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담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제1화[편집]

얼마 전의 신문은 우리에게 〈여인〉의 가장 기묘한 심리의 일면을 보여 주는 사실을 보도하였다.

장소는 어떤 농촌— 거기 젊은 부처가 있었다. 아내의 이름은 순이라 가정하여 둘까.

무론 시부모도 있었다. 시동생도 있었다.

그것은 남보기에도 부러운 가정이었다. 늙은이와 젊은이는 모두 화목하게 지냈다. 제 땅은 없으나마 그들은 자기네의 지은 농사로써 아무 부족함이 없이 지냈다. 동생끼리도 화목하였다—간단히 말하자면 농촌의 화목한 한 모범적 가정이라면 그뿐일 것이다. 아무 불평도 불안도 없이 지내는 집안이었다.

순이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 그의 남편은 스물 다섯이었다. 부처 새의 의도 좋았다. 아니 부처의 의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순이는 자기의 남편이라는 사람에게 대하여 자기가 품고 있던 기괴한 애착심을 오히려 이상한 마음으로 보았다. 시집온 지 2년. 시집오기 전에는 듣도 보도 못 하던 사내에게 아직 부모들께까지 감추어 오던 자기의 젖가슴까지 내어맡기고 거기서 불유쾌를 느끼기는커녕 일종의 쾌감까지 느끼는 자기를 기이한 마음으로 보았다. 밤마다 자기를 힘있게 품어 주는 사내— 자기의 온몸을 소유할 권리를 가진 사내—이러한 꿈과 같은 사내에게 대한 첫 공포심이 사라진 다음부터는 차차 자기의 마음에 일어나는 그 사내에게 대한 애착심 때문에 순이는 때때로 스스로 얼굴까지 붉혔다.

「여보.」

처음에는 몹시도 수줍던 이런 칭호가 차차 익어 오고 그의 말소리를 듣기만 하여도 분간할 수 있을이만큼 남편에게 익은 뒤에는 그의 눈에는 이 세상에 남편 한 사람밖에는 없었다. 그의 슬하를 떠나서 알지도 못하는 사내에게 안겨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을 것 같은 부모조차 지금은 남편의 손톱만큼도 귀하지 않았다. 남편은 그에게는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였다.

밭에서 곤하게 일하는 남편의 점심 광주리를 이고 나갈 때의 즐거움이며 늦게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리 고 고대하는 쾌미는 나날이 맛보는 것이지만 나날이 새롭게 즐거웠다. 때때로 그는 생각하여 보았다.

—저게 웬 사람이람. 2년 전까지는 듣도 보도 못 하던 사람. 꿈에도 못 본 사람. 이 세상에 저런 사람이 있었는지도 모르던 사람. 나를 부모의 슬하에서 떼어 낸 사람. 하루 세 끼의 조밥을 먹이는 뿐으로 마음대로 나를 부려먹는 사람. 때때로 성나면 내 따귀도 때리는 사람. 발길질까지도 사양치 않는 사람. 그 사람이 곁에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히 놓이고 밭에라도 나가면 적적하고 장에라도 가면 기다리고— 이렇듯 말하자면 원수 같으면서도 또한 끝없이 알뜰한 저 사람이 대체 누구람.

그리고 빙긋이 웃으면서 다시 잡았던 바느질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어떤 봄날 그 순이네 동네에 베장수가 왔다. 베장수도 젊은 사내였다.

베장수는 순이의 집에도 왔다. 그러나 베실만 사면 손수 짜는 순이의 집에서는 베를 사지 않았다. 베장수는 억지로 권하지도 않고 돌아서 나갔다.

우물에 불을 길러 나갔던 순이는 집 앞에서 베상수를 만났다 베장수는 순이를 보았다. 순이도 베장수를 곁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베장수와 눈이 마주친 순이는 얼른 눈을 도로 바로하였다. 그러나 순이는 베장수의 눈이 자기를 따라오는 것을 느꼈다.

순이는 얼른 물을 항아리에 부은 뒤에 방안으로 뛰어들어가 거울을 보았나. 그러나 얼굴에는 흙도 먼지도 아무것도 없었다.

순이가 동이에 물을 길어 가지고 머리에 이려 할 때에 뒤에서 딱 하니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 보니 거기는 베장수가 얼굴에 웃음을 담아 가지고 서 있다.

(귀찮은 녀석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순이도 조금 웃어 보이었다. 그런 뒤에 못할 짓을 한 듯이 황망히 동이를 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집 뒤뜰에는 세 그루의 복숭아나무에 꽃이 만개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순이는 동이의 물을 처분한 뒤에 정신나간 사람같이 뒤뜰로 나가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봄날도 좋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 때때로 그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 생각이 그로 하여금 이렇듯 뒤뜰에 서 있게 한 바가 아니었다.

그러면 그의 마음을 지배한 것은 무엇? 그것은 순 이로도 몰랐다. 그것은 봄날의 탓일까. 그것은 젊음의 탓일까. 그것은 베장수의 탓일까. 그것은 나무에서 재재거리는 새들의 탓일까. 순이는 알 수는 없었지만 몹시도 근심스러운 듯하고도 상쾌한 듯한 생각이 그의 마음을 이리 주무르고 저리 주물렀다.

「저녁 안 짓나?」

남편이 그의 등뒤에 와서 어깨를 툭 칠 때에도 그 는 한순간 깜짝 놀랄 뿐 더 움직임이 없었다. 이전과 같으면에쿠 깜짝이야, 하면서 정도 이상의 노적과 애교와 원망을 남편의 위에다 던질 그였지만 이번에는 억지로 조금 웃음을 얼굴에 나타내일 따름이었다.

남편이 그의 얼굴을 굽어보았다.

「저녁 어서 지어야지.」

「봄날도 좋기는 하다.」

순이는 치마를 손으로 한 번 탁탁 턴 뒤에 돌아서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열쩍은 듯이 저편으로 가 버렸다.

「봄날도 좋기도 하다.」

몹시 근심스럽고도 상쾌한 듯한 이 한 마디의 말은 저녁을 짓는 동안 순이의 머리에 딱 붙어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때때로 저녁 짓던 손이 뜻 없이 멈추고 정신 나간 듯이 먼 산을 바라보고 하였다.

그날 저녁같이 맛없는 저녁을 순이는 아직껏 먹어 보지 못하였다. 억지로 두어 숟갈 먹어 보고는 숟갈을 내어던지고 부엌으로 나갔다.

밤이 왔다.

아랫간에서는 시부모와 시동생이 잤다. 웃간에서는 젊은 내외가 잤다. 아랫간과 웃간의 사이에는 문턱이 있을 뿐 문은 없었다.

피곤한 아이들과 늙은이는 곧 잠이 들었다. 코로 들이쉬어서 입으로 내어부는 시아버니의 코고는 소리와 벼락같이 요란한 시어머니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면서 젊은 내외는 잠시 속삭였다. 그러나 마음이 이상히도 들뜬 순이는 이날의 속삭거림만은 왜 그런지 이전과 같이 달갑지 않았다.

「봄날은 좋기도 하다」

이 한 마디의 괴상한 말은 끝끝내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남편도 어느덧 팔을 아내의 가슴에 얹은 뒤에 잠이 들었다. 그러나 젊은 아내는 잠이 못 들었다.

「봄날도 괴상하기도 하다.」

밝을 때가 거의 되었다. 문득 밖에서 사람의 기척이 들렸다. 그들의 집은 길을 향하여 있는 집. 문 밖을 나서서 토방만 내려서면 길이 있다. 그 길에 사람의 기척이 들렸다.

「딱!」

혓줄 차는 소리였다.

순이는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무서운 것을 본 듯이 순이는 몸을 훔쳤다. 그리고 보호를 청하는 듯이 양팔을 남편의 목에 걸면서 꼭 남편의 가슴에 안겼다. 가슴에서는 무서운 방망이질을 하였다.

「딱! 딱!」

길에서는 채근하는 듯이 또다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순이는 그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하여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그리고 얼굴을 깊이 남편의 가슴에 묻었다.

「별녀석 다 보겠네.」

그는 마음으로 이렇게 부르짖고 있었다.

남편의 팔이 길게 순이의 허리로 돌아왔다. 순이는 그 팔을 놓치면 지옥에라도 떨어질 듯이 꼭 남편의 굳센 품에 안겼다.

—여보, 밖에 누가 왔소. 나를 나오라오.

그는 연하여 속으로 남편에게 호소하였다. 깊이 잠든 남편은 천하가 태평하다는 듯이 긴 숨을 쉬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는지 한참 뒤에 순이는 머리를 이불 밖으로 내놓았다. 한참을 기다렸으나 이제는 밖의 사람의 기척이 없어졌다.

「후—」

순이는 안심의 숨을 기다랗게 내어쉬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실망과 기대가 꽤 많이 섞여 있었음을 스스로 부인할 수가 없었다.

「인전 갔다.」

하는 안심 가운데는,

「망할 녀석 벌써 갔다?」

하는 원한이 꽤 많이 섞여 있었다.

한참 뒤에 순이는 뒷간에 갔다. 특별히 뒤가 마려운 바는 아니었지만 뜰안에라도 한번 나가 보고 싶어서 간 것이었다.

뒷간에서 돌아오는 길에 순이는 복숭아나무 아래 섰다. 꽃 틈으로 부연 달이 보였다. 별빛조차 그윽하였다. 봄은 하늘에도 무르익었다.

「봄날도 좋기도 하다.」

순이는 복사나무 아래서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하였다.

누가 꽉 순이를 껴안았다. 순간적인 환희와 경악으로써 순이가 돌아보려 할 때에 사내의 불붙는 입이 순이의 뺨을 쓸었다. 사내의 입술이 순이의 입술을 찾노라고 뺨에서 헤매었다.

「웬 녀석이야.」

순이는 작은 소리로 부르짖었다.

「사람 하나 살리오.」

사내의 뜨거운 입김이 순이의 입 근처에서 헤매었다.

「가요!」

순이는 다시 작은 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러나 이번 은 사내의 응답조차 없었다. 사내의 양손은 어느덧 순이의 양뺨을 옹켜쥐었다. 사내의 입술은 마침내 찾을 곳을 찾았다. 순이는 죽여라 하고 가만 있었다.

좀 뒤 먼지를 활활 털고 방 안으로 들어온 순이는 옷을 벗어 던진 뒤에 남편의 자리로 들어가서 자기의 입을 함부로 남편의 뺨에 문질렀다. 깊이 잠들었던 남편이 조금 기지개를 할 때에 순이는 자기의 온몸을 남편에게 실었다. 그리고 힘을 다하여 남편을 포옹하였다.

이튿날은 장날이었다.

시부모는 밭에 나갔다. 남편은 장을 보러가려 하였다. 장으로 가려는 남편을 순이는 한사코 말렸다.

「몸이 편찮으니 좀 곁에 있어 줘요.」

이렇게 애걸도 하여 보았다.

「장볼 건 건너집 아주버니한테 부탁하구 하루만 쉬어요. 그만 장을 보러 이십 리를 갈까?」

이렇게 이론도 캐어 보았다.

「내 당부를 한 번만들어 주구려. 지독히도 듣기가 싫소?」

이렇게 나무람도 하여 보았다.

이상한 공포감에 위협받은 순이는 오늘은 집에 혼자 있기가 싫었다. 시동생들이 있다하나 아직 어린애들—누구든 어른이 한 사람 있어 주지 않으면 그는 (무엇이 무서운지) 무서웠다. 그 집을 찾아오는 사람 이 있을 때마다 순이는 몸을 흠칫하며 놀랐다.

아내가 한사코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장으로 갔다. 자기가 가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다고 뿌리치고서…… 남편이 장에 간 뒤에 순이는 문을 꼭 닫고 시동생들이 밖에 못 나가도록 타이른 뒤에 아랫목궤 모퉁이에 배겨 앉아서 가슴을 떨고 있었다. 어린 시동생들이 큰 소리로 농들을 할 때에도 순이는 깜짝 놀라면서 아서라고 손을 젓고 하였다. 조그만 소리라도 밖에까지 새일세라 하였다.

「너 어제 베장수 봤지?」

이런 말을 순이는 큰 시동생에게 물어보았다.

「응, 봤어.」

「사내라도 이쁘게 생겼지?」

「이쁘긴, 쥐코 같은 것.」

시동생은 이렇게 결론하여 버렸다. 순이는 그 시동생에게 눈을 흘겨보였다. 그러나 곧 자기 스스로 자기 말을 취소하여 버렸다.

「그렇지. 이쁘긴 뭣이 이뻐. 멍텅구리지. 너 너의 형님이나 어머님한테 내가 베장수가 이쁘더라던 말을 했다가는 처 내쫓으리라,」

그리고 눈이 둥그렇게 되는 시동생을 내 버리고 돌아앉아 버렸다.

또 밤이 이르렀다.

시부모와 시동생은 여전히 먼저 잠이 들었다. 그것을 기다려서 아내는 이불을 끌어당겨 남편과 자기의 머리까지 막 쓴 뒤에 입을 남편의 귀에 갖다 대고 소근거렸다.

「오늘은 하룻밤 자지 말고 이야기로 새웁시다.」

왜 그러느냐는 남편의 질문에 순이는 유난히 무서워서 누가 깨어 있어 주지 않으면 못 견디겠노라 대답하였다.

남편은 아내의 등을 쓸었다.

「어린애. 무섭긴 뭐이 무섭담.」

그러면서도 남편은 아내를 힘있게 안아 주었다. 아 내는 싱겁게 씩 웃으며 머리를 남편의 가슴에 묻었다.

한참 뒤에 아내의 허리에 걸려 있던 남편의 팔은 힘없이 미끄러졌다. 곤한 그는 어느덧 잠이 든 것이다.

아내는 남편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찔렀다. 남편은 펄떡 깨었다.

「응? 응?」

「오늘 하루만 새워 줘요.」

순이는 울다시피 이렇게 애원하였다.

「그래.」

그러나 노역에 피곤한 남편은 한 마디의 말을 겨우 낼 뿐 또다시 잠이 들었다.

차차 밤이 깊었다.

「딱!」

문 밖에서는 또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어젯밤에 순이를 놓아 줄 때의 약속에 의지하여 베장수가 또 온 것이었다. 순이는 뒤집어썼던 이불을 더 엄중하게 썼다. 그러나 비록 더 엄중히 썼다 해도 순이는 밖에서 또 무슨 소리가 날까 하고 온 신경을 귀에 모으고 기다렸다.

「딱! 딱!」

밖에서 또 채근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이는 흐늘흐늘 일어났다. 옷을 주워 입과 밖으로 나갔다. 밖—행길에는 베장수가 순이를 기다리노라고 이리저리 거닐고 있었다. 순이는 문 밖에 나서면서 벌써 베장수를 보았지만 〈나는 너를 보러 나온 것이 아니라〉는 듯이 베장수 앞을 지나서 저편으로 갔다.

「여보.」

베장수는 순이가 자기 앞을 지날 때에 주의를 잘기 위하여 이렇게 찾아보았지만 순이는 한 번 히끈 돌아다보고는 그냥 지나가 버렸다.

그러나 순이의 심리를 이미 알고 벌써 순이의 마음을 잡았다는 굳은 자신을 가지고 있는 베장수는 순이의 뒤를 따르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순이는 베장수의 앞을 그냥 지났지만 더 갈 곳은 없었다. 조금 더 가서 샛길로 들어가서 잠시 일없이 서 있다가 순이는 다시 제 집으로 향하였다.

순이는 제 집 앞에서 베장수를 만났다. 베장수는 양 팔을 벌려서 순이를 쓸어안았다. 그 품안에서 순이는 몸을 사시나무와 같이 떨고 있었다.

잠시 말없이 순이를 붙안고 있던 베장수는 역시 말 없이 발을 옮겼다. 순이는 마치 인형과 같이 순순히 그에게 끌리어 갔다.

「아까 보고도 왜 모른 체했소?」

베장수가 이렇게 물을 때도 순이는 죽여라하고 입을 봉하고 있었다.

이튿날 농터에 나갔던 시부모와 남편은 늦게 집에 돌아와서 순이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였다.

마을이라도 갔나 하고 기다렸으니 순이는 밤이 깊어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좀 먼 곳에 갔나 하고 기다렸지만 이튿날도 돌아오지 않았다. 순이는 완전히 없어졌다.

집안은 이에 발끈 뒤집혔다. 그리고 감직한 곳을 죄 알아보았다. 그러나 순이의 종적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마침내 주재소에 보고치 않을 수가 없었다.

닷새 뒤에 읍내 경찰서에 베장수와 함께 순이가 붙들렸다는 통지가 이르렀다.

남편은 부랴부랴 읍내로 들어갔다.

경찰서에서 남편과 아내는 대면하였다. 그때 아내는 왁하니 울면서 남편의 팔에 매어달렸다. 성과 결이 독 같이 난 남편이 경관의 제지도 듣지 않고 아내를 발길로 차고 함부로 때릴 때도 순이는 조그만 반항도 없이 남편의 팔에 매달려서 「 같이 살아만 줍시사」

고 애걸하였다.

「이 사람과 살기가 싫으냐?」

고 취조하던 경관이 남편을 가리키며 물을 때에 순이는 당찮은 소리라는 듯이 경관을 흘겼다.

「이 사람하고 못 산다면 차라리 죽겠소.」

이것은 순이의 대답이었다.

「이 사람이 너하고 안 살겠다면 어찌하겠느냐?」

이렇게 물을 때에 순이는 경관을 내어버리고 남편에게로 향하였다.

「여보. 무슨 짓이라도 하라는 대로 할께 함께 살아 만 주어요.」

「그렇게 알뜰한 서방을 두고 왜 달아났느냐?」

경관이 이렇게 물을 때에 순이는 몸을 한 번 떨뿐 대답지 않았다.

부처의 새에 타협은 성립되었다. 경관의 중재와 효성의 정애로써 다시 살기로 된 것이었다. 그리고 부처는 의좋게 다시 경찰서를 나섰다.

경찰서를 나갈 때에 어떤 순사가 농담으로 순이에게 이런 말을 물었다.

「베장수놈은 고약한 놈이지? 밉지?」

그때 순이는 남편을 한순간 힐끗 쳐다보고 남편에게 보이지 않게 순사에게만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서 베장수 역시 밉지 않다는 뜻을 나타내었다.

경찰서 문 밖에서 남편에게서 왜 달아났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에 순이는 애원하는 듯이 그 말은 다시는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할 뿐 대답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는 이런 말을 하였다.

「매일 밤 꿈에 당신을 봤어요.」

부처는 다시 본촌으로 돌아왔다. 전과 같이 안온하고 화락한 생활은 다시 계속되었다.

순이는 왜 베장수와 어울리어 달아났나? 먹을 것이 없었나? 입을 것이 없었나? 남편에게 대한 애정이 없 었나? 시부모가 학대를 하였나? 시동생이 귀찮았나?

생활에 대한 불평이 있었나? 혹은 뒤뜰의 복사나무가 보기가 싫었나?

위에 기록한 가운데 아무것도 순이가 베장수와 어울리게 될 근거와 달아날 이유가 될것이 없다. 그러면 그는 왜 베장수와 달아났나?

여인은 수수께끼다. 〈사랑〉이라는 것을 마치 배나 능금과 같이 절반으로 갈라서 좌우편으로 붙일 수가 있는〈여 인 〉은 우리의 도저히 풀 수 없는 커다란 수수께끼이며 또한 도저히 알 수 없는 무서운 괴물이다.

순이는 왜 달아났나?

제2화[편집]

또 한 가지, 이것 역시 신문지가 보도한 〈여인〉의 기괴한 심리의 발동.

역시 무대는 농촌. 주인공은 역시 젊은 내외였다.

이번 아내의 이름은 서분이라 하여 둘까.

서분이는 열 아홉이었다. 그의 남편은 열 일곱이었다. 결혼한 지 3년.

내외간의 의를 남들은 좋다 보았다. 시부모며 친정 부모들도 좋다 보았다. 서분이 자신도 나쁘다고는 보지 않았다.

「남편이란 것은 이상한 존재.」

이것이 서분이가 남편에게 가진 바 관념이었다. 그에게는 남편이 어디라 특별히 고운데는 없었지만 밉게 보이지도 않았다. 때때로 발버 등이를 치며 밸을 부릴 때는 욕하기도 하고 칵 쥐어박고 싶은 때도 있지만 그러나 밉게까지는 볼 곳은 없었다.

사람의 살림의 일례로 시집은 가는 것, 시집가면 남편이라는 사람이 있는 것. 그의 시집에 대한 관념과 남편에게 대한 인식은 대략 이 한 마디로 끝이 날 것이었다. 남편과 아내의 새에 필연적으로 생기는 의무며 권리며 의리며 애정이라는 것은 알지도 못하였다.

남편이란 것은 시집의 아들이며 자기를 마음대로 부려먹는 사람이며 밤에는 한자리에서 자야 되는 사람.

이 밖에는 남편에게 대한 아무런 인식이며 이해가 없었다.

건너 동리에서 어떤 새색시가 새서방의 밥에 양잿물을 넣어서 독살을 계획한 일이 이 동리까지 소문이 났다. 뒷동리에서는 어떤 색시가 잠든 새서방의 목을 무명으로 매었다가 들켰다. 서분이의 동리에서도 어떤 젊은 아내가 제 남편을 누구와 공모하여 방망이로 때려 죽인 일이 있었다.

이 몇 가지의 사건은 서분이의 머리에 이상히 영향 되었다. 비록 농촌에서 낳고 농촌에서 자란 서분이라 하나 과도기인 현대에 태어난 그는 역시 〈시대〉의 공기에 멱감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회의 여인들이 필요없이 독약 같은 것을 (가장 비밀인 듯이) 비장하며, 사랑도 않는 사람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한숨지으며 숭배하고 싶지도 않는 영화배우를 숭배하여야 될 것 같이 생각되어 숭배하는 동안 농촌의 서분이에게는 또한 여인다운 마음의 시대적 동요가 있었다.

「남편은 죽여도 좋은 사람.」

근방의 몇 가지의 남편 독살 혹은 독살 미수 사건 이 서분이의 마음에 던진 첫번 그림자는 이것이었다.

이것뿐이면 별 문제도 더 안 생겼으련만 그의 마음에 들어앉은 이 그림자는 들어앉으면서 곧 제2단으로 발전하기조차 주저치 않았다.

「남편은 죽어야 좋은 사람.」

첫 그림자는 어느덧 이렇게 변하여 버렸다. 남녀의 애정이라 하는 것은 성적 쾌미를 이해한 뒤에야 처음으로 생기는 것이다. 부부의 애정이라 하는 것은 〈남녀의 애정〉에 〈의리〉라는 것이 좀 더 가미된 데 지나지 못한다. 부부의 교합이라는 것은 단지 지어미와 지아비가 (까닭은 모르지만) 하여야만 되는 것쯤으로 여기고 있는 서분이에게는 남편에게 대하여 아내로서의 애정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내란 것은 어떤 것인 지 그 의의조차 몰랐다. 밤에 한자리에서 자는 것—이 것이 내외거니, 이 이상은 몰랐다.

아직 성과 애정과 부부 문제에 대하여 아무 철이 없던 서분이의 귀에 몇 가지의 살부 사건이 들어올 때에서분이는 자기도 남편을 죽여 보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 생각의 근원에는 〈남편이란 죽여야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까지 섞여 있었다.

그는 자기의 시부모가 수십 년 전까지는 자기네와 같은 젊은 부부였었다는 것을 생각지 않았다. 자기의 친정 부모도 수십 년 전에는 역시 자기네와 같은 젊은 부부였었다는 것도 잊었다. 이성이 합하여 (수십 년 뒤에는) 한 몸과 같이 된다는 것을 생각도 안 하였다. 그다지 밉게 보이지도 않지만 남편이란 사람은 왜 그런지 〈남〉같이 생각되었다. 비록 죽여 버린다 할지라도 아무것도 쏘지 않을 〈남〉이었다. 시부모는 더욱 〈남〉이었다. 서분이에게는 지금껏 친정 부모만이 〈남〉이 아니었다.

(어디 죽여 보자.) 이리하여 그는 어떤 날 남편의 밥에 바늘을 두세 개 묻었다.

어른과 아이는 한방에 모여서 저녁을 먹었다 남편도 숟갈을 들었다.

이때부터 웬 까닭인지 서분이의 마음은 괴상한 공 포로써 스스로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한 술 두 술 남푄이 입에 밥을 떠넣을 때마다 서분이는 입을 벙싯벙싯하였다.

—그 밥을 잡숫지 말아요. 그 밥에는 바늘이 들었어요.

남편의 입으로 밥이 들어갈 때마다 목에까지 나와서 들어가는 이 말을 도로 삼키노라고 서분이는 몇 번은 〈어〉 소리를 내었다. 남편을 주의하노라고 자기의 밥조차 잊었다.

「너 밥 안 먹느냐?」

서분이는 시어머니에게 두 번이나 이런 채근을 받았다. 그런 때마다,

「네, 먹지요.」

하고 머리를 밥으로 향하고 했지만 한 입만 먹은 뒤에는 그의 주의는 또다시 남편의 숟갈로 향하고 하였다.

(오늘은 유난히 밥을 많이도 먹네.) 서분이는 울상이 되어 이런 생각까지 하였다.

남편의 밥그릇이 거의 밑이 드러나게 된 때였다. 남편은 갑자기

「에크!」

소리를 치며 술질을 멈추었다.

아! 서분이는 바아흐로 입으로 가져가려던 숟갈을 힘없이 떨어뜨렸다. 그리고 죽자하고 눈을 지려감았다 남편은 두 손가락을 입에 넣고 좀 찾다가 바늘을 하나 얻어 내었다.

「이게 바늘이로군. 이 담엔 밥 지을 땐 머리에 바늘꽃은 채로 하지 말게. 큰일 날라.」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이 뿐으로 바늘을 담벽에 꽃아 버렸다.

「후— 안 먹었다.」

서분이가지려감았던 눈을 뜰 때는 그의 눈에는 눌 물이 솟았다.

그날 밤같이 남편이 사랑스런 밤이 서분이의 과거에 없었다.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살아온 듯이 서분이는 힘있게 남편을 안고 안고 하였다. 성을 아는 여인이 오래 떠나있던 정랑과 만난 것같이 서분이는 잠들려는 남편을 깨워서는 쓸어안고 하였다.

눈물이 때때로 까닭없이 흘렀다

「혀가 바늘에 찔려 아프지나 않소?」

자려는 남편을 깨워 가지고 이런 말도 여러번 물었다.

무사한 몇 달은 지났다.

내외의 의는 남 보기에도 전보다 좋아졌다.

서분이는 저보다 나이 어린 서방을 밤마다 힘있게 붙안고 쓸어 주고 하였다.

그러나 악마는 어떤 날 다시 또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떤 날 남편의 저녁밥에 그는 양잿물을 풀어 넣었다.

왜? 여기 대해서는 서분이도 모른다. 쓰다 남은 양잿물이 시렁에 있는 것을 볼 때에 문득 얼마 전에 건너 동네에서 어느 여인이 제 서방을 양잿물을 먹인 것이 생각나면서 기계적으로 행한 일에 지나지 못하였다.

그날 서분이는 저녁밥이 먹기 싫다고 동네집에 놀러 갔다. 그의 심산으로는 서너 시간 그 집에서 놀고 남편이 죽은 뒤에 집으로 돌아올 작정이었다.

동네 집에서 그는 동무들과 윷을 놀았다. 그러나 윷을 노는 동안 그의 마음은 잠시도 내려앉지 않았다.

자기가 몇 동이던가를 기억한 적이 없었다.

「서분이 너 다섯 동째 가는구나.」

서분이가 정신없이 윷을 놀 때에 동무들이 깨쳐 주는 일이 있을지라도 서분이는 웃지도 못하였다.

「가면 가지. 여섯 동인들.」

하고 또 윷을 던지는 그였다.

몇 번을 귀를 기울였다. 혹은 멀리서 무슨 부르짖음이라도 없나 하여 몇 번을 혼자서 흠칫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윷을 중도에 내버리고 그 집을 나섰다.

그의 집에서는 방금 비극이 시작되는 즈음이었다.

서분이가 거의 집에 이르렀을 때 남편의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왜 그러느냐고 시어머니의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서분이는 더 참지를 못하였다. 그는 단걸음에 뛰어 가서 토방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문걸쇠를 잡으려다가 손을 도로 내리우고 귀를 기울였다.

남편의 토하는 소리와 신음하는 소리, 부모의 덤비는 소리, 쿠등쿠등 몸을 뛰노는 소리— 서분이는 문을 열어젖히며 뛰어들어갔다.

「어머니 왜 그래요?」

「글쎄 알겠니. 속이 모두 찢어지는 것 같다누나.

이걸 어쩐담.」

서분이는 남편을 보았다. 남편의 얼굴은 고통 때문 에 밉게 찡그려져 있었다. 몸은 잠시도 멈추지 못하고 뛰놀았다.

순간, 서분이는 마음에 폭발하는 공포를 깨달았다.

그는 눈으로 〈죽음〉을 보았다. 죽음이란 얼마나 두렵고 큰 것인지를 보았다. 그 죽음이 제 남편의 위에 임한 것을 보았다. 죽음을 임하게 한 것이 자기라는 것도 자각하였다.

동시에 남편에게 대하여 아직까지 가져보지 못한 관념이 폭발하듯이 그의 마음에 튀어올랐다.

「저 사람은 내 사람.」

지금 자기의 독수 때문에 죽을는지도 모르는 저 사람은 시부모의 아들이라기보다도 친정 부모의 사위라기보다도 서분이 자기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렬히 불붙어 올랐다. 저 사람은 내 사람. 죽기까지 동고 동락하여야 할 사람—구원하여야겠다. 어떤 일이 있든 간에 구하여야겠다. 결코 죽게 해서는 안되겠다.

「여보. 정신 좀 차려요.」

그는 한 번 남편의 어깨를 흔들어 본 뒤에 맹연히 집을 뛰쳐나왔다.

서분이는 곁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문을 덜컥 열고 머리만 디밀었다.

「아주머니 양—양—」

「누구냐?」

「서분이야요. 양—양잿물 먹은데 뭘 먹으면 나아요?」

「글쎄. 잘 모르겠구먼. 왜 그러느냐?」

「어서! 큰일났어. 양—」

「글쎄 왜 그래? 누가—」

그냥 어떻다는 것을 서분이는 문을 탁 닫아 버리고 그 집을 나와서 다음 집으로 갔다. 세 집 만에야 서분이는 양잿물을 삭이는 방문을 겨우 알았다.

「뜨물을 먹여 봐라.」

이 말을 듣고 누구가 양잿물을 먹었느냐는 질문에는 대답도 않고 집으로 달려온 서분이는 곧 부엌으로 들어가서 뜨물을 한 바가지 떠 가지고 방안으로 들어 왔다.

「에케, 에케, 이애미쳤나?」

철레철레 뜨물을 흘리며 들어오는 며느리를 시부모는 경이의 눈으로 쳐다보며 피하였다.

「뜨물이 약이래요.」

이 말뿐 서분이는 남편에게로 가서 날뛰는 남편을 쓸어안고 머리를 억지로 자기의 무릎 위에 눕힌 뒤에 뜨물을 부어 넣었다.

푸—퉤—남편은 뜨물을 뱉었다. 서분이는 다시 먹였다. 먹이고 뱉고 하는 동안 남편은 몇 모금의 뜨물을 마셨다. 뜨물을 남편의 입에 붓는 동안 서분이는 정성을 다하여 신령께 축수하고 있었다. 제 목숨을 죽일지언정 이 사람은 살려 주세요. 죽게 하지 말아 주세요.

그것은 뜨물의 덕인지 서분이의 성의의 덕인지 남편의 생명만은 붙었다. 그러나 입 속과 창자가 요도해져서 목숨은 붙었다 하나 매우 위중하였다.

서분이는 잠시를 곁을 떠나지 않고 위중한 남편의 병간호를 하였다. 세상의 어떤 어머니가 자식에게 대하여 이렇듯 지극한 정성을 가졌을까. 한 주일을 간호할 동안 서분이는 자리에 누워 보지도 않았다. 정 졸음이 오면 잠시 남편의 자릿귀에 기대어서 깜빡 졸 뿐 자지도 않았다. 이 지성의 간호에 남편의 병은 나날이 나아갔다. 한 주일 뒤에는 조금 밥도 먹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의 입은 무서웠다.

알지 못할 급병으로 날뛰는 남편을 서분이는 어떤 근거로써 양잿물 먹은 줄을 알고 그 방문을 물으려 동네로 싸다녔을까, 여기서 말썽은 말썽을 낳았다. 그리고 그 말썽은 차차 전파되어 귀밝은 경찰에까지 들어갔다.

서분이는 남편의 병상 앞에서 경관에게 끌려갔다.

아직은 마음을 놓지를 못하겠으니 이틀만 더 병간호를 한 뒤에 마음대로 잡아가 달라는 서분이의 탄원도 효력이 없이 그는 앓는 남편을 남겨 두고 돌아보며 주재소로 끌려갔다.

「나는 아무렇게 되든 당신이나 얼른 쾌차해요.」

이 말 한 마디를 남기고서.

시부모도 따라나오면서 눈물로 며느리를 보냈다.

지금 서분이는 옥창에서 남편의 병든 몸을 생각하며 눈물짓고 있겠지.

여인의 행하는 의표 외의 일은 도저히 우리로서는 해석할 수가 없는 일이다. 서분이는 왜 남편을 죽이려 하였을까.

여인은 수수께끼이다.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5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5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1925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