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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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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 앞 해변에는 십여 T 척 되는 어선이 닻을 언덕 위에 높이 던져두고 수풀처럼 늘어졌다. 이 어선들은 고기 잡으러 앞바다 먼 곳을 향하여 나아가려고 만조를 기다리고 있다.

이 마을 바로 앞에 끝없이 보이는 황해는 봄날 아지랑이 속에서 깊이 잠든 것같이 고요해 보였다. 다만 길게 보이는 백사장 위에서 꾸무럭거리는 사람들의 발자취 소리와 수풀처럼 늘어선 어선 안에서 무엇이라 중얼대는 뱃사람의 말소리와 바위에 부딪혀 깨어지는 물결 소리만이 봄날 황해의 곤한 졸음을 흔들어 깨우려는 듯이 시끄러울 뿐이었다.

어선 안에서 북소리가 둥둥 울려 나오더니, “물 들어온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길게 들리었다.

해변에 있던 여러 사람들은 모두 배 매인 물가로 바삐 모여들었다. 이 모여드는 사람 가운데에는 어장 주인들도 있었다. 어물을 무역하려는 상인들도 있었다. 또는 농부로서 고기잡이 한철을 어선의 품팔이꾼이 되어 일 년 동안의 농사 밑천을 장만하러 온 이도 있었다. 일평생을 두고 정한 처소가 없이, 다만 한 조각배를 집을 삼아 금일에는 충청도, 명일에는 경기도 하는 유랑 생활을 하는 선인들도 있었다. 또는 이 어촌에 집을 둔 사람으로 그들의 가족을 보내려고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이 여러 사람들 가운데에 성팔(聖八)의 처도 어린 아들 점동(點童)이를 데리고 자기 남편을 보내려 나왔다. 그의 남편은 지금 들어오는 조수에 배를 띄우고, 바다 먼 곳으로 고기잡이하러 나가려고 배를 단속하며, 모든 것을 준비하기에 바빴다. 그의 처는 배 떠나려는 남편을 주려고 먹을 것을 싼 보퉁이를 한편 손에 들었다. 그것을 든 편 어깨는 아래로 축 늘어졌다.

아들 점동은 이 지방의 고유한 악센트로

“아바!”

라고 배를 향하여 불렀다.

이 부르는 소리가 끝나자 배 안에서 검붉은 남자 한 사람이 쑥 나왔다. 흰 수건으로 테 머리를 하였다. 그리고 동여맨 머리 가운데에는 기름을 번질하게 바른 상투가 뒤로 비스듬히 누웠다. 상투 끝에는 산호 동곳이 빨갛게 보였다.

역시 특별한 악센트로

“점동이 왔냐?”

라 대답한 그의 얼굴에는 반가워하는 빛이 나타났다.

뱃전에 걸쳐놓은 판자를 타고, 그의 처와 아들이 서 있는 언덕 위로 더벅더벅 걸어갔다. 처는 손에 들었던 보자기를 그의 남편에게 주었다. 남편은 그것을 한편 손으로 받으며, 한편 손으로는 점동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더니 검붉은 얼굴에 흰 이빨을 내놓고 히히 웃었다.

“이게 무엇이야? 점동이나 주지 그런가?”

보자기를 들며 성팔은 바로 그 속에 든 것이 무엇인가를 짐작하였다. 그 안에는 남편이 시장할 때에 먹으라고 정성을 다하여 만든 것이 들었다.

그의 처는 남편의 웃는 얼굴을 처음 본 것처럼 기뻐 따라 웃으며,

“점동이 먹을 것은 집에 있으니 염려 말아요.”

라 하고, 남편에게로 디밀었다.

성팔은 그것을 받아 들고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으나, 그의 처는 이때에 중요한 것을 - 남편의 이번 뱃길에는 특별히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다.

“아그머니!”

라 혼자 중얼대며 치맛자락을 앞으로 걷어들고, 거기에 찬 주머니 속에서 조그만 장난감 같은 붉은 주머니를 하나 끄집어냈다. 그 주머니 속에는 그 해 정초에 어느 점쟁이에게서 점을 치고 얻어둔 누런 종이에 붉은 글씨로 쓴 부적이 들어 있었다. 점쟁이는 성팔의 집 식구의 신수를 다 본 뒤에 다른 사람은 다 좋으나, 성팔의 신수가 좋지 못하다 하였다. 아무리 하여도 수난의 수가 있다 하였다. 그리고 이 수난을 면하려면 용왕제를 거룩하게 지내어야 하겠다고 하였다.

처는 아무쪼록 점쟁이의 권한대로 용왕제를 지내려고 하였으나, 성팔의 집에는 그러한 여유가 없었다. 처는 더욱 이것을 섭섭히 여겼다. 그리하여 간편한 방법으로 이 수난을 면하려 하는 것이 곧 뱃길을 떠날 때에 부적을 지니게 함이었다. 이 홍낭(紅囊) 속에 든 부적은 곧 성팔의 생명을 수호할 호신부(護身符)였다. 처는 아들 점동을 불러 치마 안에 깊이 찼던 그것을 내주며,

“이것을 아빠 갖다주어라!”

고 말을 일렀다.

점동은 그의 어머니 시키는 대로 붉은 주머니를 들고 부친에게로 갔다. 성 팔은 아들이 준 것을 받아 들고, 배에 오르려던 발길을 다시 멈추고 자기 처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것이 무엇인가?”

처는 무엇이라 대답하여야 남편이 곧 알게 될까를 생각하는 것처럼,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섰다가 답하기가 좀 거북한 빛으로 대답하였다.

“그것 알아 무엇하게요……. 암말 말고 잘 간수해요. 부적이니.”

성팔은 그 주머니를 눈앞에다가 높직이 들고 쳐다보다가,

“내게 부적이 무슨 소용이 있어야지!”

라 말하고는, 흰 이빨을 내놓고 다시 히히 웃었다. 웃는 얼굴은 먼 데서 보면 그것이 웃는 얼굴인지, 우는 얼굴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여러 가지 표정이 나타났다. 그는 들고 보던 주머니를 다시 저고리 끈에 매어 차고 굽어다 보았다. 옷고름에 찬 붉은 주머니가 그에게도 부조화해 보였던지 그는 소리를 높여 크게 웃었다.

어느덧 조수는 성팔의 탄 배 밑으로 기어들었다. 다시 배와 언덕 사이까지 점령하였다. 성팔과 그 처와 아들과의 사이에는 물이 가로막혔다. 조수가 사뿐사뿐 조그마한 발자취 소리를 내고 들어올 때마다 그들 사이는 멀어졌 다. 물결이 한 번 물러갔다가 다시 들어올 때에는, 지금껏 젖지 않고 보얗 던 모래가 거무충충하게 젖어버렸다. 이와 같이 젖었던 모래는 어느덧 다시 물거품 속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이 배 저 배에서 북소리가 요란하게 들리었다. 채색 깃발은 그 배들의 돛대 끝마다 바람에 휘날리었다. 배는 삐걱삐걱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물결을 헤치는 노 젓는 소리가 들리며, 벌써 바닷가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어선들은 다시 돛을 달고 기름을 끼얹은 듯한 봄 바다 위로 달아나버렸다.

흰모래가 덮인 바닷가 언덕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사뿐사뿐 기어 올라가 던 조수도 봄날의 기나긴 해가 황해의 수평선 저편에 가까이 내려갈 때에는 육지에 대한 모든 동경을 다 버린 것처럼 한 걸음 두 걸음 옛터를 찾아 다 시 물러갔다. 물러가는 물결은 자기의 존재란 것을 이 바닷가에서 ─ 이 육 지 위에 표시하려는 것처럼 물거품과 해초 조각을 바닷가 흰모래 위에 남겨 두고 갔다. 이것은 흡사 그것을 말하는 듯하였다.

물결에 젖고 흩어진 모래가 다시 말라서 제자리에 놓이기도 전에, 따뜻한 김을 한없이 줄 듯하던 태양은 어느 동안에 검붉은 운하만을 수평선상에 남 겨두고 서쪽 나라로 돌아가버렸다.

태양이 그 열렬한 자태를 수평선 위에 감추자 T촌 앞바다에는 물결이 일기 시작하였다 동편 하늘로부터 . 어두움과 함께 이 마을을 찾아 온 구름 떼는 바다와 마을을 싸 가지고 어느 먼 나라로 가려는 것처럼 마을의 뒷산 봉우 리에서 해면을 향서 나직하게 날아 퍼졌다. 또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다. 마 을 주위에 우뚝우뚝 서 있던 나무들은 흔들리었다. 낮은 가지는 땅에 키스 할 듯이 나부끼었다. 바닷가의 바위 낭떠러지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는 더욱 높았다.

하늘이 울었다. 한 방울…… 두 방울…… 비가 떨어졌다. 어느덧 소낙비로 변하였다. 그리고 비에 젖었다. 바람과 물결의 휘파람 소리에 싸였다. 어두 움과 구름과 비바람은 이 마을을 정복하여 완전히 점령하였다.

파도와 비바람의 부르짖음과 속삭임이 마치 이 마을의 모든 생령(生靈)을 저주하는 소리처럼 들리었다. 모든 생령은 이 마을의 모든 사람은 이 저주 에 몸을 떨었다.

그들은 바다에 ─ 거친 바람, 성난 파도 가운데에 자기의 가족을 보낸…… 젊은 아내, 늙은 어버이, 어린아이들이었다.

성팔의 집도 이 저주에 빠지지 않았다.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는 집의 하 나였다. 그 처는 어린 점동과 단둘이 앉아서 그날 낮이 조금 늦었을 때에, 바다로 외로이 떠나간 남편의 신상을 적이 걱정하였다.

점동은 어머니의 걱정에 싸인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물었다.

“엄마! 왜 이렇게 바람이 분다우?”

어머니는 아들의 이런 묻는 말에 어느 아픈 상처를 주물린 것처럼 깜짝 놀 라는 빛으로 대답하였다.

“하느님 조화니까 별수 있느냐…….”

“이렇게 바람이 불어도 아빠 배는 괜찮을까?”

“괜찮지 어째…….”

이렇게 어머니는 대답을 하기는 하였으나, 실상은 남편의 안부를 몰라 태 우는 가슴에 어린 점동의 물음이 불을 더 붙이었다.

“날이 언제나 들까?”

“그야 알 수 있나. 하느님의 하시는 일이라……. 그렇지만 내일쯤은 개겠 지…….”

“그러면 이렇게 궂은 날에 아빠는 어데 가 있어?”

“배 안은 괜찮을까?”

어머니는 다시 공포에 떨었다. 그의 얼굴에는 그러한 빛이 나타났다. 아들 은 어머니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또 물었다.

“아빠 탄 배는 지금 어데 있을꼬?”

글쎄 어데 있는지 “ ! 알 수 없다……. 어느 섬으로나 들어갔으면 하겠다마 는…….”

그는 어느 곳으로든지 무사히 피난하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아들은 이러한 바람에 배가 부서지는 일이 있는 것을 잘 알았다.

“엄마, 아빠 배는 새 배니까 요까짓 바람에는 암시랑찮겠지?”

벌써 아버지의 생사가 배의 운명과 함께 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어린 그도 그 불안을 스스로 위로하고자 하여 이러한 말을 한 것이었다.

성팔의 처는 밤이 깊을수록 공포의 날카로운 화살이 불안에 타는 자기 가 슴에 꽂히는 듯한 아픔을 느끼었다.

“너는 잠이나 자려무나.”

아들에게 자라고 권하였다.

“잠 안 와……. 아빠 배는 새 배지?”

라고 또 물었다.

“배는 새 배지마는…….”

어머니는 이와 같이 중얼대다시피 힘없이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은 무엇이라고 이어 말하여야 좋을는지 알 수 없었다.

몇 해 전에 이러한 폭풍우가 이 마을을 한 번 휘덮어 간 뒤에, 그곳에 남은 것은 울음소리뿐이었던 것을 성팔의 처는 생각하였다. 오늘 밤의 폭풍우도 그때에 지지 아니할 만큼 맹렬한 것을 문 바깥의 시끄러운 소리로 넉넉히 짐작하였다.

모든 불길한 예감이 그의 가슴에서 자라갔다. 더욱 선명하게 가슴을 파고 들어갔다. 이러한 상서롭지 못한 모든 생각을 하지 않으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남편의 새로운 배가 다시 무사히 앞바다에 떠들어오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남편이 탄 배가 다시 떠들어온다는 것은 그에게 는 꿈에나 볼 수 있는 어떠한 기적을 바라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더욱이 어린 아들이 부친의 안부를 걱정하는 질문에 그의 폐장(肺臟)을 꿰어가며 스스로 위로한다는 것은 그에게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스스로 속임이었던 것이다.

그는 마음이 미칠 듯하였다. 생각나는 그대로 하면 그는 그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사나운 비를 무릅쓰고, 또 굳센 바람을 헤치고 다시 성낸 파도 우에 떠서 어두운 가운데로 남편의 배를 찾아가고 싶었다.

산과 같은 미친 물결에 낙엽과 같이 번롱(翻弄)하는 조각배에서 손을 치면 서 구원을 비는 남편의 초조하는 형상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는 또다 시 이러한 무서운 환영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감은 눈에는 더욱 분명하였다.

아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깨친 것처럼 어머니를 바라보고 말하였다.

“엄마! 암만 새 배라도 이런 바람에는 못 견디겠구만…….”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었다.

바깥에는 비바람 소리가 몹시 요란하였다.

바람이 휙휙 소리를 내면, 그 뒤에는 방문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가 박자 를 맞추는 것처럼 났다. 그리고 문틈으로 새어드는 바람결에 등잔불이 휘휘 흔들리었다. 심할 때에는 곧 꺼질 듯 가물가물하였다.

“엄마! 그때가 언제지? 그때는 이보다도 비바람이 더 몹시 불었지? 그래 도 아빠는 아무 일 없이 돌아왔지?”

“그때는 그랬다……. 오늘도…….”

성팔의 처는 지난여름에 이와 같이 비바람이 불던 날의 하룻밤을 뜬눈으로 새던 일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또 그와 같이 애태우던 이튿날 석양에 뛰어 내리는 남편을 맞을 때에 그가 마음에 어떻게 반가웠던 것을 생각하여보았 다. 그리하여 내일도 그러한 반가움을 얻기를 빌었다.

비바람 소리는 갈수록 더욱더욱 높아갔다. 성낸 파도는 이 어촌을 한 입에 삼켜버리려는 것같이 바닷가에 가까이 와서 노호(怒號)하였다.

“엄마! 저게 무슨 소리…….”

“물소리! 아이쿠, 해일이 하려나 부다!”

“아이구, 불이 꺼지려 하오…….”

휘익 문틈으로 기어든 바람이 사기 등잔의 희미한 불을 꺼버리고 말았다.

바람에 불린 빗줄기는 방문을 두들겼다. 파도의 응얼대는 소리는 악마의 저주처럼 길게 울리었다.

이튿날 석양에는 해가 비추고 바람이 잦다. 비바람이 어촌의 모든 오예(汚穢)를 하룻밤 동안에 다 씻어간 것같이 들과 집과 바닷가 모래까지가 더욱 깨끗하여 보였다. 뒷산은 청초한 얼굴을 공중에 반듯이 들고 황해의 저편을 바라보는 듯하였다. 다만 아직도 안정되지 못한 이 바다의 파도만이 그 전 날 밤의 폭풍우가 거쳐 간 자취를 말할 뿐이었다. 그러나 언제든지 앞바다 의 멀리 보이는 돛을 단 배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노함이 덜 풀어진 물결만이 높았다 낮았다 할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수심스러운 얼굴이 바닷가에 끊임없이 나타날 뿐이었다. 그 들은 전날에 떠나간 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배는 하나도 없었다.

하루를 더 기다려도 없었다. 이틀을 기다려도 없었다.

그들은 벌써 나아간 배가 돌아오는 것을 기적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한 바람에 나아간 배가 무사히 마을로 돌아온 적이 적었었다. 그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갯가에 나와 기다리기를 말지 않는 터였다.

폭풍우가 지난 지 이틀 뒤에 마을 사람들은 남아 있던 배를 타고 행방 모 르는 동네 배를 찾으러 나갔다. 이것은 황해 가운데 외로이 떠 있는 B도 부 근에서 많은 어선이 난파하였다는 비보가 이 마을에 도착한 까닭이었다. 이 비보가 마을에 전달하게 됨에 일루(一縷)의 소망을 갖고 있던 T촌의 가족을 내보낸 집집에서는 울음소리가 낭자하였다. 온 마을에 수심의 암운이 덮이 었다. 웃는 얼굴을 지닌 사람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서로 인사하는 말은 배의 소식을 들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물론 들었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온 마을 사람들은 행방이 불명된 배를 찾으러 내보낸 뒤에 바닷가에 나와서 그 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었다.

들어온 조수가 아직 물러가기 전인 그날 석양에 앞바다에 두어 척 어선이 암암(暗暗)히 보였다. 이 배의 그림자를 바라본 마을 사람들은 그 배에 한 줄기의 희망의 줄을 멀리 던지고, 그것이 가까이 오기만을 기다리었다. 기 다리는 그들의 마음은 불에 넣은 가죽처럼 죄어들면서도, 몸은 얼음 섞인 물을 끼얹은 듯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었다. 한 줄기의 희망이 시선과 함께 모여든 그 배가 앞 갯벌 가까이 들어옴에 따라 그들 희망의 줄은 날카로운 칼을 휘둘러 베이는 듯이 끊어져버리기 시작하였다.

그 배는 폭풍우가 불어 가기 전에 고기잡이하러 나간 배들이 아니었다.

“저것은 우리 배가 아닌갑만…….”

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머니를 따라 나와 돌아오는 배를 기다리던 점동이 었다. 그 어머니는

“그렇다! 우리 배는 새 밴데…….”

라 힘없이 대답하였다.

이와 같은 대화가 점동이 모자 사이뿐만 아니라, 거기에 모인 여러 사람 가운데에 거의 한결같이 있었다.

배는 바닷가에 닿았다. 여러 사람들은 배를 향하여 모여들었다. 배는 배 밑으로 주르륵 모래를 긁는 소리를 내고는, 무슨 비장한 보고나 할 것같이 언덕 위에 닻을 던지고 우뚝 섰다. 배 안에서 다만 물에서 건진 시체 오륙 개가 누워 있을 뿐이었다 . 뱃사람들은 뱃머리로 높이 올라서서 그 시체의 가족 이름을 불렀다.

그 가족들은 그 배로 들어갔다. 배 안에서는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울리었다. 이름을 미친 듯이 부르며 “허…… 허…….” 웃음소리조차 섞인 울음 소리가 들리었다. 다른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 울고불고할 행복조차 얻지 못함을 원망하는 듯한 얼굴로 초연히 돌아가는 이도 있었다.

얼마 뒤에 그 시체는 바닷가 모래 언덕 위로 옮기었다.

그러나 물에 빠진 시체인 그 사람들이 생명이 붙어 있어서 노도광풍(怒濤 狂風)과 싸울 때에 무엇을 생각함이든지, 그 시체들은 서로 손과 손을 생선 엮듯이 단단히 매었다.

이 손과 손을 서로 묶은 것은 마을 여러 사람들에게는 해석하기 어려운 한 수수께끼였었다. 물론 시체를 수용하러 나간 마을 사람들이 묶은 것은 아니 었다. 그들은 물에서 건진 그대로 배에 싣고 돌아온 것이었다. 그들이 난파 를 각오하고 생명이 떠난 시체로 마을에 돌아갈 것으로 스스로 절망할 때, 뒷날 시체 찾는 사람들의 수고를 덜기 위하여 또는 한 배에서 최후의 운명 을 같이하였다는 것을 표하기 위하여 손과 손을 단단히 맨 것이었다.

이것이 생선 엮음처럼 늘어놓은 시체를 위하여 대변하는 말이었다.

이 시체들은 집으로 돌아갈 권리조차 생명이 떠나는 동시에 잃어버리었다.

그 바닷가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다. 이것은 남아 있는 가족의 행복을 위함 이었다. 다시 그러한 저주에 걸리지 않기를 바람이었다.

해는 다시 졌다. 시체가 놓인 바닷가에서 거화(炬火)는 바다 물결에 길게 비치었다. 물결이 움직일 때마다 불빛이 바다 위에 뛰놀았다. 울음소리만이 가끔가끔 들리었다.

오륙 개 시체가 마을에 돌아온 뒤로는 나머지 다른 사람의 소식은 영영 알 수 없었다. T어촌 앞바다에 배가 떠 올 때마다 소식을 모르는 가족을 가진 사람들은 가슴을 따며 갯가로 덤비었으나, 그것은 매양 알 수 없는 장삿배 나 그 마을 다른 사람들의 돌아오는 배였다.

성팔의 처도 이와 같이 애를 태우는 사람의 하나였다. 그의 집에는 으레 끼니마다 성팔의 밥그릇이 그 방 아랫목에 파묻히어 있었다. 이것은 성팔이 가 행방불명이 된 뒤로는 그 생사를 점하기 위하여 그러함이었다. 이 마을 에는 이러한 미신이 전부터 있었다. 성팔이와 같이 행방불명된 사람으로 밥 담은 식기의 뚜껑을 열 때에 그 뚜껑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 그 식기의 임 자는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을 표하는 것이오, 그렇지 않고 물기가 없으면 그 사람은 죽은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식기를 방 아랫 목에 묻어두고 밥을 바꾸어 담을 때마다 뚜껑을 열고 물이 떨어지는가 그것 을 살펴보던 터이었다.

이것을 열어보는 것이 그 모자에게는 거의 큰 일과가 되고 말았다. 점동은 가끔 식기의 뚜껑을 열어보는 일이 있었다. 식기 뚜껑에 맺혔던 이슬은 주 르륵 굴러 내렸다. 이럴 때마다 자기 아버지는 살아 있는 것을 기뻐하며,

“어머니! 이것 보아. 물이 떨어지네.”

라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성팔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식기 뚜껑에는 물이 으레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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