총제 심청(沈泟)을 내금위(內禁衛) 일번 절제사로 삼고, 의산군(宜山君) 남휘(南暉)·동지 총제 이순몽(李順蒙)을 이번 절제사로 삼고, 당성군(唐城君) 홍해(洪海)·동지 총제 성달생(成達生)을 삼번 절제사로 삼고, 도총제 이백온(李伯溫)·동지 총제 홍섭(洪涉)을 내시위(內侍衛) 일번 절제사로 삼고, 도총제 노귀산(盧龜山)·총제 정경(鄭耕)을 이번 절제사로 삼고, 도총제 정진(鄭鎭)·동지 총제 전흥(田興)을 삼번 절제사로 삼고, 또 장천군(長川君) 이종무·도총제 조질(趙秩)·동지 총제 하경복(河敬復)을 삼군 도진무(三軍都鎭撫)로 삼았다.


8月 13日[편집]

중국에 전위한 일을 아뢸 사은 주문사를 구성하다[편집]

○庚寅/上詣上王殿, 召領議政韓尙敬、右議政李原, 議奏傳位事于大明, 皆曰: “請封世子時未蒙準, 又遽傳位, 朝廷以爲何如?” 時朴訔以疾在家, 遣河演就問之, 訔亦未能定議。 上王曰: “當更議之。” 因命擇可專對者, 爲謝恩奏聞使。 乃以判漢城金汝知爲謝恩使, 工曹參判李迹爲副使, 刑曹判書趙末生爲奏聞使。


종묘 제실과 능묘에서 왕 자신을 일컫는 호칭[편집]

○上命於宗廟第四室及啓聖殿稱孝曾孫嗣王, 宗廟第五室、文昭殿、健元陵稱孝孫嗣王, 齊陵稱孝孫國王。


8月 14日[편집]

영돈녕·영의정·대간을 불러 중국에 전위한 일을 알리는 방법을 의논하다[편집]

○辛卯/上召領敦寧柳廷顯、領議政韓尙敬等及臺諫各一人, 議奏聞事, 議論猶未定, 多謂: “當云患風疾, 發作無時, 不獲已以世子裪權署國事。 印章冕服, 不敢擅傳, 伏候明降。” 唯李原獨曰: “今年正月, 中國使臣見上王無恙。 且今旣請封世子, 皇帝必遣使臣來, 上王若不出見, 朝廷必疑; 若出見, 必知病之非實。 世子廢立未久, 而遽爾傳位, 事理顚倒, 莫若姑稱疾, 奏請傳位。 皇帝假使不允, 再請則必允。” 上命河演以聞于上王, 上王遣演于朴訔第問之, 訔議與原同。 且曰: “開國以後, 上王始受誥命, 事大至誠。 今當授受大事, 不可擅便。” 演還啓, 上王嘆曰: “予厭背上大瘇, 去之欲速, 此正事理難定處也。 左右議政之言是也, 然皇帝萬一不允, 何以處之? 本國非海內之國, 自古不必奏請然後傳位。 雖已承襲, 皇帝不必怒, 宜從衆議。”


상왕전 문안을 이유로 예를 갖춘 거둥과 보통 거둥을 구분하도록 명하다[편집]

○上命備禮行幸, 則步甲士着甲, 行首步行; 常時行幸,則甲士以常服佩劍, 行首騎馬以從。 知申事河演等曰: “前例不可廢也。” 上曰: “予隔一二日問安于上王殿, 若常備禮, 豈無弊乎? 大抵事之有弊者, 除之可也。”


유구 국왕의 아들이 사람을 보내어 단목·백반 등을 바치다[편집]

○琉球國王二男賀通連遣人致書于左、右議政, 獻丹木五百斤、白磻五百斤、金襴一段、段子一段、靑磁器十事、深黃五十斤、川芎五十斤、藿香五十斤、靑磁花甁一口、沈香五斤。 回賜九升白紵布二十匹、黑麻布三十匹、白紬布二十匹、七升緜布四十匹、六升綿布百十一匹、五升緜布二百匹。 令禮曹判書答書曰:

使至辱書, 從審動履嘉裕。 所獻禮物, 謹已啓納。 涉險修睦, 敢不爲喜? 仍將土宜, 就付回使, 不腆爲愧。


왜인 사정 표사귀가 동철장(銅鐵匠)을 데리고 오다[편집]

○倭人司正表沙貴率其國銅鐵匠來。


상왕께 내자시와 내섬시 둘 것을 아뢰었으나 상왕은 속고(屬庫)를 두게 하다[편집]

○上遣河演啓于上王曰: “父王昔爲太祖置一庫, 專辦供上, 此用古制也。 今臣心以爲, 以一國奉養兩殿, 何必置一庫乎? 仍舊令內資、內贍供上, 正合於義。” 上王曰: “主上言出至誠, 合於事理, 然專爲置庫, 舊制也。 承寧府古之內藏庫, 帑物、奴婢俱足, 以此庫屬之無欠。 予於太祖亦然, 從舊制可也。” 演還啓, 上曰: “雖置屬庫, 令內資、內贍仍舊供上。”


중궁의 호를 검비로 정했다가 공비로 고치다[편집]

○上定中宮號曰儉妃, 遣河演啓於上王, 上王曰: “主上好儉約, 此號甚好, 然字音不宜於號。” 乃改以恭。


사복시에서 가뭄을 이유로 목장을 당진 맹곶으로 옮기기를 청하다[편집]

○司僕寺啓: “忠淸道沔川藏德串牧場, 因旱水草枯渴, 請移於唐津孟串。” 從之。


대마도 경차관 이예가 무쇠로 화통 완구를 만들어 볼 것을 아뢰다[편집]

○對馬島敬差官李藝啓: “火㷁碗口唯以銅鐵鑄造, 而銅鐵我國所不産, 因此火㷁碗口未易鑄造。 臣至對馬島, 於賊倭處, 得中國所鑄水鐵火㷁碗口以來。 請以水鐵鑄火㷁碗口, 分置諸州鎭。” 命軍器監試之。


예조에서 태 봉안을 위해 태실 도감을 설치할 것을 아뢰다[편집]

○禮曹啓: “今將涓吉朔安胎, 請依前例, 立胎室都監, 擇吉地。” 從之。


소격전에서 왕이 즉위한 해의 직성을 찾아 초례 지낼 것을 청하다[편집]

○昭格殿請依前例, 畫上즉위년直星, 行醮禮, 從之。


8月 15日[편집]

상왕이 친히 건원릉에 나아가 추석제를 행하고 전위를 고유하다[편집]

○壬辰/上王親詣健元陵, 行秋夕祭, 兼告傳位, 領議政韓尙敬、戶曹判書崔迤、禮曹判書卞季良扈駕。 祭文曰:

嗟我皇考, 至德如天。 叨承丕緖, 十有九年。 身纏宿疾, 難堪聽政。 授位世子, 俾專政令。 向巡舊都, 自春徂夏。 且經令節, 恨未奠斝。 玆當秋夕, 恭修菲薄。 祗謁山陵, 仰(贍)〔瞻〕怵惕。 兼告中情, 竚(布)〔希〕忖度。 俯諒孝思, 庶歆一酌。


상왕의 행차에 이종무 등을 보내어 시위케 하고 주찬을 바치게 하다[편집]

○上遣長川君李從茂、右代言金孝孫、宦官金龍奇侍衛, 仍獻酒饌。 上王行祭訖, 還駐駕野次, 命金孝孫行酒。 上王歡甚曰: “自春以來, 今始解憂, 今日下淚三度。 予之子非不多, 然不得具在眼前, 一恨也。 前日孝寧、忠寧朝夕出入定省, 今忠寧爲國王, 未得數見, 二恨也。 在位十九年, 水旱之災, 無歲無之, 三恨也。” 因賜從茂、孝孫、龍奇馬各一匹。


예조에서 상왕의 전지(傳旨)를 선지(宣旨)로 할 것을 청하다[편집]

○禮曹請以上王傳旨爲宣旨, 其不從宣旨者, 以制書有違論罪, 從之。


양녕 대군에게 주육과 면포 등을 주다[편집]

○上遣宦官朴春茂, 賜讓寧大君褆酒肉及緜布ㆍ紬絹各十匹、布百匹。


순승부를 인수부로 고쳐 상왕전에 소속시키고 새로 경창부를 설치하다[편집]

○改順承府爲仁壽府, 屬上王殿, 府尹二、少尹ㆍ判官ㆍ丞ㆍ副丞各一, 序恭安府之下。 新置慶昌府, 屬中宮, 府尹ㆍ少尹ㆍ丞各一, 序於仁寧府之下, 竝隷吏曹。 仁寧府依舊屬大妃殿, 革府尹一。 初, 上遣知申事河演, 將新置二府之意, 啓于上王, 上王以新設官職有弊不允, 演固請, 從之。


안천보·이지·홍여방·우균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편집]

○以安天保爲左議政致仕, 李枝爲領議政致仕, 洪汝方、禹均爲仁壽府尹, 南琴爲慶昌府尹, 金峙知司諫院事, 郭存中、鄭存誠爲司憲掌令, 鄭宗本、權照爲左右獻納, 李佐爲司憲持平, 皇甫仁、河潔爲左右正言。 天保, 三韓國大夫人安氏之父; 枝, 度祖之孫也。


8月 16日[편집]

임금이 상왕전에 갔다가 노상왕전에 가다. 공정왕을 노상왕이라 일컫다[편집]

○癸巳/上詣上王殿, 還詣老上王殿。 時, 上王及恭靖王皆爲上王, 故恭靖王稱老以別之。


상왕이 박신에게는 창덕궁 역사의 조속한 준공을, 하연에게는 구휼에 대해 이르다[편집]

○贊成事朴信詣上王殿問安, 上王曰: “主上今在本宮, 未得數見, 是可恨也。 卿須督役, 使主上速還昌德宮。” 又謂知申事河演曰: “予前日詣健元陵, 路見禾穀不實, 當有飢饉之憂。 京畿之民則京城所儲可以賑之; 全羅、慶尙、忠淸三道, 稍有蓄積, 亦可以救; 咸吉道地連敵境, 且復置慶源新徙人民, 尤可慮也。 其令政府、六曹議救之之策。”


김여지를 청승습 주문사, 한장수를 사은사로 삼다[편집]

○改謝恩使金汝知爲請承襲奏聞使, 以安原君韓長壽爲謝恩使。


교수관 만호 등에 새로 제수된 지방인의 하직 절차를 면제하다[편집]

○命新除敎授官、敎導、萬戶、千戶在外者, 除朝辭赴任。


삼군 도사 세사람에게 의건부 직임을 나누어 맡게 하다[편집]

○兵曹啓: “以三軍都事三人, 分司義建府。” 從之。


8月 17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甲午/上視事, 仍饋啓事宰樞及臺諫。


사헌부에서 도망간 죄인의 부모나 처자를 고문하는 것에 대해 아뢰다[편집]

○司憲府啓: “臣等竊念, 獄中一日, 若度一年。 且一人在獄, 一家爲之愁苦。 獄者, 聖人之所重也, 故必不得已身犯罪惡, 乃可逮獄也。 今善山所囚金制、定平所囚豆彦, 皆非身犯, 但以其子在逃, 推其去處, 累年滯獄, 誠可痛心也。 夫顧念父母, 常懷戒懼者, 君子之行也。 爲惡之人, 豈以父母爲心乎? 其父母雖明知去處, 父子之間, 天理人情之至, 現則必死, 豈肯告之哉? 如是而久滯於獄, 無益於事。 乞自今犯罪在逃者, 關係社稷事外, 父母妻子收繫考問, 毋致累月。 若終不現, 則依律文, 在逃獄成, 明立文案, 以待後日現身決罪, 以廣好生之德。” 上從之。


노상왕이 광진원에 거둥하다[편집]

○老上王幸廣津院。 院在城東漢水上流。 老上王久病, 以仁德宮陻隘, 設帳殿山麓, 以臨漢水。


호조에서 여러 도의 손실(損實) 답사를 수령과 위관이 함께 하도록 아뢰다[편집]

○戶曹啓: “諸道損實踏驗, 一依《經濟六典》, 務令官民兩便, 然守令以一身, 收穫前遍審爲難。 依近年已行之例, 擇居鄕公廉品官爲委官, 分遣踏驗。 委官踏驗後, 守令親審不中者, 報敬差官覆審。 其守令、委官以損爲實, 以實爲損, 以墾爲陳, 以陳爲墾者, 三品以上申聞, 四品以下直斷論罪。” 從之。


상왕전과 노상왕전 문 앞에 하마비를 세우게 하다[편집]

○禮曹啓: “上王殿門前立牌, 令過者下馬。” 上從之, 因命老上王殿門前, 亦立牌。


평안도 관찰사는 박천성의 이전을, 황해도 관찰사는 옹진성의 이전을 청하다[편집]

○平安道觀察使以博川城不宜風水, 且有水災, 請移置故基。 黃海道觀察使以瓮津鎭城中無水泉, 請擇地移築, 皆從之。


8月 18日[편집]

상왕전에 나아가 헌수하고 대신 종친들과 함께 잔치를 모시다[편집]

○乙未/上詣上王殿上壽, 孝寧大君補、領敦寧柳廷顯、領議政韓尙敬、右議政李原、宗親ㆍ駙馬ㆍ六代言侍宴。 上跪進卓上壽, 上王曰: “予之避位, 欲貯福也, 今反益尊矣。” 柳廷顯獻聯句云: “天設錦筵期萬歲。” 上王和云: “民無菜色感君恩。” 河演云: “恩波浩蕩溫言裏。” 李原云: “國步昇平永樂中。” 韓尙敬云: “中外無憂是今日。” 上王云: “君臣合道事朝廷。” 河演云: “廷臣祝壽呼山岳。” 上王云: “嗣子修身奉祖宗。” 上云: “宗社若危臣任責。” 上王命群臣舞, 上王亦舞曰: “傳位若不得人, 則雖欲忘憂, 得乎? 主上眞守文太平之主也。” 尙敬等曰: “實因聖上知子知臣之明也。 一國臣民祝壽萬年, 永觀太平。” 極歡至夜乃罷。 上王賜河演及盧希鳳內廐馬各一匹。 希鳳, 上之傳命宦者也。


병조에서 선지를 받들어 취각령을 정하다[편집]

○兵曹奉宣旨, 定吹角令曰:

上王殿吹角, 入番兵曹應之以角, 大殿亦應之以角。 三軍入番都鎭撫及節制使, 依序立圖, 作運結陣。 大殿率軍士, 卽詣義建府, 軍士結陣之後, 別作一陣待命。 若命召, 則驗信牌, 率內禁、內侍衛入殿門。 出番三軍鎭撫及節制使, 隨其聞角聲先後, 奔走聚會, 依三軍序立圖作運。 大殿吹角, 則上王殿亦如上項例, 率軍士赴之。 應變之際, 守宮軍馬, 臨機命將守之。 大殿吹角時, 宣字旗、織紋旗、受命等事, 一依吹角兵制。


8月 19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丙申/視事。


즉위하였으므로 문무과를 실시하기를 청하니 따르다[편집]

○吏兵曹以上初卽位, 請設文武科, 從之。


전곡의 회계·마적·군적도 상왕전에 올리게 하다[편집]

○上命錢穀會計、馬籍、軍籍亦進于上王殿。


형조 판서 윤향에게 소도공이란 시호를 내리다[편집]

○諡刑曹判書尹向昭度公。 容儀恭美曰昭, 心能制義曰度。


전라도 대굴포의 바닷물이 붉어지다[편집]

○全羅道大堀浦海水赤。


왜변이 뜸하여 거제와 남해로 들어간 백성들을 목책을 설치하여 보호케 하다[편집]

○慶尙道水軍都節制使啓: “巨濟、南海二島, 倭賊往來之地, 近年以來, 賊變寢息。 因此, 人民避役于二島, 南海二百餘戶、巨濟三百六十餘戶, 萬一有變, 則必爲所掠。 若不禁二島居民, 則當置守城軍, 以嚴守禦。 南海東面赤梁ㆍ西面露梁、巨濟西面見乃梁, 竝宜置兵船。 自水營乃而浦至巨濟, 水路五十餘里, 倘有賊變, 未易赴援。 前者移永登萬戶于玆山島, 請復還永登浦, 以安民業。”

上令議政府、六曹議之。 僉曰: “二島所居婦人、小兒、家財刷出, 止留丁壯耕農事, 已受敎行移, 不必更論。 玆山萬戶則復還永登甚當。” 兵曹議曰: “二島之地, 膏腴可耕, 宜置木柵, 以庇農民。” 上從之, 仍命待豐年設木柵。


경창부에 지인(知印) 30인을 두도록 하다[편집]

○吏曹啓: “慶昌府請依仁寧府, 置知印三十人, 以諸司權知直長充差。” 從之。


한성부에서 죽은 관청 노비를 조사하는 방법과 미아(迷兒) 처리 문제를 아뢰다[편집]

○漢城府啓: “諸司奴婢物故者, 城中則五部官, 城外十里則本府官, 皆親到檢驗。 然素不識奴婢名貌, 姦詐之徒或以他人物故者, 變名易實, 規避其役。 今後與其司當該官同檢, 兼考賤籍, 以防姦僞。 京城人居稠密, 小兒出過數門, 則不得尋其家, 卒至迷失, 得之者亦不得其所居。 或有姦詐之徒, 隱藏哺養, 以爲奴婢者。 今後凡得遺失小兒者, 悉送濟生院, 戶曹給糧以養之, 父母之失兒者, 亦詣濟生院尋之。 官徵其父母楮貨三十張, 給得兒者, 苟有匿不告者, 里內管領及五家竝論罪。” 從之。


창덕궁 역사에 부역한 사람과 장색에게 면포와 정포를 하사하다[편집]

○賜昌德宮赴役人匠綿布五十匹、正布百匹。


아악서 악공들의 예조 사역을 일체 금단하도록 하다[편집]

○司憲府啓: “雅樂署樂工, 本爲祭享而設。 今禮曹一應賤役, 無不使喚, 一皆禁斷。” 從之。


8月 20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丁酉/視事。


상왕이 광진원에 나아가 노상왕을 뵙다[편집]

○上王幸廣津院, 謁老上王, 上遣(盧布鳳)〔盧希鳳〕, 進酒果。 上王日暮乃還。


정릉 제사와 기신재제를 족친이 맡아 지내게 하다[편집]

○禮曹啓: “神德王后貞陵祭及(忌晨)〔忌辰〕齋祭, 不宜國行。 請給田五結, 令其族親主辦。” 從之。


예조에서 상왕과 대비와 중궁의 봉숭 절차에 대해 아뢰다[편집]

○禮曹啓: “上王、大妃封崇諸事, 依庚辰年封崇例; 中宮封崇諸事, 依辛巳年封崇例。” 上從之, 因命上王、大妃封崇諸事, 極其精緻。


참찬 김점이 황제가 준 명칭 가곡을 속악과 섞어 연주하여 사신에게 들려줄 것을 아뢰다[편집]

○參贊金漸啓曰: “臣嘗奉使朝廷, 帝賜《名稱歌曲》。 請交奏於俗樂, 使朝廷使臣聞之。” 上曰: “尊閣之可也, 何必交奏? 雖交奏, 聲音殊異, 使臣必不能辨, 何益之有?” 不允。 後有使臣, 乃命交奏。


8月 21日[편집]

상왕전에 나아가다[편집]

○戊戌/上詣上王殿。


흉년이므로 호조에 명하여 사전도 아울러 정확히 답사하도록 하다[편집]

○上命戶曹: “今年風水爲災, 禾穀不稔, 民生可慮。 其令諸道敬差官須及刈穫前, 幷私田踏驗, 務要得中, 使民不怨咨。”


민무구와 이거이의 처자에게 자유를 주고 김한로를 청주로 양이케 하다[편집]

○上稟宣旨, 乃命刑曹: “閔無咎、無疾、無恤、無悔妻子, 許外方從便; 李居易子孫, 京外從便; 金漢老量移淸州。” 刑曹判書趙末生等啓曰: “此輩皆罪干不忠, 於殿下卽位之初, 不可輕宥。 且漢老不可近京城。” 上曰: “上王有命, 不敢不從。” 末生等固請, 不允。


상왕이 문안과 숙배와 복명의 범위를 정해 그외에는 모두 면제하게 하다[편집]

○上王命宗戚、功臣外, 二品以上常時問安及兵曹所屬外新拜官者謝恩, 竝皆除之。 又命觀察使、二品以上守令及諸以軍務出使者外, 其餘除拜辭、復命。


예조에서 일본 방장 풍삼주 자사에게 보내는 답서[편집]

○禮曹啓: “本曹判書答日本國防、長、豐三州刺史大內多多良道雄書曰: ‘使至惠書, 從審體履康勝。 所獻禮物, 謹已啓聞收納。 兼諭, 《藏經》曩因貴國諸鎭求索殆盡, 安有吝惜之理也? 惟照悉。 所索之物, 俱在別幅, 兼致土宜, 以表謝忱。’” 從之。


예조에서 경연 진강 때의 좌석 차서에 대해 아뢰다[편집]

○禮曹啓: “經筵進講時坐次, 領經筵東壁, 知經筵、同知經筵西壁, 參贊官以下南行。” 從之。


일본 서해도 일향주 태수와 대마주 조율 산성수가 토산물을 바치다[편집]

○日本國西海道日向州太守藤元久, 對馬州篠栗山城守宗仸遣人來獻土物, 竝計直回賜。


유구국에서 보낸 친선 사절이 풍랑을 만나다[편집]

○慶尙道觀察使報: “琉球國遣使來聘, 其使人遭風船敗, 漂失禮物, 溺死者七十餘人, 存者亦多病傷。 來泊閑山島。” 上命賜衣服, 廚傳上送。


8月 22日[편집]

원민생이 황제에게 아뢰었음을 인준한 예부 자문을 가지고 오다. 사신 육선재가 요동에 이르다[편집]

○己亥/謝恩使元閔生齎奏準禮部咨文, 回自京師, 啓: “使臣陸善財已到遼東。” 上王賜閔生米豆五十斛, 上賜鞍具馬一匹。 禮部咨曰: “近準朝鮮國咨: ‘請照驗, 煩爲奏請, 明降施行。’ 準此。 永樂十六年七月二十七日早, 本部官於奉天門, 奏請聖旨: ‘已有勑書, 與國王準他擇賢。 恁禮部行文書, 與王知道。’ 欽此, 除欽遵外, 合行回咨本國知會施行。”


의주에 선온을 가지고 가 사신을 맞이하게 하다[편집]

○遣長川君李從茂于義州, 齎宣醞, 迎使臣。


명나라 사신이 온 때문에 종묘 배알 의례를 동향 대제 때 겸행하도록 하다[편집]

○以上初卽位, 將行謁廟之禮, 至是, 以有朝廷使臣, 命於冬享大祭兼行(行)。 大司憲許遲等請勿停謁廟之禮, 不允。


대간이 민무구 등 처자에게 자유 주지 말고 김한로를 감죄하지 말 것을 청하다[편집]

○臺諫請閔無咎、李居易等妻孥, 勿許從便; 金漢老勿許量移, 只允居易、漢老之事。


행대 감찰을 경기좌·우도에 나누어 파견하다[편집]

○分遣行臺監察金寧、具綱于京畿左、右道。


함길도 경원 병마 절제사 조비형이 이주시킨 백성의 상황에 대해 아뢰다[편집]

○咸吉道慶源兵馬節制使曺備衡啓: “今先運新徙民四百戶內, 時到者但百八十戶而已。 歲戊寅, 修孔州城, 置慶源府, 徙道內富民以實之, 其後再經兵亂, 流移四散。 今復置府, 已令各官刷還, 而各官托以不付籍, 不卽刷還。 然其産業基址尙在, 分辨不難, 乞勿論付籍與否, 悉令刷還。 且元居人民, 其父母妻孥, 盡爲賊所殺擄, 而移居賊衝龍城之地, 累年戍禦, 本府復立之後, 又先徙居可尙。 乞賞以添設檢校之職, 以慰其心。”

上令兵曹擬議。 兵曹啓: “募道內無産業者徙之, 復三年徭役, 除其租稅。 刷還流移人民, 卽依所啓爲便。” 從之。


제주 안무사가 태풍의 피해를 보고하다[편집]

○濟州按撫使報: “七月二十七日夜大風雨, 邑城東門及官舍、民屋多頹, 林木皆拔, 諸浦船多漂破。 大靜、旌義縣亦如之。”


이사관과 문효종이 반란을 모의한다고 무고한 대정 한언을 사형에 처하다[편집]

○初, 隊正韓彦誣告富平府使李士寬、摠制文孝宗謀亂, 下義禁府鞫之, 彦服誣, 至是斬之。


8月 23日[편집]

상왕이 대신들과 명 사신에게 전위한 까닭을 말할 것에 대해 의논하다[편집]

○庚子/上詣上王殿。 上王御便殿, 召領議政、右議政、六曹判書、長川君李從茂, 議與使臣說傳位之故, 獻議不一。 又召府院君成石璘、南在、鄭擢、劉敞、安景恭等博議。 南在、鄭擢、劉敞等曰: “當云父王有疾, 以世子權署國事, 而世子出迎, 父王不出爲可。” 石璘、景恭等曰: “封世子準奏之勑, 當父王之身, 父王不受帝命, 非禮也。 父王隱傳位之事, 以國王迎勑, 主上除翼善冠, 以世子迎勑, 使臣回還後, 奏請傳位爲可。” 上王曰: “新王卽位, 已頒敎書於四方, 使臣到義州, 豈不聞知? 隱之則不直, 宜說父王之疾發作無時, 故令世子權署。 然請封世子, 今未蒙準, 未得奏請傳位。 今父王之疾稍愈, 將力疾迎勑。” 李從茂承命以行。


상왕이 사은사로 심온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말하다[편집]

○上王曰: “謝恩使須遣親戚, 韓長壽雖親戚, 不若沈溫。 且黃儼素識溫, 溫往, 儼必用力。” 乃以溫代長壽。


8月 24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辛丑/視事。


이조 판서 정역을 안주에 보내어 선온으로 사신을 위로하게 하다[편집]

○遣吏曹判書鄭易于安州, 齎宣醞, 慰使臣。


목장을 함길도 화주 말응도에서 도련포로 옮기다[편집]

○咸吉道觀察使啓: “和州末應島地窄, 不宜牧場, 移於都連浦爲便。” 從之。


상의원에 명하여 상아 원패와 오매패를 더 만들게 하다[편집]

○上命尙衣院, 加造象牙圓牌十二、烏梅牌三十。


흉년이므로 경상도 각 고을의 철 바치는 것을 면제해 주다[편집]

○慶尙道觀察使啓: “道內郡邑旱荒, 請免今年貢鐵。” 從之。


8月 25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壬寅/視事。


도총제 노귀산을 평양에 보내어 선온으로 사신을 위로케 하다[편집]

○遣都摠制盧龜山于平壤, 齎宣醞, 慰使臣。


상왕이 군사에 관한 일을 임금에게만 아뢴 병조 참판 강상인 등을 가두게 하다[편집]

○上王命囚兵曹參判姜尙仁、佐郞蔡知止于義禁府獄。 時, 上御藏義洞本宮, 兵曹每以軍事不啓上王, 先啓於上, 上輒却之曰: “何不啓父王?” 上王知之, 欲試觀其所爲, 問尙仁曰: “象牙牌、烏梅牌, 將用之何事?” 尙仁曰: “用以招大臣。” 上王卽出象牙、烏梅牌, 付尙仁曰: “在此無所用, 宜悉輸王宮。” 尙仁卽奉詣主上殿, 上問曰: “此何所用?” 尙仁曰: “用以召在外將帥。” 上曰: “然則不可置諸此也。” 卽令尙仁還納之。 上王以尙仁爲回詐面欺, 召右副代言元肅與都鎭撫崔閏德, 宣傳于上曰: “予曾下敎書曰: ‘軍國重事, 予親聽斷。’ 今尙仁等, 凡軍事只啓於主上, 不啓於予。 又前日命尙仁錄可受職者, 尙仁加書其弟尙禮, 啓主上除司直, 來謝曰: ‘主上以臣弟尙禮爲司直。’ 是欺君也。” 又遣崔閑, 諭義禁府曰: “初予在留後司, 語主上曰: ‘爾將受我憂, 予雖否德, 在位久、識人多, 軍國重事, 予親聽斷。’ 今兵曹近在宮庭, 只啓巡綽事, 餘悉不啓。 我聽軍事, 何關社稷? 其問首發此議者, 如其隱匿, 宜加拷訊。” 於是, 兵曹待罪。 命宦官盧希鳳點檢軍事, 知兵曹事元肅入直兵曹。


일본 대마주 수호 도도웅와가 예물을 바치고 범종과 《반야경》을 청구하다[편집]

○日本國對馬州守護都都熊瓦遣人獻禮物, 以其父貞茂遺意, 求梵鍾及《般若經》。


8月 26日[편집]

상왕전에 나아가다[편집]

○癸卯/上詣上王殿。


상왕께 군사일을 여쭙지 않은 박습 등을 의금부에 가두고 국문케 하다[편집]

○下兵曹判書朴習、參議李慤、正郞金自溫ㆍ李安柔ㆍ梁汝恭、佐郞宋乙開ㆍ李叔福于義禁府獄, 命義禁府提調柳廷顯等曰: “上王厭其萬機, 唯聽軍事, 兵曹凡軍事, 一不啓稟, 卿等鞫問其由。” 又命三省、刑曹判書趙末生、大司憲許遲、右司諫鄭尙、委官戶曹參判李之綱等雜治。 上王命崔閏德, 亦往義禁府按問。


판돈녕부사 권홍을 황주에 보내어 선온으로 사신을 위로케 하다[편집]

○遣判敦寧府事權弘于黃州, 齎宣醞, 慰使臣。


경기 양주 수락산에서 큰 돌이 무너져 내리다[편집]

○京畿楊州水落山大石崩, 高二十三尺, 廣二十八尺。


8月 27日[편집]

박자청·조말생·김여지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편집]

○甲辰/以朴子靑參贊議政府事, 趙末生爲兵曹判書, 金汝知刑曹判書, 崔閏德中軍都摠制, 馬天牧長興君, 盧龜山判漢城府事, 李灌吏曹參判, 李明德兵曹參判, 沈仁鳳、李植、金貴寶竝爲左軍摠制, 河敬復右軍摠制, 許權、沈泟竝爲中軍同知摠制, 成達生左軍同知摠制, 元胤右軍同知摠制, 李皎同知敦寧府事, 吳陞漢城府尹, 韓尙德仁壽府尹, 沈澄慶昌府尹, 鄭尙禮曹參議, 元肅兵曹參議, 曺致刑曹參議, 成揜爲右代言, 金益精爲左副代言, 李隨右副代言, 尹淮同副代言, 以左代言金孝孫知兵曹事, 崔關左司諫大夫, 金顧司憲掌令, 金尙直、權孟孫、金廧竝爲兵曹正郞, 鄭載、鄭麟趾、兪孝通竝爲兵曹佐郞。 權無才行, 苛察暴虐, 外施廉正; 胤性喜便習, 以酒色爲事。


상왕이 강상인을 단단히 고문하도록 명령하다[편집]

○義禁府啓: “尙仁及郞廳六人, 皆加拷訊, 以不察事務爲辭。 請幷朴習、李慤拷訊。” 上王曰: “朴習在任日淺, 其置之。 尙仁自少從我, 及今常爲尙衣院提調, 又爲兵曹, 皆委重任, 不顧予恩, 懷詐欺罔。 前日又詐加其弟尙禮官, 乃告予曰: ‘主上除此職。’ 矯旨欺我, 此罪亦重。 宜加拷訊, 限以不死。”


호조에서 강원도와 함길도의 구황 방법에 대해 아뢰다[편집]

○戶曹啓: “今歲飢荒, 江原、咸吉二道尤甚。 請江原今年祿轉及諸倉所納米穀, 收置其道以賑之。 咸吉則本乏儲峙, 請以古江陵道今年田租, 收納于咸吉近境通川、高城等處; 古交州道田租, 收納于淮陽等處以賑救。” 從之。


8月 28日[편집]

상왕이 임금과 더불어 동교 대산으로 거둥하여 노상왕을 맞아 즐기다[편집]

○乙巳/老上王在廣津。 上王與上幸東郊臺山, 邀老上王置酒。 上王奉承恭甚, 上尤謹, 極歡抵暮而罷。 上王騎白馬而還, 中途下馬, 召河演曰: “命尙乘, 改鞍以進主上。 予素愛此馬馴良, 以遺主上。” 乃改御他馬而行。 又謂河演曰: “吾父子事, 歷代所無, 恨不令完山君見之。” 因噓唏。


오랑캐가 잡아간 평안도 여연군 남녀 10명을 지군사 박자검이 빼앗아 오다[편집]

○平安道觀察使馳啓: “吾郞哈四十餘人, 寇閭延郡, 擄男婦十名以歸, 知郡事朴自儉追之, 盡奪而還。”


8月 29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丙午/視事。


전 대제학 정이오를 태실 증고사로 삼다[편집]

○以前大提學鄭以吾爲胎室證考使, 賜毛冠及靴藥。


상왕이 박습과 강상인을 원종 공신이라 하여 용서하고 면죄하다[편집]

○上王以朴習、姜尙仁爲原從功臣宥之, 放尙仁歸田里。 李慤、梁汝恭、李安柔、金自溫、宋乙開、李叔福、蔡知止贖杖六十。 尙仁自上王潛邸時, 始爲家臣, 及卽位擢用, 猶使幹本宮私財, 監其出納。 至是, 上王遣人謂曰: “汝三十年從我, 今日乃如此。 尙念舊日, 不加以罪, 宜自循省。”


병조에서 상왕께 앞으로 중외의 군무를 상왕의 선지를 받겠다고 아뢰다[편집]

○兵曹啓于上王: “今後, 中外軍務, 本曹啓奉宣旨行移後, 具本啓于主上。” 從之。 兵曹又啓: “凡受點, 已受點後, 啓于主上, 口傳則已啓聞後, 更修入抄狀啓于主上, 然後口傳。” 凡用人, 該曹每一任, 書可用者三人以啓, 御筆點當用人名上, 謂之受點, 用之於二品以上。 備任時, 如提擧、別坐、敬差官之類, 不由批目而用之者, 謂之口傳, 用之於三品以下差任時。


노상왕이 광진에서 인덕전으로 돌아오다[편집]

○老上王自廣津還仁德殿。


8月 30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丁未/視事。


권규를 유후사로 보내어 사신을 위로하게 하고 원민생에게 맞이하게 하다[편집]

○遣吉昌君權跬于留後司, 齎宣醞, 慰使臣。 又遣元閔生迎使臣。


상왕이 양녕을 대비가 보고싶어 한다며 불러오게 했으나 당장은 보지 못하다[편집]

○上王遣崔閑謂上曰: “大妃欲見讓寧, 明朝召之, 主上亦當來見。 將此諭臺諫。” 上召臺諫諭之, 臺諫進曰: “上王慈愛之心、殿下友于之情, 固無嫌疑, 然往來之際, 於都人耳目何?” 兵曹判書趙末生、刑曹參判李愉等亦力言其不可, 上王竟不卽見。


사헌부에서 박습과 강상인의 죄를 청했으나 상왕이 허락치 않다[편집]

○司憲府上書, 請朴習、姜尙仁罪, 上轉聞於上王, 上王不允。


병조에서 상서사의 마패를 본조에 나누어 두기를 청하니 상왕이 허락하다[편집]

○兵曹啓曰: “軍務起馬事劇, 請以尙瑞司馬牌, 分置本曹。” 上王許之。


상왕이 병조 판서·참판·참의의 병사 출납을 대언사 예에 의거하도록 명하다[편집]

○上王命今後, 兵曹判書、參判、參議凡兵事出納, 一依代言司例。


상왕이 황룡대기 2개를 만들어 의건부 및 삼군부에 두도록 하다[편집]

○上王命造黃龍大旗二, 分置義建府及三軍府。 上王殿大旗, 黃衿白質, 畫以黃龍, 以別於主上殿大旗。


상왕이 노상왕과 임금과 더불어 의건 삼군 양부의 군사를 검열하겠다고 하다[편집]

○上王命近日與老上王及主上, 親閱義建、三軍府軍士, 令鎭撫所預備以待。”


즉위년 九月[편집]

9月 1日[편집]

상왕전에 나아가다[편집]

○戊申/上詣上王殿。


상왕이 박신을 청승습 주문사로 임명하다. 상왕이 임금과 함께 사은사를 전송하다[편집]

○上王命以贊成事朴信代金汝知爲請承襲奏聞使。 上王與上御凉亭, 餞謝恩使沈溫、副使李迹及朴信。 上王賜溫內廐馬。


의건부와 삼군 도총제부 판부사 이하 호군 이상은 조회가 끝난 뒤 의건부에 모여 병조의 명령을 듣도록 하다[편집]

○兵曹啓: “奉宣旨, 義建府、三軍都摠制府判府事以下護軍以上, 每衙日朝會後, 除主上殿入直外, 竝會義建府, 聽兵曹令後乃散。”


9月 2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己酉/視事。


우의정 이원과 참찬 김점을 벽제역에 보내어 사신을 영접케 하다[편집]

○遣右議政李原、參贊金漸, 迎使臣于碧蹄驛。


사간원에서 박습과 강상인을 죄주기를 청했으나 상왕이 허락치 않다[편집]

○司諫院上書, 請朴習、姜尙仁罪, 上以聞上王, 上王不允。


병조에서 상왕께 구전은 선지를 받들어 시행하겠다는 것 등을 아뢰다[편집]

○兵曹啓: “已令本曹依承政院例掌出納, 今後凡口傳, 本曹奉宣旨施行。 宣牌、粉牌, 竝依代言司例爲之, 宣牌則篆刻宣旨牌, 粉牌篆刻兵曹牌。” 上王從之。


상왕이 국왕의 장인인 심온의 좌차를 올려 정하도록 하다[편집]

○上王曰: “沈溫, 國君之舅, 其尊無比, 宜爲領議政。 其座目, 與兩政丞議之。” 朴訔曰: “宜在昌寧府院君成石璘上。”


순덕후의 아내가 나라에서 하사한 노비를 상속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다[편집]

○順德侯陳理妻李氏上言:

妾以寡婦, 久蒙聖恩, 又賜奴婢, 俾免負汲之勞。 然本無奴婢, 無以存活子孫, 乞所賜奴婢, 特許永傳子孫。

從之。


이종무를 사신 관반으로 삼다[편집]

○以李從茂爲使臣館伴。


일본 대마주 수 호대영이 토산물을 바치고 부의 보내 준 것에 감사하다[편집]

○日本國對馬州守護代榮遣人獻土宜, 致書于禮曹曰:

前者遣敬差官李藝, 以貞茂死致賻祭, 都都熊瓦感極不已。

判書答書曰:

向遣李藝, 致賻物薄, 今乃示以遙謝之意, 深用爲愧。 不腆土宜, 具在別幅。


예조에서 아뢴 사신 맞이하는 의례 절차[편집]

○禮曹啓迎使臣儀曰:

先期, 有司設帳殿于慕華樓西北, 立紅門於帳殿前結綵。 設龍亭、褥位於帳殿正中, 香亭在其南。 設司香二人位於帳殿外左右。 設上王殿下與殿下位於帳殿之西道邊近北東向, 殿下位差後。 設文武群臣位於帳殿之南, 文東武西俱北上。 備金鼓、儀仗, 鼓樂於慕華樓前, 以伺迎引。 又於城內街巷結綵, 又於王宮設闕庭於殿上正中。 設勑書案於闕庭前小東, 賜物案於闕庭前小西, 香案于闕庭南, 設司香二人位於香案左右。 設展勑書、展賜物官二人位於月臺之東小西西向。 設上王殿下受賜位於香案前, 設上王殿下與殿下拜位於殿庭露臺上, 北向, 殿下差後。 設上王殿下幄次於殿西庭中, 又設殿下幄次於殿西差後, 設群臣拜位於露臺下左右近南北向, 異位重行如常。 設司贊二人位於上王殿下拜位之北, 引禮二人位於司贊之南, 俱東西相向, 引班位於群臣拜位之北, 東西相向。 陳儀仗於殿中東西, 設樂部於群臣拜位之南。 其日, 上王殿下與殿下率群臣, 時服備儀仗, 出慕華樓。 使臣將至, 文武群臣先就位分立, 引禮引上王殿下與殿下出就位。 使臣至帳殿前下馬, 上王殿下與殿下率百官, 躬身迎使臣, 以勑書置龍亭中, 賜物舁擔者立帳殿前。 龍亭子出上路, 司香二人來侍香亭, 續上香, 龍亭南向小住。 金鼓在前, 次群臣, 次殿下, 次上王殿下, 次儀仗鼓樂, 次香亭, 次勑書龍亭, 次賜物舁擔, 次使臣。 上王殿下與殿下、使臣, 一時乘馬小駐, 群臣騎馬, 以次先導, 行至宮門, 群臣由西門入殿庭, 東西各就位。 引禮引上王殿下與殿下, 由東門入, 殿下差後。 就殿前露臺西邊庭中近北東向立, 殿下稍南立。 龍亭舁擔及使臣由中門入, 上王殿下與殿下率百官, 躬身迎使臣升殿, 引禮引上王殿下與殿下入幄次。 執事設上王殿下與殿下褥位於露臺上近北北向, 殿下位稍南。 使臣置勑書及賜物於案上, 立於勑書案之東西向, 引禮引上王殿下與殿下就拜位。 引禮贊鞠躬、四拜、興、平身, 上王殿下與殿下鞠躬, 樂作, 四拜、興、平身。 司贊唱鞠躬、四拜、興、平身, 群臣鞠躬、四拜、興、平身, 樂止。 引禮贊跪, 上王殿下與殿下跪, 司贊唱跪, 群臣皆跪。 司香二人進香案前, 一人奉香爐, 一人奉香榼相對, 三上香訖, 各置于案上, 退復位。 引禮贊俯伏、興、平身, 上王殿下與殿下俯伏、興、平身, 司贊唱俯伏、興、平身, 群臣俯伏、興、平身。 引禮引上王殿下, 由西階升詣香案前受賜位北向立, 使臣稱有制。 引禮贊跪, 上王殿下跪, 司贊唱跪, 殿下與群臣皆跪。 使臣奉勑書, 西向授上王殿下, 上王殿下受勑書, 授近臣。 使臣奉賜物, 授上王殿下, 上王殿下受賜物, 授近臣。 近臣展勑書跪進, 上王殿下覽訖, 授近臣。 引禮贊俯伏、興、平身, 上王殿下俯伏、興、平身, 司贊唱俯伏、興、平身, 殿下率群臣俯伏興平身。 引禮引上王殿下, 退復位。 引禮贊鞠躬、四拜、興、平身, 上王殿下與殿下鞠躬, 樂作, 四拜、興、平身, 司贊唱鞠躬、四拜、興、平身, 群臣鞠躬、四拜、興、平身, 樂止。 引禮贊禮畢, 司贊唱禮畢。 引禮引上王殿下與殿下, 從殿前月臺西邊階入幄次, 引班引群臣出。 引禮引上王殿下, 升殿東向, 與使臣相對立。 引禮贊鞠躬、再拜、興、平身, 上王殿下鞠躬、再拜、興、平身, 還幄次。 引禮引殿下升殿, 與使臣行禮如上儀訖, 引禮引殿下, 還幄次。 通事引使臣, 出就二房, 諸君與使臣出, 行頓首再拜禮。 次宰樞, 次各司以此行禮畢。【若使臣不就二房而出, 則各司分司先就太平館行禮。】通事引使臣出, 引禮引上王殿下與殿下, 送于仁政門外。


9月 3日[편집]

햇무리 지다[편집]

○庚戌/日暈。


심온을 영의정부사, 한상경을 서원부원군으로 삼다[편집]

○以沈溫領議政府事, 韓尙敬爲西原府院君。


형조 판서 대사헌 좌사간이 합동으로 박습과 강상인을 죄주기를 상소하다[편집]

○刑曹判書金汝知、大司憲許遲、左司諫崔關等合司上疏曰:

人臣之罪, 莫大於不敬, 不敬之實, 莫甚於矯誣。 上王曾降敎書曰: “軍國重事, 予親聽斷。” 中外臣民所共見聞。 近者, 朴習、尙仁等職當兵曹, 事干軍務者, 一不稟焉, 其不敬明矣。 況尙仁久蒙上王卵翼之恩, 雖至糜粉, 固難報其萬一。 反懷姦詐, 欲爵其弟, 矯上王之旨, 又假殿下之命, 以欺上王, 其爲矯誣甚矣。 朴習旣犯不敬之罪, 又陷於尙仁譎計, 其罪一也。 正郞金自溫以武選司而聽從其說, 佐郞宋乙開亦從而加書, 以遂矯誣之計, 其罪亦不小焉。 上項朴習等四人, 收其職牒, 窮詰其由, 以正其罪。 李慤、李安柔、梁汝恭、蔡知止、李叔福亦不體上王敎書之旨, 同犯不敬之罪。 上王以朴習、姜尙仁原從免罪之故, 亦減四等, 只令贖罪, 以虧公義。 亦宜收其職牒, 依律科罪, 以懲不敬, 公道幸甚。

疏上, 上以聞于上王, 上王不允。


황충 피해를 입은 경상도 밀양부의 시위패의 입번을 면해 주다[편집]

○以慶尙道密陽府蝗蟲食苗, 禾穀不稔, 備荒事急, 特免侍衛牌番上。


상왕이 문외에서 유숙할 경우의 군사 업무 처리에 대하여 선지(宣旨)하다[편집]

○宣旨: “今後經宿門外則凡軍務, 留都兵曹堂上啓稟主上殿施行, 事須啓我者, 來啓行在所。 主上行幸時, 兵曹堂上一人隨駕, 以爲恒式。”


의금부 당직 관원 한 사람을 정식에 따라 보내도록 선지하다[편집]

○宣旨: “今後義禁府當直官員一人, 每日依式定送。”


9月 4日[편집]

흠차 환관 육선재가 칙서와 황제가 준 명칭가곡 천 본을 받들고 오다[편집]

○辛亥/欽差宦官陸善財奉勑書及欽賜《名稱歌曲》一千本來, 結彩棚、設儺禮, 上率群臣, 奉上王幸慕華樓以迎, 至景福宮行禮如儀。 上王升殿受勑書, 曰:

王奏: “長子褆不德, 不堪爲嗣, 以第三子裪性頗聰慧, 孝悌力學, 一國之人, 悉皆屬望, 可立爲嗣。” 朕惟, 立嫡以長, 古今不易之常道, 然家國事重, 嗣子之賢不肖, 國之盛衰存亡係焉。 果賢也則祖宗有托, 一國之人受福; 苟惟不賢, 則宗(祀)〔社〕無依, 而亂亡繼之, 一國之人受禍。 王爲國家長久之慮, 鑑盛衰存亡之機, 欲立賢爲嗣, 聽王擇焉。

上王覽訖, 還小次。 有頃陞殿, 與使臣行禮與坐謂曰: “吾素有疾, 請以子裪爲嗣, 遣元閔生聞奏後, 疾轉劇, 令裪權攝國務。” 上王還內, 上陞殿, 與使臣行禮。 使臣歸太平館, 上王還宮, 上幸太平館, 設下馬宴。


9月 5日[편집]

지신사 하연을 보내어 사신에게 문안하다[편집]

○壬子/上遣知申事河演, 問安于使臣, 仍贈以鞍馬、衣服、笠、靴, 於頭目亦如之。 上王亦遣兵曹參議元肅問安。


태평관으로 거둥하여 위로연을 베풀다[편집]

○上幸太平館, 設慰宴。


박습이 글을 올려 스스로 죄가 없음을 호소하다[편집]

○朴習以三省論奏, 上書自訴無罪。


경상좌도 병마 도절제사가 흉년이므로 추경 때의 상도 시위패를 진(鎭)에 분속시키길 건의하다[편집]

○慶尙道左道兵馬都節制使報: “道內沿海郡邑, 皆失農業, 諸鎭戍卒, 苦於贏糧, 且備荒事急。 請於秋耕間, 以上道侍衛牌, 分屬諸鎭戍禦。” 上王從之。


9月 6日[편집]

상왕전에 가서 문안올리다[편집]

○癸丑/上朝上王殿。


임금은 좌대언 김효손을, 상왕은 병조 참판 이명덕을 보내어 사신께 문안하다[편집]

○上遣左代言金孝孫, 上王遣兵曹參判李明德, 問安于使臣, 皆贈以珍羞。


삼성에서 다시 박습의 죄를 청하였으나 지방에 안치하다[편집]

○三省復請朴習等罪, 上以習爲上王原從功臣, 只擬尙仁例, 從自願安置, 餘皆分配外方。


사신이 명 궁중에 들어간 한씨와 황씨의 집에 가 그들의 어머니를 존문하다[편집]

○使臣如入朝韓氏、黃氏第, 存問其母。


호부와 순패를 병조에서 출납할 것을 아뢰니 상왕이 따르다[편집]

○兵曹啓: “虎符巡牌, 係干軍務, 不宜在尙瑞司, 自今本曹專掌出納。” 上王從之。


예조에서 올린 사은표를 보내는 의식 절차[편집]

○禮曹啓拜謝恩表儀曰:

前期, 所司設闕庭於殿上正中, 設表箋案於闕庭之前, 設香案於表箋案之前, 司香二人位於香案左右。 上王殿下與殿下拜位於殿庭正中北向, 殿下位差後, 衆官拜位於殿下拜位之南, 異位重行北向。 設司禮二人位於拜位之北, 東西相向, 引禮二人位於上王殿下左右, 引班四人位於衆官左右。 設使者立位於香案之東, 奉表箋官二人位於香案之西, 設樂於衆官拜位之後, 設龍亭於殿庭之南正中及儀仗、鼓樂, 伺候迎送。 是日, 使者、奉表箋官各就立位, 引班引衆官各就拜位, 引禮引上王殿下與殿下就拜位。 司贊唱鞠躬、再拜、興、平身, 上王殿下與殿下、衆官, 皆鞠躬, 樂作, 再拜、興、平身, 樂止。 引禮引上王殿下, 詣香案前, 引禮贊跪, 司贊唱衆官皆跪, 上王殿下與殿下、衆官皆跪。 引禮贊三上香, 司香奉香, 跪進於上王殿下之左, 上王殿下三上香訖。 引禮唱進表, 奉表官詣案取表, 東向跪進于上王殿下, 上王殿下受表以授使者, 使者西向跪受表興, 復置於案。 引禮贊俯伏、興、平身, 司贊唱俯伏、興、平身, 上王殿下與殿下、衆官皆俯伏、興、平身。 引禮引上王殿下復位, 司贊唱鞠躬、再拜、興、平身, 上王殿下與殿下、衆官皆鞠躬, 樂作, 再拜、興、平身, 樂止。 司贊唱禮畢, 引禮引上王殿下與殿下, 退立於西, 殿下差後, 引班引衆官, 立於左右。 使者取表箋各奉前行, 上王殿下與殿下, 送至龍亭前。 使者以表箋置龍亭中, 金鼓、儀仗、鼓樂前導, 上王殿下與殿下、衆官送至宮門外還宮, 衆官送至國門外。


상왕이 패 없이 매[鷹]를 가지는 것을 엄금하고 주패를 더 만들게 하다[편집]

○上王命無牌持鷹者, 兵曹、司憲府嚴加禁止。 又以朱牌數小, 命加造以進。 國制以放鷹者多爲民害, 爲作木牌, 量賜之, 非受牌者, 不得放鷹。 朱牌, 御鷹房人所持也。


호조에서 하삼도에 옮겨 준 본궁의 과전과 별사전을 예전대로 하기를 청하다[편집]

○戶曹啓: “前日各品科田、別賜田, 三分除一, 屬軍資, 移給下三道時, 本宮科田、別賜田, 亦移下三道。 請依上王殿本宮例仍舊。” 從之。


9月 7日[편집]

이백강과 이복근을부원군으로 봉하다. 종실과 부마를부원군으로 봉한 시초[편집]

○甲寅/以李伯剛爲淸平府院君, 福根爲大匡輔國奉寧府院君。 宗室、駙馬封府院君始此。


사은사 심온, 부사 이적, 주문사 박신에게 돈피 모자 등을 내리다[편집]

○上賜謝恩使沈溫、副使李迹、奏聞使朴信貂裘、毛冠、靴各一。


백관을 거느리고 태평관으로 거둥하여 사신을 청하여 상왕에게 나아가다[편집]

○上率百官, 幸太平館, 請使臣同詣上王殿。 上王迎使臣宴于廣延樓, 酒再行, 上王命張《受明命》簇子, 令元閔生言於使臣曰: “此簇子, 寡人受命於今上皇帝, 群臣歌詠, 以頌聖德者也。” 宴將罷, 上王就使臣前曰: “寡人告以《受明命之曲》者, 意有在也。” 使臣曰: “我知殿下欲使權王又受明命之意。 我昔見《受明命》、《覲天庭歌》, 悉奏於帝, 帝乃嘉之。 今殿下爲宗社大計, 廢昏立明, 帝亦知殿下之意, 所以準奏權王之受明命必矣。” 上王答曰: “大人旣知予意, 善爲我奏。” 使臣曰: “我將備奏。” 上王贈內廐馬一匹、貂(表)〔裘〕一領。


평안도 여연군에 침입한 야인을 지군사 박자검이 잘 막아내다[편집]

○平安道兵馬都節制使馳報: “野人四十餘, 掠閭延郡居民男女七十人、牛八首以歸。 知郡事朴自儉領兵追之, 盡奪所掠而還, 卽發江界、理山、熙川等州軍馬三百五十以備之。” 上王命臨機應變, 以嚴備禦。 陞授自儉通訓大夫以賞之, 令觀察使勞軍士。


9月 8日[편집]

우박이 내려 경기 철원 일대의 오리와 기러기가 맞아 죽다[편집]

○乙卯/大雨雹。 京畿、鐵原尤甚, 或大如手掌, 鳧雁中者死。


우대언 성엄을 사신에게 보내어 문안하다[편집]

○上遣右代言成揜, 問安于使臣。


상왕전에 문안하다[편집]

○上朝上王殿。


심온과 이적에게 옷 한 벌씩을 하사하다[편집]

○賜沈溫、李迹衣各一襲。


백관을 거느리고 사은표에 배례하다. 표문, 방물표, 황태자에게 사례하는 전[편집]

○上冕服率百官, 拜謝恩表如儀。 表曰:

皇恩溥博, 特降綸音, 使節輝煌, 聿來海國, 佩銘無已, 糜粉難酬。 伏念, 臣幸受茅土之封, 期永箕裘之業, 輒陳卑抱, 庸瀆聰聞。 端居九重之內, 明見萬里之外, 謂廟社之至重, 當愼繼承, 而愚智之不齊, 必須變置, 矜臣慮後, 許臣擇賢, 殊榮若玆, 前昔所罕。 且頒聖朝之歌曲, 俾誦諸佛之名稱, 嘉與蒸黎, 普霑福利。 玆蓋伏遇皇帝陛下心敦字小, 度廓包荒, 遂令出日之邦, 世沐自天之澤。 臣謹當曰康曰壽, 恒申祝於北辰; 傳子傳孫, 益效忠於東表。

進方物表曰:

星使聿來, 特蒙睿渥, 土宜雖薄, 聊表謝忱。 謹備鞍子二面、黃細苧布三十匹、白細苧布三十匹、黑細麻布九十匹、黃花席四十張、滿花席二十張、滿花方席二十張、雜彩花席二十張、人蔘二百斤、松子二百斤、雜色馬二十六匹。 右件物等, 製造匪精, 名般甚寡, 冀諒由中之信, 俯容享上之儀。

謝皇太子箋曰:

尊居儲位, 密裨皇猷, 導霈睿恩, 覃霑海徼, 撫躬無措, 銘骨何忘? 伏念, 臣猥以庸資, 幸逢昭代, 保釐東土, 獲膺列爵之榮; 瞻仰北辰, 敢陳立後之請。 豈意使華之至, 特承綸命之頒? 聖謨孔昭, 國本乃定。 且分諸佛之曲, 兼善弊邦之人, 感徹宗祊, 懽騰臣庶。 玆蓋伏遇皇太子殿下, 凝姿岐嶷, 稟性溫文, 心常篤於懷綏; 功益隆於翼亮, 遂令荒服荐荷鴻私。 臣謹當載賡輝潤之謌, 恒切壽康之祝。 所獻禮物, 白細苧布二十匹、黑細麻布二十匹、滿花席一十張、雜彩花席一十張、人蔘五十斤、松子五十斤、雜色馬四匹。


상왕과 임금과 중궁이 각각 환관을 보내어 연서역에서 심온을 전송하게 하다[편집]

○上王遣宦官黃稻, 餞沈溫于門外。 上遣宦官崔龍, 中宮遣宦官韓瑚璉, 餞于延曙驛。 溫以國舅, 年未五十而超拜首相, 光燄赫赫, 是日餞者傾都。


9月 9日[편집]

우박이 내려 함길도 함흥에선 기러기가 맞아 죽고, 강원도에선 벼가 상하다[편집]

○丙辰/咸吉道咸興、和州、宜川雨雹, 鴻雁中者皆死。 江原道春川、橫川、麟蹄、楊口亦雨雹傷禾。


동부대언 윤회를 사신에게 보내어 문안하다[편집]

○遣同副代言尹淮, 問安於使臣。


사신에게 경회루에서 잔치를 베풀다[편집]

○上幸景福宮, 遣知申事河演、摠制元閔生請使臣, 宴於慶會樓, 贈鞍馬。


박습 강상인의 공신 녹권 및 직첩과 이각 등의 직첩을 모두 거두다[편집]

○收朴習、姜尙仁功臣錄券、職牒及李慤、金自溫、李安柔、梁汝恭、宋乙開、蔡知止、李叔福等職牒。


왜적이 제주의 미곡선을 약탈해 가다[편집]

○倭賊掠濟州漕船。


인수부 관리에게 나아오는 날마다 상왕전에 숙배하게 하다[편집]

○上命仁壽府官吏, 每衙日專進上王殿肅拜。


9月 10日[편집]

익왕의 기일이므로 조회와 저자를 정지하다[편집]

○丁巳/以翼王忌日, 停朝市。


우부대언 이수를 보내어 사신에게 문안하다[편집]

○上遣右副代言李隨, 問安于使臣, 又遣宦官金龍奇, 贈珍羞。


상왕이 주본에서 면복을 마음대로 전하지 않았음을 말 않은 것을 걱정하다[편집]

○上王遣兵曹參判李明德, 謂上曰: “奏本只稱印章不敢擅傳, 不稱冕服, 無乃不可乎? 其議于政、府六曹大臣。” 上召議之, 左議政朴訔等議: “印章重, 而冕服輕。 言印章則冕服在其中, 不須枚擧。” 上遣同副代言尹淮, 聞于上王, 上王曰: “予初疑之, 今聞訔等之議亦是。”


창덕궁 인정전이 준공되다[편집]

○昌德宮仁政殿成。


9月 11日[편집]

좌대언 김효손을 보내어 사신께 문안하다[편집]

○戊午/上遣左代言金孝孫, 問安于使臣。


예조에서 상왕과 대비에게 존호 올리기를 청하다[편집]

○禮曹啓曰:

“前朝之季, 政散民離, 天命人心, 歸我太祖, 時有讒慝, 交構其間, 禍機不測。 惟我上王殿下應時決策, 倡義推戴, 化家爲國。 歲至戊寅, 又有權臣挾幼謀亂, 惟我上王殿下炳幾誅除, 推尊嫡長, 以安宗社。 夫孝親敬兄, 德莫盛焉; 開國定社, 功莫大焉。 至於畏天之敬、事大之禮、奉祭之誠、愛民之仁, 皆極其道。 海寇賓服, 倉庫富實, 制度文爲, 煥然一新, 國家昇平, 垂二十年, 功德之盛, 曠古無比。 傳歸殿下, 寔有今日, 宜上尊號曰聖德神功, 以示永世, 上大妃尊號曰厚德王大妃。”

從之。


상왕이 동교에 거둥하여 매사냥하는 것을 보다[편집]

○上王幸東郊, 觀放鷹。


민여익 등을 평양 등지에 미리 보내어 돌아가는 사신을 위로케 하다[편집]

○以使臣將還, 預遣驪川君閔汝翼于平壤, 坡平君尹坤于安州, 參贊金漸于義州, 齎宣醞慰送之。


호조에서 흉년 든 충청도의 조세 미곡 상납 방법에 대해 아뢰다[편집]

○戶曹啓: “前以忠淸道年歉, 在前本道歲前漕運租稅米穀, 待明年解氷後上納爲便, 受敎行移。 乞令本道, 將慶源德恩倉米麪, 據在前上納之數, 歲前漕運。 但慮本道人民, 旣失農務, 若待歲後收稅, 則恐將糜費殆盡, 不得依數輸納。 其本道各官今年田稅內, 除供正庫上納供上米麪外, 其餘米麪, 各以附近於慶源德恩倉及沿海倉庫, 須及歲前, 依數徵納, 以待本曹移文, 漕運上納何如?” 上從之。


충청도 제외한 다른 지방은 제전의 진상을 한 달에 한 번만 올리게 하다[편집]

○命遠道諸殿進上, 除忠淸道外, 只許一朔一度進上。 上王殿爲先精潔進上, 典祀寺所納薦新, 一依前例。 知申事河演等啓曰: “今供上之物, 皆遠道所産, 減上王殿進上未便。” 上曰: “上王以年歉, 先有是命。”


주문사 박신에게 의복 등을 하사하다[편집]

○賜奏聞使朴信衣及毛冠。


대간과 형조에서 또 다시 박습 등의 죄를 다스리길 청하다[편집]

○臺諫、刑曹復請朴習等罪。


9月 12日[편집]

명나라 사신과 두목에게 모시와 삼베 등을 주다[편집]

○己未/遣知申事河演, 問安於使臣, 仍贈細苧麻布幷四十匹、人蔘三十斤。 頭目二各贈苧麻布六匹。 其餘贈物, 依黃儼例。 上王亦贈細麻布二十匹、人蔘十五斤, 頭目二各麻布四匹。 兩上別贈麻布二匹於頭目黃貴。 貴, 儼之姪也。


태평관에 거둥하여 사신을 전별하며 초구·표피 등을 선물로 주다[편집]

○上幸太平館餞使臣, 贈以細布、貂裘、豹皮、獤皮、人蔘、厚紙、大箭、弓韔、矢房、石燈盞、襲衣。


건의부를 삼군부에 통합하고 주상전의 시위는 선지를 받아 보내도록 하다[편집]

○兵曹啓: “曾降敎書, 中外軍務, 予親聽斷, 而義建府、三軍府分置, 軍士割屬未便, 請罷義建府, 合屬三軍府。 主上殿侍衛, 每當番宿, 本曹奉宣旨差定, 以嚴體統。” 上王從之。


서선을 경기 관찰사로 임명하다[편집]

○以徐選爲京畿觀察使。


선지를 내려 강상인을 옹진 진군에 붙이게 하다[편집]

○宣旨: “軍國重事, 予親聽斷, 中外頒敎, 令兵曹不離殿門, 而姜尙仁以原從功臣, 職掌兵曹, 大小軍務, 一不啓稟, 其爲背君之心, 死有餘辜, 姑置勿問, 宜充甕津鎭軍。”


9月 13日[편집]

백관을 거느리고 상왕을 모시고 모화루에서 돌아가는 사신을 전별하다[편집]

○庚申/使臣還。 上率百官, 奉上王, 餞于慕華樓, 贈馬一匹。 上王仍幸東郊, 觀放鷹。


이원과 하연에게 벽제역에 가서 사신을 전별하게 하다[편집]

○命右議政李原、知申事河演, 餞使臣于碧蹄驛, 令李從茂伴送。 又遣平壤君趙大臨于留後司, 奏聞使朴信同使臣行。


상왕이 명나라 황제에게 세자 이도가 임시로 섭행함을 아뢰다[편집]

○上王奏曰:

臣爲第三子裪堪托後事, 差陪臣元閔生, 奏達去後, 臣素有風疾, 於永樂十六年七月二十一日, 始復發轉深, 委裪照管軍國事務間, 本年九月初四日, 欽差內官陸善財到國, 欽蒙聖恩, 賜臣勑書, 節該: “王爲國家長久之計, 鑑盛衰存亡之機, 欲立賢爲嗣, 聽王擇焉。” 除欽遵外, 今來臣【太宗諱】宿疾發作無時, 難以視事, 令世子裪權襲, 所有印章, 不敢擅便傳與, 爲此謹具奏聞。


광록 소경 한확이 황제의 명으로 사신을 따라가다[편집]

○光祿小卿韓確以帝命, 亦從使臣以行。


상왕 옆에서 칼을 차고 시립하였다 하여 총제 성달생·이순몽 등을 가두다[편집]

○下摠制成達生、李順蒙、洪涉于義禁府。 上之從上王餞使臣于慕華樓也, 達生、順蒙、涉等以別雲劍摠制從上, 佩劍侍立樓上, 上見之曰: “父王在此, 安可使帶劍在側乎?” 促令下樓。 還宮, 悉下于獄, 以不能禁。 竝下左代言金孝孫于獄。


임금이 창덕궁으로 이어하고 일체 사무를 상왕에게 품신하다[편집]

○上移御昌德宮, 中宮亦從之。 先是, 上王以昌德宮正殿卑小, 庭廡隘陜, 令更爲宏壯, 功尙未就, 以本宮湫甚, 衛士暴露, 乃移御。 自是, 上每日從宮中道, 朝上王殿, 起居從容, 終日乃還, 一切事務皆稟焉。


9月 14日[편집]

상왕전에 나아가 문안하다[편집]

○辛酉/上朝上王殿。


상왕의 뜻을 받들어 원도에서 공물 진상하는 것을 정지하게 하다[편집]

○上稟上王旨, 以歲歉停遠道進上。


형조와 대간의 연합 상소로 강상인은 관노로 만들고 박습 등은 귀양보내다[편집]

○刑曹判書金汝知、大司憲許遲、左司諫崔關等合司上書曰:

爲政之本, 務在明賞罰而已。 賞罰不明, 則善惡何自以勸戒乎? 臣等將尙仁、朴習、自溫、安柔、汝恭、乙開、知止、叔福不敬之罪, 交章請罪, 殿下以尙仁、朴習原從功臣, 只令收其錄券職牒, 自願安置。 臣等謂罪干欺上, 雖功在社稷, 法所不赦, 儻以微勞, 苟免天討, 於公義何如? 況朴習不念聖上寬縱之恩, 構辭擊鼓, 妄自申訴, 曾無悛改之心, 復有不敬之懷, 請置于法, 以示公道。 其餘李慤、自溫以下, 亦依前日所申, 依律科罪, 以戒後來, 公道幸甚。

上稟上王旨, 姜尙仁屬端川官奴, 配朴習于泗川, 李慤于茂長, 金自溫于梁山, 梁汝恭于咸安, 李安柔于慶山, 蔡知止于古阜, 宋乙開于漆原, 李叔福于江東。


부친 상 중에 있는 윤계동을 기복 행공시키다[편집]

○鈴平君尹季童丁父憂, 命起復。 季童, 向之子也。 尙上王女貞信翁主。


패가 없이 매를 가지고 다니는 자는 병조에서 바로 치죄하라는 선지를 내리다[편집]

○宣旨: “無牌鷹子持行者, 兵曹不待啓聞, 隨卽治罪。”


호조 판서 최이 등에게 성달생 등을 문초하게 하다[편집]

○命戶曹判書崔迤、刑曹判書李愉、大司憲許遲、司諫崔關, 按問成達生等。


9月 15日[편집]

우박·엄유온·김두남 등에게 관직을 주다[편집]

○壬戌/以禹博爲中軍摠制, 嚴有溫、金斗南左軍同知摠制, 李叔畝右軍同知摠制, 閔謙仁寧府尹, 柳暲禮曹參議, 成揜左代言, 金益精右代言, 李隨左副代言, 尹淮右副代言, 崔士康同副代言。


강원도 평창군에 기근이 들어 국고의 곡식을 풀어 구제하다[편집]

○江原道平海郡飢, 發倉賑之。


예조에서 종묘에 알현한 뒤에 각도에서 축하 전문 올리게 하기를 청하다[편집]

○禮曹請謁宗廟後, 令諸道進賀箋, 從之。


전직 2품 이상이 문 밖에 출입할 때는 병조에 연고 단자 올리도록 선지 내리다[편집]

○宣旨: “前銜二品以上, 門外出入時緣故單子, 依在前承政院呈例, 某日出歸、某日還來辭緣, 開寫呈于兵曹。”


오매패 선소를 명소, 선패를 명패로 고치다[편집]

○禮曹啓: “烏梅牌宣召, 改以命召; 宣牌, 改以命牌。” 從之。


흉년이므로 각사의 상직하는 사람에게 밥 주는 것 등을 폐지하다[편집]

○戶曹以年飢用不足, 除闕內宣飯外, 各司上直宣飯給一時甁酒點心及外方新設敎導廩給, 竝宜停罷, 從之。


9月 16日[편집]

월식이 일어나다[편집]

○癸亥/月食。


노상왕이 나암에 거둥하다[편집]

○老上王幸羅菴。


이조 판서 등이 상왕께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원도의 진상을 바치도록 아뢰다[편집]

○吏曹判書鄭易、禮曹判書卞季良、工曹判書孟思誠、戶曹判書崔迤、刑曹判書金汝知、平陽府院君金承霔、大司憲許遲、司諫崔關等合司啓曰: “上王慮年歉, 停各殿遠道進上。 臣等以謂, 殿下以一國奉父王, 乃以小弊停進上物膳, 恐有違奉養之意。 縱不能復一朔再進之制, 請依近日一月一進之敎。” 上曰: “順承是乃孝也。 上王慮民生艱苦, 命除之, 予不敢以請。”


형조와 대간이 박습도 강상인의 예와 같이 죄주기를 청하다[편집]

○刑曹、臺諫啓: “朴習以一司行首, 陷於尙仁姦計, 凡軍務皆不啓稟, 罪與尙仁無異, 只流遠方, 實爲未便。 請從尙仁例。” 不允。


임금이 창덕궁으로 이어했으므로 상왕이 잔치를 베풀어 즐기다[편집]

○上王以上移御昌德宮, 宴于新凉亭, 孝寧大君補、領敦寧柳廷顯、左議政朴訔、右議政李原及六曹判書、六代言侍宴。 上王極歡起舞, 群臣亦皆起舞。 夜闌, 群臣旣出, 上王猶留代言對舞曰: “予欲入內, 靜妃過哀成疾, 欲與卿等寬暫時悲也。” 乃執河演手曰: “非愛卿也, 愛主上也。” 遂賜御衣一領。


성달생·홍섭·김효손을 파직하고 이순몽을 영천군에 안치하다[편집]

○罷成達生、洪涉、金孝孫職, 安置李順蒙于永川郡。 順蒙在獄不服, 獄官請加拷訊, 以功臣之子, 只黜于外。


9月 17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甲子/視事。


선지를 내려 18세 이상된 3공신의 친아들과 손자를 패시위로 삼다[편집]

○宣旨: “三功臣親男及孫年十八歲以上者, 作牌侍衛。”


허지가 하연에게 박자청이 참찬에 제수됨이 적당치 않음을 말하다[편집]

○大司憲許遲言於知申事河演曰: “議政府論道經邦, 職任匪輕。 今以朴子靑爲參贊, 於聖朝選任之意何?” 演以聞, 上曰: “子靑質直勤勞, 上王信任之。” 子靑性苛刻, 無仁恕, 起自微賤, 無他技能, 但以監督土木之勞, 致位宰府, 甚不厭衆意, 故遲言之。 然遲以風憲之長, 憚子靑有寵於上王, 微諷而不力言之, 遲亦殊失言官之體矣。


9月 18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乙丑/視事。


상왕이 동교에서 매사냥을 구경하다[편집]

○上王觀放鷹于東郊。


일기 만호 도영이 담목 백반 등을 바치고 미곡을 요구하다[편집]

○一歧萬戶道永遣人獻丹木一百斤、白磻三十斤、胡椒二十斤、訶子二十二斤、良薑三十斤、丁香十五斤, 仍求米穀。


소격전에서 임금은 직수전, 상왕은 십일요전에 이안함을 아뢰다[편집]

○昭格殿啓曰: “主上殿下卽位直宿, 金德太白星, 請依前例, 移安于直宿殿行醮; 上王殿卽位直宿, 計都星, 移安于十一曜殿。” 從之。


9月 19日[편집]

왕자 이용이 출생하다[편집]

○丙寅/王子瑢生, 議政府、六曹賀。


대비전에 바치는 채소가 정결치 못했다 하여 인수부 부승 정지성을 가두다[편집]

○以大妃殿供上菜蔬不精潔, 下仁壽府副丞鄭之誠于義禁府。


노상왕의 응방인과 문제를 일으킨 좌헌납 정종본을 파직시키다[편집]

○罷左獻納鄭宗本, 以鄭穉代之。 初, 老上王鷹房人, 路逢宗本不避, 宗本執其人奴子, 其人亦執宗本丘史。 宗本遂執其人, 囚于典獄。 老上王遣人于諫院, 請放之, 諫院不從。 老上王遣人啓於上, 上命宗本歸私第, 至是罷之。


군기감에서 염초 제조량을 증가할 것을 청하니 상왕이 따르다[편집]

○軍器監啓: “留庫焰硝, 只三千三百十六斤, 一年春秋所用凡四千斤。 明年春節所用, 尙且不敷, 請加煮取。” 上王從之。


3, 4품으로 사직과 부사직에 보직된 인원은 예빈시와 군기감에 교대로 차임케 하다[편집]

○兵曹啓: “今後以三四品行司直、副司直人員, 依司宰監行職例, 以禮賓寺尹、少尹, 軍器監正、副正交差。” 從之。


9月 20日[편집]

우레와 번개가 치고 큰 비와 우박이 내리고 무지개가 뜨다[편집]

○丁卯/雷電大雨雹, 虹見。


왜산에서 도망온 명나라 절강인 6명을 요동으로 보내 주다[편집]

○大明浙江人陳宗等男婦六人, 自倭山逃來, 遣判司譯院事張洪守, 送于遼東。


원도에서 각전(各殿)에 진상하는 것을 한 달에 한 번씩 바치게 하다[편집]

○傳旨于禮曹曰: “遠道各殿進上, 以其境內所産之物, 每一月一度式供進。 忠淸道失農尤甚, 亦依遠道例, 凡勞民有弊之物, 一皆禁之。”


상왕대비전 및 중궁의 봉숭 때 각도에서 전을 올리게 했다가 중지하다[편집]

○禮曹啓: “上王殿、大妃殿封崇及中宮封崇時, 令諸道進箋賀。” 從之, 尋以上王命除之。


9月 21日[편집]

사헌부에서 노상왕의 응방인을 논죄하고자 했으나 윤허치 않다[편집]

○戊辰/司憲府請論老上王鷹房人陵辱諫官之罪, 不允。


충청도 병마 도절제사가 도내 별패의 재편에 대해 건의하다[편집]

○忠淸道兵馬都節制使報: “道內別牌射御不能、鞍馬不實者甚多, 請更加選揀。 雖短於射御, 而能用槍劍者、能遠走者, 仍舊屬別牌; 能步射, 而鞍馬不實者, 屬水軍; 無一藝可取者, 屬雜色軍。 又選水陸軍丁中, 富實勇敢者, 屬別牌。” 上王令政府、六曹同議以聞, 議論不一, 命待豐年如其所報。


9月 22日[편집]

상왕이 하연을 불러 종묘 친제 뒤에 풍악 잡힐 것을 말하고 군무를 살피는 회포를 말하다[편집]

○己巳/上王召河演曰: “前日與主上議親享宗廟後, 凡設樂迎駕之事, 以年歉皆停之。 更思太祖開國以後, 以孫繼位者, 自主上始, 且卽位見廟, 人君盛事, 雖曰年歉有弊, 然於此等不得已之事, 不可以小弊除之。 予尙欲觀樂, 以爲一家慶事, 但日期已迫, 恐其不及也。” 演曰: “國家庶事備具, 百官奉職。 今相距且十日, 何事不及辦乎?” 曰: “卿其啓於主上, 令禮曹依古例行之。” 因下淚曰: “卿聞元叅議之言乎?” 演曰: “元肅宣敎於主上及啓事臣僚曰: ‘予聞姦猾者有之, 主上未滿三十歲前, 吾要察軍事以佐之耳。’ 臣僚聞敎, 罔不感祝。” 上王歎息曰: “予欲忘憂, 而尙未得頓忘, 以有姦人故也。” 又嘗曰: “主上雖賢明, 春秋尙少, 不習軍旅, 予不得已乃如。 今日不知者或以爲: ‘稍待主上年滿三十, 率一二小竪逍遙送老矣。’”


함흥 부윤이 정릉 등의 능지기에게 녹 주는 것을 본부에서 차정하도록 청하다[편집]

○咸興府尹李潑啓曰: “定、和陵、純陵、德、安陵、義陵直, 本府雖擧劾非違, 而不得擅便遞差。 因此凡陵室守護, 皆不用心。 請依他土官例, 給地祿, 令本府得自差定。” 從之。


9月 24日[편집]

노비 쇄권색을 공부 상정색으로 고치다[편집]

○辛未/吏曹請改奴婢刷券色爲貢賦詳定色, 從之。


김여지를 하정사, 이지강을 부사로 삼다[편집]

○以刑曹判書金汝知爲賀正使, 戶曹參判李之剛爲副使。


9月 25日[편집]

때 아닌 우박 때문에 예조에게 재앙 물리치는 법전을 상고하여 아뢰게 하다[편집]

○壬申/上曰: “今非時而雨雹, 無乃有祈禳之典乎? 令禮曹稽古制以聞。”


왕자가 탄생했으므로 소격전에서 개복신 초례를 행하게 하다[편집]

○以王子生, 遣宜寧府院君南在, 行開福神醮禮于昭格殿。


중궁의 내향인 청부현을 청보군으로 승격시키다[편집]

○吏曹啓: “眞寶屬縣靑鳧, 是中宮內鄕, 請陞爲靑寶郡。” 從之。


경상도 관찰사가 울산진 병마사를 다시 둘 것을 청하니 의논하게 하다[편집]

○慶尙道觀察使啓: “蔚山僻在海隅, 人物稀少, 且與鹽浦近, 倭人常時往來, 無不詗知。 左道都節制使置營於此, 內廂軍士不過一百名, 爲大將所居而聲實不稱, 實生倭賊輕侮之心。 請復置蔚山鎭兵馬使, 以左道都節制使兼慶州府尹。 無已則罷左道內廂, 令右道節制使兼管。” 命政府、六曹同議以聞。


사헌부에서 경차관이 잘못 답사한 토지의 처리 문제 등을 아뢰다[편집]

○司憲府啓曰: “前者敬奉敎旨: ‘今年因風水爲災, 禾穀不實, 民生可慮。 須於刈穫前, 令敬差官及時踏驗, 務要公私兩便。’ 聖上恤民之意至矣。 然而爲敬差者或生怠心, 未能周遍親審, 而守令、委官不體聖上恤民之意, 曲生疑慮, 或以損爲實, 鰥寡煢獨無告之徒, 坐受其害, 無由申訴。 請敬差官不中踏驗之地, 令佃者告監司, 監司令首領官踏驗, 從正施行。 殿下卽位之初, 爲年穀不登, 凡不緊營繕, 悉令停罷, 而諸道守令、鎭兵馬使等造軍器、修城郭倉庫者, 比比有之。 國家又以平安、黃海道民不飢饉, 採銀於殷山、泰川、嘉山、谷山等郡, 採鉛於瑞興郡。 本府近牒其道監司, 問農事豐歉, 竝以風水之災, 禾穀不實。 臣等伏望凡用民力, 不論緊緩, 一皆停罷, 俾令治生。 守令於義倉軍資徵納之時, 不親監徵納, 委之監考一人, 所納雖至數石, 不曾用斛, 皆以斗升多收。 且斂散之際, 燒木、蓋草無不誅求, 民之怨咨, 固爲不淺。 自今以後, 守令親自監納, 令納者自量, 如有剩餘, 卽還納者, 違者依律論罪。” 上從之, 唯銀鉛切於國用, 不可輕廢, 踏驗旣委遣朝官, 不可更令監司覆審, 不允。


9月 26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癸酉/視事。


장단현을 다시 두다[편집]

○復置長湍縣。 長湍爲縣甚小, 合於臨津, 號臨湍, 至是復之。


조말생이 상왕께서 교외에 나가 노닐려는 뜻을 고하라 했다고 아뢰다[편집]

○兵曹判書趙末生啓曰: “今日上王召臣曰: ‘今予有疾病, 屢有天變, 故傳位主上, 以觀天意。 近又有災變, 予嘗不寐以思, 欲出遊郊外, 或留三四日或久留, 隨意所安。 昔太祖留住檜巖、逍遙等處, 國家失望, 然予豈有勞弊於民哉? 予之親斷軍事者, 以待主上年踰三十耳。 爾將此意, 告于主上與諸相。’”


지형조사가 유고할 경우 정랑 이하의 관원이 송사를 처리하도록 하다[편집]

○司憲府啓曰: “刑曹都官, 職掌決訟, 不可稽滯, 而知刑曹事有故不仕, 則正郞以下, 不會本司, 爭訟淹滯。 建文元年, 司憲府受判: ‘在前臺諫、政曹以一員有故, 稱爲各位不齊而不坐, 以致公事稽停。 今後備三員以上爲齊坐。’ 今政曹、臺諫皆用此法, 而唯都官尙循舊習, 知曹事累日有故, 則任然不仕, 曠官廢職未便。 自今知曹事雖有故, 正郞以下坐本司聽訟, 開印署事。” 從之。


공신 제군부로 개칭했던 이성 제군부를 다시 이성 제군부로 일컫다[편집]

○初, 異姓諸君府中封君者, 皆功臣, 故改稱功臣諸君府。 至是, 吏曹以駙馬封君者非功臣, 名實不稱, 請復稱異姓諸君府, 從之。


호조에서 감사나 수령들이 재변을 실상대로 아뢰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다[편집]

○戶曹啓曰: “諸道災變, 監司隨卽啓聞, 載在六典, 而監司、守令, 凡災異不以實啓。 自今遇災變失農處, 監司親巡考察賑恤, 儻有一民餓死者, 委憲府痛理。” 從之。


전라도 감사가 고부군의 눌제를 수축할 것을 청하다[편집]

○全羅道監司據知古阜郡事呈: “本郡訥堤灌漑之地, 將至萬餘結, 請於農隙, 發丁夫修築。” 從之。


호조에서 흉년이므로 꾸어간 의창의 군자미를 곡식으로 수납하기를 청하다[편집]

○戶曹啓: “忠淸道敬差官報: ‘今年旱荒, 凡民所貸義倉軍資之米, 皆以穀收納, 以備明年種子。’ 請依所報施行。 慶尙、全羅道禾穀亦不稔, 依忠淸道例。” 從之。 又命慶尙道今年上納米穀, 各於本邑收納。


사헌부에서 진헌하는 표피의 수납에 대해 건의하다[편집]

○司憲府啓曰: “州郡所納進獻豹皮, 濟用監於收納之際, 小有孔穴, 輒皆不納。 緣此一領所直, 幾至緜布四十匹, 經年市索, 尙未易得。 虎豹不傷皮革而獲, 非人力所及, 自今體大毛色鮮明, 則許令收納。” 從之。


9月 27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甲戌/視事。


노상왕이 나암사로 돌아가다[편집]

○老上王還羅庵寺。


종묘에 배알한 뒤에 조하하는 의식의 절차[편집]

○禮曹啓謁廟後朝賀儀曰:

有司鋪上座於仁政殿當中南向, 設香爐二於前楹外。 通禮門設協律郞位於殿階上近西東向, 設左右侍臣位於東西階之南相對, 俱重行北上, 典儀位於左右侍臣之南, 通贊二人在南小退, 俱西向。 設文官一品以下位於道東, 北向西上, 宗親及武官一品以下位於道西, 當文官東, 每等(二)〔異〕位重行北向, 諸道進箋官隨職品, 在本品末, 監察二位於東西班後。 鼓初嚴, 繖扇、仗衛陳於殿階上下, 樂部於群官之南如常儀, 有司設箋案於月臺上當中。 禮曹引諸道進箋官, 將詣昌德宮, 以靑龍樓子盛箋文行, 典樂率樂工奏樂前導, 至仁政門外, 樂止。 禮曹引諸道進箋官由東門入, 陞自東階, 以箋文置于案訖。 鼓二嚴, 文武群官各具朝服, 皆就門外位。 典樂率樂工就位, 協律郞就位。 判通禮跪啓外辦, 殿下服冠袍, 侍臣及諸執事行禮, 通贊贊鞠躬、四拜、興、平身, 贊各供事。 鼓三嚴, 通禮門分引文武群臣入就位。 判通禮進啓班齊, 通贊贊班齊, 判通禮跪啓請殿下陞殿。 中禁傳嚴, 爐烟升, 尙瑞官奉寶前導, 近臣導駕于正殿。 殿下出, 上護軍啓看, 協律郞俯伏擧麾興, 樂作, 典儀招通贊贊鞠躬。 殿下陞坐, 上護軍啓看, 通贊贊平身, 衆官平身, 協律郞偃麾, 樂止。 凡樂皆協律郞擧麾而作, 偃而止。 通贊贊鞠躬、四拜、平身, 衆官鞠躬、四拜、平身。 凡樂作樂止如常儀。 通贊贊進箋, 奉禮引議政府行首, 就進箋位, 行首俯伏, 跪、搢笏, 取箋, 判通禮詣行首之右跪, 接取箋, 行首出笏, 俯伏、興、平身, 退復位。 判通禮奉箋陞自東階, 跪奉以聞。 初, 判通禮將詣東階, 讀箋官揖, 出行陞東階, 揖陞趨進上坐前, 北面跪。 內侍二人跪展箋文, 通贊贊跪, 衆官皆跪。 判通禮跪贊宣箋, 趨退降自東階復位。 讀箋官宣議政府箋訖, 俯伏、興、平身, 通贊贊俯伏、興、平身, 衆官俯伏、興、平身。 讀箋官趨退降自東階復位。 通贊贊鞠躬、四拜、興、平身, 衆官鞠躬、四拜、興、平身。 僧徒及回回人等入庭祝頌訖, 判通禮跪啓禮畢, 通贊贊禮畢, 殿下降坐, 樂作。 通贊贊鞠躬, 衆官鞠躬。 殿下入內, 樂止。 通贊贊平身, 衆官平身, 通禮門分引文武群官, 以次出。


선지를 내려 벼슬 제수할 때 선지라 일컫던 것을 특지라 하게 하다[편집]

○宣旨: “自今每除授, 稱宣旨者, 改以特旨。”


병조 삼 당상 등에게 매일 조회에 사무 아뢰는 예에 따라 사무를 아뢰게 하다[편집]

○宣旨: “自今兵曹三堂上、四都鎭撫及郞廳一員、鎭撫一員, 每日依朝啓例啓事。”


병조에서 취각령에 대하여 아뢰다[편집]

○兵曹啓吹角令曰:

上當出令時, 命內吹角人吹角一通, 兵曹應之以角, 又分登四方高處, 以軍馬畢會爲限吹之。 內吹角聲初發時, 殿內及闕內當直摠制、上大護軍、護軍、內禁衛、內侍衛、左右禁衛、別侍衛、甲士、別牌、侍衛牌、鷹揚衛、都城衛、各領防牌等, 卽具兵甲, 各門堅守, 承命外不得出入, 各差備毋敢有闕外角聲相應。 初, 入直兵曹堂上親稟命, 受宣字旗, 立於殿門外次, 殿內入直三軍都鎭撫, 各以其軍之旗, 立於定所次。 出番各軍摠制、各衛節制使以下, 元係侍衛軍士及時波赤, 隨其聞角聲先後, 卽具兵甲, 立於其旗之下, 分運屯住, 三麾在中軍之前。 上召當爲將帥者三人, 受三軍織文旗, 受旗而出, 就其軍立之, 聽兵曹號令。 若左軍或右軍入直, 則受命將帥受其織文旗, 立於殿門內。 入直大小軍士, 不離直所, 或値暮夜, 未辨旗色, 則聞其軍角聲聚會。 中軍吹大角, 左軍吹中角, 右軍吹小角, 各軍軍馬畢會, 則吹角止。 兵曹及出番鎭撫、代言、當番軍士, 有緣故未入番者, 俱詣宣字旗待命。 議政府、六曹、宗親、勳舊、時散二品以上, 應合赴急者, 除有故外, 各率定數伴儻, 備兵器, 各於殿門外近處依幕, 聚會待命。 其中老病及未合武事者, 議政府、六曹外, 不許來會。 三軍判府事以下各軍士, 屯住序次, 依鎭撫所序立圖, 毋敢有違, 毋敢喧嘩。 若無織文旗而出令者、不見織文旗而趨令者、常時無兵曹明文私聚軍士者, 皆以謀逆論, 如有犯令者, 許諸人陳告, 所告實者超三等賞職, 將犯人家産充賞, 誣告者反坐。 軍士到未到, 兵曹鎭撫所考察科罪。 軍士外各司及成衆官待令乃會, 唯內侍府, 殿門外依幕聚會。 義禁府、司僕寺、軍器監率吏工匠, 各守本司待命。 兩殿各在時, 則上王殿角聲初發時, 入直兵曹應之以角, 大殿亦應之以角。 大殿入番之次, 鎭撫及節制使各率軍士, 依序立圖作運結陣。 大殿率上項結陣軍士, 卽詣右軍結陣之後, 別作一陣待命。 若命召則驗信牌, 率入番內禁、內侍、左右、禁衛入殿門, 大殿吹角則上王殿亦如上項例, 率軍士赴急應變之際, 守宮軍馬, 臨機命將守禦。


공죄(公罪) 범한 사람의 과전을 환급하다[편집]

○戶曹請還給犯公罪人員科田, 從之。


제방 축조에 뜻과 공이 큰 판청주목사 우희열의 계[편집]

○判淸州牧事禹希烈啓曰:

臣昔守星州, 於邑內前堤, 立桶貯水, 隨意決塞以試之, 民之蒙其利者甚多。 臣所目擊, 常願興水利, 以厚民生。 殿下知臣之志, 俾掌此事, 受命以來, 盡心爲之, 未知報效。 臣嘗觀金堤碧骨堤用十六尺石柱左右對立, 以木板遮障貯水。 以故, 雖年久, 堤岸盡頹, 而石柱屹然如舊, 古人爲民深遠之意可見也。 今之守令, 以姑息之計, 當初監築之時, 不堅密以築, 及其決毁, 則皆歸咎曰: ‘堤堰不足以利民。’ 豈奉法字民之意乎? 請依律論罪。 臣之所築京畿堤堰灌漑之數, 凡一萬九千八百餘結, 今年春到廣州, 更考各官灌漑之數, 縮至六千餘結, 決毁之後, 不用心修築必矣。 令監司隨決隨築, 以備旱潦。 臣年老病深, 將未得畢其事功, 今薦可監築者數十人, 乞今年農隙, 發丁夫役之, 毋過二十日, 每於一處, 以臣所薦人員, 分督監築, 臣巡行考察。

上令戶曹酌其所上條件行移。


9月 28日[편집]

정사를 보다. 종묘에 친향한 뒤에 재방에서 향관을 제수하고자 하다[편집]

○乙亥/視事。 上謂近臣曰: “卽位謁廟, 重事也。 且古者爵人於祖, 今於親享後, 欲齋房除拜享官如何?” 皆對曰: “善。”


계절의 조화를 비는 태일 초례를 소격전에서 행하다[편집]

○遣同知摠制李叔畝, 行時令調和太一醮于昭格殿。


전라도 좌우변의 전 만호의 고충을 듣고 좌우령으로 나누어 방어케 하다[편집]

○京畿觀察使據左右道水軍節制使呈〔啓〕: “左右邊屬前萬戶金世甫等稱訴: ‘我等本在全羅道沿海諸郡, 庚寅以後, 倭賊始興, 國家分遣我等作兵船, 俾令與州郡兵禦倭。 庚申鎭浦之賊、癸亥長浦之賊, 蹀血力戰, 挫其銳鋒, 沿海人民, 始復安業。 其後賊益陸梁, 喬桐、江華爲其所占。 國家以藩籬未固, 京都可畏, 徙我等喬桐、江華, 稱爲左右邊, 每一人給口分田一結五十卜, 以爲生産之資, 去年只給代田五十卜, 而餘皆公收。 水上艱苦, 長番戍禦, 生理無門, 請還其田。 若以爲不可, 則依他水軍例, 分左右領, 俾得相遞休息。’” 上王命分爲左右領戍禦。


경상도 관찰사가 바닷가 고을 백성을 4번으로 조직할 것 등에 대해 아뢰다[편집]

○慶尙道觀察使申商啓: “道內禾穀, 因風水之災, 竝皆不稔, 而沿海州郡尤甚, 諸浦水軍請糧于官者甚多, 然其他調度浩繁, 未易支給。 請於左右領, 又分左右領, 分爲四番, 俾令治其産業, 有聲息, 則徵附近州郡兵, 亦足以應敵, 若倭人常時聚會如富山、乃而等浦, 水軍則請臨時量給半朔糧。 鄕校生徒棄其産業, 在校讀書, 實所不堪, 請分番放學, 各司奴婢米麪之貢, 今因飢饉, 誠難充納, 宜代以布帛。 鰥寡孤獨無告之徒, 寄食他家, 生理無門, 宜以州郡陳豆, 分給各里, 俾令造醬, 以爲明年賑濟之資。 州郡所納楮(貸)〔貨〕, 外方所無, 皆交易於京中商賈, 宜除今年所納楮貨。” 上皆從之, 因命造醬及減楮貨事, 竝於失農諸道行移。


경상도 대구군에 지진이 일어나다[편집]

○慶尙道大丘郡地震。


9月 29日[편집]

햇무리 지다[편집]

○丙子/日暈。


전라도에 다시 신안·오림 두 역을 설치하다[편집]

○復置全羅道新安、烏林二驛。


즉위년 冬十月[편집]

10月 2日[편집]

원유관과 강사포로 연을 타고 종묘에 나아가다[편집]

○戊寅/上以遠遊冠、絳紗袍, 乘輦詣宗廟, 百官皆以朝服從之。 上至廟門外四拜, 宿于齋宮。


10月 3日[편집]

면복 입고 대실에서 강신제를 올리고 환궁하다[편집]

○己卯/上以冕服, 入太室祼獻, 還御齋宮。 以朴子靑判右軍都摠制府事, 權弘爲禮曹判書, 卞季良參贊議政府事李春生右軍同知摠制, 文貴中軍同知摠制, 張允和判禮賓寺事、兼知兵曹事, 李敉司諫院右獻納。 以兵曹屬于上王, 軍務甚劇, 新置知曹事。 允和性凶險貪婪, 勝己者皆疾之。 以義禁府鎭撫, 屢啓事上王前。 形貌魁梧, 應對捷給, 上王悅之, 朴訔又以同年之故, 屢褒薦之。 由是, 卽拜判典祀, 俄遷禮賓, 又知兵曹, 一月推遷華秩, 物論沸騰。 又賜從三品以下執事諸臣爵一級。 還宮, 百官朝服步從, 結彩棚設儺戱以迎。 成均博士金由畛等率學生迎駕, 獻詩曰:

恭惟太祖康獻大王神武應期, 肇造洪業。 上王殿下以聰明聖智之資、精一緝熙之學, 克平禍亂, 推尊嫡長, 以安宗社。 纉承大統, 昭受帝命, 事大以誠, 奉先以孝, 敬天勤民, 禮樂制度, 煥然一新, 中外乂安, 神人悅懌, 聖德神功, 曠古無比, 乃以倦勤, 遂釋萬機。 惟我主上殿下英明恭儉, 孝悌寬仁, 樂善好學, 嗣登寶位, 夙夜匪懈, 講論經史, 凡所施爲, 一遵成憲, 以爲治道之本, 莫先於孝。 乃以永樂十六年十月(始)〔初〕三日己卯, 躬服袞冕, 蒸薦太室, 幽明協和, 大禮慶成。 伏惟, 自昔聖帝明王之作, 必有文臣歌詠贊頌, 發揚其美, 被諸管絃, 勒諸金石, 鏗鍧炳煥, 垂耀千古。 若稽《周雅》, 《生民》、《淸廟之什》是也。 臣等俱以非才, 伏覩盛事, 不勝忭躍, 謹撰蕪辭, 拜手稽首以獻曰:

念玆皇祖, 受命溥將。 創業垂統, 長發其祥。 文武惟后, 繼序其皇。 受天子命, 爲龍爲光。 小心翼翼, 惟幾惟康。 奉先思孝, 視民如傷。 道洽政治, 底綏四方。 天惟純佑, 世有哲王。 於樂我王, 金玉其相。 緝熙敬止, 莫敢或遑。 嗣有令緖, 率由舊章。 恪愼克孝, 以孝以享。 王格有廟, 顒顒卬卬。 籩豆有踐, 有飶其香。 奉璋峩峩, 鍾鼓喤喤。 式禮莫愆, 顧予烝嘗。 介以繁祉, 俾熾而昌。 庶尹允諧, 民悅無疆。 小子狂簡, 養於虞庠。 舞之蹈之, 徯我于行。 矢其文德, 稽首對揚。

敎坊亦獻歌謠, 設帳殿於道傍, 上王奉老上王臨幸觀之。 上至帳殿前停輦, 張衆樂雜戲, 上降輦趨過帳殿乘輦, 樂部歌舞陳於輦前。 還御仁政殿, 受百官賀, 詣上王殿, 獻壽於兩上王, 極懽乃罷。


제향에 참예한 모든 집사에게 잔치를 베풀고 말 등을 하사하다[편집]

○賜助祭諸執事宴于議政府。 賜亞獻官左議政朴訔鞍馬, 終獻官吉昌君權跬、進幣瓚爵官吏曹判書鄭易、薦俎官戶曹判書崔迤、禮儀使禮曹參判卓愼等馬各一匹, 知申事河演、左代言成揜、右代言金益精、左副代言李隨、奠幣瓚爵官吏曹參判安望之、堂上執禮禮曹參議柳暲、諸執事判通禮門事安壽山、沈寶、判司僕寺事洪居安、判典祀寺事宋興、右司諫大夫鄭守弘、判承文院事鄭招等綵帛各二端。 上王又賜伶人工匠綿布有差。


사간원에서 흉작의 정도가 심한 주군의 조세를 면제할 것 등을 상소하다[편집]

○司諫院上疏曰:

民爲邦本, 食爲民天, 今値年歉, 民生可慮。 請各郡租賦, 除京倉轉納, 收之以穀, 各置其官, 以備來歲種子, 其失農尤甚州郡, 依漢文古事, 全免租稅。 倭賊侵掠中國, 以其所掠財物, 來泊我國南界, 與邊民互市久矣。 今我飢饉無貲, 不得互市, 賊倭衣食無所, 必有窺窬之心。 全羅道, 賊路初面, 防禦甚緊, 而以觀察使兼任節制使, 武備陵夷, 有違於安不忘危之意。 請別遣廉謹愛民, 武藝素著者, 爲都節制使, 其他諸道武備, 竝令整飭, 以備不虞。 前者, 各品科田, 以三分之一給之畿外, 其水路阻隔遠道, 皆以布帛徵納, 或有重斂, 爲民巨害者。 請令戶曹量宜定式, 其違式重斂者, 令佃客告官, 收取其田, 以杜橫斂之門。 初立戶斂楮貨之法, 實是興行楮貨權宜之策, 今楮貨旣流行, 歲且飢饉, 請革此法, 以恤民生。

上從之。 其科田布貨收納, 從自願, 以其地面時價納之, 違者令守令考察。


10月 4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庚辰/視事。


6품 이상에게 유일(遺逸)을 천거케 하다[편집]

○令六品以上擧遺逸。


양주에서 사냥하다[편집]

○上王田于楊州。


사헌부에서 금주를 청하니 좇다[편집]

○司憲府以歲歉請禁酒, 從之。


어머니와의 다툼 끝에 누이 동생을 죽인 안주 백성 임부개를 찢어 죽이다[편집]

○刑曹啓: “安州民林夫介與其母爭牛, 繫其母項扳曳之, 其妹稱爲惡逆, 夫介恐事露, 與其弟丁及原歐殺其妹。 請依律轘夫介, 斬丁、原。” 從之。


10月 5日[편집]

정사를 보다. 돌아오는 상왕을 맞으러 녹양벌에 나아가니 상왕이 기뻐하다[편집]

○辛巳/視事。 饋啓事諸臣。 上王還, 上出迎于綠楊原, 置酒帳殿。 上王曰: “予還甚遽, 豈意迎謁於此?” 歡甚, 夜至二鼓還宮。


상왕께 불공한 죄를 지은 대사헌 허지를 사제로 돌아가라 하다[편집]

○司憲府大司憲許遲等上疏, 論朴子靑不恭於上王之罪, 上命遲歸私第。 初, 上王謂遲曰: “子靑監督土木之役, 若被劾則事緩矣, 宜置勿論。” 遲對惟命。 至是, 上疏論劾, 上以遲爲面從, 勒歸私第。 執義朴冠等亦請歸家待罪, 上不許曰: “予非以論子靑爲非, 以遲面從退有後言耳。”


10月 6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壬午/視事。


양지현에 지진이 일어나다[편집]

○陽智縣地震。


사헌부에서 삼강 오륜을 바로 잡는 것에 대해 상소하다[편집]

○司憲府上疏曰:

爲治之道, 莫大於正綱常, 天下國家之治亂興亡, 實係於此, 故人而亂綱常, 天地所不容, 王法所不赦。 伏望子之於父, 妻之於夫, 奴之於主, 雖未至於殺, 其惡逆情狀已見者及告言祝罵之類, 雖在赦前, 許令依律斷罪, 以嚴王法, 以正綱常。

上令政府、六曹議之, 皆請從所啓, 上從之。


일기주 상만호가 토산물을 바치다[편집]

○一岐州上萬戶遣人獻土宜。


반역죄 범한 이방간의 아들 맹종의 노비를 관속시키다[편집]

○刑曹都官啓: “芳幹子孟宗身犯叛逆, 一國臣民不共戴天之讎, 得保首領, 以至今日, 已爲幸矣。 其孟宗奴婢一百二十八口, 請屬公。” 從之。


10月 7日[편집]

우레가 치고 비와 우박이 내리다[편집]

○癸未/雷雨雹。


처음으로 경연을 열고 경연관들이 《대학연의》를 강론하다[편집]

○始開經筵。 領經筵事朴訔ㆍ李原、知經筵事柳觀ㆍ卞季良、同知經筵事李之剛、參贊官河演ㆍ金益精ㆍ李隨ㆍ尹淮、侍講官鄭招ㆍ柳潁、侍讀官成槪、檢討官金赭、副檢討官權蹈等進講《大學衍義》, 上曰: “設科取士, 欲得實才, 何以則令士去浮華之習?” 季良、之剛等對曰: “初場以疑義觀經學, 終場以對策觀適用, 此初立法之意也。 近學生不務實學, 改立初場講經之法。 由此, 英銳可用之材, 皆趨武科。” 上曰: “講經最爲難事, 今雖使卞三宰講論, 安能盡通乎?” 仍命領經筵外同知經筵以上, 一日一員進講, 侍讀官以下, 分三番進講, 參贊官金益精、李隨、尹淮亦一日一員進講。


허지를 관직에 나오게 하다[편집]

○命許遲就職。


사헌부에서 이방간에게 죄주기를 청했으나 윤허치 않다[편집]

○司憲府上疏請芳幹之罪, 不允。


10月 8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甲申/視事。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御經筵。


종정성이 방물을 바치다[편집]

○宗貞盛遣人獻土物。


사헌부에서 연화승을 금하고 민간의 사채 및 신역을 거두지 말 것을 상소하다[편집]

○司憲府上疏曰:

佛氏之道, 當以淸淨寡欲爲本, 今無識僧徒, 不顧其本, 曰創寺造佛, 曰法筵好事, 將天堂、地獄禍福之說, 眩惑愚民, 奪民口中之食; 脫民身上之衣, 以塗土木, 以供衣食, 蠱政害民, 莫甚於此, 況此凶歉之歲, 誠爲痛心。 伏望京外持願文出入閭里者, 痛行禁理, 如有違令者, 依律論罪, 其誑誘所取之物, 悉令收沒, 以賑飢饉之民。

凡民之生, 一日不再食則飢, 終歲不製衣則寒。 今我四境之民, 一遇水旱之災, 則唯仰官家之賑濟, 以遂其生。 前日稱貸於人者, 奚暇償納乎? 臣等願限豐年, 凡中外人民所負錢債及賤口役價, 勿論久近, 一禁徵償, 以優民生。 諸道失農各官守令, 能體聖心, 賑濟有方, 使民不至於死亡者, 不拘箇月擢用; 委官、監考亦能用心賑濟, 功績著見者, 令監司申聞敍用。 自監司、守令以至委官、監考, 不用心賑濟, 以致死亡者, 皆依律科罪。

上命勿禁緣化僧, 凡民間私債及役價, 限豐年勿徵。


판청주목사 우인열이 방죽 보수와 관리에 대하여 아뢰다[편집]

○判淸州牧事禹希烈請令諸道監司審州郡堤堰, 以爲黜陟。 又令諸郡俱錄堤堰及灌漑之數爲籍, 一置戶曹, 一進大內, 每年憑考修治。 又請以損實敬差官, 兼管堤堰之事, 上從之。


10月 9日[편집]

상왕을 따라 계산에서 사냥하다. 왕의 건강을 위해 상왕이 사냥을 권하다[편집]

○乙酉/上從上王, 田于雞山。 京畿都觀察使徐選來謁, 上王命: “自後觀察使勿見上王。” 嘗使河演諭政府、六曹曰: “主上不喜游田, 然肌膚肥重, 須當以時出遊節宣。 且文武不可偏廢, 我將與主上講武。”


10月 10日[편집]

차과령에서 도성에 남은 군신들이 변계량을 보내어 문안하고 주찬을 바치다[편집]

○丙戌/次于車過嶺。 留都群臣遣參贊卞季良, 詣行在問安, 仍獻酒饌。


10月 11日[편집]

어가가 근교에 도달하자 노상왕·대비·공비가 풍정을 바치다[편집]

○丁亥/還次近郊, 老上王、大妃恭妃各遣人獻豐呈。 國俗以享上爲豐呈。 議政府、六曹迎謁進酒, 上王歡甚, 令赴席者皆醉。


경상도 동래군에 지진이 일어나다[편집]

○慶尙道東萊郡地震。


10月 12日[편집]

경연에 나아가다 동지경연 이지강이 《대학연의》를 진강하다[편집]

○戊子/御經筵。 同知經筵李之剛進講《大學衍義》, 且啓曰: “人君學問, 正心爲本, 心正然後, 百官正, 百官正然後, 萬民正。 正心之要, 專在此書。” 上曰: “然。 句讀經書, 無益於學, 必有心上功夫, 乃有益矣。”


대사헌 허지 등이 합사하여 거듭 이방간을 죄줄 것을 청하다[편집]

○司憲府大司憲許遲等合司來啓曰: “前日上書, 請誅芳幹, 未蒙允許, 不勝憤惋。” 上曰: “君父之讎, 不共戴天。 予心豈與卿等異乎? 但以父王不允, 未得擅斷也。” 遲曰: “卽位之初, 當正大綱, 芳幹父子庚辰之事, 在人耳目, 誰不知之? 但以上王友愛之情, 得保首領, 以至今日。 不可以私恩廢公義, 宜置於法, 以正綱常。 上王保全芳幹二十餘年, 豈一朝遽回天心? 願上至誠請之。”


사간원 좌사간 대부 최관 등이 이방간 부자에게 죄줄 것을 청하다[편집]

○司諫院左司諫大夫崔關等亦上書, 請誅芳幹父子, 不允。


훈련관 제조를 병조에서 천망하도록 선지하다[편집]

○宣旨: “自今訓鍊觀提調, 兵曹薦望。”


10月 13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己丑/視事。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御經筵。


제기(祭器) 주조를 마친 감독관과 공인들에게 하사품을 내리다[편집]

○上命工曹參判李蕆、濟用副正南伋, 監鑄祭器。 告成, 賜蕆等內廐馬各一匹, 工人緜布各三匹。


일본 구주 총수와 서해로 미작 태수가 방물을 바치다[편집]

○日本國九州總守、西海路美作太守皆遣人獻土宜。


상왕의 선지를 사칭하여 부의로 내리는 쌀과 콩을 받고자 한 안우세를 가두다[편집]

○囚前府尹安遇世于義禁府。 先是, 遇世妻亡, 欲受致賻米豆, 詐傳上王旨, 令金龍奇聞于上, 至是事覺。


노희봉을 사재감, 정징을 예빈시의 제조로 삼고 근수를 주고 별좌 1인을 줄이다[편집]

○以宦官盧希鳳爲司宰監提調, 鄭澄爲禮賓提調。 命依別坐例, 給根隨, 革二司別坐各一人。


경기 풍저창에 상납하는 전세를 예전처럼 감고 색리가 관리케 하다[편집]

○戶曹啓: “京畿所納供正庫、豐儲倉田稅米豆, 前者令其官定監考色吏, 掌其收納, 去年始令守令三人、留後司官一人監納, 納者多而監者只三人。 因此納一二斗者, 亦或留至二十日, 其弊倍前。 請依前例, 令監考色吏掌之, 又令差使員監之。” 從之。


10月 14日[편집]

상왕이 좌·우금위를 파하여 내금위 내시위에 붙이게 하다[편집]

○庚寅/上王命罷左右禁衛, 屬內禁、內侍衛。


정부·육조 3공신 등에게 면화를 하사하다[편집]

○賜緜(子)〔于〕政府、六曹、三功臣、三軍摠制入直臣僚。


안세우의 공신 녹권과 별사전을 몰수하고 고향으로 쫓다[편집]

○義禁府論安遇世詐傳詔旨當斬, 命收原從功臣錄券及別賜田, 贖杖一百, 放歸其鄕。


일본 일향주 태수가 표를 올려 신(臣)이라 칭하고 방물을 바치다[편집]

○日本國日向州太守源氏島津元久上表稱臣, 獻土宜。


비전주 사문 길견창이 방물을 바치고 모시 삼베 및 호피를 요구하다[편집]

○肥前州沙門吉見昌〈淸〉亦遣人獻土宜, 求苧麻布及虎皮。


10月 15日[편집]

건원릉에 참배하고 즉위한 일을 고하다[편집]

○辛卯/上謁健元陵, 告卽位, 侍臣及各司一員扈從。


10月 16日[편집]

권홍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고 병조 참의 지사로 춘추관 편수관을 겸하게 하다[편집]

○壬辰/以權弘判漢城府事, 許稠爲禮曹判書, 權遇藝文館提學兼成均司成, 曺致戶曹參議, 柳暲刑曹參議, 崔關禮曹參議, 鄭招司諫院右司諫大夫, 盧龜山、李安愚、李種善、尹思永爲咸吉、全羅、江原、黃海道都觀察使, 吳陞全州府尹, 鄭尙判定州牧事。 始以兵曹參議、知事兼春秋館編修官。


상왕이 양녕 대군을 불러 보니, 임금이 밤을 타 가서 보다[편집]

○上王召見讓寧大君褆, 上乘夜詣上王殿見褆。


10月 17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癸巳/視事。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御經筵。


정조사 김여지 등에게 갓, 신 및 옷 한 벌씩을 하사하다[편집]

○賜正朝使金汝知、副使李之剛、進獻種馬使安望之笠靴及衣一襲。


개경사 중에게 미두를 하사하다[편집]

○賜開慶寺僧人米豆五十石。


대마도 종준이 사람을 보내어 조회하다[편집]

○對馬島宗俊遣人來朝。


상왕이 탄일 정조 동지 외에는 축하 전(箋)과 방물을 주상전에만 올리게 하다[편집]

○上王命誕日、正朝、冬至外, 諸道賀箋方物, 只進於主上殿。


대사헌 허지 등이 양녕 대군을 불러 들인 것에 대해 상왕께 아뢰고자 하다[편집]

○大司憲許遲等合司啓曰: “臣等聞, 讓寧大君褆來在上王殿。 褆得罪宗社, 天下所共知也。 今上王召入殿內, 臣等不勝驚駭, 將欲啓於上王。” 上曰: “父子兄弟至情, 豈不欲相見? 前月, 上王欲召見之, 因臺諫之請不果, 今乃召之, 卿等毋得煩請。” 遲等固請, 不允。 左議政朴訔曰: “上王之召褆, 將欲敎戒而保全之也。 然久留則非獨臺諫, 國人必喧動矣, 宜速送還。” 上曰: “予昨日暫見, 今日更見, 則必還矣。” 遲曰: “前日相見, 猶爲不可, 況更見乎?” 上謂遲曰: “卿等前日請懷安之罪, 予亦欲陳, 上王逆料而止之, 使不敢言。 卿等自後勿更陳啓。”


10月 18日[편집]

김여지 등이 표전을 받들고 떠나갈 때 청승습사가 오지 않자 상왕이 표에 이르다[편집]

○甲午/上朝上王殿。 上王與上率百官, 拜正朝賀表箋, 金汝知、李之剛奉表箋以行。 時請承襲使未還, 故上王拜表。 其表曰:

鳳曆紀年, 啓三陽之交泰; 龍庭輯瑞, 受萬國之來同。 凡屬照臨, 悉均蹈舞。 欽惟皇帝陛下聰明睿智, 剛健粹精。 敬天勤民, 在璣衡之七政; 修文偃武, 混車書於八荒。 玆値令辰, 益膺純嘏。 伏念, 臣猥將庸質, 幸際昌期。 迹滯靑丘, 阻詣鳧趨之列; 心懸紫闥, 倍殫虎拜之誠。


장가가는 우부대언 이수에게 말 등을 하사하다[편집]

○上賜右副代言李隨鞍馬、笠靴及衣一襲, 以隨將娶妻也。


제릉에 참배하고자 유후사에 거둥하다[편집]

○上將謁齊陵告卽位, 幸留後司, 次于原平。 命議政府六曹堂上及臺諫各一人扈駕。 京畿觀察使徐選來謁。


양녕 대군이 광주로 돌아가다[편집]

○是日, 讓寧還廣州。


10月 19日[편집]

어가가 임진에 이르렀는데 천둥이 치고 우박이 내리다[편집]

○乙未/次于臨津。 大雨雷震雨雹。


상왕이 사람을 보내어 문안하다[편집]

○上王遣人問安, 上賜使者衣一領。


병조 관원의 조회 후에 전정에 와서 배례하고 영을 듣는 범위를 확대하다[편집]

○兵曹啓: “曾降敎書: ‘軍國重事, 予親聽斷。’ 前者, 本曹令出番三軍判府事以下護軍以上, 每衙日朝會後, 會三軍鎭撫所, 聽本曹出令乃散, 然只令護軍以上一會未便。 自今出番三軍司直以下軍士及本曹所屬內禁、內侍、別侍衛, 當番都城衛、鷹揚衛等, 主上殿入番外, 別牌、侍衛牌、軍器監、義禁府大小員吏, 每月初一、十六日朝會後, 殿門一會。 上陞座, 兵曹堂上、郞廳、三軍都鎭撫先入殿庭, 行四拜禮, 二品以上陞殿侍坐, 次三軍判府事以下軍士及有兼帶前銜軍士, 各以職次入殿庭, 行四拜禮出, 次三軍甲士、都城衛、各道別牌、侍衛牌入庭序立, 中軍在前, 左軍次之, 右軍又次之。 次都城衛, 次京畿, 次慶尙, 次忠淸, 次全羅, 次江原, 次黃海, 次咸吉, 次平安行四拜禮, 出聽本曹令乃散。 近仗防牌入番及差備外, 會本曹門外, 聽令乃散。” 上王從之。


병조 관원 등을 각도에 보내어 군사와 병기를 점고하고 정리하게 하다[편집]

○兵曹啓: “長治久安之策, 莫切於武備。 國家昇平日久, 民不見兵, 中外官吏視爲文具未便。 請分遣本曹官及三軍鎭撫于諸道, 整點兵器, 以備不虞。” 上王從之。


10月 20日[편집]

연도에서 잡은 금수를 상왕께 바치다[편집]

○丙申/遣內臣, 以沿途所獲禽獸獻于上王。


유후 이도방이 와서 알현하다[편집]

○留後李都芬來謁。


태조의 진전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 유후사에 들어가다[편집]

○知申事河演等請遣近臣, 審營造太祖眞殿之役。 上曰: “予當親往見之。” 乃入留後司觀之, 次于海豐。


황해도 관찰사 이추가 방물을 바치다[편집]

○黃海道觀察使李推遣人獻方物。


10月 21日[편집]

상왕이 동교에 거둥하여 새로 세우는 이궁을 둘러보다[편집]

○丁酉/上王幸東郊, 觀臺山新構離宮。


제릉에 제사지내다[편집]

○上祭齊陵, 右議政李原亞獻, 漢平君趙涓終獻。


도성에 머물러 있는 정부와 육조에서 이관을 보내어 문안하다[편집]

○留都政府、六曹遣吏曹參判李灌, 問起居, 獻酒果。


연경사에 미두를 하사하다[편집]

○賜衍慶寺米豆五十石。


진전 건축 비용으로 유후사에 무명과 베를 내리고 해풍에서 머물다[편집]

○賜留後司緜布百匹、正布百匹, 以爲營眞殿之備, 還次于海豐。


남양군 홍서의 졸기[편집]

○南陽君洪恕卒。 訃聞, 命停朝市三日。 恕, 高麗宰相師範子, 有武才。 諡康襄。 諡法, 溫柔好樂曰康, 甲冑有勞曰襄。


10月 22日[편집]

임진에 머물다[편집]

○戊戌/次臨津。


제주 경차관 고득종이 은 천 칠백여 냥을 사오다[편집]

○濟州敬差官高得宗買銀一千七百七十一兩以來。


명나라 황제가 해동청과 표범을 잡도록 보낸 지휘와 천호를 보호 호송케 하다[편집]

○初, 帝遣指揮伯顔不花、千戶李敏等, 率軍官五十四人, 捕海靑、土豹於三撒地面, 自閭延郡小甫里口子乘桴渡江, 遣宣存義及朴楣, 慰而詗之。 至是, 又遣判事鄭喬, 賜毛冠, 又命從其所向支應護送。


병조 당상 및 삼군 도진무도 정사에 참예케 하다[편집]

○宣旨: “今後當予視事日, 兵曹堂上及三軍都鎭撫等竝參。”


10月 23日[편집]

햇무리가 지다[편집]

○己亥/日暈。


원평에서 머물다[편집]

○次于原平。


병이 난 참찬 김점에게 문병케 하고 털옷 등을 내리다[편집]

○參贊金漸還自義州, 以病留龍泉站, 上遣人問病, 賜毛衣毛冠。


민무구 등 형제의 처자를 외방에서 자유롭게 살게 하다[편집]

○上稟宣旨, 命閔無咎兄弟等妻子, 許外方從便。


지평이 술과 밥을 강제로 사들여 호가하는 군사를 먹인 유후를 탄핵하다[편집]

○司憲持平鄭其劾留後(李都芳)〔李都芬〕等抑買酒食, 以饋隨駕軍士之罪, 命勿論。


경기도 관찰사가 술과 과일을 바치다[편집]

○京畿都觀察使獻酒果, 分賜扈駕臣僚。


10月 24日[편집]

상왕이 유후사에서 돌아온 임금을 위해 서교에서 주연을 베풀다[편집]

○庚子/上至自留後司, 上王迎于西郊, 置酒唱和極歡。 宗親宰樞皆侍宴, 大司憲許遲, 不命而舞。


경기 관찰사 서선에게 옷감을, 경력 송인산에게 옷을 하사하다[편집]

○賜京畿觀察使徐選表裏, 經歷宋仁山衣一領。


10月 25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辛丑/視事。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御經筵。


상왕전에 문안하다[편집]

○朝上王殿。


상왕이 흉년이므로 각도 별패의 입번을 그만두게 하다[편집]

○上王以年饑, 命各道別牌除番上。


태실 증고사 정이오가 태실산도를 바치다[편집]

○胎室證考使鄭以吾來自晋陽, 獻胎室山圖。 山在晋州屬縣昆明。


전주 부윤 오승이 부모의 분묘 이장을 칭탁하고 부임하지 않다[편집]

○全州府尹吳陞托以遷父母墳, 上書辭職不赴。


10月 26日[편집]

인정전에 나아가 군신의 조회를 받다[편집]

○壬寅/上御仁政殿, 受群臣朝。


편전에 나아가 경연에서 정사를 보다[편집]

○御便殿, 視事、經筵。


상왕전에 문안하다[편집]

○朝上王殿。


조말생과 하연에게 돈피 갖옷을 하사하다[편집]

○賜趙末生、河演貂裘。


과거 통례문을 지내서 조례에 익숙한 자는 통례문을 겸임하게 하다[편집]

○禮曹啓: “曾經通禮門慣於朝禮者, 兼差通禮門。” 從之。


사헌부에서 지평 이좌의 고신에 서명하지 않다[편집]

○司憲府不署持平李佐告身, 以姊壻鄭擢誣構以不孝也。


10月 27日[편집]

비와 눈이 내리다[편집]

○癸卯/雨雪。


정사를 보고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視事、經筵。


후사 없는 3공신의 천첩의 맏아들이 공신 자손 반열에 참예함을 허락하다[편집]

○上稟宣旨, 命無嗣三功臣賤妾長子, 許與於功臣子孫之例。


종묘 5실의 개에 금으로 그림을 그리지 말게 하다[편집]

○上命宗廟五室蓋, 依他例除畫金。


군신이 첫눈을 축하하려 하자 임금이 천둥과 지진이 있었다 하여 받지 않다[편집]

○群臣將賀新雪, 上曰: “冬雷地震, 新雪何足賀?” 朴訔、李原、卞季良等進啓曰: “臣等將賀新雪, 而上以冬雷地震不受, 臣等深喜上之遇災而懼。 意者, 上旣遇災而懼, 故天有祥雪也。”


상왕과 임금이 동교에 거둥하려다 따르는 이들의 고생을 생각해 중지하다[편집]

○上王與上將幸東郊觀射, 以寒甚欲停之, 朴訔等曰: “今日之寒, 冬令之順也。 行幸何害?” 上王曰: “供億僕從之人, 其苦不可勝言。” 遂停之。


의정부에서 이방간 부자 이숙번·염치용 등의 죄를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다[편집]

○議政府上書曰:

君父之讎, 不共戴天。 芳幹父子及朴蔓、任純禮、申孝昌、鄭龍壽罪干叛逆, 在所不赦。 李叔蕃、李稷辜負上王之恩, 欺罔天聰, 廉致用、房文仲, 誣陳上王之過失。 此皆殿下不共戴天之讎, 請下有司, 以正綱常。

不允。


상왕이 조말생에게 하윤의 아들 하영을 등용할 뜻을 말하다[편집]

○上王謂趙末生曰: “河崙功勳, 卿等所知。 其子永, 何時終制乎? 次子長, 年幾歲乎?” 又曰: “崙爲相, 知無不言, 盡心輔國, 忠直之臣, 無如此人。 永若終制, 則其召之, 予將用之。”


하연에게 털옷을 하사하다[편집]

○上賜河演毛衣。


상왕이 노상왕에게 첫눈을 봉하여 올리다. 첫눈 봉하여 서로 장난하는 풍습[편집]

○上王封新雪, 稱爲藥餌, 遣內寮崔游, 戲進于老上王殿, 老上王先知之, 使人追執游而不及。 高麗國俗, 封新雪相遺, 受者必設宴, 若先知而執其使者, 則送者設宴以相戲云。


함길도 관찰사 노귀산 등이 상왕전에 나아가 사직하기를 고하다[편집]

○全羅道觀察使李安愚、黃海道觀察使尹思永、咸吉道觀察使盧龜山等詣上王殿拜辭, 上王謂龜山曰: “聞卿母老病, 然乎?” 對曰: “臣母行年七十六, 以病長在床褥。 然主上卽位之初, 不敢以辭。” 曰: “予將言於主上, 卿其姑留待命。”


경기 군기 점고 찰방이 강화 교동 산성과 광주 일장성의 수축을 청하다[편집]

○京畿軍器點考察訪請修築江華喬桐山城及廣州日長城, 命待豐年築之。


이미 개조한 종묘 5실의 옛 휘장과 책보를 불사르다[편집]

○禮曹啓: “臣等謹稽古制, 祭器、祭服破毁, 不任修葺者申換, 器則埋之, 服則焚之。 今宗廟五室帷帳及冊袱, 今已改造, 請焚其舊。” 從之。


10月 28日[편집]

상왕이 주연을 베풀고 이방간 등에 대해 불문에 부치기를 대신들에게 당부하다[편집]

○甲辰/上王置酒, 迎慰上, 孝寧大君補、領敦寧柳廷顯、左議政朴訔、右議政李原、參贊卞季良、吏曹判書鄭易、戶曹判書崔迤、禮曹判書許稠、工曹判書孟思誠、兵曹參判李明德、大司憲許遲、司諫鄭守弘及六代言侍宴。 上王謂群臣曰: “聞, 卿等請芳幹父子及朴蔓、任純禮、申孝昌、鄭龍壽、李叔蕃、黃喜、廉致庸、房文仲、權約之罪以爲, 君父之讎, 不可不復。 所謂復讎者, 以父不能有爲也。 我在位十九年, 豈有不能而待於後世也?” 乃歎曰: “我百歲後, 未可知也, 我在毋復言。” 又曰: “朴蔓性柔, 不能違太上命耳。 且蔓等事, 何得一一如法? 孝昌、龍壽使安遇世具述情款, 遇世欲自以爲功, 不肯道, 孝昌等語往日考問, 乃得其實。 致庸、文仲、權約, 我之所恥言也。 黃喜我初頗不直之, 使其姊子吳致善問之, 曰: ‘世子信不德, 然於國儲, 安敢進間言?’ 我思其言, 亦何罪之有? 叔蕃有功於我, 本欲保全。 但嘗有言常見於世子, 我雖不見其迹, 竊料其計, 前者無咎等謀去諸王子, 以爲世子地。 叔蕃承我意, 攻無咎等甚力, 今必恐世子忌之, 欲還附之, 必復有無咎等剪除王子之謀。 以是遠謫耳, 毋復更請。” 酒進唱和。 上王曰: “座上嘉賓盡故人。” 廷顯等下庭謝。 酒半, 朴訔進啓讓寧不當居近地, 上王目上前廷顯、許遲而流涕曰: “父子天性, 我欲常常見之, 豈可使處遠地?” 遲曰: “願思大計, 割恩也。” 上王作色曰: “父子之間, 卿欲何爲?” 上亦流涕。 廷顯等俱退就坐。 代言成揜進酒, 上王曰: “見爾則思誠寧。” 仍謂群臣曰: “成氏一門, 比諸原從功臣。” 揜, 誠寧夫人成氏之伯父也。 兩上皆起舞, 群臣亦迭舞, 夜至四鼓而罷。


10月 29日[편집]

일본 비전주 중·일향주 태수·관서도 축전주 석성 관부가 칼·향 등을 바치다[편집]

○乙巳/日本國肥前州沙彌吉見昌淸遣人獻劍六把, 求布及虎皮等物, 賜苧麻布各五匹、虎皮五領。 日向州太守源氏島津元久遣人獻香十斤、黑木百斤、川芎十斤、鉛五十斤、桂心、丹木各百斤、漆壺甁一對、丁子香四箇, 賜紬布五匹、緜布百七十五匹。 關西道筑前州石城官府平滿景遣人獻香三十斤、藤五百本、胡椒、丁香、檳榔各二斤、紫檀百本, 賜緜布百五十匹。


10月 30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丙午/視事。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御經筵。


상왕전에 문안하다[편집]

○朝上王殿。


도호부 이하에는 교도를 두지 않고 예전처럼 학장을 두게 하다[편집]

○吏曹判書鄭易等啓: “師表之任, 不可不重。 近以生員、進士爲敎導, 其中猥瑣之徒, 不顧大體, 就職未久, 輒自辭避, 官爵猥濫, 無異添檢, 虛費廩祿。 自今都護府已上, 以文科出身者差遣, 其餘仍舊置學長。” 崔迤亦曰: “今新置敎導, 廩給之費亦多。 不若以隣鄕年高德邁, 可爲師表者爲學長。” 從之。


화산부원군 장사길의 졸기[편집]

○花山府院君張思吉卒, 停朝市三日, 宮中素膳三日, 諡僖襄。 諡法, 小心畏忌僖, 甲冑有勞襄。 思吉, 義州萬戶張烈之子, 世爲土豪。 思吉美容儀, 鬚髯過其腹, 有武藝。 太祖選置腹心, 與其弟思靖, 俱爲開國功臣, 然以妾妓爲妻, 時以此少之。 妓妾子住。


사진하는 날마다 상왕전에 숙배하는 것을 당상과 낭청 한 사람씩만 하게 하다[편집]

○宣旨: “兵曹每當衙日, 行肅拜于予, 只遣堂上一、郞廳一, 參主上殿朝衙。”


일본 관서로 구주 도원수 원도진이 방물을 바치다[편집]

○日本關西路九州都元帥右武衛源道鎭遣使來獻土物。


사람을 죽인 사노 우동 등을 참형에 처하다[편집]

○私奴牛同及金元吉以殺人處斬。


간부와 모의하여 남편을 죽인 여인과 간부를 참형에 처하다[편집]

○女末應加伊與奸夫金三千謀殺其夫。 末應加伊凌遲處死, 三千處斬。


즉위년 十一月[편집]

11月 1日[편집]

상왕이 강화에 백여 칸 집을 지어 양녕 대군을 거처하게 하다[편집]

○丁未朔/上王曰: “讓寧之罪, 不關於宗社, 專是金漢老所爲也。 其子無罪, 而隨父在小家, 火災可畏, 予甚憐之。 但慮讓寧性不安靜, 恐姦詐之徒, 潛相誘引, 欲於江華造屋百餘間, 俾之入處。”


상왕이 장사길을 어떤 등급으로 장사지낼 것인가에 대해 묻다[편집]

○上王曰: “張思吉葬以何等禮乎?” 趙末生對曰: “以功臣封府院君, 葬以一等。” 上王曰: “吾在位時, 大臣卒則以恩義厚薄, 或加賻或否。 思吉兄弟輸誠向國, 禮當葬以一等, 是公義也, 非爲宮人之親也。 主上必欲加賻, 宜令止之。 吾聞其家甚貧, 欲以本宮米十石賜之。”


태실 도감에서 진주 태실에 시위 품관 8인과 수호 8인을 두기를 청하다[편집]

○胎室都監請置晋州胎室侍衛品官八人、守護干八人, 上王從之。


11月 2日[편집]

상왕이 회안군과 강상인과 박습의 처벌문제에 대하여 말하다[편집]

○戊申/上王曰: “六曹、臺諫請懷安等罪, 懷安爲姦人所誤, 以至擧兵耳。 姜尙仁自爲生員時, 爲我書題, 以其有勞, 待之極厚, 當盡忠事我, 而以兵曹常在殿門, 不啓軍務, 及其案問則曰: ‘不能覺察也。’ 必壓膝問之, 乃可得情。 朴習信尙仁言至此, 吾以謂, 罪有差等。 吉再徵召不來, 固守不事二君之志, 臣節固當爾也。” 趙末生曰: “前此群臣屢請尙仁等罪, 亦以此也。 習之爲人, 豈從尙仁指揮者? 臣以謂罪無輕重。” 上王曰: “其召知申事來, 予請主上言之。” 上卽詣上王殿。


11月 3日[편집]

임금이 상왕께서 이방간을 보전하고자 하는 뜻을 좌사간 정수홍에게 말하다[편집]

○己酉/視事。 左司諫鄭守弘啓曰: “殿下初卽位, 君父之讎, 不可不報。 政府、臺諫交章論請, 而芳幹父子, 尙未就刑, 臣等缺望矣。” 上曰: “上王嘗語予曰: ‘昔淮南王謀反, 漢猶不殺, 史策美之。 我欲效漢文, 保全芳幹。’ 予以是, 未得請也。” 守弘曰: “願殿下明正典刑, 以副物議。 其罪人臧獲不沒官者, 宜當盡沒。” 上命河演磨勘以聞。


경연에 나아가 《대학연의》를 강하다[편집]

○御經筵, 講《大學衍義》, 至隋薛道衡上高祖頌, 煬帝覽之不悅之語曰: “道衡頌美先朝, 而煬帝反不悅, 是何心哉?”


상왕이 편전에 나아가 대신들과 강상인 등의 일을 다시 의논하다[편집]

○上王御便殿, 謂趙末生、元肅、張允和、河演曰: “前日言尙仁事未竟, 更與卿等言之。 尙仁自生員, 至爲參判, 特加恩待, 不曾知感, 輒懷異心, 不啓軍務, 只啓各更無事。 又主上卽位之三日, 來見曰: ‘各道獻鷹, 當進父王。’ 予亦以爲可, 卽令尙仁奉宣旨移文, 尙仁稽留四五日不行。 再令移文, 乃啓曰: ‘奉王旨移文可矣。’ 予乃從之。 又令召洪州安置金國珍, 尙仁亦不奉行。 若一視吾父子, 則豈爲此哉? 所以爲此者, 將以爲後日地也。 究觀其心, 其爲庸惡甚矣, 可更鞫問。 如無逆心, 罪之實爲冤抑, 固當宥之, 若誠有逆心, 則人臣非獨尙仁, 人主非止今時, 安可不以王法治之乎? 其時行首當該官, 亦當質問。” 元肅曰: “朴習雖云惟尙仁言是從, 然更事多, 豈不知而如此乎?” 乃命張允和, 就問於左右議政第。 朴訔曰: “尙仁所犯莫重, 上慈置諸輕典, 擧國論請, 不獲蒙允。 今使更訊, 臣實欣抃。” 李原進啓, 亦如訔議。 於是, 遣義禁府鎭撫安希德于端川, 洪延安于古阜, 都事盧珍于泗川, 陳仲誠于茂長, 執尙仁、習、蔡知止、李慤以來。


완공된 상왕전의 신궁을 수강궁이라고 하다[편집]

○上王殿新宮成, 名曰壽康。


상왕이 효령 대군·유정현 등에게 오매패를 하나씩 나누어 주다[편집]

○上王賜烏梅牌各一于孝寧大君補、柳廷顯、沈溫、朴訔、李原、延嗣宗、崔閏德、李春生、河敬復、趙末生、李明德。


전 의정부 참찬 성발도의 졸기[편집]

○前議政府參贊成發道卒, 輟朝三日。 發道, 府院君石璘之子。 爲人純厚無他, 歷仕中外, 有聲績。 諡景肅, 由義而制景; 執心決斷肅。 無嗣。


참찬 변계량에게 봉숭할 때 상왕에게 헌수할 악장을 짓게 하다[편집]

○上命參贊卞季良製樂章。 欲以封崇之日, 獻壽於上王也。 詞曰:

日映金門霽景鮮, 九重仙樂徹雲天。 君王來獻南山壽, 永享昇平萬萬年。 持守盈成繼至仁, 生民共祝壽千春。 於萬斯年福祿來宜, 酒滿金樽日正遲。 聖子稱壽酒。 億載萬年爲父母。 恭惟聖壽, 與天長而地久。

以爲初筵獻壽之歌。 又作天眷東陲之曲曰:

於皇天眷東陲, 生上聖濟時危, 偉萬壽無疆。 扶太祖代高麗, 尊嫡長正天彝, 偉萬壽無疆。 受帝命作君師, 多士輔庶績熙, 偉萬壽無疆。 海寇服甘露滋, 時之泰古所稀, 偉萬壽無疆。 有聖子付丕基, 享多壽彌萬期, 偉萬壽無疆。

以爲罷宴之曲。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태실에는 돌난간 대신 나무 난간을 세우게 하다[편집]

○宣旨: “胎室石欄之設, 掘地損脈。 今晋州胎室, 毋設石欄, 只用木爲欄, 朽則改之, 以爲恒式。”


명나라 황제가 지휘 안독을 보내어 경원 등지에 사는 야인들을 초유케 하다[편집]

○初, 野人月郞介、毛郞介、殷阿兒古大等, 來居慶源等地, 至是, 帝遣指揮安禿, 奉勑招諭野人。 安禿遣人曰: “月郞介等, 本是野人, 可發還本地。” 上王令政府, 六曹議之, 皆請發還, 上王從之。


충의위를 설치하다[편집]

○設忠義衛, 以開國、定社、佐命三功臣子孫, 分充四番宿衛。 身犯不忠不孝者及其子孫, 不許入屬。


태실 도감 제조 김자지에게 동옷 등을 내리다[편집]

○賜胎室都監提調金自知襦衣、毛冠、靴。


중앙과 지방의 신료들에게 마땅히 행해야 될 조목들로 유시하다[편집]

○上諭中外臣寮曰:

惟我父王纉承太祖之業, 立經陳紀, 爲萬世法, 深仁厚澤, 洽于民心。 予以寡德, 嗣守洪圖, 不燭于理, 罔知時措, 夙夜祗敬, 恐違父王付托之意。 爰推仁愛之恩, 庶副黎元之望, 所有合行事宜, 條列于後。 農桑, 衣食之本, 今當凶年, 尤其所急。 中外營繕, 雖已禁斷, 慮恐守令不體予意, 妄興工作, 以奪民時。 除六曹受敎行移外, 敢有私役農民者, 監司隨卽斷罪申聞。 學校, 風化之源, 內設成均、五部學堂, 外設鄕校, 勸勉訓誨, 無所不至, 而成均受學者, 尙未滿額。 意者敎養之方, 未盡其術歟? 人之趨向, 他有所好歟? 其振起作成之術, 政府六曹講求以聞。 且鄕校生徒, 雖有志學者, 所在守令, 如損分書役, 應對賓客等事, 無時使喚, 以致廢業, 自今一禁, 其有儒士私置書院, 敎誨生徒者, 啓聞褒賞。 守令, 近民之職, 其選尤重, 監司一時褒貶, 或失其實。 各道各官三十年以來守令政績, 從實訪問, 具名以聞。 鰥寡孤獨、疲癃殘疾, 王政所當哀矜。 內而漢城府五部, 外而監司守令, 詳加審問, 還上賑濟, 爲先分給,【國俗, 義倉所貸, 謂之還上。】毋致失所。 且今適値凶歉, 慮恐失業之民, 或値飢饉。 各官守令, 如有失於賑濟, 匹夫匹婦, 餓莩(講)〔溝〕壑, 定行責罰。 貧乏之家, 有嫁年已過, 而不能婚嫁者, 有葬期已盡, 而不能埋葬者, 誠可哀悶。 監司守令官給資糧, 以助支費, 毋致失時。 或父母歿而同産一族, 利於全執奴婢財産, 不肯婚嫁者, 痛行科罪。 貪汚官吏, 托以貢賦上納、使客支應、官府營繕等事, 違法重斂, 貽害生民, 監司不能覈實, 反置最列, 甚乖黜陟之意, 自今精察糾理, 以恤民生。 各官守令, 或因一時私怒, 非法枉刑, 鞭撻無告之民, 致傷和氣。 監司擧行曾降敎旨, 毋致枉濫, 以副予欽恤之意。 鄕愿品官、元惡人吏, 操弄守宰, 蠹害良民, 而爲守令者, 墮其牢籠, 反以爲能, 信任偏聽, 委之以事者, 間或有之。 今後守令不肯親執庶務, 委諸人吏品官者, 監司痛行糾理, 具名以聞。 義夫節婦、孝子順孫, 義所表異, 廣加訪問, 開具實迹, 啓聞旌賞。 水陸戰亡士卒子孫, 所在守令, 復戶優恤, 其有才能可任者, 啓聞敍用。 懷才抱道, 隱於草萊, 不求聞達之士, 予將顧問, 授之以任, 監司旁求, 具名申聞。

六曹請分遣朝臣于諸道頒敎, 上以驛路疲弊不從, 命以急傳行移。


11月 4日[편집]

무지개가 뜨다[편집]

○庚戌/虹見。


상왕전에 문안하다[편집]

○上朝上王殿。


노귀산·하자종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편집]

○以盧龜山爲右軍都摠制, 河自宗、卓愼恭安府尹, 姜淮仲、韓雍仁壽府尹, 洪汝方禮曹參判, 成揜刑曹參判, 金益精左代言, 李隨右代言, 尹淮左副代言, 崔士康右副代言, 柳穎同副代言, 李愉咸吉道都觀察使, 金謙全州府尹, 鄭尙判忠州牧事。 自宗, 演之父也。


재신들에게 좋은 망아지를 나누어 주다[편집]

○以全羅道牧場所進良駒, 分賜宰執。


장사길에게 제사를 내려 주다[편집]

○賜祭于張思吉。


상왕이 중국에 공헌하는 금과 은을 말과 베로 대신할 것을 주청하려 하다[편집]

○上王曰: “金銀不産我國, 貢獻實難繼也。 欲以馬匹及布子代獻如何?” 鄭易對曰: “宜代以鷹子。” 上王笑曰: “卿之言不然。” 因曰: “帝必允兪, 將遣使奏請。”


상왕이 신하들이 사은하는 것을 금하도록 병조에 명하다[편집]

○上王曰: “予旣謝位, 不欲聞大小臣僚來謝, 兵曹其知予意禁之。”


성발도에게 미두 30석과 종이 백 권을 부의로 주다[편집]

○賻成發道米豆三十石、紙百卷, 常典也。


11月 5日[편집]

상왕전에 문안하다[편집]

○辛亥/上朝上王殿。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강원도 평해 백성을 창고 곡식을 내어 진휼케 하다[편집]

○江原道敬差官啓: “平海民八十餘戶飢饉。” 上命發倉賑之。


김한로의 어머니가 죽어 분상을 허락하니, 하연 등이 옳지 못함을 아뢰다[편집]

○前此, 金漢老母死, 許漢老奔喪, 至時, 河演等言: “漢老敎誘其母, 陷於不義, 是自絶其母也。 殿下令漢老來葬其母, 臣等以爲不可。” 上曰: “親死奔喪, 固天理人情之不可已者, 且上王業已命之, 不可不從。 旣葬還配所, 亦無害也。” 演等請之再三, 上不允, 令漢老與子敬哉來葬其母。


총제 이춘생이 중풍으로 죽었다 살아나니 그 응급방을 써서 부치게 하다[편집]

○摠制李春生中風, 絶而復蘇。 上王曰: “近日中風暴死者, 幾二十餘人。 須令寫備急方, 牓于殿內及兵曹。”


서원부원군 한상경으로 안태사를 대신케 하다[편집]

○判漢城權弘啓上王曰: “今以領敦寧柳廷顯爲安胎使。 廷顯職兼義禁府, 不可以刑官將事。” 上王曰: “然。 其以西原府院君韓尙敬代之。”


예조에서 태실을 진주에 옮겨 봉안하는 절차에 대해 아뢰다[편집]

○禮曹啓: “胎室移安晋州時, 令於安胎處, 結綵棚、設儺戱, 其所過州縣, 止於館門結綵, 以儀仗、鼓樂郊迎, 各道監司、守令毋得越境。” 從之。


11月 6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壬子/視事。


상왕전에 문안하다[편집]

○朝上王殿。


무예 연습장으로 적당치 않은 월라전과 가평 들판을 백성들이 이용케 하다[편집]

○上王曰: “槌峴東月羅田及加平之野, 皆不合講武場。 其召鄭義、朴舒問之, 勿禁民樵牧、耕田。”


상왕이 병조 당상관에게 호피 한 벌씩을 내려 주다[편집]

○上王賜虎皮各一令于兵曹堂上。


원아패의 출납을 병조 당상관이 선지를 받아 시행하도록 하다[편집]

○兵曹啓: “國制, 若召外在者, 則入直代言親稟上旨, 將其賜送王府所藏圓牙牌, 稱臣封匣, 以付使者, 本院給起馬文憑, 直下兵曹, 馳馹以往, 兵曹卽報議政府, 被召者承牌, 起程赴京。 有詐僞者, 處以重典, 以防姦僞。 今後圓牙牌出納, 本曹入直堂上親稟宣旨, 依上項例施行。” 上王從之。


11月 7日[편집]

수강궁으로 옮겨 거처하다[편집]

○癸丑/上王移御壽康宮。


정사를 보다[편집]

○視事。


경연에 나아가 송나라 명신들의 사적을 묻다[편집]

○御經筵。 問宋朝名臣事跡, 卞季良對曰: “溫仁謹厚, 司馬溫公爲最。 王安石, 先儒以爲小人, 觀其文章、政事與其用心, 皆非人所及也, 恐未可專以小人目之也。” 上曰: “安石, 小人之才者也。”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上朝壽康宮。


사간원에서 경연에 간관도 참여하기를 청하다[편집]

○司諫院啓曰: “古之人君, 雖居燕閑, 必使箴諫之臣侍側者, 欲其匡救遺闕, 以廣進德修業之基也。 殿下日開經筵, 講論道義, 而諫官不與焉, 恐非古者親近諫臣之道也。 自今經筵, 乞令諫臣輪日入侍。” 從之。


상왕이 양녕 대군과 회안 대군을 농사짓고 사냥하게 해 주는 것에 대해 묻다[편집]

○上王謂左議政朴訔、右議政李原曰: “讓寧常言: ‘願與平民處, 以遊獵自適。’ 吾欲令讓寧、懷安率其家人, 耕穫遊田如何?” 訔等對曰: “讓寧則宜給月俸, 且令家人治農, 又與江華府使遊獵, 似無害矣。 懷安則得保首領足矣, 何可給俸? 且不可令遊畋。” 趙末生曰: “讓寧、懷安皆不可令耕農以聚人, 遊戲以自逸。” 上王曰: “讓寧亦言: ‘父王生時遊戲而已。’ 其在主上時, 必不遊戲矣, 吾從兩議政言。”


봉숭한 후에 모후에게 헌수하는 문제에 대해 박은이 아뢰다[편집]

○朴訔啓: “封崇後上壽, 請依宋孝宗上壽德壽宮故事, 一獻後入內, 上壽于母后。” 上王曰: “大妃連喪三子, 誠寧又卒, 讓寧又如此。 以故憂勞成病, 不能受禮。 且恭妃率諸婦女來慰, 吾對主上與大臣同歡宴罷後, 與主上入內殿設宴, 則無異於德壽之事。”


고의로 사람을 죽인 사노의 목을 베고 주인을 죽인 사노를 능지 처참 시키다[편집]

○私奴豆彦以故殺人處斬, 私奴每邑同以毆殺本主, 凌遲處死。


상왕을 봉숭하는 의식 절차[편집]

○禮曹啓上王封崇儀曰:

前一日, 有司設冊寶案於勤政殿當中南向, 設殿下拜位於殿庭當中北向, 設幄次於殿庭近東南向, 設受冊寶位於殿下拜位之東北西向, 設冊寶案褥位於拜位之北南向, 設典儀位於東階之東南。 通贊二人在南小退, 俱西向北上, 設左侍臣位於殿下拜位之東南, 右侍臣位於殿下拜位之西南, 東西相向異位, 俱重行北上。 設進冊官以下應行事執事官位於冊寶案褥位之東, 異位重行, 西向北上, 設文官一品以下位於道東左侍臣之南西上, 宗室及武官一品以下位於道西當文官東上, 每等異位, 俱重行北向, 設監察位二於東西班後。 又於壽康宮設殿下大次於外門內, 隨地之宜, 小次於殿東廊西向, 設安冊寶幄於大次之北南向, 設文武群官門外位於內門外, 東西相對, 俱重行北上。 設上王幄坐於正殿當中南向, 設香爐二於前楹外, 設殿下拜位於月臺上當中北向及設褥位於幄坐之東西向, 設冊寶案褥位於殿下拜位之北。 設協律郞位於殿階上近西東向, 設典儀位於東階之東南, 通贊二人在南小退, 俱西向北上, 設進冊官以下應行事執事官位於西階下, 異位重行, 北向東上, 設文官一品以下位於道東西上, 宗室及武官一品以下位於道西當文官東上, 每等異位, 俱重行北向, 設監察位二於東西班後。

至日, 於壽康宮兵曹陳繖扇、仗衛於殿階上下, 樂官陳樂於百官之南, 有司設箋案於月臺上。 鼓一嚴, 於勤政殿兵曹陳繖扇、仗衛於殿階上下, 通禮門設文武群官位於闕門外, 文東武西相對, 俱重行北上, 進冊官以下應行事執事官及文武群官, 各具朝服。 鼓二嚴, 判通禮跪, 啓請中嚴, 應行事執事官及文武群官, 俱集勤政門外, 有司捧冊寶, 安於殿內案上, 判通禮跪啓外辦。 鼓三嚴, 通禮門分引文武群官入就位, 次引進冊官以下行事執事官入就位。 禮儀使啓請發上王尊號冊寶, 殿下服袞冕以出, 近侍跪進圭。 禮儀使導殿下, 隨冊寶降西階, 內臣當職者捧冊寶, 安於殿庭案上, 殿下就拜位北向立。 禮儀使跪, 啓請再拜, 殿下再拜, 通贊贊衆官再拜, 在位者皆再拜, 應行事執事官不拜。 禮儀使跪, 啓請跪搢圭, 殿下跪搢圭, 如搢不便, 近侍承奉, 通贊贊跪, 衆官皆跪。 近侍捧冊東向跪進, 禮儀使跪, 啓請執冊授進冊官, 殿下執冊授進冊官, 進冊官搢笏, 西向側身跪受, 興少退西向立, 進寶官受寶如受冊儀訖, 禮儀使跪, 啓請執圭、俯伏、興, 通贊贊俯伏、興, 衆官皆俯伏、興。 禮儀使導殿下入幄次, 改服冠袍。 進冊官進寶官捧冊寶前行, 至龍亭前, 以冊寶各安於龍亭中案, 授執事者, 鹵簿鼓吹前導, 進冊官以下應行事執事官隨行, 出闕門外上馬, 詣壽康宮幄次奉安。

初, 進冊官以下行事執事官出闕門外, 奉禮郞引文武群官出就門外位, 侍衛之官, 各服其器服, 摠制以下左右侍臣, 俱詣幄次前奉迎。 判司僕進象輅於勤政門前南向, 千牛將軍一人執長刀立於輅前北向, 知通禮在判通禮之前, 通贊、舍人二人在知通禮之前。 判司僕攝衣而升, 正立執轡, 殿下乘輿以出, 奏樂部而行, 千牛將軍前執轡, 殿下降輿升輅, 判司僕立授綏, 摠制以下侍臣挾侍如常。 知通禮進當輅前跪, 啓請車駕進發, 俯伏、興、退復位。 車駕動, 知通禮與通贊挾引以出, 千牛將軍挾路而趨。 駕出闕門外, 至侍臣上馬所, 知通禮跪, 啓請車駕少駐, 敎文武侍臣上馬。 判通禮前承旨退稱曰: 敎可。 通贊、舍人傳喝, 文武侍臣上馬, 諸侍衛之官, 各督其屬, 左右翊駕, 尙瑞官捧寶前導, 摠制以下左右侍臣挾侍於輅前。 文武侍臣上馬畢, 知通禮啓請敎車右升, 判通禮前承旨, 退稱曰敎可。 知通禮退復位, 千牛將軍升訖, 知通禮啓請車駕進發, 退復位。 車駕動, 文武群官在玄武隊後如常儀。 車駕將至壽康宮, 文武侍臣下馬, 分立鞠躬, 駕至壽康宮南門外, 回輅南向, 千牛將軍降立於輅右。 知通禮進當輅前, 啓請降輅, 俯伏、興、還侍立。 殿下乘輿入大次, 繖扇、華蓋、侍衛如常儀。 禮曹稽制司引諸道進箋員, 由東門入, 樂官奏樂前導, 至內門, 樂止, 升就月臺上, 以箋文置案上訖退, 奉禮引侍臣入就位, 東西序立。 判通禮跪, 啓請中嚴, 又啓外辦, 上王具冠袍以出, 協律郞擧麾, 樂作, 卽座偃麾, 樂止。 捧冊寶官捧冊寶案, 進冊寶官、讀冊寶官隨行, 押冊官前導冊寶案, 升自西階。 進冊寶官、讀冊寶官止于階下位, 以冊寶案置于月臺上褥位, 降復位。 典儀曰: “四拜。” 贊者承傳, 在位者皆四拜訖, 奉禮引進冊官、讀冊官、捧冊官, 升就階上, 凡奉禮引止于階下。 進冊官奉冊案進, 至於上王座前小退北向跪。 捧冊官擧冊, 讀冊官北向跪, 讀冊訖, 捧冊官捧冊進上王座前, 安於案上, 進冊官以下, 俱降復位。 奉禮引進寶官、讀寶官、捧寶官, 升就階上。 進寶官捧寶案進, 至於上王座前冊案之南小退北向跪。 捧寶官擧寶, 讀寶官北向跪, 讀寶訖, 捧寶官捧寶進上王座前, 安於案上, 進寶官以下, 俱降復位, 宗室以下文武群官, 皆就門外位。 禮儀使詣大次前跪, 啓請行稱賀之禮。 殿下服袞冕, 禮儀使導殿下至內門外, 近侍跪進圭。 華蓋、仗衛停於門外, 尙瑞官捧寶前行, 陳於小次之側。 禮儀使導殿下入門, 升自西階, 就月臺上拜位北向立。 禮儀使跪, 啓請四拜跪, 殿下四拜跪, 賀曰: “嗣王臣某言。 上王殿下光膺顯號, 福壽無疆, 不勝欣抃。” 禮儀使啓請俯伏、興、四拜、跪, 殿下俯伏、興、四拜、跪。 府官進上王座前, 承旨跪傳曰: “國王孝思至誠, 貫于天地, 受玆尊號, 感慰良深。” 宣答訖, 禮儀使啓請俯伏、興、四拜, 殿下俯伏、興、四拜, 導殿下詣上王幄坐之東西向立。 初, 殿下行禮將畢, 通禮門分引宗室以下文武群官入就位, 行事執事官亦各就班, 候殿下西向立定, 典儀曰: “四拜。” 通贊贊四拜, 衆官皆四拜、興、平身。 通贊唱: ‘搢笏, 鞠躬、三舞蹈、跪, 山呼千歲, 山呼千歲, 再山呼千千歲。 出笏, 俯伏、興、平身。” 衆官搢笏, 鞠躬、三舞蹈、跪, 山呼千歲, 山呼千歲, 再山呼千千歲, 出笏, 俯伏、興平、身。 典儀曰: “四拜。” 通贊贊四拜, 衆官四拜。 典儀贊進箋, 執事者擧諸道箋案, 由東門入, 判通禮接引至幄座前置訖。 初, 箋案將入, 殿內 宣箋官揖出班, 揖升趨進幄座前北向跪, 內侍二人跪, 展最高官箋文, 判通禮跪贊: ‘宣箋, 俯伏興, 趨退降復位。’ 宣箋官宣箋文訖, 俯伏、興, 趨退降復位。 執事者徹箋案, 判通禮跪啓禮畢, 通贊唱禮畢, 上王降座, 樂作, 入內樂止。 判通禮導殿下歸幄次釋服, 通禮門分引宗室以下文武群官以次出。 是日行上壽禮如儀畢, 車駕還宮, 導從如來儀。 行事執事官、進冊官、進寶官正一品, 讀冊官、讀寶官正二品, 押冊官禮曹參議, 捧冊官二、捧寶官二正四品侍從官, 禮儀使禮曹判書, 近侍、代言判通禮二。


대비를 봉숭하는 의식 절차[편집]

○又啓大妃封崇儀曰:

前一日, 有司設冊寶案於勤政殿當中南向, 設殿下拜位於殿庭當中北向, 設幄次於殿庭近東南向, 設受冊寶位於殿下拜位之東北, 西向, 設冊寶案褥位於拜位之北南向, 設典儀位於東階之東南, 通贊二人在南少退, 俱西向北上, 設左侍臣位於殿下拜位之東南, 右侍臣位於殿下拜位之西南, 東西相向異位, 俱重行北上。 設進冊官以下應行事執事官位於冊寶案褥位之東, 異位重行, 西向北上, 設文官一品以下位於道東左侍臣之南西上, 宗室及武官一品以下位於道西當文官東上, 每等異位, 俱重行北向, 設監察位二於東西班後。 又於壽康宮設殿下大次於大門內, 隨地之宜, 小次於殿東廊西向, 設安冊寶幄於大次之北南向, 設文武群官門外位於內門外, 東西相向, 俱重行北上。 設大妃幄座於正殿當中南向, 設香爐二於前楹外, 設殿下拜位於月臺上當中北向, 又設冊寶案褥位於殿下拜位之北, 設典儀位於東階之東南, 通贊二人在南少退, 俱西向北上, 設進冊官以下行事執事官位於西階下, 異位重行, 北向東上, 設文官一品以下位於道東西上, 宗室及武官一品以下位於道西當文官東上, 每等異位, 俱重行北向, 設監察位二於東西班後。至日, 於壽康宮兵曹陳繖扇、仗衛於殿階上下, 樂官陳樂於百官之南。 鼓一嚴, 於勤政殿兵曹陳繖扇、仗衛於殿階上下, 通禮門設文武群官位於闕門外, 文東武西相對, 俱重行北上。 進冊官以下應行事執事官及文武群官, 各具朝服。 鼓二嚴, 判通禮跪, 啓請中嚴, 應行事執事官及文武群官, 俱集勤政門外, 有司捧冊寶, 安於殿內案上, 判通禮跪啓外辦。 皷三嚴, 通禮門分引文武群官入就位, 次引進冊官以下行事執事官入就位。 禮儀使啓請發大妃尊號冊寶, 殿下服袞冕以出, 近侍跪進圭, 禮儀使導殿下, 隨冊寶降西階, 內臣當職者捧冊寶, 安於殿庭案上。 殿下就拜位北向立, 禮儀使跪, 啓請再拜, 殿下再拜, 通贊贊衆官再拜, 在位者皆再拜, 應行事執事官不拜。 禮儀使跪, 啓請跪搢圭, 殿下跪搢圭, 如搢不便, 近侍承奉。 通贊贊跪, 衆官皆跪。 近侍捧冊東向跪進, 禮儀使跪, 啓請執冊授進冊官, 殿下執冊授進冊官, 進冊官搢笏, 西向側身跪受, 興小退西向立。 進寶官受寶如受冊儀訖, 禮儀使跪, 啓請執圭、俯伏、興, 通贊贊俯伏、興, 衆官皆俯伏、興。 禮儀使導殿下入幄次, 改服冠袍。 進冊官, 進寶官捧冊寶, 前行至龍亭前, 以冊寶各安於龍亭中案, 授執事者, 鹵簿、鼓吹前導, 進冊官以下應行事執事官隨行, 出闕門外上馬, 詣壽康宮幄次奉安。

初, 進冊官以下行事執事官出闕門, 奉禮引文武群官出就門外位, 侍衛之官各服其器服, 摠制以下左右侍臣, 俱詣幄次前奉迎。 判司僕進象輅於勤政門前南向, 千牛將軍一人執長刀立於輅前北向, 知通禮在判通禮之前, 通贊、舍人二在知通禮之前。 判司僕攝衣而升, 正立執轡, 殿下乘輿以出, 奏樂部而行, 千牛將軍前執轡, 殿下降輿乘輅, 判司僕立授綏, 摠制以下侍臣挾侍如常。 知通禮進當輅前跪, 啓請車駕進發, 俯伏、興、退復位。 車駕動, 知通禮與通贊挾引以出, 千牛將軍挾路而趨。 駕出闕門外, 至侍臣上馬所, 知通禮跪, 啓請車駕少駐, 敎文武侍臣上馬。 判通禮前承旨, 退稱曰敎可。 通贊、舍人傳喝, 文武侍臣上馬。 諸侍衛之官, 各督其屬, 左右翊駕, 尙瑞官捧寶前導, 摠制以下左右侍臣挾侍於輅前。 文武侍臣上馬畢, 知通禮啓請敎車右升。 判通禮前承旨, 退稱曰敎可, 知通禮退復位。 千牛將軍升訖, 知通禮啓請車駕進發, 退復位。 車駕動, 文武群官在玄武隊後如常儀。 車駕將至壽康宮, 文武侍臣下馬分立鞠躬, 駕至壽康宮南門外, 回輅南向, 千牛將軍降立於輅右。 知通禮進當輅前, 啓請降輅, 俯伏、興、還侍立。 殿下乘輿入大次, 繖扇、華蓋、侍衛如常儀。 判通禮跪, 啓請中嚴, 又啓外辦, 大妃具冠服以出, 樂作, 行障步障方團扇侍衛, 垂(廉)〔簾〕卽座, 樂止。 捧冊寶官捧冊寶案, 進冊寶官、讀冊寶官隨行, 押冊官前導冊寶案, 升自西階, 進冊寶官、讀冊寶官止于階下, 以冊寶案置于月臺上褥位, 降復位。 典儀曰四拜, 贊者承傳, 在位者皆四拜訖, 奉禮引進冊官、讀冊官、捧冊官, 升就階上, 凡奉禮引止于階下。 進冊官捧冊案進, 至於大妃座前, 小退北向跪。 捧冊官擧冊, 讀冊官北向跪, 讀冊訖, 捧冊官捧冊進大妃座前, 安於案上。 進冊官以下, 俱降復位。 奉禮引進寶官、讀寶官、捧寶官, 升就階上, 進寶官捧寶案進, 至於大妃座前冊案之南小退北向跪, 捧寶官擧寶, 讀寶官北向跪讀寶訖, 捧寶官捧寶進大妃座前, 安於案上, 進寶官以下, 俱降復位, 宗室以下文武群官皆就門外位。 禮儀使詣大次前跪, 啓請行稱賀之禮, 殿下服袞冕, 禮儀使導殿下至內門外, 近侍跪進圭, 華蓋、仗衛停於門外, 尙瑞官捧寶前行, 陳於小次之側。 禮儀使導殿下入門, 升自西階, 就月臺上拜位北向立。 禮儀使跪, 啓請四拜跪, 殿下四拜跪, 賀曰: “嗣王臣某言。 大妃殿下光膺顯號, 福壽無疆, 不勝欣抃。” 禮儀使啓請俯伏、興、四拜跪, 殿下俯伏、興、四拜跪。 尙宮進大妃座前, 承旨跪傳曰: ‘國王孝思至誠, 貫于天地。 受玆尊號, 感慰良深。’ 宣答訖, 禮儀使啓請俯伏、興、四拜, 殿下俯伏興四拜, 導殿下歸幄次釋服。

初, 殿下行禮將畢, 通禮門分引宗室以下文武群官入就位, 行事執事官亦皆就班。 典儀曰: “四拜。” 通贊贊四拜、興、平身, 群官四拜、興、平身。 領議政率文武群官稱賀, 尙宮承旨傳告中官, 中官宣答訖, 典儀曰四拜, 通贊贊四拜, 群官四拜平身。 判通禮跪啓禮畢, 通贊唱禮畢。 大妃降座, 樂作, 入內如出時儀, 樂止。 通禮門分引宗室以下文武群官以次出, 內外命婦竝稱賀於內殿。 殿下入內行上壽禮如儀畢, 車駕還宮, 導從如來儀。 行事執事官、進冊官、進寶官正一品, 讀冊官、讀寶官正二品, 押冊官, 禮曹參議, 捧冊官二、捧寶官二正四品侍從官, 禮儀使, 禮曹判書, 近侍、代言判通禮二。


11月 8日[편집]

대설이 내리다. 상왕과 왕대비에게 존호를 올리다[편집]

○甲寅/大雪, 平地深尺餘。 百官朝服立于廊廡, 上以袞冕, 御仁政殿, 奉玉冊金寶, 上上王尊號曰聖德神功上王, 大妃尊號曰厚德王大妃。 親授上王冊寶于進冊官朴訔、進寶官李原; 大妃冊寶于進冊官南在、進寶官柳廷顯, 送至仁政門, 訔等奉冊寶至壽康宮上之。 上王冊曰:

國王臣某, 再拜謹奉冊上言。 恭以聖神之妙, 雖絶名言, 臣子之情, 必崇徽號。 玆擧彝憲, 用申孝思。 恭惟上王殿下高明配天, 博厚齊地, 扶聖祖而啓運; 尊嫡長以守成。 德冠百王, 孚舜、文之所性; 功高萬代, 與湯、武而同符。 敦敬天愛民之誠, 盡事大交隣之道。 惟至仁之浹洽, 致斯世於隆平。 念襲重艱, 悉深祗懼。 欲昭成美, 當極尊稱。 爰率臣僚, 式陳冊禮。 臣某不勝大願, 謹奉冊寶, 上尊號曰聖德神功上王。 伏惟上王殿下, 特留睿鑑, 以循卑忱, 俯受鴻名, 擁純禧之川至, 茂迎和氣, 享多壽於嵩呼。

寶曰聖德神功上王之寶。 樂章曰: “於皇上王, 盛德隆功。 贊我聖祖, 以有大東。 再遏亂略, 治敎昭宣。 龍受帝命, 宗社萬年。”

大妃冊曰:

國王臣某, 稽首再拜謹奉冊上言。 恭以承天厚載, 雖盛德之難名, 孝子至倩, 惟尊親之爲大。 祗率禮文之舊, 少伸愛敬之誠。 恭惟王大妃殿下柔惠安貞, 慈和肅愼。 基《周南》之美化; 嗣摯仲之徽音。 儆戒無違, 克盡相成之道; 劬勞罔極, 難酬載育之恩。 儷日御以恒升, 示母儀於家國。 念臣弱質, 叨守鴻圖。 仰惟顧復之私, 宜擧稱揚之典。 臣某不勝大願, 謹奉冊寶, 上尊號曰厚德王大妃。 伏惟王大妃殿下, 光膺顯號, 茂介繁禧, 享壽富於萬年, 昌本支於百世。

印曰厚德王大妃之印。 樂章曰: “思齊大妃, 維德之行。 有相之道, 遹觀厥成。 卽篤其慶, 克昌厥後。 福履綏之, 以介眉壽。”

是日, 廷臣以雨雪, 請更卜日, 上遣近臣白之, 上王曰: “古人以雨雪爲祥, 且有司已具, 不可改日也。 除百官, 冊使來可也。” 命從上王旨, 從宮中道往上壽。 朴訔、李原、南在、柳廷顯、讀冊官卞季良、讀寶官趙末生, 大妃讀冊官孟思誠、讀寶官閔汝翼、孝寧大君補、吏曹判書鄭易、戶曹判書崔迤、禮曹判書許稠、判都摠制府事朴子靑、漢平君趙涓、都摠制李伯溫、摠制洪敷ㆍ李皎、大司憲許遲、禮曹參判洪汝方、兵曹參判李明德、參議元肅、知申事河演、左代言金益精、右代言李隨、左副代言尹淮、右副代言崔士康、同副代言柳穎等侍宴。 伶人奏卞季良所進新詞, 上王稱美主上之誠孝, 亟曰: “辭位以後, 吾益尊矣。” 唱和極歡。 上王曰: “神功聖德, 吾何敢?” 上率群臣將謝之, 上王命止之。 呼尹淮別名戲之, 召元肅、許遲就前曰: “吾與尹淮戲, 親之也。 予聞淮名久, 而未得其實, 今因上王, 乃知淮優於史學也。 其父紹宗, 頗有功於我家, 卿等知之。” 遲曰: “文學雖貴, 須要心術之正也。” 肅曰: “近來儒輩, 尹淮爲優。” 在先起舞, 風度可觀, 主上稱爲南老。 兩上皆起舞, 在跪抱上腰, 群臣以次迭起爲壽。 上王曰: “吾與主上入內殿, 必先下淚, 樂與卿等爲歡耳。” 夜二鼓, 上與補扶上王入內殿。


11月 9日[편집]

봉숭하는 예가 이루어졌으므로 죄수를 사면하나 대신들이 이의를 제기하다[편집]

○乙卯/上由宮中道朝壽康宮。 以封崇禮成, 赦中外, 敎曰:

予以眇躬, 荷祖宗積累之德、太祖創垂之業, 祗奉父王之休命, 纉承丕緖, 夙夜祗懼。 竊以爲治之道, 莫先於報本, 已嘗躬服袞冕, 以祼太室, 于斯之時, 宜降德音。 第念, 數宥有妨治道, 未卽施行。 洪惟我父王殿下以神聖之資、仁厚之德, 克光前烈, 式至昇平, 蓋二十年于玆矣。 隆功盛德, 卓冠千古, 在人耳目, 而尊號未立, 良用歉然。 於今月初八日, 謹奉玉冊金寶, 上父王尊號曰聖德神功, 上王母后尊號曰厚德王大妃。 自永樂十六年十一月初九日昧爽以前, 除謀反、大逆、歐及殺祖父母〔父母〕、妻妾殺夫、奴婢殺主、蠱毒魘魅、謀故殺人、但犯强盜, 子之於父母, 妻之於夫, 奴之於主, 謀殺未成, 情迹已著及告言呪罵死罪外, 已發覺、未發覺, 已決正未決正, 咸宥除之。 敢有以宥旨前事, 相告語者, 以其罪罪之。 於戲! 尊崇徽號, 旣盡禮於君親; 誕布寬條, 用施仁於臣庶。 咨爾中外臣僚, 體予至懷。

前此, 慶尙道咸安郡有殺父未成者, 適遇赦當免, 言者皆以爲可殺, 上以赦令已布, 不可失信, 遲回久之, 卒赦之。 憲府上言: “後若有赦, 此類宜載於不赦之例。” 至是將赦, 令政府、六曹議之, 多異同。 左議政朴訔曰: “强盜亦有杖者, 遇赦不得免。 妻之於夫、奴之於主、子之於父, 雖非死罪, 亦不可免。” 議者以謂: “他死罪皆免, 而杖罪不免, 則非制刑輕重之義。” 日旰議未決, 上乃命於赦文, 載子之於父、妻之於夫、奴之於主, 告言呪罵, 死罪不赦。


중궁을 책봉하는 의식 절차[편집]

○禮曹啓冊封中宮儀曰:

前一日, 〔有〕司設鋪上座於正殿, 設獸爐二於前楹外左右, 設冊案、印案各一於上座之左近東, 設侍中門下侍郞位於上座東南, 西向北上, 侍中侍郞皆攝。 設傳命位於殿庭中心之左西向, 設受敎命位於殿庭中心, 北面東上, 設冊使副位於受敎命位之南, 設押冊官以下位於使副拜位之南, 每等異位, 俱重行北向東上, 設兩府百官拜位, 竝如常儀。 設典儀位於押冊官拜位之東, 贊者二人在南差退, 俱西向, 協律郞位於殿西階之上, 大樂令位於百官之南北向。

臨軒發冊禮: 將行冊禮, 所司奏請太尉爲使, 司徒爲副。 冊日, 有司陳設仗衛於殿庭內外如常儀。 量時刻, 兩府以下百官、冊使副、應行禮官各服朝服, 俱就殿門外位以候, 有司捧冊函、印綬, 設於上座之左案上, 冊在北印在南。 典儀、贊者先入就殿庭閣門, 引兩府以下百官, 竝如常儀。 大樂令率樂工入就位, 協律郞入就位, 攝侍中詣內殿門外, 版奏外辦, 殿下服絳紗袍、遠遊冠, 中禁奏嚴, 殿下出殿, 協律郞擧麾, 樂作, 殿下卽座, 偃麾樂止。 典儀曰再拜, 贊者承傳, 兩府以下在位者皆再拜。 閣門引侍中、門下侍郞, 自東側階升殿立定, 舍人引使副以下行禮官初入門, 樂作, 至位, 樂止。 典儀曰再拜, 贊者承傳, 使副以下皆再拜。 侍中前承命, 降自東階, 詣傳敎命位西向立, 舍人引冊印使副, 就受敎命位, 北面東上立定。 侍中稱有命, 典儀曰再拜, 贊者承傳, 冊使副再拜。 侍中宣命曰: ‘冊某氏爲王妃, 命卿等展禮。’ 宣命訖, 典儀曰再拜, 使副再拜, 侍中升復位。 門下侍郞詣冊案前, 北面俛伏跪, 近臣詣冊案東取冊函, 以授門下侍郞, 門下侍郞傳授持冊者。 近臣又取印綬, 以授門下侍郞, 門下侍郞傳授持印者, 俛伏興, 引冊函印綬, 降詣傳敎命位, 持冊印者隨後。 門下侍郞西向擧冊函, 以授冊使, 冊使傳授副使, 副使跪受, 以傳押冊官, 押冊官率持冊二人跪受, 對擧退立於使副之後。 其冊案, 殿上持冊者隨冊函後, 傳於行禮持案者。 門下侍郞取印綬, 授冊使, 冊使跪受, 以授副使, 副使跪受, 以傳持印者, 持印者跪受, 退於冊之北, 門下侍郞升復位。 舍人引使副還拜位, 典儀曰再拜, 冊使副、兩府以下百官, 凡在位者皆再拜。 舍人引使副以下出, 協律郞擧麾, 樂作, 持冊印者以次由中道出門, 使副竝自正門出, 偃麾, 樂止。 押冊官以下, 由西邊門出, 舍人止門內, 攝侍中版奏禮畢, 殿下降座, 樂作, 入殿訖, 樂止。 冊使副備儀衛、樂部而行, 閣門引兩府以下官, 以次出。


궁정에서 책을 받는 의식 절차[편집]

○又啓宮庭受冊儀曰:

前一日, 守宮於宮門外西, 設太尉、司徒位次, 東向北上, 宮門內又設命婦幕次。 司鑰於正殿設中宮幄次座位, 南向, 又設中宮受冊位於殿庭階間, 北向, 設樂位於殿庭, 設麾於殿西階之西, 向東。 其日, 依時刻, 列仗於殿南門之內如常儀。 典禮設冊使副位於殿門外西, 東向北上, 內侍二人位於使副之南, 擧冊案及印案者位差退, 俱東面, 設內給事位於庭北, 南向, 又設內謁者監位於其東南, 西向。 司贊設命婦陪位於正殿東西, 近北, 翁主以上在東, 夫人以下在西, 每等異位重行南向。 又設內命婦朝位於殿庭御道東西, 翁主以上在東, 西上北面, 大夫人以下在西, 東上北面。 又設司贊位於東階東南, 典贊二人在南差退, 俱西向。 內史版奏中宮請中嚴, 命婦依時刻, 各服其服, 內謁者監先置二案於殿門外近限。 太尉、司徒旣受命出, 備儀仗, 率冊函印案者, 至宮門外下馬, 謁者引入, 引路前導, 俱入次內。 典引引命婦就陪列位, 大樂令率樂工就位, 典樂就擧麾位, 司贊率典贊先就位, 謁者引太尉以下就殿門位。 內謁者監引內給事就南向位, 內謁者監退復位。 尙儀版奏外辦, 中宮具服。 司言引尙宮, 尙宮引中宮, 出自正殿西房, 典樂擧麾, 奏平和之樂, 中宮入兩楹間南向立定, 樂止。 內給事出詣太尉前跪, 太尉向北跪稱: ‘太尉封臣某、司徒封臣某奉敎命, 授中宮備物典冊。’ 訖, 俛伏、興, 退復位。 內給事詣殿門, 傳告司言, 司言入詣中宮前, 跪奏訖退。

初, 司言入, 奉冊函, 印案者以次進, 當司徒前, 司徒取冊印, 以次進授太尉, 擧案者以次退, 司徒授訖復位。 內侍二人進太尉前, 西面以次授冊印, 東面授內謁者監, 退復位。 內謁者監二人持冊印進立於殿門外, 跪置案上, 俛伏興。 初, 司言奏訖, 尙儀贊中宮降, 司言引尙宮, 尙宮引中宮, 初行, 樂作, 立定, 樂止。 初, 中宮將降, 尙宮詣門跪取冊, 尙服詣門跪取印興, 進俱立於中宮之右, 西向, 司言、司印各一人進立於中宮之左, 小前東向。 尙宮稱有敎命, 尙儀贊中宮再拜, 尙宮讀冊印文訖, 尙儀又贊中宮再拜。 尙宮捧冊進授中宮, 中宮以授司言, 尙宮又捧印進授中宮, 中宮以授司印訖, 尙儀贊中宮升正殿, 初行, 樂作, 卽南向坐, 司言、司印捧冊印, 置於座前, 樂止。 典引分引命婦等(倍)〔陪〕列者, 以次就拜位。 爲首者初行, 樂作, 至位, 樂止。 司贊曰: “再拜。” 典贊承傳, 命婦皆再拜。 典引引爲首者一人詣西階, 初、行, 樂作, 至階, 樂止。 爲首者升進當御座前, 北向跪奏: “妾等言。 伏惟殿下肅雍夙著, 至德膺期, 凡厥兆庶, 不勝慶抃。” 訖, 典引引爲首者, 自西階降, 樂作, 復位, 樂止。 司贊贊再拜, 典贊承傳, 命婦皆再拜。 司言前奉旨, 降自西階, 詣命婦西北東面, 稱有旨, 命婦等皆再拜。 宣旨訖, 在位者又再拜。 司贊曰: “再拜。” 傳贊承傳, 在位者皆再拜。 典引以次引出, 爲首者初行, 樂作, 出門, 樂止。 司言奏禮畢退, 中宮降座, 樂作, 乘輿入內, 樂止。 冊命使詣闕殿庭立, 司謁詣太尉前, 太尉復命曰: “奉敎命, 授中宮備物與典冊禮畢。” 再拜。 司謁奏聞, 太尉等退。


중궁의 사표(謝表) 의식 절차[편집]

○中宮謝表儀曰:

先是, 宮官具謝表, 中宮受命婦朝賀訖, 尙宮引中宮, 詣兩楹間北面立。 尙儀以謝表授中宮, 又尙儀以函候於前, 中宮置表於函, 尙儀受函置案上。 尙宮贊拜, 中宮再拜訖, 尙衣以表降殿, 授宮官左師尹, 宮官詣闕, 因承旨以聞。 初, 宮官奉表出門, 中宮降殿鞠躬以送, 表出殿門, 還內。


백관이 조하하는 의식[편집]

○又啓百官朝賀儀曰:

冊后翼日, 兩府以下文武百官, 詣闕上表稱賀如常儀。


중궁이 칭하받는 의식[편집]

○又中宮受賀儀曰:

兩府以下文武群官, 詣中宮門奉賀。 其辭曰: “王妃肅雍夙著, 至德應期。 令月吉日, 光膺寶冊, 某等不勝大慶者。” 稽首四拜而退。


11月 10日[편집]

중궁 심씨를 책봉하여 공비로 삼다[편집]

○丙辰/上以遠遊冠、絳紗袍, 御仁政殿, 百官以朝服序立。 遣進冊官平陽府院君金承霔、進寶官平壤君趙大臨, 以玉冊金印, 冊中宮沈氏爲恭妃。 妃於內殿, 備禮受冊, 受命婦朝謁。 賜承霔、大臨表裏, 命慶昌府尹沈澄進表箋以謝。 冊曰:

王化之基, 實有資於內助; 人倫之至, 當極備於彝章。 爰擧徽稱, 載揚顯冊。 惟爾沈氏, 端莊貞靜, 柔懿溫恭。 念在憂勤, 常進儆戒之道; 心存恪愼, 曾無宴安之情。 宜儷德於咸恒, 可竝美於風雅。 肆當莅政之始, 俾嚴縟禮之加。 是用命爾爲王恭妃, 授以冊寶, 益迓嘉祥, 永膺大慶。 協敷陰敎, 貽燕謨於萬年; 克正坤儀, 播鴻休於百世。 故, 玆敎示, 想宜知悉。

印曰王恭妃之印。 樂章曰: “天眷我王, 乃立厥妃。 君子好逑, 神人俱依。 柔嘉維則, 淑愼其身。 介以繁祉, 子孫振振。” 箋曰:

降命自天, 光施寵典。 措躬無地, 祇荷殊恩。 揆分非宜, 徒知增愧。 伏念質欠淵懿, 行未柔嘉。 內助相成, 素乏鷄鳴之戒; 徽音是嗣, 敢希麟趾之風? 豈圖鴻名謬及寡德? 玆蓋資全聖智, 度大寬仁, 謂王敎之攸行, 由人倫之乃敍, 載揚顯冊, 庸示彝章。 謹當儆戒無違, 志益專於承順; 康寧多吉, 福恒祝於熾昌。


상왕이 동교에서 사냥하는데 임금이 술과 과실을 올리다[편집]

○上王獵于東郊, 上遣柳廷顯、尹淮進酒果, 樂歡而罷。


변계량·맹사성·박자청에게 내구마 한 필씩을 하사하다[편집]

○上謂卞季良曰: “卿善製樂詞, 父王稱嘉。” 謂孟思誠曰: “卿爲慣習都監提調, 敎伶人新詞, 合於律調, 父王歡愉。” 謂朴子靑曰: “卿勤勞監督壽康宮, 奉兩殿入御, 予甚喜之。” 各賜內廐馬一匹。


11月 11日[편집]

인정전에서 조회를 받고 편전에서 정사를 보다[편집]

○丁巳/御仁政殿, 受群臣朝, 御便殿視事。


허지가 이방간 부자의 목을 벨 것을 청하다[편집]

○親覽憲府封章, 謂許遲曰: “芳幹父子事, 吾再啓上王, 不得蒙允。 其餘罪人, 卿等當更論請, 雖不得置之極刑, 當從重斷罪。” 遲曰: “芳幹父子, 爲父王之讎, 不可竝容一國。” 司諫鄭招曰: “昔舜受禪之初, 先誅四凶。 近年水旱相仍, 意此輩不思其罪, 反相怨咨之致也。 願殿下以法誅之。”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御經筵。


종친 훈신과 문무 1품이상의 상장(喪葬)을 전담하는 도감을 상시 설치하다[편집]

○禮曹判書許稠等啓: “按《唐書》《百官志》, 司儀署掌凶禮喪葬之具。 今國家凡宗親、勳臣及文武一品以上之卒, 設都監以治其葬, 誠爲令典, 然葬畢輒罷, 喪葬之具, 隨卽棄毁。 又有卒者, 更設都監, 以辦葬具, 財費民勞, 其弊不貲。 乞依古制, 常置都監以掌之。” 上從之。


진주로 임금의 태를 받들고 가는 권규에게 털옷 등을 내려 주다[편집]

○吉昌君權珪自留後司奉御胎向晋州昆明縣, 賜毛衣、毛冠。


눈 쌓인 이천 분수령 등의 무예 연습장에서의 사사로운 사냥을 엄금케 하다[편집]

○宣旨: “伊川分水嶺、原州橫溪等處講武場, 今當雪深, 必有私獵者, 令其道監司嚴禁。”


상왕이 성발도에게 제사를 내리다[편집]

○上王賜祭于成發道。


종정성의 요구로 바닷가에 사는 왜인 중 돌아가길 원하는 자를 돌려보내다[편집]

○宗貞盛請發還倭人居海邊者, 上從李原議, 除欲還者外, 皆不發還。


11月 12日[편집]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戊午/御經筵。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朝壽康宮。


상왕이 임금과 함께 이명덕 등을 불러 이방간의 죄를 청하지 말 것을 천명하다[편집]

○上王與上御正殿, 召兵曹參判李明德、知事張允和、知申事河演等曰: “臺諫再疏, 請芳幹等諸人罪, 吾旣誅首惡, 其餘量罪安置, 于今二十餘年。 主上今誅之, 誰以我爲不知, 將何面目見人乎? 雖固請, 吾必不從。”


11月 13日[편집]

정사를 보고 경연에 나아가다. 《자치통감》이 호한하므로 《근사록》을 강하다[편집]

○己未/視事, 御經筵。 上曰: “欲講《資治通鑑》如何?” 柳觀曰: “卷數甚多, 恐未可遍覽。” 金益精請講《近思錄》, 上曰: “然。”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朝壽康宮。


상왕이 대사헌 허지 등에게 의금부와 같이 박습을 국문하게 하다[편집]

○上王命大司憲許遲、司諫鄭招、刑曹正郞金知逈、兵曹參判李明德, 同義禁府鞫朴習等曰: “傳位敎書曰: ‘軍國重事, 予親聽斷。’ 且令兵曹常居殿門內, 若等不以軍務啓達, 必有異計。” 習曰: “何敢有異? 但新除判書, 未諳事務。 且尙仁言: ‘甲士給暇等凡軍務, 當依例啓主上殿。’ 吾意尙仁潛邸舊臣, 久處兵曹, 惟尙仁是從, 不敢異同。 金國珍事則吾曾不知, 鷹子事則尙仁曰: ‘當以王旨移文。’ 吾不敢違。 蔡知止言: ‘李慤過吾貶所言: 「我與尙仁言軍事, 當啓上王殿, 尙仁微笑不答。」’” 義禁府具辭以聞, 上王曰: “習更不異同, 不得無罪, 然與尙仁殊科, 不忍拷訊也。” 許遲曰: “習非十歲之兒, 身爲長官, 豈不知大體者, 而惟尙仁是從乎? 宜加鞫問, 罪必不止於不異同也。”


신효창의 처벌에 대한 상왕과 대신들의 이견[편집]

○上王與上御燕寢, 召趙末生、元肅、張允和曰: “吾連喪三子, 誠寧又亡, 傷悼曷弛?” 因下淚曰: “恭寧之弟, 年一二歲, 養於宮中, 今其母得疾良苦, 乳媪亦病臥, 予甚憐之。 問於其母曰: ‘無乃有欲養者乎?’ 其母曰: ‘有鈴平君族人欲養之, 妾安敢擅許乎? 申孝昌曩者被劾, 到留後司, 欲免其罪, 願以恭寧爲侍養, 贈奴婢五十口。 乳媪受其文契來, 妾叱曰: 「殿下不受宮人私謁, 妾豈敢上白乎?」 卽時送還。’ 予聽此言始知之。 前日, 臺諫累請孝昌罪, 予以爲, 旣令扈從太祖, 則不可以此罪之, 已與元肅、張允和言之。 今乃有此鄙陋之事, 予內雖無愧, 外人之言, 可無愧乎? 玆欲明治其罪, 使衆知之。 然其罪, 在律不過不應爲, 且犯在赦前, 欲黜之于外, 以終其身。” 趙末生曰: “律, 交結宮人, 蒙蔽奏聞者斬。 奚止不應爲乎?” 乃召朴訔、李原問之, 對曰: “孝昌之事, 雖不在赦目, 其欲虧損上德之心, 何異於謀危社稷乎? 壬午年不守臣節, 罪固重矣。 又有此事, 當以法鞫問。” 上王曰: “卿等之言, 皆不合吾意, 將量宜施行。” 初, 孝昌拜都摠制, 朴訔曰: “孝昌與朴蔓一耳, 縱不加罪, 豈可榮以爵祿?” 乃罷之。 臺諫從而請罪, 書連上, 孝昌懼, 以恭寧母信寧翁主寵幸, 賂以奴婢。 孝昌爲人奇僻, 士林鄙之。


11月 14日[편집]

정사를 보고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庚申/視事, 御經筵。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朝壽康宮。


신효창을 신문하게 하고, 외방에 안치시키다[편집]

○上王命河演等, 與兵曹問申孝昌, 孝昌言: “臣到留後司, 爲臺諫所劾, 無可奈何, 因女壻恭寧君之妻兄崔承寧, 以奴婢五十口贈恭寧, 冀其上達臣情, 敢欲以此見媚於上乎?” 上王曰: “壬午之事, 朴蔓、任純禮爲首, 趙思義次之, 國家皆論其罪, 其餘或自就獄伏誅, 或自盡。 予旣以卿爲無罪, 今卿以奴婢行賄, 以貪鄙之心窺我。 嘗聞, 前朝之季此風盛行, 何意今復見此? 我雖貧陋, 恭寧豈親自負汲乎? 但事在赦前, 不可加罪, 但令安置遠郡。” 遂下義禁府。 趙末生啓: “孝昌罪大, 只令黜外太輕。 請奪告身, 以其所贈奴婢屬公。” 上王不允。


대사헌 허지 등이 신효창을 국문하기를 청하니 상왕이 따르다[편집]

○大司憲許遲、義禁府提調卞季良ㆍ田興等請曰: “孝昌以其私心, 仰瀆日月之明, 其罪深重, 鞫問其情。” 上王從之。


사헌부에서 이방간의 죄를 청하니 임금이 상왕의 마음을 어길 수 없음을 말하다[편집]

○司憲府啓曰: “芳幹父子之罪, 人所共知, 至今未就刑戮, 後世謂殿下何如也?” 上曰: “我亦不以芳幹爲無罪也。 然上王欲保全之, 我何敢違父王之心乎?”


판안변부사 신열의 졸기[편집]

○判安邊府事辛悅卒于任所, 柩過京, 上命賜祭。


상왕전에 헌수하는 의식 절차[편집]

○禮曹啓上王殿上壽儀曰:

朝賀訖, 有司設上王幄座於壽康宮殿上當中南向, 又設殿下褥位二, 一於幄座之東西向, 一於月臺上北向, 設香爐二於前楹外。 協律郞設樂于殿階上, 茶房設酒亭於殿上近南。 判通禮跪, 啓請中嚴, 又啓外辦, 典儀率通贊先入就階下位, 通禮門分引宗室以下文武群官入就殿庭位。 中禁傳嚴, 上王出, 樂作, 陞座, 樂止。 判通禮詣小次前導殿下, 升就月臺上褥位北向立, 判通禮跪, 啓請四拜, 殿下四拜。 典儀曰: “四拜。” 通贊贊四拜, 在位官皆四拜、興、平身。 司饔提調擧茶床進上王座前, 樂作, 進訖, 樂止。 判通禮導殿下詣酒亭北向立, 茶房提調捧爵, 樂作, 開爵注酒以進, 殿下捧爵詣上王座前北向跪進。 通贊贊跪, 群官皆跪, 殿下進酒訖, 俯伏、興、平身。 通贊贊俯伏、興、平身, 群官俯伏、興、平身。 判通禮導殿下詣月臺上褥位北向立, 啓請跪, 殿下跪, 通贊贊跪, 群官皆跪。 殿下致辭曰: “嗣王臣某稽首言。 臣某與群臣謹上千萬歲壽。” 判通禮啓請俯伏興四拜, 殿下俯伏、興、四拜。 典儀曰: “四拜。” 通贊贊四拜, 在位官皆四拜。 俟上王飮酒訖, 判通禮導殿下詣上王座前跪, 受爵以授茶房提調, 樂止。 判通禮導殿下詣月臺上褥位北向立, 啓請四拜, 殿下四拜。 典儀曰: “四拜。” 通贊贊四拜, 在位官皆四拜訖, 判通禮導殿下詣幄座東褥位西向立, 司饔提調徹茶床, 判通禮跪啓禮畢, 俯伏、興、退復位。 上王降座, 樂作, 入內, 樂止。 殿下從入, 通禮門分引宗室以下文武群官以次出。


11月 15日[편집]

동지 제사에 쓸 향과 축문을 전하다[편집]

○辛酉/上傳冬至祭香祝。


정사를 보다[편집]

○視事。


육조에서 또 이방간을 죄주기를 청하다[편집]

○六曹又請芳幹罪, 不允。


《대학연의》를 강하다가 이훈의 일에 대하여 경연관과 이야기하다[편집]

○御經筵。 講《大學衍義》, 見李訓事, 謂經筵官曰: “事成則如何?” 卓愼對曰: “訓實憸邪, 若除宦官, 亦是一快。” 鄭招曰: “訓事之不成, 唐家之福也。 董卓事亦可鑑矣, 訓豈異於卓哉?” 上曰: “然。”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朝壽康宮。


형조에서 흉년을 이유로 노비 문적 만드는 것을 미루기를 청하다[편집]

○刑曹以歲歉, 請奴婢公文, 待豊年成籍。 前此, 朝議以奴婢爭訟日起, 請成文籍, 期以十月, 人多不樂, 至是刑曹請停。


동지에 조하하는 의식에 대한 박은의 의견과 상왕의 의견[편집]

○禮曹啓冬至朝賀儀。 朴訔曰: “上王雖禪位, 事大表箋則皆親自爲之。 今主上當奉上王行望闕禮訖, 率百官朝賀壽康宮, 還御仁政殿, 受群臣朝賀。” 上王曰: “禮則然矣, 但予有疾, 未能早起。 主上率百官行遙賀禮, 率百官見老人可也。”


의금부에서 신효창의 옥사를 갖추어 아뢰니 임금께 아뢰어 시행케 하다[편집]

○義禁府具申孝昌獄辭以啓, 仍曰: “雖命勿問, 只黜于外, 臣等不敢奉旨。” 上王曰: “孝昌之罪, 不在赦目, 但以心之鄙陋, 黜于外耳。 未知有行賄於君之律乎? 未知其罪不當蒙大赦乎? 吾在位時, 未能明白處置之事亦多, 卿等其啓於主上施行。”


상왕이 성석린에게 고기 먹기를 권하겠다는 뜻을 피력하다[편집]

○上王曰: “成政丞石璘喪其子, 其意亦如我, 必不食肉, 明日我欲勸之。” 元肅曰: “石璘年過八旬, 誠如上敎。”


함길도 도절제사 윤유충의 졸기[편집]

○咸吉道都節制使尹惟忠卒。


대마도 좌위문 대랑이 수정 등을 바치고 중국에서 주는 동전을 받지 않았음을 보고하다[편집]

○對馬島左衛門大郞遣人獻水晶纓子, 仍報: “今年六月, 中原遣使者, 贈銅錢八萬貫, 我國王却之不受。”


고의로 사람을 죽인 홍인기를 참형에 처하다[편집]

○延安人洪仁奇以故殺人處斬。


11月 16日[편집]

동지 망궐례를 행하고 신하들의 조하를 받고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壬戌/日南至, 上以冕服率群臣, 行望闕禮。 以遠遊冠、絳紗袍, 御仁政殿, 受群臣朝賀。 諸道皆獻方物, 島倭五十餘人亦與賀班。 禮畢, 率群臣朝壽康宮, 上王命除禮, 只行四拜。


상왕이 문안 온 유정현 등에게 표피 등을 내려 주고 연회를 베풀다[편집]

○賜領敦寧柳廷顯、左議政朴訔、議政李原等豹皮各一領, 漢平君趙涓以下鹿皮各一領曰: “卿等於日到吾家, 以薄物贈之, 冀卿等壽如此皮之韌長也。” 遂置酒。 孝寧大君補以下勳親、宰執咸侍燕, 酒酣聯句。 上王呼元肅就前曰: “今日獻壽, 吾以年歉止之, 更思主上率百官來慰老人, 吾不可不以禮待之。 略以宮廚所儲設小酌, 卿等安坐飮酒, 但恐天寒凍路, 夜行爲勞。” 群臣皆拜謝。 又曰: “今日主上率群臣拜我, 我益尊矣。” 以玉杯賜廷顯飮, 廷顯固辭, 上王曰: “予與卿同飮一盃, 卿知予意乎?” 廷顯曰: “臣固知一體同心之義也。 然君臣何敢同一盃乎?” 上王曰: “我欲同飮, 卿勿辭也。” 又以玉盃賜朴訔、李原飮。 谷山君延嗣宗避席啓曰: “宜選任守令, 申嚴罪及擧主之令。” 上王曰: “然。” 上王命止樂, 誦聶夷中二月糶新穀詩, 且曰: “主上足爲守文之主, 卿等宜盡心補導。” 群臣皆頓首。 上王憑上肩起舞, 夜至二鼓, 極歡而罷。


11月 17日[편집]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癸亥/御經筵。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朝壽康宮。


상왕과 임금이 장윤화·김용기를 성석린의 집에 보내어 고기 먹기를 권하다[편집]

○上王遣知事張允和, 上遣宦官金龍奇, 齎酒肉就昌寧府院君(成石燐)〔成石璘〕第勸肉。


신효창의 고신과 공신 녹권을 빼앗고 무주현으로 내쫓다[편집]

○義禁府啓: “申孝昌之罪, 雖止於交結宮人之律, 其心不忠, 不可赦宥。” 上王不允。 又請收奪告身, 置之遐方, 乃奪告身及功臣錄券, 放于茂朱縣。


상왕이 화재를 조심하도록 이르다[편집]

○上王曰: “火災不可不愼, 令承政院諭諸司愼火, 兵曹令巡綽官察之。”


11月 18日[편집]

정사를 보고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甲子/視事, 御經筵。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朝壽康宮。


새로 충의위에 4번 절제사를 설치하다[편집]

○新置忠義衛四番, 節制使番各二人。


성석린이 수강궁에 나아가서 은혜에 사례하다[편집]

○成石璘詣壽康宮謝恩, 命兵曹餉之。


하연 등이 박만을 극형에 처하기를 아뢰었으나 윤허치 않다[편집]

○河演、柳穎等啓: “朴蔓之罪, 不可容也, 請置極刑。” 不允。


11月 19日[편집]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乙丑/御經筵。


하연 등 여섯 대언에게 털옷을 내려 주다[편집]

○上賜河演等六代言毛衣曰: “天苦寒, 入直不可無裘。”


허지와 정수홍 등이 대궐문에 엎드려 이방간 부자와 박만의 죄를 청하다[편집]

○大司憲許遲、左司諫鄭守弘等合辭伏閤言曰: “芳幹父子及朴蔓等, 皆罪關綱常, 不可容恕。 臺諫、政府、六曹交章請罪, 未蒙允許, 不勝憤鬱。” 上曰: “臺諫之心, 我固知之。 所謂罪人, 皆不忠於上王者也, 我豈欲容恕乎? 然上王謂予曰: ‘予在位十餘年, 不忍加誅, 今一朝置之極刑, 予不願也。’” 遲曰: “臣嘗侍內宴, 上王謂臣等曰: ‘事關綱常者, 不可輕也。’ 芳幹、朴蔓之罪, 非關係綱常而何?” 上曰: “我之請于上王, 若有毫髮之不盡, 予亦爲不足取之人也。 父王旣不許, 予何敢更請乎?”


상왕이 도진무와 병조 당상관에게 털옷을 내려주다[편집]

○上王賜都鎭撫及兵曹堂上毛衣。


상호군 박미가 함길도 아목하에 진을 설치하기를 건의하다[편집]

○上護軍朴楣自咸吉道還啓曰: “猛哥帖木兒旣徙他處, 宜於阿木河置鎭, 與(鏡源)〔慶源〕、鏡城鼎峙, 令兵馬都節制使置營鏡城。” 上王曰: “此策似可, 當與大臣議之。”


상왕이 을미년 가뭄 때 내보낸 궁녀의 곤란한 사정을 듣고 불러들이게 하다[편집]

○上王曰: “歲乙未, 以旱出宮女數人, 人有言出之于外, 反爲召旱, 予不聽而出之。 今聞其女三人至今不嫁, 無所依歸, 生理甚苦。 其召還入宮, 其稍有産業者, 不必召入。”


연사종 등이 길주의 창고가 있는 다신 산성 앞에 읍성을 쌓을 것을 건의하다[편집]

○延嗣宗、何敬復等啓於上王曰: “吉州居一道之中, 防禦甚緊。 倉庫在多信山城, 而新築邑城在後, 宜於山城之前夫世里, 築邑城以居。” 從之。


강상인을 신문하는 방법에 대해 상왕이 선지하다[편집]

○宣旨: “姜尙仁對李慤微笑, 必有異也, 其悉問之。 然三次刑問則杖至九十, 又加壓膝, 似爲未便。 如有疑端不伏, 則何待三次而後壓膝?”


제주의 보충군을 번상하지 말고 주 방어군으로 충당케 하다[편집]

○以濟州補充軍渡海爲難, 勿令番上, 充本州防禦軍。 從本州牧使李暕之言也。


금천·과천 두 현의 가정 수부의 충당 방법 등에 대해 선지(宣旨)하다[편집]

○宣旨: “衿川、果川二縣, 加定水夫, 以諸司奴婢居江邊者充之, 以典農寺奴婢給諸司。”


11月 20日[편집]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丙寅/朝壽康宮。


황상·문계종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편집]

○以黃象爲左軍同知摠制, 文係宗漢城府尹, 朴實中軍摠制, 成達生咸吉道兵馬都節制使兼判吉州牧事, 金貴寶慶尙道右道兵馬都節制使, 尹夏慶源兵馬使。


의금부에서 강상인을 신문했으나 복죄하지 않다[편집]

○義禁府訊問姜尙仁不服, 搒掠、壓膝又不服, 但言: “我爲三十年原從, 豈有異心? 但不曉事耳。” 明德等具啓, 宣旨: “尙仁謀避搒掠, 發此欺罔之言, 姦狡莫甚。 宜更究問, 且訊其黨與。 我父子間, 乃有如此姦人, 不可不除也。”


수령이 적임자가 아닐 때, 추천한 사람까지 연좌하는 방법을 시험코자 하다[편집]

○上王曰: “谷山君言: ‘守令不可不選, 若非其人, 罪及擧主。’ 此言必有爲而發, 吾亦不强問。 吾在位時, 有二三人坐擧非其人受罪, 恐其法妨於得人, 不擧行, 然試可乃已可也。” 朴訔、李原曰: “沿海守令, 須選才兼文武者, 以備外侮。” 柳廷顯曰: “未經外補者, 悉令補外, 則出入均勞矣。” 上王曰: “此已行之事, 然承宣、鎭撫不可數遞。 近, 元肅、金孝孫等以外官徵拜代言, 此實中外均勞也。”


박은 등이 살인 미수에 그친 사람을 사면시키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다[편집]

○朴訔啓曰: “謀殺人未成者, 今皆赦之, 似爲不可。” 上曰: “其情雖可憎, 其罪不在赦目, 赦之何疑?” 李原曰: “臣亦以爲, 不在赦目, 法當蒙赦。 其曰謀殺者, 與人共謀殺人, 非謂謀殺人而未成也。” 上王謂河演曰: “何不早議, 經三大赦, 然後有此言乎? 實汝之致。” 訔等旣出, 上王召元肅曰: “開國以來, 經幾赦宥, 主上卽位以後, 又三大赦, 何不察於頒敎之日, 而却於經赦後乃發此議乎? 代言司止出納王言, 豈專國事乎? 左議政之言如此, 吾以爲由汝之致耳。 說與知申事, 俾知此意。” 卽召治律者, 問其然否, 皆如朴訔言。 上王曰: “律學之不可取信, 有河政丞刪定律, 其考之。”


상왕이 이순몽을 불러 돌아오게 하다[편집]

○上王命召李順蒙還。


11月 21日[편집]

조회를 받고 정사를 보고, 일을 아뢴 신하들을 접대하다[편집]

○丁卯/上御仁政殿受朝, 御便殿視事, 餉啓事臣僚。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朝壽康宮。


고양현의 105세 된 노인에게 동옷 등을 내려 주다[편집]

○高陽縣有老人年百五歲者, 上賜襦衣、毛冠、米三石。


눈바람이 차므로 번상한 갑사와 장빙군에게 술을 내려 주다[편집]

○以風雪苦寒, 賜番上甲士及藏氷軍酒。


일본에서 도망온 중국인 13명을 위로하고 요동으로 호송하다[편집]

○漢人彭善才等男婦十三人, 自日本逃來, 上厚慰之, 遣僉知司譯院事趙忠佐, 解送遼東。


시학하는 복장에 대한 예조 판서 허조의 의견과 임금의 의견[편집]

○禮曹判書許稠言: “視學日, 近臣謹稽古制, 在唐有以靴袍謁先聖之制。 靴袍之制, 雖未詳知, 疑則今之絳紗袍也。” 上曰: “絳紗袍, 臨群臣之服, 豈可服此謁先聖乎? 我將服袞冕以謁。”


새로 수강궁의 궁지기 2인을 두다[편집]

○新置壽康宮直二人。


시학(視學)하는 날 문선왕에게 술잔 드리는 의식 절차[편집]

○禮曹啓視學酌獻文宣王儀曰:

陳設, 視學前一日, 攸司灑掃廟殿及學堂之內外, 扈衛司設大次於廟殿東門南向, 隨地之宜。 其日, 通禮門設文武群官位於廟庭, 分東西中心爲頭, 異位重行, 俱北向。 廟司及典祀官各帥其屬入, 設祭器於大成至聖文宣王神位前, 左一籩實以鹿脯, 右一豆實以鹿醢, 爵一在籩豆前。 宋《釋典儀》云: “凡言在前者, 皆謂南也。” 犧尊一實以淸酒加勺羃, 在殿上東南隅。 設香爐、香合幷燭於神位前, 又設配享及從享位祭器, 各左一籩實以鹿脯, 右一豆實以鹿醢, 爵一在籩豆前。 共設象尊四, 一在殿上前楹東, 一在前楹西, 其二分兩廡, 俱加勺羃。 扈衛司設殿下座於明倫堂當中南向, 設小次於堂後, 設講榻於殿下座西南南向, 設講書官座於前楹間, 當講榻北向, 設侍講官座於講書官西北武官之前, 東向北上, 設文官二品以上座於殿下座東南, 近南西向北上, 設武官二品以上座於侍講之西, 當文官東向北上, 設侍臣座於月臺東西, 相向異位重行, 俱北上, 設堂下位於月朔、視朔視朝之儀, 典儀位於東階之西, 通贊、舍人二人在南差退, 俱西向。

車駕出宮, 前出宮三日, 攸司宣攝內外, 各供其職。 其日, 應從駕文武官, 依時刻集朝堂, 諸衛陳仗衛。 判通禮跪啓外辦, 殿下乘輦, 文武侍從竝如常儀。 駕將至, 館官、學官率學生, 奉迎於路左, 駕至大次, 降輦入幄。

酌獻: 通禮門分引文武侍從官、館官、學官, 公服, 學生, 靑衿服, 入就位, 判通禮進大次前跪, 啓請行酌獻禮, 殿下服冠袍出次。 判通禮前導, 入自東門升自東階, 詣大成至聖文宣王神位前北向立。 判通禮啓請四拜, 殿下四拜, 通贊、舍人贊四拜, 凡在位者皆四拜。 近侍一人奉香榼跪進, 近侍一人捧香爐跪進, 判通禮啓請跪、三上香, 近侍奠香爐于神位前。 近侍酌酒跪進, 判通禮啓請執爵獻爵, 以爵授近侍, 奠于神位前。 判通禮啓請俛伏、興、四拜, 殿下俛伏、興、四拜, 通贊、舍人贊四拜, 凡在位者皆四拜。 判通禮前導, 降自東階還大次。 館官、學官分詣配享位及從享位, 酌獻如儀。 兩廡分獻訖, 判通禮跪啓禮畢, 殿下更衣出大次, 判通禮前導至明倫堂, 入小次, 通禮門分引文武二品以上官及侍臣, 入就堂下位立定, 判通禮進, 啓請陞座, 殿下出次, 升自北階卽座。 通贊、舍人贊四拜, 文武群臣皆四拜。 典儀一人升東階上西向立, 知通禮啓請敎宰臣以下升, 判通禮前承旨退稱曰: “敎可。” 知通禮詣東階上西向稱敎, 宰臣以下升堂上, 典儀承傳, 階下通贊又傳, 宰臣以下應坐者皆四拜訖。 通禮門分引群官應坐者各升座, 次引館官、學官、學生就庭中, 異位重行, 東上北向四拜訖, 分立於兩廡北上。 內侍進書案、牙籤, 以經授講書官, 講書官讀所講書釋義, 侍講官以此論難訖, 判通禮跪啓禮畢, 群官皆起, 降就堂下位, 乃賜茶, 群官皆四拜, 升就座。 館官、學官、學生就庭中北面四拜, 分兩廡皆就座, 賜茶畢, 群官降階四拜。 通禮門以次引出館官、學官、學生, 自兩廡降階, 就庭中北面四拜出, 殿下降座還次, 車駕還宮。 殿下旣還大次, 判通禮量時刻, 跪啓外辦, 殿下出次, 文武群官陪從還宮如來儀。 初, 駕出, 館官、學官率學生, 奉辭於道左。

從之, 仍命酌獻時, 姑用冕服, 更覈古制以啓。


호조에서 죄를 범하고 사면 입은 자에게 과전 돌려주는 것에 대해 아뢰다[편집]

○戶曹啓: “犯罪蒙宥者, 公罪則其科田, 本曹取旨還給, 其公私未辨者, 請令原問衙門, 具錄罪狀, 移文本曹, 然後啓聞還給。” 從之。


의금부에서 강상인에게 압슬형을 4번이나 써 신문하다[편집]

○義禁府訊姜尙仁壓膝至四次, 尙仁言: “禪位敎書之旨及不離殿門之敎, 無不知之。 曾不如此, 以無前例事, 托言前例, 送承政院者, 吾心以謂, 國家命令, 當出於一, 故不啓上王也。 然此不啓之意, 實難啓達, 故亦不敢啓也。” 又言: “吾與朴習議: ‘軍事出於一處何如?’ 習亦以爲可, 故不啓也。” 所謂一處者, 指主上殿也。 又言: “進鷹事, 奉宣旨不卽行移, 承傳色崔閑更問, 然後與習議: ‘以奉王旨行移何如?’ 習亦可之, 故以王旨行移。 金國珍召還事, 旣奉宣旨, 亦不行移也。” 訊其元情不服, 壓膝一次, 憤然曰: “然則我背上王耳。” 又訊之, 益憤然曰: “然則我冀蒙新主之德耳。” 訊其黨與, 不服。


병술년의 내선하고자 했을 때와 무술년의 내선할 때의 강상인의 행동이 다르다[편집]

○丙戌歲, 上王欲內禪, 尙仁號痛迫切極甚, 於其時, 上王卽知之。 戊戌之內禪也, 群臣撫膺號哭, 尙仁辭色反不及群臣, 上王亦卽知之。


각도 관찰사가 겨울옷 실어 운반하는 역말에 제사를 매겨 준다고 선지하다[편집]

○宣旨: “今後各道觀察使, 冬衣載持鋪馬, 每年一度題給。”


배봉을 행행으로 고쳐 일컫기로 하다[편집]

○改稱陪奉爲行幸。 國家襲高麗之舊, 凡動駕稱陪奉, 至是改之。


11月 22日[편집]

정사를 보고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戊辰/視事, 御經筵。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朝壽康宮。


강상인을 신문하니 심청·이관·조흡·심온·이종무·이원 등에 말이 미치다[편집]

○義禁府訊尙仁, 尙仁言曰: “主上在本宮, 我以事進詣, 見同知摠制沈泟於宮門外帳幕, 泟謂我曰: ‘內禁、內侍衛闕者多, 侍衛虛疎, 何不及時塡補?’ 我答云: ‘軍士如聚一處, 不爲虛疎。’ 泟云: ‘如聚一處, 何議多小?’” 又言: “吾嘗過吏曹參判李灌家, 灌曰: ‘比日何疎?’ 我言: ‘爲因兩殿進退無暇也。’ 灌曰: ‘兩處仕進如何? 大槪凡事宜出于一。’ 我答言: ‘吾意亦如此, 然已成法, 爲之柰何?’ 又見前摠制曺洽, 洽曰: ‘軍事當出於我上位。’” 上位指上王也。 義禁府請收三人, 宣旨: “雖二品以上, 非功臣, 無得啓聞, 直行收繫。” 上王問元肅曰: “李灌云一者, 吾意指我也。” 對曰: “灌識理, 且久爲近臣。 明有予親聽斷之敎, 故誠如上敎, 然其辭曰: ‘凡事宜出于一。’ 不曰兵事, 則臣未知其意。” 上王曰: “然。” 義禁府執灌、泟、洽對置, 泟言: “我爲內禁衛節制使, 故與尙仁議侍衛虛疎耳。 軍士岐二一言, 非我所言。” 力辨之, 搒掠乃服。 訊李灌, 灌沈醉神憒, 言語無倫。 初言尙仁未嘗過我, 被掠乃服。 訊洽, 洽曰: “尙仁嘗過我, 我方聞分軍侍衛, 謂尙仁曰: ‘軍事必須上王主之。’” 訊尙仁, 辭同, 乃放洽。 尙仁又被壓膝言: “不記日, 見領議政沈溫於上王殿門外, 議云: ‘軍士分屬, 而甲士數小, 宜爲三千。’ 溫亦以爲可。 其後又因議事, 乘昏就溫家曰: ‘軍事宜歸一處。’ 溫亦以爲可。 又見長川君李從茂曰: ‘軍事宜歸一處。’ 從茂微笑而肯。 又遇右議政李原于闕門路曰: ‘軍士分屬如何?’ 答云: ‘何以言之?’”


11月 23日[편집]

정사를 보고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己巳/視事, 御經筵。


강상인·이관·심청을 신문하여 주모자가 심온임을 밝히다[편집]

○義禁府以尙仁所言具啓, 上王曰: “果如吾前日所言。 其情乃見於今日, 當去大姦, 其審問之。” 趙末生等曰: “兩上父子之情, 慈孝天至, 人誰不知? 殿下聽斷軍務, 專爲社稷, 此輩欲移軍務, 其心難測。 雖宗室勳戚, 何敢容恕?” 上王曰: “參判與知事, 同往義禁府鞫之。” 李明德啓: “今日禁刑日也, 如何?” 上王曰: “病急, 不擇日而灸。 此大獄也, 不可緩也, 宜幷收李從茂鞫之。” 義禁府又啓: “李原聽尙仁姦計, 不卽收告, 殊失大臣之義, 請竝收問。” 上王曰: “然則令騎馬就獄。” 趙末生、元肅曰: “罪人騎馬就獄, 實爲未便。” 上王曰: “兵曹遣人諭原, 令自就獄。” 末生等曰: “此非臣等所爲也。 令許著笠步就獄可。” 上王曰: “然。” 原、從茂就獄, 與尙仁對辨。 原呼尙仁曰: “姜叅判毋陷人。” 從茂亦辨之。 尙仁曰: “不勝苦毒耳, 實皆誣也。” 溫以謝恩使赴燕京未還, 無所對辨。 前此, 尙仁屢被苦楚, 辭氣不撓, 及是日, 言不能出口。 上將起居壽康宮, 承傳色內官金龍奇啓義禁府事, 因啓曰: “沈本房聞軍士一處聚會之言, 答曰: ‘雖然上王敎旨旣如此, 將如何哉?’” 國俗呼王舅家爲本房。 主上詣壽康宮, 具以龍奇言啓上王, 上王曰: “予所聞異於是。 果如此, 何罪之有?” 卽召左議政朴訔, 訔辭以病。 上王揣知訔意, 命元肅就訔第傳旨曰: “初, 尙仁之罪, 臺諫、國人再請, 吾非不知其情也, 姑息不允, 止黜于外。 其後尋思, 予之餘生小, 而所見多, 如此大姦, 去之爲宜, 故更訊其事, 乃至如此。 溫聞軍士一處聚會之言, 答曰: ‘軍士須會於一處可矣。’ 卿其知之。” 訔俯伏聞命, 卽起坐而言曰: “臣不知此事乃至於此。 沈溫所言一處, 豈指我上王殿乎? 必指主上殿也, 其意不問可知。 臣亦有啓事, 當於兩上前親啓之。” 卽詣壽康宮, 上王引見, 主上亦在座。 訔啓曰: “池和一日至臣家, 臣曰: ‘我將辭左議政, 欲請以沈本房代之。’ 後數日, 和復來曰: ‘我以政丞之言, 言於沈本房, 本房曰: 「汝請左議政努力。」’ 臣聞和之言以爲: ‘外戚當以謙讓爲心, 而今此言, 專爲權利而發, 何哉?’ 故臣於前日中良浦晝停, 不敢顯言而微及之。” 初, 溫拜領議政, 或有言其不得執政者, 溫答曰: “拜左議政有例。” 蓋指閔霽也。 和泄其言於訔, 故陽言欲辭己位, 以沈代之。 和, 卜命盲也。 上嘗從上王, 行幸中良浦, 晝停閑話之際, 訔因外戚言, 詮啓曰: “后妃之父, 人君不宜數數相接。” 故今訔云微及之也。 又啓: “溫壻柳子諧, 於景福宮侍立之時, 見臣譏笑曰: ‘此人當退伏于家, 今乃揚揚如是乎?’ 臣族人李季疇立於其側聞之, 爲具言之。” 又啓: “前臣請以臣職授沈溫, 未蒙兪允。 卞季良聞之, 潛謂臣曰: ‘人臣之辭職, 義也。 請授他人, 上心以爲如何?’ 又敎臣更啓之辭曰: ‘云云如此則前日以己職請授他人, 上心雖非之, 今聞此啓, 則必釋然。’” 訔出, 上王謂上曰: “左議政所言, 不知其意味。” 蓋謂子諧所言, 專在訔之一身, 不干於公事, 何必爲今日之獄事而言之耶? 房文仲之得罪也, 群臣請誅之, 上王曰: “言我過失之人, 我其殺之乎?” 於是, 群臣更議共請, 趙末生等曰: “上深執謙讓, 必不殺之。 然臣等以爲, 必當殺之。” 又使郞官議於訔, 訔曰: “旣以求言, 而以言殺之可乎? 我已爲左議政矣, 復有所望乎? 我當直言之。” 議者皆沮。 季良密謂訔曰: “卿言太過, 群臣雖請殺之, 上必不殺之。 卿宜與群臣共請殺之。” 訔以爲然, 乃率群臣, 請殺文仲, 上王果不允。 季良前後敎訔之辭, 皆逆探君上之意, 其朋比罔上之罪, 不容赦矣。 豈儒者之用心哉? 初, 上卽位, 御藏義洞本宮, 訔入上前除授, 是日, 中宮伯叔父及姜碩德皆升職。 訔請竝升柳子諧職, 上止之曰: “一時恩寵過, 姑待後日。” 訔再請曰: “此人之職太卑。” 上不從。 至是, 訔又入除授, 上欲升子諧職, 問於訔, 訔俛首不對, 蓋聞季疇之言, 有不快於子諧也。 上王曰: “右議政其速放出。 李從茂待他證, 姑除刑問, 李灌、沈泟, 宜加壓膝鞫問。” 訊姜尙仁壓膝二次, 對如前言, 語微續引摠制成達生言: “達生爲別巡, 呈手本於兵曹曰: ‘監巡無所, 當於主上殿近處作之。’ 乃曰: ‘何不顧大體, 仍在舊所乎?’” 問達生, 對曰: “吾所謂大體者, 指時座本宮欄墻頹圮、軍幕不連, 非指他事也。” 拷訊不服。 上王曰: “此偶然之言, 何罪之有?” 訊李灌壓膝一次, 言: “吾就沈溫家, 賀拜領議政, 因言: ‘兵事分屬未便, 當盡歸之主上殿何如?’ 溫曰: ‘卿言是矣。 然法已成, 故如此耳。’ 灌聽此言, 且自以爲, 主上非幼弱, 旣以傳位, 何以分兵事乎? 上王則宜分遣甲士侍衛而已, 故見尙仁發此言。” 又言: “吾以牙牌事進上王殿, 謂朴習曰: ‘軍事當出一處。’” 訊沈泟壓膝一次不服, 二次乃言: “見兄溫於其家, 兄言: ‘軍事當出一處。’ 吾答云: ‘兄言是矣。’” 上王謂明德曰: “情狀已著, 不必更問。” 明德請鞫其原情, 上王曰: “首謀者溫也, 雖未出來, 其倘尙仁、李灌等, 當置極刑, 周示五道, 其速斷以啓。”


사헌부가 이방간 부자에게 죄줄 것을 청하는 상소[편집]

○司諫院上疏曰:

怨有不報, 而君父之讎, 不可不報。 芳幹父子稱兵向闕, 志圖上王, 兵敗而走。 當時忠臣義士, 皆欲加刃, 以快衆心, 上王殿下天性友愛, 不忍致辟, 俾完其生者, 十九年于玆矣。 殿下嗣位, 誠宜不竢終日, 以報其讎, 而臺諫上疏交請者, 已有日矣。 殿下重違上王之心, 不顧萬世之義, 因仍未決, 一國臣民, 莫不腐心切齒。 伏望明正典刑, 以快臣民之憤。

司憲府又上疏曰:

前日伏聞殿下之敎, 又聞上王之命, 而敢違二聖之旨, 將芳幹、孟宗之罪, 累次上章, 頻瀆天聽, 不勝惶懼。 未審芳幹父子稱兵之擧, 將欲害誰? 設使遂其亂賊之計, 則朝鮮宗社, 安有今日? 伏望如前日所奏, 至誠惻怛, 敷陳大義, 以回天聽, 不令君父之讎共戴一天。

上命芳幹父子奴婢, 除家內役使外, 皆屬都官。


병조에서 양전을 시위하는 차례 등에 대해 상왕께 건의하다[편집]

○兵曹啓: “兩殿侍衛次第, 內禁、內侍衛, 次忠義衛, 次別侍衛。 又忠義衛受西班職者, 竝直本衛, 受東班職者, 除入番外, 各仕本司。 臺諫、刑曹決事官除入番, 專仕本司。” 上王從之。


11月 24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庚午/視事。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朝壽康宮。


박습이 복죄하다. 박습·심온·심청·강상인·이관 등의 가산을 봉하다[편집]

○義禁府訊朴習壓膝一次不服, 二次乃言: “見尙仁、李灌、沈溫, 皆言: ‘兵事不可岐而二之, 當合於一處。’ 聽此數人之言, 故凡軍事不啓於上王殿。” 上王曰: “朴習雖不洩其情於他人, 其尙仁之言, 必傳於族人朋伴。” 於是, 又訊朴習, 習引前代言金孝孫, 孝孫辨析明白, 習服誣。 孝孫, 習之妻兄也。 習之子義甫, 灌之女壻也。 尙仁又言: “吾前日李從茂肯之者, 誣也。 其實則從茂見我曰: ‘軍士虛疎。’ 吾對曰: ‘新造之際, 以至如此耳。’” 獄成, 李明德等具啓, 李從茂、成達生、金孝孫等皆放出。 初, 尙仁言: “嘗見延嗣宗、崔潤德、趙末生、田興、元肅, 問兵事如何, 皆曰: ‘當合於義建府。’” 至是, 末生、興請與尙仁對辨, 上王不許, 封朴習、沈溫、沈泟、尙仁、李灌等家産。


사금을 3번으로 나누어 매 1번마다 절제사 1인을 두다[편집]

○分司禁爲三番, 每一番置節制使一人。


길재의 자손 중에 재주와 행실이 있는 사람을 아뢰게 하다[편집]

○命慶尙道觀察使, 訪高麗注書吉再子孫有才行者以聞。 再仕僞朝爲門下注書, 退居善州之(金鰲山)〔金烏山〕下。 上王嘗徵爲奉常博土, 不起。


11月 25日[편집]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辛未/朝壽康宮。


상왕이 박은·이원·조말생·원숙을 불러 일을 의논하고 술을 주다[편집]

○上王引見朴訔、李原、趙末生、元肅議事, 仍饋之。 酒酣, 訔、原啓曰: “兩上爲一體, 而憸小姦臣謀二之。 此輩皆特蒙上恩, 其所犯如此, 上心何恃? 臣等所共憤也。” 上王曰: “吾知兩相之心, 可托六尺之孤。” 原啓: “臣前日被囚, 私自以爲: ‘脫若尙仁堅執其言, 以爲政丞實知, 則臣將何以辨明?’ 更思之, 天地茫茫。” 言訖泣下, 上王亦墮淚曰: “右議政情可憐也。 非惟議政, 無乃或亦有被誣者乎? 予亦爲此墮淚也。 元叅議其知之。” 訔、原因醉失儀, 末生止之。 上王曰: “此乃眞情, 何害?” 又曰: “元肅爲應奉司官, 勤於其職, 故予以爲承宣, 以至今日。” 又問: “爾年幾何, 何白毛之多也?” 又稱許遲有器局, 崔府爲純直。


이욱을 의주에 보내어 중국에서 돌아오는 심온을 기다렸다 잡아오게 하다[편집]

○以判典醫監事李勗爲義禁府鎭撫, 往義州待沈溫還, 執之以來。 仍命: “溫若與使臣偕來, 令溫稱疾故留, 密繫來, 勿令使臣知之, 恐朝廷錯料吾父子之變也。”


병조에 소속된 관리를 병조에서 마감하여 선지 받들어 임명하도록 하다[편집]

○兵曹啓: “本曹所屬諸司官吏及提調別坐等, 本曹磨勘, 奉宣旨差任。” 上王從之。


의금부에서 강상인·박습·이각·채지지·성달생의 형량을 정하여 아뢰다[편집]

○義禁府啓: “按律姜尙仁、朴習、沈泟、李灌謀叛大逆, 不分首從, 皆凌(遣)〔遲〕處死, 父子年十六以上者皆絞, 十五以下及妻妾、祖孫、兄弟、姊妹, 給付功臣家爲奴婢。 李慤、蔡知止知尙仁謀而不首, 杖一百, 流三千里, 成達生制書有違, 杖一百。”


상왕이 심청의 이복형 심인봉도 궁에 입직할 수 없음을 지적하다[편집]

○上王曰: “沈仁鳳乃泟異母兄也。 雖無勢力, 以逆臣之兄, 安然入直, 於義安乎?” 趙末生等曰: “此乃臣等之罪也。” 上王嘗曰: “予不釋兵者, 非顧戀大位也, 欲爲主上緩急間後援耳。 自古離間至親, 正由群小之輩, 安可不大懲, 以戒後世耶?”


11月 26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壬申/視事。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朝壽康宮。


백관을 모아 강상인을 거열하고 박습과 이관을 목베며, 친족들을 귀양보내다[편집]

○上王引見朴訔、趙末生、李明德、元肅曰: “尙仁、李灌罪重, 卽今宜死, 沈泟、朴習比之尙仁似輕。 魁首沈溫未還, 姑留對正如何? 否則無乃有愧於人心天意乎?” 訔曰: “欲對正則存尙仁, 刑三人可也, 然沈溫所犯, 事證明白, 何必對正? 留之不可。 且共謀叛者, 不分首從, 何有差等?” 於是, 義禁府啓: “獄多困苦, 請速行刑。” 命尙仁依律, 習、灌、泟皆處斬, 四人父子免絞爲奴, 赦慤、知止、達生義禁府又啓: “罪人父子, 旣免刑戮, 宜籍家産。 慤、知止、達生皆不可赦。” 從之。 乃命慤等竝命免杖配外, 慤、知止皆配前所。 會百官, 轘尙仁, 斬習、灌、泟于西郊。 上欲謁文廟, 已諏吉矣。 以尙仁等就刑停之。 配尙仁弟尙信于寧海, 尙禮于務安, 尙呂于瑞山, 尙望于丹陽, 子長生于盈德; 習子義孫于南海, 義甫于光陽; 灌子紹仁于蔚山, 兄鑰于通川, 竝沒爲官奴。 又配灌叔父元緝于平海, 元綱于長鬐, 姪末漢于巨濟, 伯長于長興; 泟兄僧道生于瓮津, 仁鳳于海珍, 澄于東萊, 姪石雋于樂安; 溫孼子長守于泗川; 成達生于三陟。 習在獄中已死矣, 尙仁升車大呼曰: “我實無罪, 不堪箠楚而死。” 後卞季良啓於上曰: “戊戌之獄, 臣爲義禁府提調, 許遲語諸提調曰: ‘當壓膝朴習。’ 諸提調曰: ‘諾。’ 於是壓之, 卽承服。 上王亦以習罪爲疑, 朴訔復請, 乃誅之。” 又曰: “許遲不久而死, 其報施之不差如此。”


국모 집안이 천인에 속할 수 없다 하여 심인봉 등을 양민이 되게 하다[편집]

○宣旨: “沈氏旣爲國母, 其家豈可屬賤?” 仁鳳等由是免賤爲良。 又下宣旨曰: “溫妻及四幼女屬賤時, 取旨施行。”


11月 27日[편집]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癸酉/御經筵。


군기감 사복시 훈련관의 관리를 병조에서 낙점하여 이조에서 제목 내리게 하다[편집]

○宣旨: “軍器監、司僕寺、訓鍊觀官吏, 兵曹受點, 送吏曹下除目。”


11月 28日[편집]

정사를 보고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甲戌/視事, 御經筵。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朝壽康宮。


함길도 관찰사가 지휘 백안불화가 서울에 와 배사하고자 함을 아뢰다[편집]

○咸吉道觀察使啓: “指揮伯顔不花等欲上京拜謝。” 上令政府、六曹議, 咸曰: “宜遣人諭曰: ‘所齎勑書, 全指野人頭目, 而不干我國。 今越境相通, 已爲不可, 況於上京乎?’” 上卽遣通事崔雲, 齎酒往慰, 仍諭以此意。


삭망 때에 수강궁에 문안하는 의식 절차[편집]

○禮曹啓朔望朝壽康宮儀曰:

前期, 有司設大次於壽康宮門內隨地之宜, 小次於殿內庭近東西向, 設殿下褥位二, 一於上王幄座之東南西向, 一於月臺上當中北向。 設文武百官拜位於殿外庭如常儀, 陳樂于殿內庭道西近南北向。 兵曹設仗衛於殿階上下如常儀。 殿下乘輿將至壽康宮, 通禮門報文武百官詣宮門外。 通禮門先入詣大次前, 分左右立定, 俟殿下詣壽康宮大次, 降輿入次, 奉禮郞分引宗室以下文武百官, 入就拜位北向立定, 判通禮導殿下入小次簾降。 中禁傳嚴, 上王出, 樂作, 卽座, 樂止。 小次簾捲, 判通禮導殿下升自東階, 詣月臺上褥位北向立。 判通禮啓請鞠躬、四拜、興平身, 殿下鞠躬, 樂作, 四拜、興、平身, 樂止。 判通禮導殿下詣上王幄座之東南褥位西向立。 典儀曰: “拜。” 通贊承傳, 贊鞠躬、四拜、興、平身, 在位官鞠躬, 樂作, 四拜、興、平身, 樂止。 判通禮跪啓禮畢, 俯伏、興退。 上王降座, 樂作, 入內, 樂止。 殿下從入見大妃, 如宮中之儀。 奉禮郞分引宗室以下文武百官以次出。


초1일과 16일 군사가 수강궁에 조회할 때 관직 차례대로 예를 행하게 하다[편집]

○兵曹啓: “每月初一、十六日軍士朝壽康宮時, 主上殿入番外, 忠義衛及司僕、訓鍊觀官吏, 竝以職次序立行禮。” 上王從之。


상왕이 유정현·박은 등을 불러 공비에게 염려말라고 명령하였음을 말하다[편집]

○上王召領敦寧柳廷顯、左議政朴訔、右議政李原、兵曹判書趙末生、禮曹判書許稠、知申事河演曰: “其父作罪, 而女爲后妃者, 古亦有之, 況律無緣坐之文。 予已勸恭妃食, 且命勿慮也。 卿等宜知此意。” 僉曰: “上敎允當。”


진상하는 물선에 대하여 행문 이첩할 때의 각전의 차례를 정하다[편집]

○王旨: “進上物膳行移時, 各殿次第倒錯施行, 甚爲未便。 今後仁德宮, 次壽康宮, 次大妃殿, 次主上殿, 次恭妃殿, 次誠妃殿, 以爲恒式。”


11月 29日[편집]

경연에 나아가 《대학연의》를 강하다가 당나라 우문사급의 일을 이야기 하다[편집]

○乙亥/御經筵, 講《大學衍義》至宇文士及侍太宗, 從旁歎賞之語, 上曰: “自古姦佞之臣, 媚悅其君, 其狀如此, 然未有能保其終者。” 鄭招曰: “臨簡冊, 辨忠邪, 雖以臣之昏蒙, 亦足以知之。 必人君先正其心, 本源澄澈, 然後人之情僞, 昭然不昧矣。 君徒以文字而能察臣之姦佞, 自古未有也。” 上曰: “然。”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朝壽康宮。


강원도 관찰사가 토지의 실지 검사가 맞지 않음을 아뢰니 다시 검사하게 하다[편집]

○江原道觀察使李種善啓: “本道今年檢踏損實不中, 民多怨咨。” 上遣監察金宗瑞改驗之。


의정부와 육조 당상과 대사헌 사간 등이 대역을 처단한 것을 하례하다[편집]

○議政府、六曹堂上、大司憲許遲、司諫鄭守弘等詣闕賀曰: “若非聖上明斷, 大逆何誅? 臣等喜賀。” 兩上傳旨曰: “天道也, 非人爲也, 毋賀。” 諸臣對曰: “社稷寧長之福。”


상왕이 유정현 등을 불러 빈과 잉첩을 더 들일 뜻을 말하다[편집]

○上王召柳廷顯、朴訔、李原、趙末生、許稠、河演傳旨曰: “漢高祖, 英主也。 傳位於惠帝, 惠帝性仁柔, 見人彘得疾, 終致呂氏之亂。 若非周勃, 漢祚未可知也, 而惠又無嗣, 國步甚危, 人君繼嗣, 不可不廣。 予往年因禮官之請, 納三四嬪媵, 其父如權弘、金九德、盧龜山、金漸等向王室之心, 必異於他臣矣。 一以廣繼嗣, 一以得衆人之助, 且合於古者一娶九女之義。 今主上於正宮有三子, 然加多則尤好也。” 廷顯對曰: “自古帝王以嗣胤蕃茂爲貴, 請納嬪媵二三。” 上王曰: “此事非主上所知, 予當主之。” 仍命禮曹選嘉禮色提調別坐以啓。 訔等侍坐上王前, 訔因語次啓曰: “宮中寂寞。” 其意蓋謂當廢中宮。 上王知其意曰: “我已知卿意。” 義禁府提調等詣壽康宮, 請廢中宮, 上王曰: “平民之女, 亦許嫁, 則不緣坐, 況沈氏旣爲王妃, 何敢廢黜? 諸卿之言, 似爲未便。” 仍謂上曰: “罪人之女, 故外人必疑之, 然此豈刑官所宜請也?” 趙末生、元肅、張允和等對曰: “若以律論之, 則上敎是矣。 然以主上論之, 則溫乃父王之讎也。 豈可以其女, 正位中宮乎? 請割恩以垂後法。” 上王不答。 訔又詣兵曹, 謂堂上官曰: “其父有罪, 其女不當立。” 上王聞之, 乃召見柳廷顯、許稠、許遲、議政府堂上曰: “《經》云: ‘罰不及嗣。’ 況女子乎? 前昔閔氏之事, 亦爲不忠, 在當時無一議廢立者, 今何至此乎? 予前命立嘉禮色者, 欲以備嬪媵耳。” 廷顯不對, 訔曰: “臣等亦謂金枝玉葉如此蕃衍, 廢立之事不可輕議, 欲備嬪媵甚當。” 稠啓曰: “欲備嬪媵, 臣亦以爲當納二氏。” 上王甚喜, 因命禁婚娶。


인수부 지유 행수의 거관(去官)을 대전 지유 행수 등의 예에 의거하게 하다[편집]

○禮曹請仁壽府指諭行首牽龍去官, 依大殿指諭行首等例, 從之。


중국 사신 위로하는 잔치 외의 연향에는 일과상을 쓰게 하다[편집]

○宣旨: “今後朝廷使臣慰宴外, 本朝宴享, 除大卓, 用一果床。”


이각·채지지 등 7인은 자기가 원하는 곳에 안치하게 하다[편집]

○宣旨: “李慤、蔡知止等七人罪輕, 當蒙赦, 而予因多事, 未得省察, 其從自願安置。”


일본 서해로 미작 태수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편집]

○日本國西海路美作太守淨存遣人獻土物, 仍請賜圖書, 命禮曹造圖書賜之, 又賜紬布十匹、緜布百三十三匹。 九州摠管右武衛將軍管下濃州太守板倉平宗壽遣人獻土物, 請苧麻布, 賜紬布七匹、綿布三百六十匹、苧麻布各十匹。 對馬州左衛門大郞遣人賀卽位, 獻土物, 賜紬布十匹、綿布百匹。 關西路九州都元帥右武衛源道鎭遣人獻土物, 賜苧麻布十五匹、麻布二十匹、紬布十匹、緜布百五十匹。


임금이 충의위와 더불어 동맹해야 함을 선지하다[편집]

○宣旨: “主上卽位之初, 宜與忠義衛同盟。 爾兵曹、承政院其諭禮曹施行。”


심온의 도주를 염려하여 평안도 관찰사에게 체포할 대비를 하게 하다[편집]

○宣旨: “沈溫旣爲大逆, 恐或知而逃匿, 速諭平安道觀察使, 預備收捕。”


즉위년 十二月[편집]

12月 1日[편집]

백관을 거느리고 국학에 거둥하다[편집]

○丙子朔/上率百官, 幸國學, 行大司成趙庸率學生, 迎于道左。 上以袞冕, 先聖, 便服御明倫堂, 命趙庸講《洪範》, 鄭招、郭存中、權蹈、金赭等論難, 侍臣及正二品以上侍坐階上。 講訖, 餉學官、學生, 還詣壽康宮。


일본 종정성에게 사사로 글을 보낸 경상도 관찰사와 좌도 만호를 용서하다[편집]

○慶尙道觀察使申商、左道萬戶金從善私通書于宗貞盛, 責還被虜人口, 上王以經赦, 宥其罪。


12月 2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丁丑/視事。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朝壽康宮。


대사헌 허지가 김한로를 나주로 옮겨 안치하기를 청했으나 윤허치 않다[편집]

○大司憲許遲啓: “金漢老在淸州。 淸州, 近京之地, 請移置羅州。” 不允。


행 대사성 조용이 학생을 거느리고 나아와 은혜에 사례하다[편집]

○趙庸率學生詣闕, 上箋謝恩。


박습의 인친인 김효손을 진천에 안치하다[편집]

○安置金孝孫于鎭川, 以孝孫朴習姻親也。


상왕이 임금과 수강궁 연침에 나아가 유정현 등과 가례를 의논하다[편집]

○上王與上御壽康宮燕寢, 召柳廷顯、朴訔、李原、趙末生、許稠、許遲、河演, 議嘉禮事, 仍置酒, 令伶人吹笛于戶外。 遲醉曰: “請令近前吹之。” 上王笑而許之。 遲因請朴蔓、任純禮罪, 不允。


12月 3日[편집]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戊寅/御經筵。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朝壽康宮。


관직 제수를 상호군·대호군·호군은 상왕, 사직 이하는 임금께 아뢰게 하다[편집]

○上王謂兵曹曰: “除授時, 上大護軍、護軍啓我, 其司直以下啓主上除拜。”


12月 4日[편집]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己卯/朝壽康宮。


의금부에서 심온의 아내와 딸들을 천인으로 삼고 가산을 적몰하기를 청하다[편집]

○義禁府請以沈溫妻及諸女子屬賤, 上王命依諸兄例施行。 義禁府復請曰: “諸兄免賤, 臣等猶以爲不可, 妻及女子, 不可免賤。” 上王從之, 仍命曰: “雖屬賤, 毋令役使。” 義禁府又請籍溫家, 上王問朴訔曰: “王妃之家籍之, 於義安乎?” 訔對曰: “有罪之臣, 不可寬赦。 如此之事, 宜降特恩。” 命勿籍其家, 義禁府復請, 乃從之。


삼척으로 귀양간 성달생을 원하는 곳에 안치하도록 하다[편집]

○元肅啓於上王曰: “成達生、李慤、蔡知止等罪, 一也。 慤等皆蒙聖慈, 從願安置, 而達生乃配三陟何如?” 上王曰: “予失於省察以至此耳。” 卽命義禁府, 從自願安置。


심온이 천거한 사람인 의주 목사 임귀년을 파직시키다[편집]

○摠制元閔生啓於上王曰: “義州牧使任龜年, 沈溫所擧。 且溫家奴, 曾以迎溫往義州, 宜遣人收捕。 又遞龜年職, 毋令生變。” 卽遣知印康勸善, 傳旨于李勗曰: “已罷龜年職, 宜速驛送。 且堅囚溫奴, 毋令漏泄。” 又令勸善以宣旨諭平安道觀察使, 使把截要路, 勿令人通溫。 以前府尹禹均判義州牧事, 賜毛衣、冠靴。


최윤덕이 농사 망친 온수 부근 주군의 수령을 체임시키지 말기를 청하다[편집]

○都摠制崔潤德啓於上王曰: “臣見溫水等處人民失農甚, 其附近州郡守令, 雖已秩滿, 勿令遞差, 以除迎送之弊。” 上王曰: “然。 卿其啓於主上。”


액정서의 각품을 궁·부·관을 분간하여 관안에 기록하게 하다[편집]

○吏曹啓: “掖庭署各品, 請於官案內, 稱某宮某府某官, 分揀載錄。” 從之。


12月 5日[편집]

상왕의 밀지를 칭탁했다 하여 하연을 사제로 돌아가게 하다[편집]

○庚辰/上王使召河演, 諭上以納嬪媵事。 演以爲, 嫌於中宮, 稱奉上王密旨, 請面啓, 上以非密旨而稱密旨, 命歸私第, 以元肅代掌其務。


이조에서 천지(天地)·사시(四時)의 관직의 차서를 바로 잡기를 청하다[편집]

○吏曹啓: “自周以來, 天地四時之官, 稱號雖有不同, 其次序則未嘗變易。 國初因前朝之舊, 夏官在地官、春官之上, 未便。 乞依古制, 一天官爲吏曹, 二地官爲戶曹, 三春官爲禮曹, 四夏官爲兵曹, 五秋官爲刑曹, 六冬官爲工曹, 以爲定制。” 從之。


심온을 맞이하도록 종을 보낸 아내와 혐의를 받은 처제를 모두 석방케 하다[편집]

○以沈溫妻弟判通禮門事安壽山送奴迎溫於道, 下義禁府。 義禁府啓: “送奴者, 乃溫妻, 非壽山也。 請問之。” 上王命悉皆釋之。


역관 전의와 군사 10명을 보내어 연산참에서 심온을 잡아오게 하다[편집]

○遣譯者全義, 率軍十人往連山站, 待沈溫枷紐管來, 毋過連山。 溫若與使臣偕來, 托以母病, 引出拿來。


상왕이 중국에 사은하는데 쓰고자 양마 23필을 준비하다[편집]

○上王親選良馬二十三匹, 以備謝恩。


도목정 일로 편전에 나아가 전주를 점검하고 공정할 것을 당부하다[편집]

○上以都目政, 御便殿親檢銓注, 謂選曹官曰: “此予卽位後大政, 毋令人有駁議。” 國制, 每年六月、十二月, 吏兵曹論中外官吏功過, 陞黜之, 謂之都目政; 無時除授, 謂之轉動政。


12月 6日[편집]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辛巳/朝壽康宮。


전 도총제 정진의 졸기[편집]

○前都摠制鄭鎭卒。 鎭, 延日縣人, 大提學洪之子, 容儀端美。 以平壤伯趙浚女壻, 年十八拜代言, 二十拜中樞, 一時少貴, 毋出其右。 然性溫謹公廉, 事親孝、與人信, 無豪富氣習, 凡所經歷, 人皆慕之。 卒年四十一, 時論惜之。 輟朝三日。 諡靖元, 恭己鮮言靖, 行義悅民元。 子孝孫、孝順、孝完、孝康、孝全。


군사 거느리고 연산에 이른 전의가 파수보는 관원에게 제지당하다[편집]

○元閔生啓曰: “全義率軍至連山, 則把截官必拘留, 報都司。” 上王命朴訔、李原、趙末生議, 訔等亦曰: “宜令義與李勗追尋至八站而還, 不可到連山。” 義至廣灘路上, 遇溫奴乃還。


심온과 친밀했던 임군례·김을현·신이·장합 등을 파면시키다[편집]

○罷尙衣院別監任君禮、金乙賢、辛頤、張合等職, 以其嘗附於溫也。 又罷頤弟刑曹佐郞回、司僕直長憲。


일본 대마도 종정성이 방물을 바치다[편집]

○日本對馬島宗貞盛遣人獻方物。


12月 7日[편집]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壬午/朝壽康宮。


하연을 파면하고, 유정현·권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편집]

○罷河演職, 以元肅代之。 以柳廷顯領議政府事, 權軫爲左軍都摠制, 曺洽爲右軍都摠制, 李之綱吏曹參判, 金自知戶曹參判, 朴成陽中軍同知摠制, 禹弘康慶昌府尹, 張允和兵曹參議, 李勗兼知兵曹事, 申敬元司憲掌令, 李安敬司憲持平, 崔有悰司諫院左正言, 尹坤平安道都觀察使, 尹子當平安道兵馬都節制使, 曺備衡咸吉道兵馬都節制使, 沈溫、李灌、朴習、姜尙仁戚屬及溫前日所擧者皆罷之。


12月 8日[편집]

햇무리 지다[편집]

○癸未/日暈。


정사를 보고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視事, 御經筵。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朝壽康宮。


박관이 김한로를 나주에 안치하도록 아뢰다. 하연에게 임금의 뜻을 전하다[편집]

○司憲執義朴冠啓: “金漢老罪干不忠, 葬母後, 宜置羅州。” 上召元肅議曰: “漢老之罪, 非關大體。 淸州近其農舍, 故量移, 俾遂其生耳。” 又曰: “前日命河演歸私第, 若不說予意, 必以予爲信讒而然。 上王召演言嘉禮事, 俾諭於予, 演來啓曰: ‘承密旨, 請面啓。’ 予以爲, 上王何事不面諭於予, 予何事不面啓, 而別有密旨乎? 其語似阿曲, 不孚於今日一體之意。 上王以爲未便, 予亦以爲未便, 命歸私第耳, 非有他也。 卿將此意, 諭冠與演。” 演聞命曰: “上王密敎於臣, 且臣以爲嫌於中宮, 欲殿下出聽於便殿耳。 臣思慮淺短, 常懷恐懼, 思免厥愆。 近日在家, 未知何罪, 不任惶恐, 今聞上敎, 稍解憂懼。”


12月 9日[편집]

달이 목성을 범하다[편집]

○甲申/月犯木星。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朝壽康宮。


상왕이 하연을 불러 그의 마음을 알았음을 말하고 음식을 보내 주다[편집]

○上王召河演曰: “予因主上, 聞爾嫌於中宮之言, 乃知爾原情也。” 令兵曹餉之。


12月 10日[편집]

정사를 보다[편집]

○乙酉/視事。


염초 만들기 위해 흙 파내는 사람이 백성을 소란시키지 않도록 하다[편집]

○朴訔啓: “焰(焇)〔硝〕取土者, 侵擾平民, 請停之。” 上曰: “如不得已, 只取於院館, 毋令擾民。”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御經筵。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朝壽康宮。


민무구 형제의 아들 딸들을 서울 밖에서 살게 하다[편집]

○閔無咎兄弟妻及女子, 許京外從便。


박습의 집을 몰수하여 장흥고로 삼다[편집]

○沒朴習家爲長興庫。


12月 11日[편집]

인정전에서 조회를 받다[편집]

○丙戌/御仁政殿, 受群臣朝。


상왕이 임금과 함께 공신으로 사신가는 윤곤과 윤자당을 전송하다[편집]

○朝壽康宮。 上王與上御燕寢, 餞平安道觀察使尹坤、都節制使尹子當。 坤與子當皆功臣, 故親餞之。 親餞功臣奉使者, 自此始。 孝寧大君補、領議政柳廷顯、左議政朴訔、右議政李原、漢平君趙涓、參贊卞季良、禮曹判書許稠、兵曹判書趙末生、參判李明德、大司憲許遲、知申事元肅等侍宴。 上王曰: “禮曹亦設餞宴乎?” 稠曰: “今禁公私宴飮, 故不設也。” 上王曰: “功臣都監宴則謂之公宴可也, 禮曹餞宴則代言奉命宴慰, 豈可謂之公宴? 取旨可也。” 又曰: “今聞島倭三百餘隻, 欲寇上國, 無乃構釁於我? 是不可不慮也。” 上王賜坤、子當弓矢, 上賜氈笠。


12月 12日[편집]

정사를 보고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丁亥/視事, 御經筵。


허지가 하연의 죄를 청하고, 김한로를 나주에 안치하는 등에 대해 아뢰다[편집]

○許遲啓: “河演以近臣之長, 專掌出納, 內懷姦詐, 誣稱密旨, 以間兩上, 請論如法。” 上曰: “演小過也, 不足責也。” 遲又言: “金漢老罪干大逆, 安置淸州, 實爲未便。” 上曰: “國論如此則可置羅州。” 遲又啓於上王曰: “鄭龍壽不忠之大者也。 其子貫不可參忠義衛。” 上王曰: “啓於主上。”


죄 지은 조윤을 그 아버지가 공신이므로 용서하다[편집]

○先是, 漢山府院君趙英武子前庫使倫丁父喪, 淫於妓, 憲府劾之。 上王曰: “宥功臣子孫, 重其祖父也。 倫居喪肆淫, 自絶於父, 不可赦也。” 命有司依律科罪。 至是, 倫以不得錄名於忠義衛, 擊登聞鼓訴云: “臣實無淫妓之事, 誤蒙其罪。” 上曰: “倫若無所犯, 當時何不辨明, 而今乃擊鼓乎? 可下刑曹治罪。” 上朝壽康宮, 上王曰: “倫雖有罪, 英武之功, 不可不宥及子孫也。” 上命元肅, 召倫責之曰: “汝越法擊鼓, 宜置於法, 重汝之父宥之。”


12月 13日[편집]

햇무리 지다[편집]

○戊子/日暈。


정사를 보다. 대사헌 허지가 정용수와 신효창의 죄를 청하다[편집]

○視事。 大司憲許遲請鄭龍壽、申孝昌之罪: “若以受命扈從爲辭, 則自始至終, 不離行宮可也。 至艾田軍潰, 從而逃來, 其中立觀變可知。” 上曰: “予將啓上王。”


과거 제도에 대하여 변계량·허조 등과 의논하다[편집]

○因禮曹啓, 議科擧事。 上問曰: “科擧圓點之法, 何以設乎?” 卞季良、許稠等對曰: “生員食學廩兩時者, 爲圓點。 生員不樂居齋, 故立此法, 滿三百點, 然後許令赴試。” 季良因啓曰: “臣再掌科擧, 講經之法, 實爲不可。 今之儒者, 拘於口讀, 徒以誦習爲業, 故其氣固滯, 而短於詞賦。 且試官面對擧子, 豈無私心? 高麗之時, 立封彌之法, 以此也。 權近常患此弊, 上書請罷, 上王從之。 歲丁酉, 用一二文臣之策, 復立此法, 臣以爲, 射者戲事, 而人之所樂爲也。 今京中子弟以文科難以跂及, 皆趨武擧, 不可不慮。” 孟思誠曰: “古有進士之科, 其中者唱名簾前以寵異之, 人人皆樂爲之。 今罷進士, 但有生員試, 其額止一百, 宜加其額, 以勸志學之士。” 季良曰: “鄭道傳始廢進士, 合於生員試, 李穡甚恨之。” 上又曰: “初場試五經義如何?” 季良曰: “初場本有五經疑, 或全擧五經, 或擧三經, 或擧一經而問之。 今宜別立初場之法, 以代講經。” 許遲曰: “害於義則更張可也, 無害於義, 載在六典, 太祖成憲不可改也。 掌試者若無私心, 取士安有不正者乎?” 上曰: “大司憲之言甚當。” 季良曰: “法有隨時而變者, 豈可固執乎?”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上朝壽康宮。


박습의 아들 박의손이 도망해 숨다[편집]

○義禁府啓: “朴習子義孫行至佐賛驛逃匿。 請移文捕獲。” 上王曰: “義孫以父罪重, 恐見殺逃匿, 置之不尋, 則自至配所, 不必强尋。”


예조에 명하여 평안도 관찰사 윤곤과 도절제 윤자당을 전송케 하다[편집]

○命禮曹餞平安道觀察使尹坤、都節制使尹子當, 命知申事元肅、左副代言尹淮, 齎宣醞賜之。


12月 14日[편집]

정사를 보고 경연에 나아가다[편집]

○己丑/視事, 御經筵。


수강궁에 문안하다[편집]

○朝壽康宮。


대사헌 허지 등이 또 하연에게 죄주기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편집]

○大司憲許遲等又請河演罪, 上曰: “演於嘉禮事, 妄稱密旨, 父子之間, 朝夕相見, 豈不得面命, 而使臣下傳之乎? 且密旨之稱, 非正也, 演誠失言矣。 然已罷職, 不可更論也。” 遲曰: “嘉禮之事, 上王殿下以萬世之計, 謀及政府、六曹, 酌古以定, 演以內臣之首, 不顧大義, 乃稱密旨, 其罪不可赦也。” 上不允。


사헌부에서 올린 박만·정용수 등의 반역 불충한 죄를 다스리라는 상소[편집]

○司憲府上疏曰:

臣等俱以非才, 濫居憲職, 曾無一毫獻替之言, 恐負初政願治之意, 然臣等所願則不使叛逆不忠之臣, 苟容於聖朝耳。 朴蔓、任純禮、朴文崇、崔湜、許衡, 皆受上王分符之命, 反幸壬午之變, 遽乘機扇亂, 欲圖後功, 叛逆蹤跡, 國人所知。 鄭龍壽、申孝昌, 外似忠義, 遙達事變, 內懷姦險, 觀變圖功, 若究其心迹, 則與朴蔓奚擇焉? 廉致庸前朝亂賊之裔, 幸蒙上王再造之恩, 位至宰相之列, 固當盡其心力, 圖報萬一。 乃於蒼赤屬公之際, 輒動邪念, 臆度聖心, 敢以誣僞, 向上發言, 罪當誅戮。 李稷以右議政居廟堂, 以平日所好之情, 遂沮請罪致庸之議。 且稷當戊子年大司憲之時, 無咎、無疾不忠之罪, 未嘗一請焉, 其所懷之忠邪, 昭然可見。 房文仲、權約等亦以誣辭, 非毁上王, 罪均致庸。 金漢老陰譎欺上, 事已呈露, 罪干大逆。 李叔蕃今將之心、悖逆之氣, 現於言動, 上王所親見。 黃喜非特對問之際, 有所不直, 視宗秀不以爲亂賊, 而輕論以啓, 其今將之心, 與叔蕃靡是不同。 伏望殿下, 留神澄省, 斷以公義, 將叛逆不忠人等, 明置於法, 宗社幸甚。


의정부에서 올린 박만 정용수 등을 법에 처하라는 상소[편집]

○議政府上疏曰:

君父之讎, 不共戴天, 實爲古今大義也。 懷安父子, 實爲亂逆之首; 朴蔓、任純禮等, 身操重兵, 助成思義、康顯之亂; 鄭龍壽、申孝昌悉知思義等亂謀, 以圖後功; 李叔蕃、李稷、黃喜忘上王之大恩, 乃懷二心, 其迹已著; 廉致庸、房文仲等, 乃造惡言, 誣揚君父所無之失, 此君父之讎, 殿下所爲不共戴天者也。 伏望殿下, 特命有司, 將上項人等, 置之於法, 以明大義, 宗社幸甚。


호조 판서 최이 등이 올린 이방간 부자와 박만 등을 법에 처하라는 상소[편집]

○戶曹判書崔迤等上疏曰:

近者, 臣等請芳幹、孟宗、朴蔓、任純禮、申孝昌、鄭龍壽、朴文崇、廉致庸、房文仲、李叔蕃、黃喜、李稷之罪, 一依政府、臺諫所申, 請置於法, 未蒙兪允, 臣等缺望。 今月十三日, 伏承傳旨, 芳幹父子, 給臧獲業農以居; 給月俸以遂其生, 事孰爲便, 俾臣等擬議以聞。 臣等以謂, 芳幹父子, 君父之讎, 爲人臣子所不共戴天者也; 朴蔓、任純禮等不忠之罪, 王法所不敢赦也。 殿下卽位之初, 宜當首誅其惡, 明示天討, 反置相忘之地, 得全其生, 甚非宗社萬世之計也。 伏望殿下, 一依前日所申, 將上項人等罪, 竝置於法, 以正萬世之綱常, 以杜後世之禍亂。


사간원에서 올린 이방간 부자의 원수를 갚고 박만 등을 처벌하라는 상소[편집]

○司諫院上疏曰:

芳幹父子, 殿下必報之讎。 前日具疏申請, 上王殿下召政府、六曹、臺諫長官, 反復曉諭, 以示欲全之義, 臣等敢不欲奉承德意? 伏而思之, 理有未盡, 義有未安, 謹昧死敢言。 昔者, 象日以殺舜爲事, 舜爲天子, 封之有庳, 然象之爲人愚, 而其計不過富貴其身而已, 又無徒衆爲之儻者。 芳幹父子, 姦狡雄猾, 不可謂之愚也。 稱兵向闕, 其心非止富貴也。 甲騎成群, 不可謂無儻也。 芳幹父子, 罪旣不同於象, 上王殿下, 豈可以舜自處也? 古之人有處此者, 周公是也。 芳幹所爲, 惡浮管叔, 不可不以周公之事斷之也。 殿下宜以是義, 日以爲請, 期在必報, 不可但已。 又朴蔓、任純禮、崔湜、朴文崇、許衡、鄭龍壽、申孝昌、趙順和等敢行稱亂, 廉致庸非毁君父, 李稷倘惡背上, 李叔蕃不忠無禮, 金漢老、黃喜不忠不直, 房文仲、權約誣罔聖德。 皆罪在不赦, 咸保首領, 或添爵祿。 或得考終, 殿下新嗣大服, 宜申明賞罰, 以新初政。 臣等聞, 舜受堯之禪, 先討四凶, 天下古今, 莫不稱善。 惟殿下法舜之聖, 以彰天討。

上曰: “鄭龍壽、申孝昌之罪, 予不知其詳, 昨聞大司憲逃匿非扈從之言, 乃知其實有罪也。” 命朴蔓、任純禮屬官奴, 朴文崇、崔湜、許衡自願安置, 鄭龍壽削功臣籍, 其餘芳幹父子、廉致庸、李稷、房文仲、權約、金漢老、李叔蕃、黃喜、申孝昌、趙順和等以事已施行, 皆不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