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지와 철장
나는 어쭙잖은 일로 삼남 지방 T경찰서 유치장에서 며츨을 보낸 일이 있었다.
사월 그믐께 서울에서는 창경원 밤 꽃구경이 한참일 무렵이었다. 앞문 목 책과 뒤 쇠창살 사이로 햇발은 금강석과 같이 부시다. 조각밖에 아니 보이는 하늘가로 흰 구름의 끄트머리가 어른어른 떠돈다.
지금까지 문 앞에서 서성서성하고 있던 우리 방에서는 제일 존장인 오십 남짓한 구레나룻이 한숨인지 감탄인지 분간 못할 소리로 읊조렸다.
“에에헷! 일기는 참 좋군! 저 홰나뭇가지를 보시오. 거기는 바람이 있구려. 새파란 잎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곧 하늘로 날아 오르는 것 같구려.”
나는 그 절묘한 형용사에 놀래었다. 그는 주막집 주인으로 오늘날까지 그럭저럭 꾸려가다가 수상한 청년 한 명을 재운 죄로 벌써 열이틀째 고생을 하고 있는 중늙은이다. 그에게 이런 시흥이 있을 줄이야! 나의 눈에도 그 홰나무가 뜨인 지는 오래였다. 경찰서 마당 소방대 망루가 있는 바로 옆에 그 홰나무는 넓은 마당을 덮은 듯이 푸른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때마츰 불어오는 동풍을 안고 길게 늘어진 가지들이 휘영휘영 흔들린다. 갇힌 이에게는 그 자연스러운―자연스럽지 못한 경우에 쪼들리는 우리는 얼마나 자연스러운 데 주렸으랴―푸른 빛이 끝없는 감흥을 일으켰음이리라. 그 바람을 따라 아모 거리낌 없이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는 모양이 어데까지 자유스럽고 어데까지 즐겁게 보였음이리라. 하늘에 날아 오르는 것 같다는 한 마디 말에 그 홰나무의 형용과 아울러 그의 처지와 감정과 심회를 여실하게 나타낸 것이다.
‘경우가 시인을 낳는구나.’ 나는 스스로 생각하고 긴 한숨을 쉬었다.
구레나룻의 탄식과 내 한숨은 단박에 전염이 되었다. 한 칸 소침한 우리 방에 빡빡하게 들어찬 열두 명의 입에서는 마치 군호나 부른 듯이 일제히 한숨이 터졌다. 한숨 말이 났으니 말이지 이곳에는 그것같이 전염 잘되는 것은 없었다. 한 사람이 쉬면 왼 방이 모조리 따르고 한 방에서 일어나면 삽시간에 각 방으로 퍼져,
“후우!”
“아이구우!”
하는 소리가 마치 회호리바람과 같이 지나간다. 이 아모런 의미 없는 숨길에 얼마나 많은 뜻이 품겼으랴, 얼마나 많은 하소연이 섞였으랴. 그것은 입술에 발린 천마디만마디 말보담도 몇 백 곱절 사람을 움직인다. 그것은 미어지는 제 가슴 한 모퉁이를 역력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말라 가는 제 피 방울방울을 무더기로 뿜어내는 것이다!
식당과 변소와 침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냄새, 딱딱하고 불결한 널바닥, 쌀인지 모래인지 까닭 모를 콩밥, 소금덩이를 오줌 궁이에 적시어 내온 듯한 까만 무채 반찬, 타는 듯한 갈증, 마음과 몸을 조아 매는 듯한 구속, 인제나 나가나 저제나 나가나 하는 조맛증, 쇠자물통이 덜컥하고 열릴 때마다 울렁거리는 가슴, 제가 아니고 남인 것을 알 때에 기막히는 실망! 이 모든 견디기 어려운 고통보담도 나에게는 이 한숨 소리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 더구나 깊은 밤과 새벽녘에 폭풍우같이 유치장을 뒤흔들고 지나가는 이 소리에 나는 몸서리를 쳤다. 머리는 무엇에 부딪친 듯이 힁힁 내어둘리며 가슴은 한 그믐밤빛같이 캄캄해진다. 깊은 물속에 거꾸로 집어넣고 돌을 매달아 놓을 때의 답답한 느낌이나 이러할 듯. 긴말은 고만두고 내가 거기서 만난 불쌍하고 거룩한 노인 얘기나 적어 보자.
우리가 막 아츰밥을 치른 뒤였다. 유치장 잎새가 수선수선해지며 소위 ‘담당(擔當)님’들의 뚜벅거리는 구두 소리가 어지러웠다.
“또 누가 잡혀 들어오는군!.”
하며 내 옆에 앉은 구레나룻이 웃어 보이었다. 여기서는 울음과 웃음이 일쑤 그 지위를 바꾸었다. 답답한 노릇 기막힌 일을 당할 적마다 서로 눈을 주며 씽긋 하는 그 웃음 속에는 여간 울음 따위로 표시 못할 고민을 알려 주었다. 모진 취조를 받고 나와도 씽긋 웃어 보인다. 담배를 몰래 피다가 들키든지 목책에 올라서서 밖을 좀 더 넓게 내다보다가 들키든지 해서 톡톡히 벌을 치르고 돌아와도 씽긋 웃어 보인다.
“이리로 와, 이리로!”
일본 순사의 서투른 조선말이 들린다.
“이 늙은 놈의 자식, 말이 잘이 안 듣고!”
잡아 끄는 모양이다.
“와 이카노, 와 이캐? 와 나캉 씨름할나카나? 잡고 설치노!”
꺽세고 무딘 노인인 듯한 목쉰 소리가 경상도 사투리를 통으로 내어 놓는다.
“백지 죄 없는 사람을 잡아다가 송아지매로 와 이리 끄시노?”
“모오 죄가 없소? 저…… 곤봉이란……무기를 드르고 또 저……복면을 하고 백주대도에 남의 집에 뛰들어가 사람을 상했었지? 죄가 없소? 강도 모라? 사람을 중상 냈으니 상인강도(傷人 强盜)다. 이십 년 징역살이다.”
이 소리에 우리는 서로 쳐다보았다. 백주대도에 곤봉을 휘두르며 사람을 상한 강도―그것은 여간 대담하고 무서운 인물이 아니리라. 솜을 씹는 듯한 단조로운 생활에 지친 우리는 놀램과 아울러 호기심이 버쩍 움직였다. 자전거를 훔친 혐의로 들어왔다는 이십 남짓한 하이칼라 머리는 날쌔게 목책의 가로다지인 철봉 위에 벌써 발을 올려 놓았다.
“지금 들어온 사람이 보입니까?”
나는 여러 사람의 묻고 싶은 말을 대표하다시피 물어 보았다. 하이칼라는 머리를 긁적긁적하며,
“글쎄요, 잘 보이지 않는데요. 순사 셋이 둘러섰는데 하나는 두 팔을 잡고 하나는 등채를 밀고 또 하나는 무슨 말을 하는 모양입니다. 머리가 하얀 것이 꽤 나이 많은가 봐요. 몸을 빼치려고 발버둥을 치는 모양입니다.”
나는 중대범인인 만큼 그 취급도 어마어마하구나 싶었다. 백수를 흩날리며 곤붕을 휘두르고 거침없이 뛰어들어 협박하는 무서운 장면―제명령대로 고분고분히 겨행을 앓는다고 닥치는 대로 곤봉을 휘갈기매 붉은 피가 주르르 떨어지는 광경이 활동사진처럼 내 머리 속에 나타나며 으쓱하고 찬 소름이 끼쳤다.
“뭣이 우짜고 우째? 허허.”
강도의 침통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날로 강도라 카나! 이십 년 징역, 참 사람 죽이네.”
사나운 범같이 날뛰던 강도 생애를 뒤두고 철창 속에 갇히는 것은 우리보담도 또 다른 고통이 있으리라. 나는 동물원에서 본 사자가 언뜻 생각난다.
그 주홍 같은 아가리를 벌리고 성난 갈기로 쇠창살을 쾅쾅 부딪치며 산이 무너질 듯한 어흥 소리를 지르던 꼴이 눈앞에 선하게 보인다. 그 사자에게 푸른 산과 넓은 발판이 얼마나 그립고 아쉬우랴. 그와 마찬가지로 곤봉 하나를 무기 삼아 남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던 그가 이 쇠창살 속에서 이십 년이나 썩는다면 그야말로,
“사람 죽이네.”
하는 비명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문득 밖은 시끌시끌해진다. 발자욱 소리가 잠깐 요란하더니 ‘아큐!’하는 비명이 일어나며 털썩 하고 복도에 사람 넘어지는 소리가 난다.
“이놈의 자식이 어데로 달아나!”
순사는 씨근벌떡거리며 호기있게 부르짖는다.
또 유도 연습이오 “ ? 이놈이 오늘 서장 댁에 들어갔던 놈이지요?”
사법계에서 누가 나와서 묻는 모양이다.(그들의 문답은 대개 일본말이지만 구태여 그대로 쓰지 않는다.)
“아니야요. 이놈이 달아나기에 좀 쥐어질렀지오.”
담당은 묻는 말 첫마디에만 변명하며 둘째 마디엔 그렇다고 뜻만 알린 듯하다.
“달아나라고 해요. 늙은 것이 굉장한데……허허……. 엄살 말고 일어 나.”
발로 강도를 일으키는 듯,
“그래, 나이 몇 살이냐?”
“내 나이 말이오?”
목멘 소리가 대답한다. 그러고 제 나이 많은 것을 한심하다는 드키 또는 자랑치는 드키 탄식조로
“금년에 일흔 넷이오.”
한다.
우리는 이 문답에 더욱 놀래었다. 나이 칠십을 넘어 강도 노릇을 한다는 것부터 끔찍한 일이거든 밤도 아니요 한낮에 보통 도적 같으면 몸서리를 치고 달아날 경찰서장의 집에 침입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다.
“참 대담한 일인데.”
하고 구레나룻은 혀를 빼물었다.
“참 굉장한데, 경찰서장의 집에 막 들어갔다지요.”
하고 똥통 옆에 앉았던 소년 절도가 그 토끼 귀를 쫑긋한다. 그들의 얼골에는 일종의 영웅이나 제 눈앞에 나타난 듯한 경탄하는 빛이 황홀하게 흘렀다. 과연 팔십 다 된 노인의 한 일로 보아 그는 놀라운 위인에는 못 갈 값에 간담이 서늘한 거물에는 틀림이 없었다. 일종 엄숙한 기분이 얼마 동안 우리를 사로잡았다.
우리는 별안간에 이 유치장에 나타난 ‘영웅’의 그림자나마 보아지라고 발버둥을 쳤다. 왼 방안이 거의 총기립이 되어 목책 틈으로 눈을 내 놓았지만 우리 방은 십일호란 끄트머리 구석방이요. 그 범인과 경관 사이에 힐난 이 일어나기는 유치장 입새이기 때문에 갖은 노력도 필경 물거품에 돌아가 고 말았다. 그 ‘영웅’은 머리털 하나 옷자락 한 폭을 우리에게 아끼었다.
“어느 방에 집어 넣을까요?”
담당이 묻는 모양.
“글쎄……아직 작정을 안 한 모양이던데…….”
“검속으로 둘까요, 보외(報外)로 할까요?”
“글쎄……아직 어데 한 구석에 그대로 두구려.”
우리는 유치할 방 문제가 날 때에 행여 우리 방이나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과, 그와 정반대로 다행히 우리 방이었으면! 하는 열망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런 무서운 인물을 꺼리는 공포증(恐怖症)과 ‘영웅’의 목소리를 직접으로 들어보겠다는 숭배열(崇拜熱)이 서로 싸웠다. 그러나 아직 아모 방에 넣지 않는다는 말에 우리는 적이 안심의 숨길을 돌렸다.
“저런 범인은 따로 두는 무서운 방이 있겠지요?”
구레나룻은 나를 보고 기발한 질문을 내놓았다. 내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하이칼라가 받아서,
“글쎄요? 그럴 리야 없겠지요? 혹 감옥으로 바로 보낼는지도 몰르지요?” 그럴 사이에 우리의 상상과는 딴판으로 그 범인은 처치되었다. 담당 순사의 구두 소리와 함께 저항하는 듯한 그 범인의 어지러운 발소리가 우리 방을 향해 오지 않는가! 분명히 아모 방에도 넣지 않기로 작정된 것을 알건마는 혹시나 우리 방에 넣지 않는가 하여 우리는 다시금 공포증과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그 결과는 한 방에 같이 있는 공포를 덜어 주는 동시에 눈앞에 ‘영웅’을 보는 호기심을 만족시킬 수 있게 되었다. 담당 순사는 그 범인을 우리 방 앞까지 끌고 와서 쓰러뜨리는 듯이 앉혀 놓고,
“여기 가만히 앉아 있어!”
라고 호령 한 마디를 남긴 후 제 갈 데로 가 버렸다.
우리는 그 범인을 한 번 보고 놀래었다.
도야지 꼬리만한 상투. 설마른 암치쪽처럼 누렇게 뜬 주름 많은 얼골. 불에 타다가 만 듯한 겅성다 못한 흰 수염. 휘어 들고 꼬부라든 좁은 어깨. 졸음이 오는 듯한 눈꼽 발린 광채 없는 눈. 갈기갈기 찢어진 히피족 밑에서 내다보는 콧물이 케케 히말라붙은 광목적삼 앞자락. 아랫도리엔 역시 때묻은 광목고의. 발은 벗었고 대님으로는 상점에서 물건 살 때에 쓰는 끄나풀을 매었다. 왼손에는 노란 수건을 들었고 오른손에는 생무 껍질을 벗겨 만든 듯한 꼬부장한 지팽이를 쥐고 있다.
우리가 이때까지 상상하던 무서운 인물 놀라운 영웅이 이 할아범일 줄이 야, 어디까지 양순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이고 불면 쓰러질 듯한 이 잔약한 늙은이일 줄이야! 우리는 우리 눈을 의심 안 할 수 없었다.
“저 늙어빠진 친구가 그런 대담한 짓을 저질렀단 말이오?”
구레나룻은 나를 노리며 마치 내가 애매한 그 노인을 몰아넣기나 할 듯이 큼직한 눈을 더 크게 뜨고 분개한다.
“저 노인 어데서 그런 용기가 났을꼬?”
하고 나도 어처구니가 없어 방안을 둘러보았다.
“남을 때리기는 고만두고 제 몸도 가누지 못하겠는걸.”
하이칼라는 픽 웃었다. 어린 토끼귀는
“저 꼬부장한 지팡이를 좀 봐요. 저게 곤봉이란 무기야?”
하고 소리를 내어 웃는다.
“그러고 저 노란 수건은 복면하는 데 쓰는 탈인가?”
우리 일동은 어이없어 웃었다. 참활극(慘活劇)의 우리 주인공은 얼골을 나타낸 찰나에 희소극(喜笑劇)의 배우가 되고 말았다.
담당이 밀쳐 주고 간대로 반쯤 쓰러져 있던 그 노인은 이윽고 몸을 도사리며,
“이놈의 새끼들이 이게 무슨 지랄고? 백지 죄 없는 사람을 잡아 가두고 마른 날에 벼락이 안 무섭나?”
혼잣말로 중얼중얼한다. 그 무디고 꺽센 목청만은 아까 우리가 듣던 무서운 강도의 목소리와 조금도 틀림이 없었다. 넋두리를 따라 그 눈꼽이 꾀죄한 눈을 깜박거리더니,
“우리 인식이! 인식이!”
하고 별안간 훌쩍훌쩍 코를 들어 마시기 시작한다. 굽어든 어깨가 더욱 둥그레지며 가늘게 떨리는 모양과 빠뜨린 고개 위로 앙상하게 드러난 목덜미의 힘줄과 뼈가 우리에게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우리 주인공은 세 번째 변해졌다. 참활극의 히어로로 등장한 그는 어느 결에 희극의 배우로 바뀌고 이번에는 또다시 비극의 주인공으로 그 본색을 나타내었다.
이윽고 그는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누렇게 뜬 얼골엔 벌컥 피가 올랐다.
“인식아! 인식아!”
제 처지도 잊은 듯이 고함을 지르자 쥐었던 수건과 지팽이도 집어 던지고 힘줄과 검버섯만 남은 두 손으로 마룻바닥을 치며 엉엉 소리 높여 울기 시작한다.
“시끄럽다 시끄러워!”
담당이 주의를 하였으나 늙은이의 울음소리는 높아질 따름이었다. 할 수 없이 순사는 필경 그 노인에게로 달려왔다. 그 우는 증상이 너무도 가엾고 측은한 데 마음이 움직이었음이리라. 올 때의 발소리 들어서는 매우 사나울 듯하던 그 순사는 의외로 친절하였다. 노인의 어깨에 손을 대며,
“왜 이리 울어. 늙은이가 이게 무슨 꼴이야.”
하고 달랠 따름이었다. 노인은 응석이나 피는 듯이 울음 반 말 반으로,
“와 나를 가두노, 와 나를 가두노? 우리 인식이는 죽으라카나, 우리 인식 이는…….”
넋두리를 끈치지 않는다.
“죄를 짓지 말았으면 잡혀 오지 않았을 것 아니냐!”
순사는 귀찮은 듯이 제 친절을 몰라 주는 것이 괘씸한 듯이 한 마디를 쏜다.
“내가 무슨 죄고? 대문간에 내 비린 신문 한 장존(주은) 것밖에 나는 아모 죄가 없지 그리.”
“신문 한 장?”
아까 노인이 잡혀 들어올 때 없던 그 순사는 우리 주인공의 내력을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 신문 한 장을 주섰다가 잡혀 왔단 말이냐?”
하고 어이없다는 듯이 씩 웃는다.
“신문은 존는대 쪼맨은(조그마한) 일본 가시내가 빼뜰라 캐서 작대기로 이마를 좀 밀었다고 붙들려 왔구마.”
“그래, 인식이는 누구냐?”
“내 손자지 누구라. 제 애미가 백 날만에 유종을 앓아 죽고 내 등으로 금년에 시 살까지 업어 키웠구마. 내가 오늘 밥을 안 얻어 주면 우리 인식이는 죽누마.”
하고 할아버지는 다시금 엉엉 소리를 낸다.
“그러면 밥이나 얻어 가지고 갈 일이지, 남의 집 신문을 왜 훔쳐!”
순사는 그래도 호령기를 잊지 않았다.
“내 비린 게니 좃지. 밥을 싸 가지고 갈라 캤구마.”
우리 주인공의 수수께끼는 한겹 두겹 풀렸다. 어미 잃은 어린 손자, 제등으로 길러낸 손자의 배 고파 우는 양을 보다 못하여 그는 오막살이나 남의 집 추녀 끝을 기어 나왔으리라. 밥은 얻기는 얻었지만 비럭질 길을 처음 나선 터이라 미처 밥 담아 올 그릇을 준비하지 못하였으리라. 쌀 데가 만만치 않으매 그는 공교히 경찰서장 집 문간에 떨어진 신문지 조각을 발견하고 신 이야 넋이야 하며 앞뒤 생각 없이 그것을 주웠으리라. 신문들이치는 소리를 듣고나왔던 서장의 누이나 딸이 그가 주운 신문지를 빼앗으려 드니까 그는 밥 싸 가질 욕심에 눈이 어두워 지팽이로 그의 계집애를 갈긴 것이 상인 강도란 무시무시한 죄목에 걸린 것이다.
이 비참한 수수께끼를 푸는 사이에 어느 결에 괴었는지 내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소리 없이 떨어졌다.
그 후 사흘이 지났다. 그 노인은 한결같이 아모 방에도 넣지 않고 유치장에서도 무슨 장애물같이 이리 밀리고 저리 쫓기었다. 그는 모든 것을 단념한 모양으로 인제는 울지도 않고 인식이도 찾지 않았다. 눈물 소동과 사랑의 호소도 아모런 보람이 없음을 깨달았음이리라. 다만 밥 때마다 그는 말썽을 부렸다. 그는 소위 보외(報外)로 제정한 유칫간에도 들어가지 못한 관계인지 소위 관식(官食)에도 빠졌다. 성이 몹시 날 때엔 밥 돌리는 차입집 중노미를 보고,
“이 누묵 자식들, 사람 잡아 놓고 와 밥도 안주노?”
라고 그 늙고 마른 몸과는 딴판으로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기도 하고 혹은 지나치는 담당 순사를 보면,
“나아래(그는 나으리란 말이 서툴던지 이렇게 발음하였다.) 이래 있는 사 람은 밥도 안 주는기오?”
라고 애원하기도 하였다. 나는 그 ‘이래 있는 사람’이란 말에 억눌린 분노와 형용 못할 빈정거리는 뜻을 느끼었다. 서두는 보람이 있어 그는 언제든지 끼니만은 찾아 먹었다.
마지막 날 점심때에 그와 차입집 중노미 사이에는 충돌이 일어났다. 노인은 제 차지를 받지 않았다고 고집을 세우고 중노미 애는 분명히 주었다고 우기었다.
“오늘 아츰에도 주고 돌아서니 안 받았다고 떼를 쓰기에 또 한 그릇을 주었는데 금방 점심을 받고 또 달란 말이 무슨 말이야!”
라고 모개같이 생긴 중노미애는 툭툭 비어지게 살찐 얼골에 핏대를 올린다.
“뭣이 우째, 받은 밥을 내가 우쨌단 말고?”
노인도 노기등등하다.
우리는 물론 노인 편이었다. 순사 뺨치게 사납게 구는 애놈이 밉기도 하였거니와 저 잔약한 노인이 어느 결에 준 밥을 게눈 감추듯 먹었을 리도 만무하였다.
“이놈아, 한 그릇 드리려무나. 혈마 노인이 거짓말 하겠니?”
그 애 집에서 사식을 대놓고 먹는 구레나룻은 대번에 차입집애를 꾸짖었다. 유치장에서 사식을 먹는 것은 한 특전이다. 턱찌끼 반 접시와 맹물 아닌 차 한 모금도 여기서는 금싸래기같이 귀하기 때문에 관식 먹는 이의 위대도 놀랍거니와 차입집에게도 서슬이 푸르렀다.
본래부터 그 애와는 승강이 많던 하이칼라도 덩달아,
“저놈의 애는 곱게 줄 것도 꼭 말썽을 부리겟다.”
하고 혀를 찬다.
중노미는 형세가 제게 불리하게 되자 쭈르르 담당 순사에게로 달려 가서 그 사연을 말한 모양이었다. 일본인 순사 한 명이 뛰어왔다.
“이놈아 한 번 먹었으면 존 것이지. 한 끼에 두 번씩 먹어, 나쁜 놈이.”
제법 유창한 조선말로 집어 세우고는 다짜고짜로 그 늙은이의 몸을 뒤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 순사의 행동에 분개하였다. 비록 배가 고파 달라고는 할지언정 그까짓 관식을 몸에 숨길 실업의 자식이 어데 있으랴. 아모런 사리도 분간할 사이도 없이 죄인이라면 덮어놓고 의심을 두는 데 불쾌한 감정을 걷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직업적 손버릇인지도 모르리라. 수색 하는 순사 자신도 그 노인의 뱃속 이외에 콩밥덩이가 튀어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으리라.
“이(虱 )되나 하고 때 사발이나 긁어낼걸.”
하고 구레나룻은 비웃었다.
사실은 또 우리의 예상과 틀렸다. 그 노인의 고의춤에서 콩밥 뭉치는 발견되고 말았다.
“이런 데 넣어 두었구먼.”
그 순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일본말로 부르짖으며 무슨 불결한 물건을 만친 것처럼 상판을 찡그리고 그 콩밥 뭉치를 태기를 쳤다. 우리 방 앞에 떨어진 밥 뭉치를 보니 그 노인이 들고 있던 노란 수건으로 삐죽삐죽 싼 것인데 그 부피로 봐 한두 끼 분량은 훨씬 넘는 듯싶었다.
“참 어쩔 수 없군.”
순사는 배앝는 듯이 한 마디 던지고 노인의 등을 한 번 쥐어지르고는 그대로 가 버렸다. 너무도 같잖은 일이기 때문에 특별한 벌도 세우지 않는 것 같다.
멀쑥해 가지고 얼빠진 듯이 쓰러져 있던 콩밥 도적은 한참 만에야 부시시 일어 앉으며 입안말로 중얼거렸다.
“아모나 주는 그 잘난 밥을 다 빼뜨네. 지랄 안 하나. 우리 인식이나 갖다 줄걸.”
노인 편을 들었던 우리 방 사람들도 멀쑥해졌다.
“허 참, 별일이 다 많네. 그까짓 콩밥은 감춰 뭘 한담?”
“제 버릇은 할 수 없어. 유치장 안에서도 도적질을 하는군.”
“나는 그 노란 수건이 어데로 갔나 했더니 그 콩밥을 쌌구먼.”
나이 칠십에도 지각이 “안 났더람? 그야말짝으로 관 속에서나 철이 들려나? 하느님 맙시사.”
동정과 호감을 주었던 반동으로 비난과 비웃음도 컸다.
나는 손바닥을 뒤지는 듯이 돌변한 그들의 태도에 분개하느니보담 차라리 그 노인을 위해 슬펐다. 입때까지 동정을 아끼지 않던 마지막 동무까지 잃어버리고 쓸쓸한 사막에 외로이 제 길을 걸어가는 성자(聖者)를 보는 듯한 슬픔이 나의 가슴에 복받쳤다.
“그 잘난 밥! 우리 인식이나 줄걸!”
이 말 한 마디에 나는 애연한 정보담도 빛나는 인생의 햇발을 본 듯싶었다. 그 잘난 밥! 그렇다! 그들에게는 그 잘난 밥이다. 그 잘난 밥이나마 감추려던 그의 심정! 경우와 처지와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오직 손자에 향한 뜨거운 이 사랑만은 배부른 이들로는 상상도 못할 노릇이다. 그가 울음을 그치고 하소연을 그치고 손자를 위해 끼니끼니마다 몇 개 밥알이라도 고의 춤에 모으는 즐거움은 왼 세상을 통틀어 준대도 바꾸지 않았으리라. 남 안 보는 깊은 밤 옅은 죄수의 꿈이 깨일 때마다 그는 그 밥주머니를 어루만지며 인식이를 가만히 불러 보고 자애에 넘치는 웃음을 흘렸으리라. 가난한 이의 사랑은 종교다, 신앙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위대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 날 오후에 나는 사법실로 불려 나가 사법주임 박경부에게 취조를 받았다.
아까 그 노인의 밥주머니를 끄집어낸 일본 순사가 얼골을 나타내며 그 노인의 처지를 물었다. 박경부는 일본말로,
“그 늙은이는 거지가 아니오? 그런 것을 유치장에 넣으면 되려 좋아하지 않겠소?”
“그래요. 오늘 점심에도 관식을 훔쳤어요.”
“저런! 그것 보아. 그 따위는 잡아온 것이 이편의 손해인걸. 허허……웬만치하고 고만 내보내지요.”
박 경부는 대수롭지 않게 결정을 해 버리고 나의 취조를 진행하였다.
취조를 마치고 나와 보니 그 노인의 그림자는 벌써 유치장에서 사라졌다.
유치장 신세를 지는 것도 좀 더 높은 계급이 가진 특권인 듯하다. 그는 유치장에서까지 쫓겨나고 만 것이다!
(6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