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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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손은 상아와 같이 깨끗해야 한다. 요리사가 해놓은 아스파라가스와 같이 부드러워야 한다. 기계로 뽑은 듯이 날씬하고도 탄력이 있어야 한다. 크림이나 향수에 젖지 않고도 향기로워야 한다. 열 손가락 중의 어느 한 개 든지 그것이 남자의 손에나 살에 닿을 적에 전기가 통하듯이 찌르르 찌르르 맛이 있어야 한다. 희어야 하지마는 눈같이 희기만 해도 안될 것이요, 핏기 가 있어야 하지마는 베니같이 붉어서는 못 쓴다. 바나나 레몬으로 만든 아 이스크림과 같이 아니, 신선한 밀크와 같이 뽀얗고도 깨끗해야 값이 있다. 불그레하게 피어오르는 핑크색 장미꽃과 같이 아리땁고 향기로워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무 가치도 없다. 피아노의 건반으로 백어와 같이 춤을 출줄 알거나 바늘과 실을 수놓을 수 있거나 하다 못해 타 이프라이터의 동글동글한 단추를 또드락거릴 줄이라도 알아야 될 것이다. 그도 저도 다 못하겠거든 꽃편지지에 한 줄의 러브레터라도 쓸줄 알아야 된 다.

그러고 보니 딸자식을 낳더라도 이만한 모든 조건이 갖춘 손을 만들어 주 지 못한다면 그 부모된 이의 죄도 마땅히 클 것인줄 안다.

이렇듯 아리따운 손도 시절에 따라서는 처치하기에 곤란할 때도 있을 것이 다. 겨울에는 장갑을 끼워야 되겠느니, 가죽 장갑을 끼면 고린 냄새와 때가 손에 묻게 될 것이고, 여름에는 땀이 촉촉히 흘러서 아무리 정다운 친구나 애인의 손이라도 마주 쥐면 불쾌할 때가 많을 것이며, 가을이면 산들 부는 바람결에 손등이 트기 시작할 것이니 불가불 크림으로 도배를 해야겠는데 그 끈적끈적하고도 배릿배릿한 냄새가 또한 그다지 상쾌한 촉감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5월의 맑게 개인 하늘 밑에 새로 채색한 파라솔을 펴서 들 때야말 로 사철을 통해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손을 맘대로 구경할 수도 있고 구 경 시킬 수도 있는 때일 것이다. 춥지도 않고 늦은 봄, 첫 여름 5월이야말 로 조물주가 여인들에게 선사하신 가장 아름다운 절기가 아닐까.

그러므로 내 생각에는 이때부터 한 사람 두 사람 거들쳐 들기 시작하는 파 라솔이란 것은 얼굴에 쪼이는 햇볕을 피하는 것보다도 날씬하고 맵시 있고 보드랍고 쟁글쟁글한 그네들의 손을 자랑하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만 같다. 만일 파라솔이란 놈이 생기지 않았던들 도회지 여인에게 있어서는 확 실히 큰 비애를 느꼈을 것에 틀림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술적 , 작품에 비길만한 아름다운 손(?)보다도 나는 흙내 나는 시골 여인의 손이 얼마나 대견하고 거룩한지 모른다. 은행 회사나 관 청같은 속에 움파 모양 들어 박혀서 붓장난이나 하고 있는 핏기 없는 사나 이들의 손쯤은 문제도 안될 만큼 울툭불툭하고 힘있어 보이며, 시꺼머데데 하고도 구수한 시골 여인의 손, 크림이나 향수 대신에 쌀뜨물에 젖고 몰캉 몰캉 풍기는 구역질 나는 냄새 대신에 콩밥 숭늉같이 구수한 흙내 나는 소 반만큼씩한 손, 거기다 호미자루를 듬썩 쥐고 5월의 더운 볕을 시새는듯이 부지런히 김을 매고 거름을 주는 감때 사나운 손, 아! 이 얼마나 거룩한 손 인가? 이것이야말로 조물주가 만든 자연 그대로의 손일 것이다. 이러한 손 아귀에서 자라나는 아이들 중에 영웅도 나고 호걸도 찾을 것이다.

도회의 여인이여! 당신들은 손에 흙을 바르고 싶지 않습니까? 호미나 괭이 를 쥐어 볼 생각은 없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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