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고시조
朝鮮[조선]이 앞뒤로 강대한 里民族[이민족]의 세력 交替[교체]하는 큰 마당을 이웃하여 있는만큼, 그럴 때마다 새로 일어나는 민족들의 침입을 받 아, 이른바 國難[국난]이 끊이지 않고, 이런 때에는 애국지가의 殺身成仁 [살신성인]하는 장렬한 사실이 반드시 사람을 울리게 하니, 가장 가까운 일 로 말하면 仁祖[인조] 임금 때에 滿淸民族[만청민족]이 만주에서 새로 일어 나서 우리 朝鮮[조선]에는 이른바 丁卯虜亂[정묘노란]과 丙子胡亂[병자호 란]이 서로 이어 일어나서, 허다한 愛國志士[애국지사]의 활동을 보았음은 역사상에 뚜렷한 사실이요, 따라서 愛國心[애국심]과 敵愾心[적개심]을 담 은 문학이 이 시기에 많이 나왔음은 사람들이 아는 바와 같다. 첫째 유명한 三學士[삼학사]의 한 사람인 花浦[화포] 洪翼漢[홍익한]의
- 首陽山[수양산] 나린물이 夷齊[이제]의 寃淚[원루]되어
- 晝夜不息[주야불식]하고 여울져 흐르는 뜻은
- 至今[지금]에 爲國忠誠[위국충성]을 못내 서러하노라.
글 뜻은 중국 옛날의 孤竹國[고죽국]의 두 왕자 伯夷[백이]와 叔齊[숙제] 형제가 서로 임금 되기를 사양하여 周[주]나라로 도망갔더니, 周[주]나라 武王[무왕]이 殷[은]나라 임금을 쫓아내고 대신 天子[천자] 노릇을 하려 하 는 때를 당하여 신하로서 임금을 침이 옳지 않다 하고, 이런 나라의 곡식을 먹고 살 수 있으랴 하고 首陽山[수양산]으로 들어가서 고사리를 캐어 먹었 다고 하는데, 首陽山[수양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언덕을 만나서 여울 이 지고, 밤낮 없이 섧게 우는 듯한 흐름은 마치 伯夷叔齊[백이숙제]의 寃 痛[원통]한 눈물이 흘러 내리는 듯하다고 한 것이다.
花浦[화포] 洪翼漢[홍익한]은 仁祖[인조] 임금 때에 滿淸[만청] 오랑캐의 天子[천자] 노릇하는 것을 극력 반대하다가, 淸[청]나라 세력이 강해진 뒤 에 지금 奉天[봉천]으로 잡혀 가서 獄[옥]에 갇혀 있어, 아침 아니면 저녁 으로 죽을 몸이 되어 있었는데, 이중에 懷抱[회포]를 伯夷叔齊[백이숙제]의 옛일에 비켜서 지은 것이 이 時調[시조]다.
둘째 淸陰[청음] 金尙憲[김상헌]이 또한 淸[청]나라를 반대하는 한 사람 으로, 奉天[봉천]으로 잡혀 가서 오랑캐로 부터 항복하면 살릴 것이요, 항 복치 아니하면 죽일 것이라는 恐喝[공갈]을 받은 가운데 이렇게 지은 것이 있다.
- 南八[남팔]아 男兒[남아] ─ 死[사]이언정 不可以不義屈[불가이불의굴]이
어다.
- 웃고 대답하되 公[공]이 有言敢不死[유언감불사]아
- 千古[천고]에 눈물진 영웅이 몇몇인줄 알리요.
이 글은 너무 漢文[한문]의 古事[고사]를 그대로 인용하였기 때문에 좀 번거로운 해설이 필요하게 되지마는 어쩔 수 없다. 옛날에 唐[당]나라 玄宗 黃帝[현종황제]가 초년에는 정치를 잘하여 매우 名君[명군]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마는, 말년에 楊貴妃[양귀비]에게 沈惑[침혹]하여 딴사람과 같이 정 치를 잘못하여 昏君[혼군]이 되고, 楊貴妃[양귀비]의 修養子[수양자]로 있 던 東北[동북 ]오랑캐 安祿山[안록산]이 이 틈을 타 反軍[반군]을 范陽[범 양]에서 일으켜 남쪽으로 내려오니, 태평에 젖어 아무 방비 없던 唐[당]나 라가 견디지 못해 連戰連敗[연전연패]하여 마침내 首都[수도]長安[장안]을 버리고 詩人[시인] 白樂天[백낙천]이 長恨歌[장한가]에서 그린 것과 같이 蒼黃[창황]한 모양으로 지금 四川省[사천성]으로 도망해 들어가 이 兵亂[병 란]이 이 뒤 여러 해를 계속하였다. 이 동안에 허다한 勇壯[용장], 猛將[맹 장], 名將[명장]이 활동하여 많은 武勇事實[무용사실]이 있었지마는, 그 가 운데서도 가장 후세에 빛나게 전하는 것은 江淮間[강회간]에 睢陽[수양]이 라는 작은 城[성]을 굳이 지키던 張巡[장순]과 許遠[허원] 두 將首[장수]의 일이다. 睢陽[수양]은 한 작은 城[성]이로되 교통상 要衝[요충]에 당하여 작전 진행상 관계가 심히 중대한데, 張巡[장순]은 글 읽던 선비로서 許遠 [허원]을 데리고 이 城[성] 지키는 책임을 짊어지고 있었다. 安祿山[안록 산]의 군사가 얼른 이 城[성]을 항복받으려고 애를 써서, 그 城[성]으로 이 르는 沿路[연로]의 모든 고을을 或[혹] 무찌르고 或[혹] 항복받은 뒤에 睢 陽城[수양성]으로 집중하여 總攻擊[총공격]을 행하니, 城[성]의 운명은 바 람 앞의 촛불보다도 위태로웠다. 그리하여 張巡[장순]네의 항복을 권하는 소리가 빗발치듯 들어왔으나, 張巡[장순]은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一 片丹心[일편단심]으로 大義[대의]를 지켜 다른 것은 모르는 체하였다. 나중 에는 城[성]안에서도 항복하자는 말이 일어났으나 張巡[장순]은 다만 義 [의]로 타이르고, 그래도 알아듣지 못하는 자는 임금의 畵像[화상] 앞으로 끌어내서 목을 베었다. 이때 버금 將首[장수] 許遠[허원]이 뜻이 약해지는 듯함을 보고 遠[원]을 자기 앞으로 불러내다 놓고, 時調[시조] 첫머리에 나 오는 것과 같이 南八[남팔]아(南八[남팔]은 許遠[허원]의 字[자]라) 사나이 자식이 죽어 없어질지언정 不意[불의] 앞에 허리를 屈[굴]하겠느냐고 秋霜 [추상]같이 소리를 질렀다. 許遠[허원]은 이에 感激[감격]하여 태연히 대 답하기를, 그렇지 아니하여도 범연할 이가 없압거든, 더구나 公[공]에게 이 런 分咐[분부]를 듣자온 바에 감히 죽지 아니할 다른 마음을 두오리까 하고 서, 이로부터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여 마지막까지 睢陽城[수양성]을 죽기 로 지켜서, 도적의 군사가 이를 어찌하지 못하고, 이것이 戰局[전국]의 대 세를 돌리는 데 큰 기틀이 되었다. 싸움 뒤에 張巡[장순] 許遠[허원]의 功 [공]은 크게 기록되고, 그 畵像[화상]이 으뜸 功臣[공신]들과 나란히 凌練 閣[능연각] 위에 그려지게 되고, 그 이름과 事實[사실]이 길이 후세에 전하 여 千古[천고] 군인에 龜鑑[귀감]이 되었다. 여기 淸陰[청음] 金尙憲[김상 헌]이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오랑캐에게서 항복하라는 恐喝[공갈]을 받으면 서 누구보다도 먼저 張巡[장순] 許遠[허원]의 일을 생각해 가지고 죽어도 不義[불의]에 굽힐 수 없는 지극한 忠心[충심]을 나타낸 것은 진실로, 의리 를 생명보다 무겁게 아는 마음이 千秋[천추]를 隔[격]하여 서로 비추기 때 문이다.
- 南八[남팔]아 男兒[남아] ─ 死[사]이언정 不可以不義屈矣[불가이불의굴
의]어다.
- 웃고 대답하되 公[공]이 有言敢不死[유언감불사]아
- 千古[천고]에 눈물진 영웅이 몇몇일줄 알리요.
오늘날 우리가 尋常[심상]하게 이 글을 읽어도 오히려 주먹이 쥐어지고 머리가 위를 가리키는 느낌이 있으려든, 하물며 그러한 때와 그러한 땅을 다다라 있는 사람의 마음은 과연 어떠하였으랴. 저 壬辰倭亂[임진왜란]에 泉谷[천곡] 宋象賢[송상현]이 東來府使[동래부사]로서 물밀 듯 달려드는 적 병을 抵當[저당]하지 못하고 甲胃軍章[갑위군장]을 正制衣[정제의]하고 南 門[남문]에 앉아 從慂[종용]히 나라에 殉死[순사]할새, 편지를 써 그 아버 님께 보내 가로되,
- 孤城月暈[고성월훈] ─ 외로운 城[성]에 달이 무리를 하였는데,
- 列陳高枕[열진고침] ─ 모든 軍事基地[군사기지]가 깊이 잠들었도다.
- 君臣義重[군신의중] ─ 임금과 신하의 의리는 무겁고,
- 父子恩輕[부자은경] ─ 아비와 자식의 恩惠[은혜]는 가볍도다.
한 遺書[유서]의 첫 句節[구절]이 孤城月暈[고성월훈]이라 한 것은 역시 睢陽城[수양성]의 달이 빛이 없다는 뜻을 빌어온 것이다. 이와 같이 작은 城[성]이 적군의 포위를 당하고 將首[장수]가 외로이 지키는 광경의 張巡 [장순] 許遠[허원] 睢陽城[수양성]에 비겨서 말하는 일은, 위 뒤 보통의 前 例[전례]가 되었다.
- 세째 孝宗大王[효종대왕]이
- 앗가야 사람되어 왼몸에 깃이도처
- 九萬里長天[구만리장천]에 푸드득 솟아 올라가서
- 님계신 九重宮闕[구중궁궐]을 굽어볼까 하노라.
이 글은 靑太宗[청태종]에게 항복한 결과로 仁祖[인조] 임금의 두 아들 麟坪大君[인평대군]과 鳳林大君[봉림대군]이 볼모로 奉天[봉천]으로 잡혀 갔다가 나중에 北京[북경]까지 갔었는데, 鳳林大君[봉림대군] 뒤에 孝宗[효 종] 임금이 고국을 생각하면서 내 몸이 사람이 되지 말고 날개 돋힌 새나 되었더면 이렇게 갇혀 있지 않고 九萬里長天[구만리장천]을 시원하게 날아 가서 九重宮闕[구중궁궐]에 계신 아버지 임금의 지내시는 모양을 뵙지 아니 하겠느냐 하는 뜻을 읊은 것이다. 약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난 까닭으로 나 라 일이 불행할 때에 이리 저리 敵軍[적군] 中[중]으로 끌려다닌 설움은 또 한 특별한 懷抱[회포]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丙子胡亂[병자호란]에는 恨[한]이 크고 설움이 깊은만큼 이러한 종류의 愛國的[애국적] 詩歌[시가]는 어느 때보다 많음을 보지마는, 대강 이만큼 하고 더 번거롭게 하고자 아니한다.
또 이상은 외국의 침임을 당하였을 때의 국민의 敵愾心[적개심]을 나타내 는 글들이거니와, 이 밖에도 나라와 나라가 갈리는 국내 사실에 朝廷[조정] 에 대한 애국심을 발표한 詩歌[시가]도 무론 적지 아니하다. 제일 유명한 것이 저 高麗[고려] 말년에 圃隱[포은] 鄭夢周[정몽주]가 全州李氏[전주이 씨] 패의 유혹에 대하여 단호히 대답하기를
- 이몸이 죽고죽어 一白[일백]번 고쳐죽어
- 백골이 塵土[진토]되어 넋이야 있고 없고
- 님向[향]한 一片丹心[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한 것 같음은 언제 읽어도 字字句句[자자구구]마다 붉은 불덩어리가 튀어 나오는 듯한 글이다.
또 世祖[세조] 임금 때 癸酉革命[계유혁명]에 이른바 死六臣[사육신]들이 前[전]임금 端宗[단종]을 위하여 吐露[토로]한 여러 편 時調[시조]도 다 이 러한 부류에 들어갈 것임이 무론이다.
- 六臣[육신] 중의 한 사람인 白玉[백옥] 李塏[이개]의
- 窓[창]안에 혓난 燭[촉]불 눌과離別[이별] 하였관대
- 겉으로 눈물지고 속타는줄 모르는고
- 저 燭[촉]불 날과같으여 속타는줄 모르더라.
한 것을 대표로 뽑아 千萬古[천만고] 愛國志士[애국지사]의 切迫[절박]한 心懷[심회]를 거울하여 보기로 하겠다. 이는 百濟[백제] 말년 成忠[성충]의 속이요, 新羅[신라] 말년 麻衣太子[마의태자]의 속이요, 高麗[고려] 말년 鄭夢周[정몽주]의 속이요, 端宗[단종] 때 六臣[육신]의 속이요, 丙子胡亂 [병자호란] 三學士[삼학사]의 속으로서, 때와 사람은 다를 법하되 愛國志士 [애국지사]의 속은 한판에 박은 것과 같은 것이다. 이를테면 이번 六[육] ‧ 二五[이오] 事變[사변]에 아무 방비 없이 突發的[돌발적] 變亂[변란]을 만 나서 北[북]은 三角山[삼각산]으로부터 南[남]은 智異山[지리산]에 이르는 數千里[수천리] 疆土[강토]가 盜賊[도적]의 말굽에 짓밟히고 大邱[대구] 이 남 아홉 고을에 손바닥만한 땅이 겨우 내 것으로 남았을 때에 수천만 南韓 [남한] 同胞[동포]의 속이 또한 이러하였음은 아직도 사람의 기억이 새로운 바이다.
대저 민족 생활에 있어서 중대한 사명을 치르면 심각한 경험이 반드시 위 대한 문학을 만들어 내는 법이니, 저 당나라 安祿山[안록산]의 난리에 杜子 美[두자미]라는 천고 大詩人[대시인]이 나서 支那[지나] 문학의 위에 만장 광채를 더한 것이 역시 그것이다.
이 번의 六[육]‧ 二五[이오] 사변도 마땅히 큰 문학을 우리에게 가져올 것이지마는, 또 돌이켜 생각하면 그것을 원치 아니할 이유도 있다. 가령 이 때까지의 실례로써 볼진대, 한국 민족에게는 외국의 침입자를 잘 몰아내는 위대한 전통이 있어서 매우 든든하기도 하지만, 만일 그보다 더 한국민에게 거룩한 민족 원기가 있어서 애초에 남이 와서 집적거리지를 못할진대, 그러 한 문학도 생겨날 리가 없을 것이니, 이러한 의미에서는 한국에 적개심을 발휘한 좋은 문학이 있는 것을 도리어 자랑하고 싶지도 않다 하겠다. 여하 간 우리 한국민이 六[육]‧ 二五[이오]의 일을 거울로 하여 새로운 원기와 애 국심을 가지고 나라 안에 있는 오랑캐들을 깨끗이 내몰아서 국토의 통일이 완수되고 국민의 명예가 새로와지기를 바라는 것은 다만 우리뿐이 아닐 것 이다.
<一九五日年[일구오일년] 六月[유월]二七日[이칠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