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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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집]

간단한 조반을 끝낸 뒤에 서인준 박사는 오늘의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기 위하여 탁자 앞에 마주 앉았다.

인준 자기의 지휘를 받아서 자기보다 앞서서 조선 안에 들어와서 인준의 지령만 기다리고 있는 몇몇 동무의 숙소를 적어 둔 종이를 얻어 내어서 그 가운데 세 사람의 숙소에 편지 석 장을 썼다.

오후 세 시

오후 네 시

오후 다섯 시

세 사람에게 대하여 각각 회견할 시간을 달리하여 이 아파트로 찾아오기를 명하는 편지를 썼다.

그다음에는 두 장의 전보를 썼다.

한 장은 인준 자기가 속하여 있는 당 본부의 조사계에 향해서였다.

상해 공동 조계에 있는 영국 귀족으로서 매켄지 대좌라는 사람의 일을 알아보아서 알려진 전보를 즉시로 통지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또 한 장은 당 본부 탐정계의 제십칠호로 불리는 당원에게 지급히 조선 잠입을 명하는 전보였다. 십칠호는 본시 LC당의 당원으로 있던 사람으로서 이번의 사건에 LC당이 관계케 되었으므로 그 방비책을 강구키 겸하여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석 장의 편지와 두 장의 전보를 써서 주머니에 넣은 뒤에 인준이는 외출 옷을 바꾸어 입고 자기의 아파트를 나섰다.

가까운 우편소까지 가서 석 장의 편지는 속달 우편으로 부치고 두 장의 전보도 놓은 뒤에 인준이는 휘파람을 불면서 우편소를 나섰다.

이제는 형사 이필호를 찾으려 가려는 길이었다. 어제 필호에게 LC당에 관한 일부를 알리어 주었고 그 위에 노백작과 완쇠를 즉시로 만나 보라고 하여두었으니 필호는 단정코 어젯저녁으로 노백작과 완쇠를 만나 보았을 것이다. 그 결과 알아보기 위하여서였다. 인제 오후 다섯 시만 되면 자기도 넉넉히 알 길이 있기는 하지만 그 전으로 경찰관이 알아낸 바를 좀 알고 싶었다.

인준이가 우편소를 나서서 첫 길모퉁이를 돌아서는 그곳에서 마침 찾아가려던 필호와 딱 만났다.

“아, 이 공, 어디 가시오.”

“서 선생, 참 잘 만났읍니다. 지금 선생을 마침 찾아가던 길인데요.”

“벌써 검거요.”

필호는 고소하였다.

“아니 잠깐 알아보아야 할 일이 생겨서….”

“나도 마침 이 공을 찾아가던 길인데요.”

“우리 집을 아세요?”

“×× 동 ×× 번지, 상해서부터 벌써 알고 있었소이다.”

필호의 얼굴에는 약간 놀라는 표정이 나타났다.

“난 선생 계신 데를 인제서 겨우 알아 가지고 지금 찾아가던 길인데요….”

“그럼 내 아파트로 다시 갑시다. 미리 말씀해 둘 것은 오후 세 시에는 내가 일이 있으니까 이 공의 요건은 적어도 두 시 반까지는 끝내 주셔야 합니다.”

“두 시 반이 아니라 인제부터 한 시간이면 다 끝날 듯싶소이다.”

“대체 이 공이 나를 찾는다는 것은 내게는 검거당하는 것 같아서 좀 무시무시하구료.”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인제 물론 선생이 법망에 걸리기만 하면 직무는 조금도 가차를 둘 것이 아니지만 그 전까지는 나는 선생을 선배(先輩)로 이름 있는 학자로 존경합니다. 아직껏 파리며 런던서 발행되는 범죄 과학 잡지들에 I Show라는 이름으로 기고를 하시던 분이 인제 알고 보니깐 선생이십디다그려. 누구신지는 모르고 퍽 존경하는 마음으로 늘 배독은 했읍니다마는….

아이 쇼우라 했기에 어떤 서양 학자인 줄만 알았더니 어제 선생과 만나 뵙고 미심결로 인명사전을 뒤적거려 보았더니 틀림없는 선생─ 존경하는 이를 직접 만나 뵈오니깐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읍니다.”

인준이는 필호를 데리고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다.

“아이 쇼우 박사라는 기명을 볼 때에 한 오륙십쯤 된 노인으로 알았더니 아직 청년 학자이고 그 위에 같은 조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보니 참 반갑습니다. 더구나 인제 혹은 그 존경하던 학자를 내 손으로 검거할 날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는 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해집니다.”

이런 말을 하는 필호를 고소(苦笑)로써 응대하면서 인준이는 필호와 탁자를 건너서 마주 앉았다.

“내게 좀 알아볼 일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일이외까?”

“선생도 마침 나를 찾으러 가시겠다니 선생은 어떤 일로 찾으시련 것이외까?”

“나요? 나는 혹시 이 공이 완쇠나 노백작을 그새 찾아보지 않았는가 해서 만약 찾아보았다면 그 결과를 좀─ 말하자면 호기심상 들어 보고자….”

“나도 거기 관해서 선생께 좀 알아볼 일이 있어서…”

“그럼 백작 댁에를 가 보았구료.”

“완쇠를 만나 보았읍니다.”

“그래 어떤?”

비교적 냉연히 묻는 인준이의 물음에 대해서 필호가 도로혀 조급히 대답하였다─.

“선생.”

“네?”

“혹은 그날 밤의 괴변이 노 백작의 환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내 의견을 선생은 웃어 버리셨지요? 선생의 판단이 맞았읍니다. 뿐만 아니라 한 가지 더, 이것은 확실하다 할 수까지는 없지만 LC당이 이 사건의 뒤에 숨어 있다는 선생의 추단도 그다지 틀림이 없는 모양이어요. 완쇠의 입에서 나온 바를 종합해 본다면 LC당인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상해라 하는 땅과 이 사건과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모양이어요. 그날 밤 노백작을 습격한 괴한은 LC당원인지 아닌지는 아직 분명치 못하지만 상해에 오래 있던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는 모양이어요.”

인준이는 눈을 감고 고요히 듣고 있었다. 무론 노 백작을 야반에 습격한 인물이 LC당의 관계자라는 것은 이미 아는 바였다. 그 말은 필호에게서 되풀이하여 들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필호가 만약 완쇠를 심문하였다 하면 완쇠 (짐작컨대 관청이라 하는 곳에 대하여 절대적 외포를 느끼고 있을 봉건적 늙은 충복의 입에서 필호의) 귀로 넘어간 바의 그 날 밤의 사건의 진모를 알고 싶었다. 노 백작의 맏아들 되는 윤찬두도 알지 못하는 그날 밤의 경과는 만약 노백작이 직접 피로하지 않는 이상에는 완쇠 이상으로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완쇠의 입에서 필호의 귀로 넘어간 ‘사건과 경과’를 알고 싶었다.

필호가 말을 계속하였다.

“그래서 선생을 갑자기 찾게 된 것은 그새 잡지상으로도 간간 보았지만 선생께서는 LC당의 조직이며 체계에 대해서 거의 세계적 연구가이니만치 LC당에 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고자 해서올시다. 사실 말씀드리자면 조선 경찰이 이런 세계적 사건에 관련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요. 아직 모두가 막연하니만치 상부에 보고도 않고 나 혼자만 알아 둘뿐이지만 여차하는 날에는 낭패치 않도록 준비를 해두어야 할 게 아닙니까?”

필호의 말을 듣는 동안 인준이의 마음은 차차 어지러워 갔다.

자기의 아는껏 LC당의 내용을 모두 필호에게 알게 하여 조선 경찰의 힘으로 자기의 임무의 방해자인 LC당을 제거하여 버릴 것인가.

혹은 자기는 자기대로 경찰은 경찰대로 LC는 LC대로 삼각적으로 대립하여 다툴 것인가.

갑자기 생겨난 이 새로운 문제 때문에 인준이는 자기의 대답할 바를 얼른 작정치 못하고 주저하였다.

만약 인준 자기가 자기의 일의 방해자인 LC당을 제거키 위하여 LC당에 관한 자기의 지식 전부를 조선 경찰계의 일원인 필호에게 알린다 하면 물론 LC당이라는 방해자를 제거하는 데는 백 퍼센트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거대한 기밀비와 다대한 인원의 경관 수효와 경관의 수효보다 더욱 많은 밀정(密偵)을 총동원하여 LC당이 장차 펴려는 날개를 꺾으려 하면 그것은 그다지 힘들 일이 아닐 것이다. 체포 구금 심문의 자유를 가지고 공공히 가택을 수색하며 시찰하며 경우에 의하여서는 공공히 무기를 사용할 권한을 가진 경찰, LC당의 장차 행하려는 범죄를 막기에 전력을 다한다 하면 LC당은 손끝도 움직여 보지 못하고 돌아설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할 때에 전조선의 경찰력을 들여서 LC당에 대하고 아울러서 LC당이 목적한 바의‘X’를 전 경찰력을 들여서 보호한다 하면 인준 자기의 목적도 또한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

자기와 LC당이 그 목적한 물건이 제각기 다르다면 아무 문제도 없거니와 같은 물건을 목표로 비합법적 수단으로 그 물건을 훔쳐 내려 하는 이상에는 그 목적물에뿐은 경찰의 보호력을 가하였다가는 안 될 일이다.

경찰서는 지금 짐작도 못하고 있는 그 목적물뿐은 그냥 경찰의 눈밖에 두어서 인준 자기가 인제 장차 훔쳐낼 때에는 편리하도록 하여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어디까지든지 자기와 경찰과 LC당의 삼각적 대립의 현상을 그냥 두어야지 성급히 방해물을 제거하려다가는 도로혀 자기의 목적물까지 잃어버릴 염려가 있다.

완력으로든 세력으로든 금력으로든 LC당에 비기자면 보잘것이 없는 자기지만 자기의 지력 하나뿐으로 경찰과 LC당의 양자를 대항하며 자기의 목적을 수행치 않으면 안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먹고 인준이는 비로소 필호에게 대답하였다.

“이 공, 난 문제외다. 이 공은 아직 조선 경찰계에서만 활약을 했고 나는 소위 범죄 과학자로 알리어 있느니만치 내가 그런 방면에 관해서는 훨씬 상세히 알리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지만 그런 이 공의 오핸가 보이다. 첫째로 LC당의 조직이라 하는 건 LC당에서 간부 이외의 사람은 모르는 일이외다. LC당원이 전세계를 통해서 몇십만 명이 된다 하지만 당수가 누구인지는 간부급 이외의 사람은 한 사람도 아는 사람이 없읍니다. 당원들은 LC당 특수 방식으로 지휘를 받고 통제를 받고 명령을 받지만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고 행합니다. 여기 어디서 LC당원이 관계한 사건이 생겨서 그 현장에서 당원 수백 명을 모두 체포한다 해도 수백 명이 한결같이 자기네를 지휘하고 명령해서 지금 이 일을 빚어낸 사람이 누군지 모릅니다. LC당의 간부가 몇 사람이나 되는지 이것은 전 세계의 경찰이 알고 싶어 하는 배외다. 아직껏 간부라고 인정할 만한 사람은 한 번도 체포되어 본 일이 없습니다. 혹은 그 새 세계 각국에서 체포된 수만은 LC당원 중에는 간부도 몇 사람 있었겠지만 당자가 간부급이 아니노라고 하고 다른 당원들도 간부를 모르니깐 모두 보통 당원으로 처형을 받았지 간부급으로 처형받은 사람이 없었읍니다. 나도 내 취미상 그 방면에 관해서 많이 조사도 해보고 알아도 보았지만 그 조직이며 체계에 대해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읍니다. 그 당수의 국적조차 아는 사람이 없읍니다. 혹은 아메리카의 이름있는 어떤 정치가라기도 하고 혹은 중국 어떤 요로자라기도 하고 혹은 로마노프가의 일원이라기도 하고 의견이 모두 구구해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읍니다.”

이 밖에도 인준이는 여러 말로써 LC당이라는 것은 도저히 정체를 알 수가 없는 결사라는 점을 필호에게 설명하였다.

묵묵히 앉아서 그 설명을 다 들은 뒤에 필호는 탄식하였다.

“참 귀찮은 물건이 조선 경찰서에 뛰쳐들었읍니다.”

“이 공의 수완을 보일 때외다.”

“네. 수완 혹은 무력(無力)을 보일 땐가 봅니다. 하하하.”

“우리 계통의 사람과는 좀 다르니까 번쩍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되십니다.”

“차리지요. 차리기는 하지만 대체 LC당이 조선에는 무얼 하러 뛰쳐 들었을까요? 돈 없는 조선에 무얼 찾아 먹자고… 조선 일류의 부호의 금고를 깨드린다야 십여 명 당원의 노비도 얻어 내기 힘든 조선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러니까 그 점도 당신네가 연구할 점이외다. 복수나 약탈─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한 가지의 목적한 바가 있겠지요.”

“복수요?”

“네. 하지만 조선서는 LC당원에게 복수를 받을 만한 세계아(世界兒)도 없을걸요.”

“그것도 없지요. 에 귀찮어. 갈 바에는 아직 채 정돈되지 못하고 부자 많은 만주국으로나 가지, 빨아 먹으려야 진도 없는 조선에는 무얼 하러….”

“그래도 먹을 게 있겠기에 들어왔지 LC당이 먹을 것도 없는 곳에 간답디까.”

“먹을 것 찾아왔으면 형무소 콩밥이나 멕여야 할 터인데 걱정이올시다.”

“멕이도록 노력을 해보시오. 당신네들이 당면의 적으로 생각하는 우리들보다 훨씬 더 큰 고기외다. 만약 당신네들의 손으로 LC당의 간부급의 한 사람이라도 잡아 내면 전세계에 자랑할 만한 사건이외다. 힘껏 해보시오.”

“선생.”

필호는 저으기 말을 낮추었다─.

“사실이올시다. LC당이 하는 일과 하는 일과 선생네들의 일과는 근본적으로 목적이 다르다는 것은 우리도 모르는 바가 아니어요. 선생네들의 일에 대해서 이해도 가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직업에 충실키 위해서 적극적으로 선생네들의 일을 막기는 막습니다마는 선생네들의 마음은 잘 알아요. 지금도 저는 무론 선생이 법률이 금한 일을 행하시기만 하면 다른 손이 닿기 전에 이 손으로 선생께 포승을 지우려고 마음먹고 있지만 이 입장이 괴로워요. 다른 문제는 둘째로 두고 사사 정으로라도 저는 만약 환경만 허락할 것 같으면 매일 선생께 달려와서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선생의 그 범죄 과학계의 광범한 지식의 일부분이라도 물려받고 싶어요. 그렇지만 환경이 이를 허락치를 않습니다. 언젠가 선생도 말씀하셨지만 지금 서로 마주 앉아서 환담을 교환하지만 우리 두 사람의 새에는 도저히 넘어 뛰지 못할 커다란 구렁텅이가 있어요. 선생께 끝없는 존경의 염을 품고 있으면서도─ 또 선생의 사업에 상당한 이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넘지 못할 구렁텅이때문에 서로 경계심을 품고 있지 않을 수 없는 지금 입장이 괴로워요. 저도 최고 학부를 나온 소위 학사올시다. 자기의 취미상 이 직업에 달려 있기는 합니다마는 가슴을 에는 깃같이 괴로울 때가 많아요. 제 친구 제 존경하던 선배 선생 사랑하는 후배의 손에 포승을 지울 때는 속으로 통곡을 하고 합니다. 이해해 주셔요. 이 땅에 태어나기가 불찰─ 이 땅에 태어났을 것 같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새나 베고 꼴이나 멕이는 산간에 태어나지 않고 소위 유식 계급이라는 것이 된 것이 둘째로 불찰, 사실 고등계에 적을 두니만치 가슴 쓰린 때가 많습니다. 하소연할 곳도 없는 심통─ 혼자서 우므러뜨리고─ 이렇게 그날그날을 보냅니다.”

필호가 인준이의 아파트에서 돌아간 것은 정오가 조금 지났었다.

인준이는 필호에게서 필호가 노백작의 충복 완쇠에게 알아본 바 그날 밤 괴변의 전말을 들었다.

완쇠도 그날 밤의 사건의 전말을 전연 모르는 것이었다. 완쇠가 아는 바 그 전부가 대략 이러하였다.

백작 댁 후당 건넌방에서 잠을 자던 완쇠는 노백작의 거처하는 방에서 무슨 웅얼웅얼 하는 소리를 듣고 펄덕 깨었다. 완쇠가 깨면서 옷고름을 수습하는 순간 백작의 방에서는 권총 소리가 났다. 한 방 두 방 세 방 창황 중의 일이라 상세한 기억은 없으나 너덧 방 연하여 났다. 백작의 방에서 무엇이 뛰쳐나와서 달아나는 발소리를 들었다.

완쇠가 백작의 방으로 뛰어들어가 보니 백작은 권총을 손에 힘있게 잡은 채 기절하여 있었으며 방 안에는 화약 연기가 가득하여 있었다.

뒤에 조사하여 보니 백작의 권총에 빈 케이스가 다섯 개─ 야반의 권총 소리는 전혀 백작의 발사한 총성이지 괴한의 것이 아니었다. 백작은 권총을 놓아서 괴한을 쫓은 뒤에 스스로 질겁하여 스스로 기절한 모양이지 괴한에게서 해를 받은 흔적이 없었다.

이것이 그날 밤의 사건의 전부였다.

그다음에는 양관으로 이사한 노백작이 때때로 잠꼬대같이 겁먹은 소리로

“그놈이 아직 살아 있었담. 상해서 살아 있는 것을.”

이와 같은 뜻의 말을 몇 번 하는 것을 들었다.

마음이 아직 든든키 짝이 없는 노백작에게서 이런 겁먹은 잠꼬대를 때때로 듣는 완쇠는 제 상전의 위에 무슨 불길한 일이 임하였으며 그 사건의 배후에는 ‘그놈’ 이라는 (상해에 있는) 인물이 있다는 것을 막연히 짐작하였다. 그러나 ‘그놈’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려는 것, 상전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

─ 이것이 필호가 완쇠에게서 안 바의 전부였다.

이 사건의 전부는 필호에게 있어서는 한 개의 X에 지나지 못하나 인준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지식의 한 개였다.

아직 단지 LC당과 윤 백작과의 새에는 금전 이외의 연락이 없고 LC당의 조선 잠입은 윤 백작의 집 어느 곳에 감추여 있는 막대한 재산 약탈에 있는 줄만 알았는데 그 이외에는 당원의 한 사람과 노백작의 새에는 사사로이도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이 막연하나마 판명되었다.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이 점은 두고 두고 조사를 하여야 할 일이지만 여기서 사건은 조금 더 복잡하여지려는 것을 인준이는 짐작하였다.

아직껏은 LC당의 조선 잠입은 순전히 금전 문제에만 있는 줄 알고 단순히 보았지만 그 이외의 다른 문제가 섞이었다 하면 여기서 갈라지는 문제는 LC당원의 한 사람이 노백작에게 가지고 있는 원한을 갚으려 잠입한─ 말하자면 단순한 복수 행동이냐 혹은 복수와 약탈을 아울러 행하려는 행동이냐 그렇지 않으면 약탈을 하기 위하여서 복수라 하는 연극을 하나 가미한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모국이나마 지리와 인정과 풍속과 역사에 낯선 이 땅에 들어와서 자기가 감행하려던 일은 지극히 단순하고 간단한 일이었다. 그런 단순한 플랜을 가지고 들어왔다가 여기서 의외에도 그 단순한 플랜에 가미되려는 좀 복잡한 사건에 대하여는 역한 감정으로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먼저 LC당의 참 목적이 무엇인지─ 입국할 때는 꿈에도 생각치 않았던 이 문제부터 해결하여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될 자기였다. 경성 체류 일주일간으로 예정하였던 그 예산은 여기서 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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