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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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칭 곰네였다.

어버이가 지어준 것으로는 길녀라 하는 이름이 있었다. 박가라 하는 성도 있었다. 정당히 부르자면 박길녀였다.

그러나 길녀라는 이름을 지어준 부모부터가 벌써 정당한 이름을 불러주지를 않았다. 대여섯 살 나는 때부터 벌써 부모에게 ‘곰네’라 불렀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어린애를 붙안고 늘 곰네곰네 하였는지라 그 집에 다니는 어른들도 저절로 곰네라 부르게 되었고, 이 곰네 자신도 자기가 늘 곰네라는 이름으로 불렸는지라 제 이름이 곰네인 줄만 알았지 길녀인 줄은 몰랐다. 좌우간 그가 여덟 살인가 났을 때에 먼 일가 노파가 찾아와서 그를 부름에 길녀야 하였기 때문에 곰네는 누구를 부르는 소린지 몰라서 제 장난만 그냥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자기 쪽으로 손을 벌리며 그냥 길녀야 길녀야 이리 오너라 하고 연방 부르는 바람에 비로소 자기를 부르는 소린 줄을 알았다. 그리고는 그 사람에게로 가지 않고 제 어미에게로 갔다.

“엄마, 엄마, 데 사람이 나보구 길네라구 그래. 길네가 무어요? 남의 이름두 모르고 우섭구나야…….”

어머니가 곰네를 위하여 변명하였다.

“이 엠나이! 어른보구 그게 뭐야. 엠나이두 하두 곰통같이 굴러서 곰네라구 곤쳤다우. 이 엠나이, 좀 나가 놀알!”

“히! 곱다구 곱네디 곰통 같다구 곰넬까. 곰통 같으믄 곰퉁네디.”

“나가 놀알!”

“잉우 찍!”

사실 계집애가 하두 곰같이 완하고 억세기 때문에 ‘곰’네였다. 얼굴의 가죽이 두껍고 거칠고 손과 팔의 마디가 완장하고 클 뿐 아니라, 가슴이 턱 벙글어지고 왁살스럽고, 그 목소리까지도 거칠고 툭하였다. 머리카락까지도 굵고 뻣뻣하였다. 그에게서 억지로라도 여자다운 점을 찾아내자 하면 그것은 그의 잠꼬대뿐이었다. 잠꼬대에서는 그래도 간간 갸날픈 소리며 애기를 업고 싶어하는 본능이 보였다. 그 밖에는 여자다운 점을 털끝만치도 없었다.

이름이 길녀라 하지만 길하다든가 실하다든가 한 점은 얻어낼 수가 없었다. 곱다는 곱네가 아니요 곰 같다는 곰네야말로 명실이 같은 그의 이름이었다.

젖 떨어지면서부터 농터에 나섰다. 농터라야 빈약한 것으로, 풍년이나 들면 간신히 그의 식구(아버지, 어머니, 곰네, 이렇게 단 세 사람)의 굶주림이나 면할 정도의 것이었다.

곰네가 농터에 나서면서부터는 어머니의 부담이 훨씬 줄었다. 그의 아버지 라는 사람은 농꾼답지 않은 게으름뱅이에 기력도 적은 사람이어서 보잘 여지없이 소위 망나니였다. 술이나 얻어먹고 투전판이나 찾아다니고 남의 집 여편네나 담 넘어 엿보러 다니는 사람이었다. 농사 때에는 단 내외의 살림 이라 하릴없이 농터에 나서기는 하지만 손에 흙을 대기는 싫어하고, 게다가 기운이 없어서 조금 힘든 일을 하면 숨이 차서 당하지를 못하고 게으름 꾀 만 가득 차서 피할 궁리만 공교롭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지라 아주 쉽고 가벼운 심부름 이상은 하지 않기도 하였거니와 시킨댔자 감당도 못할 위인 이었다.

대여섯 살 나서부터 농사에 어머니에게 몸 내놓고 조력한 곰네가 훨씬 도움이 되었다. 힘과 기운으로도 벌써 아버지보다 승하였거니와, 어린애답게 열이 있고 정성이 있었다.

그런지라 팔구 세 때에는 벌써 농군으로서의 한몫을 당해냈고 농사의 눈치도 어른 뜸 떠먹으리만치 열렸다.

곰네가 열세 살 난 해에 그의 게으름뱅이 아버지가 죽었다. 이 가장의 죽음도 그 집의 경제상에는 아무 영향도 없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 식구 줄었으니 그만치 심이 폈달 수도 있었다. 살아 있대야 곡식만 소비할 뿐이지 아무 도움도 없던 인물이라 없느니만 못하였다. 그래도 10여 년 살던 정이 그렇지 못하여 곰네의 어머니는 흰 댕기도 드리우고 좀 한심스러운 듯이 망연히 하늘을 우러러 볼 때도 있기는 하였으나, 생활 자체에는 아무 영향도 없었다.

눕고 먹고 귀찮게나 굴던 가장이요 가사에는 아무 도움이 없었는지라, 가 사도 여전하였거니와 인제는 제 한몫 당하는 곰네가 조력을 하는지라, 어머니로서는 훨씬 노력이 덜하게 되었다. 눈치 있는 곰네가 앞장서서 일하는 것을 어머니는 도리어 보고 있기만 할 때가 많았다.

열다섯 살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세상 보통의 처녀로서는 아뜩한 일이었다. 빚은 주는 사람이 없었으니 빚은 없었지만, 남기고 간 것이라는 것은 솥 나부랭이와 부엌 물건 두세 가지, 해진 옷 두세 벌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씻은 듯한 가난한살림에, 이 집 안의 큰 기둥 어머니까지 넘어진 것이다.

그러나 갓 나서부터 여유라는 것을 모르고 지낸 곰네는, 이 점으로는 낭패 하지 않았다. 다만 보잘것없는 밭 나부랭이지만, 그래도 그것을 얻어 부치던 것은 어머니의 면의 덕이라, 그것을 떼이게 된 것이 큰일이었다.

가을에 가서 약간의 추수하는 것을 가지고 밭 주인(밭 주인이라야 가난한 자작농이었다)을 찾아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바지 오마니 다 죽었으니 밭 다룰 사람이 없겠구나.”

이런 말이 나왔다.

“아버지가 살았으믄 뭘 하댔나요?”

곰네는 반대해보았다.

“아바진 그렇다 해두 오마니가 보디 않았니?”

“오마닌 또 뭘 했나요? 다 내가 했지.”

“그래두 체니 아이 혼자서야 농살 하나?”

“해요. 꼬박꼬박 추수 들려 놨으믄 그만이디오. 내 감당해요.”

곰네는 지금껏도 자기가 농사를 죄 맡아서 했으니만치 자기가 계속하겠다는 데 대해서 딴 의견이 있을 줄은 뜻도 안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 대해서는 걱정도 않고 대책도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한 마디 두 마디 하는 동안 좀 의심스럽게 되었다. 그 밭을 떼려는 눈치를 직각하였다.

여기 협위를 느낀 곰네는 그 땅을 자기가 보겠다고 처음은 간원하였다. 그 다음은 탄원하였다. 애걸까지 하였다.

그러나 땅 주인은 곰네의 탄원도 애걸도 모두 일소에 부치고 말았다.

“체니 아이 혼자서두 땅을 보나?”

요컨대 실력 여하를 막론하고 처녀 단 혼잣살림에는 소작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땅을 종내 떼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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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곰네는 겁을 내지 않았다.

빈궁한 중에서 나서 빈한 중에서 자란 그는 빈한이라는 것을 무서워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단칸 오막살이가 있었다. 거기 거처하였다.

이 조그마한 마을에서는 모두가 서로 아는 사람이었다. 이 집 저 집으로 찾아다녔다.

가을 추수 뒤에는 농가에서는 새끼도 꼬고 가마니도 짜고 한다.

곰네는 돌아다니면서 이런 일의 조력을 하였다. 집에 따라서는 일한 품삯으로 돈푼이나 주는 집도 있었고, 혹은 끼니나 먹이고 마는 집도 있었다.

끼니만 먹이고 말든 혹은 돈푼이나 주든, 곰네는 그 보수에 대해서는 아무 욕구도 없었고 아무 불평도 없었다. 먹여주면 다행이었다. 게다가 돈푼이라도 주면 그런 고마운 일이 없었다. 본시 충직하고 욕심이 없는 데다가 간사 한 지혜라는 것을 아직 모르는 곰네는, 남의 일 자기 일 구별할 줄을 몰랐다. 자기가 자기 손으로 착수한 것이면 모두 자기 일이었다. 누가 보건 안 보건 한결같이 열과 성으로 일하였다. 사내들은 담배도 먹고 한담도 하여 헛시간을 보내지만 곰네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아침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점심때도 그냥 일을 하면서 점심 먹고 저녁때도 캄캄하게 되기까지 그냥 일을 계속하고…… 그 위에 알뜰한 가정이 없는 그는 대개는 저녁까지도 그 집 상 귀퉁이에 붙어서 되는 대로 먹고 하였다.

삯 헐하고 일 세차게 할뿐더러 부지런히 하는 그 동리의 귀한 일꾼의 하나였다.

“곰네는 시집갈 밑천 장만하누라구 데리케 돈을 몹겠다.”

동리 여인들이 이렇게 놀려대어도 아직 시집 살림이 어떤 것인지 똑똑히 이해하지 못하는 곰네는,

“원! 시!”

하고 웃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곰네 너 어드런 새서방 얻어갈래?”

이렇게 농 삼아 물어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고 그렇다고 기뻐할 줄도 모르는 곰네였다.

새서방이라든가 시집이라든가 하는 것은 아직 곰네는 상상도 못하는 이상 한 물건이었다. 가마니를 짤 때, 새끼를 꼴 때, 사내들과 손이 마주치고, 혹은 잡고 혹은 잡히고 할 때도 옴쳐버리거나, 치워버릴 줄도 모르고, 마치 사내 사내끼리나 여인 여인끼리와 같은 심정으로 태연히 지나는 그였다.

그 생김생김이며 태도 행동이 모두 하도 사내 같으므로, 함께 일하는 사내들도 곰네만은 여인같이 생각이 안 가는 모양이었다. 어찌어찌하여 곰네를 붙안아 옮겨놓든가 얼굴을 서로 마주 댈 필요가 생긴 때라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마치 사내끼린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하였다. 곰네 자신도 역시 그런 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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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열여덟에 땟국에서도 향내가 난다 한다. 곰네도 사람의 종자라, 열여덟도 나 보였다.

다른 처녀 같으면 몰래 거울도 보고, 손에 물칠하여 머리도 빗어보고 낯선 사내 소리라도 나면 문틈으로 내다보고 싶기도 할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곰네에게는 그런 달콤한 시절은 없었다.

그래도 변한 데가 있었다.

남의 집에서 일하다가 밤늦게 혼자 쓸쓸한 제 집으로 돌아오기 싫은 때가 간간 있었다 남편이 농터에서 . 농사짓는데 점심때쯤 그 아내가 밥 광주리를 이고 어린애를 등에 달고 농터 찾아오는 것이 부러운 생각도 간간 났다. 누구가 혼사를 하였다, 누구가 상처를 하였다, 하는 소문이 귀에 심상찮게 들리는 때가 잦아졌다.

게다가 동리 여인들이,

“곰네도 시집을 가야디 않나?”

“데리다가는 체니루 늙갔네.”

하는 소리며,

“부모가 없으니 누가 혼인을 주장해줄 사람이 있어야디.”

“힘세서 새서방 얻어두 일은 세차가 잘할 테야.”

이런 소리들이 차차 솔깃하게 들렸다.

더구나 그 사이도 간간 소작 땅이라도 얻으러 가면 그 매번을 ‘처녀 혼잣 살림에 땅을 어떻게 부치느냐’는 말을 들었지만, 시재 자기가 처녀 혼잣몸이니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 단념해두었더니, 지금 다시 생각하면, 남편이라는 것을 얻으면 ‘처녀 혼잣살림’이 아니라 남의 땅도 얻어 부칠 수가 있고, 남의 땅을 얻어 부치고 그 위에 틈틈이 새끼며 가마니를 짜면 심도 훨씬 펴서 지금 단지 남의 삯일만 하는 것보다도 천승만승할 것이다.

‘서방을 하나 얻을까?’ 서방의 자격에 대하여도 아무 희망도 요구도 없었다. 농촌이니 사내로 생겨서 농사지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학식이라든가 인격이라든가 하는 것은 곰네는 그 가치는커녕 존재도 모르는 바다. 곱게 생기고 밉게 생긴 것도 전혀 모르는 바다. 사내로 서방이라는 명칭이 붙는 자면 그것만으로 넉넉하다. 그 이상, 그 이외의 것은 존재도 모르는 바이어니와 부럽지도 않고 욕심나지도 않았다.

소작 터를 얻기 위하여, 그리고 또 농사에 힘을 아우를 자를 구하기 위하여 서방이 필요하였다.

이리하여 곰네가 열여섯 살 나는 해 가을에 동리 노파의 주선으로 혼인을 정하였다. 서방 역시 곰네와 같이 혈혈단신이요 배운 것도 없고, 나이는 스물다섯이지만 아직 총각이요, 저축도 없는 대신 밭도 없고 어디서 어떻게 굴러먹던 사람인지 삼사 년 전에 단신으로 이 동리에 들어왔고, 이 동리에 들어온 이래로 지금껏 제 집이라고는 없이 이 집 윗목 저 집 윗목으로 굴러 다니면서 그 집일을 도와주는 체하면서 끼니를 얻어먹어 연명을 해오던 초라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제 집이 없으니 그리케 “ 디냈디, 에미네(여편네) 얻으면 그래두 제 몫이야 안 당하리.”

“사나이 대당부라니…… 에미네 굶길까.”

중매할 사람 혹은 조혼한 사람이 모두 이렇게 말하였다. 곰네의 생각으로도, 사내 한 사람이 더 있으면 그만치 심히 펼 것으로, 어서 성혼하면 생활이 좀 넉넉해질 것으로 믿었다.

섣달에 품삯을 셈해받아 온 한 벌 장만해가지고, 정월에 들어서 길일을 택하여 성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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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재미는 꿀과 같다 한다.

그러나 곰네에게 있어서는 생활상에고 감정상에고 아무 변화도 없었다.

혼자 자던 방에 혼자 자던 이불 속에 웬 사내 한 사람이 더 들어온뿐이었다.

신혼 첫날만은 동리 여인들이 와서 저녁을 지어주고 이부자리를 펴주었다.

남이 지은 밥을 먹고 남이 깔아준 이부자리에서 잔다는 것은 곰네의 생전 처음 당하는 경험이었다. 뿐더러 여인들은 한사코 곰네에게 못하게 하고 자기네들이 도맡아 보아주었다.

“새색시두 일하나?”

모두들 곰네를 상전이나 모시듯 서둘렀다.

그러나 그 밤을 지내고, 이튿날부터는 곰네의 생활은 옛날대로 돌아갔다.

이튿날 아침, 예에 의지하여 머리에 수건을 얹고 가마니를 짜러(좀 넓은 방이 있는) 이 서방네 집으로 가서 예대로 부엌에 들어섰더니 새색시도 이런 데를 오느냐고 단박에 밀렸다. 그래서 어떡하라느냐고 물으매,

“일감을 가지고 너희 집에 가서 알뜰한 서방님하구 마주 앉아서 주거니 받건 하믄서 일하는 게디, 서방 버려두구 이런 델 와? 그래 조반이나 지어 먹었니?”

한다. 그래서 볏짚을 한 아름 안고 제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로부터 곰네는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 집에서 하였다.

남의 주선으로 조그마한 밭도 하나 얻어 부치게 되었다.

성례한 뒤 한동안은 곰네의 새 남편은 대문 밖에는 나가본 일이 없었다.

대문이라야 수수깡으로 두른 울이지만 그 밖까지 발을 내놓아본 적이 없었다. 뜰에까지도 뒷간 출입밖에는 나가보지 않았다. 꾹 박혀 있었다. 번번 누워서 곰네의 몸만 주무락 주무락 어루만지고 있었다. 곰네가 하도 징그럽고 귀찮아서,

“이건 왜 이래.”

하며 떼밀면 그는 머쓱하여 손을 떼었다가도 다시 곧 그 동작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이 점을 어느 여인에게 하소연하였더니, 그는 씩 웃으며,

“너머 귀해 그르디. 잠자쿠 하자는 대루 하려무나. 싫을 게 있니?”

한다. 과연 차차 지나면서 보니까 그 동작이 처음에는 그렇게도 귀찮고 징그럽던 것이 어느덧 그 생각은 없어지고, 차차 멋이 들고 또 좀 뒤에는 그런 일이 그리워지고, 만약 남편이 그러지 않으면 기다려지고 하게 되었다.

정이 차차 드는 셈이었다.

곰네의 얼굴 생김은 그 이름과 같이 ‘곰’ 같아서 완하고 왁살스럽고 둘 하였다. 여자다운 데는 한 군데도 없었다. 그가 가장 기뻐서 웃을 때도 얼굴만은 성났는지 웃는지 구별을 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 얼굴에다가 그래도 남편을 대할 때는 저절로 만족한 웃음이 나타나고 하였는데 그의 웃음이 그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았다.

“여보.”

제법 여보 소리도 배웠다.

“숭늉 줄까, 냉수 줄까.”

“아아, 이렇게 갈할 땐 막걸네나 한 잔 있으믄 숙 내려가갔구만.”

“그럼 내 좀 얻어오디.”

종기종기 나가는 아내.

“에에, 소질이 났는디 기침은 왜 이렇게 나누. 숨이 딱딱 막히네.”

“선달네 아조버니네 집에서 송아질 잡았다는데 한몫 들까?”

“글쎄…….”

허둥지둥 송아지 추렴에 들려 나가는 아내.

“화기가 났는디 다리가 왜 이리 저려.”

“그럼 내 돼지 다리 하나 맡아올게.”

반년 전까지는 알지도 못하는 사내에게 곰네는 온 정성을 다 바쳤다. 아버지에게 바치지 못하였던 정성, 어머니에게 바치지 못하였던 정성을 이 길가에서 주워온 사내에게 죄 바쳤다.

이전에는 밭을 주지를 않던 소지주들도 곰네가 서방맞이를 한 뒤에는, 조금은 떼어 맡겼다. 욕심이 적은 곰네는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논밭은 생각도 내지 않고, 자기 몫에 돌아온 것만 성심성의로 가꾸었다. 거름도 남보다 후히 주었고 손질도 남보다 부지런히 하였다. 가을 조이삭이 누릿누릿 익어갈 때쯤은 곰네네 밭은 먼 발로 볼지라도 남의 것보다 훨씬 충실히 보였다.

처녀 시절에는 처녀 홀몸이라고 손뼉만한 밭 하나 못 얻어 부쳤는데 남편이랍시고 얻어 보니 그다지 힘들지 않고 하나를 얻어 부치게 되었다. 마음이 오직 직하고 근한 곰네는 이것도 남편의 덕이라 하여 감지덕지하였다.

그렇다고 남편이 밭에 나서서 일을 하든가 하다못해 김이라도 매는 것이 아니었다. 본시 몸이 약질로 농사를 감당하지 못할 뿐더러 게으름뱅이로서 농사 같은 일은 하고자 하지도 않았다.

그 위에 곰네는 남편의 몸을 극진히 아꼈다. 저러다가 탈이라도 나면 어찌 하나, 몸이라도 다치면 어찌 하나, 이런 근심으로 조금이라도 힘든 일을 애당초 남편에게 맡기지를 않았다. 게으름뱅이 남편은 맡으려고 하지도 않고 슬근슬근 아내를 돌아보고 하였다. 남편의 하는일이라고는 과즉, 아내의 손이 미처 돌지 못하여 ‘데거 좀 이리루팡가테 주소(저것 좀 이리로 던져주세요)’ 혹은 ‘나 이거 하는 동안, 요 끝을 꼭 누루구 있어요’ 하는 등의 지극히 단순한 심부름뿐이었다.

곰네의 얼굴은 못생기고 또 못생겼다. 웬만한 사내 같으면 고급 떨어진다 해서 곁에 오지도 않을 만한 추물이었다.

남편도 코 아래 눈이 두 알이나 박혔으매 아내의 얼굴이 못생긴 것쯤은 넉넉히 알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아내를 버리지 못하였다. 이 아내를 버렸다가는 평생을 홀아비로 지낼 수밖에 다시 아내를 얻을 가망이 없었다. 투전꾼(투전꾼이라 하지만 협기 있고 쾌남아형의 투전꾼이 아니요, 기신기신 투전판을 엿보다 가 개평이나 얻어먹는 종류의 투전꾼이었다)이요 위인이 덜난 위에게으르 기 짝이 없는 그의 남편이 25 년간 독신 생활(아니, 총각 생활) 끝에 어쩌다가 우연히 얻어 만난 이 처녀(곰네)는 그에게는 하늘이 주신 복이요 다시 구하지 못할 금송아지라, 얼굴 생김을 탓할 처지가 못되었다.

얼굴은 어떻게 생겼든 간에 여인은 여인이요, 옷 지어주고 밥 지어 먹이고 게다가 벌이(농사며 가마니 새끼에 이르기까지)도 혼자 당해내고 남편 되는 사람은 남편이라는 명색 하나만 띠고 지어주는 밥 먹고, 지어주는 옷 입고, 간간 용돈까지도 주며 펴주는 이부자리에서 자고, 여보 소리도 들어보고…… 이런 상팔자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었다.

몸이 튼튼하매 병나지 않고 얼굴이 못생겼으매 딴 사내 곁눈질할 걱정 없고 천성이 직하매 속기 잘하고…… 나무랄 데가 없는 아내였다. 군색한 데서 자랐으니 곤궁을 싫어할 줄 모르고 성내면 왁왁거리기는 하지만 뒤가 없고, 어려서부터 동리의 인심을 샀으니 부족한 물건은 융통할 수 있고…… 흥부의 박이었다. 배를 가르니 복만 튀어져 나왔다.

혼인한 첫해는 풍년도 들었거니와 아내의 헌신적 노력으로, 오는 해의 계량이 되고도 남았고, 겨울 동안에, 부업이라도 하면 적지 않은 저축도 남길 가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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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네 내외의 새살림은 무사하고 평온한 가운데서 1년이 지났다. 세상에서 손가락질받던 남편도 1년 동안은 꿈쩍 안 하고 근신하였다. 지어주는 밥 먹고, 지어주는 옷 입고, 시키는 대로 잔말 없이 일하고 술도 곰네가 받아다 주는 막걸리만으로 참아왔다.

이 이삼십 호 될까 말까 하는 동리에서는 곰네네 집안은 즐거운 집안으로 꼽혔다.

1년 동안의 근면의 덕으로 돈도 삼사백 냥 앞섰다.

아들도 하나 생겼다.

“사람은 디 내봐야 알 거야.”

“에미넬 얻으야 사람 한몫 된단 말이디.”

“턴덩배필이 아닝야? 그 망나니가 사람될 줄 알았나? 에미넬 얻더니 노상 서방. 구실, 애비 구실 하누라구 씩씩거리믄성 돌아가거든.”

“뭐, 에미네 잘 얻은 덕이디. 에미넷 복은 있는 사람이야.”

“아니야. 에미네두 그러티. 턴덩배필 아니구야, 그 상판대길 진저리나서 두 하루인들 마주 있을라구. 한자리에서 코 마주 대구……. 에, 나 같으믄 무서워서 하루두 못 살겠네. 가채서 보믄 가채서 볼스룩 더 왁살스럽구, 솜털 구멍 하나가 대동문통만큼씩 한 거이, 어 무서워.”

“그래두 재미난 나서 사는 걸 어떡허나. 넷말에두 안 있소? 곰보에게 정 들이구 보니 얽은 구멍마다 복이 가득가득 찼더라구. 저 보기에 달렸디.”

“그렇구말구. 아, 형님네두 그 텁석뿌리 뒤상(구레나룻 영감)하구 30년이 나 살디 않았소? 에, 퉤! 수염엔 니 안 끄렸습디까?”

“에이, 요망할 것. 남의 영감은 왜 들추니?”

“코 풀믄 수염에 매닥질하구, 수염 씻은 건건쩝절한 물을 늘 먹구 더러워! 퉤! 퉤!”

“듣기 싫다.”

“그래두 젊었을 땐 입두 마촤 봤소?”

“요곳!”

동리의 평판이었다.

동리를 더럽히던 안 서방이 여편네를 얻은 뒤부터는 딴사람이 된 듯이 단정해진 것도 평판되었거니와, 못생긴 노처녀 곰네가 서방 맞은 뒤부터는 서방에게 반하여 남의 눈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맞붙어 돌아가는 양이 더 평판되었다. 얌전하고 입 무겁던 곰네가 이렇듯 말 많고(남편 자랑이었다) 달 떠돌아갈 줄은 꿈밖이었다. 마치 열칠팔 세의 숫보기 총각 처녀가 모인 것 같았다. 노인네들의 눈에는 망측스럽게 보이리만치, 남의 눈을 기이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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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지났다.

또 반년이 지났다.

정월 중순께였다.

곰네의 남편 안 서방은 그해의 추수를 팔러 읍으로 들어갔다. 금년도 풍년이 들었거니와, 금년은 금년 소득을 죄 팔기로 방침을 세웠다. 곰네가 서둘러 주선하여 밭도 좀 더 얻어 부쳐서 소득도 전보다 훨씬 나았거니와, 곡가도 여기와 고을과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여기 소득을 전부 고을 갖다가 팔아서, 작년의 남은 것까지 합쳐서 자그마한 것이나마 제 땅을 좀 마련하고, 단경기까지는 새끼와 가마니며 누에를 쳐서 연명을 하면 새해에는 제 땅의 소득도 얼마는 될 것이다. 농사지은 것을 전부 팔고, 다른 방도로 연명을 하자면 한동안은 곤란은 하겠지만, 그 한동안만 지나면 그 뒤는 훨씬 셈이 펴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몇 해만 꿀꺽 참고 지내면 몇 해 뒤에는 지주의 자 세받지 않고도 제 것만 가지고도 빈약한살림은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동 안에 자식도 자라면, 자작농과 소작농의 두 가지로 노력만 하면 감당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곰네는 남편에게 자기네 몫의 전부를 맡겨서 고을로 보낸 것이었다.

곰네의 꿈은 즐거웠다. 남편이 고을에 갖고 간 곡식을 마음으로 계산해보고, 이즈음 이 근처에 팔려고 내놓은 땅의 값을 비교해보고, 혼자서 웃고 웃고 하였다.

“얘.”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애였다.

“우리 이제 밭 산단다. 이담에 너 크믄 다 너 줄거야. 도티? 네 밭에서 네가 농사하고, 네가 추수하구. 어서 커라, 아이구 내 새끼야.”

애를 붙안고 쭐레쭐레 춤을 추며 방 안을 이리저리로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팔려고 내놓았다는 밭도, 애를 업고 그 근처를 아닌 듯이 누차 배회하였다.

여기서 고을까지가 120리, 이틀 길이었다. 이틀 가고 하루 쉬고 이틀 돌아 오노라면 합해서 닷새가 걸릴 것이었다. 어떻게 하여 하루 지체되면 엿새가 걸릴지도 모를 것이었다.

처음의 이틀, 사흘, 나흘은 몹시 초조하게 지냈다. 아직 기한이 아니니 돌아올바는 아니지만 마음은 한량없이 초조하였다. 혹은 그 사람도 마음이 급하여 달음박질쳐 가서, 하루에 득달하고, 천행 그 밤으로 흥정이 되고 이튿날 새벽에 그곳에서 떠나 당일로 돌아오면…… 이틀이면 될 것이다. 가능성 없는 이런 몽상까지도 품어보았다. 쓸데없는 일인 줄 번히 알면서도, 돌아오는 길 쪽을 20여 리를 찬바람을 안고 갓난애를 업고 마주 나가서 한나절을 기다려보기도 하였다.

동전 한 푼이 새로운 그는 촐촐 굶으면서 끊어지는 듯이 아픈 등허리를 두드려가면서 한나절을 기다렸다. 돌아올 때는, 그 헛되이 보낸 하루를 단 몇 발이라도 새끼를 꼬았던 편이 훨씬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를 하였지만, 이튿날 하루를 쉬고(쉰대야 역시 집에서 일을 하였지만) 또 그 이튿날은 또 나가보았다. 빨리 오면 이날쯤은 올 듯도 싶었다.

그날도 역시 헛걸음이었다. 또 그 이튿날은 장수로 따지자면 당연히 올 날이라, 곰네는 물론 또 나갔다. 시장해서 돌아올 남편을 위하여, 엿을 반 근이나 사가지고 이른 새벽에 나갔다.

사람 기다리기같이 어려운 노릇은 없었다. 그사이 며칠은, 안 올 줄 번히 알면서도 진심으로 기다렸다. 이날은 당연히 올 날이므로 더 가슴 답답히 기다렸다.

“얘 아바지가 오늘 온다우.”

물동이를 이고 지나가다가 곰네의 앞에서 동이를 다시 바로 이는 여인에게 곰네는 밑도 끝도 없이 말을 붙였다.

그 여인은 물동이를 인 채로 곁눈으로 의아한 듯이 곰네를 보면서 대답도 안 하고 지나가버렸다.

그 근처 어디 우물이 있는 모양으로, 물동이 인 여인들이 연락부절로 그의 앞을 오고 간다. 그 매 사람에게 향하여 곰네는, 제 남편이 오늘 돌아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다.

야속한 해는 중천에서 서쪽으로 차차 기울었다. 기울면서 차차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다. 등에 갓난애는 추운지 악을 쓰면서 울어댄다.

“자장 자장 너 용타. 아바진 지금 말고개쯤 왔갔다. 아바지 오믄 사탕 두 주구 왜떡 두 주구. 자장자장 너 용타.”

연하여 등에 아이들 들추며 달래며 왔다 갔다 하였다.

울고 울고 울던 끝에 갓난애는 기진하였는지 울음을 멈추고 잠이 들었다.

그러나 이때는 어린애 대신으로 곰네가 통곡하고 싶었다.

아무리 짧은 해라 하지만 그 해도 벌써 산허리에 절반이 넘었다. 어린애를 업고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몸집은 혹은 동편으로 혹은 서편으로 일정하지 않았지만 눈만은 잠시도 북편 쪽 대로에서 떠나본 적이 없었다. 남편이 오려면 반드시 그 길로 해서야 온다. 지름길도 없다. 곁길도 없다. 가장 가까 운 단 한 가닥의 길이다. 그 길에서 한 때도 헛눈을 판 일이 없거늘 남편은 아직 오지 않는다.

“열 번만 더 갔다 오구.”

우물에서 가게까지 한 20여 집 거리 되는 곳을, 몇 백 번 왕복하였는지 모른다. 이즘껏 안 온 사람이면 오늘로는 올 가망이 없다. 집으로 돌아갈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돌아가려니 그래도 마음이 남아서 열 번을 더 우물까지 왕복하기로 하였다.

“더 가딤 열 번만 더.”

열 번을 더 왕복하였다. 그러고도 아무 결과도 못 얻은 그는, 통곡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고, 얼굴을 감추고, 인젠 하릴없이 제 집으로 발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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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이튿날도 안 돌아왔다. 또 그 이튿날도 안 돌아왔다. 나흘 만에야 돌아왔다.

동저고리 바람으로 옷고름이 통 뜯기고, 흙투성이가 되고 참담한 꼴이었다.

“아이구머니, 이게 웬일이오?”

“오다가 아찻고개에서 불한당을 만나서…….”

“그래 몸이나 상한 데 없소?”

“몸은 안 상했다만, 돈은 동전 한 닢 없이 홀짝 뺏겼군.”

아뜩하였다.

“몸 다틴데 없으니 다행이디. 그래 언제 그랬소?”

“…… 그저께로군.”

“그럼 그저께까진 어디 있었소?”

“아니, 그그저껜가…….”

“그 전날은?”

“그 전날이야 고을 있었디.”

“고을은 뭘 하레 사흘 나흘씩 있었소?”

“어, 춥다.”

남편은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내려 폈다.

“봉변했으믄 왜 곧 집으루 오디 않았소?”

“에, 한잠 자야겠군.”

남편은 그냥 옷을 입은 채 자리도 안 펴고 이불 아래로 들어가서 머리까지 푹 썼다.

“배고프디 않소? 찬밥밖에 밥두 없는데…….”

남편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대답도 않는다.

곰네는 기가 막혔다. 보매 상한데 없는 모양이니 그편은 마음이 놓이지만, 1년간의 정성과 커다란 희망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이 딱 기가 막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남편의 곁에 갓난애를 업고 앉아서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망연히 앉아 있었다.

지금 잃어버린 그만큼을 다시 만들려면 1년 나마를 다시 공을 들여야 하겠고, 그러고도, 풍년이 계속되고 우환이 없고, 다른 아무 고장도 없어야 할 것이다.

그 노력도 노력이어니와 과거에 들인 공과 노력이 그렇게도 맹랑히 꺾어져 나가니, 지금 같아서는 눈앞이 아득할 뿐이지, 새 용기가 생길 듯 싶지를 않았다.

무심증 한숨만 기다랗게 나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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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에는 이상한 소문 하나가 퍼졌다.

곰네의 남편 서방은 아내에게 나락을 맡아가지고 고을로 가서 팔아서 투전을 하여 홀짝 잃어버렸다. 그러고는 집에 돌아갈 면이 없어서 불한당을 만난 듯이 옷을 모두 찢고 험상스러운 꼴을 해가지고 제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을 앓는 시늉까지 하였다…… 이런 소문이었다.

그러나 하도 작고 다른 데로 통한 길이 없는 마을이라 서로 쉬쉬하여, 그 소문은 곰네의 귀에까지는 안 들어갔다 하는 것이었다.

이런 소문은 있건 말건 춘경 경기에는 또 금년의 생활을 위하여, 곰네는 남편을 독촉하여 벌에 나섰다. 금년 봄에는 빈약하나마 자처 약간을 장만하려는 것이 꿈으로 돌아간 것이 기막히기는 하나, 작년의 실패를 금년에 회수할 생각으로 더욱 용기를 돋우어가지고 나선 것이었다.

저 밭을 사리라…… 찬바람을 무릅쓰고 갓난애를 업고 몇 번을 돌본 그 밭을 먼발로 바라볼 때에 입맛이 썼다. 금년은 꼭 그보다 나은 땅을 장만하고야 말겠다고 스스로 굳은 힘을 썼다.

그러나 이 봄부터 남편의 태도가 좀 다른 데가 보였다.

일터에서 일을 하다가도 틈을 엿보아 몰래 빠져나간다. 빠져나갔다가 한참 있다가 몰래 돌아오는데, 돌아와서는 슬슬 피하지만 가까이서 맡으면 약간 술내가 나고 하였다.

“어디 갔댔소?”

아내가 이렇게 물으면 남편은,

“너머 졸려서 수수밭 고랑에서 한잠 잤군.”

하면서 사뭇 졸린다는 듯이 기지개를 하고 하였다.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곰네도 마지막에는 종내 의심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떤 날, 이날은 꼭 잡으리라 하고 눈치만 엿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 엿보노라니까 슬금슬금 눈치만 보다가 밭이랑 속으로 몸을 감추어버린다.

이랑으로 숨어서 가는 남편을 곰네는 먼발로 뒤를 밟았다. 남편은 밭골을 다 지나서 마을 어귀까지 이르러서 한번 뒤를 돌아본 뒤에 어떤 술집으로 들어가버린다.

곰네는 쫓아갔다. 울 뒤로 돌아가면 뒤뜰에 있다. 곰네는 뒤뜰로 돌아가서 낟가리 뒤에 숨어서 엿들었다. 방 안에서는 상을 갖다 놓는 소리며 술잔 소리도 들렸다. 부어라 먹어라가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계집의 소리도 섞였다.

곰네는 좀 나섰다. 안의 소리도 좀 듣고 싶었다. 그때 마침 남자의 소리로,

“떡돌에 눈코 그린 거, 알아 있니?”

계집의 소리로,

“그만두소. 안상 성나겄소.”

사내 소리로,

“이 자식아, 거기다가 아일 만들 생각이 나던?”

계집의 소리로,

“방상은 눈 뜨고 잡니까? 눈 감구야곱구미운 걸 아나? 눈 감구라도 아이만 만들었으믄 됐디.”

곰네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직한 사람은 노염도 더 크다. 잠든 애를 짚 위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양팔을 높이 걷었다. 다음 순간 문을 박차면서 안으로 뛰어들었다.

들어서는 발 아래 계집이 있었다. 계집의 머리채를 왼손으로 움켜잡았다.

그 곁에 남편이 있었다. 오른손으로 남편의 멱을 잡았다. 다른 사내는 문을 차고 도망쳤다.

“이놈의 엠나이, 뭐이 어쩌구 어째!”

계집의 머리채를 움켜잡아가지고 그것으로 남편의 이마를 받았다. 그러고는 남편의 머리를 잡아 계집의 면상을 받았다.

“그래, 떡돌에 맞아봐라.”

이름처럼 곰같이 성난 그는 곰같이 좌충우돌하였다. 약골의 남편, 술장사 계집, 모두가 이 성난 곰을 당할 수가 없었다.

“여보 마누라, 마누라…….”

“내가 떡돌이디 왜 마누라야.”

“내야 언제 그럽디까, 여보 마누라.”

여보 마누라라 불리는 것은 곰네의 생전 처음이었다. 성난 가운데 반가웠다.

“내가 떡돌이믄 넌 떡메가?”

“여보, 마누라. 내가 언제 그럽니까. 내가 우리 마누랄 왜 험굴할까?”

“방금 한건 뭐이구?”

그러나 곰의 울뚝밸은 벌써 삭은 때였다.

“마누라, 내가 하두 목이 텁텁해서 막걸레라두 한잔 할라구 왔더니 그 망할 놈들이 그런 소릴 하는구만. 나두 분해서 그놈들하구 한판 해볼래는데 마누라 잘 왔소. 어, 내 속이 시원하군.”

“흥. 이 엠나이 매 맞은 게 알끈하디.”

“그게 무슨 소리라구 그냥 한담. 자, 갑시다. 우리 당손이는 어디 있소?”

이리하여 내외는 그 집에서 나왔다.

그날은 무사히 평온하게 일이 끝장지었다.

그러나 남편의 못된 버릇은 좀체 고쳐지지 않았다. 본시 곰네와 만나기 전부터 깊이 젖었던 버릇이었다. 곰네와 만난 뒤 한동안은 스스로 근심함인지 혹은 새 아내를 맞은 체면상 억지로 참음인지 또는 새 아내가 무서워서 그만둠인지, 한동안은 못된 데 다니는 버릇이 없어졌다. 그렇던 것이 곡식을 팔러 고을에 들어간 때 우연히 또다시 접촉을 하기 시작하여서, 그 뒤에는 집에 돌아와서도 틈틈이 아내의 눈을 기이면서 그 방면으로 다녔다.

한번 술집에서 들켜서 큰 소란을 일으키고 아내를 달래서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아내를 속여서 자기는 누구 만날 사람이 있어서 잠깐 돌아가겠다고 아내를 돌려보내고 자기는 술집으로 다시 돌아섰던 것이었다. 그 뒤에도 돈만 생기든가, 안 생기면 아내의 주머니를 뒤져서까지라도 틈틈이 그 방면으로 다녔다. 그것으로 아내와 싸우기도 수없이 싸웠고, 기력이 약한 그는 싸울 때마다 아내에게 눌려서 숨을 허덕거리며 다시는 쇠아들 치고 그런 데 안 다니마고 맹세하고 하였지만, 그 맹세를 하면서도 어디 비어져 나갈 기회나 틈새를 생각하는 그였다.

그들의 살림은 나날이 빈약해가고 나날이 영락되어갔다.

못된 곳에 출입하는 도수가 잦아가면서 남편은 일손은 다시 잡지 않았다.

못된 데 출입하는 지라 돈 쓸 데가 더 많아진 그는, 어떤 때는 아내를 달래고 어떤 때는 속이고 어떤 때는 싸우고 어떤 때는 훔치기까지 해서 제 용을 썼다. 아내는 살을 깎고 뼈를 앓아가면서 일했다. 남편이 다시 일터에 나서지 않는지라 남편의 노력까지 저 혼자서 맡아서 하였다.

푼푼이 돈이 앞설 때도 있었다. 남편만 없으면 좀 앞세워놓고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돈에 대한 불가사리 남편이 등 뒤에 달려 있는지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마음이 왈왈하고도 직한 곰네는 아무리 남편을 밉다 보고 다시는 그의 말을 안 들으리라 굳게 결심하지만 남편이 들어와서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양간한 소리로 여보 마누라, 마누라, 하면 그의 굳게 먹었던 결심도 봄날 눈과 같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리고 깊이 감추었던 주머니를 꺼내 남편 마음대로 쓰라고 내맡기는 것이었다.

“내가 민해…….”

남편이 나간 뒤에 텅 빈 주머니를 만져보며 스스로 후회하고 다시는 안 속으리라고 또다시 결심하지만, 그 결심할 때조차 이 결심이 끝끝내 버티어질지 못 질지 스스로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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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 그는 고을 장에 갔다.

언제든 그의 장에 갈 때는 애초에 집에서 조떡을 만들어가지고 가서 그것으로 요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날도 집에서 남편이 하도 조르므로 돈 2원을 주고 왔다. 주기는 주었지 만 장에까지 와서 보니 아까웠다. 자기는 15전어치 떡을 사먹기가 아까워서 집에서부터 조떡을 만들어가지고 오고, 목이 메는 조떡을 물 한 모금 없이 먹는데 남편은 좋다꾸나 하고 술만 먹고 있을 생각을 하니 자기의 아끼는 것이 어리석고 헛일 같았다.

시장해 보따리를 펴고 조떡을 꺼냈다. 목이 메고 텁텁한 위에 속조차 심란하여 먹기 싫은 것을 장난 삼아 한 입 두 입 먹고 있노라니까, 무엇이 곁에서 종알종알한다. 그쪽으로 돌아보니 여남은 살쯤 난 사내애가 하나 자기더라 무엇을 청구하는 것이었다.

“무얼?”

“나 떡 하나.”

조떡을 하나 달라는 것이었다. 곰네는 어차피 자기도 먹기 싫은 위에 그 애가 매우 시장해 보이므로 큼직한 것 두 덩이를 주었다. 그랬더니 그 애는 단숨에 두 개를 다 먹었다.

“또 하나 달란?”

그 애는 머리를 끄덕끄덕하였다. 또 두 개를 내주었다. 그 애는 하나는 담숨에 또 먹었지만, 나머지 한 개는 절반만치 먹고는 더 못 먹겠는지 멈추고 만다.

“더 먹으렴.”

“아이, 배불러.”

“너 조반 못 먹었니?”

그 애는 머리를 끄덕였다.

“왜? 오마니가 안 해주던?”

“오마닌 죽었어.”

“가엾어. 아버지두 없구?”

“아바진 술만 먹다가 어디 갔는지 나가구 말았어. 나 혼자야.”

곰네는 가슴이 뭉클하였다. 등에서 쌕쌕 잠자는 아이를 황급히 앞으로 돌려 안았다. 머리를 숙였다. 자기의 머리로 사랑하는 아이의 뺨을 문질렀다.

아버지라는 것은 아이에게는 남이로구나. 술값 1원은 아까지 않되 어린애 사탕값 1전은 아끼는 자기의 남편…… 내가 살아야겠다. 내가 살아야 이 아 이가 산다. 어던 일이 있든 어떤 곤경이 있든 결단코 넘어져서는 안 된다.

내가 넘어지면 이 아이까지도 아울러 넘어진다!

“야, 당손아. 너 뭘 가지고 싶으니? 뭐 먹고 싶으니? 아무게나 네 마음에 있는 걸 말해라.”

잠자는 아이였다. 잠자는 아이를 깨워서 그 뺨을 부벼대며 물었다.

어린애는 깨면서 제 눈 딱 맞은편에 어머니의 얼굴이 있는 것을 보고 안심한 듯이 기다랗게 기지개를 한다.

“얘.”

곰네는 거지 아이를 돌아보았다.

너두 엄마 아빠 다 “없으니 오죽 궁진하고 출출하겠니. 나하구 가자. 내 너 먹구픈 거 가지구픈 거 다 사줄래 이리 오나라.”

자기의 아들을 앞으로 돌려 안아 그 보드라운 뺨에 자기의 뺨을 부벼대며, 거지 애를 달고 시장쪽으로 향하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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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