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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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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타
마리아∙막달라
라사로
토마스
예수
유다
라마병사 갑
라마병사 을
군중(목소리만)

삼월 보름의 유월절(喩越節)을 앞둔 엿새 전. 라사로가 소생한 날 저녁. 베다니에 있는 라사로의 집 대청. 바른편은 부엌으로 통하고 왼편에 출입문. 정면 벽에 창. 그 아래에 침상. 라사로 누웠고 마리아 식탁의 준비에 분주하다. 축복의 만찬이 열리려는 것이다. 포도와 무화과의 바구니, 감람, 종려, 백향목의 가지, 주호(酒壺), 밀항(密缸) 등을 알맞게 배치한다.

라사로 누님.

마리아 (본다)……

라사로 그래 정말 지금 내 있는 곳이 저 세상이 아니구 이 세상이란 말이죠. 감람산(橄欖山) 아래 베다니 마을 바로 라사로의 집 늘 눕던 침상 위에 살아서 누워 있단 말이죠. 거기 서 있는 게 그게 바로 마리아 누님이구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게 말타 누님, 식탁 위에 놓인 것이 그게 틀림없는 포도와 무화과와 종려나무와 술과 꿀이란 말이죠.

마리아 아무렴. 바로 감람산 아래 베다니 마을 라사로의 집이구 말구. 지금 저녁 잔치 준비에 분주하고 좀 있으면 예수께서 오실 테구.

라사로 이 눈으로 다시 해를 보고 달을 볼 수 있단 말이죠. 누님들이 보는 그 별들을 나두 볼 수 있단 말이죠. 너무도 신기해서 거짓말만 같아요.

마리아 우리두 처음엔 거짓말로만 알았단다. 죽어 가는 걸 살린다는 건 예수께서 늘 하시는 이적(異蹟)이니 믿을 수도 있었지만, 죽어 버린 사람을 살린다는 건 이건 생각할 수 없거든. 네가 위독하다는 기별을 보낸지 이틀이 되어도 예수께서 안 오실길래 사실 은근히 원망도 해보았다. 네가 죽어서 장사까지 지낸 지 나흘 만 ─ 오늘 아침에서야 겨우 오시지 않았겠니. 울며불며 맞이해 드리니, 선생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시면서 그래 라사로는 대체 어디다 묻었누 하시길래 인도해서 무덤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은 거기서 무얼 보았겠니. 선생님이 관 위에 놓인 돌더러 굴러 내리라 하니 돌이 굴러 내리더구나. 눈을 뜨시고 하느님께 감사를 바친 후 엄숙한 목소리로, 라사로여 나오너라 부르시니 죽었던 네가 살아 나왔단 말이다. 모두들 거짓말로만 알았지 어찌 정말로 알았겠니. 네 몸을 다쳐 보구 말소리를 들어보구 해도 갈데없는 죽기 전의 라사로 너더구나. 놀랍구 두려운 맘에 선생님께 감사도 드릴 염 못하구 묵묵히들 집으로 돌아왔단다. 살아나는 순간을 네게 보이구 싶었다. 너두 네 목숨을 정말로는 믿기 어려우리라.

라사로 죽었든지 어쨌든지를 내가 알 리가 있소. 앓다가 잠이 들구 꿈속에서 어두운 바다를 한없이 헤매이던 것만 같아요. 잠을 깨서 일어나 보니, 눈앞에 선생님이 서 계시구, 집안 사람들과 이웃 사람들이 울레 줄레 서 있는 게 웬일인가만 생각되면서 집으로 들어왔죠. 침상에 누워서 하루 동안 곰곰이 생각하니, 무척 어두운 세상에서 오래간만에 돌아온 것 같으면서 기쁨이 전신에 흘러넘쳐 나와요. 갓난아이의 마음이 아마도 그럴는지 세상만사가 새롭고 신기하게만 보이면서 지금 살아 있다는 기쁨이 샘같이 가슴속에 솟아 나와요. 하늘도 나무도 방안도 과실도 꼭 처음 보던 것만 같이 귀하고 거룩하게 여겨지면서 마음을 뛰놀게 해요. 전 가제 난 아이예요. 제 일생은 오늘부터 시작되는 것만 같아요.

마리아 (포도 한 송이를 라사로에게 갖다 주면서) 어서 기운을 내서 신기한 것 실컷 먹구 아이같이 즐겁게 살아가요. 오늘이 생일잔치인 셈인데, 어서 일어나 활기를 펴구.

라사로 (침상에 일어나 앉으며 포도알을 맛본다)

마리아 선생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면서 어떻게 하면 다 갚아 드릴는지, 자나깨나 이젠 그 궁리뿐이란다. 우리 식구들을 남달리 사랑해 주시는 것만두 고마운 데다 내 죄를 씻어주시고 네 목숨까지를 살려 주시니, 이 몸이 진한들 그 은혜 보답할 도리 있겠니.

라사로 어떻게 신령하시면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니 하느님 대신으로 하느님의 뜻을 행하시는 분이 왜 우리 곁에 친히 계셔서 우리와 마주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란 말요. 내 자격이 좀더 칠칠하고 집안 형편이 좀 더 폈더라면 제자로나 들어가서 은혜의 만분지일이나 갚아 드리지 않겠수. 누님 덕으로 살아가던 집안이 누님이 허물에서 발을 씻으시고 나오시니, 이제는 책임이 내 한 손에 달렸는데 보람없는 꼴을 돌아볼 때 부끄런 생각만 나요. 별수 없이 다시 양이라도 쳐서 살아갈 수밖엔 없는데, 양의 무리에 매어 놓으면 더 선생님을 돌아볼 여가가 있을는지.

마리아 난 이왕 선생님께서 죄를 씻은 몸이니, 평생 몸을 바치기로 작정했거니와, 사실 집안 사정을 생각하면 딱해 못 견디겠다. 어떻게 했으면 좋을는지 토마스 말마따나 어지러운 세상이니 차라리 살림을 떠가지고 아라비아나 바빌론으로 이주해 가두 좋으려만, 당장에 선생님 곁을 뚝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라사로 어지러운 시절이라니, 이렇게 살기 어려운 때가 있었겠수. 무엇을 하든지 간에 큰 용기가 필요하건만, 어쩌다가 이런 졸장부로 태어났는지, 토마스만큼만 태어났더라도 이렇게 사람 구실 못하진 않았을걸. 녀석은 제법 사람 된 품이 명민하고 용감스럽고 베다니를 통틀어도 그만한 위인은 없을 테야. 열심당(熱心黨)의 한 사람 된 자랑을 그같이 끔찍이 여기고 소중해하는 젊은이도 드물고. 난 토마스만큼 부러운 사람이 없구 그는 이 고장의 자랑거리예요.

마리아 토마스의 열정이 점점 무서워지더라. 물인지 불인지를 모르구 당의 일을 위해서는 개인의 사정은 다 잊어버린단 말이다. 가꾸던 포도원을 던지구 집을 버리구는 허구한 날 어디론지도 모르게 분주하게 휘돌아치거든. 지금 같아서는 난 도저히 그의 열정을 받을 수 없어. 그처럼 생각해 주는 것이 고맙긴 하구 인금으로 해서 난 그 값에 가지는 못 하지만, 그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어. 무엇보다두 내 맘에 거슬리는 건 예수와 길이 어긋나서 늘 맞서게 되는 것. ─ 뜻과 사상이 너무도 달러. 사상이 다르면 자연 그렇겠지만, 어떤 때는 옆에서 보기가 민망하리만큼 뻗서구 충돌하거든.

라사로 그야 칼과 돌로서 백성을 구하려는 생각과 깨끗한 마음으로 사람을 건지려는 생각이 어긋나고 충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사실 나는 지금도 어느 편이 바른지를 몰라요. 토마스의 말을 들으면 그의 주장이 세상에서 제일 옳은 것 같으나, 예수 앞에 나서면 그 온화하고 성스러운 위엄 아래 스스로 고개가 숙여지거든요.

마리아 선생님을 섬기면서 토마스를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할 처지이고, 그것을 토마스도 지금 요구하고 있으니 딱하단 말이다. 물론 선생님의 뒤를 따라야 할 것은 빤한 노릇이나 한 젊은이의 열정을 저버린다는 게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거든.

라사로 누님의 심중은 헤아릴 수 있어요. 허나 세상에는 선생님을 공경하고 믿는 사람이 날로 늘어가기는 하나, 한편 반대하고 미워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하긴 열심당 가운데도 점점 예수에게로 기울어지는 사람이 있다더구만, 제일 괴악한 것이 파리새교인과 사도개파. 그뿐인가. 왕과 라마의 호민관(護民官)을 비롯해서 집의원(集議院)패들 이하 얼마나 선생님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게요.

마리아 …… 오늘도 저자에 갔다가 시몬을 만나지 않았겠니. 파리새교인의 시몬 말이야.

라사로 언제인가 그 집에서 선생님이 초대를 받아 식사를 하던 날, 누님이 들어가 처음으로 죄를 뉘우치고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그 발에 향유를 바를 때 누님을 비웃던 그 시몬 말이죠.

마리아 그래. 선생님을 조롱하면서 그렇게 죄 많은 여자도 용서할 수 있느냐고 나를 비웃던 그 시몬 말이다…… 저자에서 문득 보고는 무어라는고 하니 라사로가 살아나서 기쁘겠다고 하면서 위선자니 무어니 하고 선생님의 험구를 하는구나. 자칭 다빋의 후예인 구세주로 사람들을 구하러 왔다는 것은 인심을 수탐하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갖은 욕설을 다 하는 눈치가 실상은 백성들이 점점 선생님을 믿게 돼서 큰 당파를 이룰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완연하더구나. 또 하는 소리가 자기들도 선생님과 대항하기 위해 파리새교인들을 가만히 예루살렘 궁전으로 보낼 작정이라고 귀띔하지 않겠니.

라사로 일은 큰일이야. 신도가 늘어가면 왜 그만큼 적도 늘어가는 법인지. 선생님께는 파리새교도가 종시 화되지 않나 두고 보지. 유월절도 가까와 왔구 그때엔 선생님께서도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텐데, 그 요란하고 수선스런 속에서 한바탕 북새가 일어나지 않고 배길까. 내겐 그게 큰 걱정이예요.

마리아 그런 생각을 하면 우리가 어찌 선생님을 버릴 수 있겠니. 비록 한줌의 힘으로 돕지는 못한다. 하더라두 수고를 위로해 드릴 정도로래두 마지막까지 선생님을 극진히 섬기는 게 우리들의 의무가 아니겠니. 네가 선생님의 뜻으로 해서 살아났다면, 나두 선생님의 은혜로 해서 허물 속에서 재생하지 않았니. 죽은들 잊겠니. 시몬의 집에서 오백 냥과 오십 냥의 비유로 내 허물을 씻어 주셨을 때의 일을. 오백 냥의 죄를 진 나를 오십 냥의 빚을 진 사람과 똑같이 용서해 주시는구나. 선생님의 그 고마운 뜻이 없었더라면 나두 벌써 죽은 몸이겠다. 그 뒤에도 무지한 파리새교인들에게 가끔 들려주신 포도원의 비유라든지 혹은 방탕한 아들의 비유가 모두 나를 막아 주시려고 나를 두고 하신 말 같이만 생각된다. 어찌 다 그 은혜를 잊을 수 있단 말이냐. 토마스가 다 무어냐. 선생님과 감히 비길 바가 되니. 토마스는 가슴속에 불을 가진 젊은이, 선생님은 하늘의 뜻인 존귀한 어른─ 어느 편을 섬겨야 옳을까가 문제가 아니라, 선생님께 어떻게 하면 정성을 다할까가 지금 내 걱정이란다.

말타 부엌에서 요리된 음식 쟁반을 들고 나타난다. 몸에 힘을 준 품이 무거운 모양이다.

말타 라사로야. 와, 좀 들어보렴. 기운이 전보다 나은가 못한가 보게. 오늘 가제 태어난 아이인 셈이니.

라사로 아무리 오늘 새로 세상에 나왔기로 기운까지 빠졌을까요. 까짓것쯤. (가서 쟁반을 주체스럽게 받아 들고 식탁께로 간다)

말타 밀 한 부대 무게는 되지. 오늘 저녁은 우리가 베다니로 이사해 온 후 처음 가지는 성대한 잔치인 것 같다. 기껏해야 떡과 생선이었지. 오늘같이 소고기와 양고기를 이렇게 흐붓하게 삶아 본 적은 없었거든. 라사로의 생일이 스무 번을 넘었어도 오늘같이 야단스런 잔칫날은 없었다. (음식 그릇들을 식탁 위에 주섬주섬 옮겨 놓는다)

마리아 (말타를 거들며) 언니. 수고하셨소. 진종일을 부엌에서 일하느라구.

말타 내야 언제나 부엌일밖엔 더 하는 사람이냐. 네 정성에 비기면야 내 하는 일쯤 아무것두 아니지. 라사로도 라사로지만 오늘 예수께서 오신다니까, 너는 지금까지 보던 중 제일 큰 저자를 보아 왔더구나. 아마도 장거리에서는 오늘 제일 뽐을 냈을걸.

라사로 (떡을 한 조각 뜯어먹으며) 어쩐지 오늘에 한해서 음식 절차가 야단은 스러워. 선생님 덕에 식구 전체가 영광을 받는다면, 이 또한 기쁜 일이 아니오.

말타 이게 시실리 섬에서 왔다는 진귀한 포도주인가. 이 밀항(蜜缸)의 꿀이 타볼山에서 온 것이구. 굉장은 해.

마리아 선생님이 반드시 사치를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니, 마음의 정성으로 족하겠죠. 하치않은 물건이나 내 마음은 그보다 몇 곱절 윗길이거든요.

말타 고귀한 나아드의 향유가 바로 이거군. (상자 속에서 향유 든 도기를 내보며) 향기도 높다.

라사로 (향기를 맡는다)

말타 이 한 근에 삼백 냥이라지.

마리아 오늘밤 최대의 정성을 바침이 예일 듯해서 난 농 속에 간직해 두었던 마지막 저축을 들추어 냈어요. 식구들 몰래 내 단독으로 했다구 노여워들 말 것이 나두 집안 살림을 아는 형편에 그만한 용기를 내지 않고는 이만한 일두 못할 것 같아서 그랬던 것에요.

말타 암. 마리아야, 선생님이라면 그저 그만이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분이니까. 그렇게 자별스런 사이는 세상에 없어.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잦은지, 가령 내가 부엌에서 일할 때에도 방안에서는 두 분의 말소리가 소곤소곤 들려온단 말이지. 철없이 한번은 내가 화를 내면서 대체 무슨 이야기들이 그렇게 자별스러우냐구 했더니, 예수의 말씀이 마리아에게는 마리아의 맡은 일이 있나니라 하셨으니, 그래 대체 마리아의 맡은 일이 무엇일구.

마리아 언니, 나를 조롱하자는 작정이요. 선생님의 은혜를 그리 모르구 지내도 좋단 말이요.

말타 누가 은혜를 모른다구 그랬니. 은혜를 생각하구 덕을 사모하니까, 오늘 나두 너와 함께 애써 일하지 않았겠니. 네가 선생님과 사이가 자별스럽다는 게 무슨 해로운 말이게. 아니면 아니라구 말 좀 해보렴.

마리아 천한 몸으로 선생님을 대접하는 도리는 향유의 예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언제인가 시몬의 집에서 선생님의 발을 향유로 씻어 드렸을 때에도 그렇게 기뻐하시는 양은 없었기에 오늘도 위대한 은덕을 베푸신 날이라 향유의 예로 모실까 한 것인데, 언니가 그토록 싫은 소리를 할 줄야─.

말타 향유의 예를 누가 모른다니. 나는 급한 내 발등이 먼저 내려다 보여서 하는 소리다.

마리아 집안 형편을 누가 모른댔어요. 철부지 아이가 아닌 바에야 난 내 발등 못 보는 줄 알아요.

말타 당장 내일부터래두 넌 선생님의 뒤를 따라 나서면 그만인지는 모르나, 남은 식구들은 마주 눈을 뜨구 바라보고 있으면 좋단 말이냐. 라사로를 살려 주신 것만 해두 과한데 선생님이 또 우리를 위해서 맨손에 마나의 떡과 생선이 생기는 기적까지 베풀어 주시겠니.

마리아 어서 걱정 말아요. 내 다시 뭇 사내에게 몸이래두 팔께요 (별안간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짓는다)

라사로 누님들은 괜히 또 쓸데없이들. 아닌 때 무슨 꼴이요. (다시 침상께로 간다)

말타 아니 내 말이 무에 과혹했게 그러니. 집안 사람들끼리두 터놓고 말못한다면 이 답답한 속을 어떻게 하란 말이냐. 마리아, 네가 그런다면 차라리 내 불찰이지. 지금까지 집안을 살려온 네 덕을 내 모를 바 아니구, 생각하면 한 식구로서 원통한 마음에 뼈가 갈리고 치가 떨리는데, 다시 너를 그런 죄의 구렁 속으로 몰아넣을 수가 있단 말이냐. 살아가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운지 허구한 날 근심과 걱정이 삐지 않구 가난한 속을 헤어 나가려니 내 스스로 악이 나는구나.

라사로 다 내 허물이죠. 내 못난 탓이죠. 걱정 말아요. 내일부터라두 양의 무리 몰러 목장살이로 들어갈 테니.

말타 도시가 어렵고 무서운 때가 온 것만 같다. 태평하고 좋은 시절에 태어나서 복 받고 사는 사람도 있으련만 왜 하필 이런 험하고 박한 시대에들 태어났을까. 유대왕을 섬겨야 하구 라마 황제에게 매이구 일년에 수십 가지 세금을 바치노라면 벌이의 반 이상이 달아나니, 죽으라는 게지 살라는 마련은 아니야. 좋은 세상이 언제나 올려는지 차라리 열심당이 돼서 칼부림을 놀아 보든지 그렇지 않으면 나라 밖으로 싸가지구 도망을 치든지 하지 않고야……

열심당원 토마스 나타난다. 늠름하고 진취적인 호청년, 투석기(投石器)를 메고 무장한 품이 어떤 의무 속에 매어 있는 사람인 듯 그 어디인지 조급해 하고 설레는 태도가 보인다. 마리아 눈물어린 양을 그에게 보이기 부끄러워 얼굴을 감출 듯이 하고 부엌으로 뛰어 들어간다.

토마스 라사로, 자네 소생했다는 소식은 아침에 들었네만 오늘은 또 유난스럽게 바쁜 날이라 손이 놓여야 말이지, 늦게 온 걸 허물 말게.

라사로 마침 울 가망하고 답답하던 차에 ⎯자네는 언제나 내게 기운을 주러 나타나는 사람만 같애.

토마스 위대한 체험을 했을 테니 죽음의 세상이 대체 어떻든가.⎯ 즐겁든가, 괴롭든가.

라사로 괜히 다시 살아난 것 같애. 사람 사는 게 이렇게 답답하구야 차라리 죽음의 세상이 편하지. 살아났다구 조금도 기쁠 게 없어.

말타 너무 노여 마라. 내 불찰로 괜히 자리를 어지럽혀서.

토마스 오늘 마침 이웃 사람 한 가호가 바빌론으로 이사를 떠난다게 그 시중을 들고 나니 이렇게 꼬박 저물었어. 이번에 새로 당으로 들어온 친구에게 나는 우리들의 수령 메슈람에게로 증명서를 써주고, 거기서 다시 허가를 얻어 가지구 바빌론으로 들어가게 되는 마련이라네. 그래두 살던 고장을 떠나는 게 설다구 울며불며 하는 걸 간신히 떼서 동구 밖까지 보내지 않았겠나.

라사로 사마리아와 유태 지방에 사는 농민들이 요새 와서 부쩍들 갈던 땅을 버리고 외국으로들 가게 됐으니 짜장 어려운 시절인 모양인데.

토마스 라마는 삼 군단이나 되는 남는 군대를 소아시아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 배치하고 예루살렘에 새로 연대를 증원했으니, 그들을 먹여 살릴 부담이 누구에게로 돌아오겠나. 새로운 세금이 또 내리자, 그 시기를 앞두고 자연 고향을 떠나게 되는 것이라네. 열심당의 세력이 팔레스타인 안에서만 아니라, 멀리 모압 바빌론 애급까지 뻗쳤으니, 메슈람의 말 한마디면 못 갈 곳이 없게 됐거든.

라사로 스물네 가지나 되는 세금에다 또 새 세금을 작정하면 어쩌란 말인구. 신전세(神殿稅), 인두세(人頭稅), 지세(地稅), 수확세(收穫稅), 가옥세(家屋稅), 하다못해 창세(窓稅), 소금세, 샘물세, 양식세(糧食稅)까지를 물게 되니, 그야말로……

토마스 부채의 이자까지를 물다 나면 백성은 꼭 전 수입의 오분지삼 이상을 떨리게 된다네. 그래두 자넨 이 땅에서 이대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예수가 자네 목숨을 살려줬다구 자네들 입속에 양식까지를 장구히 보증해 준단 말인가.

말타 한숨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고 말없이 부엌으로 들어간다.

토마스 자네 여자 예언자 하비라의 이야기를 들었나.

라사로 시나이 門 장날 실로암 못가에 나타났던 예언자 말인가.

토마스 그래. 얼마 안 가 구세주가 하늘의 군세를 이끌고 예루살렘에 강림하실 것이다. 오늘부터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여호바 이외의 권자(權者)에게 세금을 바치는 자는 지옥의 불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고 예언한 여자 말이네. 하루는 대관(代官) 피라토가 오펠산에 올라 그 양을 바라보고 천인장(千人長) 타시터스와 무어라 수군거리더니 이튿날 아침 한놈 산골짜기에 하비라의 시체가 쓰러져 개밥이 되어 있더라네. 그는 헤브론에 가까운 마을의 농부의 아내인데 남편이 빚 때문에 옥에 갇히게 되구 갓난애가 굶주려 죽고 하니까, 그만 실성해져서 예언자가 되었다는데⎯ 문제는 그런 불쌍한 예언자는 지금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있는 것이구 그들이 다 필경은 하비라와 같은 운명을 당할 것이란 말이네. 이런 어지러운 세상에 예언자인들 왜 안 나오겠나만, 구세주라는 게 결국 위대한 한 사람의 개인이 아니라 우리들이 다 각각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용기와 지혜라고 나는 믿네. 우리 자신을 떠나서는 구세주두 없는 게구, 우리의 힘을 믿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도 없는 것이야.

라사로 자넨 예수의 권능을 소홀히 여기진 않나. 예수의 힘으로만 백성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가.

토마스 예수는 약하구 온순하구 생각이 우리와는 달러. 칼로서 악한 권세를 물리치구 나라를 편안함에 두는 게 우리들의 바라는 것이지, 모욕을 무릅쓰고 괴롬을 참구 적을 사랑함이 우리의 원이요 할 일은 아니거든. 차라리 나는 우리들의 영웅 메슈람을 더 위대하다구 보네. 용기와 계략과 전법이 참으로 만인을 거느리기에 족하구. 나라를 계교함에 넉넉하단 말이야.

라사로 메슈람. 그가 그토록도 위대하단 말인가. 한번 이 눈으로 보았으면 좋겠네…… 뭐가 뭔지 내겐 분간할 수 없어.

마리아 어지러운 얼굴을 수습하고 부엌에서 나온다.

마리아 (토마스에게) 잘 오셨어요. 마침 만찬을 준비했는데 함께 참가해주세요. 라사로도 기뻐하게⎯.

토마스 과히 늦지 않고 폐 되지 않는다면 자리에 앉지요. 내게도 오늘 걸음이 당분간 마지막일 것 같으니요. 오늘밤 요단강을 건너야겠어요.

라사로 페레야로 간단 말인가.

토마스 메슈람의 천막을 찾을 때가 왔네. 각지에 있는 동지가 다 모여드는 때가 왔어. 키데론 강변에서는 벌써 세 차례나 집회가 있었구 열심당의 기세는 더욱 높아 간단 말이야.

라사로 때가 온 셈인가.

토마스 라마의 군단과 같은 수의 당원이라네. 메슈람의 부군(父君) 유다⎯왜 타불 산중에서 가슴을 찌르고 몸을 던진 용사 말이네⎯ 그가 남긴 단검으로 단검당(短劍黨)을 조직하고 이 시카리당의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 라마군의 한 사람씩을 찌르기로 한 것이네. 즉 같은 수로 같은 수를 물리치자는 맹세에 당원들의 의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단 말이야.

라사로 여호바 자네들을 지키소서!

마리아 그럼, 아주 싸움이 시작된단 말인가요.

토마스 ……떠나기 전에 마리아의 마음도 한 번 더 알아보아야겠구⎯ 오늘 저녁은 여러 가지로 가슴속이 복잡하구 막히는구료.

라사로 (두 사람을 피해 창 기슭으로 가 선다)

토마스 마리아의 소원이라면 난 메슈람에게 부탁해서 당장이래두 이 고장을 뜨게 하겠소. 난 벌써 평생을 싸움에 바친 몸이니, 앞으로 그다지 한가한 때가 있을 듯하지는 않으나, 이 집안이 아라비아나 바빌론에 가 살게 된다면 틈틈이 들리겠구, 거기서 농토를 얻어서 갈며 편안하게 지내게 되면, 난 라사로를 한 사람의 동지로서 메슈람에게 추천할 작정이요.

마리아 살던 고장을 뜬다는 게 어디 그렇게 쉬운 노릇인가요.

토마스 결국 마음 문제인데, 나더러 마리아의 마음을 몇 고패나 떠보란 말이요.

마리아 전 그 열정에 값가지 못하는 몸예요. 내 스스로도 기구한 반생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는데 이 더럽힌 천한 몸을 생각하시는 것이 괜히 불행하시지.

토마스 불행이니 행복이니 하는 건 내가 할 소리 아니요. 내가 만약 그 불행을 원한다면 어떻게 할 작정이요.

마리아 마음이 허락치 않아요. 지금과 처지가 달랐던들 생각도 달랐을는지 모르나, 한번 구렁에 빠졌던 몸이라 이제 다시 행복을 주장할 낯이 없어요.

토마스 언제인가 메슈람의 사랑하는 여자를 본 일이 있었는데 그 조각 같은 용모에다 말없고 권위 있는 자태가 마음을 치며 그 후부터 난 마리아를 볼 때마다 그를 연상하게 됐었소. 그들같이 훌륭한 한 쌍이 못 되더라두 난 마리아와의 자랑스런 사이를 메슈람에게 한번쯤은 보여 주려고 작정했었고,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소.

마리아 행복의 뜻이 제게는 달라졌어요. 행복 속에서가 아니라, 불행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행복이 됐어요. 될 수 있는 대로 몸과 마음에 벌을 주며 속죄의 생활을 하는 게 의무이니까요.

토마스 전과는 달라. 어디서 어느새 그런 이치를 배우게 됐소. 누구를 위한 의무구 무엇을 위한 속죄란 말요. 전의 마리아의 마음속을 누가 빼았구 무엇이 차지하구 들었단 말요.

마리아 확실히 저두 알지 못하는 무엇이 차지하고 든 것 같아요. 그것이 마음을 묶어 놓고 감시하는 모양이예요.

토마스 사랑에는 지혜가 금물이니 영리한 소리는 그만두구 어서 대답이나 해봐요.

목적(牧笛)이 울린다. 라사로가 심심파적으로 찾아내어 부는 것이다.
토마스 주머니 속에서 조그만 갑을 내서 여니 반지가 들었다. 마리아 앞에 놓으며.

토마스 주머니 속에서 묵은 지 오래였었소. 메슈람이 그의 애인에게 준 것과 똑같은 형상으로 쳐서 예루살렘의 인각사(印刻師) 루키오에게 부탁해 돌을 넣은 것인데, 루비의 형상이 하트가 아니구 별의 모양으로 된 것은 우리 당의 당표를 표징한 것이요. 돌의 붉은빛은 우리들의 피의 상징이구. 난 이 조그만 선물 속에 최대의 경의와 정성을 표했소.

마리아 선물도 몸에 맞아야 편편하지, 과분한 것은 되려 괴롭기만 해요.

토마스 이게 내 마지막 시험이니, 그런 줄이나 아시오.

마리아 똑바로 말씀 드리죠⎯ 제 마음 속엔 벌써 반지를 꼈어요.

토마스 누 누구의 반지를 꼈단 말요. 그 마음을 묶어 놓고 감시하는 게 그게 대체 무어란 말요. 누구란 말요.

마리아 양심의 목소리구 하늘의 뜻이예요.

토마스 더 좀 자세히 말해 보시오. 양심의 목소리와 하늘의 뜻이 곧 예수란 말이죠. 예수가 마리아의 마음을 그렇게 붙들고 묶어 놓았단 말이죠.

마리아 ………

토마스 예수가 무엇이길래 사랑의 자유까지를 속박한다는 말요. 하늘의 뜻이 아무리 엄격해도 사랑의 뜻만은 지울 수가 없는데, 양심과 사랑이 왜 어긋나야 한단 말요.

마리아 전 예수께 평생을 바쳤어요.

토마스 평생을 바쳤기루 사랑하지 말구 혼인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소. 예수는 이미 가나안의 혼례에 참석하지 않았소. 그 가난한 사람들의 결혼을 축복하고 모인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해 여섯 독의 물을 술로 변하는 이적을 베풀지 않았소. 우리들의 혼인두 응당 축복해 주기를 인색해하지 않을 테구 축복해 주어야 할 것이요. 그가 만약 하늘의 뜻을 대변한다면 바다같이 인자하구 너그러워야 할 것이니까. 난 오늘 그에게 우리들의 혼인을 선언하고 축복을 원할 것이요.

마리아 (앞에 놓인 반지를 거절해 물리치며) 제 마음은 이미 예수와 혼인했어요. 두 사람과 혼인하는 법은 없으니까. 더 저를 괴롭히지 마세요.

토마스 혼인을 했다.⎯ 예수두 혼인을 원하나.

마리아 선생님은 어찌 됐든 간에 전 마음으로 혼인을 했어요.

토마스 (격해서) 그렇다면 예수는 위선자이지. 땅의 아들과 고를 바 없지. 입으로만 뭇사람의 행복을 원할 뿐. 속에는 사욕이 그득 차 있는 셈이지.

마리아 (노여워하며) 선생님을 욕하는 것을 전 좋아하지 않아요.

토마스 위선자요, 사랑의 도둑이요…….

마리아 (발끈해지면서) 입을 다물어요. 다시 내 앞에서 험구를 했다간…….

토마스 (몸을 주춤하면서 입을 다문다. 격해 눈이 형형이 빛나나 금시 분이 누그러지며 날카로운 일맥의 기개만이 남는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에 목적만이 높이 울린다. 라사로는 난처한 처지에서 무관심을 가장하고 자연 목적에 힘을 들이는 수밖에는 없다. 피리 소리에 섞여 밖에서 부르는 목소리 들리더니 유다 들어온다. 고수머리와 짧은 수염의 텁석부리. 우울하면서도 표표한 자태이다.

유다 웬 피리 소리가 이렇게 야단스러운가. 라사로가 완전히 살아난 셈이지. 오! 토마스 자네두 와 있었나. 오래간만이네그려. 요새 자네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네만.

마리아 선생님두 오시나요.

유다 지금 오시던 길에 또 한 군데 클로파의 집에 병을 고치러 들어가셨는데 좀 있으면 오실걸. 문둥병인 모양이니 선생님 손길 한 번만 가면 나을 테니까.

마리아 (이지러진 모양을 매만지며) 다른 분들두 오시구.

유다 제자로는 오늘 나 하나야. 페트로와 야곱이 아까까지 모시구 있었는데, 집으로들 가구 나 혼자 남았어.

라사로 (피리를 그치고 와 선다) 오늘 그래 도합 몇 집이나 들리셨나.

유다 대여섯 집 될까. 설교하구 기도하구 찬미하구 병을 고치시구⎯ 그러기에 그저 또 하루가 다 갔지. 그 수많은 기적을 베푸시는 힘으로 내게 부귀를 주신다면 얼마나 선생님께 더 감사하련만, 내 마음 얼마나 만족하고 행복스러우련만. 그저 늘 하시는 소리가 가난한 자는 행복스러우니라⎯니, 가난해 가지구 사람이 어떻게 행복된단 말인가. 믿음이 첫째구 마음만 마음이라구 허구한 날 금욕과 악식(惡食)과 노동의 생활의 찬미니 그렇게하구 무슨 살 재미가 있겠나. 이때껏 제자 노릇에 복 받은 것 없어. 이 이상 제자 노릇 못하면 못했지, 이 가난을 더 참을 수 없구 더 깨달을 도리두 없어. 차라리 다시 천막업자 노릇을 하든지, 낙타를 한 마리 사 가지고 대상(隊商)에나 한몫 끼었으면 돈벌이두 좀 되련만, 그도 못 하는 이놈의 신세 언제 가면 고쳐질는지.

마리아 (책망하는 눈초리로) 제자두 알량하다. 열두 사람 제자 중에서 당신이 제일 빠지리다. 당신 같은 제자를 가지신 선생님이 얼마나 불행하신지. (더 듣기 싫다는 듯이 부엌으로 걸어간다)

유다 (자조(自嘲)하는 듯 혼잣말같이) 제일가는 수제자가 됐다간 그야말로 큰일 나게. 내게는 정신보다는 물질이 낫구. 믿음보다는 떡이 더 긴하거든. (식탁 위를 바라보며) 오늘은 웬 고기가 이렇게 흔한구. 선생님이 고기를 즐기지 않는데. (하면서 양고기 한 절음을 뜯어서 입에 넣는다)

말타 (접시들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다가 유다를 보고) 손버릇 얌전하다. 선생님은 어쩌구 혼자 날름 와서는 제자 꼴 됐어. (하면서 식탁 위에 접시들을 늘어놓는다)

유다 내 입이 첫째로 중하구 그 다음이 선생님이 아니겠소.

말타 선생님 대접을 잘은 해.

토마스 예수의 행사로서 권력 계급을 힐난하고 그 타락을 규탄함은 확실히 하나의 공이나 경건파의 생활신조를 백성에게 권하구 가난과 인종(忍從)의 하천한 생활을 가장 훌륭한 것인 양 강잉히 종용함은 되려 해로울지언정 조금도 유익하지 못한 일이야. 그런 소극적이고 비굴한 사상으로는 이스라엘의 오늘의 사태를 조금도 개혁할 수는 없단 말이네.

유다 나두 찬성이야. 왼 뺨을 칠 때 왜 바른 뺨까지 내놓아야 하는지, 지금까지두 그 이치는 터득하지 못했어. 먹을 것을 못 먹구 입을 것을 못 입구 밟히는 대로 맞는 대로 사람 값에 못가는 비굴한 생활을 하면서 살아서는 무엇 하구. 그 속에 무슨 뜻이 있단 말인가. 오늘을 버리고야 내일은 무엇 하자는 게구 지금을 천하게 여기는 미래는 무엇에 쓰자는 것인가.

토마스 오늘의 형편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만이 필요하고 긴급한 일이지, 내일을 믿고 다음으로 미루는 것은 대개는 꿈이요, 헛소리니, 참으로 위대한 영웅은 현재를 고치고 눈앞을 트이게 하는 법이네.

유다 먼 날의 안락보다는 그저 내겐 눈앞의 은 몇 잎이 더 중하게 뵈어.

마리아 (촛대를 들고 부엌에서 나타난다. 유다를 보고) 아직두 무어라고 지절대구 있나. 얼른 가서 선생님이나 모셔오지 못하구.

유다 (비죽비죽 웃으면서 질기게 서 있으니)

마리아 (발을 구르며) 그래두 냉큼 못 나설까.

유다 마지 못하는 듯이 문께로 향한다.
마리아 촛대를 식탁에 올려 놓고 불을 켜는 동안 모두들 침묵. 세 개의 촛대에 불을 켜고 나니 방안이 밝아지며 모든 것이 훤히 솟아 보인다.
막 문밖으로 나갔던 유다 다시 들어오니 그 뒤에 예수 따르다. 식구들 국궁(躹躬)하고 서 있는 동안에 마리아 날쌔게 뛰어가 예수의 옷자락을 붙들고 상좌로 인도. 차례차례 자리에 앉은 속에서도 토마스만 뻣뻣스럽게 예수 앞에 서 있는 결과가 되었다. 예수 눈을 감고 기도 드리는 모양.

유다 딱 문밖까지 나가니, 손수 오신단 말야.

마리아 (아직도 눈감은 예수를 보고) 얼마나 수고로우세요. 진종일 창생을 구하시느라고⎯

라사로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또 핀둥핀둥 살아났습니다.

말타 아무것도 없으나, 정성을 다했사오니, 오늘밤 잔치를 축복해 주옵소서.

마리아 (잔에 포도주를 따라 예수 앞에 놓는다)

예수 (겨우 눈을 뜨고) 자비하신 하느님이 덕택으로 오늘두 하루 무사히 지냈도다. 즐거운 자나 괴로운 자나 다 같이 그 은혜 속에 젖었도다.

라사로 (토마스에게) 자네도 자리에 앉게나.

예수 (토마스를 보고) 그대가 열심당원 토마스인가. 여호바는 그대의 용기와 수고도 또한 축복해 주실지니라.

토마스 여호바가 만약 우리의 사업을 축복해 주신다면 백성의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당원으로 만들어 주구, 우리로 하여금 라마의 대군을 박멸할 힘을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 군으로서 군을 물리치고 힘으로서 힘을 이김이 참된 승리가 아니니라.

토마스 이미 수십만의 대적이 우리들을 둘러싸고 우리들의 나라와 생활을 짓무찌르고 있으매. 이에 거역함이 옳은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시리아 총독 비테류스와 호민관 콜네류스와 대관 폰테오 필라도와 갈릴리 분봉영주(分封領主) 헤롯과 그들의 거느리고 있는 수십만의 병력⎯ 이를 물리침이 어찌 우리의 의무가 아니며, 그 우리를 지도하고 위대한 능력을 주는 이만 이 참으로 우리의 구세주 메시아일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제 그들과 대항할 만반 준비를 갖추어 가지고 메시아의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만약 참으로 다빋의 후예 메시아라면 이제 우리들을 이끌고 라마의 세력을 이 땅에서 물리쳐야 할 것이 아닙니까.

예수 그대들의 기개는 장하고 용기는 상줄 만하나, 싸움에는 또 다른 방법이 있나니라. 하느님은 피를 보시기를 즐겨하지 않으시며 적으로 하여금 그들의 무지를 알게 함이 참된 싸움이니라. 칼을 들기는 쉬운 노릇이나, 이것이 참으로 어려운 노릇이다.

토마스 우리들의 수령 메슈람은 이미 페레아에서 콜네류스의 군과 싸워 라마식 창법(槍法)과 코끼리의 전술로 네 번이나 그의 중대를 전멸시켰으므로 콜네류스는 분풀이로 시리아 총독에게 구원병을 청해 다시 싸움을 계획 중인데, 그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소아시아, 시리아, 애급, 팔레스타인에서 이만의 라마병과 이만의 사병 합 사만인데 메슈람은 바빌론 모압의 원조와 파레스타인의 농민의 반수로 조직된 농민군과를 동원하면 족히 그 사만의 군력과 싸울 자신이 있으나, 단지 겁나는 건 라마의 삼십 군단⎯ 이때에 그 역시 메시아의 출현을 기다리는 마음 간절한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갈릴리와 사마리아와 페레아와 파샨을 이끌고 일거에 팔레스타인에서 라마의 세력을 내쫓지 않고는 우리들의 구원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구원은 다른 곳에 있나니라. 사랑으로 무지를 물리치고 어떠한 곤란 속에서나 기도로서 마음의 평화를 얻을 때 구원이 있나니라. 각 사람이 다 그렇게 함으로써 필경은 세상에서 고난이 없어지고 아름다운 때가 올 것이니라.

토마스 그건 졸장부의 잠꼬대요. 비겁한 발뺌이지 그렇게 해서 천년만년 가야 아름다운 시절 나타날 리 없죠.

예수 사람이 힘으로 싸운다면 천년만년 가도 싸움이 그치지 않을 것이니라.

토마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잠꼬대가 아니고 참으로 삼손과 같이 사자의 턱을 찢을만한 힘과 용기요, 이것을 가지고만 다빋 왕국의 꿈이 재현될 것입니다. 하늘에는 정의의 태양이 빛나고 있습니다. 때는 온 것입니다. 이때를 당해 분기하지 않는 것은 이 땅의 백성이 아닙니다.

예수 그대는 아직도 모르누나,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누나.

토마스 선생은 우리들의 메시아가 못 됩니다. 용감해야 할 것입니다. 한 개의 돌로서 (투석기에서 돌을 집어낸다) 능히 라마의 백졸장을 넘어뜨리고, 당원 각 사람이 품고 있는 이 단검으로서 (품속에서 단검을 집어내니, 그 광채 촛불에 휘황해서 좌중이 엄숙해지다) 각각 한 사람씩의 라마병을 찔러야만 우리의 원하는 다빋왕국이 오고 백성들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나라가 일어서려고 하는 때입니다. 용감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하느님이여! 이 용감한 아까운 젊은이를 용서하소서. 그는 아직도 어두운 길을 헤매고 있나이다.

토마스 (단검과 돌을 수습하여) 메슈람이 나를 부릅니다. 지금 나는 페레아로 떠나야 합니다. 우리들이 힘을 다할 때 여호바 우리를 지키시고 만세 (호산나!) 소리 땅에 그득 넘칠 것입니다. (주춤하고 발을 한 걸음 옮긴다.)

라사로 (벌떡 자리를 일어서며) 그래 자네 정말 떠나려나.

토마스 (반지 든 지갑을 식탁에서 집어 들고 손아귀에 꼭 쥐며 마리아를 지긋이 바라본다) 마리아의 대답이 내게 한 층의 용기를 주었네. 벌써 마음에 남길 것이 없이 개운한 몸으로 싸움터로 갈 테야. 백성들의 부르는 소리 귓속에 들려온다. (예수에게) 마리아의 마음은 선생과 혼인했다니 마리아의 한 몸을 선생께 맡기겠소이다. 마을에 남은 내 일은 이것으로 끝났고 이제는 벌써 싸움이 있을 뿐입니다. (갑(匣)을 투석기 속에 넣고 문을 향한다)

마리아 (고개를 숙인다)

라사로 토마스, 이 어두운 밤에.

말타 저녁두 안 먹구 이대로…….

좌중의 시선을 받으며 토마스 문밖으로 사라진다.

유다 내게두 토마스의 용기가 부럽다.

마리아 선생님, 토마스를 용서하세요. 자기 생각만을 바르다고 아는 토마스를 용서해 주셔요.

예수 훌륭한 청년이다. 생각과 방법만이 그르니라.

라사로 선생님, 토마스의 생각이 왜 그릅니까.

예수 라사로야, 네 마음도 아직 구렁 속을 헤매이고 있는 증거야⎯ 싸움은 싸움을 낳을 뿐이요, 사랑만이 평화를 낳나리라.

라사로 이 어려운 때 사랑만으로 어찌 결단이 나겠습니까. 적을 사랑하다 적에게 물리워도 옳습니까.

예수 적이 그 스스로의 그릇됨을 깨달을 날이 반드시 있는 것이요, 그때에 너는 이기는 셈이 되나니라.

라사로 당장의 욕을 참고 그때에 이겨서는 무엇합니까. 욕을 받고 참는 것이 되려 죄가 아니겠습니까.

예수 네 마음의 미혹이 아직도 크니라. 내 말을 새겨듣고 하루바삐 깨달을지니라.

말타 어서 식사들을 시작하셔요. (각각 잔에 포도주를 따라 주니 천천히 떡을 뜯기 시작한다)

유다 선생님은 그 위대하신 힘으로 왜 토마스의 이상을 실현시켜 주시지 못합니까. 바른 일을 위해서만 하느님의 힘을 대신해서 기적을 베푸시는 선생님이 이제 큰 국가의 바른 일을 위해서 왜 위대한 기적을 베푸시지 않습니까. 나라의 이상이요, 백성의 희망인 그 큰 사업을 행함은 선생님의 힘밖에는 없는데 왜 그것을 행하시지 않으시렵니까.

예수 내게 그것을 묻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내 대답은 늘 같으니라⎯ 그들은 메시아의 참된 뜻을 모르고 묻는 것이니라. 종래의 메시아의 관념으로 나를 해석하면 내 뜻을 그르치나니라. 나는 마음의 메시아인 것이요, 힘과 권세는 내 원하는 바 아니니라.

유다 그러나 사람들의 원은 그와는 다르지 않습니까. 토마스의 열정을 도와주고 인도함이 어찌 옳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빋 왕국의 꿈을 실현함에는 그것이 가장 첩경인 것을.

예수 칼을 들고 싸운다고 금시 왕국이 오는 것이 아니니라. 싸움은 싸움을 낳고 피는 피를 불러서 천년 이천년을 가도 세상은 지금과 매일반. 결코 좋은 시절이 오지는 않을 것이니라.

유다 그러면 대체 세상은 필경 어떻게 되어 나가고 어느 때에나 좋은 시절이 온단 말입니까.

예수 사랑과 믿음은 언제든지 착한 것이요, 그 외의 모든 것은 다 악한 것이니라. 세상 구석구석에 악이 늘어가고 넘쳐갈 때 최후의 심판의 날이 올것이니라. 삼천년 후가 될지 구천년 후가 될지 그것은 세상이 되어갈 나름이나, 그날 착한 것은 구원을 받고, 악한 것은 멸망을 당할 것이니라.

라사로 최후의 심판까지도 너무도 세월이 멀지 않습니까. 주의 힘으로 눈앞의 악을 왜 당장에 심판할 수 없습니까. 지금두 세상 구석구석에 악이 충분히 넘쳐 있지 않습니까.

예수 그것을 나도 잘 안다. 악이 넘쳐 있음을 나도 잘 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내 마음 아프니라.

라사로 그 악을 물리치려는 토마스의 용기가 얼마나 갸륵합니까.

예수 (침묵)…… 사실 내게도 오늘 저녁 토마스가 남기고 간 말이 범연하지는 않다. 자꾸만 가슴속을 헤치고 드누나. 세상에는 악이 너무도 많다. 그 악이 내 신변에도 점점 가까이 미쳐 옴을 내 못 볼 리 없느니라.

마리아 (다시 침묵하는 예수를 의아해 그 안색을 살핀다)

예수 …… (고요하고 침통한 어조로) 엿새 있으면 유월절, 그날 나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것이다. 나귀를 타고 성문을 들어설 때, 백성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땅에 펴고 호산나! 를 부르며 나를 왕으로 맞이하리라. 그러나 파리새교도와 사도개파와 제사장(祭司長)은 나와 그 백성들의 환영을 즐겨 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열두 사람 속에 나를 배반하는 한 사람의 제자가 생기리라. (유다 영문을 몰라 예수를 바라본다)…… 물독 놓인 이층집 객실에서 최후의 만찬을 나눌 때 나는 그 배반한 제자를 지적해 내리라. 올리브산에 올랐다 케데론강을 건너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 혼자 기도를 드릴 때 배반자는 병사들을 데리고 나를 잡으러 오리라. 은전 서른 잎으로 그는 나를 제사장에게 판 것이니라…… 다음날 나는 필라토와 해롯의 재판을 받고 자색 옷에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거리를 걸을 것이다. 골고다에서 갈보리 언덕으로⎯ 거기에서 병사들의 모욕 속에서 목숨을 버리리라…… 그러나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해서 하늘로 오를 것이니라…… (두 줄기 눈물이 볼을 흘러내린다. 침묵 속에서 좌중은 놀람과 의구의 표정으로 예수를 바라본다)

마리아 선생님, 선생님, 그게 정말입니까. 선생님은 선생님의 앞날을 그렇게 또렷이 보십니까.

예수 (눈물 속에서) 세상의 죄악이 각각으로 나를 둘러싸 오는 것을 나는 아느니라. 그러나 마리아여, 그대는 마지막까지 나를 모시는 자의 한사람이 될 것이니라.

유다 그래 선생님을 배반하는 건 대체 누 누구이겠습니까. 열두 사람 중의 누 누구이겠습니까.

예수 그때가 오면 알리라.

말타 여호바여, 선생님을 길이길이 지켜주소서!

라사로 그 악과 박해를 선생님은 왜 물리치지 못하십니까. 하느님의 힘을 빌어 왜 물리치지 못하십니까.

예수 …… 하느님은 그들을 용서하실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범하고 있는 허물을 모르는 까닭이니라.

마리아 선생님 그 불길한 예언은 정말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세요.

하면서 마리아 일어서 나아드의 향유를 들고 예수의 앞에 이르다. 무릎을 꿇고 그 발에 접문(接吻)하고 향유를 바른다. 예수 흔연히 발을 맡기니 방향이 집안에 넘치고 좌중은 그 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 근의 향유를 다 바른 후 마리아는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훔친다.

마리아 여호바께서 선생님을 영원히 보호해 주소서. 이교도들의 괴악한 음모에서 선생님을 속히 건져 주소서! 이 죄 많은 자의 꼭 한 가지 원이로소이다.

예수 마리아여, 그대의 고마운 뜻은 내 항상 기쁘게 여기는 바이니라. 그대는 여호바를 믿으니 행복되고 여호바는 그대의 정성을 잊지 않으리라.

말타 향유의 정성으로 선생님이 무사하시기를 비나이다.

유다 이 향기! 날드의 향유는 집안을 금시에 꽃밭으로 변하고 수풀로 화한 것도 같다.

말타 (변덕스런 말에 유다를 본다)

유다 그러나 마리아 이건 확실히 사치한 짓이야.

마리아 (공구(恐懼)하고 민망스런 표정으로 유다를 쳐다본다)

유다 (노여운 어조로) 적어도 삼백 냥 어치는 되는 향유를 그렇게 물 쓰듯 헛되게 흘려 버려.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돈을 노나 준다면. 그편이 얼마나 더 값있고 여호바의 뜻에 맞을는지 모를 것을. 사치한 짓이야. 쓸데없는 짓이야.

마리아 저런 버릇없는 소리.

말타 (그 亦 라사로와 함께 유다의 말에 뜨끔하고 놀라는 표정)

예수 (변하는 기색 없이 유다에게) 그대의 말이 옳도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줌이 훨씬 생색 있는 노릇이니라. 그러나 유다여, 그대의 뜻은 참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 하는 소리인가 나는 의심하노라.

유다 무 물론 가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 하는 소리지 그럼, 내 내가 그 그 돈을 뭐……

예수 옳다. 그대의 뜻을 내 잘 아노라. 그대는 회계를 맡은 사람, 행여나 검은 마음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을 내 잘 아노라. (물론 이 말은 유다에게 풍자로 들리지 않을 수 없다)

유다 제 마음을 의 의심하신다면 앞으로는 회 회계를 맡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까짓……

예수 아예 장담을 할 것이 아니니라. 사람은 제 마음을 제 스스로 모르는 때가 있느리라. 그대는 더욱더욱 기도를 드리고 하느님의 뜻을 바로 깨달으려고 힘써야 할 것이니라.

유다 그래도 자꾸 의 의심하시려 하시니 ⎯마치 열두 제자 속의 한 사람의 배신자가 되리라는 것처럼.

아까부터 밖에서 들리는 군중의 목소리 이때 한층 집 가까이 수선스럽게 나며 집안 사람들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창과 문께를 두리번거리고 바라보는 동안에 토마스 황급하게 문으로 뛰어든다. 헐레벌떡거리며 위급한 모양. 사람들의 시선 그에게로 집중된다.

라사로 아직 떠나지 못했나. 어 어디를 헤매구 있었나.

토마스 …………

말타 무슨 일이나 저지르지 않았나 또.

토마스 백졸장을 죽였어. 돌을 던졌더니, 그 자리에 쓰러지면서. (모두들 뜨끔하는 기색)

라사로 그래 자네가 백졸장을.

토마스 헤파門을 나서려니 앞을 와 막으며 길을 주지 않네. 그걸 물리치지 않고 오늘밤으로 떠나기 어렵겠게 한 수를 먼저 짚어 돌총을 주었더니,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어. 병졸들이 와르르 몰려오는 속을 단숨에 내달았더니 땀이 한바탕 몸을 씻었네.

유다 기어코 자넨 용감한 짓을 하고야 말았네 그려.

라사로 괜히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았나. 큰일도 터지기 전에 쓸데없는 조그만 일에.

토마스 앞을 막는 장해는 조그만 것이라도 차례차례로 물리칠 수밖엔.

마리아 어쩌면 땀이 저렇게 물 흐르듯. 저 손의 피와.

예수 토마스여, 그대의 그 용기의 값이 무엇인고. 그 수고와 불안뿐이 아닌가.

토마스 저는 제가 한 일을 언제나 그르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비록 수고가 크더라도 결코 뉘우치는 법이 없습니다.

유다 용감하다, 토마스. 요새 백졸장의 기세가 급작스리 올라 지나는 사람을 누구나 할 것 없이 세워 보고 수색하고 하는 그 꼴이 눈에 드러나게 아니꼬워서 견디기 어려웠는데 궐자를 없애 버린 건 통쾌하기 짝 없어.

마리아 라마의 백졸장이 왜 겨우 한 사람이라구, 한 사람 없앤 것이 바닷가의 모래 한 낱 집어낸 것만큼밖에 안 되는데, 그 바다 같은 세력을 이루 다 어떻게 물리친단 말요.

말타 한 사람 없애면 비 온 뒤 버섯 돋아나듯, 또 차례차례로 한 사람씩 돋아날 텐데.

라사로 그래 부하의 병졸들이 자네 뒤를 따르지나 않았나.

토마스 와르르 헤어져서 따르는 눈치데만 어둠 속에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하겠나.

라사로 그렇게 태연스럽게 서 있는 건 위험해. 금시 밀려들면 어쩌겠나. 잠깐 동안 몸을 숨기게.

토마스 그까짓 밀려들면.

말타 무폭한 것이 용기가 아니야. 일을 좋을 대로 해야 하는 것이지. 자, 어서.

말타 토마스의 등을 밀치며 부엌으로 급스럽게 향한다. 토마스 뻣뻣스럽게 선 걸음을 치면서 결국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말타 문을 닫고 나와 함께들 다시 자리에 앉았을 때 요란스런 발소리가 나며 라마병사 갑, 을 밀려든다. 방 사람들 지극히 침착한 태도로 식사를 계속.

라마병사 갑 이집두 아닌 모양인가. 조용할 젠.

병사 을 (두리번거리다 식구들을 향해) 바로들 대. 투석기를 멘 열심당원이 이 집으로 들어오는 걸 보았어.

라사로 보았으면 찾든지 하지 웬 큰소리요.

말타 집을 잘못 들었나 보오.

병사 갑 차례차례로 아무 집에두 없으면 그럼 하늘엘 올랐단 말인가.

병사 을 (방 구석구석을 살피고 부엌을 비끔이 엿보았다 창밖을 기웃거렸다 한다)

말타 뉘 아우. 하늘에 올랐는지 땅에 들었는지.

병사 갑 속이면 안돼. 라마 사람을 속였다간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가 너희들을 벌줄 테야 (칼로 위협하며) 너희들을 지켜주는 우리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 너희들의 의무가 아니야.

라사로 그러게 마음대로 찾아보라니깐.

병사 갑 (이번엔 라사로를 달래며) 바로 대주렴. 집으로 안 들어왔다면 다른 곳으로 가는 걸 보았다든지. ⎯놈이 우리들의 백졸장을 돌로 쳤단 말이야. 병영 안은 지금 한바탕 발끈 뒤집혔는데, 놈을 찾아내서 당장으로 목을 자르지 못한다면 그 책임을 맡은 우리들의 목숨이 위험하단 말이다. 영창에 들어가 며칠을 객기든지 감식(減食)을 당하든지 하지 않으면 안되는 판이야. 군율이 추상같이 엄하다. 바로 대는 것이 너희들의 의무이자 동시에 우리를 사랑하는 셈도 된다.

라사로 (분한 마음에) 아, 불쾌하다.

말타 벌써 잘 갔으면 동구 밖은 나갔겠소.

병사 갑 그래 정말 도망가는 걸 보았단 말인가.

병사 을 (칼끝으로 식탁의 양고기를 집어서 먹으면서) 요새 백성들의 말을 믿을 순 없어. 거개 열심당이 아니면 예수의 당파이고, 적어도 그들과 내통하고 있는 기미가 보이거든. 어느 놈이나 보는 족족 다 그놈들의 당파라고 보면 어김없어.

병사 갑 (을과 고기를 나누며) 그럼 도망가는 걸 보았다는 것두 거짓말일까.

병사 을 믿을 순 없어. (식탁의 고기를 또 찔러 간다)

유다 버릇없는 자들이여. 예수의 앞을 두려워하라!

병사 을 (그제서야 주춤하면서 바로 옆에 앉은 것이 예수임을 인정한다) 정말 언제인가 본 예수의 모습이야. 갈릴리의 나사렛 사람 예수는 다빋의 후예인 구세주로서 하늘의 힘을 빌어 그 신령스런 재주가 놀랍다는데.

병사 갑 (자태를 바로잡으며) 마나의 떡과 고기의 기적을 행하구 병을 고치구 장님을 뜨게 하구 죽은 사람을 살리고 한다는 그 예수 말인가.

병사 을 그러구보니, 오늘도 죽었던 사람을 살려 냈다는데⎯ 옳지 바로 이 집 라사로 네가 살아났단 말이구나. (비로소 외구(畏懼)의 표정으로 예수를 대하며, 병사 갑도 그를 본받는다)

유다 버릇없는 말과 행동을 삼가라. 선생님의 기적으로는 너희들의 목숨을 이 자리에서 고스란히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라사로 불쾌한 것들.

병사 갑 (겁을 먹고 황망해 하며) 예 예수에게는 거짓이 없을 테니, 그가 사람을 감추었을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병사 을 글쎄 다음 집에나 가 볼까.

병사 갑 (라사로에게) 정말 속이지는 않으렸다.

라사로 …………

병사 을 (말타에게) 속였다간.

말타 (고개를 흔든다)

유다 그래도 냉큼들 선생님 앞을 못 떠나.

병사 갑, 을 비슬비슬들 나간다.

라사로 불쾌한 것들이다. 이런 욕을 보면서 여기서 더 살고 싶지는 않아.

마리아 살지 않고는 어떻게.

라사로 이 고장에선 더 살 수 없어요.

말타 (부엌으로 들어가 토마스를 데리고 나온다)

유다 외람하게 선생님 이름을 빌었으나 그러지 않고는 녀석들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예수 토마스의 위기를 구할 수 있었다면, 나는 내 이름을 그다지 아끼지 않나니라.

토마스 선생의 덕을 감사합니다.

예수 속히 페레아로 그대들의 영웅 메슈람에게로 떠남이 옳으니라. 나는 벌써 그대의 생각을 구속할 수 없느니라. 내게 내 맡은 일이 있듯이 그대에게는 그대의 맡은 일이 있나니라.

토마스 말씀 들으니 용기가 백배나 솟습니다. 주의 뜻으로 제 행동을 인정하시니, 반드시 성공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예수 여기는 오래 머물기 위험한 곳이야. 속히 나가 성밖 수풀 속에 잠겼다가 밤중을 기다려 페레아로 가는 길을 잡음이 가하니라.

토마스 말씀대로 좇겠습니다. (몸을 추스른다)

마리아 기어코 가시나요. 선생님의 뜻이 앞길을 축복해 주시기를!

말타 저녁두 못 먹구. (양고기 한 덩이를 싸서 그의 투석기 속에 넣어 준다)

유다 자네 앞길을 비네.

토마스 그럼, 모두 편안히들⎯

라사로 토마스! (그의 앞으로 나서며) 나두 이제야 마음을 작정했네. 오랫동안 헤매이다가.

토마스 잘 있게나.

라사로 토마스, 나두 자네와 같이 가기로 했네.

말타 라사로!

마리아 (말타와 거의 동시에) 라사로!

라사로 나두 페레아로! 메슈람의 천막으로! 가겠네. 부르는 소리 들리는 듯도 해. 자네와 함께 가서 일하는 곳에만 산 보람이 있을 것 같네.

마리아 너마저 페레아로!

말타 집을 버리고 가면 어쩌잔 말이냐.

라사로 이 땅에선 더 살 수 없어요. 가서 새 땅을 개척해 놓고 오지요.

토마스 자네 뜻은 장하나⎯ 잘 생각해 처단하게.

마리아 (예수에게) 선생님, 라사로의 뜻을 바로잡아 주소서.

예수 (깊게 묵상할 뿐)

라사로 (토마스를 재촉하며) 자, 어서 가세. 난 이 모양 이대로 좋으니, 어서 베다니를 벗어나세.

말타 (예수에게) 선생님의 한마디만이 라사로를 머무르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 …… 지금에는 내 말도 힘 없나니라. 이상을 가진 젊은이의 마음을 휘어잡을 자 세상에 없나니라.

마리아 라사로가 가면 집안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 그로 하여금 떠나게 함이 가하니라. (고개를 숙인 채 묵상)

라사로 선생님. 떠나겠습니다. 제게는 이것이 제일 바른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소원의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좋은 동무를 얻은 것이 요행⎯ 토마스는 나를 잘 지도해 줄 것입니다.

토마스 문을 향하니 라사로 뒤를 따른다. 라사로의 자태 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말타 라사로! 라사로!

마리아 라사로야. 그래 정말 간단 말이냐. (말타와 함께 쫓아 나간다)

―幕―

(附記. 작중 인물 토마스의 등장과 그와 뭇 인물과의 관계 및 거기에 관련된 일체의 행동은 전거가 없는 것이며 순전히 작자의 창정(創定)임을 말해둔다―8월 12일. 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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