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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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 나는 『文藝春秋[문예춘추]』라는 일본 잡지에서 기구찌강(菊池 寬)씨가 자신에 대하여 세상에서 너무도 허튼 풍성을 많이 만들어서 귀찮다 고 한 기사를 읽은 생각이 난다.

과연 옳은 말이다. 일본 문단의 제일인자라고도 할만한 기구찌씨에게 있음 직한 일이다. 그러나 얼토당토 않은 허튼 풍설을 잘 만들어 내기로는 조선 사람도 일본에 지지 않을 것 같다. 또 자신에 대한 세인(世人)의 허튼 풍설 이 귀찮다고 잡지에 발표까지 한 기구찌씨도 아마 나의 경우에 비한다면 약 과일 듯싶다.

나는 지난 봄에 상처를 했다. 그러나 나의 처로 말한다면 약을 써도 듣지 않는 고질병에 걸려 죽은 것이지 누가 죽인 것도 아니요, 또 죽으라 해서 죽은 것도 아니다(죽으라 한다고 죽을 사람도 없기는 하지만). 그러나 허튼 풍설을 잘 만드는 일보 간악한 여자들은 제 말대로 풍설을 하나 만들었다. 아니 한두 가지로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홍(洪) 모의 처는 자기 남편과의 불화로 홧김에 죽었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홍 모는 자기 처를 그렇게도 박대하더니만 그만 상처를 했으니 이제는 춤을 추리라 고 그럴싸한 말을 했다. 또 어떤 이는 홍 모는 상처하기가 무섭게 4,5명의 여자와 연애를 하여 백주 대로상에서 애인 동지와 언쟁까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풍설을 만들어내는 친구가 모두 밥짓고 설겆이하고 바느질 하기에 바쁜 아낙네들인데 지극히 놀랐다. 아마 밥지을 쌀이 없고 바느질 할 필요가 없으니까 헛요기나 할 작정으로 씨부렁대는 지도 모른다. 또 나 는 내외간에 그다지 불화로 지낸 것 같지도 않지만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 은 우리 내외가 몹시도 불화로 지냈다고 의심없이 시인하는 모양이다. 이야 말로 분개할 일이다.

되잖은 살림이라고 벌이고 있던 나는 상처한 후부터 사실로 일신상 자유를 얻었다. 무슨 천재일우(千載一遇)의 호기라고 기뻐할 것은 아니지만 몸도 비교적 자유로와졌고 세상에서는 시끄럽게 굴 기도하여 이럭저럭 오랜 숙원 이나 풀어보려고 소위 음악 연구라는 허울좋은 이름 아래 나는 지난 초가을 에 동경으로 건너갔다 왔다. 조잘대기 잘하는 여자들이 한풀 꺽이는가 싶더 니 이번에는 되잖은 놈팡이들이 지껄이게 된다. 경성에서 제가 소위 음악가 라고 바가지통(바이올린)을 들고 촐랑거리며 돌아다니는 자가 기상천외의 대발명이나 할듯이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조잘댄다. 놈팡이 왈, 홍모는 × × (나의 질부된 여성의 이름)와 연애하다가 실연을 하고는 홧김에 동경으로 뛰어갔다고.

얕은 꾀는 여자에 많은 법이다. 여자의 말에는 곧이들을 여지나 있으려니 와, 머리에 중절모자를 쓰고 다니는 자의 속없는 거짓말이야 곧이듣는 사람 이 그야말로 바보인 줄 왜 모르고 내가 바이올린이나 주물거리고 있으니까 소견 한푼 없는 줄 알아서는 큰 실수지. 이런 자에게 철권(鐵拳)의 세례를 줄 만한 완력은 있고도 남는 줄을 알 때가 있을지도 모를 것이다. 똥은 들 출수록 냄새가 나는 법이다. 잘못 들추다가는 제 손에 똥칠을 하지. 나는 내 손에 똥칠을 할까 그만 덮어두련다. 그러나 싱거운 것은 하필 세상만이 싱거우랴만 세상이란 싱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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