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와 안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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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게 있나? 세숫물 좀 떠오게."

여태까지 세상모르고 자거나 그렇지 않으면 깨서라도 그저 이불 속에 드러누워 있을 줄만 안 주인아씨의 포달부리는 듯한 암상스런 음성이 안방에서 벼락같이 일어나 고요하던 이 집의 아침공기를 뒤흔들어 놓았다.

“내! 밥퍼요.”

새로 들어온 지 한달 쯤밖에 안 되는 노상 앳된 안잠재기가 밥 푸던 주걱을 옹솥 안에다 그루박채 멈칫하고서 고개를 살짝 들어 부엌 창살을 향하고 소리를 지른다.

“떠오고 나선 못 푸나 어서 떠와 잔소리 말고.”

먼저보다도 더 한층 독살이 난 째지는 듯한 목소리였다. 어지간히 약이 오른 모양이다.

“내 곧 떠 들여가요.”

젊은 안잠재기는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바로 옹솥 옆에 걸린 그리 크지 않은 가마솥 뚜껑을 밀쳐 연 다음 김이 무럭무럭 나는 더운 물을 한바가지 듬뿍 떠가지고 부엌문턱을 넘어설 제 슬며시 골이나 해가 일고삼장해 똥구멍을 찌를 때까지 잘 적은 언제고 이렇게 물이 못나게 재촉할 적은 언제고 하고 혼자 입 안으로 가만히 중얼거렸다.

얼굴이 비치도록 길이 번들번들 들은 뒤주와 찬장 사이 틈에 끼워둔 놋대야를 집어가지고 급하게 재촉하는 품 봐서는 바가지의 물을 그대로 불까 하다가 혹시 먼지라도 뜰라치면 가뜩이나 심사가 뒤집힌 판이라 더욱 펄펄 뛰며 쨍쨍거릴까봐 얼추라도 한번 부시려고 마루 끝으로 나오니 마루 끝으로 나오니 마루 반을 넘어 들이비친 가을볕으론 유난히 쨍쨍하고 두꺼운 광선이 잘 닦아 번쩍거리는 대야에 가 반사되어 으리으리하게 번쩍거린다.

“뭘 그렇게 꿈지럭거려 굼벵이 천장하듯 어서 들여오지 않고.”

안방에서는 여전히 톡 쏘는 듯한 아씨의 날카로운 음성이 또 화살처럼 안 잠재기의 귀를 따갑게 드리 쏜다.

“내 지금 곧 들여가요.”

안잠재기도 약간 짜증이 난 듯한 말씨였다. 허나 남한테 맨 목숨이라 꿀꺽 참고서 안방미닫이를 조심성스럽게 연 다음 간반통 이간이나 되는 덩그런 방 한가운데다가 물대야를 갖다 놓고 나니 아랫목 쪽으로 혼자 오도카니 앉아 있는 삼십이 될락말락한 어느 모에 내놓든지 미인이라고 할 만한 제법 요염하게 생긴 주인아씨가 뾰로통한 얼굴을 해가지고 살기가 등등한 눈초리로 안잠재기를 갈아 마실 듯이 노려보면서 자네꺼정 내 속을 “ 태나, 왜 그리 꿈지럭거려……에이 화나 죽겠네 죽겠어. 자네마저 내 맘을 편치 않게 해주려거든 오늘이라도 썩 나가게 썩 나가.”

하고 대야를 와락 잡아 당기다가 물이 좀 방바닥에 엎질러졌다.

공연히 생트집을 해가지고 사람을 들볶는 것이 몹시 배리가 꼴려 견디다 견디다 못해 여볏 입에서 뭐라고 말대답이 터져나올 듯한 것을 삽시간에 생각을 돌려 꿀꺽 참았다. 요 때만 지나 성깔이 꺼질라치면 그야말로 정답게 살을 비어 맥일 듯 하고 싹싹하기 봉산 참배같은 아씨의 성미를 들어 온 지 얼마 안된 터이지만 잘 아는지라 가슴에서 금방 불덩이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꿀꺽꿀꺽 참고서 윗목 한구석에 틀어 박힌 걸레를 얼핏 집어다가 방바닥에 튄 물방울을 그저 잠잠히 훔치고만 있었다. 아무 죄 없이 뿌옇게 몰려댄 안잠재기가 아까 푸다가 내버려둔 밥을 마저 푸려고 부엌을 향하여 발을 옮기면서 하루 이틀 밤도 아니고 사흘 저녁씩이나 나가 잤으니, 그것도 딴 계집에 미쳐 다니는 줄 번연히 아는 아씨로서 골을 내는 것은 그럴 법도 한 노릇이지만 제 남편 안 들어온 화풀이를 나한테 하는 것은 여간 거북한 일이 아니며 살이 내리도록 성가신 노릇인걸 하고 생각한 다음 상을 약간 찌푸렸다.

부엌으로 들어간 그는 밥을 다시 푸면서 자기 신세를 생각하고 주인 아씨를 동정도 하였다가 주인나리를 까닭없이 미워도 했다가 또는 이 세상의 마음이 군성거려지더니만 나중에는 걷잡을 수도 없고 부지할 수도 없이 머릿속이 산란해진다. 첨에 미쳐서 들들 볶다 못해 마침내 몹시 때리기까지 해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갖은 학대를 다 하다가 종당 내어쫓다시피한 자기 남편을 생각하니 이가 갈리도록 지겹다. 밉살머리스럽고 원망스러운 놈이 어디서 뒈졌다는 소문만 들어도 당장 미친년처럼 네 활개를 쩍 벌리고 가로 뛰며 세로 뛰면서 손뼉을 치고 춤을 출성싶은 충동을 가끔 느끼며 내려왔다. 지금도 이런 마음이 꿈틀거리고 어른거리기 시작하니 주인나리로 해서 속을 썩이고, 역정이 나고, 포달을 부리는게 끝없이 얄밉더니만 오히려 불쌍하고 측은한 마음이 슬며시 들어 마침내 동정이 걷잡을 새 없이 걸린다.

주인아씨는 아침을 한 술 뜨는 둥 마는 둥 하고서 여태껏 주인나리의 그림자도 나타나지 않은 집을 등지고서 어디론지 나가버렸다.

그가 집밖을 나갈 때 안잠재기를 보고 아까보다는 적이 누그러진 말소리로 여보게 여지껏 “○○ ——— 안들어 오실 적에는 오늘도 해 전에 들어오시긴 틀릴 성 싶으이만 혹시 나 돌아오기 전에 오시거들랑 내가 그러드라고 이 집을 하직하고 영영 어디로 가버린다고 하시며 나가셨다고 여쭙게. 어쩌나 꼴을 좀 보게.”

이렇게 말하는 아씨는 그래도 쓸쓸한 기색이 가시지 않은 얼굴에다 억지로 미소를 머금는 듯 강잉히 웃었다. 이처럼 하고 나아간 주인아씨가 눈에 밝히고 약간 걱정이 되는데다가 자기 신세를 곰곰 생각하니 도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찜질을 하려해도 맥이 풀려서 걸레나 행주가 그대로 물이 주르르 흐르고 비누질을 좀 해볼 참으로 일감을 무릎 위에다 놓고도 한 손에 바늘을 쥔 채 바람벽을 넋 잃은 사람처럼 한참씩 멀거니 바라보고 앉았기를 여러 차례 하였다.

아씨가 정말 아주 안 들어오시면 어쩌나… 나도 죽어 이 세상을 잊어버리겠다는 마음을 먹기도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아씨야말로 홧김에 참 정말 어디 가 죽지나 않으실까? 성질이 팔팔한 양반이라 앞뒤 일을 생각지 않고 그만 어느 물에 빠져죽거나 어디 호젓한 산 같은 데로 올라가 목이라도 매달어 죽지 않을까?

이렇게 끔찍스런 생각을 하다가 불시로 머리를 홰홰 내두르며, 아냐 아냐 뭘 설마 죽기까지 할라구 그렇게 사람이 쉽게 죽으래선 내가 벌써 죽어 없어졌게. 아씨로 말하면 뭬 부족해 죽어. 남만치 호강을 못하나, 돈을 맘대로 못쓰나 열의 한가지라도 부족한 게 있어야 말이지… 옳지 단지 삼십이 넘도록 남녀간에 아이를 하나도 낳아보지 못해 나리가 자식 본다고 이즈막에 공연히 바람이 좀 나서 며칠씩 나가자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고 탈이라면 탈이지. 그리고는 뭐 맘 상할게 있어야 말이지… 또 그렇지 나리가 난봉을 좀 부리기로 지금 같아서는 아씨를 내댈거 같지도 않고 좀 체로 구박할 것 같지도 않은데 공연히 아씨가 그 모양이야. 나는 여태껏 그만치 금실 좋은 내외는 처음 봤으니까…… 그런데 괜히 아씨는 양광에 자드래기가 나서 이러니저러니 하는게야… 요렇게 재미가 깨가 쏟아지는 살림과 그처럼 위해주는 남편을 두고 죽기는 뭘 죽어. 아니 왜 죽어‥ 남이 죽이려구 들더래도 기쓰고 살려들걸 뭐.

이렇게 한참동안 입안으로 웅얼거리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이리저리 되 술려먹고 앉아있다. 대문이 찌걱하며 누가 들어오는 듯도 하고 또는 마당에서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나는 듯도 싶다. 얼마 안가서 주인나리가 마당에서 인기척을 내는 것 같다. 좀 재바르게 건넛방 쌍창 미닫이를 득——열고서 마당을 내다보았다 허나 . 마당에는 이미 반해가 넘어서서 그늘 반 양지짝 반이 뚜렷이 이층져 있을 뿐인데 오직 해에 비쳐 별처럼 반짝이는 무수한 모래알 뿐이다. 그는 가슴이 선뜩해 좀 급히 미닫이를 도로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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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를 타고 다니기는 했지만 한강철교로 청량리로 장충단공원으로 그리고도 부족해서 남산공원까지 휘돌아 진종일 쏘다녔기 때문에 이제는 제법 기운도 없고 다리도 몹시 아프다. 안잠재기 혼자만 맡기고 나온 집안이 궁금하지 않은 바 아니지만 오늘 하루는 될 수 있는대로 집 생각을 잊어버리고 좀 유쾌히 놀려고 애를 썼다.

해가 뉘엿뉘엿해 방금 서산을 넘으려는 이때까지 아침도 변변히 먹지 못한 사람이 물 한모금 안 마시고 돌아다녔기 때문에 아무리 화에 들뜬 사람이기로 허터증과 기진맥진까지는 모르지만 어지간히 지친모양을 자기 자신으로도 넉넉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날이 변해가는 대경성을 내리 굽어보며 산보하는 젊은 남녀가 쌍쌍이 몇 축인지 모르게 자기 앞을 지나칠 적마다 속마음으로 일변 부러운 듯 일변 암상을 내면서 지친 다리를 반쯤 끌며 예전 총독부자리 앞을 지나 내려와 본정 통으로 들어섰다. 다리도 아프거니와 시장기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 없어서 그전에 남편과 자주 다니던 정유사 식당 안으로 아는 집 들어가듯 조금도 서슴지 않고 쑥 들어서니 저녁 때가 돼 그런지 좀 체로 빈자리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 잠깐 멈칫하고 선 채 두 눈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으려니까 안내하는 사람이 가까이 오더니만 한구석으로 인도를 한다. 그는 인도자의 뒤를 따라 꼭 한 자리 남아있는 곳에 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하얀 에이프런을 두른 시중드는 소녀 하나가 앞에 와 서서

“뭘 잡수시렵니까?“ 하고 공손히 묻는다.

“정식

“양식이죠?

“……………

이번에는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만 약간 끄덕였다. 배가 어지간히 고팠던 그는 차례로 갖다놓은 음식을 순식간에 개눈감추듯 다 먹어 연해 빈 접시만을 만들어 놓곤하였다.

그가 다시 길거리로 나올 때는 제법 어둑어둑해져 전등불빛이 제대로 바로 뵈게 되었다. 조선은행 앞까지 나와 전차를 잡아타고 부리나케 집엘 당도해 중문 안을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눈이 가기는 마루 끝이었다. 암만 눈여겨 살펴보아도 나리의 구두는 커녕 구두그림자도 없는지라 미리부터 그러려니 짐작했으면서도 ○○○ 두눈에 쌍심지가 벌컥 올라 쨋쨋한 목소리로

“아니 그저 안 들어오셨나?

하고 벽력같이 고함을 친다.

“네 안 들어오셨어요.”

건넛방에 있던 안잠재기가 얼떨결에 대답하면서 마루 끝으로 나온다.

“여보게 난 저녁 먹었으니 자네나 어서 먹게… 그리고 혹시 나리가 밤늦게라도 들어오시거든 내가 아침에 나가 안 들어왔다고 여쭙게. 행여 지금 다녀 나갔다는 말은 하지말구 아침에 이른대로 꼭 그대로 여쭤… 난 늦게나 그렇지 않으면 내일 들어올테니. 그리 알게.”

마루에도 올라오지 않고 마당에 선 채 이 말 한마디를 남기고서 그만 대문 밖으로 사라진 다음 안잠재기는 또다시 혼자 남아 멀거니 마루 끝에 선 채 대문켠을 바라다보면서

“흥, 집안 꼴 잘———된다. 아씨마저 놀아나는 모양인걸 그래. ○속 좋다.”

하고 의미모를 웃음을 한번 씽긋 웃고는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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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컴한 밤거리를 한참 걸으니 마음이 낮보다도 더한층 공중에 뜬 것 같다.

사실 집밖을 나오기는 나왔으나 갈 데가 만만치 않다. 서울 바닥에 탐탁한 일가 하나 없고 통사정 할 만한 친한 동무 하나 없는 그로서는 언뜻 머리에 떠올라 찾아갈 만한 집이 변변치 않았다. 그래 고적한 신세임을 새삼스럽게 더한층 느끼게 되었다.

'에라 오래간만에 극장에나 가볼까?” 이렇게 생각했다가 그것도 마음에 탐탁히 끌리지 않아!

가뜩 속에서 화가 치밀어 죽겠는데 뭇사람들이 와글와글 들끓는 극장엘 어떻게 가… 조용한 데만 찾아다녀도 머리 골치가 아프고 정신이 헛갈리는 데 이처럼 뇌까리고서 극장가고 싶은 마음을 그만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럼 어딜가면 좋담! 에라 밤새도록 길로나 이렇게 헤매지… 흥, 지금쯤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가지고 막 노닥거리겠다. 그리고 어느 년이든 끼고 누워서 잘 놀른지도 모르지. 이런 소리를 입안으로 가벼이 중얼거리면서 눈앞에 자기 남편이 얼굴도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 어느 계집과 서로 얼싸안고 뒹구는 꼴을 그려보다가 고개를 내흔들며 그 약오르는 그림자의 모습을 지워버리려고 애를 섰다. 분한마음, 질투하는 생각에 암상도 나고 약도 오르고 나중에는 남편이 끝없이 밉살머리스럽기도 하다.

오늘 저녁처럼 이렇게 남편을 미워해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럴수록 마음은 지향할 수없이 군성거려지며 부지할 수 없게 달뜨기 시작한다. 우중충한 가을의 밤거리를 혼자서 걸을수록 그 도수는 점점 더해갈 뿐이다.

길가는 생판모르는 사나이라도 눈을 주기만하면 자기도 선뜻 눈을 맞추고 싶은 일찍이 꿈에도 먹어보지 못하던 추잡한 마음이 어느 한구석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내가 미쳤나? 실성을 했나? 무슨 객쩍은 생각을 해…

아무리 남편이 딴 계집에 미쳤기로서니 이렇게 부르짖다시피 하며 먼저 먹은 온당치 못한 그 생각을 누르려고 애썼다. 허나 온당치 못하게 마음먹은 것을 짓누르려고 애써본 동안은 잠시였다. 남편의 품안이 그리워지고 며칠 동안 대면 못한 남편의 얼굴이 그리울수록 시기와 질투하는 마음은 걷잡을 수없이 불기처럼 활활 일기 시작하였다.

으스러지게 껴안아 주던 남편의 팔뚝이 생각키매, 그 두팔이 지금쯤은 어느 년의 알몸뚱이를 휘어감고 있을 생각을 하니 분심에 가슴이 울렁거리고 아래 윗 이가 마주칠만치 원망스러워 도제 참을 수 없다.

여라 떡으로 치면 떡이요 돌로 치면 돌이지 별수 있니, 제 배짱이 그렇게 꽂힌담야…

이렇게 마음이 자기도 비뚜러지고 보니 언뜻 이런 생각이 난다. 오래 전부터 단골로 다녀 아주 친숙해진 방물장사 노파가 번개처럼 머릿속에 번듯 떠오른다. 능갈친 노파의 행동이라든지 지나치게 수단 있는 말솜씨로 보아 수 헐내기가 아닐뿐더러 그냥 방물장사로만 돌아다니는 노파가 아니라는 것을 벌써부터 눈치 채고 짐작해 내려왔지만, 직접 자기보고는 이상한 말 한마디 수상한 눈치 한번 보인 적이 없었지만, 이웃의 소문을 들을라치면 그는 확실히 뚜쟁이인 것이 분명하였다.

그 어느 때인가 꼭 한번 이런 일은 있었다. 마침 집에 아무도 없고 자기 혼자만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조용할 때 방물사 노파가 지나가는 말처럼

“아씨 지나실 길 있거든 제집 한번 들러 주세요. 사는 건 망칙하지만 다리라도 쉬 가시게.”

이렇게 없는 정이 있는 듯이 그때 말하던 생각이 이제 머릿속에 문뜩 떠오른다. 아이 참 그이 집이 어디랬던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두눈을 사르르 감고서 옛 기억을 불러 일으키려 애썼다. 옳지 옳지 사직정 ○○번지라구 그랬어. 틀림없이 거기랬어 지금 찾아가면 있기나 있을까?

얼마만에야 겨우 생각난 듯이 이렇게 입안으로 가벼이 웅얼거리며 발길을 돌이켜 가던 길을 외서 아까보다 좀 신이 난 빠른 걸음걸이로 어슴푸레한 밤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 구멍가게에서 성냥 한갑을 사가지고 집집마다 문패를 상고해가며 그 이 집을 찾기 시작하였다 . 번지가 순서 있게 내리 멕혀 온 걸로 보아 대여섯 집만 더 가면 그 노파의 집이 되려니 하고 마음먹고서 걸어가는데 그 집 일 듯 성싶은 대문 앞에서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나타나 어른거리는데 남자는 아니고 여자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자세 보아도 젊은이는 아니요 늙은이가 분명한데 더욱 거리가 가까울수록 노파인 것이 완연하다.

그이는 키가 큰 편인데 밤이 돼 저래보이나 하고 마음먹으며 더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얼굴모습을 자세히 알아 볼만치 둘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보니 자기 집에 다니는 그 노파보다도 더 늙고 게다가 키는 아주 땅딸보인 생판 딴사람이었다. 그래서 어째 서운한지도 모르게 그저 서운한 생각이 들며 지나쳤다. 당장 그 노파가 나오던 집 대문 앞까지 이르러서 걸음을 멈추고 성냥을 드윽 그어 문패를 찾았다. 한 자 틀리지 않는 사직정○○번지다. 이집이 분명하구나!

힘 안 들이고 집 찾은 것이 신기한 듯이 생각하면서 대문을 지그시 밀쳐보았다 문소리 찌걱하고 나는 바람에 안에서

“거 누구요?”

하고 소리를 버럭 지른다. 틀림없는 그 노파의 낯익은 말소리였다. 시집갔던 새댁이 오래간만에 친정집에 발을 들여 놓자마자 어머니의 음성을 처음 듣는 것처럼 반가웠다.

“네, 저에요.”

어마지되 불쑥 이렇게 대답하면서 대문을 지나 중문 안으로 썩 들어섰다.

어디를 가려는지 방금 옷을 갈아입은 거추를 하던 채 그대로 마루 끝에 나타나 수선을 피며 엉너리를 부린다.

“내 원, 이게 누구요 이건 참 뜻밖이구료. 어서 이리 좀 올라오슈.”

“올라가도 괜찮습니까?”

괜찮지않구… 늙은이 두 양주만 사는 집에 어떻단 말이요. 아무 염려 말고 어서 이리 올라 오슈 그런데 대관절 이 밤중에 웬일이요?”

“그저 지낼길에 들렀어요.”

하면서 유난 다니던 사람처럼 조금도 서슴지 않고 마루 위로 성큼 올라선다.

그래 노파의 뒤를 따라 건넛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능청맞은 노파는 그의 말에 벌써 반 짐작은 하였다 . 이 밤중에 생전 와보지도 않던 집을 궁극스리 찾고 찾아서 올 적에는 무슨 심상치 않은 일로해서 말하자면 여자로서 흔히 화나는 일로 말미암아 들뜬 마음을 저로서도 걷잡지 못하고 이 늙은 것을 찾아온 것이 분명하다 생각한 다음 함정에 제 발로 기어 들어오다시피 한 짐승을 놓치지 않으리라고 정신을 바짝 차리는 한편 또한 자기의 짐작이 십 분 자신 있는 듯이 “뭐 화나는 일이 있는 게지.” 하고 노파의 하는 말이 바로 가슴 정통을 알관역 맞추듯이 덜컥 들이 맞히는지라 정신이 오싹할 만치 선뜩하면서도 자기가 이미 마음먹은 오늘 하룻밤을 긴장된 가운데 마음을 조이며 그래도 자기 남편한테 맛보지 못하는 느긋한 쾌락과 아기자기한 기쁨을 맛보게 되는 노파의 이상한 눈치와 허튼 수작이 오히려 반가웠다.

“화는 무슨 화요 그저 놀러왔죠.”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얼떨결에 나와 자기 집에도 몹시 어색하게 들렸다.

그리고 다시금 생각해보니 먼저 자기의 한 말과 외착이 나는 것을 깨달았다. 먼저는 그저 지낼 길에 들렀다고 했는데 지금은 놀러왔다고 했으니 암만해도 선후가 동떨어지므로 노파의 기색을 넌지시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능구렁이 다된 눈치 빠른 노파는 되레 이편 거동을 흘깃 쳐다보더니 벌써 그만 하면 다 짐작해 알아 차렸다는 듯이 주름잡힌 앞모습과 눈언저리에 의미 있는 미소를 띠우며

“아유 그러면 마침 잘 됐수… 여기서는 재미나게 같이 놀 사람도 없구, 또 잘된 일이 하나 있는 것은 내가 지금 옷을 갈아입고 막 나가려는 판인데 이렇게 뜻밖에 찾아와 누가 지시한 것처럼 마침 만나게 된 것은 아마 이것도 인연이가보니 두말 말구 날 따라 나수.”

“어디로요?”

“가보면 알지 뭐———지금 막 누가 와서 부탁하게 어디 가서 누구든 하나 데리고 부탁하고 간 이 집으로 갈 작정이었소. 헌데 천만 뜻밖에 임자가 하늘에서 선녀가 하강하듯이 때마침 찾아온 것은 암만 생각해도 오늘밤에 어느 누구와 연분인 듯 싶으니 두말말구 날 따라 나서우… 참 잠깐만 기다리유. 내 안방에 건너가서 갈아입던 옷을 마저 깡그리고 나오께.”

노상 얼굴에 만족한 웃음을 감추지 못하다가 이런 말을 남겨놓고 안방으로 건너갔다. 안방에선 영감쟁이의 말소리가 두런두런 난다.

얼마 지낸뒤 둘이서 좀 컴컴한 그집 대문간을 나올 때 뒤에선 노파가

“아마 나리가 속을 좀 썩이는 게지?”

하고 불쑥 묻는 말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만 좋을지 얼핏 말이 잘 안나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젊은이들이란 체격 쉬운일입니다.”

노파는 자기 말에 아무 대꾸가 없으니까 잼처 이번에는 혼자 말처럼 이렇구 저렇구들 하는 것이 남녀간에 젊어서 한때 으례 할 짓이라는 듯이 웅얼댄다. 그러나 노파의 그 음충맞은 말이 자기 귀에 조금치나 거슬리거나 불쾌하게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구수하게 들릴 뿐이었다. 그래 잠잠히 노파의 뒤를 따르기도 하고 혹은 나란히 서서 아까 모르는 집을 찾아 더듬어 오던 길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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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해 몹시 조잡한 골목을 이리저리 아로새겨서 어느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대문 앞에 당도해가지고 노파는

“여보 날만 따라 들어오.”

하며 자기 집 들어가듯 조금도 서슴지 않고 대문 안으로 썩 들어선다.

행랑방을 아랫방처럼 꾸민 문간방 덧문이 슬며시 열리며

“아웃님이요? 이리 들어오슈. 퍽 속하게 오시는구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까 방물장사의 집을 찾을 때 바로 그이 집에서 나와 가지고 자기 옆을 지나가던 키가 무척 작은 바로 그 노파다. 이제야 모든 연극 속을 대강 짐작하면서 그 방 안으로 들어섰다.

“속하구 말구 여부지사가 있우… 그 이야기는 천천히 할 심 잡고서… 대관절 어느 방이요?”

“바로 안방 내줬지”

“그런데 아주 새물창이라지.”

“우리 집은 처음이지만 보아하니 아주 오입쟁이입니다. 이것도 문청있나 봐”

하고 나중 말할 때에 손가락을 동그랗게 만들어 보인다. 그리고나서는 일찍이 보지 못하던 아주 똑딴 미인의 환한 얼굴을 넋을 읽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면 와서 기다린 지도 퍽 오래 됐을 듯하니 어서 데리고 들어가 보시구료. 일각이 여삼출걸”

방물장사는 이렇게 말을 내며 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다.

“그럼 그렇지‥‥나구 안으로 좀 들어갑시다.”

하면서 주인 노파가 일어선다. 그는 절에 간 색시모양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면서 잠잠히 노파의 뒤를 따랐다. 방문 미닫이나 쌍창에나 할 거 없이 손바닥만한 유리조각하나 안 붙인 안방 앞으로 가까이 왔다. 구랑 신 같은 미닫이가 주인 노파 손에 밀려 슬며시 열린다. 새삼스럽게 더 울렁거리는 가슴을 어쩔줄 모르며 마치 꿈속을 헤매는 듯한 이상야릇한 마음으로 노파의 등 뒤를 따르던 그는 별안간 질겁을 한다. 정신이 아찔할 만치 자지러지게 놀라며 발을 멈추고 말았다.

이처럼 얼굴까지 저상을 하도록 놀란 까닭은 덩그렇게 빈 간반이나 되는 방안에 오도카니 혼자서 고개를 숙이고 앉았는 사나이는 자기 남편임에 틀림이 없었던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만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면 외마디 소리를 버럭 지르고 그 자리에 그대로 나가 자빠졌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조금 전보다도 더욱 꿈 속같이 생각된다. 그만 돌아서서 뺑손이를 쳐 도망질할까 하다가 삽시간에 한가지 계교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런 경우에 임시응변이라든가 또는 여자의 얕은 꾀란 실로 묘한 것이었다.

옳지 이렇게 하면 꼭 속아 넘어가지 하고 생각한 것은 불논 집에서

“불이야!” 하며 도적이 매 드는 격으로 외려 발악을 할 심산이었다.

뒤집어 흥으로

“아니 여보!”

째지는 듯한 여자의 날카로운 음성이 죽은 듯이 고요하던 방안의 공기를 보기 좋게 뒤흔들어 놓자 어떻게 생긴 여자가 들어올까? 하고 호기심에 끌려 마음조리면서 안자 있던 방안의 사나이는 쨋쨋한 여자 음성에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어 방문 쪽을 바라보매 또 한번 잼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금시로 얼굴빛이 해쓱해지며 저으기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모양이 완연하다.

“흥 좋소. 이따위 짓 하느라고 사흘 나흘씩 집에 들어 오는것도 잊어버렸었구료? 참 장하우… 내가 그집엘 잘두 찾어갔지 뭐 키든가봐”

사나이는 더 생각할 나위도 없이 며칠동안을 자기가 집에 안 들어가니까 지랄 발광을 하다 하다못해 저 극성이 지금 자기가 여기 있는 줄을 어떻게든 수소문 해가지고 자기의 부정한 행실을 꼭 잡으려고 연극을 꾸며 가지고 서 막 들이치는 줄로만 알았다.

“여보 제발 창피하니 고정하구서 그만 집으로 같이 갑시다. 모두가 남부끄러운 일이니”

“뭣이 어쩌구 어째요? 남부끄러운 줄을 다 아는 양반이 이런 더러운 짓을 할라구. 나를 남의 계집으로만 여기고 데리구 자구료. 이렇게 하면서 나는 남의 계집보다 뭐 날거 있우?”

사내가 아주 한풀 죽어 흠씬 누그러지는 바람에 이쪽에선 반자야 얌다고 한층 더 뛴다.

주인노파는 어쩐 영문인지 전혀 알지 못해 어안이 벙벙한 낯을 해가지고 얼빠진 사람처럼 그들 옆에 멀거니 서서 있을 뿐 아랫방에 홀로 남아있던 방물장사는 별안간 안방에서 떠들썩하는 바람에 안마당으로 난 창문을 방긋 열고서 귀를 기울여 자세 들으니 암만해도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마음 먹혀지매 어쩐지 잠시도 머물러 있기가 겁이나 그만 꽁무니 뺄 생각이 불현듯 난다.

옳지 바로 사내로구나 . 남편이 남의 계집에 눈을 떠가지고 눈 오는 날개 싸다니듯 하니까 오늘저녁엔 꼭 붙들어볼 작정으로 사내 뒤를 밟아 이 집 앞까지 쫓아와서 동정을 살피다가 쥔마누라가 우리집에 오는 그 뒤를 따라 와가지고 밖에서 그의 돌아가기를 기다리다가 그이 발뒤꿈치 뜨기가 무섭게 우리 집으로 들어온게나 아닌가? 그럴른지도 말과 생전 와보지도 않던 집을 뜻밖에 찾아온 것은 필유 곡절한 일이야… 그리고 그처럼 순순히 뒤를 따라온 것만 보더라도 제 사내를 꼭 한번 붙들어 보려는 계교였어. 틀림없이 그런 노릇이야… 에이 무서워라 돈 몇푼 얻어 먹으려고 여기 있다가는 늙은게 제 명에 못 죽게 자식도 없는 년이 뼈도 못추리게 여기까지 생각하고 보니 등골에서 진땀이 흐르며 금시로 앞이 캄캄해져 더 있을래 더 있을 수 없어 슬며시 일어나 대문간 쪽으로 난 덧문을 소리없이 열고 나와 발소리를 될 수 있는 대로 죽여 가며 가만가만 대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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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를 앞세우고 마치 개선장군이나 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그래도 얼굴 한구석에는 여지껏 독살이 꺼지지 않은 채 꽤 이슥해진 밤거리를 걷고 있었다. 아내가 몇 번이나 좀 으슥한 곳에 당도하여서는 남편의 비위를 들컹거렸으나 종시 꿀먹은 벙어리 모양으로 아무 대꾸가 없었다. 그래 아내도 맞장구쳐 주지 않는 남편의 짓이 무한히 밉살머리스럽기도 하고 또한 분하기도 하였지만 하는 수 없이 서로 잠잠한 가운데 어느덧 자기집까지 당도하였다. 벼락같이 대문 흔드는 바람에 안잠재기가 자던 눈을 비비며 닫아 건 문을 열어주니 벙어리들처럼 아무 말들이 없는 주인 내외는 그만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안잠재기는 자기가 자던 건넛방으로 들어가면서 주인 내외의 이야기 안 하는 눈치를 이상스럽게 생각하다가. 필시에는 어디서 만나가지고 대두리가 나도록 싸운게라 고 마음을 돌쳐 먹었다. 숨소리를 죽이고 안방 쪽으로 귀를 기울여 무슨 소리가 나기만 기다리고 앉아있다. 한참 동안 죽은 듯이 고요하던 안방에서 제법 높고도 거친 목소리가 난다. 전에 없이 괄괄한 그 음성은 틀림없이 주인나리의 못소리였다.

“아까는 하도 창피해서 할 말을 다 못했지만 그래 나는 남의 계집을 보려구 그집엘 갔지만 임자는 뭣하러 갔었우?”

옳지 이제 할말이 없으니까 “ 날 처죽여라는 셈으로 누구를 넘겨잡는 모양이구료. 흥 내게 딸린 염탐꾼이 얼마나 되는 줄 알우? 방물장사니 화장품 장사거니 피륙장사거니… 이렇게 뭇동있우 난봉꾼 남편을 둔 년이 그만 것쯤 못 삼어낼 낸줄 알우? 어림없이 나도 난봉을 부리려면 벌써 옛날에 무척 부렸우. 허지만 당신하나만 바라고 그렇게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내가 병신이야 뭐 아주 바보지… 그러나 임자가 정그래만 봐. 낸들…”

“여보 그만 두 내가 다 잘못했으니 어서 자기나 합시다.”

“남의 계집을 못 봐 직성이 안 풀려서 어떻게 잠이 오겠우”

“에이 객쩍은 소리 그만하구 어서 자”

“퍽 분하겠우 퍽 분해”

“그래두 잔소리야”

안방은 다시 고요해졌다. 조금 있다가 전등불 끄는 소리가 날 뿐.

건넛방에 홀로 앉아 그들의 말소리를 하나도 빼지 않고 귀를 소승겨 자세 자세 듣고 있던 젊은 안잠재기는 한숨 한번을 가벼이 그러나 길게 내쉬며 오늘날까지 이를 갈아 부치고 원수처럼 생각하던 자기 남편의 얼굴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려고 무한 애썼다. 허나 그의 그림자는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

밖에서 문 흔드는 바람에 근두박질을 해 나가느라고 막 우버서붙어 싸늘해질 대로 싸늘해진 이부자리 속으로 기어들어가면서 또 한번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 사지를 웅크린 채 역시 싸늘한 베개에다 하염없는 눈물이 금방 쏟아질 듯한 얼굴을 폭 파묻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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