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선열추념문
우리 國祖 荊棘을 開除하시고, 政敎를 베푸신 뒤로 綿延함이 거의 五千年에 미치는 그동안, 興廢의 故가 어찌 한두 번이리오마는, 실상은 한 族類로서의 代承이요, 혹 外寇의 侵奪함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 地域이 一區에 그쳐 桓解古胤의 내려오는 統緖는 언제나 儼然하였었나니, 우리 몸소 당한 바 變難이야말로 史上에서 보지 못하던 初有의 慘이라. 光武乙巳로 비롯하여 丁未를 지나 隆熙庚戌에 와서 드디어 言語 끊이니, 그 慘됨은 오히려 두째라. 奇恥와 大辱이 이에 極함을 무엇으로 견준다 하리오. 이러한 가운데 一道燦爛한 國光을 일으켜, 이 民衆으로 하여금 恥辱의 日에 矜負와, 悲慘의 期에 奮發을 끊임없이 가지게 함이 과연 누구의 주심이뇨. 우리는 이에서 乙巳以後殉國하신 先烈諸位를 寤寐間 잊지 못하나이다.
그동안 日寇 此土에서 陸梁함이 오래라, 監이라 督이라 하여 敗退하든 날까지 江山民人을 彼는 彼의 占制下에 두었던 듯이 알았을 줄 하나, 우리 先烈의 피로써 싸워 온 거룩한 陣勢 四十一年의 日月을 貫徹하여, 몸은 쓰러져도 魂은 나라를 놓지 않고 숨은 끊어져도 뜻은 겨레와 얽매이어, 그 壯하고 매움을 말할진대, 어느 분의 最後, 天泣之哀할 巨迹이 아니시리오. 刄에 絶하였거나 藥에 殞하였거나 다 같은 國家獨立의 勃勃한 邁進이요, 域中에서 崎嶇하다가 猛志를 牢獄에 묻었거나 海外에 飄轉하면서 苦心을 虜鋒에 끝마치었거나 다 抗敵必死의 剛果한 決定이니, 個人과 團體, 自殺과 被害가 不一한 대로 내어뿜는 民族的 芒稜은 일찌기 間歇됨을 보지 못한즉, 이 "피"가 마르지 아니하매 敵과 싸움이 쉬인 적 없고, 이 싸움이 쉬이지 아니하매 此土 마침내 敵의 全據로 돌아갔다고 이르지 못할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 過去四十一年을 통털어 日寇의 役이라 할지언정, 하루라도 彼의 시대라 일컬을 수 없음은, 오직 殉國先烈들의 끼치신 피향내가 항상 이 곳에 主氣되어 온 綠故니, 이 여러분 先烈이 아니런들 우리가 무엇으로써 圓球上에 서리오. 삼천리 土壤 알알 그대로가 이 여러분 熱血의 凝體임을 생각하매 舊恨新感이 가슴에 막혀 어찌할 줄을 모르겠나이다.
狡寇對露戰勝의 餘威를 가지고, 五條의 協約을 떠들던 것이 어젠 듯하오이다. 國步는 기울고 大勢는 가 앞길의 暗黑이 그 즈음을 알 수 없는 그 때, 저 周勤紐由의 久遠한 正氣, 몇몇 분의 鮮血로 좇아 다시 솟아나, 안으로 肺腑의 重望과 元老와 守義枯槁하던 舊臣과 激昻한 衛士와 慷慨한 微官과 林下儒門의 耆德들의 殉烈이 서로 이었고 밖으로 駐箚使臣의 死節이 國聞을 聳動하였으며, 各地方으로 義旗 곳곳에 날려 裹革의 尸와 冷山의 魂과 被執不屈의 將士라 敵膽을 서늘하게 하였으며, 海牙의 義聲이 內外를 흔듦에 미쳐 國民마다 腔血이 끓는 중 讓位의 逼을 뒤이어 軍隊의 解散을 보게 되던 날, 轟烈한 隊長의 自砲가 그 즉시 祖國光復의 活訓이 되어, 죽어도 겨누라는 命令이 되어 마침내 市街一戰의 血腥이 영구한 民志의 보람으로 빛나매 무릇 軍裝을 身上에 걸은 이, 거의 意旅로서 結合되지 아니함이 없고 學士名官이 함께 旗鼓를 잡아 비록 形勢單弱하나마 자못 雲興함을 보았나니, 이에 槍이 부러질수록 義 더우기 굳고, 몸이 敵에게 잡힐수록 정신은 갑절이나 活潑하였나니, 獄中에, 荒野에, 어느 뉘 어귀찬 戰亡이 아니오리까.
亂賊을 치려다가 誤中하여 義軀만이 喪함을 애달파함도 그 어름이어니와, 哈爾賓에서 仇敵의 元惡을 射殺하던 壯擧는 지금껏 남은 凜然이 있나이다. 國變當時朝野를 通하여 烈節이 繼起한지라, 守土의 長史를 비롯하여 丘園에서 艱貞을 지키던 이, 國敎로 民志를 뭉치려던 이, 碩學, 文豪, 高士, 端人, 畿近으론 散班重卿에 미쳐, 先後하여 軀命을 버리어 死敵의 烈을 밝히셨나이다.
乙巳年부터 庚戌에 미쳐 國步 이미 기우는 것을, 大勢 이미 가는 것을 저렇 듯 죽음으로 붙드시려 하였으나, 기우는 것은 기울고, 가는 것은 가 最後에 이르게 된 一面, 붙드신 그 힘은 그 속에 漸漸 强固하여 한번 喪亂의 最後를 넘자 下傾하던 波濤를 휘어돌려 다시 洶湧하기 시작하매 光復의 一路 바로 全民衆의 奔趨하는 바 되었나이다. 이에 앞서부터 滿洲, 南華, 遠으로 美, 近으로 露領에 志士의 踪跡이 分布하더니 다시 그 規模를 宏闊히 하매 혹 團結하여 軍旅를 倍振하고, 혹 糾合하여 黨倫을 增長하여 혹 單身으로 苦行하여 左援右應하는 그 行事 또한 百難을 衝冒한 바라.
內外互流하는 幾多의 熱血 속에 전 民衆의 志意 불타듯이 뜨거워가다가 己未 三月에 와서 總一의 表露가 獨立萬歲로 터지자, 여기서들 大韓民國을 내세우고 臨時政府를 만들어 오늘에 이름이 하나로부터 萬億에 이르기 다 先烈이 물려주신 바임은 千秋下에도 오히려 濡袂의 淚를 자아낼 줄 아나이다.
己未以後는 우리의 運動이 가장 强하여지니만큼 萬歲소리에 應集하던 그때부터 農村, 市場, 敎會, 婦人, 老年을 나눌 것 없이 앞에서 넘어진 채 뒤에서 밀고 나와, 血風血雨가 全土를 휩쓸었으니 古 先民 臨戰無退의 戒, 이에 再興함을 이를지라. 피 헛되이 쌓이지 않고, 하늘이 民衷을 돌아보아 今日 光復의 曙色을 國土에서 맞이하게 되었나이다.
언제나 殉烈의 先民은 有國의 楨幹이시라. 그 가운데도 우리의 過去를 생각하건대 先烈은 곧 國命이시니, 往往이 一人의 피로 因하여 民族의 昭蘇함을 보게 됨이 어찌 徒言이리까. 저 江戶의 推擊의 繼續的 壯圖, 故國의 사람 있음을 나타냄도 그러려니와 往者 上海의 亂에 倭寇의 放姿하는 攻勢, 友邦으로 하여금 至恨을 머금게 하던 때, 우리 義士의 一發이 群酋를 殄殲하여 擧國의 援師보다 오히려 지남이 있어 우리 獨立의 大計 激浪같이 怒瀉함을 얻게 되었나이다.
예로부터 지사는 一死를 가볍게 여기나니, 구태여 生을 捨하고 義를 取하신데 향하여 悲哀의 細情을 붙이고자 아니하며 더욱이 모든 光復의 元功이신 바에 무슨 遺恨이 있으리까마는 같은 先烈이시면서도 혹 顯著하여 天壤에 赫赫하기도 하고, 혹 湮滅하여 名字조차 물을 길이 없기도 하니 前을 幸이라 하면, 後 어찌 不幸이 아니리까. 하물며 無人窮途에서 枯卉위에 燭髏를 굴리어 鬼火 번득이고 烏鵲이 亂飛할 뿐으로 生前은 且置하고 死後까지 蕭條한 이가 많음을 어찌하리오. 설사 이렇기까지는 아니 할지라도 軍行旅進하다가 陷沒한 이들은 누구며, 幽蟄歷久하다가 瘐死한 이들은 누구이뇨. 多數로 因하여 特著가 없는 거기에, 日星과 竝垂할 烈蹟이 많으시려니 逝者 아무리 浩然하다 한들 살아있는 우리야 어찌 돌아보아 슬프지 아니하리오.
다시 생각하면 殉國先烈은 殉國으로 一體시니 名字를 가리켜 人我를 나누려 함은 오히려 私見인 양하여 自慰하고자 하나 또 설워하는 바 있으니 乙巳以後 先烈의 보고자 하심이 光復이라. 此身의 輾轉하는 동안 同志로서 艱苦에 提携하던 이 가운데도 이미 先烈을 따라가신 이 많거늘 이 날을 어찌 우리만이 보며 더욱이 만드시던 이는 멀리 아득하고 그 跡을 襲한 우리, 이 曙光을 바라니 이 느낌을 또 어이하리오.
우리 國外에서 星霜을 지낸지 오래라. 그 때는 生者들 또한 死路를 밟아 依倚하는 바 오직 先烈의 魂魄이매 거의 人鬼의 隔을 잊었더니, 이제 故土에 돌아와 同胞民衆의 품에 안기니 와락, 此身의 存留함이 어째 그리 廓然함을 느끼나이다. 들어오면서 곧 微忱을 드리려 한 것이 오늘에야 겨우 追念하는 大會를 擧行하게 되니 늦으나 오히려 우리의 情을 寄託함직 하되 우리 先烈께 바칠 馨香이 光復의 完成, 즉 獨立의 告功에 있을 뿐이어늘, 이제 여기까지 達함에는 아직 거리 없지 아니할새, 靈前에 向하는 恧泥, 자못 무거우나 몇 十年前 暗黑 뿐이요 縷望이 없던 그때에도 先烈은 꺾이지 아니하셨으니, 우리 이제 垂成의 業에 獻身함을 盟歲할 것은 물론이요, 時 今昔이 있다 할지라도 民是는 先烈의 遺緖로부터 내려와 依然할 바니, 우선 現下를 들어 先烈께 告하려 하며, 여러분 在天하신 英靈들은 우리를 위하여 耿耿하실지니 그 百折不屈하신 義氣, 至純至潔하신 高操, 民我無間하신 聖心, 雄猛卓特하신 勇槪를 全國民으로 하여금 效則하게 하사 이로써 泰運을 맞이하여 위로 國祖弘益의 聖謨를 重新하게 하시여 아래로 三千萬의 祈願을 맞추어 이루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