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독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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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그토록 위해 주는 고마운 친구의 집 근처, 돈 이 원을 주고 토방을 얻었다. 빈대가 물고 벼룩이 뜯고 모기가 갈퀸다. 어두컴컴한 이 방이 나는 싫었다. 그러나 시원하고 조용한 이 방이야말로 나의 천당이 될 줄이야.

사람 없고 변함없는 산중 생활이야말로 싫증나기 쉽다. 그러나 나는 이미 삼 년 째 이런 생활에 단련을 받아 왔다. 그리하여 내 기분을 순환시키기에는 넉넉한 수양이 있다. 나무 밑에 자리를 깔고 드러누워 책보기, 울가에 평상을 놓고 거기 발을 담그고 앉아 공상하기, 때로는 물에 뛰어들어 헤엄치기, 바위 위에 누워 낮잠 자기, 풀속으로 다니며 노래도 부르고, 가경을 따라가 스케치도 하고, 주인 딸 동리 처녀를 따라 버섯도 따러 가고, 주인 마누라 따라 콩도 꺾으러 가고, 동자童子 앞세우고 참외도 사러 가고, 어치렁어치렁 편지도 부치러 가고, 높은 베개 베고 소설도 읽고 전문 잡지도 보고, 뜨뜻한 방에 배를 깔고 엎드려 원고도 쓰고, 촛불 아래 편지도 쓰고, 때로는 담배 피워 물고 희망도 그려보고, 달 밝거나 캄캄한 밤이거나 잠 아니 올 때 과거도 회상하고 현재도 생각하고 미래도 계획한다.

고적孤寂이 슬프다고? 아니다. 고적은 재미있는 것이다. 말벗이 아쉽다고? 아니다. 자연과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나는 평온무사하고 유화柔和한 성격으로 변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촌사람들은 내가 사람 좋다고 저녁 먹은 후에는 어린 것을 업고 옹기종기 내 방 문 앞에 모여들고, 주인 마누라는 옥수수며 감자며 수수 이삭이며 머루며 버섯을 주워서 구메구메 끼워 먹이려고 애를 쓰고, 일하다가 한참씩 내 방에 와 드러누워 수수께끼를 하고 허허 웃고 나간다.

여기 말해 둘 것은, 삼 년째 이런 생활을 해본 경험상 여자 홀로 남의 집에 들어 상당히 존경을 받고 한 달이나 두 달이나 지내기가 용이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임자 없는 독신 여자라고 소문도 듣고 개미 하나도 들여다보는 사람 없는, 젊도 늙도 않은 독신 여자의 기신奇身이랴.

우선 신용 있는 것은 남자의 방문이 없이 늘 혼자 있는 것이요, 둘째로는 낮잠 한 번 아니 자고 늘 쓰거나 그리거나 읽는 일을 함이요, 셋째로 딸의 머리도 빗겨 주고 아들의 코도 씻겨 주고 마루 걸레질도 치고 마당도 쓸고 때로는 돈푼 주어 엿도 사먹게 하고 쌀도 팔아오라 하여 떡도 해먹고 다림질도 붙잡아 주고 빨래도 같이하여 어디까지 평등 태도요 교驕가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때때로, “가시면 섭섭해 어떻게 하나." 하는 말은 아무 꾸밈 없는 진정의 말이다. 재작년에 외금강 만산정에서 떠날 때도 주인 마누라가 눈물을 흘리며 내년에 또 오시고 가시거든 편지하세요, 했으며 작년에 총석정 어촌에서 떠날 때도 주인 딸이 울고 쫓아 나오며, “아지매 가는 데 나도 가겠다."고 했고 금년 여기서도, “겨울 방학에 또 오세요." 간절히 말한다.

오면 누가 반가워하며 가면 누가 섭섭해하리, 하고 한숨을 짓다가도 여름마다 당하는 진정한 애정을 맛볼 때마다 그것이 내 생에 무슨 상관이 있으랴 하면서도 공연히 기쁘고 만족을 느낀다.

- 『삼천리』 193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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