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권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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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편집]- 高麗,本曰高句驪。
- 禹別九州,屬冀州之地,周爲箕子之國,漢之玄菟郡也。
- 在遼東,蓋扶餘之別種,以平壤城爲國邑。
- 漢、魏以來,常通職貢,亦屢爲邊寇。
- 隋煬帝再舉兵,唐太宗親駕伐之,皆不克。
- 高宗命李勣征之,遂拔其城,分其地爲郡縣。
- 唐末,中原多事,遂自立君長。
- 後唐同光、天成中,其主高氏累奉職貢。
- 長興中,權知國事王建承高氏之位,遣使朝貢,以建爲玄菟州都督,充大義軍使,封高麗國王。
- 晉天福中,復來朝貢。
- 開運二年,建死,子武襲位。
- 漢乾祐末,武死,子昭權知國事。
- 周廣順元年,遣使朝貢,以昭爲特進、檢校太保、使持節、玄菟州都督、大義軍使、高麗國王。
- 顯德二年,又遣使來貢,加開府儀同三司、檢校太尉,又加太師。
- 建隆三年十月,昭遣其廣評侍郎李興祐、副使李勵希、判官李彬等來朝貢。
- 四年春,降制曰:「古先哲後,奄宅中區,曷嘗不同文軌于萬方,覃聲教于四海?顧予涼德,猥被鴻名,爰致賓王,宜優錫命。開府儀同三司、檢校太師、玄菟州都督、充大義軍使、高麗國王昭,日邊鐘粹,遼左推雄,習箕子之餘風,撫朱蒙之舊俗。而能占雲候海,奉贄充庭,言念傾輸,實深嘉尚。是用賜之懿號,疇以公田,載推柔遠之恩,式獎拱辰之志。於戲!來朝萬里,美愛戴之有孚。柔撫四封,庶混並之無外。永保東裔,聿承天休。可加食邑七千戶,仍賜推誠順化保義功臣。」
- 其年九月,遣使時贊等來貢,涉海,值大風,船破,溺死者七十餘人,贊僅免,詔加勞恤。
- 開寶五年,遣使以方物來獻,制加食邑,賜推誠順化守節保義功臣。進奉使內議侍郎徐熙加檢校兵部尚書,副使內奉卿崔鄴加檢校司農卿並兼御史大夫,判官廣評侍郎康禮試少府少監,錄事廣評員外郎劉隱加檢校尚書、金部郎中,皆厚禮遣之。
번역문
[편집]- 고려는 본래 고구려로 불린다.
- 禹임금이 천하를 9주로 나눌때 冀州땅에 속하게 하고, 周나라 때에는 箕子의 나라가 되었으니, 漢나라의 玄菟郡이다.
- 고구려는 遼東에 있었는데 부여의 別種으로 평양성에 도읍을 두었다.
- 한나라와 위나라 이래, 항상 조공 하면서도 변방을 침범하였다.
- 隋나라 煬帝는 두번 출병하였고, 唐太宗도 친히 고구려를 쳤지만 모두 이기지 못하였다.
- 唐나라 高宗은 李勣에게 고구려를 칠것을 명해 마침내 그 城들을 뽑아(점령해)버리고, 그 땅을 나누어서 郡,縣에 속하게 하였다.
- 唐나라 말에 중원에 많은 변고가 있어서 드디어 고려가 스스로 군장을 세웠다.
- 侯唐 同光,天成 중에 그 주인 고씨가 자주 공물을 바쳤다.
- 長興중에 權知國事 王建이 고씨의 자리 이어 후당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니, 이에 建을 현도주 도독으로 삼고, 大義軍使로 두고 高麗國王에 封했다.
- 後晉 天福 중에 다시 조공하였다.
- 개운 2년 (945년)에 建이 죽고 아들 武가 뒤를 이었다.
- 後漢 乾祐 말에 武가 죽고 아들 昭가 권지국사가 되었다.
- 後周 廣順 元年(951년)에 사신을 보내와서 조공을 하니 昭를 특진시켜 檢校太保(검교태보) 使持節(사지절) 玄菟州都督(현도주도독) 大義軍使(대의군사) 고려국왕으로 삼았다.
- 현덕 2년(951년)에 다시 사신을 보내 조공하니 昭를 開府儀同三司(개부의동삼사) 檢校太尉로 높히고 또 太師를 더하였다.
- 建隆(건륭) 三年(962년) 10月,昭(고려광종)가 광평시랑 이흥우(李興祐)와 副使(부사) 이여희(李勵希), 判官(판관) 이빈(李彬) 등을 보내 조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