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22장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아내의 自由[자유][편집]

늦조반을 먹은후에 간단한 점심 식사를 꾸려가지고 호텔을 나서려는데 박준모와 그의 약혼자 정임이가 시내에서 돌아왔다.

곤색 양복에 정임은 스쿠울백을 들고 있었다. 애련한 얼굴모습이 소녀처럼 어리디 어렸다. 동굴납작한 보드라운 얼굴에 솜털이 아직 보수수 하다. 고등학교 생도라면 어울릴 몸매였다.

정임은 어머니의 소개로 서로 인사를 바꾸고 나서,

「선생님, 어제 왜 안 오셨어요? 모두들선생님 오시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임은 얼굴을 붉히며 지운을 눈부신 듯이 쳐다 보았다.

「아 어제는 좀 피곤해서 그대로 잤읍니다.』

그러면서 지운은 십년 전 창경원에서 만났던, 해군복의 소녀를 불현듯 연상하였다. 그 소녀와 어딘가 같은 분위기를 지닌 학생이라고, 석란과는 대조되는 타잎이 하나가 우선 머리에 왔다.

『어제는 재미 있었겠어요.』

석란이가 옆에서 박 준모에게 하는 말이다.

「부인이 오셨더랬으면 여왕노릇을 했을 건데……참으로 유감이었읍니다.』

그러는데 정임이가 어머니를 향하여,

「어머니 오늘밤 임선생님 내외분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파아티를 열기로 했어요. 그래서 저녁에 모두들 이리 나온다구요.』

「그것 참 잘됐구먼. 그러지 않아도 네가 돌아오면 임선생님 내외분을 모시고 같이 적녁을 할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마 칠팔 명은 될 거예요.』

「그래라. 내 적녁 준비를 해 놓을 테니 임선생님을 모시고 금강원에나 다녀 오려므나.』

그래서 점심 식사를 두 사람 분 더 싸가지고 넷은 호텔을 나섰다.

일요일이래서 오전부터 욕객들이 들어 밀렸다. 무슨 여관, 무슨 호텔, 무슨 요정 하고 색채가 짙은 간판들이 울긋불긋 화려하다. 금강원 정문을 향하여 넷은 걸어가고 있었다.

박 준모가 먼저 어깨에 멨던 카메라로 단청을 베풀은 금강원 정문을 배경으로 하여 세사람의 뒷 모습을 필름에 넣었다. 카메라는 석란이도 메고 있었다.

「선생님의 작품, 저도 몇편 읽었어요.』「아, 하하……변변치도 않은 것을……」

지운은 겸손하게 웃으며,

「어머니의 말씀이, 정임씨는 문학에 취미를 가졌다는데……장래 여류 작가가 되신다고.』

「…………」

『아이, 이를 어쩌나?……」

정임은 또 얼굴을 붉히며,

「어머니는 뭐든지 과장을 해서 말을 해요. 예술이란 할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닌데…….』

정문을 지나 완만한 비탈길을 올라가면서 정임은 큰일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을인지 겨울인지, 계절의 한계가 분명치 않은 동지달 초순, 눈이 부시도록 햇빛이 밝다. 청명한 대기가 피부에 산듯했다.

지운과 정임의 대화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박 준모와 석란이었다. 박준모는 몇걸음 앞서 걷는 석란을 향하여 카메라를 겨누면서,

「저, 부인!」

하고, 갑작스럽게 불렀다.

「네?」

하며, 석란이가 돌아서는데 채깍하고 셔터는 끊기었다.

「부인, 용건은 끝났읍니다.』

「아이, 예고도 없이 찍는 법이 어디 있어요?」

「그래야만 부인의 그 청초한 아름다운 모습이 자연성을 띄지요.』

석란은 눈을 흘겼고 정임과 지운은 눈썹을 모았다.

서양 사람들은 자기 아내의 미모가 칭찬을 받을 때, 그 아내의 몫까지 기뻐한다는데, 자기는 어째서 불쾌한 감정으로 눈썹을 모아야 하는가고, 자기의 세련되지 못한 사교성에 그 원인이 있는 것도 같아서 처음에는 공정한 입장에서 객관적인 비판을 지운은 꾀하여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해 보아도 기쁜 감정은 통 우러나오지 않고 불쾌한 생각만이 자 꾸만 머리를 들었다. 자기의 생각이 다소 고루해서 그런가하고도 타진해 보았으나 자기만한 문화인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에 봉착하는 순간, 그것은 오로지 임 지운 일개인의 문제라기보다도 전체 한국인의 생리요, 감정이요, 모랄일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한국적인 도덕률을 박 준모 청년은 대담하게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 이 아니었다. 석란 역시 박 준모와 비슷한 대목이 다분히있다. 자기나 정임이가 그러한 것처럼 박 준모의 그러한 노골적인 찬사 앞에 당연히 눈썹을 모아야할 한국의 아내인 석란이가 도리어 눈을 곱게 흘겼다는 사실은 확실히 한국적인 모랄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박 준모는 따라가서 석란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삼미터 앞을 걷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석란이가 가끔 가다 갸득갸득 웃는다. 또 무슨 짖궂은 찬사 앞에 석란의 생리가 명랑해 졌는지 모른다. 그 갸득거리는 웃음소리가 아까 아침 지운의 손가락이 간지럽다고 파자마 깃을 두손으로 움켜쥐고 허리를 꼬던 그때와 다름이 없다.

그렇다고 석란을 불러 세워 박 준모 옆에서 떼어 놓을 수도 또한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 볼까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자기의 세련되지 못한 쑥스러움만이 커다랗게 확대되어 마치 에트랑제(異邦人[이방인])와도 같은 두 남녀의 조소를 받을 것만 같아서 지운은 싫었다.

「선생님 부인, 무척 명랑하셔요.』

지운의 얼굴을 가만히 엿보며 정임은 말했다.

어두운 상념으로부터 지운은 후딱 시선을 돌렸다. 부드럽게 웃으며 그러나 대답은 하지 않았다.

「현대적이고……스타일이 멋져요. 물론 연애 결혼이시죠?」

「아, 연애……연애……」

지운은 대답을 못하고 그 한 마디만 되풀이하고 있는데 석란의 명랑한 웃음 소리가 또 깔깔 들려왔다. 박 준모의 웃음도 뒤이어 들렸다.

「아이, 무슨 이야긴지는 모르지만 무척 재미있나봐요.』

그러면서 정임이가 지운의 표정을 힐끗 쳐다보는데 손뼉을 치며 깔깔대던 석란이가 손을 번쩍 들고 홱 돌아서며,

「빨리들 올라와요.』

하고 고함을 치다가,

「아이, 아베크가 멋지네요!」

했다. 그리고는 얼른 둘러맸던 카메라를 빼들고,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둘이 의 모습을 필름에 넣었다. 그것을 보자 박 준모도 자기 카메라에 한 장 찍어 넣었다. 그리고는 기다릴 생각은 통이 없이 다시금 자기네 끼리만 돌아서서 걸어 올라갔다.

남편을 정임에게 맡겨 놓았다는 석란의 안도감과 약혼자를 지운에게 맡겼다는 박 준모의 그것이 두 사람의 행동을 좀 더 대담하게 하였다.

「어마, 어쩌나?」정임은 아베크라는 한 마디가 홱 부끄러워 지운의 옆에서 한 걸음 물러섰고 박준모는 반대로, 한 걸음 바싹 석란의 곁으로 다가섰다.

「생각하던 것과는 딴판으로 임선생은 고루한 분이예요.』

박 준모 청년은 그렇게 말하여 석란의 남편을 비방했다.

「예술가답게 생각과 행동이 좀 화려해야겠는데……저런 분에게는 민주주의 체제는 맞지 않을거요, 부부일체라고 결혼만 하고 나면 아내의 자유를 무자비하게 속박을 하지요, 어서 어서 우리 한국의 남성들도 좀 깨야겠는데, 생각하면 개탄할 노릇이지요.』

여기서 석란이가 만일 남편을 참되게 존경하든가 남편에게 참된 애정 같은 것을 느낀다면 박준모 청년의 이러한 비방에 접하여 당연히 불쾌한 감정이 생겼어야만 했을 텐데 불행히도 석란은 그렇지가 못했다.

박 준모가 지금 확실히 자기 남편을 비방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불쾌하지는 않았고 도리어 박 준모의 언사에 동감과 이해가 갔다.

「결혼한다는 것은 아내되는 사람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을 의미해서는 아니 되지요. 우리 조상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그랬다고 해서 오늘날 대표적인 문화인이야만 할 작가 임지운씨까지가 그래서야 될뻔한 이야긴가요.』

선생이라는 존칭을 박 준모는 대담하게 떼어 버렸다.

「석란씨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부인이라는 명칭도 마침내 떼어 버리는데 성공하였다. 부인이라는 말은 석란으로 하여금 남편의 존재를 자꾸만 생각하기 때문에……

「준모씨의 생각에는 동감이예요.』

석란도 성은 떼어버리고 이름만을 부르게 되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감정이 접근하는 징조였다. 둘이가 다 개방적인 성품이어서 감정의 조화에 있어서도 오랜 시간을 요하지 않았다.

「역시 석란씨는 현대적인 센스와 총명을 가진 분입니다. 호흡이 맞아요.』

「왜 정임씨는 그렇지 못해요?』

그렇지 못하다는 한 마디를 석란은 예기도 했고 바라기도 하면서 묻는 말이다.

「아주 고리타분한 십구세기적 성품이지요. 그런 점에 있어서 지운씨와 호흡이 잘 맞을 겁니다.』

그러면서 박 준모는 문득 뒤를 돌아다 보았다. 백 미터 이상이나 떨어진 곳에서 지운과 정임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박 준모가 의식적으로 걸음을 빨리했던 보람이 있었다.

「정말 호흡이 맞나 봐!」석란도 뒤를 돌아보면서 하는 말이었다.

「빨리 와요!」

석란은 손을 흔들며 고함을 쳤다.

『그대로 내버려 둬요. 지금 한참 호흡이 맞는데 방해를 하는건 실례가 되지요. 민주주의적으로 쌍쌍이 잘 구성되었읍니다.』

『후훗 —— 민주주의적으로』

석란은 킥킥 웃으며,

『준모씨가 사뭇 걱정이겠어요.』

『왜요?』

『정임씨는 소설가람 애꾸눈이라도 좋아진다면서?』

이 한 마디는 박 준모로 하여금 석란의 마음을 저울질 하는 좋은 재료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박 준모와 정임이의 관계에 샘을 내고 있다고 보아도 좋고 아니, 그보다도 남편인 지운에게 대한 석란의 애정이 조금도 다급한 데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박 준모는 거기 대한 대답을 피하고 한발을 더 떠서,

「그렇게 되면 석란씨가 다소 걱정이 되시겠지요. 워낙이 원앙같이 애정이 농후한 신혼부부니까요.』

순간, 석란은 부부 생활의 비밀 같은 것이 불현 듯 머리에 떠올라

「후훗……」

하고 웃으며 박 준모의 얼굴을 무섭게 흘겼다.

중도에 적당한 자리가 있었으나 박 준모는 조금 더 올라가자고 했다. 꾸불꾸불 길이 꾸부러져 어떤 때는 뒤로 올라오는 지운과 정임의 모습이 송림으로 말미암아 가리워지는 적이적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박 준모는 석란의 옆으로 바싹 붙어서 걸었다. 팔꿈치가 부딪치고 손가락도 부딪친다. 그 부딪치는 석란의 새끼 손가락 하나를 박 준모는 걸핏 잡아 쥐었다. 손길 전부를 잡아도 좋았으나 너무 급작스런 동작이 석란의 감정을 상하게 할 것을 염려 하였다.

「놓아요.」

석란은 조용히 말했다.

「왜 놓지 않으면 안됩니까?」

「부자유해서요. 마음대로 손을 놀릴 수가 없잖아요?」

대답이 참으로 좋다. 어디까지나 지성적인 말이라고, 박 준모는 석란의 현대적인 매력에 감탄을 하는 것이다.「어서 놓으세요.』

「안 놓을 텝니다.』

「안 놓음 정임씨를 부를 테예요.』

「정임이보다는 지운씨를 부르는 편이 빠르지 않을까요?」

「그럼 그이를 부르죠.』

「역시 석란씨는 봉건적이군요. 자기 손가락 하나를 마음대로 처리를 못해서 남편을 불러요? 결혼은 아내의 자유를 속박해서는 아니되지요. 아내는 남편의 소유물이 아니니까요.』

석란은 탁 박 준모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나 기실 자기는 남편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한 마디에는 동감을 하고 있는 석란이었다.

「그렇지만 석란씨, 지금 쯤 지운씨는 정임의 손길 전부를 잡았을런지도 모르고 포옹의 행복을 즐기고 있을런지 누가 알아요?」

그런 말을 하여 석란의 감정을 자극하였다. 자극을 받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으나 석란은 결국에 있어서 자극을 받고 있는 것이다.

박 준모는 어저께 자기가 도적한 석란의 입술을 바라보며,

「모르는 것이 탈이지!」

했다.

「무슨 말이예요?」

「아니, 아무런 것도 아닙니다.』

몇걸음 더 걸어가다가,

「석란씨는 지금 새끼 손가락 하나를 잡았다고, 말썽을 부리지만……나는 어제 석란씨의 몸뚱이 전부를 안아본 사람이랍니다.』

석란은 말끄러미 박 준모를 바라보고 있다가,

「참, 어디서 나를 만났어요? 다방?」

「노우.』

「음악회?』

「노우.』

일단 중단되었던 호기심이 다시금 석란의 마음을 긁어 주었다.

「왜 안 가르쳐 줘요? 어째서 내가 따귀를 맞아야 해요?」

「손길 한 번 쥐어 볼 수 있는 영광을 베풀어 주신다면 알으켜 드리겠읍니다.』

「아이 점, 웃으운 말만……』

석란은 다시금 유쾌해졌다.

『정말이죠?』『석란씨의 예쁜 모습을 본 후부터 이 순간까지 저는 한 마디의 거짓말도 해보지 못했읍니다.』

석란은 킥하고 웃으며,

『가만히 쥐어요.』

『네.』

박 준모는 석란의 손길을 가만히 쥐었다.

『인제 됐으니까, 놔아.』

『아니올시다.』

『한 번만 쥐어 봄 되잖아요?』

『한 번이라는 것은 도수(度數)를 말한 것이고 시간의 장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한 시간이건 일 년이건 그건 내 마음대로지요.』

『아얏, 아퍼!』

석란은 탁 박준모의 손을 뿌리치며,

『자아, 인제 알으켜 줘요.』

계곡을 내려다보는 풀밭에 솔나무와 암석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다.

『여기가 좋습니다.』

박 준모는 소나무와 암석을 등지고 먼저 털썩 주저앉았다.

『어서 알으켜 줘요.』

어린애처럼 졸라대면서 석란도 그 옆에 두 다리를 쭉 뻗히고 앉았다. 스커어트 밑으로 종아리가 매끄럽다.

『저이들이 올라오려면 아직 한참 걸릴 거요. 그 동안 우리는 조금만 행복해 봅시다.』

박 준모의 눈동자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행복해 보다니 무슨 말예요?』

의아스런 표정을 하고 석란은 물었다.

『포옹을 몰라요?』

천연스런 대답을 박 준모는 했다.

『어머나?』

석란은 일부러 표정을 크게 쓰며,

『그런 징그러운 말, 함부로 함 못 써!』

『나는 언제든지 민주주의적이지요. 그래서 다소 징그럽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미리부터 상대방의 의사를 타진하는 거랍니다.』

『아주 신사적이로군.』

『신사로서는 아마도 한국에서는 제 일류급에 속하겠지요. 자아, 빨리!』『남의 부인 보고 함부로 덤비면 안돼요.』

『그건 석란씨가 손수 자기의 자유를 포기하는 말이지요. 석란씨의 이론대로 말하면 여자는 일단, 결혼만 하면 연애에 대한 자유를 영원히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건생각만 해도 사막처럼 쓸쓸하고 서글픈 노릇이 아닙니까?』

그것은 늘 석란이가 생각하고 있던 이론이었다. 연애를 두 번 하다가는 목숨 하나가 모자랄까 보아서 걱정을 하는 석란이었다.

『여성에게 있어서 결혼은 일생 동안에 걸친 연애의 포기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실로 여성의 비극을 말하는 것이지요. 결혼은 결혼이고 연애는 연애니까요. 결혼이 연애를 포기하라는 법은 없을 것이고 연애가 반드시 결혼을 파괴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아내는 어디까지나한 여성으로서의 자유를 옹호해야만 남편의 노예를 면하게 되는 것이지요. 한국의 남편들을 보시요. 그들은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어디까지나 한 남성으로서 자유를 가지고 딴 여성과 떳떳하게 연애 활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하필 여성들만이 ……』

박 준모는 석란의 어깨를 휙 잡아당기며,

『석란씨의 의욕이 나의 포옹을 거절한다면 또 모르지만……다소라도 호의를 가졌다면….』

『그렇지만 나는 지금 그러한 의욕은 없어요.』

석란은 한두 번 굳센 항거의 자세를 취하면서 박 준모의 가슴을 호되게 떠밀었다.

떠밀다가 후딱 아내의 자유를 주장하고 옹호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렬한 논리의 벌판을 지니고 석란의 의식 세계에 발동을 해 왔다. 색다른 포옹에의 다소의 호기심 같은 것도 없지는 않았으나 석란의 이러한 대담한 실험적(實驗的)인 항거의 대상은 물론 임 지운 일개인이 아니고 세상의 남편들이었다.

감정에 어울리지 않는 포옹이었다. 그리고 그의 포옹 자세는 박준모로 하여금 접순(接唇)의 기회를 용이하게 얻게 하였다.

포옹이 끝난 후, 박준모는 빙그레 웃으며 한 쪽 눈을 싱긋이 감아 보였다.

그리고는 훌쩍 일어서서 그때까지 두 사람의 자세를 감추어 주던 암석 너머로 거지반 다 다가온 정임이와 지운을 손을 들어 맞이하였다.

그 순간, 석란에게 까맣게 사라졌던 기억 하나가 툭 튀어 나왔다.

『아 그때의 그 학생이 아닌가!』

그것은 저번날, 연애 강좌를 끝마친 임 학준 교수와 함께 버스를 탔을 때, 석란의 눈총을 맞고 훌쩍 일어서서 하는 수 없이 좌석을 제공한 바로 그 학생이었다.

『미리부터 일어섰음 고맙다는 말이나 듣지!』

그때의 기억을 석란은 더듬으며 킥킥 웃었다. 그래서 박 준모에 대한 자기의 기억은 희미했었지만 모욕을 받은 박 준모로서는 석란의 얼굴이 또렷하게 인박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 불행의 발견자는 지운이 가 아니라 정임이()

박 준모와 석란의 자태를 감추어 주고 있던 암석의 한편쪽이 낮아서 그 낮은 편 쪽으로 걸어 올라오던 정임의 시선이 두 사람의 포옹의 자세를 발견하고 저으기 놀랐다.

그러나 정임으로서는 약혼자 박 준모의 그 불미로운 행동에 대해서보다도 엊그제 결혼식을 갓 지난 신혼 부인의 그 너무도 정숙하지 못한 불량성에 그 어떤 의분 같은 것을 느끼고치를 부르르 떨었다.

약혼자에 대한 불쾌감과 질투심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을 이미 수없이 쌓아온 정임이기에 그럴 바에야 왜 임 지운과 결혼을 했느냐고, 석란의 그 무계획한 동기와 아울러 석란의 그 지나친 무절조가 정임에게는 얄밉기 짝이 없었다.

정임은 임 지운이라는 이 점잖은 남편이 자꾸만 불쌍해 졌다. 습성으로 정임은 남자의 방탕성을 허용은 하고 있지만 여자의 무절조는 용서하지 못했다.

『임선생에게 이야기를 할까? 그만둘까……』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사진을 여러장 찍고 하는 동안 정임은 거기에 대한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했다.

그러한 눈으로 두 사람의 사소한 행동까지를 정임은 감시하고 있었다. 그동안 석란과 박준모는 쭉 남편과 약혼자의 존재를 무시하는 행동을 연방 계속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부러 한 여성으로서의 자유와 한 사람의 남성으로서의 자유를 추호의 속박감도 느낌이 없이 향락하고 주장하는데 더 의식적인 열성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았다.

정임은 한 편 지운의 얼굴빛을 연방 살펴보았다. 대범하고 태연하려는 지운의 어른다운 태도였으나 푸뜩푸뜩 양미간에 떠오르는 불쾌한 감정을 지운은 또한 끝끝내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정임, 한장 찍어줘.』

찍히기만 하고 찍는 역할을 통 하지 않은 정임에게 박 준모는 카메라를 제공했다. 정임은 묵묵히 카메라를 받아쥐고 세 사람 앞에 섰다. 석란은 무엇이 그리도 웃으운지 소녀처럼 캬들거리며 두 사나이의 가운데서 한 쪽 팔은 지운의 목에 걸쳐 놓았고 한 쪽 팔은 박 준모의 어깨에다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서양 영화에서 습득한 육체파의 요염한 웃음을 깔깔깔깔 폭발시키고 있었다.

지운은 적지않게 불쾌했으나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자기 목에 걸친 석란의 손길에 갑자기 힘이 왔을 때 석란의 저편 쪽 팔에도 역학적(力學的)인 반사 작용을 가지고 박 준모의 어깨를 껴안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임 지운의 소설가적인 상상만은 아닐 것이다.

『자아, 이번에는 부인께서 저희들을 좀 찍어 주시요.』

『오우케이!』

석란은 자기 카메라로 두 사람을 겨누는데, 사진을 찍고 난 정임을 향하여 박 준모는 성큼성큼 걸어가서 돌연 정임을 붙들고 포옹의 자세를 취하며 외쳤다.

『부인, 순간을 놓쳐서는 아니되오!』

『네버마인(염려말아요) ——』

석란은 서슴치 않고 대답했다.

『아이 싫어요!』

정임은 부끄러워 짜증을 내며 입술을 홱 돌렸다.

『뭘 그래? 영화를 못 봤어? 서양 사람들은 한길가에서 키스를 하잖아?』

그러면서 박 준모의 입술이 무섭게 달려갔다.

그 순간을 재빠르게 필림에 넣고 석란은 깔깔대며,

『오우케이!』

하고 외쳤다.

『자아, 이번에는 임선생과 부인도 한 번……』

그러면서 박 준모는 지운 내외를 향하여 카메라를 들었다.

지운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며 등골에 냉수를 끼얹는 것 같은 일종의 전율을 느꼈다.

『이 전율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논리적인 전율은 확실히 아니었다. 논리적으로는 이미 하나의 지식으로서 박 준모나 석란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운은 아니었다. 분명히 그것은 습성(習性)의 전율이었다. 새로운 논리앞에 위협을 느끼고 임 지운의 습관은 떨고 있는 것이다, 지나간 날, 임 지운은 정능 계곡에서 포옹의 예술성을 강조하여 젊은 세대를 위한 대변자가 되었었다. 그때 임 지운은 자기의 이론이 정연한 논리 앞에 항변을 상실하고 분해하던 사십 대의 중년 신사를 논리의 패배자로서 통쾌히 생각하였다.

그러한 임 지운이 오늘날, 이 경우에 임하여 몸서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무엇 때문이냐……임 지운의 논리가 임 지운의 피가 되고 살이 되지 못한 분명한 증거였다. 논리는 논리대로 임 지운의 머리 속에 도사리고 있었고 습성은 습성대로 임 지운의 피와 살 속에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습성의 추상적 관념을 사람들은 도덕률이라고 말했다.

『자아, 부인 빨리!』

박 준모가 카메라의 픽트를 맞추며 한 번 더 재촉을 했을 때, 지운은 제발 석란이가 그것을 거절해 주기를 마음으로 절실히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석란은 불론드(金髮[금발])에 파란 눈동자를 가진 스크리인 속의 여주인공들처럼 깔깔 웃으며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지운의 품으로 안기워 왔다.

지운의 절실한 기원이 마침내 깨어지는 순간, 지운의 한 쪽 손길이 무의식중에 힘차게 움직이며 안기워 오는 석란의 가슴패기를 탁 떠밀어 버렸다.

기세가 다소 강했던 탓으로 석란은 한두 걸음 비틀거리다가 뒤통수와 등골로 등뒤 바위 허리를 떠받았다.

『악 ——.』

하고 소리를 치며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석란은 펄썩 주저앉았다.

박 준모가 우선 달려갔다. 정임이도 뛰어갔다. 그러나 지운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그냥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주저앉으며 석란의 매서운 눈초리가 약이 바짝 오른 고양이처럼 지운의 얼굴을 무섭게 핥고 있었다.

『아아, 저 매서운 눈초리!』

지운은 마음으로 절망적인 외침을 외치며 또 한번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 눈초리에는 이미 부부로서의 이해도 없고 애정도 없었다. 다만 하나의 관념 —— 야만적인 난폭한 사나이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말미암아 연약한 한 사람의 여성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나친 모욕과 학대를 받았다는, 오직 그 독사와도 같은 한 줄기 의식 뿐이었다.

박 준모가 석란의 어깨를 한 손으로 껴안고 석란이의 다친 머리와 허리를 열심히 부벼주고 있었다. 정임은 그저 얼떨떨해서 석란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자기가 해야만 할 간호에 약혼자가 먼저 손을 댔기 때문에 정임은 그저 그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어째 떠미는 거예요?』석란이가 발딱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독사 같은 눈초리에 살기가 등등해 있었다.

『싫음 싫다고, 말로 할 것이지, 왜 폭력을 쓰는 거예요.』

뒤통수의 혹은 점점 더 커져가는 육체적 아픔도 아픔이지만 그보 다도 박준모와 정임의 앞에서 남편의 야만적인 폭력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받은,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의 권위와 체면을 석란은 세워야만 했다.

따라서 그것은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아내의 자유를 봉건적인 남편의 손으로부터 획득하기 위해서도 절실히 요청되니 실로 중대한 사회문제라고 생각하였다.

『보기에는 그렇지 않지만 문화인답지 않은 야만인이군요.』

석란의 머리를 문질러주며 박 준모는 석란의 귀밑에다 가만히 속삭이었다.

박 준모의 이 한 마디는 석란으로 하여금 남편의 야만성을 객관적으로 확인을 받은 것 같아서 지운을 한층 더 절실히 깔보기 시작하였다.

『뭐예요? 왜 말로는 못해요?』

석란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대들었으나 지운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는데 박 준모의 허겁진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 피가 납니다! 이 일을 어떻거나?』

가죽이 조금 찢어져서 핏줄기는 실오락같이 가늘었으나 박 준모의 어조에는 피가 펑펑 쏟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병원엘 가야겠읍니다.』

박 준모는 얼른 자기 손수건을 꺼내 석란의 머리에다 갖다 댔다.

『왜 대답을 못하는 거예요? 힘이나 좀 세다고 결혼만 하고 남 아내를 마구 갈겨도 좋다는 뱃장이죠?』

『아이, 인제 그만하세요.』

정임이가 보다 못해 만류하며,

『임선생님인들 부러 그랬겠어요?』

그 말에 석란은 정임을 힐끔 바라보며,

『정임씨는 왜 그 편만 드는 거예요? 무슨 그럴 까닭이 있어서 그래요?』

자기와 박 준모와의 관계 비슷한 무슨 비밀이 그 쪽에도 있을런지 모른다는 상상이 홱하고 석란의 신경을 긁어 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예비 지식은 이미 박 준모가 제공하고 있었다.

『아이, 어쩌면……』

정임은 어쩔줄을 모르고 시선만 오들오들 떨었다.그 순간, 지운은 석란의 그러한 불미로운 상상의 이면을 뒤집어 보며 석란과 박 준모 사이에 그러한 종류의 무슨 비밀 같은 것이 먼저 조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직감하였다. 그러한 경험이 없이는 그런 가시가 돋은 것 같은 상상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정도의 것인지는 물론 추측할 도리가 없다.

『박군, 빨리 석란을 데리고 병원에 가시요.』

지운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아이, 선생님이 따라 가셔야지 않아요?』

『정임은 자기 입장이 다소 거북해서 지운을 재촉하였다.』

『내버려 두시요. 왜 서양 영화에도 비슷한 장면이 많지 않습니까.』

『흥, 비꼬아 보는 거예요?』

석란이가 또 달려들었다.

『천만에요 부인! 서양 부인들은 남편을 무시하고 싶을 때는 일부러라도 남편의 눈앞에서 다른 남자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니까요.』

『아, 임선생님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박 준모가 마침내 등장하는 시기가 되었다.

『뭐가 그렇지 않소?』

지운은 차차 더 침착해졌다.

『서양 문명국에서는 연약한 여성이 곤궁한 처지에 빠졌을 때, 우리 남자들은 그 여성을 보호해 줄 사회적 임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할 겁니다. 더구나 남성의 폭력이 그여자를 곤궁에 빠뜨리게 하고 있을 때면 정의를 위해서도 보호를 해야지요.』

『그러니까 어서 정의를 위해서 병원에 가요. 출혈이 많으면 부인의 고통이 심해질 테니까요.』

『흥, 아니꼽게!』

석란은 홱 돌아서며 독기가 서린 눈을 매섭게 흘겼다.

그리고는 박 준모의 신사적인 부축을 받으며 총총히 사라졌다.

『아, 저 눈초리! 저 눈초리 어느 구석에 이해가 있으며 애정 같은 것이 있다는 말인가……』

지운은 갑자기 고독해지며 자꾸만 울고 싶은 심정에 가슴이 꽉 차 있었다.

『선생님, 인제 저희들도 내려가요.』

흩어진 종이 조각을 한테 뭉쳐 깊숙한 숲 속으로 던져넣고 정임은 조용히 다가왔다.

남편이 걷는 길『정임씨, 내가 여러분 앞에서 실례를 했나 봅니다.』

정임이와 함께 서서히 걸어 내려가면서 지운은 말했다. 그러나 정임은 소 그듬이 고개를 숙인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멀리 앞을 바라보니, 박 준모는 내려가는 지이프차 하나를 세워 놓고 석란을 중병 환자처럼 부측하며 올라탄다. 지이프차는 다시금 화살같이 달아났다. 지이프차와 자기와의 거리가 자꾸만 멀어진다. 그 멀어지는 거리처럼 자기와 석란의 거리도 멀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운은 한없이 슬펐다.

소꿉장난 같이 천진난만했던 하룻밤을 지운은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거짓 감정이요, 거짓 행복 같지는 않았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고 받았던 그 끝없이 다사롭던 행복이 하룻 동안에 깨져 나갈 줄은 정녕 몰랐다.

『아아, 그 고양이처럼 매서운 눈초리!』

그 눈초리 앞에서는 십년 묵은 애정도 운무처럼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이미 남과 남이 원수와 원수의 증오감 이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남녀의 애정이란 결국에 있어서 남과 남처럼 차겁게 갈라질 수 있는 성질의 애정인지 모른다. 그 결함에 있어서 가장 신속하고 가장 농후한 반면에 그 결별에 있어서도 가장 빠르고 가장 냉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과 남이 어떻게 결혼이란 약속 하나로 일생을 같이 살아요?』

그렇게 물어온 석란의 위구심이 결국에 있어서 자기보다 총명했던 것만 같다. 그것은 어리석은 이상주의로서 이해라든가 성실이라든가 하는 방패를 가지고 방지해 보려던 임 지운 자신이 아직 인생의 초년병같이 생각키우기 시작하였다.

『정임씨는 물론 박군을 사랑하고 있겠지요.』

지운은 물었다. 정임은 한참만에 조용한 대답을 했다.

『네 —— 그렇지만 제가 그이를 사랑하는 데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애요. 온갖 감정을 죽이고 그이가 하는대로 내버려 둬야만 하겠으니까요.』

『왜 그럴까요?』

짐작을 하면서도 묻는 말이다.

『제 마음이 좁고 약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 번 정이 쏠리면 어떻게 걷잡을 수가 없어요.』

『허어……』

지운은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정임을 돌아다보았다.『그이는 여자 관계가 대단히 많은 이예요. 여자를 낚는 데도 아주 선수지요. 노골적이고 뻔뻔스런데가 있어서 얼핏 생각하면 여자가 걸려들지 않을 것 같지만 결국에 있어서는 걸려들고 말아요. 저도 그래서 걸려든 사람 중의 하나지만요.』

정임은 쓸쓸히 웃으며,

『걸려든 사람 중에는 약혼까지 했으니까 우수한 편이지요.』

지운은 조용히 웃었다.

『그래 박군이 딴 여성과 교제를 해도 정임씨는 싫으시지 않아요?』

『싫기는 하지만 제가 그이를 워낙 사랑하고 있으니까, 끝끝내 싫어지지는 않아요.』

지운은 놀라며,

『그렇지만 정임씨에게도 질투심이라든가 자존심 같은 것이 있을 것이 아닙니까?』

『물론 있기는 있지만요. 그렇지만 여자란……아니, 이건 제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지만요. 정말로 상대방이 좋아지면 질투심이라든가 자존심 같은 걸 내세울 여유가 없지 않을까요?』

지운은 또 한 번 놀라며 여성이 지닌 순수한 애정의 타잎을 하나 더 발견하고 작가적 수양을 쌓고 있는 것이다.

『정임이가 지닌 세계야말로 애정의 참된 경지가 아닐까……』

지운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인간이 지닌 애정의 자세를 이것 저것 생각해 보았다.

『정임씨의 아버님은 돌아가셨다지요?』

정임은 얼마 동안 대답이 없다.

『아니요. 그저 그렇게 말해 두는 거죠.』

『그럼?』

『벌써부터 딴 여자와 살고 있어요.』

『그래요?』

『해방 직후부터죠. 그렇지만 저는 아버지를 탓하지는 조금도 않아요. 아버지에게는 그 여자가 제일 좋으니까요. 그 여자 때문에 아버지는 돈도 많이 썼지요. 그렇지만 六[육]·二五[이오] 이 후에는 사업이 시원치가 않아서 지금은 대구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지요. 여자는 돈을 못번다고 아버지를 무척 학대 한대요. 딴 사나이하고도 눈을 맞추고……그래도 아버지는 그 여자를 좋다고, 가진 수모를 다 받으면서도 헤어져 나오질 못해요. 그 여자와 헤어져 나오기만 하면 언제든지 집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모셔들이겠다는 거예요. 그러한 아버지를 어머니는 또 어머니대로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고 있지요. 언젠가는 인편을 통하여 아버지가 남루한 옷 주제를 하고 대구 거리를 방황(彷徨)하더라는 말을 듣고는 어머니는 울면서 옷이나 한벌 장만해 입으라고, 인편을 통해서 돈 십만 환이나 주어 보냈지요.』

그리고는 지운을 쳐다보며,

『선생님, 저는 아직 나이 어려서 아무런 것도 모르지만 인간이란 애정이 쏠리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죠? 아버지도 그렇고 어머니도 그렇고……』

그러한 아버지와 그러한 어머니의 피를 받고 나온 정임도 또 그러하였다고, 지운은 그 순간 자기와 석란 사이에도 그런 종류의 애정의 밀도(密度)가 처음부터 결핍되었던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이었다.

거기서 정임은 말머리를 돌리며,

『그이는 모 퇴직 고관의 여섯째 아들이지요. 동기가 모두 열 남매나 된대요. 가족이 하도 많아서 경제적으로는 다소 곤란한 형편인가 봐요. 그이와 저와 약혼을 한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그의 미국 유학비를 어머니가 담당하겠다는 언질을 준 것과 또 한가지는 저와 결혼을 해도 자기의 행동이 조금도 부자유하지 않을 거라는 그 두 가지 이유에서 그랬을 거예요. 그이는 저도 사랑을 하지만 동시에 저 아닌 다른 여자도 무슨 그런 애정관계 같은 것을 맺지 않고는 못사는 사람인 모양이예요. 그런데 참 선생님……』

정임은 거기서 한동안 망설이다가 마침 결심을 한 듯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아까도 말씀 드린 것처럼 제게도 약혼자에 대한 다소의 질투심 같은 것이 물론 없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그런 감정 때문에 말씀 드리는 건 아니예요. 그저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어쩐지 자꾸만 가엾어서……』

정임은 진심으로 지운을 아끼고 있는 것이다.

『제가 가엾다고……무슨 뜻입니까?』

문학을 좋아한다는 만큼 연령은 아직 어리지만 이야기에 조리가 있고 애정 문제를 생각하는데 상당한 깊이와 성숙을 보이고 있었다.

『선생님은 부인을 사랑하고 계시지요?』

『사랑하고 있지요. 우리는 아직 신혼부부니까요.』

『그렇다면 빨리 손을 쓰셔야겠어요.』

지운은 불현듯 시선을 돌렸다.

시선을 돌리며 지운은 그 어떤 불길한 예감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빨리 손을 쓰라고……무슨 말입니까?』『박은 여자를 손에 넣은 것이 대단히 빠르답니다. 그 에게는 미혼 처녀를 소중히 여긴다든가 유부녀를 존경한다든가……그런 생각은 조금도 없지요.

마치 창부를 대하듯이 애정의 표시가 뻔뻔스러울이만큼 노골적이랍니다. 그러한 자가 생각을 캄프라치하기 위하여 자유주의를 가져오고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마침내는 한길가에서 키스를 한다는 서양사람들의 개방주의까지 가져오지요.』

지운의 불안은 차츰 차츰 더 커져갔다.

『우리 동양 사람들은 연애 과정에서 애욕의 과정까지 도달하려면 상당한 시일의 경과를 요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박은 그러한 귀찮은 연애 과정 같은 건 필요치 않으니까, 마치 우리가 책장을 뒤지듯이 후딱후딱 지나쳐 버리고 애욕 직전의 과정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걸리지 않는 여자는 좀처럼 걸리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비인 여자는 손쉽게 걸려 버리고 말지요. 저도 그래서 걸려든 사람이지만요.』

정임의 경험 세계는 박 준모 한 사람 뿐이었다. 그러나 원체 문학 작품을 많이 통독한 정임의 애정 세계에 대한 풍부한 이해성은 그의 연륜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깊이가 있었다. 작가적 소질을 다분히 가진 여성이라고 지운은 자기의 불안한 감정과 함께 정임의 그러한 성장을 마음속으로 놀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제가 손쉽게 걸린 것은 지금 가만히 생각하면 제가 너무 조숙했던 탓이예요. 연령의 발판이 없이 지나치게 조숙하다는 것은 그만큼 속이 비어있었을 거니까요, 그 비어 있는 마음속에다가 그 개방적이요 노골적인 애정의 말들이 너무도 강렬한 자극을 넣어 주었어요. 그 때문에 제게는 연애 과정이라는 것은 별로 없었고 애욕의 과정만이 있었지요. 그러나 그때는 애욕과 연애감정이 꼭 같이만 생각키웠으니까요. 무리도 아니예요.』

처음에는 소녀처럼 경험이 없어 보이던 정임이가 이러한 뚜렷한 애정의 논리를 갖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그것은 일종의 작가적인 경험이었다고 지운은 해석하는 것이다.

『선생님!』

『어서 말을 계속하세요.』

『부인과 박 사이에는 이미 포옹과 키스의 단계까지 도달했어요.』

거기서 정임은 자기가 목격한 광경을 간단히 이야기 한 후에,

『오늘밤을 잘 주의하셔야 겠어요. 이런 말씀 선생님께 드리고 싶지 않지만…… 선생님을 위하여 또 부인을 위하여……』정임은 얼른 지운을 쳐다 보았다. 지운은 눈을 감고 걷고 있었다.

새하얗게 핏기를 잃어버리고 있는 지운의 얼굴 이었다. 양미간이 무섭게 찌프러 들고 있었으나 지운은 애써 그것을 펴느라고 무진 노력을 하고 있었다. 지운의 발걸음이 돌을 차고 한두 번 비틀거렸다. 그래도 지운은 눈을 뜨지 않고 걸었다.

『저는 진정으로 선생님의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지운의 그 깊이를 가진 괴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정임은 자기가 무슨 커다란 죄를 지은 사람처럼 뉘우쳐졌다.

『정임씨! 잘 말해 주셨읍니다. 고맙습니다!』

대단히 엄숙한 치사의 말이었다.

짖궂게 눈은 그냥 감고 걸었다. 메마른 듯이 침을 한번 꿀꺽 삼키며,

『미안하지만 조금 실례하겠읍니다.』

그러면서 정임의 곤색 양복 팔소매 끝을 조금 붙잡고 따라오다가 또 돌을 찼다.

『아, 선생님!』

정임은 그 모양이 너무도 심각하고 서글퍼서 팔소매 대신 제 손을 가만히 지운의 손아귀에 쓰러넣어 주었다.

『미안합니다, 정임씨! 조금만 더 이렇게 걸어 주시요. 눈을 뜨기가 제게는 무섭읍니다!』

『얼마든지!…… 그렇지만 조금 쉬어 가시면?』

『움직이고 있어야 하지요! 운동 신경이 활동을 해야만 인간의 사고력은 감퇴되니까요.』

『인제 됐읍니다. 고맙습니다.』

여남은 걸음도 채 가기 전에 지운은 눈을 뜨며 정임의 손길을 얼른 놓았다.

『선생님, 괜찮아요. 좀더 그러고 걸으세요.』

『정말 괜찮읍니다. 누가 보면 오해를 하지요.』

정임은 잠자코 걸었다. 걷다가,

『그렇지만 그건 오해를 하는 편에 잘못이 있지 않을까요?』

『잘잘못이 문제가 아니요. 한 남자의 약혼자와 한 여자의 남편되는 사람이 이런 장소에서 손을 붙잡고 걷는다는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불미로운 행동으로 취급이 되니까요.』

『그건 진실을 무시한 형식 문제가 아냐요.』

『그렇습니다. 윤리의 대상은 진실이 아니고 인간의 실천적인 행동이지요.』

둘이는 또 한참 동안 묵묵히 걷다가,

『제가 괜히 쓸데 없는 말을 했나 봐요. 선생님의 마음의 타격이 그처럼 심한 줄은 모르고……선생님은 부인을 정말로 참되게 사랑하고 계시나봐요.』

『그렇지만 실은 나 자신도 내 마음의 타격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답니다.』

『부인을 사랑하고 계시는 증거겠지요.』

『얼핏 보면 그렇게도 생각키우지만요. 그러나 또 한 편 곰곰히 생각하면 애정 문제만이 아닌 것도 같아요.』

무슨 말인지, 정임은 잘 알아 들을 수가 없어서 시선을 돌렸다. 돌부처와도 같이 지운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지금 얼핏 생각난 일이지만요. 애정도 애정이지만 그 보다도 아내의 그러한 행동에서 받은 내 살과 피의 전율이었던 것만 같아요. 내 머리에는 충분히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논리가 들어 앉아 있지만 내 살과 피 속에는 一九三五[일구삼오]년도에 아시아주 한국 수도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는 신진 작가 임 지운의 윤리의 한도가 도사리고 있나 봐요. 그러한 윤리의 한도가 이단적(異端的)인 새로운 논리의 실천 앞에서 전율하고 파괴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당한 해석일런지 모르지요.』

『애정 문제와는 별개로 말씀이죠?』

『그렇지요. 애정이 없는 부부일지라도 그만한 마음의 타격은 받을 것만 같아요.』

금강원 정문을 나서서 시가로 두 사람은 들어섰다.

『정임씨는 댄스를 좋아하십니까?』

지운은 돌연 화제를 돌렸다.

『별로……박이 이 여자 저 여자를 휘감아 가지고 돌아가는 걸 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못되니까요.』

『그런데 왜 오늘밤 댄스 파아티를 여십니까?』

『그건 박의 주장이지요. 저는 그저 임선생님 내외 분을 모시고 회식이나 할까 했었는데, 박이 자꾸만 춤을 추어야만 한다는 거예요. 선생님, 다소 불쾌 하시겠지만 박의 의도가 뻔하니만큼 꼭 참석하셔서 미리 손을 쓰셔야 할 거예요. 얼핏 보아서는 가장 신사적인 춤을 추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가장 신사답지 못한 춤을 박은 춘답니다.』

두 사람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 석란과 박 준모는 아직 병원에서 돌아오지않았다.

시내로부터 파아티에 참석할 친구가 두서넛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정임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친구를 맞이하였고 지운은 혼자서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 자기방으로 들어서자 지운은 문득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네 시 반이었다.

원고지와 서적 몇권이 놓여 있는 테이블 의장과 탁자와 소파,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침대 석란이가 자고난 침대 머리맡에는 크리임 초콜렛의 상자가 아침과 똑같은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모든 것이 아침과 꼭 같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아침과는 달라진 이 저녁이었다. 크리임 초콜렛으로 자기의 뒤통수를 툭 갈기며 자는 척 하던 아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모든 것을 주고 모든 것을 지운은 받았다. 그것으로서 한낱 형식적이던 결혼이 실질적으로도 충실했다고 지운은 생각했었다. 그러한 충실감이 지금에 와서는 한낱 꿈과도 같은 공허감으로 변모 하였다. 아내의 무절조를 탓하기 전에 지운은 그 허무속에서 자신의 실제(實在)를 망각하였다.

『애정의 허무! 맹세의 공허!』

지운은 석란의 침대 앞으로 조용히 걸어가서 아직도 그대로 깔려있는 이부자리 속으로 손을 가만히 쓰러 넣어보았다. 온기가 있다. 석란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모른다. 그처럼 진실하고 성스럽고 아름답던 애욕의 하룻밤을 비웃고 조롱하는 것 같은 침구의 온기였다.

지운은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부자리 위에 탁 얼굴을 묻으며 엎드려 버렸다. 십년에 걸친 연정을 깨끗이 청산하고 오로지 석란의 성실한 남편이 되기를 절실히 바랏던 인간 임 지운의 그 지극했던 기원은 마침내 허무러지고 말았다. 실로 허무 맹랑한 노릇이었다.

오랫동안 엎드려 있던 지운은 홱 얼굴을 들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며 크리임 초콜렛의 상자를 독수리처럼 움켜쥐자 맞은편 벽에 걸린 거울을 향하여 전신의 분노와 함께 힘껏 내던졌다.

분노의 탄환과도 같이 방바닥 이구석 저구석으로 산산히 흩어지는 초콜렛의 수 많은 알맹이 알맹이……

『하하하핫……』

미친 사람처럼 한 번 커다랗게 웃어 보고 나서 다시금 지운은 무서운 얼굴을 지어 버리고 말았다.

테이블 옆에 놓인 보스턴백을 거꾸로 털어 식료품을 테이블 위에 쏟았다.그리고는 트렁크에서 자기 소유의 옷을 꺼내 보스턴백에다 되는대로 주워 넣었다. 잠옷도 넣었다. 원고지와 책 몇 권도 넣었다. 그리고는 모자를 썼다.

『서울행 급행 열차는 밤 여덟 시다!』

시계를 보았다. 다섯 시가 거지반 되어 있었다. 시간은 넉넉하다. 한 시간 이내에 택시는 부산역까지 지운을 운반해 줄 것이다. 원고지 한 장을 꺼내 놓고 지운은 만년필을 들었다.

부인의 자유를 위하여 나는 먼저 떠나오. 부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떠날까도 생각해 보았으나 두 번째의 폭력이 부인의 고매한 민주 자유 정신을 모욕할 우려가 다분히 있기에 그대로 떠나오. 결혼조건 제 일조를 위반한 사나이 씀.

그리고는 일야 숙박에 상응할만한 금액을 원고지 위에 놓아둔 후에 백을 들고 지운은 호텔을 나섰다. 다행히 아는 얼굴은 하나도 만나지 않았다.

지운은 곧 맞은 편 차고로 가서 택시 한 대를 잡아타고 온천장을 등졌다.

부산역을 향하여 자동차가 질주하고 있는 동안, 지운의 머리는 태반이 텅 비어 있었다. 자동차의 속력이 대단히 마음에 들었고 후딱후딱 흐르는 초겨울의 삭막한 전원 풍경이 자기의 심경과도 같아서 어딘가 귀염성이 있어 보였다.

이같은 심경이 되었 다는 것은 이미 지운이가 냉정한 입장에서 오늘의 석란의 행동과 자기의 몸가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에 세상의 남편들은 어떻게 행동을 할 것인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으나 결국에 있어서 자기가 택한 행동이 지운에게는 제일 마음에 들었다.

정임은 자기더러 빨리 손을 쓰라고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임이가 지닌 애정의 자세이고 지운 자신의 그것은 아니라고 지운은 마음으로 돌이 돌이를 하는 것이다.

『어쨌든 너무도 빠르다!』

석란의 남녀 동권 사상과 개방적인 명랑에서 다소의 위구심 같은 것을 느끼기는 했으나 초야 하룻밤을 지낸 신혼의 아내가 아니냐! 남편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다소의 근신은 해줘야만 할 것이라고 지운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만, 『허허………』

하고 소리를 내서 웃었다.

도대체 석란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절차인 결혼에 대해서 너무도 성의가 없었던 사실을 지운은 비로소 깨달았다. 무슨 생일 잔치나 하는 것처럼 결혼식을 생각했고 무슨 수학 여행이나 떠나는 것처럼 신혼 여행을 온 것이다. 어린애들의 소꿉장난을 할 때와도 같은 정도의 성의를 가지고 결혼의 약속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석란의 성실한 남편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맹세했던 자기자신이 허무하고도 눈물겨웠다.

『그것은 어쨌든 단 하루 동안에 석란이가 박 준모를 사랑할 수가 있을 것인가?』

그것이 지운으로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되어 있었다. 물론 불가능한 노릇은 아니었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한편 또 그리 쉽사리 있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지운은 다시금 불쾌한 감정이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질투의 감정은 별반 없었고 다만 석란이가 남편 아닌 다른 사나이의 품에 안기고 입술을 제공했다는 그 사실만이 지운은 분했다. 그러니까 결국은 애정 문제보다도 무시를 당한 남편의 체면이 문제였다. 지운은 그것을 변명했었지만 아버지는 석란의 그 개방적인 명랑성을 일종의 불량성이라고 보았다.

지운의 변명처럼 그것이 하나의 현대성을 의미하기에는 석란의 양식(良識)과 지성에 결핍이 있었다.

부산역 전에서 지운은 자동차를 버리고 서울행 이등차표를 암거래로 샀다.

그리고는 사십 계단 근처에 있는 그길로 들어가서 식사를 하며 차시간을 기다렸다.

입맛을 통 잃어버린 지운은 식사보다도 맥주를 더 많이 들었다. 술잔을 거듭하며 지운은 얼른 정임을 생각했다. 정임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것이야말로 참된 애정의 자세가 아닐 것인가?』

그러한 애정의 자세를 지운은 불행히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수선한 찻간에 지운은 올라탔다. 희미한 전등밑에서 자리를 찾느라고 승객들은 들끓고 있었다.

지운은 고슴도치처럽 들창가에 쭈구리고 앉아서 석란과 애정의 밀도를 골돌히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서 작가 임지운과 행동인 임 지운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시작되었다. 묻는 것은 작가 임 지운이었고 대답하는 것은 행동인 임 지운이었다.

『정임이가 말한 것처럼 그대가 석란을 사랑한다면 그러한 편지 한 조각을 남겨 놓고 이 신혼여행을 끝마칠 수는 없을 것이다.』

『…………』

『왜 대답을 못하는가? 그대는 이 석란을 사랑하고 있는가?』

『사랑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행동을 묻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어떤 행동이 사랑을 의미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대답할 수 없다.』

『그대와 같은 지식인이 자기 행동의 의의(意義)를 해석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아니다.』

『나의 지식은 나에게 의식의 분렬과 행동의 혼란을 가져왔을 뿐이다. 인생에 대한 기성 관념을 좀더 소중히 여기면서 살아가지 못하는데 나의 비극은 탄생했다고 본다.』

『이 석란에 대한 그대의 행동은 그대의 애정의 표시라고 보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고 동침을 하는 것이 애정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석란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그대는 애당초 이 석란과 어째서 결혼을 했는가!』

『인간의 애정과 애욕의 한계가 분명치 못했던 탓이다. 그 만큼 나는 남녀 관계에 있어서 경험이 없었다. 모든 애정은 애욕의 길로 통하고 있지만 모든 애욕이 애정을 반드시 닮지는 않았다고 깨달았다.』

『그래 그대가 지금에 와서 깨달은 사랑이라든가 애정이라든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직 모른다. 어디까지가 애정이고 어디서부터가 애욕인지 이건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가 다 정확히 분간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한다. 사랑의 감정과 애욕의 감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석란에 대해서 자기 희생의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호텔을 뛰쳐 나왔다.』

『석란을 용서할 생각은 없는가!』

『전연 없다! 용서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길은 무관심일 뿐이다.』

『그런 경우에 있어서 용서할 수 있는 여자가 이 세상에 있을 것 같이 생각키우는가?』

『생각키운다. 예를 들면 소년 시절에 창경원에서 만났던 그런 여성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대의 공상이다. 그 여자도 현실에 있어서 석란과 같은 행동을 취했다면 그대는 역시 용서를 못할 것이다.』

『아니다. 그 여자는 그러한 행동 조차 취하지 않겠지만 비록 그러한 행동을 한다손 치더라도 나는 용서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기능을 가졌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

『그대가 석란을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것도 일종의 애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애욕의 행동에서 받은 피부적인 애착의 잔재와 다소의 인간적인 동정일 뿐이고, 나머지는 한국의 현실이 지닌, 따라서 신진작가 임 지운이가 지닌 모랄리티에 관한 문제이다.』

『그대의 대답은 비교적 솔직하고 정확하다. 무엇보다도 챤스가 나빴다고 나는 본다 정증계곡에서 그대와 석란은 제가끔 약혼에 대한 신청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을려고 실겡이를 하였다. 더구나 싸움을 한 중년 신사 부부 앞에서 석란을 약혼자라고 내세우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그대의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다소 경솔하였다.』

『포옹의 매력 같은 것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거기에는 애정의 발판 없이 애욕의 세계를 동경한 삼십 대 그대의 연륜도 다소의 책임이 있을 것이다. 그 한 좋은 증거로서 그대는 최초의 키스에서 자기 분렬의 의식을 고민하였다. 그대의 불행은 거기서부터 출발하였다.』

『나도 희미하게나마 그런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 대신 나는 석란의 성실한 남편이 되기를 절실히 원했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그대가 만일 성실한 남편이 되기를 그처럼 원했다면 그대가 이처럼 홀가분히 호텔을 뛰쳐나오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간에 석란은 그대의 아내이다. 그 아내를 그러한 위험지대에 그대로 남겨두고 나온다는 것은 그대가 한 사람의 남편으로서 성실하지 못하다는 충분한 증거가 아닌가?』

『…………』

『인간은 말만으로써 성실할 수는 없다. 그대가 성실한 남편이 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바삐 호텔로 돌아가라!』

『…………』

『빨리 차에서 내려라! 발차의 종이 울린다!』『돌아가서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그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결국에 있어서 아내의 자유를 속박할 것이다.』

『자유의 속박은 성실한 애정의 표시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을 석란은 봉건적 독재라고 비난하였다.』

『인간의 진실은 이즘(主義[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즘이 진실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고 진실이 이즘을 좌우하는 것이다.』

『…………』

『차가 떠난다! 주저말고 빨리 내려라! 그대의 성실한 행동은 이즘을 창조할 것이다.』

지운은 훌쩍 몸을 일으키며 선반에서 보스턴빽을 내려 들고 승강구를 향하여 냅다 뛰쳐 갔다.

차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전송하는 사람들이 승강구 앞 홈에서 차체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앗 위험합니다!』

승객 하나가 지운의 등뒤에서 소리를 쳤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지운은 홈으로 내려뛰고 있었다. 몸의 중심을 잃고 어떤 청년 앞에서 픽 쓰러졌다.

『이 양반이 미쳤나?』

청년은 그러면서 지운을 잡아 일으켜 주었다.

『미안합니다.』

지운은 개찰구를 향하여 허겁지겁 뛰어나갔다.

『선생님, 빨리 손을 쓰셔야겠어요.』

정임의 한 마디가 경종처럼 지운의 고막을 울려왔다.

『대지급으로 동래까지!』

택시에 뛰어 오르면서 지운은 꿈결처럼 소리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