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
하루에도 몇 차례씩 고깃배가 들어올 때마다 판매소 창고 앞은 모이는 사람들로 금시에 장판을 이룬다. 선창에 수북이 쌓인 고기를 혹은 그물채로 혹은 통에 담아서 창고에 옮기기가 바쁘게 포구의 여인들은 함지를 들고 모여들 든다. 판매소 서기가 장부를 들고 고기를 나누고 적고 할 때에는 어느덧 거의 고기만큼의 수효의 여인들이 그를 둘러싸고 만다. 고기와 사람의 산더미 속에서 허덕이면서 한 사람씩 한 사람씩 함지에 분부해 주면 여인들은 차례차례로 담아 가지고는 그 길로 읍내로 향한다. 읍내 장터까지는 오릿길이다. 여인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그 길을 그렇게 왕복함으로서 한집안의 생계를 이어간다.
학수는 그 여인들 속에 그 어느 때라도 어머니의 자태를 보지 않을 때가 없다. 늙은 어머니에게는 한 마리의 나귀가 있었다. 망아지보다도 작고 등어리의 털이 거의 쓸려서 없어진─아마도 어머니의 연세만큼이나 늙었을 그 나귀가 어머니에게는 단 하나의 귀한 살림의 연장이었다. 늙은 낫세로는 부치는 근력에 함지를 이고 오릿길을 걷기는 힘들다. 어머니는 함지 대신 수레에 고기를 받아 가지고는 나귀를 몰고 읍냇길을 걷는 것이었다. 가는 길은 힘드나 오는 길은 비인 수레 속에 고기 대신에 몸을 얹고 가벼운 것이었다. 그 어머니의 양을 학수는 해변에 서서 혹은 뱃전에 의지해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다. 마음이 저리고 가슴이 아프지 않은 바는 아니었으나 그러나 불효니 무어니 그 이전의 절박한 문제로 학수의 가슴속은 가득 찼던 것이다. 읍내의 학교를 중도에서 나온 지도 반달이 가까우면서 아직도 어지러운 마음속을 정리도 못했거니와 나갈 길의 지향을 못 찾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중이다. 불역에 나와 서서 바다를 내다보고 판매소의 요란한 광경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 결코 한가한 심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는 겹겹의 근심과 우울이 구름같이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자태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불효의 탓이 아니라 눈을 솔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애쓰는 자태를 바라봄이 얼마간이라도 어머니의 짐을 덜어주자는 그런 뜻임은 물론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어머니가 나귀를 몰고 판매소 앞을 떠나 읍으로 향하는 큰길로 들어설 때에는 학수는 은근히 모래펄을 지나 밭둑에 나서서 멀어지는 어머니의 자태를 어느 때까지나 우두커니 바라보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이웃집 분녀와 동행하는 때가 많았다. 그런 때이면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분녀는 함지를 인 채 나귀 옆에 서서 걸음을 같이하면서 자별스럽게 웃고 지껄이고 하였다. 그 정경을 학수는 더없이 귀엽고 부러운 것으로 여기면서 두 사람의 자태가 읍으로 향한 곧은 길 저편으로 까아맣게 사라질 때까지 시름없이 바라보곤 했다.
분녀와의 사이도 사실은 학수가 학교를 버린 후부터는 뒤틀리고 빗나가기가 일쑤였다. 앞으로 졸업을 일년 앞둔 모처럼의 길을 중간에서 접질리우고 말하자면 쫓겨난 것이니 기대가 컸던 분녀에게 큰 실망을 주었을 것은 사실이었다. 농업학교를 마치면 보통학교의 삼종훈도나 금융조합의 서기쯤은 제물에 떼놓는 셈이다. 포구 사람들이 우러러볼 뿐이 아니라 읍내에서 제법 뽐을 내게 되었다. 일년이면 얻을 그 아름다운 결과를 학수는 조그만 불찰로 스스로 버리고 만 셈이다. 분녀와의 사이에는 그가 그렇게 출세했을 후의 언약이 피차에 은연중에 맺어졌던 것이다. 포구 사람들도 그것을 믿었고 분녀는 거기서 한층의 용기를 얻어 날마다의 일에도 힘이 맺히고 마음이 기뻤다. 그만큼 일단 일이 어그러졌을 때의 분녀의 믿은 타격은 컸고 마음은 무거워만 졌다. 그 당초에는 입맛을 잃고 며칠 동안은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지경으로 그때부터 학수와의 사이에는 말도 적어지고 사이도 점점 뜨게 되었다. 분녀의 마음도 괴로울 것이나 학수의 마음속은 더 말할 것 없이 괴롭고 무거운 채로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고 학수가 자진적으로 분녀에게 설명하고 원하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는 다만 괴로운 심사를 꾹 참고는 분녀의 자태를 멀리서 바라보는 버릇을 배웠을 뿐이다. 특히 그가 어머니의 나귀 옆에 서서 읍으로 동행할 때에는 그 화목스런 양이 마치 두 모녀의 양과도 같이 보였다. 학수는 괴로운 가운데에서도 남모를 일종의 위안을 움켜내면서 될 수 있으면 어머니의 혼잣길보다도 분녀와의 동행하는 것을 보려고 불역에서 그 기회를 은근히 살피고 엿보는 날이 요사이에 와서는 많아졌던 것이다.
책이 화였다. 그런 풍속이 시작되기는 벌써 여러 해 전부터였으니 그 줄을 알면서도 그 금단의 그물에 걸린 것이 온전히 자신의 실책임을 학수는 물론 깨닫기는 했다.
공교롭게 양잠 당번이어서 하룻밤에 뜻맞는 동무가 삼사 인이나 모이게 된 것이 불행의 근원인지도 모른다. 겨우 한잠을 자고 일어난 누에는 그다지 많은 뽕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슴푸레한 저녁 농장 뽕밭에 나가 한꺼번에 몇 바구니를 뜯어 오면 하룻밤의 누에의 양식으로는 충분하였다. 이 수월한 작업을 마쳤을 때 동무들은 한가하게 밤 화단을 돌아보거나 우리 안의 소나 양을 희롱하거나 임의였다. 학수는 가장 친한 동무 명재와 함께 화단 옆 잔디 위에서 무엇인지를 격렬하게 토론하다가 어두워 짐을 따라 방에 들어갔을 때 두 사람 사이에는 별안간 말이 끊어지면서 그 대신에 각각 간직했던 책을 내서 읽기 시작했다. 긴장된 마음에 지나쳐 정신없이 독서에 열중하였던 탓일까. 밖에 누가 왔었는지 방에 별안간 들어온 것이 누구인지를 분별할 힘조차 창졸간에 없었던 것이다.
문제가 커져서 학수와 명재는 몇 차례씩 직원실에 불리워서는 많은 시선 앞에서 얼굴을 붉히고 말을 더듬고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명제는 읍내의 집에서 학수는 오리나 떨어진 포구의 집에서 각각 담임의 방문을 받았다. 설렐수록에 일이 벌어만 져서 결국 갈 데까지 가고야 말았다. 여러 날 동안의 불안이 있은 후에 학수와 명재는 기한 없는 금족을 당했고 근 달포의 금족의 기한이 끊어지자 마지막 통첩을 받게 되었다. 예측은 한 결말이었으나 너무도 큰 변에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하기는 처음부터 학교가 큰 희망에 넘치는 것도 아니오, 깨알 쏟듯 재미있는 것도 아니기는 아니었다. 단지 일종의 습성으로 날마다의 판에 박은 듯한 일과로 다니게 될 뿐이었다. 남달리 지나쳐 일찍이 깨인 비애임을 그들은 잘 안다. 그러나 그들의 진짜 마음속은 그런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선 발 디딜 곳을 잃어버렸음이 애틋했고 창졸간에 앞길에 대한 계책이 서지 않던 것이다. 예측하지 못한 커다란 우울이 엄습해 와서 어두운 장막을 눈앞에 드리웠다. 더구나 학수는 분녀와의 미래를 생각할 때 더한층 괴롬이 컸다. 좁은 학교의 공기라는 것은 지나쳐 인색하고 답답하고 협착한 것으로 여기기는 했으나 그렇게 빨리 반대의 효과가 닥쳐 올 줄은 꿈꾸지 못했던 것이다.
인색하고 협착하다면 학수들이 그날 밤에 당한 변부터가 그런 것이었으나 평일에도 그는 네 활개를 펴고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마셔 본─그런 적이 혹은 그런 감동을 받아본 적이 몇 해 동안에 한 번도 없었다. 늘 달팽이같이 움츠리고 쪼그리고 감각과 신경과 지혜를 죽이고 허구한 날 그 무슨 꾸중과 벌을 기다리는 허물없는 어린아이의 꼴이었다. 오죽하면 그 인색한 속에서 학수가 발견한 유일의 자유로운 천지라는 것이 그 기괴하고 야릇한 곳이었을까.
네 쪽의 벽으로 된 반평도 차지 못하는 공간이라면 세상 사람은 대체 무엇을 상상할까. 학수에게 가장 자유롭고 가장 너그럽고 가장 넓고 가장 신성하게 여겨진 그 세상을 세상 사람은 항용 생각지도 못하며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학수에게 가장 자유롭고 신성한 그곳은 세상 사람에게는 가장 추접하고 구역나는 곳이니 말이다. 그 구역나고 추접한 아니 ─ 넓고 신성한 곳에 과즉 십분이나 이십분의 시간을 웅크리고 앉았을 때가 학수에게는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었던 것이다. 주머니 속에 감추어 두었던 담배를 피우며 유유한 마음으로 생각에 잠겼다 벽의 낙서를 바라보았다 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벽의 낙서는 반역의 표현이요, 한 사회의 평판의 기록이다. 낙서를 바라볼 때에 학수는 교내의 동향과 인물들의 평판을 한꺼번에 손안에 쥐일 수가 있었다. 참으로 그 야릇한 공간 안은 다른 동무에게도 같은 기쁨을 가져다 주고 같은 습관을 길러 주었는지는 모르나 학수에게는 교내에서 그 어느 곳보다도 즐거운 곳이었다. 양잠실에서 거북한 책도 그 속에서는 지극히 자유롭고 기할 것이 없었다. 펴든 책을 여러 장을 넘기는 동안에 정신은 통일되고 문리는 발라져서 학수는 필요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수가 많았고 차라리 그것을 원했다. 어떻든 가장 뜻있는 시간 가장 중요한 시간이 그 불과 몇 십분이었던 것이다. 하기는 그 별천지에도 간간이 변이 없지는 않았다. 하루는 글에 열중하였을 순간 별안간 밖에서 문이 열리는 바람에 기급을 하고 들었던 책을 떨어트려 아깝게도 어두운 밑 세상으로 장사지내 버린 적도 있기는 있었다. 밖에서 동무가 웃는 바람에 학수도 하는 수 없이 표정이 이지러지기는 했으나 이것이 그 속에서 받은 한 가닥의 수난이라면 수난이었다.
학교를 나온 후부터는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날이 늘어갔다. 모래언덕에 서서 쉴새 없이 굼틀거리는 창파를 바라보는 동안에 지난날의 인색하던 기억이 혹은 기쁘게 혹은 슬프게 마음 속에서 부서지고 사라져갔다.
맑은 모래펄이 포구에서 시작해서 바다의 후미를 몇 고패나 굽이굽이 돌아 남쪽으로 아련하게 연했고 모래펄 등으로는 해당화가 송이송이 푸른 전을 수놓았다. 그러므로 오라장간의 넓은 벌판이 뻗치고 벌판 끝에 읍내가 아물아물 보였다. 모래펄 밖으로 열린 바다─바다는 무엇 하자고 왜 그리도 넓은가. 그 필요 이상으로 넓은 바다는 아마도 조물주가 잘못 만든 것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우주를 만들다가 지친 판에 귀찮다는 듯이 중도에서 그대로 버려둔 것이거나 라고 학수는 생각했다. 그러지 않다면 그 넓고 자유로운 세계의 설명이 마음속에 서지 않는 것이다. 바다 빛에는 층이 있어서 가까운 데는 희고 그 다음은 초록이요, 먼 곳은 푸른빛이어서 초록과 푸른빛과는 칼로 가른 듯이 구별이 확실했다. 초록바다 위에서는 갈매기가 날고 푸른 바다 위에는 어선과 발동선이 아물거렸으나 위대한 바다에 비기면 값없는 장난감같이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머언 수평선 위를 외줄기의 연기를 허공 위에 그리면서 기선이 지나는 때가 있었다. 끝에서 끝으로 기선이 사라질 때까지는 한 시간이 넘어 걸렸다. 기선은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에 서 있는 듯했고 연기는 날리는 법없이 그림 속에서처럼 공중에 얼어붙은 것 같았다. 다만 기적소리만이 동안을 두고 뽀오 뽀오오 아련히 울려올 뿐이었다. 그만큼 바다는 넓었다. 비록 그다지 변화는 없다 하더라도 다만 한없이 넓은 그 탓으로만도 그 넓은 것을 사랑함으로서 학수는 진종일이라도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고 그럼으로서 조금도 권태와 염증을 느끼는 법이 없었다. 모래언덕에 앉아서 혹은 불역에 내려서서 아침의 바다, 대낮의 바다, 저녁의 바다를 차례차례로 즐기고 맛보고 하는 동안에 그는 그 속에서 그 무엇을 얻으려는 듯도 했다. 단조한 그 속이언만 자꾸만 들여다보는 동안에 그 무엇이 가슴속에 흘러오고 금시에 손에 잡힐 듯했다. 옛 시인이 반드시 바다에 대해서 그 무슨 영원한 것을 읊었을 것 같으며 그것이 무엇이었을까를 학수는 맨주먹으로 터득하려고 은연중에 마음이 설렜다. 다른 것은 모르나 지금까지의 세상에 비해서 바다는 얼마나 활달하며 그 뜻을 사람에게 전하고 가르쳐 주려고 하는가를 그는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인색하고 협착하던 학교에 비겨서 얼마나 활달하고 너그러운가 바다는. 학교에서는 기껏해야 네 쪽의 벽으로 된 반평에도 차지 못하는 야릇한 공간에서 학수는 자유의 세상을 구하지 않았던가. 바다와 네 쪽의 벽과─이 얼마나의 차이인가. 바다는 그런 인색하고 추접한 세상과는 엄청나게 거리가 멀다. 기가 막히게 풍격이 위대하다. 학수는 전엔들 그것을 느끼지 못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요사이의 처지로서는 그것이 새로이 한 큰 발견과도 같은 기쁨을 가져왔다.
하루는 강천수 공장의 발동선을 탔다. 바다 밖에 늘일 덤장그물을 실은 어선을 여러 척 끌고 발동선은 저녁때는 되어서 포구를 떠났다. 아는 사공의 권고를 받아 학수는 소풍 겸 발동선에 올랐던 것이다. 그는 발동선에 대해서는 전부터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만 한 척 손에 넣을 수 있다면 학교고 무어고 집어치우고 바다에서 살아 볼까 하는 생각이 일찍부터 마음을 댕겼다. 어떻게 하면 천여 원을 손에 잡을 수 있을까, 그것으로 발동선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항상 마음속에 어리우는 숙제였다. 학교를 마친다는 뜻도 결국은 발동선을 구하는 수단으로 하자는 뜻에 지나지 않았던지 모른다. 바다 복판에 섰을 때 거기서 한층 더 넓어지는 바다와 작아지는 포구와 읍내를 바라볼 때 학수는 육지에서 느낀 이상의 몇 곱절의 신기한 감상을 받았다. 바다는 모래언덕에서 볼 때의 바다보다도 제한 없이 더욱더욱 넓어지고 열려져서 눈 닿는 바다는 가이 없었다. 바다는 무한대의 힘이요 자랑이었다. 그 속에 새 그물을 던지고 그물안에 든 고기떼를 선창에 퍼 담는─그 경영이 또한 사람의 하는 일로서 그렇게 유유하고 의젓할 데는 없을 듯이 느껴졌다. 사람과 자연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조화되고 합치되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비록 싸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과 사람의 싸움같이 그렇게 작고 좀스럽고 인색한 것은 아니다. 죽든지 살든지 간에 보람 있고 장하고 늠름한 것이다. 바다 밖에서 여러 시간을 지내는 동안에 학수는 일종의 묵시의 계시를 받은 듯 마음이 빛나고 그득 차고 만족스러웠다. 여러 척의 목선에는 고깃더미 수북이 쌓였고 학수의 마음속에는 묵시의 영감이 가득 넘쳐서 육지로 돌아오는 길은 한결 기쁘고 듬직한 것이었다. 발동선은 가벼운 폭음을 울렸고 사공들은 노래 구절을 길게 빼었다. 푸르고 붉은 깃발이 돛대 위에 날려 고기의 수확이 많음을 자랑했다. 황혼 속에 자옥한 바다를 건너 포구에 가까워갈 때 육지에 아물거리는 사람들의 기쁨에 뛰노는 양이 눈에 어리었다. 불역에 가까워감을 따라 마음도 뛰놀았으나 발동선 좁은 뱃기슭에 올라서서 포구의 사람들을 신기한 것으로 보고 있던 학수는 지나쳐 기뻤던 그날의 마지막 수확인 듯 불의에 발을 빗디디고 뱃전 밖으로 떨어졌다. 바닷물에 빠져 아닌 때 물세례를 받은 학수는 하는 수 없이 헤엄을 쳐서 멀어지는 배 뒷전을 따랐다. 옷이 물에 젖어서 몸이 무거웠다. 불역과의 거리가 가까웠으니 망정이지 좀더 멀었던들 헤엄쳐 나가기가 곤란하였을 것이다. 모래 위에 기어올랐을 때에는 물에 빠진 거위라도 참혹한 꼴이었다. 그러나 그다지 불쾌한 생각 없이 그것도 하루 동안의 감격 대신에 받은 한 작은 귀여운 선물이라고 여기면서 사람의 틈을 빠져서 급하게 집으로 향하였다.
부엌일을 하던 어머니는 그 꼴을 결코 칭찬하지는 않았다. 꼴좋다 학교를 그만두더니 날로 주렵이 들구 꼬락서니가 사나워만 가는구나. 츨츨치 못한 것, 이 몸이 얼른 죽어야 저 꼴을 안 보게 되지. ─하는 어머니의 꾸중이 마음을 꼬치꼬치 찔렀다. 그렇게까지 싫은 소리를 할 어머니가 아니언만 요새의 고생과 불미한 자식의 보람없는 꼴을 보면 그것도 마땅하려니는 생각되나 그러나 학수의 마음속은 한없이 쓰리고 불쾌하였다. 그렇다고 대꾸를 할 수도 없이 잠자코 또다시 퉁명스럽게 집을 나와 버렸다.
사람의 세상이란 참으로 왜 이리도 인색한가. ─중얼거리면서 발 가는 곳이 역시 바다였다 갈아입지 . 못한 옷이 무겁게 드리우고 물방울이 모래 위에 떨어졌다. 해변은 어느덧 어두워지고 파도 소리만이 변함없이 규칙적으로 흘러왔다. 모래언덕에 섰을 때 어두운 바다는 한없이 멀고 깊고 장하게 눈앞에 가로누웠다. 조수 냄새와 해초 냄새가 전신을 눅진하게 채워 주는 듯도 하다. 그는 바닷바람을 몇 번이고 한껏 마셔 보았다. 그럴수록에 그 무슨 한없는 큰 신비가 그 속에 숨어 있는 듯이 느껴졌다. 무엇이 있어, 바다 속에는 반드시 그 무슨 큰 것이 있어. 사람을 호리는 장한 그 무엇이 있어. 그러나 어떻게 하면 그것과 사람과를 조화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그 위대한 자연과 사람을 일치시킬 수 있을까.─학수는 어둠 속을 노리면서 어느 때까지나 궁리에 잠겼다.
하루는 무료한 판에 읍내를 들어갔다. 그 일이 있은 후 불쾌한 마음에 발을 끊고 까딱 출입을 금하고 있었던 것이나 오래간만에 명재도 만날 겸 집을 떠났던 것이다.
명재도 그 모양 그 주제였다. 얼굴이 얼마간 축난 듯도 했으나 그제나 이제나 별반 차가 없는 자태였다. 그 역 무료하던 판에 옷을 주섬주섬 걸치고 나왔다. 거리 밖 벌판으로 들어가 백양나무 아래에 두 사람은 앉았다.
먼 둑 위를 오후의 기차가 연기를 뽑으면 달았다. 기적소리가 산모롱이에 부딪쳐 야단스럽게 울려왔다. 사라지는 기차의 뒷모양을 우두커니 바라보던 명재가 별안간 입을 열었다.─빌어먹을, 달아나 날까,
그의 말에 의하면 서울 갈 계획이 틀어졌다는 것이다. 집안 형편이 학수같이 핍박하지는 않아서 학교를 나오게 되자 즉시 서울로 가서 공부를 계속할 작정이었던 것이 여러 가지를 서둘러 보아야 역시 지금 형편으로는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명재의 우울의 원인이었다. 빌어먹을, 달아나 날까.─이것이 홧김에 나오는 탄식이었다.
물론 학수도 같은 마음이었다. 어떻게 하면 막힌 앞길을 열어 볼까,차라리 이 고장을 떠나면 그 무슨 길이 열리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 핍박한 마음의 일시의 위안이었던 것이다. 바다를 접할 때에는 바다의 위력에 눌리워 그 매력에 취해 버리고 마나 벌판의 기차를 볼 때에는 그 또한 한가지의 신선한 매력이요 유혹이었다.
생각만 해야 답답하니 좀 걸어나 볼까,─ 해결 없는 무더운 공기에 견디기 어려워 학수는 명재를 재촉해서 벌판을 걸었다. 벌판은 활달하고 넓은 것이나 결국 사람의 생활을 그곳까지 연장시켜 볼 때 그곳 또한 답답하고 협착한 곳이 되었다 인색하고 . 빽빽한 인간사를 귀찮고 불서러운 것으로 여기면서 두 사람은 어느 때까지나 풀밭을 거닐었다.
읍내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릿목에서 우연히도 학수는 역시 읍내장에까지 갔다 오는 분녀를 만났다. 처음에는 양편에서 다 무죽거렸으나 결국은 말없는 속에서 나란히 서서 동행이 되었다. 비인 함지를 인 분녀의 걸음은 개운하고 빨랐다. 한참 동안이나 피차에 말이 없음을 괴롭게 여기는 판에 분녀가 먼저 입을 열어 읍내에는 무엇 하러 갔다 오느냐고 물었다. 명재를 만난 곡절을 이야기했을 때 분녀는 펄쩍 뛰면서, 만날 사람이 없어서 겨우 명재를 만났어, 끼리끼리 모인다구 그따위 부랑자 날탕 패와 사귀구 몰려다니니 학교까지 쫓겨났지, 그래두 심을 못 채리구 쫓아다니다니 아직두 철이 안든 셈이지─하고 명재에게 대한 욕과 학수에게 대한 비난을 센 입살로 한꺼번에 줏어댔다. 멋두 모르고 주제넘게 웬 잔소리야. 명재가 왜 어디가 나쁘단 말야, 왜 남만 못하단 말이야. 아무것두 모르는 거리 사람들의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 가지구는 경솔하게 야단이야─하고 학수는 톡톡히 분녀를 꺾으려 했다. 그러나 분녀도 황고집을 부리면서 명재의 말이라면 사족을 못쓰듯 그에 대한 비난을 늘어놓고는 요번에 학수가 받은 봉변이 결국 명재가 깡충댄 탓이라는 것, 그에게서 애매하게 물들었다는 것을 말했다. 학수가 아무리 동무를 막아주려고 해도 분녀의 고집은 당할 수 없어 주춤하는 동안에 분녀는 한번 터진 입심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 내섬기는 것이다. 나중에는 꺼내는 소리가 영진이의 이야기였다. 학수들보다는 한 해 앞선 그를 학교를 졸업하자 읍내 금융조합에 서기로 들어가 집안을 제법 옳게 다스려가는 것이었다. 분녀의 말을 빌면 위인이 어찌도 착실한지 조합 안에서나 거리에서도 신용을 얻어서 읍에서는 모범청년으로 들리게 되고 일년 동안이나 충실히 저축한 돈으로 얼마 안 가 잔치까지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색시는 분녀의 동무 봉선이라는 것이다. 들으라는 듯이 높은 목소리로 지껄이는 분녀의 뜻을 학수가 모르는 바는 아니었고, 그의 답답한 심정을 추측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으나 다따가 영진이의 이야기를 그렇게 야단스럽게 늘어놓는 것을 참을 수 없이 불쾌히 여겼다. 홧김에 퉁명스럽게 한마디 툭 쏘는 소리가, 그럼 왜 대신 시집이래두 가지 하는 싫은 소리였다. 이 한마디가 고집스런 분녀의 마음을 찌른 모양이었다. 시집가구 말구 그만큼 착실한 사람에게 가게 되문 왜 안가겠어. 봉선이 신세가 오죽 부러운데. 부랑자들보다야 인금으로야 열 곱절 백 곱절 웃질이지─하고 재빠르게 지껄이는 것이다. 학수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어째 또 한번 지껄여봐 부랑자 누가 부랑자야─하면서 노여운 마음에 주먹으로 분녀의 턱을 치받쳤다. 주춤하면서 서는 것을 이어 뺨을 두어 번 갈겼다. 네까짓게 무어라구 무얼 믿구 그따위 큰소리를 탕탕해─분김으로 되면 발길로 차버리고도 싶었다. 분녀는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그 자리에 푹 주저앉고 말았다. 한마디의 대꾸도 없을 뿐이 아니라 눈물이 빠지지 흐르면서 그만 울음이 터져 버렸다. 다시 그런 버릇했다 봐라─큰소리를 한마디 남기고는 학수는 그를 다시 돌아보지도 않고 혼자 버덩길을 재게 걸어갔다.
이 조그만 일이 있은 후로 학수의 마음은 더한층 괴로워졌다. 날이 지나자 곧 자기의 행동이 뉘우쳐지며 분녀에게 대한 거동이 과혹했던 것을 깨달았다. 결국 이 사건으로 해서 울적한 심사는 더한층 늘어갔을 뿐이다. 끼니만 지내면 바다에 나가게 되고 풀밭에 서면 그 자리에 엎드려서 엉엉 울고 싶은 충동조차 솟았다. 나날이 그것이 일과였고 그날이 전날의 연속이 되고 했으나 그러는 하룻날 우연히 읍내에서 명재가 찾아왔다. 풀밭에 앉아 바다를 내다볼 때 별안간 등뒤에 나타나 소리를 건 것이 명재였다.
서울 가는 것도 틀리구 이 계획 저 계획두 다 어그러진 판에 집구석에만 허구한 날 묻혀 있기두 울적해서 자네같이 날마다 바다로 나오기루 했네. 이리 기우르거나 저리 기우르거나 사람된 바에야 길이 열려지구 방법이 있겠지. 사람의 자식이 그렇게 근심과 걱정만 하구야 어찌 살겠나. 새옹마의 득실이라구 뒤틀린 길이 바로잡힐 날두 있겠지 설마 세상의 길이 그렇게 빽빽하구 군색한 것이겠나. 사람이나 쏘이면서 마음을 크게 먹을 도리나 배우세 그려─마치 며칠 동안에 사람이 변한 듯이도 서글서글하고 명랑한 어조로 명재는 이렇게 길게 내섬기면서 손에 들고 온 보자기를 내보인다. 학수는 자기 홀로의 우울에 잠겨 있던 판에 그의 사람이 변한 듯도 한 어조도 놀라운 것이었으나 내든 물건을 의아해 하면서 무엇이냐고 물었다. 자네가 새삼스럽게 놀랠 만한 별로 신기한 것은 아니나 그러나 대단히 뜻있고 중요한 것이네─하면서 명재는 보를 앞에 내놓는 것이다. 그 형상으로서 대개 추측은 되었으나 그래도 선뜻 손을 대지 않고 대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명재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제서야 보를 풀기 시작했다. 물건─그것은 하치않고 평범한 것이나 그 정신이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것이네─말이 끝날 때 보 속에서는 풋볼 한 개가 굴러 나왔다. 흠 하면서 학수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 명재는, 자네는 아직두 이 뜻을 모르리, 하루 이틀 이것을 차보고 굴려보는 동안에 뜻을 알아 가리 하면서 그것을 사게 된 곡절을─학교에서 배우던 책을 통틀어 싸가지고 책점에서 팔아서 그 값으로 그 한 개의 볼을 샀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범연하게 들으면서 . 그때까지도 영문을 모르고 우두커니 앉았던 학수도 명재가 볼을 들고 일어서서 넓은 풀밭 위에서 한바탕 탕 차서 푸른 하늘 위로 까아맣게 올렸을 때 불현듯이 충동을 느끼면서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두 사람이 볼을 차는 소리가 풀밭 위에 탕 탕 울렸다. 발끝에서 떨어지자 금시에 하늘 위로 솟아올라 맑은 푸른빛 속에 둥실 뜨는 그 탄력 있는 자태를 바라볼 때 학수는 차차 명재의 뜻이 알려지는 듯했다. 아까까지의 우울도 어느결엔지 사라지고 분녀와 어머니의 사정도 잊어버리고 오금에 솟는 힘이 근실근실 전신에 파도쳐 흘렀다. 또 한 가지 신기한 발견이었다. 볼에 찬 지 불과 십분이 못 되어서 그 탄력 있는 명랑한 볼 튀는 소리를 듣고 포구의 아이들이 몰려왔고 장정들도 어슬렁어슬렁 뒤를 따라 풀밭으로 물려드는 것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볼을 찰 때와는 또 의미가 달랐다. 운동에 별반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학수가 이제 그 속에서 새로운 뜻을 길러내게 되었다. 아이들과 장정들도 어느덧 두 사람들의 경기 속에 들어들 와서 한데 휩쓸려서 유쾌하게 웃고 쓰러지고 지껄이고들 했다. 구르는 볼을 먼저 집은 사람이 힘껏 차올리면 볼은 쏜살같이 하늘로 쑤욱 솟는 것이다. 솟는다 솟는다. 까아맣게 솟는다. 하늘 위에 오른다─볼과 함께 그것을 치어다보는 사람들의 마음들도 볼 동안에 하늘 위로 까아맣게 솟는 것이었다.
볼 차기가 시작된 후로 학수는 확실히 새로운 힘과 새로운 방법을 발견한 셈이었다. 참으로 예측하지 못했던 신기한 발견이었다.
명재는 날마다 읍내에서 오리 길을 혹은 걸어서 혹은 자전거로 나왔다. 두 사람이 볼을 가지고 풀밭에 이를 때면 반드시 아이들을 선두로 장정들이 모여든다. 사공의 김선달 박서방……밭에서 최서방 이도령……한가나 할 때면 수십 명의 장정이 볼 동안에 모여들었다. 볼 소리가 한번 울리기 시작하면 풀밭은 금시에 왁자지껄해지며 유쾌한 장마당으로 변한다.
어떤 때는 학수들은 포구를 떠나 슬며시 바위께로 이르는 고개를 넘어 온다. 포구에서 댓 마정 떨어진 곳이나 고개를 바로 넘은 곳에는 바다가 후미져 도는 아늑하고 고요한 풀밭이었다. 그곳까지도 사람들은 따라오는 것이었다. 두 시간 세 시간 차는 동안에는 사람들도 물론 차례차례로 다소간 갈리기는 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화하는 사람도 많았다. 으슥한 후미 속에 볼 소리는 맑게 울리고 그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마음들도 유쾌하게 화하고 일치되었다. 볼이 울릴 때에는 마음도 울리고 볼이 설 때에는 마음도 섰다. 한바탕 차고 풀밭 위에 군데군데 앉아 쉴 때에도 뭇사람의 마음은 같은 생각 같은 방향으로 정지되었다. 잠자코 그 무엇을 기다리는 듯이 고요히들 앉았을 때에는 학수는 벌떡 일어서서 한자리 연설이라도 하고 싶은 그런 충동을 느꼈다. 그때이면 물론 집안일이고 분녀의 일이고 간에 그런 사소한 세상일은 씻은 듯이 마음속에서 자취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