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 천주교 요리/종도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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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천주께서 계시해 주신 주요 사항은 무엇인가?

천주께서 계시해 주신 주요 사항은 종도신경에 포함되어 있다.

14. 종도신경을 염하라.

나 천지를 조성하신 전능 천주 성부를 믿으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저 성신을 인하여 강림하사 마리아 동신께로서 나심을 믿으며, 본시오 빌라도 벼슬에 있을 때에 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을 믿으며, 지옥에 내리사 사흗날에 죽은자 가운데로 조차 다시 살으심을 믿으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 천주 성부 우편에 좌정하심을 믿으며, 저리로조차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여 오실 줄을 믿나이다.
나 성신을 믿으며, 거룩하고 공번된 회와 모든 성인의 서로 통공함을 믿으며, 죄의 사함을 믿으며, 육신이 다시 삶을 믿으며, 영원히 삶을 믿나이다. 아멘.
이 신경에는 천주께서 계시해 주신 진리가 모두 들어있지는 않지만, 주요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는 구원받기 위해 믿어야 하는 진리가 모두 들어있으며, 분명하고도 단순한 방법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누구라도 그것을 쉽게 암기하여 익힐 수 있다. 여기에 들어있는 가르침은 종도들이 우리 주님 자신으로부터 직접 배운 종도들의 가르침이므로 종도신경이라고 한다.

15. 종도신경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종도신경은 열 두 부분 혹은 열 두 요목으로 구분한다.
신경의 요목들을 세 부분으로 묶을 수 있다. (1) 천주 성부 및 창조 사업에 대해서 알려주는 제1요목, (2) 사람이 되신 천주 성자 및 그 구속 사업에 대해서 알려주는 제7요목까지의 둘째 부분, (3) 천주 성신 및 천주교회를 통한 당신의 성화 작용에 대해서 알려주는 제8요목부터 끝까지이다.

16. 신경 중에서 제1요목은 무엇인가?

신경 중에서 제1요목은, “나 천지를 조성하신 전능 천주 성부를 믿으며”이다.

17. 천주는 어떤 분이신가?

천주께서는 홀로 스스로 존재하시고, 모든 완전성에 있어서 무한하신 최고의 영이시다.
천주께서는 가장 높으시고 가장 위대한 영이시다. 당신만이 홀로 창조되지 않으셨다. 그 완전성은 절대적으로 어떤 종류에 의해서도 제한받지 않으신다. 천주께서는 전능하시고, 전지하시며, 지극히 거룩하시고, 지극히 인자하시며, 지극히 공의하시고 기타 등등을 갖추고 계시다.
우리는 능력이 있되 불완전하고, 거룩하되 불완전하며, 지혜롭되 불완전하며, 기타 등등도 불완전할 뿐이다.

18. 어째서 천주께서 전능하시다고 하는가?

천주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므로 전능하시다고 하니, “천주 대전에는 못할 것이 없나니라”(마두 19,26).
그러나 천주께서는 이성에 반하는 것, 예를 들면 사각형을 원으로 만든다든지 하는 것을 하실 수는 없다. 죄를 범하지도 못하신다. 천주께서는 본질적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까닭에 죄를 범한다는 것은 당신의 본성 자체에 어긋나는 일이다.

19. 어째서 천주를 이르되 천지를 조성하신 분이라고 하는가?

천주께서는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당신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조성하셨으므로, 천지를 조성하신 분이라 이른다.
천지는 성경에서 취해진 표현이며 그것은 천주를 제외한 만물을 의미한다. 수백만 년 전에, 천주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천주께서 전능하신 뜻을 행하셔서 사물이 존재할 것을 명하시자 그것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당신이 직접 알려주셨다. 예를 들어, 성영 134; 이사야 40,26; 예레미야 10,10; 요왕1,3; 코로새 1,16. 그리고 특히 성경 중에서도 첫째 권의 첫 부분인 천지창조가 묘사된 창세기를 보라. 창세기에서 모세는 창조 사업의 기간을 6일이라 한다. 히브리인들의 주간과 같이 각 날에 저녁과 아침이 있고, 하루 동안의 휴식이 6일의 사업 다음에 이어진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서 그가 통상적인 날을 의미했음이 분명한 듯하다. 과학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 여기서 모세가 묘사한 것은 일주일 안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들 한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창조에 관하여 과학적인 생각을 쓰려는 의향이 없었다. 그는 단지 천주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사람들에게 분명히 이해시키고 싶었던 것이며, 그것을 사람들이 더욱 완전히 납득하게 되도록 재미있고 예술적인 형태로 고려했던 것이고, 각 가정으로 하여금 천주께 안식일을 봉헌하는 과제를 수행하도록 일주일이라는 형태를 특별히 부여한 것이다.

20. 천주께는 시작이 있으신가?

천주께는 시작이 없으시다. 항상 그러하셨고, 그러하시며, 항상 그러하실 것이다.
그러니 천주와 우리 사이에는 그렇듯 무한한 차이가 있다. 천주께서는 항상 존재해 오신 반면, 우리는 당신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다.

21. 천주께서는 어디에 계시는가?

천주께서는 아니 계시는 곳 없이 어디에나 다 계신다.
천주께서는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 안에, 가장 멀리 떨어진 별에, 전세계에 및 그 모든 조각 안에,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우리 각자 안에 계신다. 나누어져서 이곳에 한 부분 또 저곳에 한 부분이 계신 것이 아니라, 천주는 영(靈)이시므로 전체로 온전히 어디에나 다 계신다. 매순간 천주께서는 그 전능하신 힘으로써 존재하는 모든 것을 굽어보신다. 그리고 천주께서는 규칙을 정하시고 크고 작은 모든 것이 한결같도록 다스리신다.

22. 천주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또 보고 계시는가?

천주께서는 모든 것, 우리의 가장 비밀한 생각까지도 알고 또 보고 계신다.
다음 질문에서 보듯이 천주께는 육체가 없으시므로, 육안으로써가 아니라 무한한 정신이라는 인식력으로써 보신다. 그러니 천주께로부터 숨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어두운 밤조차도 당신께는 대낮과 같다. 사람들은 때때로 몰래 죄를 범한다지만, 천주께서는 그것들을 보실 수 있다. 당신께서는 우리가 잊은 죄를 잊지도 않으신다. 모든 것을 기억하신다. 천주께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과거의 일과 미래의 일이 모두 다 당신께 있다. 천주께서는 세상 끝까지 그리고 영원히 일어날 일을 모두 다 아신다. 그것을 보시되 바로 이순간 당신 앞에 있는 듯이 보시는 것이다.

23. 천주께는 몸이 있는가?

천주께는 몸이 없고, 영이시다.

24. 천주는 오직 한 분만이 계시는가?

천주는 오직 한 분만이 계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기본 진리를 믿는다. 성경을 통하여 그것을 배우며, 오직 하나인 무한한 존재보다 더 많은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이성(理性)이 알려 준다.

25. 천주께는 세 위(位) 계시는가?

천주께는 세 위(位) 계시니, 천주 성부, 천주 성자 그리고 천주 성신이시다.
이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해 주신 것이다. 제일 분명한 구절은 우리 주께서 종도들더러, 만민을 가르치고 “저들에게 세를 주되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야” 하도록 명하신 마두 복음 28장 19절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세 위격을 보는데, 그 이유는 성부와 성자는 개별적인 이름이고, 성신은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발하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별개의 위격이다. 왜냐하면 성부와 성자는 같은 위격일 수 없고 또 세 위 모두 별개의 한정된 명칭인 성부, 성자, 성신으로 있기 때문이다.

26. 세 위(位)께서는 세 분의 천주인가?

이들 세 위께서는 세 분의 천주가 아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은 오직 하나이시고 똑같은 천주이시다.
천주께서는 오직 하나이신 참된, 생활하신 천주가 계시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 내가 막 인용한 문장에서, 세 위께서 개별적으로 계시기는 해도 천주가 세 분 계신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 주께서는 분명하게 밝혀 주신다. 당신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의 이름-단수(單數)로--으로”라고 하신다. 성세성사는 천주의 힘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따로 천주의 자녀로 삼으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께서는 단수를 사용하심으로써, 우리가 봉헌되고 또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별개의 세 위격이란 하나이신 존재, 오직 하나이신 천주라는 것을 보여 주신다.

27. 하나이신 천주 안에 계신 세 위격의 신비를 무엇이라고 하는가?

하나이신 천주 안에 계신 세 위격의 신비를 성 삼위일체의 신비라고 한다.

28. 신비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비란 이성을 초월하지만, 천주께서 계시해 주신 진리를 의미한다.
성부께서 참 천주이시고, 성자께서 참 천주이시며, 성신께서 참 천주이시지만 세 분의 천주가 계신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이신 천주만이 계시다. 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서 우리의 이성을 초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 그 자체이신 천주께서 그렇게 알려 주셨으므로, 그것은 절대적으로 참되다. 어떻게 해서 그럴 수 있는지 깨닫지 못해도, 우리는 당신 말씀을 근거로 해서 받아들인다. 우리의 정신은 너무나도 미소해서 천주의 무한하신 본질 및 생명의 불가사의를 납득할 수 없다.

29. 영혼에는 성 삼위일체와 닮은 구석이 있는가?

영혼에는 성 삼위일체와 닮은 점이 있으니, 하나이신 천주께 세 위격이 계시듯 영혼에는 세 가지 능력이 있다.

30. 영혼의 세 가지 능력이란 어떤 것인가?

영혼의 세 가지 능력은 기억력, 이해력과 의지이다.
우리가 비록 성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께서는 당신의 자취를 몇 가지 남겨 놓으셔서 당신의 창조물 안에 있는 신비가 덜 어렵도록 도와 주셨다. 우리 주님은 천주 성자께서 천주 성부께로부터 오셨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 즉 천주 성자는 모든 시대 이전에 성부에게서 나셨다. 또 당신께서는 성신께서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신다는 것도 말씀해 주셨다. 종도신경보다 더 오래 된 형태인 니체아 신경에 그런 사실이 서술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주일과 의무 첨례날 및 몇몇 다른 첨례날의 미사에서 니체네 신경을 창한다. 만일 우리 안에 삼위일체와 닮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주로 우리 영혼 안에 있음에 틀림없다. 천주의 모상이 주로 우리 영혼 안에 있다는 것을 이미 말했다. 그런데 각자에게는 오직 한 영혼만이 있다. 그러나 교리문답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영혼은 세 가지를 행할 수 있다. 각자 자신을 생각해 보자. “나는”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활하면서 줄곧 “나는”이라고 말해 왔으며 항상, 적어도 어렴풋하게나마 일생을 통하여 똑같은 사람으로서의 자신임을 안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에 대해 지속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 지속적인 기억으로 인해 우리는 자신이 어떤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이루어져서, 스스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게 된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기억을 계속 좇다 보면 천주 성부께로부터 나신 천주 성자의 어렴풋한 모상이 있다. 이제 더 나아가서, 자신에 대한 기억 및 인식의 결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을 사랑한다. 그렇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활동할 때 자신의 의지인즉, 그 이유는 의지의 기본적인 활동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영혼 안에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발하는 성신의 어렴풋한 모상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기억력, 이해력 그리고 의지가 제각기 있다고는 해도, 위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세 영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인 영혼이 있는 것이다.

31. 신경 중에서 제2요목은 어떤 것인가?

신경 중에서 제2요목은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이다.
즉,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32.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신, 천주 성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셔서 우리를 구속시켜 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 성 삼위일체 중에서 제2위격이다. 다음에 오는 질문에서 이 점에 관해 논의할 것이다.

3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천주이신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천주이시다.

34. 어째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천주이신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이시고 천주 성부와 같은 본성을 지니시므로 참 천주이시다.
성 요한은 우리 주님께서 천주이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복음을 기술했다.(요왕 20,31) 복음을 시작하되, 천주 및 사람이 되신 말씀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복음 곳곳에는 우리 주님이 천주라고 하는 분명하고도 명확한 주장이 나타나 있다. 예를 들어, 당신께서는 아브라함 이전부터 불변의 생활을 사셨다고 언명하신다.(8,58) 주께서는 또 “나와 성부 곧 하나이로다”(10,30)라고도 말씀하신다. 다른 복음에서도 역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똑같이 언명하신다. 그리하여 주께서는 항상 당신 자신을 천주와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와는 따로 구분하신다. “우리 아버지”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나의 아버지” 및 “너희 아버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당신께서는 죄를 용서하시는 천주로서의 능력을 주장하시고 중풍 환자를 고쳐 주심으로써 그것을 증명하신다.(말구 2,1-12) 주께서는 당신을 너무나도 사랑한 죄인이었던 여인을 용서해 주시는데, 그녀가 사랑한 이는 바로 주님이셨다.(루가 7,47) 주께서는 당신과 성부께서 서로 완전히 아신다고 언명하신다.(마두 11,27) 주께서는 시련의 때에 주장하신 바를 고수하시고 또 그것을 죽기까지 지키셨다.(루가 22,67-71) 그렇듯 한결같은 당신의 주장이 정말이라는 것은 당신이 주신 무수한 표시, 즉 당신이 행하신 기적, 그리고 특히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일로써 보증되었다.

3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천주이셨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영원으로부터 성부께로서 나신 천주이셨다.
다음 질문에서 보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 삼위일체중 제2위격이시다. 위의 본문에서 인용했듯이, 당신께서는 천주 성자이시다. 그러므로 당신께서는 천주 성부께로서 나셨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천주이시므로 영원으로부터 성부와 대등하게 존재해 오셨다.

3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 삼위일체 중 어느 위격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 삼위일체 중에서 제2위격이시다.

3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사람이신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사람이시다.

38. 어째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사람이신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같이 육체와 영혼이 있는 사람의 본성을 지니심으로 해서 참 사람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육체를 지니셨다. 당신께서는 나시고, 자라셨으며, 수난을 겪으시고 죽으셨다. 당신께서는 엄재하시고, 배고파 하셨으며, 눈물 흘리시고, 주무시고, 또 지치셨음을 복음에서 읽을 수 있다. 당신께는 우리의 것과 같은 영혼이 있다. 당신께서는 고통스럽게 말씀하시되, 당신 영혼이 죽기까지 슬프다고 하셨다.(마두 26,28) 죽음에 이르시자 당신께서는 영혼을 성부께 맡기셨다.(루가 23,46) 당신께서는 덕행으로서 흠숭(요왕 4,22), 순종(요왕 5,30), 겸손(마두 11,29)을 행하셨으니, 덕행이란 영혼의 행동이다.

3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사람이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사람이지는 않았으며, 강생하실 때부터 사람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생명은 모친의 복중에 잉태되셨을 때 시작되었다. 이는 성모영보에서 그녀가 가브리엘 대천신에게 말씀하시자 일어났다(첨례날(역자 주: 축일), 3월 25일), “네 말씀같이 내게 이루어지이다.”(루가 1,38)

40. 강생(降生)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강생은 천주 성자께서 인간의 본성을 스스로 취하신 것을 의미한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요왕 1,14)

41. 예수 그리스도께는 본성이 몇 가지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는 두 가지 본성이 있으니, 바로 천주성과 인성이다.
이는 이미 말한 것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천주이시면서 참 사람이시다. 그러므로 당신께는 천주성과 인성 두 가지가 있다. 우리에게는 오직 한 가지 본성, 즉 인성만이 있다.

42. 예수 그리스도께는 오로지 한 위격만이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는 오로지 한 위격만이 있으니, 바로 천주 성자라는 위격이다.
복음 첫머리에서 성 요한은 “말씀이 곧 천주시더라.”라고 말한다. 이는 천주 성자께 천주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조금 후에 성 요한은 “이에 말씀이 사람이 되사”라고 말하는데, 즉 똑같은 위격, 천주 성자께서 스스로 제2의 본성인 인성을 취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두 본성을 지닌 한 위격이 되셨다. 그리스도는 두 본성 안에서 행동하셨다. 기적을 행하셨고 천주성 및 능력을 사용하여 죽음으로부터 스스로를 일으키셨으며, 인성으로써는 먹고 주무시고 고통과 죽음을 당하셨다. 그래서 천주로서든 혹은 인간으로서든 당신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행하신 분은 천주이셨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비록 천주성으로는 죽지 않고 인성으로만 죽으셨어도, 천주께서 죽으셨다고 말해야 제대로 말하는 것이다.
한 위격 안에 있는 두 본성의 일치를 페르소나(persona)의 일치라고 한다. 페르소나라는 말은 본래 그리스어로서 위격이라는 뜻이다.

43. 어째서 천주 성자께서 사람이 되셨는가?

우리를 죄와 지옥에서 구해 주시고 천당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천주 성자께서 사람이 되셨다.
이는 매우 중요한 답이다.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아주 많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성경의 첫째 권인 창세기에서는 천주께서 우리의 첫 원조인 아담과 이브를 어떻게 만드셨는지, 그리고 그들을 낙원의 정원에 두시고 그것을 경작하되 잘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들은 천주의 벗이었으니 이는 우리 중 어느 누구에게도 받을 자격이 없으면서도 우리를 거룩하게 하여서 당신을 만족시켜 드리게 하는, 천주의 특별한 은혜인 상존성총이라는 은혜를 그들이 부여받았음을 의미한다(성총은 나중에 138번, 기타 등등에서 다루어진다). 덧붙이면, 그들에게는 다른 은혜가 두 가지 더 있었다. 그중 한 가지는, 우리가 타락하기 쉬운 그리고 색욕이라고 알려진 악한 성향으로부터 그들을 자유롭게 해 주었었다. 다른 은혜는 그들을 죽음과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었었다. 그들은 선악지수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천주의 계명에 순종하는 한, 주어진 그 세 가지 은혜를 보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담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모든 후손들, 즉 우리 모두를 위해서 그 은혜를 받았었다. 그래서 만일 그가 천주의 계명에 불순종한다면, 그는 자신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에 대해서도 그것들을 잃어야 할 판이었다. 그런 안배는 천주의 지극한 정의였다. 왜냐하면 그 은혜는 특별한 호의여서 그가 여왕에게 충성을 다할 경우 여왕은 그와 및 그의 후손들을 위해 인간에게 귀족 계급을 부여할 수 있고, 만일 그가 불충의 죄를 범한다면 그 자신 및 그 후손들 둘 다에 대해서 그것을 잃게 되는 것처럼, 천주께서는 당신이 임의로 택하시는 어떤 조건으로라도 그것들을 주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창세기를 읽어보면 하와 그 다음에는 아담이 금지된 실과를 먹는 경우에는 천주께서 그렇게 되리라고 선포하신 것과는 달리, 죽게 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천주와 같아져서 선과 악을 알게 되리라고 하는, 뱀의 모양을 한 악마의 제안에 꼬임을 받아 천주의 그 계명을 어떻게 깨뜨렸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불순종이라는 대죄를 범한 것이다. 그 동기는 교만--천주로서의 인식력을 함께 나누려는 욕망이었다. 자기들이 지은 죄의 결과로 그들은 천주의 벗이 될 수 있게 해 주었던 성총을 잃었으며, 역시 이미 언급한 다른 은혜도 잃어버렸다. 그들은 자신의 악한 열정과 이성 그리고 색욕이라고 알려진 의지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죽을 운명이 된 것이다. “너희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라고 천주께서 말씀하셨다. 또한 질병과 재난까지도 겪을 운명이 되었다. 남자는 이마에 땀을 흘려가며 자기 먹을 빵을 벌어야 하게 되었으며, 여자는 산고(産苦)를 겪게 되었다. 그래서 성 바오로께서 말한 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오고 또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으니.”(로마 5,12) 이 죄를 원죄라고 한다(113번, 기타 등등을 보라).
아담이 범한 죄는 천주의 무한한 권위 및 착하심에 대한 직접적인 모욕이었다. 이번에는 기분이 상한 사람의 자존심으로 말미암은 상처의 중대함을 미루어 보자. 우리 중 어느 한 사람에 대한 모욕보다도 여왕에 대한 모욕은 더욱 심각한 잘못일 것인즉, 여왕은 우리와 같이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가운데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함에 따라 특별한 존경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한하신 천주, 당신을 거스른 아담의 범죄는 확실히 특별한 의미가 있다. 결과는 아담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기의 실책을 원상 복귀시킬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낱 유한한 피조물일 뿐이어서 잘못을 기워 갚아 봤자 유한할 뿐이므로, 천주께서 요구하시는 정도에 걸맞게 무한할 수 없었다. 오직 무한한 것만이 천주께 맞갖게 충족시켜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 스스로는 천주와 벗다운 관계를 회복시킬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만일 천주성의 위격 가운데 한 위(位)께서 사람이 되신다면, 그 때에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당신은 천주이기도 하신 까닭에 천주께 아담의 죄 및 모든 죄에 맞갖은 속량물을 드릴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이 그것이다. 당신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인하여, 마땅히 받으셔야 할 속량물을 천주께 드리기 위해서 오셨던 것인즉, 당신께서 "자기 생명을 버려 많은 이(말하자면, 모든 이를 위해)를 구속하려 옴이니라(말구 10,45)"라고 하신 대로인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사랑의 끝까지 가셨다. 당신께서는 천주성의 위격이셨으므로 당신 뜻으로 인한 행동은 단 한 가지만이라도 억만 개의 세상을 구속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 주께서는 당신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천주를 거슬러 범죄하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를 보여 주시고자 우리를 위해 고통을 당하고 죽을 것을 선택하셨다.
대죄에 대해 내세에서 받을 벌은 지옥, 악마 및 다른 배반한 천사(74번과 125번을 보라)를 위해 만드신 추방과 고통의 장소인 지옥이다. 그러므로 교리문답의 답에서, 우리 주께서는 우리를 죄로부터 뿐만 아니라 지옥으로부터도 구해 주셨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우리가 천당에 이를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그것을 가능케 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죽을 때 죄에서 벗어나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가르쳐 주셨다. 당신께서는 천주를 만족시켜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활 방식으로써 보여 주셨으며, 당신의 표양과 더불어 계명, 권고 및 조언을 주셨다. 한 마디로 당신께서는 우리가 착하게 되고 천주를 두려워하게 되도록 도와주실 수 있는 것을 모두 행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매우 사랑해야 할 것인즉, 만일 당신이 아니 계셨더라면 우리에게는 천당에 갈 자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44. 예수 성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 성명은 구세주를 의미한다.
예수는 실제로는 그리스 말이다. 당신께서 죄와 지옥으로부터 우리를 구해 주셨으므로 천주께서 당신 성자께 주신 이름이 그것이다.(마두 1,21) 천주교 신자들은 예수의 성명을 말하거나 들을 때마다 고개를 숙임으로써 그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낸다.

45.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기름부음 받은 자를 의미한다.
그리스도 역시 그리스 말이며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로 번역되어, 둘 다 기름부음 받은 자를 의미한다. 구약에서 왕과 예언자 및 사제들은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알려졌었다. 우리 주께서는 최고의 방식으로 그 세 가지 직책을 가지므로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시고, 지상에서 당신의 왕국은 천주교회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예언자인즉, 말하자면 우리의 신성한 스승이시다. 당신께서는 또 갈바리아 산에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시고 천주교회의 사제들의 성무(聖務)를 통하여, 미사성제로써, 매일 자신을 드리시는 우리의 최고 사제이시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할 것이다.

4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디에 계시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주로서, 어디에나 다 계신다. 천주께서 사람이 되시고 나서는, 천당 및 제대의 복되신 성사 안에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주이시면서 사람이시라는 것을 계속 설명해 왔다(33번-40번). 예수 그리스도는 천주이시므로, 천주성이라는 본성으로는 어디에나 다 계신다. 그러나 사람으로서는 혹은 당신의 인성으로는, 어디에나 다 계시는 것은 아니다. 천주께서 사람이 되셨으므로, 신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당신께서는 천당에서 전능하신 천주 성부 우편에 앉아 계시며, 복되신 성사를 지키는 모든 천주교회 및 경당에 계신다. 천주교회 안에 들어서면 항상 제대 앞에서 타고 있는 불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복되신 성사께서 제대 위의 감실 안에 계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말로 그 곳에 계시다는 표시이다(266번을 보라).

47. 신경 중에서 제3요목은 무엇인가?

신경 중에서 제3요목은 “저 성신을 인하여 강잉하사 마리아 동신께로서 나심을 믿으며”이다.

48. 제3요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제3요목은 천주 성자께서 복되신 동정녀의 복중에서 천주 성신의 능력으로, 우리와 같이 영육을 취하셨음을 의미한다.
이 요목에서는 천주 성자께서 사람이 되셨을 때, 우리에게 모친이 있듯이 당신께도 참 모친이 계시지만, 지상에서 부친 되는 남자가 없이 당신의 모친 마리아께서 성신의 능력으로 잉태하셨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그녀는 모친인 동안에도 동정으로 남아 계셨던 것이다. 성경(마두 1,18-25 및 루가 1,26-43)을 보면 그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녀가 항상 동정이셨다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이다.

49. 예수 그리스도께는 지상에서 부친이 있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는 지상에서 부친이 없었다. 성 요셉은 당신의 보호자 혹은 양부일 뿐이었다.
예수에 대해서 부친으로 행동하고, 예수를 부양하고, 예수의 어린 시절에 당신을 보호하는 등, 기타 등등이 마리아의 정배이신 성 요셉의 임무였다. 우리 주께서는 성 요셉을 매우 사랑하셨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우리는 성 요셉께서 현재 천당에 계시고, 우리 주께서 그에게 우리를 도울 커다란 힘을 주셨음을 믿고 있으므로 천주교회의 주보 되시는 그 분께 공경을 드리고 기도한다. 성 요셉은 우리 주께서 나자렛에 있는 당신의 집을 떠나서 사람들에게 강론하시기 전에 죽으셨다. 그리고 그가 예수 마리아를 곁에 두고 죽으셨으므로, 우리는 행복한 죽음을 달라고 성 요셉께 기도한다.

50. 우리 구세주께서는 어디서 나셨는가?

우리 구세주께서는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나셨다.

51. 우리 구세주께서는 언제 나셨는가?

우리 구세주께서는 성탄절(크리스마스)에 나셨다.
크리스마스란 취결례 첨례(2월 2일) 및 성 미카엘 대천사 첨례(9월 29일)와 마찬가지로, 그 첨례가 천주교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미사를 의미한다.

52. 신경 중에서 제4요목은 무엇인가?

신경 중에서 제4요목은 “본시오 비라도 벼슬에 있을 때에 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묻히심을 믿으며”이다.

53.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주요 고난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주요 고난은 첫째는 동산에서의 통고 및 피땀 흘리심, 둘째는 석주에 동여 매여 편태 받으심 및 자관 쓰심, 셋째는 십자가 지심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 그리고 두 강도 사이에서 죽으심이다.
우리 주께서 대사제 안나와 가야파 앞에서 및 유데아의 로마 총독 본시오 비라도 앞에서 당하신 시련과, 당신이 겪으신 고난과 죽음은 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천주교에는 갈바리아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여정(旅程)과 관련하여, 경건하게 우리 주님을 따르는 14처 혹은 성로선공(聖路神功)으로 알려진 신심이 있다.

54. 우리 주님이 당하신 주요 고난을 무엇이라 하는가?

우리 주님이 당하신 주요 고난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라 한다. 수난이란 원래 라틴어이며 고난을 의미한다.

55. 어째서 우리 구세주께서 수난을 당하셨는가?

우리 구세주께서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사 주시기 위해서 수난을 당하셨다. 이 답은 질문 43번에서 충분히 설명하였다.

56. 어째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속자라 이르는가?

당신의 보혈이 우리를 속량하신 값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속자라 이른다.
속량한다는 것은 되산다는 것이다. 우리 주께서는 범죄하는 자는 누구든지 죄의 노예라고 말씀하셨다. (요왕 8,34) 노예란 다른 이의 힘 아래에 있도록 팔린 사람이다. 죄의 경우에 이 노예의 주인은 악마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한 속량을 이루심에 있어서, 우리 주님의 행적은 항상 금이나 은이 아니고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이라는 값을 주고 노예 상태로부터 되사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주인이 되신 것이니, 우리의 의무이자 특권은 착한 삶을 삶으로써 당신을 섬기는 것이다.

57. 우리 구세주께서는 어느 날에 죽으셨는가?

우리 구세주께서는 성 금요일에 죽으셨다.

58. 우리 구세주께서는 어디서 죽으셨는가?

우리 구세주께서는 갈바리아 산 위에서 죽으셨다.
갈바리아 산은 예루살렘 바로 밖에 있는 언덕이다.

59. 우리는 어째서 십자성호를 긋는가?

우리는 첫째로는 성 삼위일체를 상기하기 위해서, 둘째로는 천주 성자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음을 상기하기 위해서 십자성호를 긋는다.
십자성호는 오른 손의 손가락 끝을 이마 위에(동시에 “성부와”라고 말하면서), 다음에는 가슴에(“성자와”라고 말하면서), 그리고는 왼쪽 어깨에(“'성신의”라고 말하면서), 마지막으로 오른쪽 어깨에 댐으로써(“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라고 말하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나서 “아멘” 이라고 하면서 손을 모은다.

60.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우리는 성 삼위일체에 대하여 어떤 식으로 상기하는가?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인하여 하나이다.”라는 말로써 성 삼위일체에 대해 상기한다.

61.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 상기하는가?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우리는, 우리가 지고 가는 십자가의 형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음을 상기한다.
십자성호는 한 천주께는 삼위 계시고, 천주 성자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하는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신비 안에 있는 신앙의 행위이다. 그것은 천주교 신자 및 많은 비신자들이 항구하게 칭송하는 신심 행위이다. 우리에게는 기도 전 및 기도 후에, 음식 전과 후의 성총시에, 교회에 들어갈 때(그리고는 우리가 지극히 거룩하신 천주대전에 들어갈 것이므로, 정결 행위로 성수를 찍어서 성호경을 욀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주님의 보호하심을 보증하고 악마를 쫓는 매우 강력한 수단이므로 유혹의 시기에 십자성호를 긋는 풍습이 있다. 사탄은 십자가를 극도로 싫어한다. 십자성호는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이기신 표시이다.
한 가지 형태 혹은 또 다른 형태의 십자성호가 초대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인에 의해 사용되어 왔다. 211년에 떼르툴리안이 북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여행의 시작과 끝에, 집에 들어갈 때나 떠날 때마다, 신발을 신을 때, 목욕탕에서, 식탁에서, 전등을 켤 때, 잠자리에 들거나 앉을 때, 다른 이와의 친교에서 우리는 이마에 십자성호를 표시한다.”

62. 신경 중에서 제5요목은 무엇인가?

신경 중에서 제5요목은 “지옥에 내리사 사흗날에 죽은자 가운데로 조차 다시 살으심을 믿으며”이다.

63. “지옥에 내리사”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지옥에 내리사”라는 말로써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가 무섭게 곧 당신의 신성한 영혼이 고성소라 불리는 지옥의 부분으로 내려가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첫 원조인 아담과 이브가 타락한 이후에 천당 문은 그들 및 후손들에 대해 닫혀 있었다. 그러다가 십자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써만 다시 열렸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당신의 속죄적인 죽음은 우리의 첫 원조가 창조된 지 수천 년이 지난 후에, 그리고 그 기간 동안에 수백만 위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나고 죽는 동안에 일어났다. 사악한 자는 지옥에 떨어졌다. 그러나 착한 자는 어디로 갔는가? 천주께서는 그들을 지옥으로 보내실 수 없었다. 당연히 그들은 우리 주께서 그들을 구해 주실 때까지 천주께서 보호해 주시는 어떤 다른 곳으로 가야 했었다. 그 곳이 고성소(림보)이다. 부자와 나자로에 대한 비유에서 우리 주님은 그것을 아브라함의 품이라 이르셨다. 우리 주님의 축복 받은 영혼이 죽은 직후에 내려간 곳은 바로 그 장소였다. 의로운 영혼, 당신께 대해 지극히 친애하는 영혼에게 당신이 현존하심의 기쁨을 주시고, 그들이 구속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 주시기 위해 가신 것이다.
요사이 말하고 있는 지옥은 사악한 자들이 내세에서 받게 되는 영원한 벌의 상태 및 장소를 의미한다. 이는 신경에서 사용되는 의미의 단어와 다른 것이다. 거기서는 더 낮은 지역을 의미하는 라틴어를 번역한 것이다. 우리 주께서는 고성소에 가셨다. 고성소라는 말은 가장자리 혹은 경계를 의미하는데, 말하자면 천국의 밖에 있으면서 패자(敗者)의 실질적인 지옥을 포함하는 분기점을 나타낸다. 고성소에 있는 영혼들은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 그들은 거룩한 이들이므로 평안히 휴식하였다.

64. 고성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성소는 휴식의 장소로서, 그리스도 이전에 죽은 의로운 자들의 영혼이 갇혀 있었다.

65. 어째서 의로운 자들의 영혼이 고성소(림보)에 갇혀 있었는가?

의로운 자들의 영혼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천당을 열 때까지는 천당이라는 왕국에 갈 수 없었으므로 고성소(림보)에 갇혀 있었다.
의롭다는 말은 다음의 두 질문에서 거룩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66. “사흗날에 죽은자 가운데로 조차 다시 살으심”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흗날에 죽은자 가운데로 조차 다시 살으심”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사흘 동안을 묻혀 계신 후에, 사흘째 되는 날에 당신의 신성하신 몸을 다시 생명에로 일으키셨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완전히 입증된 역사적 사실이다. 네 복음서 및 성 바오로의 서간경(코린도 전 15)에서 그에 관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우리 주께서는 사흗날에 죽음에서 다시 일어나셔서 천주 성자이신 그리스도이셨음을 나타내는 위대한 증거, 즉 당신의 부활이 요나의 예표가 되리라는 것(마두 12,40)을 여러 번 미리 말씀하셨다. 게다가 당신 자신의 힘으로 일어나시리라고 예언하셨다.(요왕 10,17) 당신께서는 성 금요일 오후 약 3시경에 죽으셨다. 같은 날 저녁에 묻히시고 관헌에서는 아무도 그 시신을 옮겨가지 못하게 무덤을 봉인해 놓고 두 명의 파수 병사를 배치했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인 주일 아침에 무덤은 비어 있었다. 겁이 난 종도들이 시신을 옮긴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일어나셨다고 하는 종도들의 강론을 반박할 만한 것을 제시하지 못했으므로, 유데아의 통치자도 로마 병사도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죽음에서 일어나셨으므로 무덤이 빈 것이었다. 당신께서는 열한 번이나 여인들에게, 베드로에게, 한 번 이상 모든 종도들에게, 종도 야고버에게, 그리고 당신을 따르는 자들이 500명도 더 넘게 모여 있는 곳에 나타나셨다. 그들은 당신을 보고, 당신과 함께 말하고, 당신과 함께 먹고, 당신의 살을 만졌다. 그리하여 당신께서는 정말로 일어나셨음과, 그에 따라서 당신께서 정말로 천주 성자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셨다. 당신께서는 또 성 바오로께서 말한 것(코린도 전 15)과 같이, 당신께서 죽음에서 일어나셨음처럼 우리도 역시 신경 중의 제11요목에서 확언하는 진리, 즉 마지막 날에 일어나리라는 것도 증명하신 것이다.

67.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다시 일어나신 날은 언제인가?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주일에 죽음에서 다시 일어나셨다.
부활 주일은 주님의 부활로 인해 그리고 그에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신앙과 확신을 둘 수 있도록 주신 보증임으로 인해 매우 큰 첨례날이다. 성 바오로와 더불어 우리는, “대저 나 누구를 믿는지를 알며”(티모테오 후 1,12)라고 말할 수 있다.

68. 신경 중에서 제6요목은 무엇인가?

신경 중에서 제6요목은 “하늘에 오르사 전능 천주 성부 우편에 좌정하심을”이다.

69. “하늘에 오르사”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늘에 오르사”라는 말은 우리 구세주께서 부활하신 후 40일이 지난 승천일에 영혼과 육신이 하늘에 오르셨음을 의미한다.
우리 주께서는 당신 스스로의 능력으로써, 천주성의 능력으로써 그리고 이제는 당신의 천주성으로 말미암아 영광스럽게 되신 당신 영혼의 능력으로써 하늘에 오르셨다. 당신께서는 이미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위한 장소를 준비하시기 위해서(요왕 14,2), 성부께 대하여 우리의 중재자가 되시기 위해서(헤브레아 7,25), 그리고 당신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신을 보내 주시기 위해서 가신 것이다.(요왕 16,7)
당신의 부활과 승천 사이에 경과된 40일 동안에 성경은 우리 님께서 당신의 종도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셨음을 알려준다. 천주의 나라 사정을 강론하시고(종도행전 1,3), 그들로 하여금 해야 할 일에 대비시키시고, 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그리고 그들이 교회를 어떻게 세우고 다스려야 할 지에 대하여 더 완전한 훈계를 주신 것은 그 기간이었다. 당신께서는 그들에게 죄를 사하고(요왕 20,23) 강론하고 세를 줄(마두 28,19) 권을 주셨으며, 명령으로써 세상 극변까지 나라들을 방방곡곡 가르치도록 언약하셨다. 또 당신을 대신하여 당신 양떼의 목자, 착한 목자가 되도록 성 베드로를 당신 교회의 우두머리로 지정하셨다.(요왕 21,15-17)

70. “전능 천주 성부 우편에 좌정하심”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능 천주 성부 우편에 좌정하심”이라는 말은, 당신께서는 영이신 고로 천주 성부께 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천주로서는 성부와 대등하시고 사람으로서는 천당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천주로서 모든 면, 능력, 존엄성, 영원성, 천주성에 있어서 성부와 대등하시지만, 사람이 천주와 대등하지 못하므로 사람으로서는 성부와 대등하시지 않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천주이면서 사람이시므로, 사람으로서는 천당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계시다. 만찬에서 주인은 가장 중요한 손님을 자신의 우편에 앉힌다. 천당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성부 우편에 앉으셔서 최고의 영예와 축복을 누리실 뿐만 아니라 사람 및 천사들 위에서 천주의 왕다운 권위를 함께 나누신다.

71. 신경 중에서 제7요목은 무엇인가?

신경 중에서 제7요목은 “저리로조차 산이와 죽은이를 심판하러 오심”이다.
“저리로 조차”는 말하자면, 하늘로부터이다.

72. 그리스도께서는 언제 다시 오시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날에 온 인류를 심판하러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 주께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온 인류의 심판관으로서 오시리라는 것을 미리 말씀하셨다. 예를 들면, 마두 복음 16장 27절에서는 “대개 인자 자기 성부의 영광과 천사중에 옹위하야 와서 이에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리라.” 당신께서는 장차 일어날 심판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셨다.(마두 24,30 기타 등등·마두 25,31 기타 등등) 그것이 당신의 재림이다. 당신께서는 사람을 구해 주시기 위해 강생하셨다. 당신께서는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 세상 극변까지 오실 것이다.

73.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실 것들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생각, 말, 행적, 해태를 심판하실 것이다.
선하고 악한 생각, 말과 행동, 그리고 해야 했지만 행하지 않은 일, 이 모두를 그리스도께서 점검하여 심판하실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범죄할 수 있는 방식 네 가지를 살펴보자.
1. 생각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은 나쁜 일을 행하지 않거나 나쁜 것을 말하지 않기만 하면, 그런 생각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잘못이다. 만일 천주께서 우리가 어떤 것을 하지 못하게 금하셨다면, 그것은 그렇게 행할 것을 생각도 못하게 확실히 금하신 것이다. 예를 들어, 훔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천주께서는 분명히 밝히시기를, “도적질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하셨다. “남의 재물을 탐치 말라”. 이는 부정한 수단으로 그것들을 가지려는 바람 혹은 의향이다. 천주께서는 사음을 금하셨지만 사음하는 생각도 역시 금하셨다. “남의 아내를 탐치 말라”. 그러므로 혹자가 누군가를 죽이려는 마음을 가졌다면, 비록 자신의 살인 계획을 이룰 기회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는 이미 생각 및 의향으로 중죄를 범한 것이다.
이는 머리 속에 떠오르는 사악한 생각이 모두 죄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 중 많은 것을 피할 수 없다. 그것들은 우리의 의지를 거슬러서 들어오고 때로는 의지를 거슬러 계속 남아 있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닥쳐 올 때, 기도문을 염하고 우리의 마음을 착하고 유익한 생각에로 돌림으로써 자신에게서 그것들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또 없애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생각으로써는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나쁜 생각이 우리의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저항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계속 생각한다면, 생각으로써 죄를 범하는 것이다. 만일 생각이 매우 악한 것이고 완전히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승낙하는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안다면, 대죄이다. 그러나 만일 생각이 그리 악하지 않거나 혹은 그 자체로는 악하지만 그것에 대해 극히 일부만 승낙한다면, 그냥 소죄 혹은 가벼운 죄이다.
2. 말로써. 즉, 말하지 말도록 금지된 것을 말함으로써이다. 예를 들면, 분노의 말, 남의 평판에 손해를 주는 말, 거짓말, 불법한 맹세, 부도덕한 이야기.
3. 행위로써. 즉, 도적질, 술에 취함, 부도덕한 행위, 기타 등등과 같이 나쁜 행동.
4. 태만함으로써. 천주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것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도록 명령도 하셨다. 우리 자신의 결함으로써 그것들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의무를 소홀히 하여 해태의 죄를 범한 것이 된다. 만일 아버지 되는 이가 자신이 받은 임금을 술을 마시는 데 다 탕진하여 자기 가정 및 가족을 소홀히 한다면, 그는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태만히 한 것이다. 거듭 말하건대, 만일 어떤 이가 주일에 건강한데도 미사에는 가지 않고 그냥 잠만 잔다면, 태만함으로써 범죄하는 것이 된다. 역시 어떤 이가 자신의 채무를 갚지 않는다면, 그는 공의에 대한 의무를 충족시키기를 태만히 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타 등등이 있다.

74. 그리스도께서는 사악한 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실 것인가?

그리스도께서는 사악한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것이다. “앙화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악신을 위하야 예비한 영원한 불로 가라.”
최후의 심판에 대한 우리 주님의 설명(마두 25,41)으로부터 인용된 그 말씀에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그들은 다음 질문에서 인용될 말씀과는 정 반대 편에 있는 셈이다. 착한 자들에 대해 그리스도께서는 “오라”고 말씀하시고, 사악한 자들에 대해서는 “가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리고 말씀에서 보여주시듯 환영 및 거절은 되돌릴 수 없다. 악한 자들은 영원한 벌을 받으러 갈 것이며 의로운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러 갈 것이다.(마두 25,46) 우리 주께서는 천주께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악마 및 배반한 천신을 위해서 지옥을 창조하셨노라고 알려 주신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고 또 양심으로써는 천주께서 부과해 주신 윤리법을 안다. 그 법을 어겨 의식적인 배반 상태에서 죽는다면, 그 배반에 관한 형벌을 면치 못하게 되어 스스로 지옥으로 가는 운명이 된다. 영벌(永罰)이라는 그렇듯 겁나는 사실에 직면하여, 그것을 받을 만하지 않은 자는 누구든지 그 벌을 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기억하자. 천주께서는 무한히 의로우시다. 그러므로 당신의 본성으로 말미암아 천주께서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그 공적에 넘치게 벌하지 못하신다. 착한 삶을 산다면 우리에게는 불멸하는 영혼의 멸망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75. 그리스도께서는 의인들에게 뭐라고 하실까?

그리스도께서는 의인들에게 “내 성부의 강복하신 자들아 세상 배포할 때부터 너희를 위하야 예비한 나라를 와서 차지하라.”(마두 25,34)
여기서 우리 주께서는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우리 인류에게는 지옥이 아닌 왕국, 곧 천당이 예비돼 있었노라고 말씀하신다. 천당은 우리가 영원히 천주와 더불어 있게 될 행복한 가정이다. 그러나 지옥에 갈 만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라도 그 곳에 가지 않을 것과 마찬가지로, 천당에 갈 만한 공로가 없는 자는 어느 누구도 그 곳에 가지 못하리라. 우리는 천당으로 향한 길을 가야 할 것인즉, 그 곳에 이르는 길 오직 하나는 우리가 생각해 내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만든 대로의 길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정해 주신 길이어서 제대로 된 길이다.

76. 마지막 날 뿐만 아니라 임종시에도 모두가 심판을 받게 되는가?

마지막 날 뿐만 아니라 임종시에도 모두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마치 사람이 다만 한 번 죽고 그 후에 심판이 있는 것이 정하여졌음 같이.”(헤브레아 9,27)
죽음과 함께 사람의 귀양 시기는 끝난다. 우리 주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죽음은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다.(요왕 9,4) 더 이상의 기회가 없는 것인즉, 임종시에 사람의 운명이 정해진다. 죽으면 곧 바로 그리스도께서 그 죽은 자리에서 심판을 내리신다. 이는 천주와 한 영혼 사이에서 이루어지므로 사심판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일생 중 마지막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우리의 영원이 그것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생활하면서 얼마나 자주 그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여 잘 대비하고 있는가!
먼젓번 질문에서 이야기했던 다른 심판은 공심판이라고 불린다. 그 심판에서는 온 인류가 함께 있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우리 몸이 죽음에서 일으켜져서 인간으로서 심판을 받을 것이며, 살아 있는 동안의 선행 및 악행에 대해서 영혼의 짝인 우리 몸은 승리 아니면 죄의 선고에 대해서도 그 짝이 될 것이다. 공심판은 우리에게는 그토록 자주 걸림돌로 여겨졌던 천주의 처사가 얼마나 정당한지를 증명할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를 분명하게 밝힐 것이요, 지상에서 억눌리고 박해받았던 착한 자와 사람들을 불의하게 지배함과 아울러 영광을 누렸던 악한 자 사이의 형평을 회복시킬 것이다. 그 심판은 지상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77. 신경 중에서 제8요목은 무엇인가?

신경 중에서 제8요목은 “나 성신을 믿으며”이다.

78. 성신은 어떤 분인가?

성신은 성 삼위일체 중에서 제3위이다. 이는 질문 25-28번에서 벌써 설명하였다.

79. 성신은 누구에게서 발하시는가?

성신은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발하신다.
성 바오로는(로마 5,5) 우리의 마음 안에 천주께 대한 사랑을 놓아주시는 분은 바로 성신이라고 말한다. 성신께 할당된 그 활동은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발하시는 본질을 꿰뚫게 해 주신다. 그것은 사랑의 발현으로, 결국 제3위인 성신이 될 수밖에 없는 성부와 성자의 상호간의 사랑이 그토록 친밀하고 놀라운 것이다.

80. 성신은 성부 및 성자와 대등한가?

성신은 성부 및 성자와 대등한즉, 성신은 성부 및 성자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주님이면서 천주이시기 때문이다.
성자께서 성부와 및 성부와 성자에게서 비롯된 성신으로부터 오셨다고는 하나, 모든 위격이 다 한 가지로 서로에 대하여 대등하다 함은 성 삼위일체의 신비에 관한 부분이다. 이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 하나이신 서로와 구별되어 있으면서도 똑같이 무한하신 천주이시므로 그렇다.

81. 성신께서 종도들 위에 강림하신 때는 언제인가?

성신강림주일에 성신께서 불같은 혀의 형상이 흩어진(종도행전 2,3) 형태로 종도들 위에 강림하셨다.
우리 주께서는 수난을 당하시기 전에,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에 성부와 당신께서 종도들 위에 성신을 보내 주시리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 당신께서는 성신강림주일 혹은 승천 후 열흘 후인 오순절에 당신의 약속을 채우셨다. 종도들이 복음을 강론할 능력을 받고 있음을 실제로 보여 주시기 위해서 성신께서 혀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것이며, 종도행전 2장 5-12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종도들이 모든 나라에 강론하고 또 그러한 목적으로 언어의 은혜를 받고 있었음을 의미하도록 혀가 흩어져서, 그들이 비록 자기 나라의 말로 강론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나라 사람들은 각자 자기네 말로 즉시 알아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또 종도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우리 주님 자신이 세상에 불을 놓으러 오셨으니 불붙는 것 외에 원하는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 불(루가 12,49), 즉 천주께 대한 사랑의 불을 놓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불혀의 모양이었다.

82. 성신께서는 어째서 종도들 위에 강림하셨는가?

성신께서는 저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시기 위해서, 저들을 성화시키시기 위해서, 그리고 저들이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종도들 위에 강림하셨다.
성신께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종도들 위에 강림하셨다. (1) 저들을 신앙으로써 견고케 하시기 위해서, 즉 우리 주께서 미리 말씀하시고(예를 들어, 마두 10,17) 종도행전에서 말한 대로 저들이 고통을 당하고 죽기까지 그것을 지키게 하시기 위해서 강림하셨다. (2) 저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천주께 대한 무한한 사랑을 주시며, 저들이 장차 겪게 될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용기와 항구함을 주시기 위해서 강림하셨는데, 종도행전에서 알 수 있듯이 종도들에게 있어서 성신강림의 효과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3) 저들이 그리스도를 강론하고, 다른 이를 성화시키며, 교회를 세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종도들 위에 강림하셨다. 흩어진 혀의 현상은 순간적이었다. 그러나 성신께서는 그대로 숨어 계시며, 교회 안에서 실제로 작용하고 계신다. 우리 주께서는 성신께서 바라글리도, 즉 옹호자이면서 위로자로서 영원히 당신의 자리를 차지하시리라는 것을 말씀하셨다.(요왕 14,16) 성신께서는 진리의 신이신 까닭에 종도 및 그 후계자들에게 모든 진리를 가르쳐 주리라고 하셨다.

83. 신경 중에서 제9요목은 무엇인가?

신경 중에서 제9요목은 “거룩하고 공번된 회와 모든 성인의 서로 통공함”이다.
즉, 나 거룩하고 공번된 회, 기타 등등을 믿는다.

84. 공번된 회란 무엇인가?

공번된 회란 모든 신자가 하나의 머리 아래 일치하는 것이다.
이제 신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목에 이르렀다. “나 거룩하고 공번된 회를 믿는다”고 말할 때에는, “나는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하나인 참된 교회이므로 내 영혼을 구하고 싶으면 그 교회에 속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극히 중요한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는 어떤 것인가?”이다. 어느 마을에서든지 숭배 장소를 많이 볼 수 있다. 천주교회, 성공회, 감리교 그리고 기타 등등이 있다. 우리 주께서 오늘날 이 땅에 돌아오신다면 그들 중에서 어떤 것을 당신의 것으로 인정하실까? 여러 비가톨릭 교도들은, 자기들만이 하나인 공번된 교회이므로 주께서 자기네만을 인정하실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오직 하나인 교회, 즉 우리 것을 인정하시리라고 단언하는 바이다. 우리가 그렇게 단언하는 이유는 교리문답의 이번 질문 및 다음 질문에 자세히 설명돼 있다.
이번 질문에 대한 답에는 주의해야 할 요점이 세 가지 있다. 교회는 일치, 즉 볼 수 있는 회이다. 우리 주께서는 그것을 천국(마두 4,23·13,24), 산상에 세운 읍내(마두 5,14)라 이르셨다. 당신께서는 그것을 양떼(요왕 10:16)에 및 나무가 되는 겨자씨 한 알(마두 13,31·32)에 비유하셨다. 성 바오로는 교회를 한 몸(예를 들어, 코린토 전 12,13), 그리스도의 몸(예를 들어, 코린토 전 12,27)이라 하셨다. 우리 주께서는 종도들을 파견하시되 베드로를 저들의 머리, 즉 당신 교회의 지배자로 삼으시고, 저들을 강론하여 성세성사라는 외형적인 예식으로써 구성원들을 교회 안으로 모아 들이게 하셨다.
이것이 모든 신자들, 즉 믿는 자들의 일치로, 믿는 자들이란 자기네 마음대로 그리스도의 몇 가지 교리만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당신께서 명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를 믿는 사람들을 말한다.(마두 28,20)
그것은 하나의 머리 아래에서 일치하는 것이다. 모든 사회에는 그것을 지배하고 인도하는 머리가 있으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는 깨질 것인즉, 왜냐하면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을 취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상식이다. 우리 주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위해 머리를 주셨으니 그로써 그 안정성을 보장함과 동시에 다음 질문에서 분명히 밝혀 줄 것과 같이 당신의 참된 교회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는 데 필요한 쉬운 방법을 주셨다.

85. 천주교회의 머리는 누구인가?

천주교회의 머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천주교를 세우셨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천당에 계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볼 수 없고, 그리스도와 이야기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께 의논드릴 수도 없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볼 수 있는 당신의 교회에는 다른 모든 볼 수 있는 회와 마찬가지로 이 곳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 기능을 실행하기 위한 머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 주께서는 그런 볼 수 있는 머리를 정해 주셨다.

86. 교회에는 지상에서 볼 수 있는 머리가 있는가?

교회에는 지상에서 볼 수 있는 머리, 즉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로마의 주교가 있다.
대리자는 다른 이의 자리를 보충하여 그 다른 이를 위해 직책을 이행하는 사람이다. 답은 로마의 주교인 교황이 그리스도의 권위로 말미암아 및 당신의 이름으로 교회의 우두머리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교황이 교회의 볼 수 있는 머리라는 증거는 다음 두 질문에 주어져 있다.

87. 어째서 로마의 주교가 교회의 머리인가?

로마의 주교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도록 지정하신 성 베드로의 후계자인고로 교회의 머리이다. 이 답은 다음 질문에서 함께 설명될 것이다.

88. 그리스도께서 성 베드로가 교회의 머리가 되도록 지정하셨음을 어떻게 아는가?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 또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나 이 반석 위에 내 성교회를 세울 것이매 지옥문이 처 이기지 못하리라. 나 또 네게 천국 열쇠를 주리니”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성 베드로가 교회의 머리가 되도록 지정하셨음을 안다.(마두 16:18·19)
영문으로 된 것을 볼 것 같으면, 영어로는 베드로와 반석이 아주 다른 말인 것처럼 보이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의 위력을 온전하게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반석을 의미한다. 그러니 우리 주께서 진정으로 말씀하신 것은, “너는 반석이라. 이 반석 위에”(즉, 너 베드로 위에)였다. “나 내 성교회를 세울 것이다”. 우리 주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건물에 비유하시고, 그것은 반석(베드로) 위에 세워진다고 하셨다. 다른 구절(마두 7,24-25)에서 우리 주께서는 반석 위에 집을 지어서, 폭풍우가 와도 그것이 반석 위에 세워졌으므로 집이 무너지지 않는 지혜로운 자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렇게 교회는 계속 서 있을 것이다. 지옥 문(다시 말해서, 그 세력)도 그것을 쳐 이기지 못할 것이다. 반석인 베드로로 인하여 어둠, 오류, 그르침들은 교회에 대해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이미 보았듯이 교회는 사회이다. 그리고 어느 사회에든지 그것에 안정성과 힘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문한다면, 틀림없이 사회를 지탱하고 유지하는 지배 권위라고 대답할 것이다. 지배자가 없으면 사회는 분열하게 된다. 그러므로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세우심으로써 우리 주께서는 실제적인 사실로써 그를 당신 교회의 최고 지배자로 삼으셨다.
우리 주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천국에 비유하셨다. 그것은 하늘의 왕국이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그 천국의 열쇠를 성 베드로의 손에 맡기셨다. 신약에서 열쇠는 우리 주님과 성 베드로에게만 있도록 지정되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제 어느 장소의 열쇠를 가진다는 것은 그 장소에 대하여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벽장이 있고 그 열쇠가 나에게 있다면, 나에게는 벽장에 대한 통제력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이치로 성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심으로써, 우리 주께서는 천국에 대한 완전한 통치권을 주신 것이다.
우리 주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 우리는 성 베드로가 종도들 가운데서 최고의 권위를 실행하고 그에 따라서로 교회 위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실행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요점은 종도행전 중 1장 15절을 읽는 자라면 누구나 분명하게 알 숭 있다. 성 베드로는 성 마티아의 선출을 관장했다. 그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의장으로서 말했다. 그는 유데아 공의회 전에 및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제형들에 대하여 대표자였다. 그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두드러졌다. 아나니아와 사피라에게 벌을 준 이는 바로 그였다. 그리고 성신강림일에 유데아인을 교회 안에 들어오게 해서 처음으로 개종시킨 이도 바로 그였으며, 그 개종자는 나중에 최초의 기독교인이 되었다(고르넬리오와 그의 아내).
성 베드로는 로마에 정착했으며 거기서 서기 67년에 네로 황제에 의해 순교하셨다. 그러나 교회는 계속 존재하고 성장하였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실행한 수위권도 계속되어야 했다. 중앙의 권위가 있어야 했고 교회가 더 커질수록 그 필요성이 더욱 시급해졌다. 다른 식으로라면 교회는 다양한 인종 및 언어, 그리고 다양한 계층 및 생활에 따른 갖가지 견해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므로 분열로 향할 것이었다. 실제로 고대의 작가들은 초대 교회의 로마 주교 명단을 제공해 주는데, 모든 경우에 그들은 베드로와 함께 했던 때의 노선과 같은 노선을 걷고 있었다는 것을 전한다. 그리고 고대의 작가들은 역시 로마의 주교들에게는 베드로가 우리 주님으로부터 받았던 권능이 있었기에 한치의 어김도 없이 그들이 교회에서 최고의 주교였다는 것도 말해 준다. 로마의 주교들의 노선은 성 베드로의 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 진행돼 왔다. 그들 약 260위의 교황은 현재의 교황 비오 12세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서로 전해내려 오고 있다. 그러므로 비오 12세가 지배하는 교회는 성 베드로의 교회,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당신께서 성 베드로를 최초의 머리로 삼으신 교회이다. 이것이 로마 가톨릭 교회이며 다른 것은 없다. 그것만이 교황의 그 오랜 깨어지지 않는 노선을 통하여 그리스도께로부터 직접 비롯된 기원을 보여줄 수 있음으로 해서 오직 하나인 참된 교회이다.

89. 로마의 주교를 무엇이라 이르는가?

로마의 주교를 교황이라고 하니, 그 말은 아버지를 뜻한다.
교황은 라틴어인 파파(Papa)를 영역(英譯)한 것이다. 다음 질문에서는 로마의 주교를 어째서 교황이라고 일컫는지를 말해 준다.

90.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적(靈的)인 아버지인가?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아버지이다.
가족에 있어서 아버지는 머리이다.

91.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자이면서 교사인가?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자이면서 교사인즉, 그리스도께서는 “내 고양을 치라, 내 양을 치라”(요왕 21,15·16·17)고 말씀하시면서 성 베드로를 모든 양떼의 목자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당신께서는 또한 그의 신앙'이 결코 패하지 않도록 기도하시고 그에게 제형들을 견고케 하도록 명하셨다.(루가 22,32)
성경에서 목자의 모상은 보통 왕을 의미하는 데 사용된다. 그래서 다윗도 “내가 한 목자를 세워 주겠다. 그는 나의 종 다윗이다. 그가 내 양떼를 돌보는 목자가 되리라”였던 것이다.(에제키엘 34,24) 천주 자신은 당신 백성의 지도자로서 그들의 목자라 불리신다. “보라! 주님 야훼께서 능력을 가지고 오시는도다. 그이의 팔이 그이를 위하여 지배하시는도다....그이는 마치 목자가 자기 짐승떼를 먹이고.”(이사야 40,9-11) 따라서 우리 주께서 자신을 착한 목자라 이르실 때에는(요왕 10), 당신께서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왕이심을 의미하신 것이다. 그러니 우리 주께서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떼를 치는 직책을 주셨다면, 그것은 주께서 베드로를 당신의 백성을 다스리는 자, 즉 왕과 같이 당신의 교회를 다스리는 대표자 혹은 대리자로 삼으셨을 것임이 분명하다. 성 베드로는 지상에 있는 교회의 최고 지배자가 되었다. 우리 주께서는 성 베드로를 머리로 삼으시리라는 것과 그에게 열쇠의 권능을 주시리라는 것을 약속하셨다.(마두 16장) 결국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그 약속을 채우신다.
그리스도 착하신 목자께서 행하신 위대한 행적 중의 하나는 천주의 진리를 가르치시는 것이었다. “예수 나가사 많은 백성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심은 대저 저들이 목자 없는 양같음일새라, 비로소 많은 사정으로 교훈하시더니.”(말구 6,34)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성 베드로를 최고의 목자로 삼으셨을 때에는 그로써 당신을 대신하여 그가 백성들의 최고의 교사가 되게 하신 것이다. 이는 위의 답에서 인용된 성 루가에 의한 말씀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을 때는 당신 수난에 대한 이야기로 막 들어갔을 때였다. 지옥문이 종도들을 공격할 것이었다. 사탄이 그들의 신앙을 시험할 것이었다(속임수가 의미하는 것이 그것이다). 자신의 주인을 부인하면서 베드로의 신앙이 곧 흔들릴 것이었으며, 모든 종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죄수로 잡히시어 죽음에 부쳐지면 분개하고, 의심하며, 의기소침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주께서는 베드로의 신앙이 완전히 패배하게 되지는 않도록 기도하셨노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자신이 배반했다는 것에 대한 슬픔 속에서 그리스도께로 회두할 것이며, 회두하기가 무섭게 그는 자기 제형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는 직책을 맡는다. 베드로가 자신의 가르침과 표양으로써 그들을 신앙 안으로 인도하는 특별한 직책과 더불어 그들 모두의 머리라는 것을 의미할 수밖에 없는 말씀이다. 그러니 앞서 말한 본문으로 인해 성 베드로가 모든 이, 즉 종도 및 그리스도의 양떼 전체의 머리임이 분명하며,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의 전 교회를 지배하고 가르치는 권능과 권위를 부여받았음이 분명하다.

92. 교황은 그르칠 수 없는가?

교황은 그르칠 수 없다.

93. 교황이 그르칠 수 없노라고 말할 때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황이 그르칠 수 없노라고 말할 때에는 교황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자 및 교사로서 교회 전체가 지켜야 할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교리를 설명할 때 틀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르칠 수 없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교황이 죄를 범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과학이나 역사에 대해서 쓰는 것은 무엇이든지 꼭 참되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내가 교회의 어떤 교리에 관하여 그의 의견을 구해야 하는 경우에, 그가 나를 잘못 인도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 경우에 그는 교회의 여느 보통 주교와 같이 비공식적으로 자기 나름의 의견을 피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그가 어느 교회에 강론하러 왔다면, 그의 말에는 반드시 오류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교회의 머리로서가 아니라, 실수할 수 있는 통상적인 강론자로서 설교를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리문답에 있듯이, 교황이 그리스도의 교회 전체의 머리되는 목자 및 교사로서 말할 때에만, 그리고 어느 주어진 교리의 요점에 관해서 꼭 믿어야만 하는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온전한 권위의 힘을 빌어 공언할 때에만 그런 것이며, 그런 때에만 신앙에 반하는 것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그리스도께서 그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 천주께서 교황에게 감도(感導)케 하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교황이 잘못된 결정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실 뿐이다. 우리는 교황이 최고의 교사라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만일 그가 최고의 교사로서 행동하면서 계속해서 잘못 갈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그릇된 믿음으로 이끌릴 것이며 지옥문이 당신의 교회를 쳐 이기지 못하리라는 그리스도의 약속이 무효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천주이시므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성 베드로 및 그 후계자들이 교회가 흔들릴 수 없도록 세워진 바위 위에 있으리라는 것,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양떼를 먹여 길러 그 제형들을 견고케 하리라는 것을 보여 주는 세 가지 구절-이 모든 구절이 교황이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해 준다. 올바른 신앙은 교회에 있어서 필수 요소이다. 사람이라면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가르치시건 믿어야 하니, 따라서 당신이 가르치시는 것에 대하여 일말의 의심도 품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반석으로서 및 그 제형들을 견고케 하는 자 및 목자로서의 베드로의 직책에는 그리스도의 참된 교리를 유지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 최고의 교사로서의 직책을 실행함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오류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시지 않는다면 성 베드로 및 그 후계자들은 직책을 수행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하건대 무류성이 뜻하는 것은 그런 오류로부터의 보호이다.

94. 그리스도의 교회에는 알아 볼 수 있는 표시가 있는가?

그리스도의 교회에는 알아 볼 수 있는 네 가지 표시가 있다.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며, 공번되고, 종도로조차 전해내려 온다.
니체네 신경에서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의 네 가지 특징으로써 믿음을 단언한다. 그것들이 교회의 자격증이다. 그 네 가지 특징으로써 교회는 인간이 세운 것이고 자기네가 그리스도의 교회 혹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모든 분파와 구별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그것들을 주셨다. 그래서 그 네 가지 특징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지체는 우리 주님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가 아니다.

95. 교회가 어떻게 하나인가?

교회는 그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인 신앙 안에서 일치하여 오직 똑같은 희생 제물 및 성사를 지니고 하나의 머리 아래 모두 결합되어 있으므로 하나이다.
우리 주께서는 당신의 교회가 하나라는 것을 분명하게 단언하셨다. “또 다른 양이 있어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나 마땅히 저들을 인도하매 내 말소리를 들을 것이요 또한 한 우리 되고 한 목자 되리라.”(요왕 10,16) 당신께서는 유데아인의 양떼에 덧붙여 다른 이들, 즉 이방인들이 있음을 뜻하고 계신다. 장차 유데아인 및 이방인들이 함께 한 목자 아래에서 한 양떼를 이룰 것이다. 우리 주께서는 수난을 당하시기 직전에 그런 일치를 위해 기도하셨으며(요왕 17), 당신은 천주의 아들이시므로 그 기도는 꼭 가납될 것이었다. 교리문답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그 일치가 세 겹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1) 신앙 안에서의 일치. 우리 주께서는 당신의 종도들을 보내시되 당신이 명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모든 나라에 가르치도록 하셨다.(마두 28,20) 고르고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가르치심을 전체로--마음에 맞는 진리이건 마음에 맞지 않는 진리이건 두 가지 다 받아들여야 한다. 발길 닿는 대로 세상 어디든지 가보라. 그러면 천주교의 주교 및 사제들의 한결같은 가르침과 천주교의 하나인 믿음, 정확히 말해서 똑같은 교리를 발견하리라. 우리 사이에는 높은 교회도 없고, 넓은 교회 혹은 낮은 교회 분파도 없다. 그러나 예를 들면, 성공회에서는 얼마나 교리의 일치가 안 되는가! 어떤 성직자는 미사, 칠성사, 성모 및 성인들께 대한 신심, 연령(煉靈)을 위한 기도와 같은 천주교 교리를 거의 다 가르친다. 똑같은 교회의 다른 성직자는 그런 수계범절들을 영국 혁명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것이라 하여 거부한다. 정말로 공언된 영국 교회의 구성원들이면서도 그리스도께서 천주라는 것을 부인하기까지 하는 자들도 있다. 기본적인 교리에 대해서까지도 그런 불일치가 존재하는 교회는 참된 교회의 첫 번째 표시를 지닌다고 주장할 수 없음에 틀림없다.
2) 공동체 안에서의 일치. 다시 말해서 하나인 미사성제 및 칠성사를 거행함으로써의 일치를 말한다. 나중에 우리 주께서 그리스도인의 흠숭행위로 미사를 세우셨음과 인류의 성화를 위해 칠성사를 세우셨음을 공부할 것이다. 세계 곳곳의 천주교회에서는 하나인 미사(비록 서유럽 및 동유럽에서 다른 예식으로 봉헌되기는 해도) 및 똑같은 칠성사를 발견할 수 있다.
3) 지배의 일치. 우리 주께서는 묶고 푸는 권한을 열두 종도들에게 지정해 주심으로써, 그리고 성 베드로에게는 열쇠의 권한 및 묶고 푸는 고유의 권한을 주심으로써 그들의 머리로 삼으심을 통하여 당신의 교회에 지배의 일치를 세우셨다. 그런 지배의 일치는 그 머리로는 교황과 더불어 천주교계의 일치된 주교들 안에서 세기를 두고 계속 전해내려 왔으니, 그 결과 오늘날 4억 2천 5백만의 천주교 신자가 온갖 인종을 망라하면서도 교황을 향한 공통된 충성심으로 결합돼 있는 현상, 인간적으로는 불가해한 사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96. 교회가 어떻게 거룩한가?

교회는 거룩한 교리를 가르치고, 모든 거룩한 수단을 제공하며, 그 수 많은 자녀들의 탁월한 거룩함으로 말미암아 구별되므로 거룩하다.
교회가 거룩한 교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교리문답을 훑어 읽어보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거룩한 수단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가르침으로써 사람들 앞에 제시하는 이상적인 생활 외에도 교회에는 미사성제, 칠성사, 기도의 실천,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영신 서적, 자신을 전적으로 천주를 섬기는 데 봉헌한 남녀 수도 공동체 및 그들과 결연돼 있음과 기타 등등이 있다. 그에 따라 그토록 많은 구성원들의 탁월한 거룩함이 있는 것이다. “그들의 열매로써 그들을 알아본다”라고 우리 주께서 말씀하셨다. 이 시험을 교회에 적용시켜 보면 그 업적에서 교회가 성공했음을 발견한다. 시대를 이어서 교회에는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성인들, 정확히 말해서 그들이 천주교 신자로서의 완벽한 삶을 살았기에 완덕을 이룬 거룩한 영웅 및 성녀들이 있다. 물론 나쁜 천주교 신자들도 많이 있었다. 우리 주께서는 밀과 가라지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실 때 벌써 나쁜 천주교 신자들이 있으리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런 자들은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인즉, 교회를 통하여 제공되는 거룩한 수단을 이용하거나 적절히 사용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악한 것이다.

97. 가톨릭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가톨릭이라는 말은 공번되다는 것을 의미한다.

98. 교회가 어떻게 공번되거나 보편적인가?

교회는 모든 시대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나라를 가르치며, 모든 이를 위한 구원의 방주이므로 공번되거나 보편적이다.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는 가톨릭 혹은 보편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시대에 있어서 보편적이어야 한다. 즉, 그리스도의 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기를 통하여 존재해 왔어야 한다. 우리는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서기 597년에 성 아우구스티노를 영국에 파견하여 영국의 선조들 가운데 세운 것과 똑같은 바로 그 교회이다. 16세기의 혁명이 있기 전에 영국에 있는 모든 이는, 왕으로부터 그의 시종 중 가장 작은 자에 이르기까지 교황의 최고권을 인정하여 우리 교회에 속해 있었다.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는 또 장소에 있어서 보편적이어야 한다. 우리 주께서 당신의 종도들을 모든 나라에 파견하셨고(마두 28,19), 성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이에 유데아인이나 외교인의 (차이도) 없고 노예나 자유인의 (차이도) 없으며 남자나 여자의 (차이도) 없나니 대저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하나인 연고니라.”(갈라타 3,28) 우리 교회 어디를 보아도 그리스도교의 다른 지체의 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숫자가 더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교회는 항상 스스로에 대해서 모든 종족의 사람들을 우리 안으로 데려 오기 위해서 애쓰는 전교(傳敎)의 교회로 여겨 왔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교리, 가르침, 즉 그리스도의 교리 전체에 있어서 보편적이어야 한다. 당신께서는 국가들에게 당신이 명하신 바 모든 것을 가르치도록 종도들을 보내셨다.(마두 28,20) 그러니 참된 교회라면 모름지기 신경에 포함돼 있는 모든 것 및 천주십계에 들어있는 것을 모두 숨김없이 가르쳐야 한다. 천주교야말로 실제로 그렇게 하는 오직 하나의 교회이다.
그런즉 홍수를 당했을 적에 노아의 방주가 육체의 안전에 대한 하나의 수단이었듯이, 교회는 인류의 영혼 구원에 대한 하나의 원천이다. 때때로 우리는 천주교회 밖에서는 아무도 구원될 수 없노라고 말한다는 이유로 매우 편협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의미는 하나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일부러 가톨릭이기를 거부하는 자는 어느 누구도 구원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가 주장하는 바의 힘을 느끼기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의문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반드시 가톨릭이면서 로마적인 교회가 오직 하나인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사실을 전제로 오는 것이다. 자기 탓이 아닌 상태에서 교회의 주장을 아주 모르는 이들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교황 비오 9세가 교회의 교리를 분명하게 설명한 바 있다. “어쩔 수 없이 거룩한 우리 종교를 모르지만, 천주께서 모든 이의 마음 안에 새겨 주신 자연법의 가르침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벌써 당신께 순종하여 착하고 올곧은 생활을 꾸려 가는 자들은 당신의 빛과 성총의 도우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짐은 아는지라.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마음, 의향, 생각 그리고 성향을 분명하게 보시고 점검하시며 이해하시는 천주께서, 당신의 지고의 착하심과 자비로우심 안에서 자신의 자유 의지로 죄를 범하려 하지 않는 자는 어느 누구도 영원한 벌을 당하도록 결코 허락지 않으실 것인 연고라.”

99. 교회가 어떻게 종도로조차 전해내려 오는가?

교회가 종도들의 교리 및 성전을 굳이 지키므로, 또 그 목자들의 깨지지 않는 계승을 통하여 그들로부터 그 성직 및 임무를 물려받으므로 종도로조차 전해내려 온다.
우리 주께서는 종도들로 하여금 당신의 교회를 세우도록 파견하셨으므로,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는 종도들이 세운 것과 똑같아야 한다. 그것은 그 성직에 있어서, 즉 미사를 드리는 영적인 힘과 성사를 거행하는 자에게 있어서 종도로조차 전해내려 오는 것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 임무에 있어서 종도로조차 전해내려 오는 것이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그것에는 종도들에게 인류를 가르치고 성화시키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어떤 교회가 있어서 그것이 종도로조차 전해내려 오는 것인지를 어떻게 아는가? 쉬운 표시가 있다. “베드로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 성 베드로 및 베드로의 후계자로서의 교황의 수위권에 대해서 말했을 때 밝혔듯이 교황과 일치해 있는 교회는 종도들의 교회이다.

100. 교회가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그르칠 수 있는가?

교회는 신앙이나 도덕에 있어서 그르칠 수 없는 안내자이므로 교회가 신앙이나 도덕에 관해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그르칠 수 없다.
교황이 최고 권위로써 믿고 행해야 하는 바를 가르칠 때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살펴보았다. 그 답에서는 교회도 역시 그르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교회란 머리를 교황으로 하고 그 교황과 함께 있는 천주교계의 모든 주교를 의미한다. 우리 주께서는 당신의 종도들을 베드로 아래 한 몸이 되게 하셨으며, 그들에게 당신의 교회를 다스리고 가르치며 성화케 하는 특별한 힘을 주셨다. 종도들은 대대로 자기의 권한을 수행할 후계자들을 임명해야 했다. 그 후계자들은 교황 아래 있는 주교들의 몸이다. 종도 및 그 후계자들을 당신의 교리를 가르치는 교사로 세우시면서 우리 주께서는, 그들이 당신께로부터 비롯된 권위에 대하여 온전히, 한 몸으로서 가르치는 것은 반드시 옳고 참되리라는 보증을 주셨다. 우리 주님의 보증을 다음 질문에서 볼 수 있다.

101. 교회가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리스도께서 지옥 문이 쳐이기지 못하리라는 것(마두 16,18)과, 성신께서 모든 것을 교회에 가르쳐 주시리라는 것(요왕 16,16-26), 그리고 당신 자신이 세상 마칠 때까지 항상 교회와 함께 있으리라는 것(마두 28,20)을 약속하셨으므로 교회가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상의 구절 중 첫째 것은 이미 고찰하였다. 둘째 구절에서는 우리 주께서 진리의 영이신 성신이 그들에게 오셔서 그들과 함께 머무르시고 진리를 전체로 가르쳐 주시리라고 종도들에게 약속하신다. 셋째 구절에서는 우리 주께서 당신이 가르쳐주신 모든 것을 종도 및 그 후계자들이 온 나라에 가서 가르칠 때, 세상 마칠 때까지 당신의 유력한 도우심(그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이다)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신의 권위에 온전히 결합하여 가르친다는 조건 하에서 그들의 가르침의 정확성에 대해서까지도 보증해 주신 것이다. 이상의 구절들로 인하여 우리 주께서 가르치신 것을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는 교회는 그 어느 것도 당신의 참된 교회가 아님이 분명하다.

102. 모든 성인의 통공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모든 성인의 통공으로써는 천당, 현세, 연옥에 있는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그리스도 안의 한 지체인 듯 서로 결합해 있음을 의미한다.
성 바오로는 자주 교회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말한다.(예를 들어, 코린도 전 12,12·에페소 4,4) 또 인간의 몸의 각 지체가 몸 전체 및 그 각 부분에 유익하도록 함께 작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각 구성원도 역시 교회 전체 및 그 각 부분에 유익하도록 서로 돕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천주교에 속해 있는 모든 이 사이에 생활한 결합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구성원이 죽는다 하여 그들과의 통공을 모두 잃는 것이 아니다. 천당에 간 자들 및 아직 연옥에 있는 자들은 교리문답의 다음 몇 가지 질문에서 설명하는 방법으로 여전히 우리와 결합되어 있다.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들인 천주교회와, 지금 천당이나 연옥에 있는 교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조성된 결합을 성인들의 통공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통공을 이루는 세 집단은 천당에 있는 개선지회, 연옥에 있는 단련지회, 그리고 현세의 신전지회(아직도 죄악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으므로)라고 한다.

103. 현세의 신자들은 서로 어떻게 통공을 이루는가?

현세의 신자들은 서로 똑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똑같은 권위에 순종하며, 자신의 기도와 선행으로써 서로 도움으로써 통공을 이룬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모든 천주교 신자들은 똑같은 교리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선언하고 또 교황에게 순종한다. 그들은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여러 가지 종류의 선행으로써 서로 서로 돕는다. 이 모두가 그들 사이를 결합시키는 공동의 유대가 된다.

104. 천당에 있는 성인들과 어떻게 통공을 이루는가?

그들을 교회의 영광된 구성원으로서 공경함으로써 및 우리는 그들에게 기도를 청하고 그들은 우리를 위해 빌어줌으로써 천당에 있는 성인들과 통공을 이룬다.
우리 주께서는 말씀해 주시기를, “한 죄인의 회개함에 대하야 천주의 천사들 앞에 즐거움이 있으리라”고 하셨다.(루가 15,10) 천신들에 대하여 참된 것은 천당의 영광 및 즐거움을 천사들과 함께 나누는 성인들에 대해서도 역시 참된 것임에 틀림없다. 천사들과 성인들은 현세에서 어떤 것이 지나치는 것이고, 어떤 것이 우리의 영원한 구원에 있어서 실질적인 이익을 흠뻑 빨아들이는 것인지를 안다. 현세의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서로를 위해 기도해 온즉, 성 바오로는 로마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서한을 썼다. “내 형제들아, 오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또 (성)신으로부터 조차 오는 사랑을 인하야 너희들에게 간청하노니 천주 대전에 너희 기구로써 나와 함께 싸우라.”(로마 15,30) 그것은 구약에서도 똑같았다. 천주께서는 자주 모세의 기도에 따라 이스라엘인들을 치셨다. 천당에 계신 성인들께 기도를 청하는 것은 온전히 타당한 일이다. 그들은 천주의 법정에 계신 우리의 벗이므로, 기도의 힘에 있어서 현세에 계실 때보다 훨씬 강력하다.
천사 및 성인들에게 기구하는 것을 반대하여 거론되는 잦은 반론을 볼진대, 인간과 천주 사이에 그들을 두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재자이심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그들을 중재자로 삼는 것이 틀렸다고 하는 자들이 있다. 성인들이 누리는 중재의 힘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공로로부터 온다. 그들은 그리스도께로부터 떨어진 상태로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종도들에게 “나없이 너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성인들께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중재자로서 그리스도의 지위는 결코 감소되지 않으며, 성인들의 중재는 오히려 그것을 향상시킨다. 당신의 중재력은 극도로 크기 때문에 당신께는 아무런 손실을 끼치지 않으면서 그 중재자이심을 다른 이에게 나눠주실 수 있다. 어쨌든 이미 보았듯이, 성인들의 중재는 본질적으로 현세에서 서로를 위한 중재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초대 교회로부터 신자들은 프로테스탄티즘(열교 혹은 개신교 정신)이 나타나서 “성인들의 간원에 관한 천주교의 교리는 쓸데없이 고안된 것으로,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는, 오히려 천주의 말씀에 반대되는 우스운 짓이다”(39조, 22항)라고 가르치기 시작할 때까지는 이 교리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혁명가들에 대항하여 트리덴티노에서 개최된 가톨릭 주교들의 대 공의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시는 성인들은 공경과 간구함을 받아 마땅하며, 그들은 우리를 위해 천주께 기도를 드린다”고 천명하였다. 이상의 설명 가운데 어느 것이 참된가?

105. 우리는 어떻게 연옥에 있는 영혼들과 통공을 이루는가?

우리는 기도 및 선행으로써 그들을 도움으로써 연옥에 있는 영혼들과의 통공을 이룬다.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거룩하고 건전한 일이다.”(마카베오 하 12,46)
천주교회는 당신의 자비로써 고통으로부터 그들을 풀어 주시도록 천주께 청함으로써, 또 그들을 위해 우리의 선행을 드림으로써도 연옥(즉, 단련지회)에 있는 영혼들을 도울 수 있다고 가르친다. 모든 기도 가운데 가장 유효한 것은 망자(亡者)를 위해 드리는 미사성제이다. 유다스 마카베우스는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은 일만 이천 드라크마를 모아 그것을 망자의 속죄를 위한 비용으로 써 달라고 예루살렘으로 보냈다.(마카베오 하 12,43) 이후에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망자의 죄를 기워 갚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희생 제사, 즉 미사성제를 드린다. 우리는 또 대사가 부여된 기도문(대사에 관해서는 300번을 보라)을 염하기도 한다. 천주의 성총 안에서 행한 우리의 선행에는 두 가지 속성이 있다. 그들은 성총을 얻어내며 또 죄에 대한 기워 갚음을 이룬다. 그 선행의 공로는 선행을 행한 자에게 속해 있어서, 선행을 행한 자가 아무리 원해도 선행 자체를 다른 이에게 넘겨주지 못한다. 그러나 죄에 대한 기워 갚음을 넘겨 줄 수는 있으니, 연옥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영혼들을 위해 천주께 퇴에 대한 기워 갚음을 드리는 것은 고귀한 애덕의 행위인즉, 왜냐하면 그 영혼들은 스스로를 도울 수 없기 때문이다.

106. 연옥이란 무엇인가?

연옥이란 죽은 후에 영혼이 잠시 동안 자신의 죄로 인한 고통을 당하는 장소이다.
이것도 프로테스탄트(열교 혹은 개신교)의 혁명가들이 공격했던 교회의 교리 중 하나이다. 39조에(22항), 성인들의 간구와 더불어, 연옥에 대한 교리는 쓸데없이 고안된 것으로,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는, 오히려 천주의 말씀에 반대되는 우스운 짓이라고 되어 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세기 동안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의 유데아인들 사이에서 믿어져 온 진리를 부인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또 다른 예이다.(109번을 보라)

107. 어떤 영혼이 연옥에 가는가?

소죄 상태로 이승의 생명을 다하거나 혹은 죄성이 용서받은 죄로 인한 잠벌의 빚을 다 갚지 못한 영혼들이 연옥에 간다.
소죄에 관한 설명에 대해서는 질문 126번, 127번을 보라.

108. 잠벌(潛罰)이란 무엇인가?

잠벌이란 현세 혹은 내세에 끝나게 될 벌이다.
그러니 두 부류의 영혼이 연옥에 간다.
(1) 소죄로써 더럽혀진 채 천주대전에 가는 이들. 그런 영혼들은 지옥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대죄 중에 죽는 자들만이 지옥에 간다. 그렇기는 해도 소죄로써 더럽혀진 채 천주대전에 가는 이들은 직접 천당에 가지는 못한다. 구원되기는 하겠지만 아직 용서받지 못한 죄로써 더럽혀져 있으며, 부정한 것은 그 어떤 것도 거룩하기만 하신 천주의 면전에 있는 천당에 들지 못한다.(묵시록 21,27) 그러니까 천주께서는 그들에게 내세의 어딘가에서 그 죄를 속죄하여서 언젠가는 천당에 이르게 될 기회를 주실 것이다. 그 내세의 어딘가가 깨끗이 씻는 장소를 의미하는 연옥이다.
(2) 용서받은 죄로 인한 잠벌의 빚을 완전히 갚지 못한 이들. 죄에 관해서 두 가지, 즉 죄성(罪性)과 벌(罰)을 구별해야 한다. 성경에 죄의 두 가지 요소 사이의 차이를 나타내는 보기가 몇 가지 있다. 다윗 왕의 경우를 보자.(사무엘하 12,13·열왕하 12,13) 다윗이 간음과 살인이라는 큰 죄를 범함에 따라 천주께서는 그에게 예언자 나단을 보내셨다. 다음의 내용을 읽을 수 있다. “‘내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 나탄이 다위에게 이르기를, ‘주께서도 당신의 죄를 치워주시니, 당신은 죽지 않으리다. 그러나 다만 당신이 이 일로써 야훼를 능욕하였으니, 당신에게 난 아이도 꼭 죽겠나이다’.” 여기서 천주께서 다윗의 죄 중에서 죄성은 용서해 주셨지만 벌은 남아 있어서, 천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자식은 죽어야 했음을 알 수 있다. 죄는 모두 벌이라는 빚을 수반한다. 천주를 직접 거부하는(121-125번을 보라) 대죄는 그 보답으로 지옥 영벌을 받는다. 그러나 용서받은 대죄는 영벌을 받을 수 없다. 회개한 자가 지옥에서 벌을 받는다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다윗의 경우에서와 같이, 용서받은 대죄에 대해서는 겪어야 할 잠벌이 남아 있다. 소죄에 대해서도 역시 일반적으로 사죄 후에 남는 약간의 잠벌이 있다. 그러니 어딘가에서 죄에 대한 보속을 행해야 하는 것이 보통이다. 만일 현세에서 그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내세에서 행해야 한다. 천당에서는 그것을 행할 수 없으니, 왜냐하면 천당은 순전히 행복하기만 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만일 벌이 일시적인 것이면 지옥에서는 그것을 행할 수 없으니, 왜냐하면 지옥은 오로지 영벌만을 받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결국 일시적은 벌을 받을 곳은 연옥밖에 없다. 그리하여 연옥에서 용서받지 못한 소죄를 보상함에 덧붙여서 현세에서 갚지 못한 잠벌의 빚이 무엇이든지 그 잠벌을 견디는 것이다.

109. 연옥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교회의 항구한 가르침으로부터, 그리고 천주께서 모든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주시리라(마두 16,27)는 것과, 부정한 것은 그 어느 것도 천당에 들지 못하리라는 것(묵시록 21,27), 또 “만일 이 불을 견디어 내면”(코린도전 3,15) 구원되리라고 단언하는 성경의 교리로 인해 연옥이 있음을 증명한다.
이미 연옥에 대해서 말함으로써 연옥이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하여 충분한 증거를 대었다. 천주께서 초대 교회로부터의 가르침에서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해 주신 것에서 비롯된 다른 더 강력한 증거들이 있다. 최초의 그리스도인 저술가에 의한 저서 및 로마의 땅 속 묘지(카타콤이라고 알려진)에 있는 비문을 보면 그들이 연령을 위해 기도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들이 기도로써 도울 수 있는 어떤 장소에 망자(亡者)가 있다고 믿고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 그 장소가 천당일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천당에 있는 영혼은 기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옥일 수도 없다. 지옥의 영혼들은 영원히 그 곳에 있어서 기도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장소는 영혼들이 일시적으로 묶여 있는 어떤 제3의 장소, 즉 연옥임이 틀림없다.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도 그 장소에 대하여 연옥이라는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었다.
첫째로, 성경을 보면 우리 주께서 오시기 전에 유데아인의 믿음이 어땠는지를 알 수 있다. 마카베오하(12,39-46)에서 질문 105번에서 인용된 구절을 읽을 수 있다.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거룩하고 건전한 일이다”. 프로테스탄트 혁명가들은 마카베오서가 성경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망자를 위한 기도문을 가르쳤기에 그것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것은 혁명가들에게는 내키지 않는 교리를 쉽게 제거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 성서가 감도된 성경의 일부가 아니라손 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역사적이다. 그것은 망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유데아인의 풍습이었음을 알려 준다. 이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그들이 그런 기도의 가치를 믿었음에 틀림없다는 것, 그러므로 망자가 나중에 연옥이라고 불리는 장소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에서 우리 주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다. “또 누구든지 인자를 거스려 말하는 자는 사하여 주시려니와 성신을 거스려 말하는 자는 금세와 후세에 도무지 사하지 아니시리라.”(마두 12,32) 이 말씀에는 후세에 사해지는 죄가 있음이 분명하게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지옥에서는 어떤 죄도 사해질 수 없다. 지옥에서는 구속이란 것이 없다. 천당에서 용서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죄스러운 것은 그 어떤 것도 천당에 들지 못하는 연고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께서는 세 번째 해결의 실마리를 가리키신 것이니, 그것이 바로 연옥이다.
우리 주께서는 또한 천주께서 모든 이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주시리라고 말씀하셨다.(마두 16,27) 그리고 성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썼다. “대저 이는 [주의] 날(공심판 날)에 이르러 밝히 알리어지리니 대저 그 날은 불에 나타날 것이요. … 누구의 것이든 그 우에 건축된 건물로서 만일 이 (불)을 견디어 내면 그 사람은 상을 받을 것이요 만일 어떤 이의 건물이든 타버리면 그는 손해를 보리라.”(코린도전 3,13·15) 전후 관계로 보아서, 그 종도께서 기초, 즉, 그리스도의 교리를 놓았음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이들이 그 기초 위에다 건설할 것이다. 만일 그들이 건전한 교리(금, 은과 보석이라고 일컫는)를 강론한다면, 그들의 업적은 천주께서 심판하시게 될 때 인정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무익하다든지 도움이 안 되는 교리(나무, 건초, 그루터기)를 강론한다면, 그들의 사업은 천주께서 심판하시게 될 때 불태워질 것이다. 강론자는 손해의 고통을 당할 것이나 구원은 받게 될 것이다. 이는 모든 인간이 다 천주의 심판 때에 인정받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고는 해도 모두가 완전히 버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이는 벌을 치러야 하기는 하지만 구원은 받게 될 것이다. 이는 그들이 연옥에 가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두가 혁명가들이 말한 바와 같이, 연옥에 대한 교리가 천주의 말씀에 반하는 것으로 보이는가? 오히려 교리가 천주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가?

110. 신경 중에서 제10요목은 무엇인가?

신경 중에서 제10요목은 “죄의 사함”이다.

111. “죄의 사함”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죄의 사함”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의 목자에게 죄를 사하는 권(權)을 맡기셨음을 의미한다.(요왕 20,23)
죽은 자 가운데로조차 다시 살으시던 날 저녁에 우리 주께서는 당시의 종도들에게 나타나셨다. 당신께서 정말로 일어나셨음을 확신시켜 주시고자 당신의 손과 늑방의 상처를 보여 주셨다. 그리고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평안할지어다. 마치 성부 나를 보내심같이 나 또한 너희를 보내노라.” 하시고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저들을 향하여 기운을 불어넣으시며 이르시되 “성신을 받으라. 너희들이 사람의 죄를 사한즉 사하여질 것이요 사람의 죄를 머무른즉 머물러 있으리라.”(요왕 20,21-23) 주님의 말씀과 우리 주님의 행동을 주목하라. 당신께서는 종도들을 향하여 기운을 불어넣으시어, 성부께로부터 당신이 받으셨던 임무를 계속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성신의 능력을 주신다. 주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해 주시려고 오셨다. 주께서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을 가지고 바리사이들이 트집을 잡자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 의인을 부르려 오지 아니하고 오직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려 왔노라.”(루가 5,32) 그리고 복음을 통하여 살펴 볼 수 있듯이, 계속해서 죄를 사하시는 천주의 권능을 사용하셨다. 그리고는 다시 살아나신 후에 곧 하늘에 오르시고, 당신이 오셔서 행하고자 하신 인자하신 행적을 세세 대대로 전하도록 종도 및 그 후계자들을 남기시되, 인간의 죄를 그들의 보살핌 아래 두시어 사함 받을 가치가 있는지 혹은 그렇지 아니한지를 그들이 보는 바에 따라 인간의 죄를 사하든지 아니면 사하지 않든지 할 것을 준엄하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그 이후로부터 교회는 천주의 이름으로 그리고 당신의 권능 및 권위로 말미암아, 죄인들이 천주를 거슬러 범한 죄를 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도 및 그 후계자들은 잘 생각하지 않고 사해 주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의 영혼을 판별하여 저들이 사죄받을 만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사람들이 천주를 거슬러 범죄하고 자기 죄에 대하여 회개한다고 말(역자 주: 고명행위를 말함)로써 표명할 경우에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보속과 고해의 성사를 받으러 갈 때는 거듭 그리스도의 말씀을 숙고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우리 주께서 정말로 종도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사해 줄(즉, 죄인을 용서할) 권한을 주셨음을 분명하게 알았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또 사죄해 주는 데 대한 필수적인 조건, 즉 죄인이 자신이 행한 대로 고명해야 하는 것과 범한 죄에 대한 통회를 명백히 밝혀야 할 것임을 정해 놓으셨다.
교리문답은 여기서 요왕 복음 20장 23절을 가리킴으로써 교회가 고해성사를 통해서 죄를 사해 주어야 하는 권한에 대해 우선적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죄의 사함”이라는 신경 중의 글귀는 용서해야 할 교회의 전체적인 권한을 포함하며, 그에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요왕 복음 20장 23절에서 말씀하실 때 세우고 계신 고해성사뿐만 아니라 앞으로 공부할 때 보게 될 것과 같이, 원죄 및 어떤 자범죄라도 용서할 수 있는 용서의 성사인 성세성사까지도 포함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신경은 교회가 죄를 용서해 주는 권한의 범위를 총망라한다.

112. 무슨 수로 죄가 사해지는가?

주로 성세성사 및 고해성사로써 죄가 사해진다.
‘주로’라는 말을 주목하라. 성사를 샅샅이 공부해야 그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113. 죄란 무엇인가?

죄란 천주의 법에 어긋나는 생각, 말, 행위, 혹은 궐함으로써 천주를 거슬러 범죄하는 것이다.
죄가 무엇인지를 참말로 이해하는 이가 적은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들은 일이 잘못된다든지 타락한다든지 행해지지 않는 것, 기타 등등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식의 표현은 그 어느 것도 죄의 진정한 악의(惡意)가 천주를 거슬리는 범죄임을 확신케 하지 못한다. 죄의 악의에 대한 몇 가지 관념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죄가 이루어 놓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상기해야 한다.
천사들의 타락을 보자. 천사들은 단 한 가지 생각으로 죄를 범했으니, 그것은 바로 교만의 죄였다. 그 때문에 천주께서는 지옥을 만드셨고 기이한 영적인 존재, 수많은 천사들을 영원히 그 속에 던지셨다. 천사들이 그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당신과 더불어 영원토록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었다. 다시 인간이라는 종족이 아담의 죄 때문에 고통을 겪었고, 고통을 겪고 있으며, 시간이 끝날 때까지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번에는 십자가를 바라보라. 거기서 누가 손과 발에 못 박힌 채 매달려 고통과 수치 속에 죽어 가고 있는가? 바로 천주 성자,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를 위해 당신이 겪으신 고통과 죽음은 천주 보시기에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우리 천주의 고통을 숙고함으로써 그 교훈을 배우기로 힘써야 한다. 그렇듯 진지한 생각이 있어야 우리는 심사숙고하여 다시는 대죄를 범치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을 확고히 할 것이다.
교리문답에서는 죄가 천주의 법에 어긋나는 생각, 말, 행위 혹은 궐함이라고 말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네 가지 방식으로 죄를 범할 수 있는 셈이다(이는 신경 중에서 제7요목을 거치면서 설명했다. 73번을 보라).

114. 죄가 몇 가지 종류 있는가?

두 가지 종류의 죄가 있으니, 원죄와 본죄이다.

115. 원죄는 무엇인가?

원죄는 온 인류의 원조이면서 머리였던 아담으로부터 상속받은 죄의 얼룩 및 그 죄성(罪性)이다.
이 질문과 다음 질문은 질문 43번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116. 아담이 범한 죄는 무엇이었는가?

아담이 범한 죄는 금지된 실과를 먹은 불순종의 죄였다.

117. 온 인류가 원죄의 죄성과 얼룩에 물들었는가?

온 인류는 천주 성자의 공로를 힘입어 조금이라도 원죄의 죄성이나 얼룩이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녀를 제외하고는, 원죄의 죄성 및 얼룩에 물들었다.

118.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그런 특은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특은을 무염시잉모태(無染始孕母胎)라고 한다.
무염시잉모태는 어떤 사람들이 엉터리없이 추측했던 것처럼 복되신 동정녀께서 어떤 기적적인 방법으로 잉태되셨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녀에게는 다른 모든 평범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양친(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이 있었다. 무염시잉모태는 그녀의 자연적인 잉태 및 출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천주께서 그녀의 영혼을 창조하셨을 때 원죄로 오염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음을 의미한다. 그 외에 우리는 영혼에 원죄를 지니고 잉태되어서, 성세성사를 받을 때까지는 원죄에서 해방되지도 못하고 천주의 성총 및 벗됨이라는 은혜를 받지도 못한다. 마리아께는 마리아가 그 모친의 복중에 존재하시던 바로 그 순간부터 그 성총과 벗됨이 있었으니, 천주께서 그녀를 당신의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이 되도록 예비하셨던 까닭에 특은을 받으신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속하셨다. 그리고 마리아도 구속하셨다. 당신의 죽음과 수난 공로가 아니었다면 마리아는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었다. 마리아의 구속과 우리의 구속 사이의 차이를 볼 것 같으면, 우리는 일단 원죄에 물든 이후에 원죄에서 씻겨지는 반면에 그녀는 원죄를 지니는 것조차 예방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의 보기가 그 문제를 분명하게 밝히도록 도와 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빚 때문에 감옥에 가야 한다면, 그를 두 가지 방법으로 속량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이미 감옥에 간 이후에 그의 빚을 갚아 주든지, 아니면 감옥에 가기 전에 갚아 주어서 그가 감옥에 가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경우의 속량이 있는 것이다. 첫 번째 대안은 원죄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경우를 대변한다. 두 번째 대안은 마리아의 경우를 대변한다. ‘무염’이라는 말은 얼룩이 없음을 의미한다. 원죄로 인하여, 아담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천주께서 우리 모두에게 지니도록 해 주시려 했던 성총을 상실하게 되었다. 성총은 영혼의 장식품이다. 그것은 천주 보시기에 영혼을 아름답게 해 준다. 그러므로 성총이 없다는 것은 그 아름다운 장식품이 없는 것이어서 흠이 된다. 마리아는 당신이 잉태되신 첫 순간부터 성총이라는 장식품을 타고 나셨으므로, 그녀의 영혼은 흠이 없고 원죄가 없으시다.
성모의 무염시잉모태는 1854년 12월 8일에 교황 비오 9세가 선포한 천주교 신앙의 신덕도리이다. 마리아가 모든 죄, 원죄 및 본죄에서 자유로워야 함은 마리아와 사람이 되신 천주 성자의 관계의 친밀함으로써 요구된다. 마리아는 천주 성자의 모친이셨다. 천주 성자는 마리아의 살에서 살을 취하셨고 마리아의 뼈에서 뼈를 취하셨다. 성 바오로는 우리가 모두 성신의 성전이라고 말한다. 천주 성자의 인성이 비롯된 정결하신 마리아의 복중에서는 얼마나 더 그러하셨을까. 마리아는 존재하시는 첫 순간부터 거룩하신--그토록 극도로 거룩하신 직책으로 인해 거룩하신 사람이셔야 했다. 여기에다가 천주 성자께서 지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죄의 파괴 및 사탄의 지배를 멸망시키는 것이었음을 덧붙여 보라. 그럴진대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당신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모친으로 하여금 잠시 동안이나마 사탄의 지배 하에 있도록 내버려두실 수 있겠는가! 당신께서는 기적적으로 그녀의 동정성을 보호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의 영혼의 절대적인 순결도 역시 보호하지 않았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성경의 첫 머리, 아담과 하와의 죄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천주께서 사탄과 여인 사이에, 사탄의 자손과 여인의 자손 사이에 반목을 이루어 주시리라고 뱀(사탄)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창세기 3,15) 지적된 여인은 바로 이브이다. 그리고 그 구절은 타락한 천사와 인간 사이의 끝없는 적대감을 미리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여인의 자손은 승리할 것이다. 뱀의 머리가 짓밟혀져서 인간이 사탄을 패배케 할 것이다. 그 패배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임으로 해서, 그리고 인간의 사탄에 대한 저항력이 온통 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됨으로 해서, 천주께서 에덴에서 하신 말씀은 그리스도께 대한 예언적인 암시를 포함한다.
성 바오로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옛 아담이 잃었던 것을 인류에게 회복시켜 주시는 새로운 아담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교회는 옛 하와가 옛 아담의 패배를 공유했듯이 사탄을 딛고 일어서신 새 아담의 승리를 새 하와와 공유하시되, 그 새 아담의 옆에 새 하와가 계시는 것을 보아 왔다. 새 하와는 마리아이다. 그리하여 교회는 에덴이라는 낙원에서 최초의 하와에게 주신 천주의 말씀에서 더 새롭고 더 위대한 예시된 하와, 즉 당신의 아드님 곁에 계시며 당신 아드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당신 아드님의 표양을 따라 죄로 손상되지 않은 마리아를 목격하였다.

119. 본죄는 무엇인가?

본죄는 스스로 범하는 모든 죄이다.

120. 본죄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본죄는 대죄와 소죄로 구분된다.

121. 대죄는 무엇인가?

대죄는 천주를 거슬리는 중대한 죄이다.
이는 어떻게 해서라도 피해야 하는 죄이다. 그것은 천주를 직접 거슬리는 배반 행위이므로, 천주의 무한하신 주권과 착하심에 대한 직접적인 모욕이다. 대죄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1) 깨뜨리는 계명이 중대해야 한다. 예를 들면 살인을 범하는 것, 정말로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 사람의 인격을 파괴시키는 것, 몇 파운드를 훔치는 것은 중대하게 잘못하는 것이다. (2)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3) 곰곰이 생각한 후에 해야 한다. 만일 과실이 그 자체로는 중대하지 않다면, 혹은 중대하더라도 그 중대성을 깨닫지 못하거나 별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면 대죄가 아니고 소죄이다.

122. 어째서 대죄(죽을 죄)라고 하는가?

영혼을 죽여서 마땅히 지옥에 가게 되므로 대죄라고 한다.
‘죽을’이라는 말의 뜻은 ‘죽게 된’이다. 예를 들어서, 죽을 정도의 부상자는 죽게 된 사람이다.

123. 대죄는 영혼을 어떻게 죽이는가?

대죄는 영혼의 초자연적인 생명인 상존성총을 빼앗음으로써 영혼을 죽인다.
교리문답 첫 머리에서 영혼이 불멸한다는 것을 알았다. 즉, 그것은 결코 죽을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는 대죄가 영혼을 죽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답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여기서 죽인다는 것은 영혼의 평범한 생명을 언급하는 게 아니다. 대죄 중에 있는 영혼은 계속해서 존재한다. 그러나 성총으로 말미암아 영혼에는 그 자연적 생명에 덧붙여진 제2의 생명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초자연적 생명이라고 한다. 그것은 천주를 섬김에 있어서 단순히 자연적인 능력만으로는 발휘할 수 없는 생명력을 준다(138번과 139번을 보라). 대죄는 영혼에게서 성총을 몰아낸다. 그에 따라서 그 초자연적 생명력이 파괴되며, 그런 의미에서 영혼을 죽인다고 하는 것이다.

124. 대죄에 떨어지는 것은 중대한 악인가?

대죄에 떨어지는 것은 가장 중대한 악이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 중에 그 어느 것도 천주의 사랑과 우정에 비할 수 없다. 대죄로 말미암아 천주의 우정을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대죄는 악 중에서도 가장 크다. 게다가 다음 질문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대죄 중에 죽는 이들은 영원히 지옥으로 갈 것이다. 그들은 결코 천당에서 천주와 함께 있지 못할 것이다. 천당을 잃음은 우리에게 닥칠 수 있었던 불행 중 최대의 불행이다.

125. 대죄 중에 죽는 이들은 어디로 가는가?

대죄 중에 죽는 이들은 영원히 지옥에 갈 것이다.
대죄는 천주의 무한하신 주권에 대항하는 직접적인 배반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손상된 개인의 존엄성 및 사랑과 봉사를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범죄의 중대함을 측정한다. 그러므로 천주의 무한히 착하심을 직접 모욕하는 것은 그것에 대하여 무한한 죄를 범하는 것이다. 벌은 범죄에 걸맞은 것이어야 함에 따라, 무한한 죄의 벌은 정의 안에서 끝이 없어야 한다.
대죄는 영혼의 초자연적인 생명을 죽인다. 그래서 죄인이 영적(靈的)으로 죽는 것이다. 만일 그가 회개의 성총을 거부하고 또 그것을 거부하면서 죽는다면, 그는 영적으로 죽은 채 죽는 것이니 천주께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된다. 결국 그에게는 이승의 생명을 마친 후에는 회개할 기회가 더 이상 없는 고로, 영원히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천주께로부터 영원히 떨어져 나가는 것은 반드시 지옥벌이다. 그러므로 죄 중에 죽는 대죄인은 반드시 지옥에 간다. 회개치 않은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그는 당연히 스스로 지옥에 가는 것이다. 그는 영원히 천주를 거부하는 것 외에는 천주께 그 어떤 선택권도 드리지 않은 셈이다.

126. 소죄는 무엇인가?

소죄는 영혼을 죽이지는 않지만, 천주를 불쾌하게 해 드리고 종종 대죄로 이끄는 범죄이다.

127. 왜 소죄라고 하는가?

대죄보다는 더 쉽게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에 소죄라고 한다.
‘가벼운’이라는 말은 ‘용서하다’를 의미하는 베니아(venia)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대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우리는 고해소에 가서 사제로부터 사죄경을 받든지, 부득이한 경우에는 상등통회를 발함과 동시에 고해소에 가겠다는 소망과 의향을 가져야만 한다(294번을 보라). 그러나 소죄에 대하여는 통회의 정을 발함이 족하다. 그러면 천주께서 즉시 용서해 주시며, 반드시 고해소에 가야 할 필요까지는 없다. 소죄를 꼭 고명하지 않아도 된다. 대죄에 대해서 살펴보는 중에, 어떤 죄가 대죄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요구된다고 말했었다. 문제가 중대하고, 그 중대성을 완전히 알았어야 하며, 그것에 대해 충분히 숙고해야 한다. 만일 문제가 중대하기는 해도 자신이 행하고 있는 것을 겨우 반만 알거나, 겨우 반만 숙고하든지 하면, 그 때에는 죄가 죽을 만한 것이 될 수 없어서 가벼울 것이다. 다시 말해서, 행하고 있는 것을 완전히 잘 알고 그에 대해 꽤 숙고한다 해도 문제가 심각하지 않으면, 그 때에도 역시 죄가 가볍다. 누군가 사소한 거짓말을 하도록 유혹을 당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그것이 죄라는 것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신중히 생각해서 말한다면 괴로움을 면할 것이다. 그런 것은 소죄이다. 그 거짓말이 어느 누군가의 인격을 파괴시키거나 혹은 그의 생계에 손해를 끼치기 위해 계산된 것이었다면 문제가 다르다. 그런 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인 까닭에 그같은 종류의 신중한 거짓말은 대죄가 될 것이다.
이전의 대답에서 소죄가 자주 대죄로 이끈다고 말했었다. 소죄는 우리의 신앙을 약화시키고 열정을 감소케 한다. 그것은 영혼 안에 있는 상처와 같다. 만일 누군가가 자기 몸의 상처에 주의를 제대로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는 쉽게 어떤 심한 질병에 감염되어서 죽을 수도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소죄에 대해 부주의하면, 유혹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져서 중대한 타락에 자신을 쉽사리 넘기게 된다. 그런 식으로 소죄들이 결국 대죄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 해도 특별히 습관적이라면, 그것들은 우리를 모종의 대죄에 떨어지기 쉽게 한다. 번개는 큰 화재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소한 도덕적 실수가 도덕적인 파멸로 이끌 수 있다.
사람들은 때때로 말하기를, “그것은 겨우 작은 죄일 뿐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소죄는 모두 천주를 거슬리는 범죄이므로, 대죄 다음으로 우리에게 가해질 수 있는 그 어떤 육체적인 악보다도 훨씬 더 큰, 가장 큰 악이다.

128. 신경 중에서 제11요목은 무엇인가?

신경 중에서 제11요목은 “육신이 다시 삶”이다.

129. “육신이 다시 삶”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육신이 다시 삶”은 심판의 날에 우리 모두가 똑같은 육신을 가지고 다시 일어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죽으면 육신과 영혼은 얼마 동안 분리된다. 영혼은 천주께 심판받으러 가서 그 행적에 따라 상을 받거나 혹은 벌을 받는다. 육신은 땅에 묻혀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먼지가 된다.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지어다.”라고 천주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셨다. 재의 수요일마다 사제가 축성된 재를 우리의 이마 위에 뿌리면서 죽음을 상기시킬 때 그 말씀이 반복된다. 그러나 세상 끝 날 공심판에 이르러 육신과 영혼은 재결합될 것이며 우리는 완전한 인간성을 지닌 상태에서 심판받을 것이다.
복음을 읽어보면 우리 주께서 여러 차례에 걸쳐 육신의 부활을 아주 분명하게 가르치셨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라자로를 죽음으로부터 일으키셨던 이야기(요왕 10장)가 있다. 성 바오로는(코린토전 15장) 주님의 부활은 곧 우리가 부활하리라는 것의 증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착한 자의 일으켜진 몸에 어떤 영광스러운 특징이 있는지를 묘사한다. 더 이상 고통을 받거나 죽음이 없을 것이다. 육신은 영광스럽게 빛날 것이며, 영혼에 완전히 종속된 상태에서 육신은 영혼의 영적인 생명력을 완전하게 공유할 것이다.
악인의 육신도 일으켜져서 영혼의 유죄 판결을 영원토록 공유할 것이다.

130. 신경 중에서 제12요목은 무엇인가?

신경 중에서 제12요목은 “영원히 삶”이다.

131. “영원히 삶”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원히 삶”은 착한 자는 천당의 영광과 행복을 영원히 누리며 살 것임을 의미한다.

132. 천당의 영광과 행복은 어떤 것인가?

천당의 영광과 행복은 천주를 영원히 뵈옵고, 사랑하고, 즐기는 것이다.
위대한 성 아우구스띠노는 “당신께서는 우리를 혼자서 만드셨나이다, 오 주여, 그리하여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쉴 때까지는 저들에게 쉼이 없겠나이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본성은 완전한 행복을 갈망한다. 이 세상의 재물은 절대로 우리의 갈망을 만족시킬 수 없다. 그중 어느 것도 완전하게 선하지 않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그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알고 있다. 그러나 천주께서는 최고의 절대선(善)이시다. 우리는 천당에서 천주를 향하여 자연적 욕구를 초월하는 방법으로 천주를 소유할 것이다. 우리는 성 요한께서 말한 대로(요왕 1,3·2) 천주를 있는 그대로 볼 것이다. 당신의 무한하신 주권 및 아름다움 안에서 얼굴을 맞대고. 성 바오로께서 말하기를(코린토전 13,12), 이 세상에서 제일 좋고 아름다운 것이라 할지라도 천주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의 아름다움에 영원히 매혹될 것이다. 더 이상 아무런 고통이나 슬픔을 겪지 않고 완전한 안식과 평화 안에서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천주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셨기에 우리는 그것이 참되다는 것을 안다. 또 현세의 생활을 하면서 어려움과 유혹을 만날 때, 그것을 생각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133. 성경에서는 천당의 행복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가?

천당의 행복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으며 마음으로 한 번도 생각지 못한 것을 천주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예비하셨나니라.”(코린토전 2,9)라고 말한다.

134. 사악한 자들도 역시 영원히 살 것인가?

사악한 자들도 역시 지옥불에서 영원히 살며 벌을 받을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불멸하므로 사악한 자들도 역시 영원히 살 것이다. 그러나 천주께서는 심판 때에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것이다. “앙화를 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속으로 가라.” 이 말씀은 사악한 자들이 이중의 고통을 영원토록 겪으리라는 것을 알려 준다. (1) 그들이 지어진 목적인 천주께로부터 떨어져 나감으로 말미암은 실고(失苦). 이는 그들의 가장 큰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다. (2) 불의 고통을 겪는 벌인 각고(覺苦). 지옥불이 일종의 진정한 불이라는 것은 우리 주께서 그것에 대해서 여러 번 말씀하셨으므로 틀림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