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부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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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회[편집]

화설. 오백여 년 전에 구라파주 법란서국 아리안 성 지방에 한 마을이 있으니 이름은 동이미라. 그 땅이 궁벽하여 인가가 드물고 농사만 힘쓰는 집뿐이라. 그 중에 한 농부가 있으니 다만 부처 두 식구가 일간 초옥에 있어 가세가 빈한하므로 양을 쳐서 생업하더니 서력 일천사백십이 년 정월에 마침 한 딸을 낳으니 용모가 단아하고 천성이 총명하여 영민함이 비할 데 없으니 부모가 사랑하여 이름을 약안아이격이라 하더니 약안이 점점 자라매 부모에게 효순하며 한번 가르치면 모르는 것이 없으며 또한 상제를 믿어 성경을 항상 읽으며 학문에 능통한지라. 나이 십삼 세에 이르러 능히 부모의 양치는 생업을 도우니 부모가 이 여아의 극히 영리함을 보고 십분 기뻐하더라. 그 동네 사람들이 약안의 총민함을 칭찬 아니 할 이 없어 특별히 이름을 정덕이라 부르며 가로되,

“아깝도다. 정덕이 만약 남자로 생겼다면 반드시 나라를 위하여 큰 사업을 이룰 것이거늘 불행히 여자가 되었다.”

하매 약안이 이렇듯이 칭찬함을 듣고 마음에 불평이 여겨 하는 말이

“어찌 남자만 나라를 위하여 사업하고 여자는 능히 나라를 위하여 사업하지 못할까? 하늘이 남녀를 내시매 이목구비와 사지 백태는 다 일반이니 남녀가 평등이거늘 어찌 이같이 등분이 다를진대 여자는 무엇 하려 내시리오.”

하니 이런 말로만 보아도 약안이 타일에 능히 법국을 회복하고 이름이 천추 역사상에 혁혁히 빛날 여장부가 아닐쏜가.

각설. 약안이 하루는 일기가 몹시 더워 불 속 같은지라 양을 먹이다가 더위를 피하려고 양을 몰고 나무 수풀과 시냇물 가에 배회하더니 이 때 마침 영국 군병이 법국을 침범하여 향촌으로 다니면서 불을 놓아 인민을 겁략하고 재물을 탈취하거늘 약안이 속히 피하여 수풀 사이로 들어가니 인적이 고요하고 다만 옛 절이 있거늘 그 절 가운데 숨어서 상제께 가만히 빌어 가로되,

‘원컨대 신력을 빌어 나라의 환란을 구원하고 적국의 원수를 갚게 하옵소서.’

하며 무수히 축원하더니 이 때 영국 군병은 벌써 가고 촌려가 안정하거늘 약안이 그 절로 나와 길을 찾더니 그 절 뒤에 한 화원이 있는데 화류는 꽃다움을 다투고, 꾀꼬리는 풍경을 희롱하는지라. 약안이 경개를 사랑하여 화원중에 들어가 이리 저리 구경하더니 홀연 어디서 약안을 불러 가로되,

“약안아, 네가 너무 한 흥을 타 방탕히 놀지 마라.”

하거늘 약안이 깜짝 놀라 사면을 살펴보았으나 사람의 그림자도 없는지라. 정히 의심하여 머리를 들어 보니 홀연 공중에 황금빛이 찬란하며 채색 기운이 영롱한데 구름 속에 무수한 천신이 공중에 둘러서고 그 중에 세 분 천신이 서서 옥관 홍포로 기상이 엄숙한데 약안을 크게 불러 가로되,

“법국에 장차 큰 난이 있을지라. 네가 마땅히 구원하라.”

약안이 다시 천신의 앞에 엎드려 고하되,

“소녀는 본래 촌가 여자라. 어찌 하여야 군사를 얻어 전장에 나아가게 되오며 또한 법국의 난이 어느 날 평정하오리까? 소녀의 지원이 백성을 위하여 재앙을 구제하고 나라의 원수를 갚아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오니 바라건대 상제께서 일일이 지시하여 도와주옵소서.”

천신이 이르되,

“너는 근심치 말라. 이 다음 자연 알 날이 있을 것이니 그 때 되거든 라비로 장군의 휘하로 들어가면 좋은 기회가 생기리라.”

하고 말을 마치매 별안간에 금광이 얼른하며 곧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대저 법국이 영국과 해마다 싸움을 쉬지 아니하므로 궁촌 농부라도 영국의 원수 됨을 다 아는지라. 약안이 어려서부터 부모의 항상 일컫는 말을 듣고 심중으로 또한 나라의 부끄럼을 씻고자 하여 날마다 상제께 가만히 축원하기를,

‘장래 나라를 위하여 원수를 설치하고 백성을 구제하게 하옵소서.’

하여 칠팔 년을 일심으로 비는 고로 그 정성이 맺혀 하늘이 감동하여 약안의 눈에 천신이 나타나심이라. 약안이 황홀하여 마음속에 생각하되,

‘이것이 혹 꿈인가’

하더니 그 후에도 누차 천신이 눈에 완연히 보이고 이같이 부탁이 정령한지라. 약안이 생각하되,

‘천신께서 저렇게 누누이 분부하시니 필연 나라에 큰 난이 있을지니 내 마땅히 구하리라’ 하고 일로 부터 나라 원수 갚기를 스스로 책임 삼아 혹 군기도 전습하며 혹 목장에 나아가 말도 달리며 총과 활도 배우니 부모는 여아의 이러한 거동을 보고 심히 근심하며 염려하여 매양 금지하되 이미 뜻이 굳어 암만 권하여도 듣지 아니할 줄 짐작하고 어찌할 수 없어 그대로 두더라. 그 동리 사람은 모두 약안더러 미친 여자라 지목하되, 약안은 추호도 뜻을 변치 않고 동리 사람더러 이르되,

“내 이미 상제의 명을 받았노라.”

하매 듣는 이가 해연히 웃고 이상히 알더라.

오늘 문무재주를 배움은 정히 다른 때 국민의 난을 구제코자 함이로다.

제이회[편집]

차설. 이 때 법국과 좁은 바닷물 하나를 격하여 이웃한 나라는 곧 영국이라. 이 두 나라가 백년 이래로 원수가 되어 날마다 싸움을 일삼는지라. 서력 일천삼백삼십팔 년부터 영국 왕 의덕화 제 삼세가 법국왕 비립 제 육으로 더불어 격렬서의 싸움이 있고 그 후 일천삼백오십육 년에 영국 흑태자가 법국과 파이다에서 크게 싸워 법국 왕 사이 제 사 악한을 사로잡고 기후 사오 년에 법국 사이왕 제 오가 영국과 싸우다가 패하여 땅을 베어 주고 배상을 물어 준 후에 화친하였더니 이 때 법국은 정부에 두 당파가 있는데 하나는 애만랍 당이니 왕실을 붙들고자 하고 또 하나는 불이간 당이니 영국과 잠통하여 법국을 해롭게 하니 이 두 당패가 서로 내란을 일으킴으로 영국 현리 왕 제 오가 이 기회를 타서 법국과 싸워 법병이 대패하더니 일천사백십칠 년에 또 영국 왕이 법국을 대패하고 약조를 정하되 법국 왕의 딸 가타린으로 영국 현리 왕 제 오의 왕비를 삼아 법국 왕을 겸하게 하고 파리성에 들어가 법국 사이 왕 제 육을 폐하고 법국을 통할할 새 이 때 법국 북방의 모든 고을은 다 영국에 복종하되 오직 남방의 제성이 영국에 항복치 않고 법국 태자 사이 제 칠을 세워 영국을 항거하더니 일천사백이십팔 년에 영국이 또 대병을 일으켜 법국 남방을 소탕코자 하여 영국 해협 지방으로부터 법국 지경까지 수백 리를 정기가 공중에 덮이고 칼과 창은 일월을 희롱하는지라. 수륙으로 일시에 지쳐 들어오며 라아로하를 건너 남방 지경을 침범하나 이 때 법국의 왕은 남방으로 도망하고 법국 서울 파리성과 그 남은 성은 다 영국의 땅이 된지라. 법국이 아무리 누만 정병을 조발하여 영국과 싸우나 군사의 용맹과 무예의 날램이 영국을 당치 못하고 장수도 영국 같이 지용이 겸비한 자가 없을 뿐더러 또한 법국의 정부 대관은 다 영국의 지휘를 받음으로 법국 왕이 남방에 파천하여 몸을 용납할 땅이 없으니 이러므로 법국 병이 싸울 뜻이 없고 각자 도생하여 전국이 거의 영국 영토가 될 지경이요, 전국 인민은 다 외국의 노예와 개와 돼지 됨을 부끄러운 욕이 되는 줄 모르고 하루라도 구차히 목숨 보전한 것만 다행으로 아니 만약 남방만 아니라면 법국의 성명이 어찌 오늘까지 전하리오. 이 때 오직 남방의 몇몇 고을이 남아 법국 왕을 보호하니 그 곳에 유명한 성 이름은 아리안 성이라. 그 성은 라아로하의 북편에 지경하여 남방 인후가 되고 제일 험요한 성이니 하수 북편 언덕에 있어 남편 언덕과 중간에 큰 다리를 놓고 서로 항상 왕래하는데 그 다리 남편은 허다한 성곽과 포대를 쌓고 다리를 막아 적병을 방비하니 그 다리 이름은 교두보요, 그 다리 위에 두 낱 석탑이 있으니 이름은 지미로니 북편으로부터 탑까지 이르는데 전혀 흙과 돌로 쌓아 극히 견고하고 험하며 또 탑의 남편에 나무다리를 놓아 각처에 왕래하니 교두보와 지미로 두 곳에 엄중한 군사를 두어 적병을 방비하므로 아리안 성은 이러한 험요 성책을 믿고 죽을힘을 다하여 지키더니 이 때 영국 대장 사비리가 아리안 성의 험함을 보고 한 계책을 생각하되,

‘이 성은 급히 파할 수 없으니 우리 각처 군졸을 모두 모아 힘을 합하여 먼저 지미로 성을 파함만 같지 못하다.’

하고 제장을 불러 일제히 지미로를 에우고 이 해 시월 이십삼 일에 계교를 내어 밤중에 지미로 성을 파하매 그 탑 위에 대포를 걸고 성 아래에 있는 인민의 집을 몰수이 소화하며 험한 곳을 영병이 점령하여 아리안을 치나 성 중에 있는 법국 장졸은 죽기로 지키매 아무리 쳐도 성을 깨치지 못하고 영국 대장 사비리가 화살에 맞아 죽는지라. 영국이 다시 새가로 장군으로 원수를 삼아 주야로 공격하여 수월을 지내되 파하지 못하고 장구히 에워 구원을 끊고 성중 장졸이 먹지 못하면 자연 항복하리라 하고 성 밖에 흙을 쌓아 높은 산을 성과 같이 하고 여섯 곳 돈대 위에 대포를 걸고 날마다 치니 이때는 서력 일천사백이십구 년 정월이라. 아리안 성 중에 물샐 틈이 없게 에워싸고 비조라도 통치 못하게 하니 다른 곳 법국 군사가 와서 구원코자 하나 어찌 능히 들어오리오. 이 때 아리안 근처에 사는 용맹 있는 장사들이 수천 명 용사를 뽑아 아리안 성을 구원코자 하다가 영국 군병에게 패한 바가 되어 여간 양초와 창포 등속만 다 적국에게 빼앗기고 아무 효험이 없으니 이른바 계란으로 돌을 때림이라. 어찌 영국의 병졸을 당하리오. 성 중에 있는 장졸들이 모두 의기가 저상하고 형세가 날로 축하니 그 곤란한 정형을 이루 다 측량하리오. 혹은 말하되 ‘차라리 일찍 항복하여 온 성 중에 있는 생명이나 구하는 것이 가하다’ 하고 혹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어찌 차마 항복하리오’ 하되 항복코자 하는 편이 많은지라. 그러나 성 중에 있는 법국 대장 비호로 공작은 원래 성명이 있는 사람이라 항복코자 하는 말을 크게 논박하므로 감히 발설치 못하고 죽기로 지키자 하니 슬프다. 이 때 아리안 성은 도마 위에 살점이요, 가마 안에 고기라 어찌 위태하지 않으리오. 옛적 우리나라 고구려 시대에 당 태종의 백만 군병을 안시성 태수 양만춘이 능히 항거하여 백여 일을 굳게 지키다가 마침내 당병을 물리치고 평양성을 보전하였으며 수양제의 백만 병은 을지문덕의 한 계책으로 전군이 함몰케 하였으며 고려 강감찬은 수천 병으로 거란 소손녕의 삼십만 병을 물리치고 송경을 보전하였으니 알지 못할지라. 법국은 이때에 양만춘, 을지문덕, 강감찬 같은 충의 영웅이 뉘 있는고. 정히 이 처량한 빛만 눈에 가득하거늘 중류지주에 의기인이 뉘 있는가.

제삼회[편집]

차설. 이 때 약안의 나이 십칠 세라. 화용월태를 규중에 길러 봉용한 태도와 선연한 풍채가 진시 경성경국의 미인이라. 이 때 법국 경성의 함몰함과 국왕이 파천한 소문이 사방에 전파하매 비록 아동 부녀라도 모를 이가 없는지라 약안이 주야로 차탄하여 가로되,

‘우리나라가 저 모양이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을꼬?’

종일토록 집에 앉아 나라 회복할 계교를 생각하다가 법국 지도를 내어 놓고 자세히 살피더니 홀연 들으니 문 밖에 천병만마의 훤화하는 소리 벽력같이 진동하면서 마을 사람의 우는 소리 사면에 요란하거늘 약안이 놀라 급히 나아가 본 즉 영국 군병이 기율 없이 사방에 횡행하며 재물을 노략하고 부녀를 겁간하며 인명을 살해하는지라. 약안이 그 잔혹한 참상을 보고 더욱 분하여 심중에 설치 복수할 생각이 더욱 간절하나 어찌할 수 없어 급히 들어와 약간 의복 집물을 거두어 행장을 단속하고 군기 등물을 몸에 가지고 부모를 보호하여 말에 태우고 후면으로 달아나 요고측이란 마을에 이르러 피난하더니 수일을 지나매 아리안 성의 곤급한 소식이 날로 들리는지라. 약안이 발연히 일어나 칼을 어루만지며 가로되,

‘시절이 왔도다. 시절이 왔도다. 내가 나라를 구치 못하고 다시 누구를 기다릴까.’

즉시 부모 앞에 나아가 여쭈오되,

“오늘은 여식이 부친과 모친을 하직하고 문외에 나아가 큰 사업을 세우고자 하오니 혹 요행으로 우리 국민 동포의 환란을 구제하고 우리나라 독립을 보전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부모가 이 말을 듣고 대노하여 말하되,

“네가 광풍이 들렸느냐. 네가 규중에 성장한 여자로서 어찌 전장에 나아가 칼과 총을 쓰리오. 만약 이같이 용이할 것 같으면 허다한 남자들이 벌써 하였을지라. 어찌 너 같은 아녀자에게 맡기리오. 우리 지원은 네가 슬하에 있어 늙은 부모를 받들고 전장에 나아가 공업 이루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만약 불행하면 남에게 욕을 당할 뿐 아니라 우리 집 조선 이래로 맑은 덕행을 더럽힐 것이요, 또한 우리 부처가 다른 혈육이 없고 슬하에 다만 너 하나뿐이거늘 네가 집을 떠나면 늙은 부모를 누가 봉양하겠느냐? 너는 효순한 자식이 되고 호걸 여자가 되지 말라.”

한데 약안이 눈물을 머금고 슬피 고하되,

“부모님은 둘러보옵소서. 여아의 마음은 벌써 확실히 정하였사오니 다만 국가와 동포를 안녕히 보전할 지경이면 이 몸이 만 번 죽어도 한이 없으며, 하물며 이 일은 한 집안 사정이 아니라 백성된 공공한 사정이오니 제 몸은 비록 여자오나 어찌 법국의 백성이 아니리까. 국민 된 책임을 다 하여야 바야흐로 국민이라 이를지니 어찌 나라의 난을 당하여 가만히 앉아 보고 구하지 아니하리오. 여아는 오늘날 일정한 마음을 돌이키기 어렵사오니 기어코 가고자 하옵나이다.”

부친이 여아의 이러한 충간열혈이 솟아나는 말을 들으매 자연 감동도 되고 또한 만류하여도 듣지 아니할 줄 짐작하고 다시 일러 가로되,

“너는 여자로서 애국하는 의리를 알거든 남자 된 자야 어찌 부끄럽지 아니하리오. 네 아비는 나이 이미 늙어 세상에 쓸 데 없으니 너는 마음대로 하라.”

한데 약안이 부친의 허락하심을 보고 눈물을 거두어 의복과 무기를 갖추어 행장을 수습하고 부모 전에 하직할 새 두 눈에 구슬 같은 눈물을 흘려 여쭈오되,

“여아가 이번 가면 다시 부모님을 뵈올 날이 있을는지 모르거니와 부모님께서는 여아를 죽은 줄로 아시고 추호도 생각지 마시고 다만 신상을 보정하옵소서.”

부모가 가로되,

“여아야, 부모는 염려 말고 앞길을 보중하여라.”

이 날 약안이 부모께 하직하고 문 밖에 나와서 돌아보지 않고 길을 찾아 보고유 지방을 향하여 포다리고 장군을 찾아가니라. 약안의 부모는 여아를 이별하고 두 줄 눈물이 비 오듯 하며 거리에 비켜서서 이윽히 바라보다가 여아의 형영이 보이지 않음을 기다려 방에 들어 와 슬피 통곡하니 그 정상은 차마 못 볼러라.

정히 이 노인은 다만 집 보전할 뜻이 있거늘 어린 여자는 깊이 나라 원수 갚을 마음을 품도다.

제사회[편집]

각설. 아리안 성은 법국의 명맥과 같은 중요한 땅이라. 그 성을 한번 잃으면 법국 종사가 멸망할 뿐 아니라 인민이 다 노예와 우마가 될지라. 이 때 영국 군병은 철통같이 에워싸고 주야로 치니 방포 소리 원근에 진동하는지라. 그 성 북방에 또 한 성이 있으니 이름은 보고유 성이라. 법국 장군 포다리고가 그 성을 지키나 수하에 장수 없고 군사가 적어 아리안 성의 위급함을 보아도 능히 구치 못하고 또한 영국 군병이 본성을 칠까 두려워하여 속수무책하고 주야 근심하더니 하루는 답답하고 민망하여 성 위에 올라 턱을 괴이고 가만히 생각하되,

‘우리 법국이 망할 지경에 이르렀건만 내 아무리 충의 심장이 있으며 용맹 수단이 있으나 나라를 위하여 큰 난을 구하지 못하니 생불여사라’

하고 두어 소리 긴 한심으로 난간에 배회하다가 홀연 또 일어나 크게 소리 질러 가로되,

“옛말에 모진 바람에 굳센 풀을 알고 판탕한 시절에 충신을 안다 하나니 묻노라 법국이 오늘날에 굳센 풀과 충신이 뉘 있는가?”

하며 정히 탄식할 즈음에 우연 바라보니 어떤 한 부인이 편편히 오거늘 장군이 생각하되,

‘이상하다 이러한 난중에 웬 부녀가 홀로 오는고. 필연 아리안 성이 파하여 도망하여 오는 자인가.’

하며 의심하더니 그 여자가 점점 가까이 오거늘 자세히 살피니 얼굴이 옥 같고 의기가 양양하여 비록 의복은 남루하나 늠름한 위의는 여장부의 풍채라. 그 여자가 즉시 장군의 휘하에 들어와 절하고 여쭈오되,

“저는 일개 향촌 여자요 이름은 약안아이격인데 법국의 난을 구원코자 왔나이다.”

장군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생각하되 ‘반드시 광병 들린 여자로다. 내 마땅히 시험하리라.’ 하고 전후사를 낱낱이 힐문한대 그 여자 여쭈오되,

“제가 천신의 지시함을 입사와 법국의 위급함을 구하고자 하오니 바라건대 장군은 의심치 마옵소서.”

장군이 그 행동을 살피고 언어 수작함을 본즉 단정한 여자요 광병 들린 여인은 아니라. 그제야 마음을 놓고 구제할 방법을 물은대 약안이 강개히 대답하되,

“제가 수년 전에 천신의 나타나심을 입사와 제게 부탁하기를 법국에 대란이 있을 것이니 네가 마땅히 구원할지라 하심으로 이 일로부터 마음과 뜻을 정하고 무예를 사습하옵더니 오늘날 나라가 위급하고 백성이 노예가 될 지경에 이른 고로 죽기를 무릅쓰고 와서 장군을 뵈옴이요 다른 뜻은 없사오니 바라건대 장군은 굽어 생각하시와 일대 병마를 빌려 주시면 제가 비록 재주와 용략은 없사오나 충성을 다하여 아리안 성의 에움을 풀고 적군을 소탕한 후 고국을 회복하고 저의 뜻을 완전히 하오면 죽어도 한이 없사옵니다.”

하며 말할 때에 뜨거운 피 기운이 면상에 나타나며 정신이 발발하여 열사의 풍신이 족히 사람을 감동케 하는지라 장군과 좌우 제장들이 모두 그 여자의 말을 듣고 십분 공경하여 자리를 사양하여 앉히고 감히 여자로 대접치 못하는지라. 장군이 드디어 국사를 의론하며 물어 가로되,

“낭자가 비록 담기와 지식이 많으나 원래 목양하던 농가 출신이라 한 번도 전장에 경력 없으니 어찌 능히 영국 군병과 싸우리오. 하물며 영국 군병은 개개이 날래고 웅장하여 우리나라에서 몇 번 대병을 내어 싸우다가 전군이 함몰하였으니 낭자가 무슨 계책이 있느뇨?”

약안이 대답하되,

“제가 무슨 기이한 계교 있사오리까? 다만 천신의 지휘하심인즉 자연 도우심이 있을는지도 알 수 없고 또한 천신의 도우심만 믿을 것 아니라 오직 일점 열심만 믿고 우리 국민 된 의무를 극진히 하여 법국 인민 됨이 부끄럽지 않게 할 따름이요, 설혹 대사를 이루지 못하여도 천명에 맡길 것이라. 어찌 성패를 미리 요량하오며 또한 용병하는 법은 원래 기틀을 따라 임시변통할 뿐이라 미리 정할 수 있사오리까”

장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르되,

“낭자의 말씀이 옳도다. 우리나라 백성이 낱낱이 다 낭자와 같이 국민의 의리를 알진대 어찌 오늘 이 지경에 이르렀으리오. 그러나 내 수하에 군병이 얼마 되지 않고 또한 이곳도 중지라 성을 비우고 보낼 수 없은즉 우선 몇 백 명만 줄 것이니 낭자는 영솔하고 여기서 수십 리만 가면 시룡촌이라 하는 동리가 있는데 그 동리에 우리 법국 왕 사이 제 칠 폐하께서 그 곳에 주찰하셨으니 나의 공문을 가지고 가 뵈오면 자연 군사를 얻을 도리가 있으리라.”

하고 즉시 성중에 있는 군사 일 중대를 점검하여 빌린대 약안이 백 배 치사하고 공문을 얻어 품에 품고 장군을 하직한 후 군졸을 영솔하고 시룡촌을 향하여 가니라.

정히 이 장군은 한갓 성 지킬 꾀만 있거늘 여자는 다만 온 나라 다 구할 공을 이루고자 하도다.

제오회[편집]

각설. 서력 일천구백이십구 년 사월에 약안이 황금 갑주와 백마 은창으로 일 중대를 거느리고 수십 리를 행하다가 시룡촌에 당도하여 국왕 전에 뵈옵기를 청한데, 이 때 법왕 사이 제 칠이 벌써 들은즉 어떠한 영웅 여자가 군사를 일으켜 나라를 구한다함으로 십분 기뻐하더니 이 날 뵈옵기를 청하매 왕이 그 여자가 천신을 칭탁한다는 말을 듣고 혹 요괴한 술법으로 세상을 속이는가 의심하여 그 진위를 알고자 하여 의복을 벗어 다른 신하를 입히고 왕의 상좌에 앉혀 거짓 왕을 꾸미고 왕은 신하의 복장을 입고 제신의 반열에 섞여 분변치 못하게 하고 약안을 불러들인대, 약안이 들어오다가 정당 위에 앉은 거짓 왕에게는 가지 않고 곧 제신들 있는 반열에 들어와 참 국왕을 보고 재배하거늘 왕이 거짓 놀라는 체하여 낭자가 그릇 왔도다 하며 당상을 가리켜,

“저 위에 용포 입고 앉으신 국왕 폐하께 뵈오라. 나는 아니로라.”

한데 약안이 엎드려 여쭈오되,

“천한 여자가 감히 천신의 명을 받자와 왔사오니 아무리 폐하께서 의복을 변하였을지라도 어찌 모를 이치가 있사오리까?”

왕이 그제야 약안의 성명과 거주를 물으시고 그 뜻을 알고자 하거늘 약안이 대답하되,

“천한 여자는 동이미 농가의 여자온대, 이름은 약안아이격이요, 나이는 십구 세요, 어려서부터 천신의 명을 받아 법국의 재앙을 구원하며 대왕을 위하여 적국을 소탕하고 리목 땅을 회복하고 폐하를 받들어 가면의례를 행코자 하나이다.”

하고 인하여 포다리고 장군의 공문을 드린데 왕이 그제야 진심인 줄 알고 약안의 손을 잡고 가로되,

“법국 사람이 다 낭자 같으면 어찌 회복하기를 근심하리오.”

하고 못내 차탄하시니 원래 법국의 법에 왕이 즉위하면 반드시 가면의례를 행하되 역대로 즉위할 때마다 리목 땅에서 행하더니 이 때 그 땅이 영국에게 빼앗긴 바 되어 왕이 가면의례를 행치 못하므로 약안이 글로 고함이라. 이에 좌우 제신이 다 서로 말하되 상제께서 법국을 위하여 이 여자를 보내어 나라를 중흥케 함이라 하더라.

선시에 법국 사이 왕 제 칠이 남방에 파천하여 각처 패한 군사를 거두니 대략 삼천여 명이라. 이 날 왕이 그 패병 삼천 명으로 약안의 휘하에 붙이시고 약안을 봉하여 대원수 여장군을 삼으시며 황금 갑주와 비단 국기와 또 몸기 하나를 주시니 그 몸기에는 천주의 화상을 그리어 매양 진중에 들 때마다 손에 드는 기라. 약안이 원융의 단에 올라 황금 갑주와 백은포를 입고 우수에 장검을 들고 좌수에 몸기를 잡아 엄연히 대장기 앞에 앉았으니 그 기에 황금 대자로 ‘대법국 대원수 여장군 약안’이라 새겼더라. 원수 비록 연약한 여자의 몸이나 무기와 융장을 단속하고 장단에 높이 오르니 그 위엄이 엄숙하고 풍채가 늠름하여 진시 여장부의 풍신이 있는지라. 이 날 제장 군졸을 불러 일제히 점고하고 무기를 조련하니 군사가 다 원수의 신통한 도략을 복종하여 용맹이 백배나 떨치니 보는 사람마다 책책 칭찬 아니 할 이 없더라.

정히 원융은 본시 나라를 평안히 할 뜻이 간절하고 제장은 깊이 나라를 사랑하는 맘이 가득하도다.

제육회[편집]

각설. 이 때 법국은 아직 중고 시대라. 사람마다 천신을 숭상하고 종교에 침혹하니 이는 미개한 시대에 예사라. 약안의 이름이 세상에 진동하여 아동주졸이라도 모르는 자가 없어 혹은 말하기를 천신이 세상에 내려와 법국을 구한다 하며 혹은 말하되 요괴한 마귀가 사술로 사람을 유혹한다 종종 의론이 사방에 분분한지라. 원수가 인심이 이러함을 알고 불가불 의로 인심을 격발하고 분운한 논란을 바르게 하리라 하여 일장 격서를 지어 동구 대도에 게시하고 각 지방에 전파하니 그 격문에 하였으되,

‘슬프다 법국이 불행하여 종사가 없어지고 백성이 유리하며 도성이 함몰하고 임금이 파천하시니 진실로 우리나라 백성이 와신상담할 때라. 나는 어려서 상제의 명을 받들고 충의의 마음을 품어 감히 의병을 모집하여 고국을 회복하고 강한 적국의 원수를 씻으며 동포의 환란을 구원코자 하노니 모든 우리 법국의 인민은 다 애국하는 의무를 담당하고 마땅히 도적을 물리칠 정신을 떨쳐 소문을 듣고 흥기하며 격서를 보고 소리를 응하여 미친 물결을 만류하고 거룩한 사업을 이룰지어다. 슬프다, 우리 동포여.’

이 때 각처에서 인민 남녀들이 격서를 보고 애국의 사상을 분발하여 통곡하는 자가 많아 한번 약 원수 보기를 천신같이 원하는지라. 원수가 이 소문을 듣고 심중에 기뻐하여 또 한 방책을 생각하되,

‘오늘날 인심이 저렇듯이 분발하니 우리나라 회복할 기틀이 있을까 하나 다만 세상 사람의 심장을 측량치 못하니 인심이 매양 이해 세력에 쏠려 나라의 욕될 줄 모르고 적국에 항복하며 붙이는 자가 많으니 내 마땅히 오늘 군사 위엄이 떨치고 날랜 기운이 성한 시기를 타서 한바탕 연설로 인심도 고동하고 군사의 충의도 격발케 하며 일변으로는 국민 된 자로 하여금 염치를 알고 외인의 노예 됨을 부끄러운 줄 알게 하며 또한 적국으로 하여금 우리 법국도 인물이 있어 남이 개와 돼지같이 보지 않게 하리라.’

하고 즉시 군정관을 불러 각 처에 게방하고 글을 내려 사방에 통지하되 금년 오열 초길에 시룡촌 들 밖에 나아가 일장 연설회를 열 터이라 한데 이 군령이 한번 내리매 소문이 전파하여 각 도 각 군에서 물론 남녀노소하고 성군결대하여 약 원수의 연설을 듣고자 하는지라. 이 때 영국에 항복한 법국 장관이며 각 지방 관찰사와 군수와 일반 관원들을 다 전과 같이 그대로 두고 하나도 고치지 아니함으로 영국의 명령을 받아 정탐 노릇하더니 홀연 비상한 여장군이 나서 허다 기묘한 일과 신통한 술법이 있다 하매 모두 위원 하나씩 비밀히 파송하여 그 거동을 살피는지라. 또 영국 군중에서도 벌써 약 원수의 이같이 신기한 소문을 들었을 터이나 다만 아리안 성이 굳게 지켜 속히 빼앗지 못함으로 각처에 있는 군사를 일제히 모아 아리안을 합력 공격하는지라. 그럼으로 다른 데 겨를이 없으며 또한 약 원수는 일개 유약한 여자라. 조금도 유의치 아니함으로 원수의 행동을 자유로 두어 방비치 아니한 까닭에 약 원수는 그 기틀을 얻어 필경 대공을 이룸이라. 어찌 하늘이라 아니하리오.

정히 이 창자에 가득한 더운 피가 눈물을 이루거늘 한 폭 산하를 차마 남에게 붙이랴.

제칠회[편집]

차설. 이 때 연설할 기한이 이르매 약 원수가 군사를 불러 연설장에 나아가 포치를 정제히 하고 식장을 수축하니 그 연설장은 십분 광활하여 가히 수십만 명을 용납할 만하고 또한 연설대는 그 중간에 있는데 천생으로 된 조그마한 돈대라. 돈대 위에는 나무 수풀이 있어 푸른 가지는 하늘을 덮었고 무르녹은 그늘은 일광을 가렸는지라 사방에서 관망하기도 좋으며 또한 이 때는 오월 천기라 정히 노는 사람에 합당함으로 방청하는 남녀노소가 원근을 불게 하고 인산인해를 이루어 심히 초장에 사람 성을 둘렀는지라. 이 날 상오 십 점종에 이르매 원수가 연설대에 오르니 남녀 인민의 분잡함과 헌화하는 소리 정히 번괄할 즈음에 홀연 방포 일성에 여러 귀를 깨어 장중이 정숙한데 국기를 높이 달고 일개 미인이 머리에 계화관을 쓰고 몸에 백금포를 입고 손에 몸기를 두르며 붉은 라상은 땅에 끌리고 비단 요대는 남풍에 표불하니 완연히 보름달 빛과 구슬 광채같이 찬란하게 연설장 중으로 쏘여 오매 온 장중 수십만 사람의 두 눈빛을 모두 모아서 한 사람의 몸뚱이 위에 물 대듯 하며 모두 하는 말이,

‘저 여장군이 참 전일 소문과 같이 신기하고 이상한 여자로다. 평일에 꽃다운 이름을 여러 번 익히 듣고 한번 보기 소원이더니 오늘이야 그 아름다운 용모를 보매 참 천상의 사람이라. 세상에 어찌 저러한 인물이 또 있으리오. 우리가 자연히 공경할 마음이 생기도다.’

하며 일제히 장중이 정숙하고 천상 귀를 기울여 연설 듣기를 바빠하더니 이 때 원수가 몸기를 두르며 한 점 앵두 같은 입술을 열고 삼촌 연꽃 같은 혀를 흔들어 두 줄기 옥을 깨치는 소리로 공중을 향하여 창자에 가득한 열심하는 피를 토하니 그 연설에 가로되,

“우리 법국의 동포 국민된 유지하신 제군들은 조금 생각하여 보시오. 우리나라가 어떻게 위태하고 쇠약한 지경이며 오늘날 무슨 토지가 있어 법국의 땅이라 하겠소. 북방 모든 고을은 이미 다 영국에 빼앗긴 바 아니오. 남방에 있는 고을은 다만 한낱 아리안 성을 의지하지 아니하였소. 이 한 성도 불구에 함몰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만일 이 성 곧 잃으면 법국의 종사가 전수이 멸망하는 날이 아니오. 또한 우리 국민이 모두 남의 노예와 우마가 되는 날이 아니오. 다 알으시오. 대저 천하 만고에 가장 천하고 부끄럽고 욕되는 것이 남의 노예가 이 아니오. 국가가 한번 망하면 인민이 다 노예가 될 것이요, 한번 노예가 될 지경이면 일평생을 남에게 구박과 압제를 입어 영히 하늘 날을 볼 날이 없지 않소. 심지어 재물과 산업도 필경 남에게 빼앗긴 바가 될 것이요, 조선에 분묘도 남에게 파냄이 될 것이요, 나의 처자도 남에게 음욕을 당할 것이니 애급 나라를 보았소. 옛날에 유태국 사람을 어떻게 참혹히 대접하였소. 이것이 다 우리의 거울 할 것 아니오. 저러한 사정이 다 유태국 사기에 자세히 있지 아니하오. 우리나라도 비록 이 지경이 되었으나 여러 동포가 동심협력하여 발분 진기하면 오히려 일맥 생기가 있겠거늘 만일 인민이 다 노예가 되고 토지가 다 점탈할 때를 기다려 그제야 회복을 도모코자 하면 그때는 후회한들 할 수 없을지라. 그런고로 내가 오늘날 요긴한 문제 하나가 있어 여러분에게 질문코자 하노니 여러분들은 독립 자유의 인민이 되기를 원하느뇨, 그렇지 않으면 천하고 염치없는 남의 노예가 되고자 하는가?”

이 말에 이르러서는 온 장중이 모두 괴괴하면서 머리털이 하늘을 가리키고 눈빛이 횃불 같으며 다 소리를 질러 가로되,

“결단코 아니하겠소. 결단코 아니하겠소. 우리들이 어찌 외인의 노예를 지으리오. 차라리 함께 죽을지언정 노예는 아니 되겠소.”

하는 소리 만장일치로 떠드는 지라. 약 원수가 인심이 저렇듯이 감동되어 모두 열성이 솟아남을 보고 상을 크게 치며 소리를 질러 다시 연설하되,

“동포 제군께서 이미 노예 되는 것이 부끄러운 욕 되는 줄 아시니 이렇듯 좋은 일이 없나이다. 그러나 다만 부끄러운 욕 되는 줄로 알기만 하고 설치할 생각이 없으면 모르는 사람과 일반이 아니요. 대범 세계상에 어떤 나라 사람이든지 진실로 인민 된 책임을 다 하여야 당연한 의무가 아니오. 그러한 고로 나라의 원수와 부끄럼이 있으면 이는 곧 온 나라 백성의 원수요, 부끄럼이 아니겠소. 또한 온 나라 사람의 함께 보복할 일이 아니오. 이러므로 유명한 정치가의 말이 ‘모든 국민 된 자는 사람사람이 모두 군사 될 의무가 있다’ 하니 그 말이 웬 말이오. 사람이 생겨 국민이 되면 사람마다 주권에 복종하며 사람마다 군사가 되어 나라를 갚는 것이 당연치 아니하오. 이것은 자기의 몸과 힘으로 자기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함과 일반이오. 그런고로 나라의 부끄럼과 욕을 씻는 것은 곧 자기 일신의 부끄럼과 욕을 씻는 것과 일반이요, 이것은 우리 국민 된 자가 사람사람이 다 마땅히 알 도리가 아니겠소. 또한 오늘날 이러한 시국을 당하여 어떠한 영웅호걸에게 이러한 책임을 맡겨두고 우리는 일신을 편히 있기만 생각하고 마음이 재가 되며 뜻이 식어 슬피 탄식만 하고 나라의 위태하고 망하는 것만 한탄한들 무엇에 유익하며 무슨 난을 구하겠소. 또한 그렇지 않고 보면 어떤 사람은 염치를 잃고 욕을 참으며 부끄럼을 무릅쓰고 적국에게 항복하여 외인의 개와 돼지 됨을 달게 여기니 이러한 통분한 일이 또 있소 대저 나라의 흥망은 사세의 성패에 달리지 않고 다만 인민 기운의 강약에 달렸나니 청컨대 고금 역사의 기록한 사적을 보시오. 한번 멸망한 나라는 천백 년을 지내도록 그 백성이 능히 다시 회복하고 설치한 날이 있나이까. 이런 증거가 소연치 않소. 그런고로 오늘날 우리들이 동심동력하여 열심을 분발하면 어찌 부끄럼을 씻을 날이 없겠소. 나라 위엄을 떨치고 나라 원수를 갚는 것이 우리들의 열심에 달렸소. 제군 제군이여 이미 남의 아래에 굴복치 아니할 뜻이 있을진대 반드시 일을 하여 보아야 참 굴복치 아니하는 것이 아니오. 제군들은 생각하오. 우리나라가 이 지경되어 위태함이 조석에 있으니 만약 아리안 성을 한번 잃으면 우리나라는 결단코 보전치 못할지라. 그 때가 되면 제군의 부모처자가 반드시 남의 능욕을 당할 것이요, 제군의 재산 분묘가 반드시 남에게 탈취한 바가 될 것이니 그 때에 이르러서 남에게 우마와 노예가 아니 되고자 하여도 할 수 없으리라. 상담에 이르기를 ‘눈 없는 사람이 눈 없는 말을 타고 밤중에 깊은 못에 다다른다’ 하니 만일 한번 실족하면 목숨이 간 곳 없을지라. 정히 오늘날 우리를 위하여 하는 말 아닌가. 만약 급속히 일심으로 자기의 생명을 놓고 적국과 항거치 아니하면 이 수치를 어느 때에 씻으리까. 어서 어서 천 사람이 일심하고, 만 사람이 동성하여 사람마다 죽을 뜻을 두어 가마를 깨치고 배를 잠가서 한번 분발하면 영국이 비록 하늘같은 용략이 있더라도 우리나라가 어찌 적국에게 압복할 바가 되리오. 제군 제군이여 만약 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겁내어 나라 망할 때에 당도하면 남의 학대 자심하여 살기에 괴로움이 도리어 죽어 모르는 것만 못할지니 나는 본래 궁항 벽촌에 일개 외롭고 잔약한 여자로서 재주와 학식도 없으나 다만 나라의 위태함을 통분히 여겨 국민 된 한 분자의 의무를 다하고자 함이요, 차마 우리 국민이 남의 우마와 노예 됨을 볼 수 없어 이같이 군중에 몸을 던졌나니 다행히 라비로 장군의 은덕으로 나의 고심혈성을 살피시고 날로 하여금 군사의 참예케 하시니 오늘날 제군으로 더불어 이때에서 서로 보매 나는 결단코 맹세하기를 몸으로 나라 일에 죽어 우리 국민을 보전코자 하노니 제군 제군이여 이미 애국심이 있을진대 과연 어찌하면 좋을고. 기묘한 방책으로 가르침을 바라고 바라노라.”

약 원수가 연설을 마치지 못하여 두 눈에서 눈물이 비오듯 흐르면서 일장 방성통곡한데 여러 방청하던 사람들이 모두 감동하여 애통하며 더운 피가 등등하여 차탄함을 마지아니하여 가로되,

“원수는 불과 일개 연약한 여자로서 저러한 애국 열심이 있거늘 우리들은 남자가 되어 대장부라 하면서 도리어 여자만 못하니 어찌 부끄럽지 아니하리오.”

하면서 스스로 꾸짖는 자와 한탄하는 자와 통곡하는 자와 주먹을 치고 손바닥을 비비며 살지 않고자 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가로되,

“우리들이 오늘은 맹세코 반드시 나라와 한가지로 죽을 것이요, 만약 나라가 망하면 우리 단정코 살지 못하리라.”

하면서 일시에 여러 남녀가 흉흉하여 조수 밀듯 샘물 솟듯 애국 열성이 사면에 일어나서 다 이 원수의 휘하에 군사 되기를 자원하니 그 형세 심히 광대하더라.

정히 이 일개 여자가 애국성을 고동한대 백만 무리가 적국 물리칠 기운이 떨치도다.

제팔회[편집]

각설. 이 때 연설장에서 여러 인민들이 일제히 약 원수의 군사 됨을 자원하는 자가 분분하거늘 원수가 일러 가로되,

“그대들이 이제 군중에 들어와 나라를 위하여 전장에 나가고자 할진대 마땅히 죽기를 동맹하고 일심 병력하여 적군을 파할지니 오늘부터 항오를 차려 군령을 복종하고 기율을 문란치 말라.”

하고 이날 행군할 새 원근 촌락에 있는 백성들이 양초와 기계 등속을 가지고 모두 원수의 군중에 바치는 자가 낙역부절하더라. 원수가 아리안 십 리 밖에 이르러 진을 머물고 적진을 살펴보니 만산편야한 것이 다 영국 군병이라. 기치창검은 일광을 가리고 금고함성은 천지진동하는데 일편 외로운 성에 살기 참담한지라. 원수가 제장을 불러 상의하되,

“이제 영군의 형세 심히 굉장하여 낱낱이 날래고 싸움 잘 하는 군사 뿐 더러 병기도 다 정리하니 형세로 하면 능히 이기지 못할지라. 우리는 다만 애국열혈로 빈주먹만 쥐고 죽기를 무릅써 일제히 앞으로 나아갈 따름이니 비록 칼과 창이 수풀 같고 화살과 탄환이 비 오듯 할지라도 한 걸음도 물러갈 생각 말고 다만 앞으로 나아가자.”

하고 각각 군장을 단속하여 적진으로 달려드니 사람마다 애국하는 열혈이 분발하여 죽을 마음만 있고 살 생각은 없으매 날랜 기운이 충천하여 한 아이 백을 당할 듯한지라. 영국 군사가 아무리 많고 날래나 이렇게 죽기로 싸우는 사람을 어찌 당하리오. 원수의 들어오는 형세 바다에 조수 밀듯 하매 영국 군사가 자연 한 편으로 헤어지며 분분히 흩어지는지라.

각설. 이 때 아리안 성이 에움을 입은 지 이미 일곱 달이라. 타처 군사가 구원치 않고 군량 오는 길도 끊어져 장졸이 다 주리고 곤핍하여 형세 심히 위태하니 장차 조석에 함몰할 지경이라. 비호로 공작이 근심을 이기지 못하여 홀로 성루에 올라 적진을 살피더니 홀연 어떠한 장수가 금개 은갑으로 백마에 높이 앉아 우수로 장검을 두르며 좌수로 몸기를 집고 군사를 몰아 비호같이 들어오니 영국 군사 분분히 추풍낙엽처럼 흩어지며 물결같이 헤어지는지라. 공작이 크게 놀라 의심하되 ‘어떠한 장수가 저렇듯이 영웅인고, 혹 꿈인가’ 눈을 씻고 자세히 살피니 일개 여장군이 분명한지라. 대단 의심할 즈음에 원수 벌써 성문에 이르렀는지라. 공작이 급히 문을 열고 원수를 맞아 전후사정을 낱낱이 들으매 모두 원수의 애국충의를 흠탄하여 가로되,

“원수는 천고 여중 영웅이요, 절세 호걸이라. 원수 곧 아니면 우리 아리안 성 중 사람은 다 도마 위에 고기가 될 것이요, 법국이 다 멸망할 것을 하늘이 원수를 보내사 우리 법국을 구제하심이라.”

하고 인하여 손을 잡고 술을 내어 군졸을 호궤할 새 원수 가로되,

“적병이 아직 성외에 있으니 내 마땅히 힘을 다하여 적병을 소탕하고 강토를 회복한 후에 국왕을 받들고 군신이 일체 쾌락하게 하리라.”

하고 즉시 황금갑을 입고 백마에 올라 우수에 칼을 잡고 좌수에 몸기를 들어 군사를 지휘하며 성문을 열고 내달아 좌충우돌한대 영국 장군이 군사를 나눠 좌우 날개를 베풀고 맞아 싸우거늘 원수가 기병을 몰아 그 중간으로 충돌한대 영국 장사가 다투어 원수를 사로잡고자 하여 사면으로 분주하니 원수는 몸이 나는 제비같이 동에 번뜩 서에 번뜩 칼 빛이 번뜩하면 적병의 머리 낙엽같이 떨어지니 영국 장졸은 정신이 현란하여 진이 어지럽고 항오를 잃는지라. 원수가 그제야 기병을 돌려 좌우로 치고 또한 보병을 불러 앞뒤로 지치니 영군이 대패하여 분분히 도망하는지라. 원수가 그 군량과 기계를 모두 빼앗아 성중에 들인데 성 중 장졸이 오래 주리다가 무수한 양식을 보고 또한 영군의 패함을 보매 만세를 부르는 소리 우레같이 일어나며 용맹이 백 배 더하더라. 원수가 이튿날 또 영군과 싸워 수십 합에 영군이 또 패하여 도망하거늘 원수 장사를 거느리고 뒤를 쫓아 충돌하다가 별안간 복병이 일어나며 화살이 비 오듯 하되 원수가 겁내지 않고 좌우로 음살 하더니 홀연 화살이 날아와 왼 팔을 맞히매 원수가 말에 떨어지니 영국 장수가 원수의 가진 몸기를 앗아 도망하는지라. 원수 홀연 몸을 솟구쳐 말안장에 뛰어 오르며 오른손으로 화살을 빼어 버리고 금포 자락을 찢어 팔을 싸고 나는 듯이 말을 달려 영국 장수를 베이고 몸기를 도로 빼앗아 본진에 돌아오니 양국 군사가 바라보다가 모두 이르되 ‘원수는 귀신이요,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 이 때 영국 새가로 장군이 법국에게 여러 번 패하매 필경 이기지 못할 줄 알고 남은 군사를 거두어 라아로하를 건너 도망하니 이때는 일천사백이십구 년 오월 팔일이라. 이에 아리안 성에 에움을 푼지라 법국 사람들이 약 원수의 공을 생각하여 약 원수의 별호를 아리안이라 부르고 큰 비를 세워 약 원수의 공을 새겨 천추만세에 기념하며 손을 잡고 술을 빚어 삼일을 대연 하고 만세를 부르며 무한히 즐기며 이로부터는 원수의 명령을 복종치 아니하는 자가 없더라. 정히 일조에 능히 중흥할 업을 심으매 만세에 오래 불망할 비를 세웠도다.

제구회[편집]

차설. 아리안 성 중이 약 원수를 위하여 삼일을 대연 하고 군사를 쉬더니 이 때 약 원수가 가로되,

“지금 우리 대왕이 아직 가면의례를 행치 못하였으나 내 마땅히 하수를 건너 영군을 소탕하고 리목 성을 찾아 대왕의 즉위례를 행하리라.”

하고 즉시 군사 수만을 이끌고 라아로 하수를 건너 리목성을 향하니 이때는 추 칠월 망간이라. 추풍은 삽삽하고 노화는 창창한데 한곳에 당도하니 남녀노소 수천 명이 수풀 아래에 누워 호곡하는 소리 심히 슬픈지라. 원수가 그 연고를 물은즉 모두 통곡하여 가로되,

“우리는 다 아무 고을에 사옵더니 태수가 영국에 항복하였음으로 영군을 몰아 성 중에 두고 백성의 양식을 탈취하며 부녀를 겁간하여 부지할 길이 전혀 망연하옵기로 우리가 일제히 남부여대하고 각자도생하여 장차 아리안 성으로 향하더니 중로에서 기갈이 자심하여 이곳에 누웠나이다.”

하거늘 원수가 이 말을 듣고 측은히 여겨 양식을 주어 기갈을 면케 하고 군사를 명하여 아리안 성까지 호송케 한 후 그날 밤 삼경에 영군의 진에 달려들어 음살할 새 원수가 선봉이 되어 충돌한대 영군이 대패하여 사방으로 흩어지는지라. 원수가 뒤를 쫓아 크게 파하고 영국 대장 대이박을 사로잡고 성에 들어가 인민을 위로하며 어루만지고 항복한 관원을 잡아 군문에 효시하니라. 익일에 또 발행하여 리목 성을 파하고 영국 군사를 무수히 죽이니 군사 위엄이 크게 진동하는지라. 행하는 곳마다 대적할 이 없어 영국 군사를 일병 구축하니 사방이 풍성을 바라고 돌아와 항복하는 자가 분분하며 잃은 성을 다시 찾고 항복하였던 고을들 도로 찾아 거의 강토를 회복한지라. 이에 원수 법국 왕을 맞아 리목에 이르러 장차 가면의례를 행할 새 날을 책정하니 곧 동 시월 팔일이라. 원수가 각 도, 각 군, 각 성에 글을 내려 왕의 가면함을 반포하니 이 때 각 지방에 있는 관원이나 백성들이 다만 영국 있는 줄 알고 영국 군사에게 복종하여 법국 왕 있음을 모르더니 이제 공문이 전파되매 비로소 국왕이 있는 줄 알고 또한 원수의 위엄을 두려하여 다투어 조회하니 이로부터 그 근처 각성이 법국 명령을 받들고 비로소 통하는지라.

차설 왕이 가면 의례를 행하고 왕위에 나아가매 약안을 봉하여 공작을 삼아 상경의 위에 처하고 귀족에 참여케 한대 약안이 군복을 입고 몸기를 잡고 엄연히 왕의 좌우에 모시매 법국 사람이 보는 자마다 눈물을 흘리며 서로 경사를 일컫더라. 하루는 약안이 부모를 생각하고 돌아가고자 하여 왕께 하직하여 가로되,

“신이 본래 향곡에 빈한한 일개 여자로 간절히 나라 원수 깊음을 갚고 여러 인민의 재앙을 구제코자 나왔사오나 늙은 부모는 다른 자녀 없사옵고 다만 소신 하나 여자뿐이온데 봉양할 사람도 없사옵고 또한 천한 여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주야로 간절하올지라 어찌 사정에 절박치 아니하오리까. 이제 천행으로 하늘이 도우시고 폐하의 넓으신 복으로 아리안 성을 구제하고 잃은 강토를 태반이나 회복하고 영국의 장졸을 무수히 구축하여 부끄럼을 조금 씻었사오며 리목 성을 찾아 폐하께서 즉위하사 가면 의례를 행하였사오니 신의 지원을 조금 이룬지라. 오늘은 고향에 돌아가 부모를 섬기려 하오니 바라옵건대 폐하는 생각하옵소서.”

하고 눈물이 잠잠히 흘러 나삼을 적시는지라, 법왕이 간절히 만류하여 가로되,

“경이 아니면 짐이 어찌 오늘날 있으리오. 경의 은혜 하해 같으나 다만 경 곧 없으면 적병이 또 들어와 분탕할 것이요, 지금까지 파리 성도 회복치 못하였으니 청컨대 경은 짐을 여위 조금 머물러 파리 성이나 회복하고 돌아가는 것이 짐의 간절히 바람이라.”

하고 재삼 간청한데 약안은 본시 충의 심장이라 왕의 간청함을 듣고 차마 떨치지 못하여 부득이 허락하고 부모께 글을 올려 사정을 고하니라.

정히 비록 공명은 일세에 빛날지라도 양래 충효는 양전하기는 어렵잖다.

제십회[편집]

차설. 이때는 일천사백삼십 년이라. 약안이 다시 원수가 되어 대군을 영솔하고 파리 성을 회복코자 하더니 북방을 향하여 나아갈새 이 때 영국이 다시 군사를 도발하여 법국을 평정코자하는지라. 약안이 적장과 서로 싸워 누차 영군을 파하고 점점 파리 성을 가까이 행하더니 마침 강변 네 성 수장이 사신을 보내어 구원을 청하여 가로되,

“지금 영군 수만이 본성을 철통같이 에우고 양식의 길을 끊으며 성 중에 있는 수십만 생명이 장차 물 잦은 못 가운데 고기와 같사오니 원수는 급히 구하옵소서.”

하였거늘 원수가 군사를 몰아 강변성에 들어가 장졸을 위로하고 이튿날 싸우고자 하더니 이 때 영군이 약 원수가 강변 네 성 중에 들어감을 보고 각처 군사를 모아 더욱 엄중히 에워싸고 구원하는 길을 끊고자 하더니 그 이튿날 원수가 날랜 군사 육백 명을 거느리고 성 밖에 나아가 적군과 상할 새 이 때 원수의 수하 대병은 다 멀리 있고 원수는 다만 육백 명을 거느리고 강변 네 성에 들어왔다가 다만 육백 명으로 영군의 수만을 대적하려 하니 어찌 적은 군사가 많은 군사를 당하리오. 싸우다가 필경 원수의 군사가 패하여 달아나거늘 원수 할 수 없어 몸기를 두르며 홀로 뒤에 서서 후전이 되어 오는 적병을 대적하니 영병이 감히 쫓지 못하고 도리어 스스로 물러가거늘 원수가 군사이 성문에 들어감을 보고 그제야 말을 달려 성문에 이르니 성문을 굳이 닫은지라. 원수가 크게 불러 문을 열라 하여도 응하는 자가 없으니 대저 이 때 영군이 여러 번 패하여 장졸을 무수히 죽이매 분통한 한이 골절에 사무쳐 약안을 구하여 죽이고자 하되 방책이 없는지라. 이에 비밀히 금백을 많이 내어 강변 네 성 수장에게 뇌물하고 하여금 거짓 위급한 체하여 약안에게 구원을 청하였다가 문을 닫고 미리 역사로 하여금 성 외에 매복하고 함정을 놓아 약안을 잡음이라. 불식간에 이미 약안을 얻어 영군에게 중금을 받고 팔아먹는지라. 영군이 대희하여 약안을 잡아다가 고대 위에 두고 장차 죄를 얽어 죽이려 하더니 약안이 기틀을 타 높은 집 위에서 떨어져 죽기로 작정하되 이내 죽지 못하고 도리어 영인의 발각한 바 되어 로앵 성 토굴 중에 깊이 가두고 학대 자심하며 백방으로 죽일 계획을 생각하나 무슨 죄명을 얽을 수 없어 다만 그 신술을 가탁하고 우둔한 백성을 선동하니 이는 요망한 좌도라 하고 죽이려 하되 복종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법교 대심원으로 보내어 심판 처결하라한대 법교원에서 누차 심사하되 약안이 오히려 응연히 불굴하여 가로되,

“나는 비록 여자나 일단 애국 열심으로 나라를 위하여 부끄러운 욕을 씻고 적군을 물리쳐 인민의 환란을 구할 목적으로 국민을 고동하여 충의를 격발케 하고 죽기를 무릅써 시석을 피치 않고 전장에 종사함이 곧 국민의 책임이거늘 어찌 요술의 죄를 더하리오. 결단코 복종치 못하리라.”

한데 영인이 그 불복함을 어찌할 수 없어 비밀히 꾀를 내어 약안을 정한 곳으로 옮겨 가두고 거짓 사나이 복장으로 약안의 평시와 같이 새 옷을 꾸며 약안의 앞에 버려 놓으니 약안이 그 새 옷을 보고 왕사를 추사하되,

“나도 이왕 보고유 성으로 포다리고 장군과 법국 왕을 뵈올 때 저러한 의복을 입었더니 이제 옛날 풍의가 일분도 없도다.”

스스로 탄식한대 그 곁에 사환하는 계집 아이 간절히 청하여 가로되,

“낭자께서 저러한 의복을 입고 법국 왕을 보러 가실 때 그 풍채의 웅장하심을 세상이 다 흠탄하고 사람마다 한번 보기를 원한다 하오니 원컨대 낭자는 저 복장을 한번 입으시면 내 한번 낭자의 옛날 풍채를 보고자 하나이다.”

재삼 간청하거늘 약안이 그것을 계교인 줄 알지 못하고 그 의복을 갖추어 입고 그림자를 돌아보며 스스로 어여삐 여겨 노래하고 춤추며 신세를 슬퍼하더니 영인이 그 곁에서 엿보다가 이로 요술의 증거를 잡아 드디어 좌도 요망으로 사람을 혹하게 하고 법교를 패란케 한다는 법률에 처하여 로앙 시에 보내어 화형에 처하니 곧 일천사백삼십일 년 구월이라. 그 후에 법국 왕이 약안의 죽음을 듣고 슬퍼함을 마지아니하여 그 가족을 불러 벼슬을 주어 귀족이 되게 하고 휼금을 주시니 법국 사람이 또한 각각 재물을 내어 빛나고 굉장한 비를 그 죽던 땅에 세워 그 공덕을 기념하고 법국 백성이 지금까지 약안을 높이고 사모함이 부모같이 여김을 마지아니하더라.

정히 가련하다. 장대한 영웅의 여자가 옥이 부러지고 구슬이 잠김은 국민을 위함이로다. 붉은 분총 중에 이 같은 사업은 꽃다운 이름이 몇 봄을 유전하는고.

대저 약안은 법국 농가의 여자라. 어려서부터 천생이 총민함으로 능히 애국의 충의를 알고 항상 스스로 분발 열심하여 나라 구함을 지원하나, 그러나 그 때 법국이 인심이 어리석고 비루하여 풍속이 신교를 숭상하고 미혹한 마음이 깊음으로 약안이 능히 이팔청춘의 여자로 국사를 담당코자 하되 인심을 수습하며 위엄을 세워 온 세상 사람을 격발시켜 국권을 회복고자 할진대 불가불 신통한 신도에 가탁하여 황당한 말과 신기한 술법이 아니면 그 백성을 고동하지 못할 것인 고로 상제의 명령이라 천신의 분부라 칭탁함이요, 실로 상제의 명령이 어찌 있으며 천신의 분부가 어찌 있으리오. 그런즉 약안의 총명 영민함은 실로 천고에 드믄 영웅이라. 당시에 법국의 온 나라가 다 영국의 군병에게 압제한 바 되어 도성을 빼앗기고 임금이 도망하고 정부와 각 지방 관리들이 다 영국에 붙어 항복하고 굴수하며 인민들은 다 머리를 숙이고 기운을 상하고 마음이 재가 되어 애국성이 무엇인지 충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다만 구명도생으로 상책을 삼아 부끄러운 욕을 무릅쓰고 남의 노예와 우마 되기를 감심하여 나라가 점점 멸망하였으니 다시 약이 없다 하는 이 시절에 약안이 홀로 애국성을 분발하여 몸으로 희생을 삼고 나라 구할 책임을 스스로 담당하여 한번 고동에 온 나라 상하가 일제히 불같이 일어나 백성의 기운을 다시 떨치고 다 망한 나라를 다시 회복하여 비록 자기 백 몸은 적국에 잡힌 바가 되었으나 이로부터 인심이 일층이나 더욱 분발 격동하여 마침내 강한 영국을 물리치고 나라를 중흥하여 민권을 크게 발분하고 지금 지구상 제 일등에 가는 강국이 되었으니 그 공이 다 약안의 공이라. 오륙백 년을 전래하면서 법국 사람이 남녀 없이 약안의 거룩한 공업을 기념하며 흠앙하는 것이 어찌 그렇지 아니하리오.

슬프다 우리나라도 약안 같은 영웅호걸과 애국 충의의 여자가 혹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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