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아동용/권2/4. 조선의 문화
중앙정부 및 지방 제도
[편집]태조 때에는 정부의 조직 등이 대체로 모두 고려의 제도를 답습했지만 태종, 세종 때에 이르러 새로운 제도가 대략 정비되었다. 태종 원년(元年)에 관제(官制)를 고쳐, 중앙정부를 의정부(議政府)라고 했는데, 백관(百官)을 통솔했으며 정치를 통괄하는 곳이었다. 의정부의 장관을 영의정(領議政)이라고 했으며, 그 밑에 좌의정(左議政)과 우의정(右議政)이 있었다. 세상에서는 이들을 삼공(三公)이라고 했다. 의정부 아래에는 육조(六曹)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가 있어 정무를 분담했다. 각 조(曹)의 장(長)을 판서(判書)라고 했다. 태종 때 처음으로 전국을 팔도(八道)로 나누었으며, 그 아래에 부(府), 목(牧), 군(郡), 현(縣)을 두었다. 각 도에는 관찰사(觀察使)를 두어 다스렸다. 한때는 이를 감사(監司)라고 했다.
교육
[편집]태조는 태학(太學)을 수도에 두고, 이를 성균관(成均館)이라고 불렀으며, 지방에는 향교(鄕校)를 설치했다. 정종(定宗)도 역시 경성(京城) 안에 오부학당(五部學堂)을 두고 교육제도를 크게 정비했다. 성종(成宗) 【제9대】 때에 이르러 유학(儒學)은 더욱 성행했으며, 그로 인해 조광조(趙光祖) 【호는 정암(靜庵)】, 이황(李滉) 【호는 퇴계(退溪)】, 이이(李珥) 【호는 율곡(栗谷)】 와 같은 유명한 유학자들이 잇달아 배출되었다.
서원
[편집]중종(中宗) 【제11대】 무렵부터 서원(書院)이라는 것이 각지에서 생겨났다. 서원은 지방에서 선대(先代) 유학자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학문을 강의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지만, 후에는 갖가지 폐해를 일으켰다.
경국대전
[편집]세조(世祖)는 자손만대를 위해 하나의 법전(法典)을 만들려고 했는데, 최항(崔恒) 등에게 명하여 이를 편찬하는 임무를 맡도록 했다. 예종(睿宗) 【제8대】 때 완성된 이 법전을 경국대전(經國大典)이라고 하였다. 대전은 그 후 개정된 적이 있었지만 근세(近世)에 이르기까지 국정(國政)의 기초가 되었다.
활자
[편집]활자는 고려시대에도 어느 정도 사용되었지만, 태종 때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고 활자를 주조하여 갖가지 서적들을 간행했다. 이로부터 활자는 목판(木版)과 함께 사용되었다. 고려시대에 활자가 사용된 것은 서양 활자의 기원보다 약 2백여 년 이르다.
언문
[편집]세종은 친히 언문(諺文)을 만들었는데, 정인지(鄭麟趾) 등에게 명하여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했으며, 이를 나라 안에서 사용하여 매우 편리하게 해 주었다.
천문, 건축, 공예
[편집]그 밖에 천문 기술도 매우 발달했으며, 건축과 공예 등도 역시 뛰어난 것들이 있었는데, 중세 이후에 점차 쇠퇴했다.
불교
[편집]불교는 조선시대 초기에 여전히 성행했지만, 유학의 융성에 따라 점차 쇠퇴했으며, 성종 무렵 이후로는 그 세력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