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무지개 뜨는 언덕/0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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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구두닦이 소년들

“아저씨, 구두 닦으세요,”

“아저씨, 반짝반짝 광을 잘 내 드릴 테니 이리 오세요.”

“아저씨, 아저씨, 잘 닦아 드릴 테니 오세요.”

여기는 종로 4가, 은주가 신문을 팔고 있는 택시 승강장에서 조금 떨어진 전차 정류장 앞이다.

열서너 살부터 스무 살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소년들이 길가에 죽 늘어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구두만 보면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은주가 돈암동 방면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자기와 똑같이 생긴 여학생을 발견하고 놀란 지 약 한 시간쯤 후였다.

한 사람의 점잖은 중년 신사가 손가방을 들고 택시 승강장에서 차를 기다리다가, 아무리 기다려도 차가 오지 않자 전차를 탈 생각으로 역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아저씨, 잘 닦아 드릴게요, 이리 오세요.”

은철이가 신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열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반짝반짝 광을 내 드릴 테니 앉으세요.”

은철이가 한 번 더 그렇게 권했을 때, 신사는 잠시 자기 구두를 들여다보다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 때 은철이 바로 옆에 앉아 있던 깨알곰보 봉팔이가 냉큼 신사 앞에 의자를 내놓으며, 은철이의 손님을 가로채 버렸다.

“자아, 앉으세요. 아주 특별히 잘 닦아 드릴게요.”

봉팔이는 신사의 팔을 억지로 끌어 자기 앞의 의자에 앉혔다.

열아홉 살인 봉팔이는 여기서는 대장 격이다. 콧등에 깨알만한 곰보딱지가 대여섯 군데 박혀 있어 별명이 깨알곰보다.

“너, 왜 손님을 가로채는 거야?”

은철이가 상기된 얼굴로 봉팔이에게 대들었다.

“흥!”

깨알곰보 봉팔이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네 손님, 내 손님이 따로 있냐? 먼저 앉히면 손님이지 뭐?”

그러면서 은철이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래도 내가 먼저 손님을 붙들었잖아? 그걸 네가 가로채서 의자에 앉힌 거지!”

“너 요즈음 점점 건방져 간다?”

“건방지긴 누가 건방지다고 그래? 순리대로 따져서 이야기를 해 보자. 자기 손님을 남에게 주지는 못해도 남의 손님을 가로채는 법이 어디 있어? 빌어먹으려면 같이 빌어먹어야지, 너 혼자 먹겠다는 거야?”

은철이도 만만치 않았다.

“이 자식이! 야학에 다니더니 제법 말재주가 늘었는걸.”

깨알곰보는 눈알을 희번덕이며 손으로 은철의 턱을 슬슬 만지면서 협박하듯 말했다.

“너 그러다가는 여기서 구두 못 닦는다! 알았니? 알았으면 입 닥쳐!”

은철이는 대답을 못했다. 여기서 구두를 못 닦는다는 그 한마디가 은철이는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까지 잠자코 봉팔이의 의자에 앉아 있던 신사는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려는 봉팔이의 손을 막으며 점잖게 말했다.

“나에게 구두 닦기를 권한 것은 이 소년이니까, 나는 이 아이에게 구두를 닦겠다.”

신사는 가방을 들고 은철이의 의자로 옮겨 앉았다.

“흥!”

봉팔이는 하는 수 없이 코웃음을 치면서 신사와 은철이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곁눈으로 흘겼다. 은철이는 열심히 신사의 구두를 닦기 시작했다. 기름으로 때를 빼고 약으로 문지른 후 솔과 헝겊으로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았다.

그러는 동안에 봉팔이도 손님 하나를 붙들어 씩씩거리면서 구두를 닦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험상궂은 눈초리로 은철이를 흘겨볼 겨를이 없었다.

“다 됐습니다.”

은철이는 신사의 바짓단을 내렸다.

“얼마지?”

“50원입니다.”

신사는 100원짜리 한 장을 내주고는 거스름돈을 받을 생각도 않고 급하게 전차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고맙습니다.”

은철이는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는 신사의 뒷모습을 감사한 마음으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저씨, 구두 닦으세요. 잘 닦아 드릴게요.”

은철이는 또다시 지나가는 손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얘, 바쁘다 바빠!”

손님들은 열에 아홉은 그런 소리를 툭 내뱉고 지나가 버렸다.

그때였다.

“아, 이 가방은......!”

은철이는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도구들 사이에서 손가방을 발견하고 놀랐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주 두툼해 보이는 가방이었다.

“아까 그 손님 거다!”

은철이는 가방을 들고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곧, 가방 주인인 그 신사를 찾아 가방을 돌려주기로 마음먹고 전차 정류장 쪽으로 막 달음질을 치려고 했다.

바로 그 때, 깨알곰보 봉팔이의 커다란 손이 은철이의 팔목을 꽉 붙잡았다.

“어딜 가?”

“갖다 줘야지!”

“갖다 주긴 누구를 갖다 준단 말이야?”

“주인을 찾아주지 누구를 갖다 줘?”

“주인이 어디 있어?”

“아직 전차를 못 탔을 테니까 빨리 가면 만날 거야.”

그 때 깨알곰보가 은철이의 옆구리를 한 번 쿡 찌르며 낮은 목소리로 위협하면서 은철이를 뒷골목으로 끌고 들어갔다.

“떠들지 말고 이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