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아동용/권1/7. 신라의 통일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문무왕의 삼한 통일[편집]

백제와 고구려 두 나라가 당나라에 멸망된 뒤, 신라의 문무왕(文武王)은 그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를 통치했다. 따라서 문무왕 이후부터를 통일신라 시대라고 부른다.

일본 및 당나라에 복속되다[편집]

통일신라 시대는 대략 260여 년 동안으로, 나라(奈良) 시대부터 헤이안(平安) 시대 초기까지에 해당한다. 신라 통일 이전에는 주변 국가들과의 전쟁이 거의 끊이지 않았지만, 이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태평성대가 계속되었으며, 당나라와의 교류도 왕성하여, 문물(文物)이 눈에 띄게 발달했다. 이 시대에도 역시 신라는 항상 일본에 조공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불교의 융성[편집]

법흥왕(法興王) 【제23대】 이후, 역대 왕들은 독실하게 불교를 믿었는데, 이 시대에 들어서자 불교가 한층 더 융성해졌다. 따라서 불사(佛寺)를 건립하는 것이 나라 시대에도 전해지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이 때문에 공예가 크게 발전했으며, 지금까지 그 유물이 남아 있다. 농업도 역대에 여러 차례 장려했다.

유학[편집]

유학(儒學)도 불교와 함께 크게 번성했는데, 학자로는 설총(薛聰), 최치원(崔致遠) 등이 모두 유명했다.

국토가 셋으로 나뉘다[편집]

진성여왕(眞聖女王) 【제51대】 때에 이르러 국정이 문란해지고 도적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때 견훤(甄萱)이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켜 후백제국(後百濟國)을 세우고,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全州)에 도읍을 정했다. 또한 궁예(弓裔)라는 사람도 스스로 일어서 태봉국(泰封國)을 세우고, 지금의 강원도 철원(鐵原) 부근에 도읍을 정했다. 견훤과 궁예는 서로 다투었으므로 신라의 영토가 셋으로 나뉘고 국력은 크게 쇠약해졌다.

신라의 멸망[편집]

궁예는 흉포했으므로 부하들은 그를 축출하고 왕건(王建)을 옹립했다. 그 후 왕건의 세력이 강성해지자, 신라의 경순왕(敬順王)은 스스로 나라를 보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왕건에게 항복했으며, 이듬해에 후백제는 왕건에 의해 멸망했다. 신라는 모두 992년을 존속한 뒤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