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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날까요?”

열두 살 난 은희는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근심스러이 이렇게 물었다.

“글쎄 내니 알겠냐. 세상의 만사가 하나님의 오묘하신 이치 가운데서 돼 나가는 게니깐 하나님을 힘입을 밖에야 다른 도리가 없지.”

아버지도 역시 근심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집안은 어두운 기분에 잠겼다. 네 살 난 막내아들의 위태한 병은 이 집안으로 하여금 웃음과 쾌활을 잊어버린 집안이 되게 하였다.

어린 만수의 병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고뿔에서 시작되었다. 그 고뿔은 며칠이 걸리지 않아서 거의 나았다. 그러나 거의 나았을 때에 어린애의 조르는 대로 한 번 밖에 업고 나갔던 것이 큰 실수였었다. 만수의 병은 갑자기 더하여졌다. 병은 기관지로 하여 마침내 폐에까지 미쳤다….

온 집안은 힘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소아과(小兒科)의 이름 있는 의사가 하루에 두 번씩만수의 병을 보러 왔다. 태평양과 인도양을 건너서 온 여러 가지의 약이 만수 때문에 조제되었다. 찜 흡입 복약 주사, 의학의 정교함을 다 하여 의사는 만수를 위하여 자기의 지식을 쏟아 놓기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는 일면 그 집에서는 어린 만수의 쾌차되기를 하나님께 빌기를 또한 잊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기도가 첫째고 의학의 정이 버금이 된다고 하고 싶을 만치 기도에 정성을 다하였다.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러나 만약 이 어린애를 저의 집안에 그냥 살려두어 주시는 것이 아버님의 뜻에 과히 거슬리지만 않거든 아버님의 이 충성된 종을 위하여….”

그들은 이렇게 기도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은희의 정성과 기도는 가장 컸다. 세상의 많은 누이들이 어린 동생에게 가지는 가장 큰 사랑을 만수에게 가지고 있는 은희는 몸부림까지 쳐 가면서 기도하였다 ―.

“아버지, 만수를 살려 주세요. 무슨 죄가 있읍니까. 아직 말도 변변히 못하는 어린애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벌써 데려가시렵니까. 낫게 해 주세요. 죽고 사는 것은 아버지께 달렸읍니다.”

은희는 마치 억지쓰듯 이렇게 기도하고 하였다.

그러나 정성을 다한 기도도 의학의 정교도 자연의 힘에 비기건대 아무것도 아니었다. 만수의 병은 나날이 ― 아니 각각으로 더하여 갔다.

기운이 진하여 울지도 못하는 어린애가 답답한 듯이 입맛을 연하여 다시며 조금의 시원함이라도 보려고 연방 손을 휘젓는 양이며 쌕쌕거리는 숨소리는 과연 듣기 힘든 것이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린애가 안타까와서 헤적일 때마다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듯이 머리를 돌이키고 하였다. 한숨조차 쉬지 못하였다.

그러나 은희는 잠시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를 않았다. 자기가 머리를 돌이킨 뒤에 어린애가 죽어 버리면 어쩌나 하는 근심은 그로 하여금 눈을 잠시도 어린애에게서 떼지 못하게 하였다. 속으로 하나님께 정성의 기도를 드리면서 도 그의 눈은 어린 동생에게 향하여 있었다.

“구하는 자에게는 주시며 ―.”

성경의 이 한 구절은 성경 전체의 다른 많고 많은 구절 가운데서 가장 귀한 구절로 은희에게는 보였다.

‘구하라 ― 주시리.’

“― 아버님 만수를 살려 주세요. 꼭 아버님께 한 죽음이 쓸데 있으며 저를 불러 가세요. 저는 죄를 많이 지었읍니다. 죽어도 쌉니다. 그러나 만수야 무슨 죄가 있읍니까. 꼭 낫게 해주세요. 구하면 주시는 아버님이시여.”

아직 남을 의심할 줄을 모르는 소녀는 정성과 믿음을 다하여 어린 동생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어린애의 목숨은 마침내 의사도 내어던졌다. 과학과 숫자로 짜 내어 어린 만수의 목숨은 인제는 어떠한 힘으로라도 구할 수가 없다고 단안을 내렸다.

그러나 은희는 그 말을 믿지를 않았다. 그 말의 뜻조차 알 수가 없었다.

‘믿음은 태산이라도 움직이느니라.’ ‘구하는 자에게는 주시며.’ 이러한 성경 구절은 이이는 사와 삼삼은 구보다도 은희에게는 더 정확하고 믿음직한 말이었다. 믿음은 가장 크다. 그 믿음으로써 어린애의 쾌복되기를 하나님께 구하는 이상에야 왜 쾌복이 안 되랴? 만수의 병은 쾌복된다. 만수는 가까운 장래에 다시 자기의 손에 끄을리어서 눈깔사탕을 사 먹으러 거리에 나간다. 의사? 의사의 말이 무에냐. 하나님의 오묘하신 예산을 의 산들 어찌 알랴. 은희는 더욱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다.

더구나 그의 아버지가 하던 기도에, 아버님이시여 이 어린애의 “ , 영혼을 아버님의 나라로 보내오니 받으시옵소서.”

하는 말에는 은희는 기도고무에고 내어던지고 아버지의 무릎 위에 몸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안타까운 듯이 발버둥이질을 쳤다. 왜 만수를 살려달라 기도드리지 않고 영혼을 받아 달라고 기도드리느냐는 것이 은희의 발버둥치는 까닭이었었다.

아버지는 은희의 머리를 쓸어 주었다.

“그럼 구하는 자에게는 주시지 ― 구하는 자에게는 주시지만―.”

아버지는 이뿐, 입을 닫쳤다. 그리고 한참 은희의 머리만 쓸어 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주시기는 하지만 이미 억만 년 전부터 작정하신 일이야 우리 소소한 인생인들 구한다고 어떻게 주시겠느냐. 우리는 우리 정성껏 억지나 써 보고 주시고 안 주시는 건 하나님께 달렸느니라.”

아버지는 한숨과 함께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은희에게는 알아듣지 못할 말이었었다. 어른에게는 어른의 지식과 판단과 이론이 있는 것과 같이 어린애에게는 어린애로서의 지식과 판단과 이론이 있었다. 만약 아버지의 말이 옳다 할진대 성경에, ‘구하는 자 에게는 경우에 따라서 주시기는 하느니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었다.

반드시 주실 것이기에 주시마 했지 경우에 따라서야 주실 것이면 성경에 그렇게는 씌어 있지 않으리라는 것이 은희의 이론이었었다.

그러나 이 은희의 이론을 무시하고 어린애는 저녁에 마침내 죽었다. 집안이 둘러앉아서 어린애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는 가운데서 어린애는 마침내 이 세상을 버렸다.

그날 밤 은희가 정신을 못 차리고 울리라는 부모의 예기에 반하여 은희는 울지 않았다. 하 ― 얀 헝겊을 덮어 놓은 어린애의 시체의 머리맡에 꼭 붙어 앉아서 은희는 눈만 깜박 하고 있었다. 울음은커녕 한숨조차 쉬지 않았다.

‘구해도 안 주신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젠 수고도 다 했다. 며칠을 못 자더니 오늘은 좀 자라.”

어머니가 이렇게 말할 때에도 은희는 못 들은 듯이 그냥 앉아 있었다.

만수와 함께 세상의 광명의 전부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그에게 졸음이 올 리가 만무하였다. 그의 입술과 혀는 바작바작 말랐다. 콧속이 꺽꺽 붙었다.

이튿날 장례를 따라갈 때에도 그는 눈물 한 방울을 흘리지 않았다. 말도 한 마디도 안 하였다.

‘구하라. 그러면 주시리니.’ 허공과 같이 된 그의 머리에는 아무 실마리 없이 때때로 이 성경 구절이 휙 하니 지나가고 하였다. 그러나 그뿐 그 생각에는 앞도 없고 꼬리도 없었다….

만수를 잃은 뒤에도 은희의 집안의 생활은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은희의 생활에도 변화가 없었다.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서는 혹은 놀고 혹은 공부하 고 수요일의 저녁과 일요일은 예배당에를 출석하고 ―. 이러한 그의 생활의 프로그램에는 아무 변동도 안 생겼다.

그러나 사랑하는 동생 만수의 죽음이 어린 은희의 마음에 영향된 그 그림자는 컸다. 아직껏 남을 의심할 줄을 모르던 은희의 마음에는 이때 비로소 의심의 종자가 뿌려졌다.

의심은 지식의 근원이라고 옛날 철인(哲人)이 우리에게 가르쳤다. 온갖 사물을 정면으로 받아서 그냥 들어삼키던 은희는 만수의 죽음에서 처음으로 모든 것의 뒤에는 거짓이 있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깨달았다. 물론 이러한 생각이 그의 머리에 명확히 들어박힌 바는 아니었었다. 그러나 은연중 그의 온갖 사물과 이야기를 들어삼키기 전에 그것을 씹어 보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덧 그의 버릇으로까지 되었다.

예배당도 여전히 다녔다. 사경회에도 다녔다. 새벽 부흥회에도 어린 눈을 부비며 다녔다. 식전 식후와 잠자기 전후와 출입 전후에 드리는 기도도 역시 여전하였다. 그리고 자기로서도 신앙에 대한 흔들림이 생긴 줄은 뜻도 안 하였다.

“아버님께서 이런 맛있는 음식을 주시니 고맙게 먹겠읍니다.”

“오늘 하루를 아버님의 은총 중에 무사히 지낸 것을 감사하오며 이 밤도 또한 넓으신 사랑 가운데 편히 쉬게 하여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이러한 기도를 때를 갈라서 정성껏 드렸다.

그러나 만수의 죽음에서 생겨난 어린 마음에 받은 바의 커다란 상처와 그 상처의 산물인 회의는 그의 마음에서 그도 모르는 틈에 점점 성장하였다. 습관에 의지한 그의 종교 의식적 생활과는 독립하여 그의 마음의 한편에서는 그와 반대되는 마음이 차차 자랐다.

“예수를 믿으세요. 예수를 안 믿으면 지옥에 갑니다. 천당에 가려거든 예수를 믿으세요.”

전도회 때마다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붙들고 맑은 눈을 치뜨고 이렇게 전도하는 자기의 마음이 신앙에 대한 흔들림이 생겼다고 누가 은희에게 들려 주는 사람이 있으면 은희는 오히려 그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밖에는 볼 수가 없을 것이었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신앙에 대한 회의는 점점 더 커 갔다.

그러나 이런 일이 있었다. 그것은 만수가 죽은 지 이태 뒤의 일이었었다.

은희와 같은 조(組)에 다니던 생도 하나가 병이 위독하여졌다. 보름을 상학을 못한 뒤에 마침내 학교에 이제는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기별이 왔다.

선생의 인솔 아래 그 조(組) 생도들은 모두 병든 벗을 위문키 위하여 그 생도의 집으로 찾아갔다. 여위고 여윈 그 생도는 많은 동무들이 온 것도 모르는지 앓는 소리도 못 내고 눈을 감은 채로 숨만 허덕이고 있었다. 이불의 들 석거리는 푼수로 보아서 여윈 가슴의 들먹거리는 모양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선생의 지휘 아래 위문간 아이들은 앓는 동창의 위독한 목숨을 구하여 달라 엎디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생도들은 거의 다 흐늑흐늑 느껴 울었다. 소리를 내어 우는 생도까지 있었다. 그것은 과연 비창하고도 경건한 시간이었었다.

종교적 정열과 소녀로서의 감정에 들뜬 생도들은 그 집에서 나오면서 모두 경건한 마음 가운데서 우리가 이만큼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였으면 그 애의 병도 좀 나으리라고 수군들 거렸다.

그러나 은희뿐은 그 말에 참견치 않았다. 아까 기도할 때에도 그는 머리를 수그렸으나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구하는 자에게는 주시리니.’ 이러한 가운데서 그는 이태 전의 일을 다시금 머리에서 꺼내 보았다.

은희는 보통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로 갔다.

과학적 지식의 진보는 종교적 정열의 소멸을 뜻함이었다. 삼에 삼을 가하면 육일 것이다. 삼에서 삼을 감하면 영일 것이다. 삼을 삼곱하면 구일 것이다.

삼을 삼분하면 일일 것이다. 이 원칙에 어그러지는 일은 지식으로서 받아들 일 수는 도저히 없었다. 더구나 어렸을 때에 벌써 회의(懷疑)라 하는 문을 열고 들어선 은희는 감정적으로보다 오히려 이지적으로 발달된 처녀이었다.

그의 표면적 의식적 생활에는 여전히 커다란 변동은 없었다. 소녀기에서 처녀기로 들어선 그 변화에서 생긴 변동은 있었으나 눈에 나타날 만한 변동은 없었다.

그는 교회의 찬양대에 들었다. 아직 채 피지도 못한 처녀로서의 깜트트한 은희의 얼굴은 이쁘지는 못하였다. 웃을 때에는 입이 몹시 엷었다. 좌우 입 가에는 웃을 때마다 커다란 주름이 몇 개씩 보였다. 턱과 목에도 살이 올라 붙지 않았다. 어깨에도 뼈의 그림자가 적삼 위까지 두드러졌다.

그러나 그의 눈만은 놀랄 만치 맑고 크고 광채가 있었다. 그 위에 장식된 눈썹도 검고 이뻤다. 목소리는(누가 캘리쿨치라고 변명을 지을이만치) 아름다왔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눈과 목소리는, 찬양대의 가장 나이 어린 은희로 하여금 가장 남의 눈에 띄게 하였다.

찬양대에 든 뒤부터는 예배당에 다니는 재미가 더하여졌다. 매 일요일이 몹시도 기달리었다. 그리고 일요일마다 어머니가 내주는 새 옷을 입은 뒤에 예배당에 가서 꾀꼬리와 같은 목소리를 돋구어서 찬양대의 찬양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재미는 여간한 다른 재미와는 비교하지 못할 것이었었다.

더구나 학교 주최로서 종교에 대한 웅변회가 열렸을 때에 은희는 종교 신앙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였다. 종교 신앙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마음의 불안과 신앙에서 받는 바의 안심에 대하여 그는 까마티한 이마에 핏줄을 일어 세워 가지고 열변을 토하였다. 그리고 각색 종교의 가운데 예수교가 가지고 있는 지위와 가치를 논하였다.

“장래의 큰 일꾼.”

“하나님의 귀한 기둥.”

교역자들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은희를 이렇게 칭찬하였다. 그리고 그의 장래를 많이 촉망하였다.

그러나 이때는 은희는 예수에게 대한 신앙은 온전히 잃었을 뿐 아니라 의식적으로도 자기가 예수교의 신앙에 흔들림이 생긴 것을 깨닫기 시작한 때였었다. 예수교를 반대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그는 목에 핏줄을 세워 가지고 예수교를 변호하였다. 반대하는 사람의 반대 이유를 깨뜨려 버리기 위하여 그는 미약하나마 자기 머리에 들어앉은 과학 지식의 전부를 다 썼다. 그러나 예수교를 칭찬하는 노파들 앞에서는 또한 노골적으로 예수의 결점을 들추어 내기를 결코 주저치 않았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예수교의 품안에서 생장한 은희는 과학적 해부안(解剖眼)과 비판력이 생기기만 하면 그 결점을 드러내기에는 가장 적당한 사람에 다름없었다.

역시 종교를 배경으로 한 학교를 다녔다. 역시 예배당에 다녔다. 찬양대의 화형대원(花形隊員)이었었다. 유년 주일학교의 선생이었었다. 전도대로 나서면 그 상쾌하고 똑똑한 변설로 가장 새로 믿는 자를 많이 끄을어오는 일꾼이었었다 그러한 은희는 . 교회에서는 가장 사랑받는 처녀의 한 사람이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만은 예수에 대한 신앙과 정열은 하나도 없어졌다.

그의 하는 모든 종교 의식은 흥미 ― 흥미로써 설명이 안 된다면 다만 전부터 하여오던 일이매 그냥 계속하여 행하는 데 지나지 못하였다. 구하는 자에게는 주어? 여기 대한 분노는 지금은 한낱 비웃음으로도수가 낮아는 졌지만 낮아진 도수는 종교에 대한 정열과 상쇄된 분량에 다름없었다.

은희의 나이가 열여덟이 되었다.

까마티하던 그의 살빛은 부 ― 옇고 희게 빛났다. 웃을 때에 생기던 입술의 주름 대신으로 왼편 볼에는 이쁘다랗게 우물이 생겼다. 턱을 달걀같이 장식 한 그의 살은 목까지 넘어가서 목의 윤곽을 아름답게 하고 어깨를 둥그렇게 하였다. 거기 맑고 광채나는 두 눈은 시꺼먼 눈썹 아래서 그의 얼굴을 더욱 화려하게 꾸몄다.

그해 봄 그는 고등학교를 끝내고 그 학교 음악부로 들어갔다. 이쁜 가운데도 그래도 좀 갈린 듯한 고음(高 音)이 섞여 있던 그의 목소리는 이제는 원숙하여졌다. 음악부 가운데서도 그는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이었었다.

이해를 중축삼아 가지고 그의 마음에는 커다란 변동이 생겼다. 원숙한 처녀의 마음은 누구든 숭배하고 존경할 대상을 요구하였다. 자기로서는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지만 은희는 때때로 예고 없이 자기를 엄습하는 감정의 물결에 위압되어 책상에 기대고 운 적이 많았다. 앉을 둥 말 둥 자기의 몸과 행동을 지배할 판단을 얻지 못하여 마음이 뒤숭숭하여지는 때도 흔히 있었다.

밤중에 밝은 전등 아래서 거울과 마주 앉아서 기껏 핀 자기 얼굴을 들여다 볼 때는 이 뜻 없고 흥미 없이 지나가려는 청춘 때문에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구른 때가 여러번 있었다.

그러나 마음의 경건함은 조금도 줄지를 않았다. 때때로 이름뿐은 아는 ― 혹은 알지도 못하는 사내에게서 편지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러한 편지를 그는 속을 펴 보지도 않고 그냥 불살라 버렸다. 편지를 보냈음직한 사내를 길에서 혹은 예배당에서 볼 때에는 얼굴에 탁 침이라도 뱉어 주고 싶었다. 그러한 천박한 행동에 대한 경멸감은 비록 종교의 신앙을 잃었다 하나 경건함을 자랑하는 은희에게는 타기할 일에 다름없었다. 찬양대에 나서서 찬송을 할 때에도 한 번도 남자 쪽을 곁눈질도 해보지 않았다.

‘구하기 쉽잖은 처녀.’ 은희의 이름은 이러한 형용 대명사 아래서 차차 높아 갔다.

그해 크리스마스에 그 학교에서는 종교극을 하였다. 은희는 성모 마리아로 분장하였다.

그것은 거룩하고도 엄숙한 장면이었다. 예수는 세상 사람의 죄악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서 세상을 떠났다. 그 십자가 아래 성모 마리아는 사랑하는 아드님의 최후를 통곡하였다. 비록 예수의 죽음은 커다란 의(義)에서 나온 일이라 하되 마리아의 견지로 보면 그것은 다만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것 밖에는 아무 뜻도 없었다. 사랑하는 아들의 비참한 최후에 마리아는 목을 놓아서 통곡하였다.

관중도 눈물 머금었다. 그것은 성극이 아니요 인정극이랄 수가 있는 장면이었었다. 이 장면을 할 때에 은희는 스스로 감격되어(연극이 아니요) 정말로 목을 놓아 처 울었다.

이 날을 기회로 은희의 마음은 뒤집어 놓은 듯이 변하였다.

그는 찬양대원의 자리를 사퇴하였다. 유년 주일학교의 교사라는 명목도 집어던졌다. 이러한 경박한 혹은 한낱의식에 지나지 못하는 명색들을 집어치우고 한 개의 진실한 교인이 되고자 한 것이었었다.

예수의 비참한 희생은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었었다. 다른 온갖 것을 보지를 않더라도 세상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바쳤다 하는 것은 처녀 은희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넉넉하였다. 몸소 성모 마리아로 분장을 하고 그 비통한 장면을 연출할 때에 그때에 받은 감격은 그로 하여금 예수의 다시 보지 못할 커다란 희생에 대한 존경과 애모의 염을 솟아나게 한 것이었었다.

“예수시여.”

때때로 몸을 고민하듯이 떨며 하소연하는 자기를 그는 발견하게 되었다.

그 뒤부터는 은희는 눈에 뜨이는 새로운 성화(聖畵)는 할 수 있는 대로 구하여다가 자기 방에 장식하였다. 성모의 품에 안긴 예수, 열두 살 때에 학자들과 지식을 다투는 예수, 제자들을 가르치는 예수, 십자가를 진 예수, 가시관을 쓴 예수, 십자가 위에 달린 예수, 승천하는 예수―가지각색의 크고 작은 성화는 그의 방 사벽에 장식되었다.

그는 할머니 같아졌다. 그와 동갑세의 처녀들이 멋을 부리느라고 예배당에 를 다니고 찬양대에 들고 전도대에 다닐 동안 그는 예배당 한편 구석 어둑신한 곳에 앉아서 떨리는 듯한 경건한 마음으로 묵도를 하고 있었다. 부활제에 새벽 찬송을 하러 돌아다니자는 권고도 단연히 거절하여 버렸다. 그러한 모든 유흥 기분이 섞인 행동을 그는 독신(瀆神)으로 보았다.

처녀의 온 정열을 예수에게 바친 은희는 세상사에는 매우 무심하였다. 연애를 하느라고 울며불며 하는 동무를 대단한 경멸감으로써 내려다보는 은희였었다.

“은희는 꼭 올드미스 같아.”

친구들이 이렇게 놀리는 말도 은희는 코웃음으로 들을 수가 있었다. 한때 청춘의 은희에게 일어났던 떨리는 듯한 괴상한 감정은 그의 마음에 예수에 대 한 애모의 염이 일기 시작한 뒤부터는 어느덧 사라져 없어졌다. 그리고 그때의 그 정열은 죄다 예수에게 부어졌다.

은희는 자기의 예수에게 대한 애모의 감정이 처녀로서의 터져 오르려는 ‘청춘’인 줄은 뜻도 안 하였다. 넘쳐 나려는 마음속의 사랑의 불길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헤매다가 그의 앞에 나타난 한 환영 ― 예수의 위에 부어진 줄은 뜻도 안 하였다. 뿐만 아니라 누가 있어서 그러한 말로써 그를 깨우쳐 준다 하면 그는 오히려 그 사람의 하나님을 저퍼하지 않는 무서운 말에 몸을 떨 것이었었다.

“예수시여.”

그는 때때로 몸을 고민하듯이 떨면서 예수의 존영을 쳐다보며 이렇게 하소연하였다.

어떤날 저녁이었었다. 밤 기도회에서 좀 늦게 돌아온 은희는 책상 귀에 의 지하고 앉았다. 그의 꼭 눈 맞은편에는 다빈치의 소화(素畵)인 예수의 존영 의 사진판이 걸려 있었다. 그것은 예수의 다른 존영과 달리 수염이 없는 존 영이었었다. 좀 머리를 한편으로 갸웃하고 눈을 감고 얼굴에는 고민하는 표정이 나타나 있는 것을 그린 존영으로서 표정의 위재(偉才) 다빈치의 붓끝으로 되니만치 고민하는 가운데서도 온화함과 사랑에 넘치는 얼굴은 넉넉히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존영은 은희가 가장 좋아하는 예수의 화상이었었다.

은희는 책상 귀에 의지하고 앉아서 그 존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깊은 밤 고요한 데서 바라보는 존영은 다른 때에 보는 것과도 그 받는 감동이 달랐다.

한참을 정신 없이 바라볼 동안 그림의 예수의 눈이 조금 벌려졌다. 그리고 그 조금 벌려진 틈으로 동자를 천천히 구을려서 은희를 바라보았다.

은희는 몸을 떨었다. 그의 눈은 미칠 듯이 광채가 났다. 얼굴에는 차차 피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숨소리조차 차차 높아 갔다.

‘예수시여.’ 은희가 펄떡 정신을 차릴 때는, 그는 어느덧 그 존영을 끌어다가 뺨에 대고, 정신 없이 그 존영에다가 자기의 ‘처녀의 부드러운 뺨’을 부비고 있던 것이었었다.

그는 자기가 방금 행한 독신의 죄를 뉘우칠 여유도 없었다. 자기의 한 행동이 어떤 것인지 살펴볼 여유조차 없었다. 펄떡 정신을 차리는 순간 그는 그 자리에 쓰러져서 처녀의 북받쳐 오르는 정열에 울었다.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은희는 스무 살 나는 해 봄에 결혼하였다.

그의 남편 되는 사람은 역시 예수교의 어떤 교역자의 아들이었다. 나이는 스물여덟 은희와는 두 번째 결혼. 은희의 정열은 자기의 앞에 나타난 이 이성의 위에 마침내 맹렬하게 불붙어 올랐다. 그의 앞에는 처음으로 정당히 사랑 할 사람이 나타난 셈이었었다.

신혼의 생활은 꿈과 같았다. 남편은 안해를 사랑하였다. 안해는 남편을 사랑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결같이 그리스도를 믿고 힘입었다. 수요일의 저녁과 일요일마다 새로운 부처는 팔을 겯고 예배당에 다녔다. 그리고 돌아 올 때마다 예수의 넓은 덕을 칭송하였다.

신혼한 색시의 방에도 처녀 시절에 자기 방에 장식하였던 그리스도의 존영을 장식하는 것을 은희는 결코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로써 남편과 자기의 새의 의사가 더욱 소통되는 듯이 여기고 있었다. 같은 신자로서 같은 사람을 존경하고 사모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더욱 밀접히 하는 돌쩌귀가 될 것이므로…….

그러나 혼인한 지 얼마 뒤에 어떤 날 어디 나갔다가 돌아온 은희는 방 담벽에서 다빈치의 그리스도의 존영을 발견하고 그것을 들여다 볼 동안 그 존영이 몹시도 낯설어진 데 오히려 놀랐다. 동시에 그는 처녀 시절에는 매일 무시로 바라보고 사모하던 그 존영을 이즈음 두 달이나 거진 한 번도 살펴 보지 못한 것을 경이에 가까운 마음으로 기억에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서 생겨나는 외로움조차 느꼈다.

그날 밤 그의 남편은 무슨 일로 좀 늦게 돌아오게 되었다. 그 조용한 틈을 타 서은희는 다빈치의 예수의 존영을 내리어서 전등갓 가까운 데 갖다가 걸었다. 그리고 그 앞에 앉아서 그 그림을 바라보았다. 처녀 시절에 그 그림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던 정열을 한 번 다시 느껴 보고 그 감격에 다시 한번 잠겨 보고자 한 것이었었다. 아무리 그리스도에게 대한 경애의 염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나 은희는 결혼한 이래로 아직 한 번도 이전에 처녀 시절에 맛보는 만한 정열과 동경을 그리스도에게 느껴 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었다. 그러나 예수의 존영에 눈을 던졌던 은희는 그 던졌던 눈을 곧 다시 다른 데로 옮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은 감고 있다 하나 수염도 없고 아주 이쁘장스런 사내의 고민하는 얼굴과 온화한 표정은 인처(人妻)인 은희로서는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리스도의 예쁘장한 화상을 바라보고 거기 대하여 괴상한 감정이 북받치려 할 때에 은희의 마음에 물건의 그림자와 같이 움직인 것은 그의 남편의 일이었었다. 그리고 화상의 그리스도는 그때의 은희의 눈에는 성자도 아니요 신도 아니요 한 개의 미남자에 지나지 못하였다.

그는 남편에게 대하여 큰 죄를 범한 듯이 그 그리스도의 존영을 내리어서 곧 책상 위에 엎어 놓고 말았다.

이튿날은 다빈치의 예수의 존영이 들었던 비단 사진틀에는 은희의 손으로 은희의 남편의 사진이 들어갔다. 그리스도의 존영은 책갈피에 끼워서 책상 속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놓인 남편의 사진을 바라볼 때에 은희는 이전 처녀 시절에 예수의 화상을 바라볼 때에 느낀 바 감정과 근사한 감정을 느꼈다.

그 뒤 어떤 일요일 날 은희는 예배당에서 문득 아무 까닭 없이 공중에서 흐느적거리는 다빈치의 그리스도의 화상을 보았다. 은희는 머리를 힘있게 저 어서 그 그림자를 머리에서 지워 버리려 하였다. 그러나 지우려면 지우렬수록 그 그림자는 더욱 분명히 보였다. 이쁘장하게 닫긴 입과 온화하게 닫긴 눈은 고민하는 듯한 얼굴을 배경으로 더욱 분명히 은희의 눈에 보였다. 은희는 예배를 끝내지도 않고 그만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뒤에도 예배당에 갈 때마다 은희는 그리스도의 화상을 공중에서 보았다.

이쁘장스런 사내의 화상 ― 남편에게 대한 애정과 의무는 은희로 하여금 남편이 아닌 이쁘장한 사내를 화상으로나마 바라보는 것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은희는 마침내 그 불유쾌한 일을 피하기 위하여 예배당을 그만두었다.

“예배당에 안 갈려우?”

그 일요일 날 예배당에 갈 차림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안해에게 남편은 이렇게 물었다.

“머리가 좀 아파서요.”

안해는 흘리는 애교를 눈에 담아 가지고 남편을 쳐다보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의 남편으로서 만약 독신자(篤信者)일 것 같으면 이 자리에서 당장에 안 해를 꾸짖어서 예배당에 가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그러나 남편 역시 안해가 안 가겠다는 것이 다행인 듯이 자기도 번듯 그 자리에 넘어졌다―.

“나도 머리가 휑뎅하군. 오늘 하루 예배당에 그만둘까?”

이러고는 안해의 의견을 요구하는 듯이 안해를 바라보았다. 안해는 미소로 써 대답하였다.

그 다음 일요일도 안해는 머리가 아프고 남편은 머리가 휑뎅하였다. 그리고 일요일마다 까닭 없이 예고 없이 쏘고 휑뎅해지는 그들의 머리는 그 뒤에도 늘 일요일만 되면 발병되고 하였다.

이리하여 은희의 신앙에는 마침내 최후의 결단이 난 것이었었다. 어렸을 때의 그야말로 태산이라도 움직일 신앙은 그의 오라비동생의 죽음에서 파탄이 생겼다. 거기서 틈이 생긴 신앙은 은희의 배운 바 과학이 마침내 말끔히 쓸어 내어 버렸다. 처녀의 정열은 한때 그리스도께 귀의(歸依)해 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연애로서 설명할 것이지 신앙이 아니었었다. 은희의 앞에 정열을 바칠 정당한 사람 ― 남편이 나타날 때는 한때 임시로의 마음을 점령하였던 환영은 쫓겨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은희 왜 예배당에 부지런히 안 다니나?”

“누님이즈음 왜 게으르시우?”

교역자들에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은희는

“살림살이를 하자니깐 참 바빠서― 자연히 게으르게 돼요. 가야겠다 생각은 하면서도….”

하면서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그러나 그런 때마다 처녀 시절에 제 온 정성을 바치던 이쁘장스런 그리스도의 화상이 그의 눈앞에 어릿거려서 그로 하 여금 그 그림자를 지우기 위하여 머리를 젓게 하는 것이었었다. 그리고 그런 때마다 그리스도의 화상 뒤로는 그의 남편의 그림자가 나타나서 은희의 정조적(貞操的) 양심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었다.

“살림살이가 아무리 바빠도 예배당에는 빠지지 않고 다녀야지 게으르면 되나?”

교역자들이 은희의 말을 무시하여 버리고 이렇게 다시 권할 때는 은희는 그 교역자들을 어서 돌려 보내기 위하여 이 다음 주일부터는 꼭 다니겠노라 고 맹세를 하는 것이었었다.

그러나 그 다음 주일이 되면 은희의 머리는 또 아팠다. 남편의 머리는 또 휑데 ―ㅇ하였다. 어떤 때는 은희의 머리가 아프기 전에 남편의 머리가 먼저 휑데 ―ㅇ해지는 때도 있었다.

“우리 집에서라도 예배 봅시다.”

그래도 미안스러운지 안해는 비교적 엄숙한 얼굴로 때때로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그럽시다.”

남편도 귀찮은 듯이 대답하고 안해와 마주 앉고 하였다. 그러나 급기 예배를 시작한 뒤에는 단둘이 빽빽 소리를 지르며 찬미를 하는 것이 우스워서 누구든 한 사람이 픽 하니 웃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런 뒤에는 예배고 무엇이고 내어던지고 두 사람은 허리를 두드리며 웃는 것이었었다.

결혼한 지 일 년 반이 지나서 은희는 첫 아이를 낳았다. 그것은 밀동자와 같이 매끈한 아들이었었다. 비교적 미남자로 생긴 은희의 남편을 닮아서 갓난애는 살결이 희고 눈정이 맑았다.

한 사람의 속에 발휘할 애정의 분량이 얼마씩이나 들었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은희는 아직껏 자기의 속에 있는 바의 애정의 전부를 제 남편 위에 부 은 줄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몸에서 나온 이 고깃덩이 위에 은희의 애정은 또다시 한량없이 부어졌다. 남편에게 대한 애정은 조금도 줄지 않았는 데도 어디서 생겨난 애정을 이 새로운 고깃덩이 위에 부을 수가 있었다.

한 달 된 어린아이는 한 달 되니만치 사랑스러웠다. 두 달 된 어린아이는 두 달된 만치 사랑스러웠다. 반 년이 지난 뒤에는 또한 반 년이 지난만치 사랑스러웠다. 그 사랑스러울 때마다 ‘이보다 더 크면 이젠 자미 없으려니’ 하고 근심하여 보았지만 작으면 작으니만치 크면 크니만치 어린애는 사랑스러웠다.

여덟 달이 지난 뒤에는 어린애는 지척지척 걸어다니기를 배웠다. 그 어린애의 허리를 띠로 매어 가지고 걸음걸이를 연습시키는 젊은 어머니의 눈에는 천하에 많고 많은 다른 일은 존재할 가치조차 없었다. 이 어린애뿐이 천하에 유일한 존재였었다. 비록 혼자 있을 때라도 온갖 태도와 옷차림의 단정함을 자랑하던 은희도 어린애를 기르기 위해서는 오줌똥 묻은 앞치마를 그냥 입고 머리를 구수수하게 한 채로 저고리 고름조차 단정히 매지 못하고 어린애를 따라다녔다 어떤 때는 . 그 꼴을 한 채로 어린애를 따라서는 대문 밖까지 나가 본 적도 있었다.

“이애가 오늘은 쩌쩌 해요. 말 한마디 더 배와서 인젠 야단났군.”

“쩌―? 그게 무슨 말일까?”

“무슨 말이란, 젖이란 말이지.”

“옳아. 쩌―라. 그럴 테―ㄴ데.”

젊은 부처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도 어린애의 하는 일이라면 서로 외고 기뻐하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훌륭한 아들을 주세서―.”

교역자들이 그들 부처를 심방을 왔다가 이런 축사를 드리고 돌아가면 돌아 간 뒤에는 젊은 남편은 어린애를 끄을어다가 어리둥둥을 하였다.

“하나님이 줘? 내가 만들었지. 여보, 그렇지 않소? 응? 어때?”

“뭐이 또!”

얼굴을 새빨갛게 해가지고 남편의 말에 대답을 하는 안해는 남편에게 어린 아이를 달라고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내 아들 내가 좀 데리고 노는데 왜 달라고 이리 성화야.”

“어째서 당신 아들이란 말이오? 내 아들이지.”

“내 아들 아니구.”

“어째서?”

“내가 만들었거든.”

“뭐이 또!”

이리하여 젊은 부처는 사랑하는 아들을 가운데 놓고 각시놀음과 같은 재미있는 살림을 하였다. 예수교의 신앙은 형태만 남았던 것조차 인제는 다 없어 졌다. 사랑할 대상을 둘씩이나 가진 그들은 인제는 그들 이외의 다른 곳으로 보낼 사랑을 가지지도 못하였다.

한때 은희의 눈앞에 어릿거려서 은희로 하여금 남편에게 대한 미안을 느끼게 하던 다빈치의 그리스도의 화상도 인제는 다시 은희의 눈앞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한 번 무슨 책을 얻느라고 책장을 뒤적이다가 거기서 그때의 그 존영을 발견하고 잃었던 물건을 얻은 듯이 불유쾌와 희열의 교착된 마음으로 은희가 그 존영을 들여다볼 때에도 그 존영은 은희의 마음에 아무런 감동도 일으키게 하지 못하였다. 그 존영은 은희의 생활과 감정과는 아무 관련 이 없는 한국외의 물건에 지나지 못하였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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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必立)’ ― 은희네 부처가 금과 같고 은과 같이 귀히 여기는 아들의 이름은 이것이었었다. 물론 그 이름의 배경에는 예수교가 있고, 이름 뿐으로는 그 아이는 독신자(篤信者)의 자식으로 보겠으나 필립의 부모는 이때에는 벌써 노골적 무신론자였었다.

필립은 나날이 자랐다. 그리고 자라면 자랄수록 이뻐 갔다. 필립이 한돌이 조금 넘었을 때에는 벌써 성큼성큼 뛰어다녔으며 쉬운 말은 다 하였다.

“파파 신문.”

“마마 화장.”

이러한 말 ― 시골 어른도 능히 모를 말까지 알았다. 살결이 희고 뺨에 살 이 풍부하고 눈이 어글어글한 필립은 남의 주의까지 몹시 끄을어서 길에서 보는 모르는 사람도 “그놈 잘생겼다”고 칭찬하고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서 그의 부모의 득의는 입으로 이를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나 이렇듯 이쁘고 사랑스러울까’ 은희에게는 이런 걱정이 때때로 났다. 지금 기쁨과 사랑의 절정에 다다른 그는 이 이상 필립이 이뻐질 수는 도저히 없을 것같이만 생각됐다. 그리고 인젠 더 이뻐질 가능성이 없는 데 대한 막연한 외로움조차 느끼고 그때문 에 때때로 남 모르는 한숨까지 쉬었다.

그러나 자식에게 대한 부모의 사랑은 무엇으로도 비길 수가 없었다. 그 뒤에도 필립이 새로 시작하는 온갖 시늉이며 행동에 은희는 이전보다 더욱 이 쁨을 필립에서 발견하고 차라리 놀랐다. 한 마디씩 배워 가는 창가, 어머니 가 새 이쁜 옷이라도 입으면 한사코 그것을 달려들어서 더럽혀 놓고야 마는 사랑스런 심술, 잠자면서 헛소리를 하느라고 입을 들먹거리는 양, 길에서 본 일에 대한 시늉 ― 때때로는 다른 사람이 보면 어린애로서는 바스러진 짓이라고 눈을 찌푸릴 만한 행동까지도 은희에게는 사랑스러웠다.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필립이 아까 아리랑타령을 해요. 제법 ―.”

“아리랑을? 나도 좀 들을걸.”

“인제라도 시킵시다그려. 필립아, 너 착하지. 어디 또 한번 해 봐라. 아 ― 리랑 아 ― 리랑.”

그러면 필립은 어글어글한 눈을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치뜨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벼르다가 노래를 시작하는 것이었었다.

―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 ― 하하하하! 커다란 만족과 웃음의 가운데서, 남편은 필립을 끄을어다가 입을 맞추며 사랑의 눈초리를 부은 채로 묻는 것이었었다 ―.

“너, 임이 무엔지 아느냐?”

“알잖구.”

“뭐야?”

“좋아하는 여편네지 뭐야.”

필립은 어린애에게 당찮은, 임의 의의(意義)를 막연히나마 알았다. 그러나 이것조차 은희의 부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웠다.

“하하하하! 조그만 놈이…. 그래 너 임 있느냐?”

“없어. 난 없어두― 그래두―.”

“그래두? 그래두 어때?”

“파파야 있지?”

“파파가 있어? 그래 누구란 말이냐?”

“맘마가, 파파 임 아냐? 난 다 알아.”

“하하하하! 요놈, 벌써 그런 소릴 해서는 못써.”

비록 못쓴다고 꾸짖는 양은 하나, 그것은 결코 꾸짖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에 넘치는 부모의 눈에는 어린애의 여하한 행동도 이뻐만 보였다. 이런 언행도 필립의 부모의 눈에는 조달(早達)로 보였다. 그리고 자기네 아들 필립은 천동(天童)이어니 하고 기뻐하였다.

이러한 관대한 부모 아래서, 필립은 나날이 성장하였다. 무럭무럭 보이게 컸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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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의 세 돌도 지났다. 어떤 날 길에 필립을 끄을고 나갔던 은희는 귓결에 ‘조달한 아이는 단명하다’는 말을 들었다. 조달한 아이를 가진 어머니의 귀에는 이 말은 결코 그저 넘기지 못할 말이었었다. 거기서 어떤 불안증을 받은 은희는,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그 말을 외어 보았다.

남편도 그 말을 들은 뒤에는 한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곧 웃어버렸다 ―.

“그게 다 바보 자식을 둔 부모가 부러움 끝에 꾸며 낸 말이야. 별 걱정을 다 하네.”

남편은 이렇게 단언하여 버렸다. 그러나 그 속담말을 맞추려는 듯이 삼사 일 뒤에 어린 필립이 문득 독한 고뿔에 걸렸다. 즉일로 소아과의 이름 있는 의사가 필립을 위하여 왔다. 전속 파출 간호부 하나이 고빙되었다. 필립의 부모도 곁을 떠나지 않고 간호하였다. 과학의 승리를 자랑하는 가장 완전한 흡입기며 가장 정확한 체온기가 구입되었다. 그리고 의학의 할 수 있는 힘을 다하여 어린 필립을 독감에서 구하여 내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런 모든 노력도 헛되이 필립의 병은 사흘 뒤에는 마침내 그의 기관지를 침범하였다. 사흘이 더 지나서는 마침내 필립의 어린 폐까지 침범하였다.

처음에는 피곤함에 못이겨서 때때로 자며 깨며 사랑하는 아들의 병을 구완 하던 은희도 필립의 병이 폐렴으로까지 된 뒤부터는 한잠을 자지를 않았다.

아니 자지를 못하였다.

이때부터 은희의 머리는 지금부터 십수 년 전에 자기의 눈앞에서 자기의 간호 앞에서 참혹히 저 세상으로 가 버린 어린 동생 만수의 모양이 무시로 비상히도 똑똑히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헤적이던 입 굳게 감겨있던 눈 ― 십 수 년을 잊어버렸던 기억이 사랑하는 어린 아들의 위독한 병 앞에 문득 은희의 머리에 소생하였다.

“필립아 답답하냐?”

“필립아 무얼 먹고 싶으냐?”

어린애의 뜨거운 뺨에 입을 대고, 이렇게 떨리는 소리로 묻는 어머니의 음성은 오히려 엄숙하였다. 그러나 어린애의 입은 봉하여진 듯이 열리는 일이 없었다. 병이 폐렴까지 된 뒤부터는 울지도 못하였다. 너무 답답할 때는 마치 어른과 같이 손으로 천천히 이불을 젖혀 놓으면서 기다랗게 한숨을 쉬며 양손으로 두어 번 꺽꺽 허공을 잡아 보는 뿐 그 능변(能辯)이던 입에서는 한 마디의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답답함도 결코 그 어린애의 답답함에 지지 않았다. 어린애가 답답함에 못이겨서 양손을 들고 꺽꺽 허공을 잡을 때마다 어머니도 안타깝고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여 발가락을 까부러뜨리며 눈을 지르 감고 하였다.

어린애의 병이 폐렴으로 된 뒤부터는 애의 아버지는 병실에는 좀체 들어오 지도 않았다. 사랑에서 연방 어멈을 들여보내서 어린애의 병을 알아보는 뿐 들어오지조차 못하였다.

간호부를 고빙하였다 하나 간호부는 곁에서 심부름을 하는 뿐 ― 직접 어린 애를 간호하고 보호하는 것은 어린애의 어머니였었다. 비록 간호부보다 그 솜씨는 숙련되지 못하다 하나 고등한 교양을 받은 은희는 간호부의 간호와 어머니의 간호가 병든 어린애의 마음에 주는 영향과 결과를 잘 알므로였었다. 더구나 혈통상 아무 연락이 없는 간호부의 다만 한낱 의무적 간호에 사랑하는 아들의 목숨을 내어맡길 수는 도저히 없었다.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무릎 한번 움직이지 않고 미음을 먹어 가면서 은희는 어린애를 간호하였다. 지성은 감천이란 말이 만약 거짓이 아닐진대 하늘은 마땅히 은희의 정성에 감동치 않으면 안 될 것이었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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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정성도 하늘은 몰라보았다. 어린애는 폐렴이 된 지 사흘째 되는 저녁 마침내 가망이 없이 되었다. 은희가 십수 년 전에 어린 동생 만수의 최후에서 본 바의 현상― 답답한 듯이 헤적이던 온갖 행동을 멈추어 버리고 비교적 평온하고 온화한 모양― 을 은희가 필립에게서 발견한 것은 폐렴이 된 지 사흘째 되는 저녁이었었다.

사흘을 미음만 조금씩 먹어 가면서 한잠을 자지를 않고 다리 한 번 펴보지 못하고 병간호를 한 은희는 이 날은 벌써 자기로도 자기에 대한 온 판단력을 잃은 때였었다. 아직껏 답답함에 못이겨서 헤적이던 어린애가 비교적 평온하게 될 때에 은희는 인젠 가망이 없다고 생각할 뿐 그냥 움직이지 않고 그 모양대로 앉아 있었다. 비교적 평온한숨을 규칙 바르게 쉬는 어린애의 얼굴을 때때로는 안개를 격하여 보는 듯이 때때로는 비상히 똑똑히 ― 바라 보면서 앉아 있는 은희의 머리는 각일각 나락의 밑으로 떨어져 들어갔다. 세상 만사가 모두 중하고 의미 없고 흐리멍덩한 가운데서 이리 바뀌고 저리 뒤채는 것이 귀찮고 시끄럽기가 짝이 없었다.

“만수야 너 필립하고 싸우지 마라.”

여기서 한 번 펄떡 정신을 차렸던 은희는 무릎을 조금 움직일 뿐 다시 어렴풋이 어린 필립을 내려다보았다.

즉 필립의 주위에는 불이 있었다. 그것은 무서운 불이었었다. 시뻘겋게 불 붙는 가운데 필립의 얼굴만 두드러지게 나와서 답답한 듯이 양손을 헤적이며 어머니를 찾고 있었다. 필립의 주위에 있는 불은 더욱 맹렬히 타올랐다.

온갖 것을 다 사르려는 듯이 맹렬히 타올랐다. 필립의 옷에도 불이 당긴 모양이었었다. 몸이며 사위(四圍)를 온통 불에 둘러싸인 필립은 머리와 양손만 이불 밖으로 내어놓고 누구를 찾는 듯이― 틀림없이 어머니를 찾는 듯이 헤 적였다. 은희는 사랑하는 아들을 그 무서운 불에서 구하려고 맹연히 어린아 이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그는 새빨간 처네이불을 손으로 쓸어안았다. 그 가 시뻘건 불이라 본 것은 전등에 반짝이는 비단 처네였었다.

필립이 눈을 떴다. 그의 눈에는 오래간만에 웃음의 그림자가 있었다. 일 주일 내외에 무섭게 여윈 필립은 그 여윈 뺨에 주름을 내며 빙긋이 웃었다.

“맘마, 왜 그래?”

“응 필립이냐. 자라 나 여기 있다.”

유황불이다! 필립은 지옥에 간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필립은 영구히 솟아날 길이 없는 지옥의 유황불구렁텅이에 빠진다. 은희는 펄떡 몸을 일으켰다.

“간호부! 간호부!”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여 엎드려 잠이 들었던 간호부가 덤비는 대답으로 일어났다.

“네? 네?”

“나가서 선생님 좀 여쭈어.”

선생님이라 함은 은희 자기의 남편을 가리킴이었었다. 선생님이라는 것이 의사를 가리킴인지 주인을 가리킴인지 잘 알아듣지 못한 간호부가 망설일 때에 은희가 벌컥 성을 내었다.

“선생님― 이 애 아버지 좀 여쭈어 와요! 잠만 쿨쿨에이 귀찮어.”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간호부는 주인 아씨의 분부대로 황망히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나갈 동안 은희는 안타깝고 급함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이 손발을 오들오들 떨면서 미친 사람같이 휘번득이는 눈을 사랑하는 어린 아들의 위에 붓고 있었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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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철도 없는 어린아이, 아직 죄악이라는 것을 모르는 어린아이 ― 아직 걸음걸이에도 온전히 기운이 들지 않은 잔약한 아이 ― 세상의 복잡한 의의(意義)를 아직 알지 못하는 천진한 아이 ―이 아이가 죽으면 어디로 가나?

다행히 내세(來世)라는 것이 없으면 여니와 불행히 내세라는 것이 있고 내세에는 천당과 지옥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 아이는 어디로 가나? 유황불 구덩이의 지옥? 혹은 사시 장춘의 천당?

내세라는 것이 있고 천당 지옥의 구별이 있으며 이 아이가 죽은 뒤에 아직 아무 죄악도 없었다는 이유 아래 천당으로 가게 되면 다행이어니와 불행히 지옥으로 간다면 이를 어쩌나? 아직 걸음걸이에도 기운이 들지 못하였던 이 잔약한 아이가 영원한 유황불 구덩이에 들어간다면 이를 어쩌나?

이 애는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다. 비록 아직 아무 죄도 범치는 않았다 하나 천국에 들어가는 제일 도정인 세례도 받지 않았다. 이 애의 부모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무신론자다. 아니한 때 가졌던 바의 신앙을 의식적으로 내어던진 반역자다. 처음부터 주의 도를 모른 것보다도 더욱 무서운 죄악이다 이러한 부모의 자식으로 . 아직 세례도 받지를 못한 이 어린아이가 죽으면 어디로 가나?

간호부의 전언에 의하여 그의 남편이 황황히 들어왔다.

“에? 에? 왜 그러우?”

미칠 듯이 휘번득이던 눈을 은희는 남편에게로 천천히 옮겼다.

“목사님 좀 여쭤다 주세요.”

남편도 뜻안한 은희의 요구에 놀란 모양이었었다. 그의 눈도 커졌다.

“왜?”

“이 애가 임종이어요. 세례라도 줘야지….”

“이 어린 게 지옥에라도 가면 어떡헙니까? 아무 철도 모르고 아직―.”

은희는 말을 맺지를 못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안해의 말의 뜻을 알아채었다. 더욱 크게 한 눈을 안해에게서 위독한 어린애게로 잠시 옮겼다가 남편은 잠에서 깨듯 히끈 돌아섰다.

“그럼 내 얼른 다녀올께.”

“얼른 다녀오세요. 모자―.”

그러나 남편은 모자를 쓸 생각도 안 하였다. 그냥 휙 돌아선 채 꼬리가 빠지게 밖으로 나갔다. 곧 대문 소리도 철컥 하니 났다.

“원장님 좀 모셔올까요?”

간호부가 근심스러이 가까이 와서 볼 때에 은희는 증오로 불붙는 눈으로 간호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부르짖었다 ―.

“목사― 목사!”

그리고 그것으로도 시원치 않은 그는 행랑아범을 불러서 빨리 남편의 뒤를 따르게 하였다.

“달음박질해서 서방님이 미처 못 쫓아오신대두 혼자라도 앞서서 가서 K목사님 좀 얼른 와줍시사구― 얼른! 늦으면― 늦으면―.”

늦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적당한 저주의 문구가 생각나지 않은 그는 두어 번 침을 삼킨 뒤에 왈카닥 하니 문을 닫아 버렸다.

지금은 어디쯤 지금은 어디쯤― 한창 목사 댁을 향하여 달려갈 행랑아범을 머리에 그려 놓고 그 통과할 곳을 머리에 그리고 있는 은희는 자기 집안의 시간이 지독히도 빨리 가는데 밖의 시간이 도무지 가지 않음이 안타깝기가 한량 없었다.

두루마기를 입는 목사 모자를 쓰는 목사 신을 신는 목사 ― 어서! 어서! 신이 바로 신겨지지 않거들랑 맨발로라도! 필립은 지금 임종이외다. 한 초를 다투지 않을 수가 없는 급한 경우외다. 왜 두루마기 고름 같은 것은 오면서라도 매지 않습니까 목사가? 오기까지도 필립은 숨소리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14

[편집]

한 초를 유예할 수가 없는 은희는 들어서는 목사를 채근하여 어린 필립에게 세례를 주기로 하였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네게 세례를 주노라.”

곱게 어머니에게 안긴 어린애에게 목사는 엄숙한 태도로 세례를 주었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곱게 눕힌 뒤에 세 사람은 어린아이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드렸다.

“이 아이를 받아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뜻대로 지금 아버님께 돌려 보내오니 이 어린 영혼을 아버님의 나라에 받아 주시옵소서.”

이러한 기도 ―은희는 아직껏 많고 많은 기도를 드렸지만 이만치 경건하고 엄숙하고 진심에서 울려 나온 기도를 드려 본 적이 없었다.

어린아이는 이 기도와 세례를 기다리느라고 쓸데없는 목숨을 아직껏 붙여 가지고 있었던 듯이 세례와 기도가 끝난 뒤에 고요히 이 세상을 떠났다. 한 마디의 신음도 없이 살결 희고 예쁜 얼굴에 미소를 띠어 가지고 이 세상을 떠났다.

그날 밤 간호부까지 돌려보내고 부처 단 두 사람이어서 어린애의 밤경을 하였다. 하얀 보자기로 덮어 놓은 어린 시체 앞에 두 젊은 부부는 경건한 태 도로 꿇어앉아 있었다. 그들은 가장 사랑하던 아들을 잃은 애통 아래서도 이 상히도 지금 일종의 안심조차 느낀 것이었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것은 쓸쓸하고 아프다. 그러나 그 애가 혹은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기쁘게 놀지도 모르겠다 할 때에 그들은 애통 가운데서도 일종의 안심을 느낀 것이었었다.

“여보세요.”

아내는 눈물 머금은 눈을 천천히 남편에게로 향하며 남편을 찾았다.

“응?”

“우리도 이 다음 주일부터는 에배당에 다닙시다.”

“그럽시다.”

“천당 지옥이 없으면 여니와 천당 지옥이 있고 우리 필립이가 천당으로 갔다 하면 얼마나 우리를 기다리겠어요? 그리고 우리가 다른 곳으로 가면 그 애가 얼마나 섭섭하겠어요. 우리가 지옥으로 간다는 것보다도 그 애가 기다릴 생각을 하면 차마―.”

안해는 목이 메이려 해서 말을 맺지를 못하였다 그럽시다 꼭 다닙시다 “.. 그 애가 기다리는 건 둘째 두고라도 우리가 그 애를 천당에 두고 어떻게 다른 곳으로 가겠소? 나는 다른 데 못 가겠소.”

남편도 이렇게 응하였다.

은희의 마음에는 지금 가장 절실한 필요 때문에 그 사이 오래 잃었던 신앙 이 부활되었다. 사랑하는 아들과 갈라지기 싫은 어버이로서의 애정 ― 여기서 생겨난 신앙이 그의 마음에 엄돋았다.

자식에게 대한 부모의 사랑은 가장 크다. 세상의 무엇보다도 큰 이 애정에서 생겨난 신앙에 잠긴 은희의 얼굴은 자식을 잃은 비통 가운데서도 장래에 대한 희망으로 적이 빛났다.

밤은 고요히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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