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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무지개 뜨는 언덕/0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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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악마의 속삭임

가방을 옆구리에 꽉 끼고 전차 정류장으로 씩씩거리면서 달려온 은철이는, 쭉 줄을 늘어선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쳐다보면서 가방의 주인을 찾았다. 그러나 벌써 전차를 타고 떠났는지 중년 신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은철이는 쪽 늘어선 줄을 세 번이나 왔다갔다 하면서 찾았으나 가방 주인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제 어떡하지?’

은철이는 우두커니 서서 가만히 생각했다.

‘이대로 가지고 있다가 가방 주인이 찾아오면 돌려주자.’

그러나 봉팔이가 옆에 앉아 있는 자기 일터로 가기는 싫었다. 그래서 은철이는 사람들 틈에 서서 신사가 가방을 찾으려고 자기 일터로 다시 오기를 멀찌감치 바라보며 기다리기로 했다. 신사가 보이기만 하면 쫓아가서 가방을 돌려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신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걸까? 가방을 잃어버린 걸 아직도 모르고 있는 걸까?’

은철이는 점점 마음이 초조해졌다.

바로 그 순간, 은철이의 마음속에 무서운 악마의 속삭임이 들렸다.

‘이렇게 많은 지폐 뭉치 중에서 두 뭉치만...... 두 뭉치만 살짝 꺼내도 모르지 않을까?’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두 뭉치만...... 두 뭉치만 있으면 내일부터 은주를 중학교에 보낼 수 있을 텐데! 아아, 2만 원, 2만 원만 있으면......’

은철이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재빨리 사방을 돌아보았다.

아까 골목 안에서 깨알곰보 봉팔이가 한 말이 은철이의 착한 미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오늘날까지 단 한 번도 그런 나쁜 생각을 가져 보지 못한 착한 소년 은철에게 만일 봉팔이 같은 불량한 친구가 없었다면, 그는 이런 무서운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친구를 사귀려면 좋은 친구를 사귀어라.”

학교 선생님이 항상 말씀하시던 이 한마디가 지금 은철이의 행동에서 충분히 증명된 것이다.

‘두 뭉치만 있으면 은주가중학교에 갈수 있다. 두 뭉치만...... 두 뭉치만 있으면......’

봉팔이의 말이 무슨 나쁜 귀신처럼 은철의 마음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모른다고 하면 되지 뭐.’

봉팔이의 말을 은철이는 그대로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봉팔이처럼 아주 가지려는 것이 아니다. 두 뭉치만 얼마 동안 빌려 쓰려는 거다. 집을 팔아서 방공굴을 사면 2만 원이 남으니까, 그 때까지만 잠깐 빌려 쓰자! 잠깐......’

은철이는 마침내 가방 속에 슬그머니 손을 넣어 1만 원짜리 지폐 뭉치 두 개를 독수리처럼 움켜쥐었다.

그러나 독수리처럼 움켜쥐기는 했으나 손이 자꾸만 떨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다리가 자꾸 휘청거리고 눈앞이 아찔해졌다.

‘누구, 보는 사람이 없나?

은철이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돌아보았다. 전차를 타려고 바글바글 모여드는 수많은 사람들이 득실거렸으나, 아무도 은철이의 행동을 수상히 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은철이는 가방을 열고 얼른 지폐 두 뭉치를 꺼내 자기 주머니에다 쑥 집어넣고는 가방을 다시 잠갔다. 가방에서 두 뭉치를 꺼냈어도 워낙 퉁퉁하게 배가 불러 있어 겉으로 보아서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혹시 보는 사람 없나?’

몸도 떨리고 마음도 떨렸다. 나쁜 짓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은 정말 몰랐다.

은철이는 사람들 틈 사이로 멀리 자기가 앉아 있던 일터를 바라보았다. 어찌 된 일인지 봉팔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은철이는 바로 그 때, 깨알곰보 봉팔이가 자기의 행동을 매서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흥, 저 자식 봐라!”

전봇대 뒤에 숨어서 엿보는 봉팔이의 매서운 눈초리가 반짝반짝 빛나며, 입가에는 음흉한 미소가 지어졌다.

바로 그 때였다. 한 대의 택시가 돈암동 쪽에서 쏜살같이 달려오더니 은철의 일터 앞에서 브레이크 소리를 우렁차게 내며 우뚝 멈추어 섰다.

“끼익!”

차 문이 열리더니 한 신사가 황급히 뛰어내렸다. 그 사람은 틀림없는 가방의 주인이었다.

“아, 저분이다!”

은철이는 가방을 꽉 껴안고 길을 건너 신사 옆으로 뛰어갔다. 뛰어가는 은철이의 뒤를 그 때까지 전봇대 뒤에 숨어 있던 깨알곰보 봉팔이가 입가에 빙글빙글 수상쩍은 웃음을 띠면서 천천히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