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집/제8권 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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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序[편집]

友居倫季。
匪厥疎卑。
如土於行。
寄王四時。
親義別叙。
非信奚爲。
常若不常。
友廼正之。
所以居後。
廼殿統斯。
三狂相友。
遯世流離論厥讒諂。
若見鬚眉。
 於是述馬駔。

士累口腹。
百行餒缺。
鼎食鼎烹。
不誡饕餮。
嚴自食糞。
迹穢口潔。
 於是述穢德先生。

閔翁蝗人。
學道猶龍。
託諷滑稽。
翫世不恭。
書壁自憤。
可警惰慵。
 於是述閔翁。

士廼天爵。
士心爲志。
其志如何。
弗謀勢利。
達不離士。
窮不失士。
不飭名節。
徒貨門地。
酤鬻世德。
商賈何異。
 於是述兩班。

弘基大隱。
迺隱於遊。
淸濁無失。
不忮不求。
 於是述金神仙。

廣文窮丐。
聲聞過情。
非好名者。
猶不免刑。
矧復盜竊。
要假以爭。
 於是述廣文。

孌彼虞裳。
力古文章。
禮失求野。
亨短流長。
於是述虞裳。

世降衰季。
崇飾虗僞。
詩發含珠。
愿賊亂紫。
逕捷終南。
從古以醜。
於是述易學大盜。

入孝出悌。
未學謂學。
斯言雖過。
可警僞德。
明宣不讀三年善學。
農夫耕野。
賓妻相揖。
目不知書。
可謂眞學。
 於是述鳳山學者。

자서[편집]

友居倫季。
匪厥疎卑。
如土於行。
寄王四時。
親義別叙。
非信奚爲。
常若不常。
友廼正之。
所以居後。
廼殿統斯。
三狂相友。
遯世流離論厥讒諂。
若見鬚眉。
 이에 〈마장전〉을 짓는다.

선비들이 입과 배[1]에 연연하면
온갖 행실이 썩고 일그러진다.
솥을 걸어놓고 잘 먹다가[2] 그 솥에 삶겨 죽어도[3]
도철 같은 탐욕[4]을 경계하지는 못하는데[5]
엄씨는 똥으로 먹고 살아서
하는 일은 더러워도 입은 깨끗하다네.
 이에 〈예덕선생전〉을 짓는다.

민옹은 사람을 누리로 여겼고
가히 용의 법도를 익혔다.[6]
비꼬고 풍자하는 골계로
공손치 못하게 세상을 놀렸으나
벽에 글을 써 스스로 힘쓴 것은
게으른 자들을 깨우칠 만하다.
 이에 〈민옹전〉을 짓는다.

선비란 곧 본래 존귀한 것[7]이고
선비의 마음이 바로 뜻이다.[8]
그 뜻이란 무엇인가?
권세와 이익을 꾀하지 말고
출세해도 선비임을 멀리하지 않고
곤궁해도 선비임을 버리지 않음이라.
이름과 절개를 삼가지 않고
가문을 들먹이고 땅을 팔아
대대의 덕을 속여 판다면
장사치와 다를 바가 무에 있으랴.
 이에 〈양반전〉을 짓는다.

홍기는 은자 중에도 대은[9]이라
비로소 놀러 다니면서 숨었다오.
세상이 맑건 흐리건 자신을 잃지 않고
남을 해치지도 않고 탐내지도 않았네.[10]
 이에 〈김신선전〉을 짓는다.

광문이는 가난한 거지인데
명성이 실정보다 지나쳤네.[11]
이름 나기를 좋아하지 않아도
형벌을 면치 못하거늘
하물며 이름을 도둑질해
거짓되이 다툴 수 있으리오.
 이에 〈광문전〉을 짓는다.

저 아름다운 우상은
옛 문장[12]에 힘을 써서
서울에서 잃은 예를 시골에서 구했으니[13]
제사는 짧아도 그 흐름은 길어라.
 이에 〈우상전〉을 짓는다.

세상이 몰락해 쇠잔하고 미약하니
허위로 꾸미고 이를 숭상한다.
시를 읊으면서 구슬을 파내가는[14]
향원처럼 사악한 자야, 어지러운 자줏빛아.[15]
종남산에 숨어 재빨리 출세하는[16]
그런 짓거리를 예로부터 추하게 여겼으니
 이에 〈역학대도전〉을 짓는다.

안에서는 효도하고 밖에서는 공손하면
배우지 않았어도 배웠다 하리니.
이 말이 비록 지나치지만
거짓된 도덕을 경계하기 충분하다.
明宣不讀三年善學。
農夫耕野。
賓妻相揖。
目不知書。
可謂眞學。
 이에 〈봉산학자전〉을 짓는다.


馬駔傳[편집]

馬駔舍儈。擊掌擬指。管仲,蘇秦鷄狗馬牛之血信矣。微聞別離。拋彄裂帨。回燈向壁。垂頭呑聲。信妾矣。吐肝瀝膽。握手證心。信友矣。然而界準 音嶻 隔扇。左右瞬目。駔儈之術也。動蕩危辭。餂情投忌。脅强制弱。散同合異。覇者說士。捭闔之權也。昔者有病心而使妻煎藥。多寡不適。怒而使妾。多寡恒適。甚宜其妾。穴牕窺之。多則損地。寡則添水。此其所以取適之道也。故附耳低聲。非至言也。戒囑勿洩。非深交也。訟情淺深。非盛友也。宋旭,趙闒拖,張德弘。相與論交於廣通橋上。闒拖曰。吾朝日鼓瓢行丐。入于布廛。有登樓而貿布者。擇布而舐之。暎空而視之。價則在口。讓其先呼。旣而兩相忘布。布人忽然望遠山。謠其出雲。其人負手逍遙。壁上觀畵。宋旭曰。汝得交態。而於道則未也。德弘曰。傀儡垂帷。爲引繩也。宋旭曰。汝得交面。而於道則未也。夫君子之交三。所以處之者五。而吾未能一焉。故行年三十。無一友焉。雖然。其道則吾昔者竊聞之矣。臂不外信。把酒盃也。德弘曰。然。詩固有之。嗚鶴在陰。其子和之。我有好爵。吾與爾縻之。其斯之謂歟。宋旭曰。爾可與言友矣。吾向者告其一。爾知其二者矣。天下之所趨者勢也。所共謀者名與利也。盃不與口謀。而臂自屈者。應至之勢也。相和以鳴非名乎。夫好爵利也。然而趨之者多則勢分。謀之者衆則名利無功。故君子諱言此三者久矣。吾故隱而告汝。汝則知之。汝與人交。無譽其善。譽其成善。倦然不靈矣。毋醒其所未及。將行而及之。憮然失矣。稠人廣衆。無稱人第一。第一則無上。一座索然沮矣。故處交有術。將欲譽之。莫如顯責。將欲示歡。怒而明之。將欲親之。注意若植。回身若羞。使人欲吾信也。設疑而待之。夫烈士多悲。美人多淚。故英雄善泣者。所以動人。夫此五術者。君子之微權。而處世之達道也。闒拖問於德弘曰。夫宋子之言。陳義獒牙。廋辭也。吾不知也。德弘曰。汝奚足以知之。夫聲其善而責之。譽莫揚焉。夫怒生於愛。情出於譴。家人不厭時嗃嗃也。夫已親而逾疎。親孰踰之。已信而尙疑。信孰密焉。酒闌夜深。衆人皆睡。默然相視。倚其餘醉。動其悲思。未有不悽然而感者矣。故交莫貴乎相知。樂莫極乎相感。狷者解其慍。忮者平其怨。莫疾乎泣。吾與人交。未甞不欲泣。泣而淚不下。故行于國中三十有一年矣。未有友焉。闒拖曰。然則忠而處交。義而得友。何如。德弘唾面而罵之曰。鄙鄙哉。爾之言之也。此亦言乎哉。汝聽之。夫貧者多所望。故慕義無竆。何則。視天莫莫。猶思其雨粟。聞人咳聲。延頸三尺。夫積財者。不恥其吝名。所以絶人之望我也。夫賤者。無所惜。故忠不辭難。何則。水涉不褰。衣弊袴也。乘車者。靴加坌套。猶恐沾泥。履底尙愛。而况於身乎。故忠義者。貧賤者之常事。而非所論於富貴耳。闒拖愀然變乎色曰。吾寧無友於世。不能爲君子之交。於是相與毁冠裂衣。垢面蓬髮。帶索而歌於市。

滑稽先生友情論曰。續木吾知其膠魚肺也。接鐵吾知其鎔鵬砂也。附鹿馬之皮。莫緻乎糊粳飯。至於交也。介然有閒。燕越之遠也非閒也。山川閒之非閒也。促膝聯席非接也。拍肩摻袂非合也。有閒於其閒。衛鞅張皇。孝公時睡。應侯不怒。蔡澤噤喑。故出而讓之。必有其人也。宣言怒之。必有其人也。趙勝公子爲之佋介。夫成安侯常山王。其交無間。故一有間焉。莫能爲之間焉。故可愛非閒。可畏非間。諂由閒合。讒由閒離。故善交人者。先事其間。不善交人者。無所事間。夫直則逕矣。不委曲而就之。不宛轉而爲之。一言而不合。非人離之。己自阻也。故鄙諺有之曰。伐樹伐樹。十斫無蹶。與其媚於奧。寧媚於竈。其此之謂歟。故導諛有術。飭躬修容。發言愷悌。澹泊名利。無意交遊。以自獻媚。此上諂也。其次讜言款款。以顯其情。善事其間。以通其意。此中諂也。穿馬蹄。弊薦席。仰唇吻。俟顔色。所言則善之。所行則美之。初聞則喜。久則反厭。厭則鄙之。乃疑其玩己也。此下諂也。夫管仲九合諸侯。蘇秦從約六國。可謂天下之大交矣。然而宋旭闒拖乞食於道。德弘狂歌於市。猶不爲馬駔之術。而况君子而讀書者乎。

마장전[편집]


穢德先生傳[편집]

蟬橘子有友曰穢德先生。在宗本塔東。日負里中糞。以爲業。里中皆稱嚴行首。行首者。役夫老者之稱也。嚴其姓也。子牧問乎蟬橘子曰。昔者。吾聞友於夫子曰。不室而妻。匪氣之弟。友如此其重也。世之名士大夫。願從足下遊於下風者多矣。夫子無所取焉。夫嚴行首者。里中之賤人役夫。下流之處而恥辱之行也。夫子亟稱其德曰先生。若將納交而請友焉。弟子甚羞之。請辭於門。蟬橘子笑曰。居。吾語若友。里諺有之曰。醫無自藥。巫不己舞。人皆有己所自善而人不知愍然。若求聞過。徒譽則近諂而無味。專短則近訐而非情。於是泛濫乎其所未善。逍遙而不中。雖大責不怒。不當其所忌也。偶然及其所自善。比物而射其覆。中心感之。若爬癢焉。爬癢有道。拊背無近腋。摩膺毋侵項。成說於空而美自歸。躍然曰知如是而友可乎。子牧掩耳卻走曰。此夫子敎我以市井之事。傔僕之役耳。蟬橘子曰。然則子之所羞者。果在此而不在彼也。夫市交以利。面交以諂。故雖有至懽。三求則無不踈。雖有宿怨。三與則無不親。故以利則難繼。以諂則不久。夫大交不面。盛友不親。但交之以心。而友之以德。是爲道義之交。上友千古而不爲遙。相居萬里而不爲疎。彼嚴行首者。未甞求知於吾。吾常欲譽之而不厭也。其飯也頓頓。其行也伈伈。其睡也昏昏。其笑也訶訶。其居也若愚。築土覆藁而圭其竇。入則蝦脊。眠則狗喙。朝日煕煕然起。荷畚入里中除溷。歲九月天雨霜。十月薄氷。圊人餘乾。皁馬通。閑牛下。塒落鷄。狗鵝矢。笠豨苓。左盤龍。翫月砂。白丁香。取之如珠玉。不傷於廉。獨專其利。而不害於義。貪多而務得。人不謂其不讓。唾掌揮鍬。磬腰傴傴。若禽鳥之啄也。雖文章之觀。非其志也。雖鍾皷之樂。不顧也。夫富貴者。人之所同願也。非慕而可得。故不羡也。譽之而不加榮。毁之而不加辱。枉十里蘿蔔。箭串菁。石郊茄蓏水瓠胡瓠。延禧宮苦椒蒜韭葱薤。靑坡水芹。利泰仁土卵。田用上上。皆取嚴氏糞。膏沃衍饒。歲致錢六千。朝而一盂飯。意氣充充然。及日之夕。又一盂矣。人勸之肉則辭曰。下咽則蔬肉同飽矣。奚以味爲。勸之衣則辭曰。衣廣袖不閑於體。衣新不能負塗矣。歲元日朝。始笠帶衣屨。遍拜其隣里。還乃衣故衣。復荷畚入里中。如嚴行首者。豈非所謂穢其德而大隱於世者耶。傳曰。素富貴行乎富貴。素貧賤行乎貧賤。夫素也者定也。詩云夙夜在公。寔命不同。命也者分也。夫天生萬民。各有定分。命之素矣。何怨之有。食蝦醢。思鷄子。衣葛羨衣紵。天下從此大亂。黔首地奮。田畝荒矣。陳勝,吳廣,項籍之徒。其志豈安於鋤耰者耶。易曰。負且乘致寇。至其此之謂也。故苟非其義。雖萬鍾之祿。有不潔者耳。不力而致財。雖埒富素對。有臭其名矣。故人之大往飮珠飯玉。明其潔也。夫嚴行首負糞擔溷以自食。可謂至不潔矣。然而其所以取食者至馨香。其處身也至鄙汚。而其守義也至抗高。推其志也。雖萬鍾可知也。繇是觀之。潔者有不潔。而穢者不穢耳。故吾於口體之養。有至不堪者。未甞不思其不如我者。至於嚴行首無不堪矣。苟其心無穿窬之志。未甞不思嚴行首。推以大之。可以至聖人矣。故夫士也窮居。達於面目恥也。旣得志也。施於四體恥也。其視嚴行首。有不忸怩者幾希矣。故吾於嚴行首師之云乎。豈敢友之云乎。故吾於嚴行首。不敢名之。而號曰穢德先生。

예덕선생전[편집]


閔翁傳[편집]

閔翁者。南陽人也。戊申軍興從征功授僉使。後家居。遂不復仕。翁幼警悟聰給。獨慕古人奇節偉跡。慷慨發憤。每讀其一傳。未甞不歎息泣下也。七歲大書其壁曰。項槖爲師。十二。書甘羅爲將。十三。書外黃兒遊說。十八。益書去病出祈連。二十四。書項籍渡江。至四十。益無所成名。乃大書曰孟子不動心。年年書益不倦。壁盡黑。及年七十。其妻嘲曰。翁今年畵烏未。翁喜曰。若疾磨墨。遂大書曰范增好奇計。其妻益恚曰。計雖奇將幾時施乎。翁笑曰。昔呂尙八十鷹揚。今翁視呂尙猶少弱弟耳。歲癸酉甲戌之間。余年十七八。病久困劣。留好聲歌。書畵古釖。琴彛器諸雜物。益致客。俳諧古譚。慰心萬方。無所開其幽鬱。有言閔翁奇士。工歌曲。善譚辨。俶恠譎恢。聽者人無不爽然意豁也。余聞甚喜。請與俱至。翁來而余方與人樂。翁不爲禮。熟視管者。批其頰大罵曰。主人懽。汝何怒也。余驚問其故。翁曰。彼瞋目而盛氣。匪怒而何。余大笑。翁曰。豈獨管者怒也。笛者反面若啼。缶者嚬若愁。一座默然。若大恐。僮僕忌諱笑語。樂不可爲歡也。余遂立撤去。延翁坐。翁殊短小。白眉覆眼。自言名有信。年七十三。因問余君何病。病頭乎。曰不。曰病腹乎。曰不。曰然則君不病也。遂闢戶揭牖。風來颼然。余意稍豁。甚異昔者也。謂翁吾特厭食。夜失睡。是爲病也。翁起賀。余驚曰。翁何賀也。曰君家貧。幸厭食。財可羡也。不寐則兼夜。幸倍年。財羡而年倍。壽且富也。須臾飯至。余呻蹙不擧。揀物而嗅。翁忽大怒。欲起去。余驚問翁何怒去也。翁曰。君招客。不爲具。獨自先飯。非禮也。余謝留翁。且促爲具食。翁不辭讓。腕肘呈袒。匙箸磊落。余不覺口津。心鼻開張。乃飯如舊。夜翁闔眼端坐。余要與語。翁益閉口。余殊無聊。久之翁忽起。剔燭謂曰。吾年少時。過眼輒誦。今老矣。與君約生平所未見書。各默涉三再乃誦。若錯一字。罰如契誓。余侮其老曰諾。卽抽架上周禮。翁拈考工。余得春官。小閒。翁呼曰。吾已誦。余未及下一遍。驚止。翁且居。翁語侵頗困。而余益不能誦。思睡乃睡。天旣明。問翁能記宿誦乎。翁笑曰。吾未甞誦。甞與翁夜語。翁弄罵坐。客人莫能難。有欲窮翁者。問翁見鬼乎。曰見之。鬼何在。翁瞠目熟視。有一客坐燈後。遂大呼曰。鬼在彼。客怒詰翁。翁曰。夫明則爲人。幽則爲鬼。今者處暗而視明。匿形而伺人。豈非鬼乎。一座皆笑。又問翁見仙乎。曰見之。仙何在。曰家貧者仙耳。富者常戀世。貧者常厭世。厭世者非仙耶。翁能見長年者乎。曰見之。吾朝日入林中。蟾與兎爭長。兎謂蟾曰。吾與彭祖同年。若乃晩生也。蟾俛首而泣。兎驚問曰。若乃若悲也。蟾曰。吾與東家孺子同年。孺子五歲乃知讀書。生于木德。肇紀攝提。迭王更帝。統絶王春。純成一曆。乃閏于秦。歷漢閱唐。暮朝宋明。竆事更變。可喜可驚。吊死送往。支離于今。然而耳目聰明。齒髮日長。長年者乃莫如孺子。而彭祖乃八百歲。蚤夭閱世。不多更事。未久吾是以悲耳。兎乃再拜郤走曰。若乃大父行也。由是觀之。讀書多者。最壽耳。翁能見味之至者乎。曰見之。月之下弦。潮落步土。耕而爲田。煑其斥鹵。粗爲水晶。纖爲素金。百味齊和。孰爲不鹽。皆曰善。然不死藥。翁必不見也。翁笑曰。此吾朝夕常餌者。惡得而不知。大壑松盤甘露。其零入地千年。化爲茯霛。蔘伯羅產。形端色紅。四體俱備。雙紒如童。枸杞千歲。見人則吠。吾甞餌之。不復飮食者。葢百日。喘喘然將死。鄰媼來視歎曰。子病饑也。昔神農氏甞百草。始播五糓。夫效疾爲藥。療饑爲食。非五糓。將不治。遂飯稻粱而餌之。得以不死。不死藥。莫如飯。吾朝一盂。夕一盂。今已七十餘年矣。翁甞支離其辭。遷就而爲之。莫不曲中內含譏諷。葢辯士也。客索問。無以復詰。乃忿然曰。翁亦見畏乎。翁默然良久。忽厲聲曰。可畏者莫吾若也。吾右目爲龍。左目爲虎。舌下藏斧。彎臂如弓。念則赤子差爲夷戎。不戒則將自噉自齧自戕自伐。是以聖人克己復禮。閑邪存誠。未甞不自畏也。語數十難。皆辨捷如響。竟莫能窮。自贊自譽。嘲傲旁人。人皆絶倒。而翁顔色不變。或言海西蝗官。督民捕之。翁問捕蝗何爲。曰是虫也。小於眠蚕。色斑而毛。飛則爲螟。緣則爲蟊。害我稼穡。號爲滅糓。故將捕而瘞之耳。翁曰。此小虫不足憂。吾見鍾樓塡道者皆蝗耳。長皆七尺餘。頭黔目熒。口大運拳。咿啞偊旅。蹠接尻連。損稼殘糓。無如是曹。我欲捕之。恨無大匏。左右皆大恐。若眞有是虫然。一日翁來余望而爲隱曰。春帖子狵啼。翁笑曰。春帖子榜門之文。乃吾姓也。狵老犬。乃辱我也。啼則厭聞。吾齒豁。音嵲兀也。雖然。君若畏狵。莫如去犬。若又厭啼。且塞其口。夫帝者造化也。尨者。大物也。著帝傅尨。化而爲大。其惟乎。君非能辱我也。乃反善贊我也。明年翁死。翁雖恢奇俶蕩。性介直樂善。明於易。好老子之言。於書葢無所不窺云。二子皆登武科未官。今年秋。余又益病而閔翁不可見。遂著其與余爲隱俳詼。言談譏諷。爲閔翁傳。歲丁丑秋也。余誄閔翁曰。嗚呼閔翁。可恠可奇。可驚可愕。可喜可怒。而又可憎。壁上烏未化鷹。翁盖有志士。竟老死莫施。我爲作傳。嗚呼死未曾。

민옹전[편집]


廣文者傳[편집]

廣文者。丐者也。甞行乞鍾樓市道中。群丐兒。推文作牌頭。使守窠。一日天寒雨雪。群兒相與出丐。一兒病不從。旣而兒寒專纍。欷聲甚悲。文甚憐之。身行丐得食。將食病兒。兒業已死。群兒返乃疑文殺之。相與搏逐文。文夜匍匐入里中舍。驚舍中犬。舍主得文縛之。文呼曰。吾避仇。非敢爲盜。如翁不信。朝日辨於市。辭甚樸。舍主心知廣文非盜賊。曉縱之。文辭謝請弊席而去。舍主終已恠之。踵其後。望見群丐兒曳一尸。至水標橋。投尸橋下。文匿橋中。裹以弊席。潛負去。埋之西郊之墦間。且哭且語。於是舍主執詰文。文於是盡告其前所爲及昨所以狀。舍主心義文。與文歸家。予文衣。厚遇文。竟薦文藥肆富人作傭。保久之。富人出門。數數顧。還復入室。視其扃。出門而去。意殊怏怏。旣還大驚熟視文。欲有所言。色變而止。文實不知。日默默亦不敢辭去。旣數日。富人妻兄子持錢還富人曰。向者吾要貸於叔。會叔不在。自入室取去。恐叔不知也。於是富人大慚廣文。謝文曰。吾小人也。以傷長者之意。吾將無以見若矣。於是遍譽所知諸君及他富人大商賈。廣文義人。而又過贊廣文諸宗室賓客及公卿門下左右。公卿門下左右及宗室賓客。皆作話套。以供寢數月間。士大夫盡聞廣文如古人。當是時。漢陽中皆稱廣文。前所厚遇舍主之賢能知人。而益多藥肆富人長者也。時殖錢者。大較典當首飾璣翠衣件器什宮室田僮奴之簿書。參伍本幣以得當。然文爲人保債不問。當一諾千金。文爲人貌極醜。言語不能動人。口大幷容兩拳。善曼碩戱。爲鐵拐舞。三韓兒相訾傲。稱爾兄達文。達文又其名也。文行遇鬪者。文亦解衣與鬪啞啞。俯劃地若辨曲直狀。一市皆笑。鬪者亦笑。皆解去。文年四十餘。尙編髮。人勸之妻則曰。夫美色。衆所嗜也。然非男所獨也。唯女亦然也。故吾陋而不能自爲容也。人勸之家則辭曰。吾無父母兄弟妻子。何以家爲。且吾朝而歌呼入市中。暮而宿富貴家門下。漢陽戶八萬爾。吾逐日而易其處。不能盡吾之年壽矣。漢陽名妓窈窕都雅。然非廣文聲之。不能直一錢。初羽林兒各殿別監駙馬都尉傔從垂袂過雲心。心名姬也。堂上置酒皷瑟。屬雲心舞。心故遲不肯舞也。文夜往彷徨堂下。遂入座。自坐上坐。文雖弊衣袴。擧止無前。意自得也。眦膿而眵。陽醉噎。羊髮北髻。一座愕然。瞬文欲敺之。文益前坐。拊膝度曲。鼻吟高低。心卽起更衣。爲文釖舞。一座盡歡。更結友而去。

광문자전[편집]

광문이란 거지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종로 거리에서 구걸을 하여 거지 아이들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거지들의 보금자리를 지켰다. 몹시 춥고 눈이온 어느날 모든 아이들이 구걸을 가가고 한 아이만 병으로 따라가지 못했다. 벌써 추위에 떨던 아이는 슬프게 흐느꼈다. 문이 그를 불쌍히 여겨 구걸을 나가 밥을 얻어 병든 아이를 먹이려하였지만,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아이들이 돌아와 그것을 보고 문이 그를 죽였다고 여기고는 문을 때려 쫓아 내었다. 문은 밤에 기어 기어 어느 집에 들어갔는데 개가 짖어 주인이 문을 잡아 묶었다. 문이 소리치기를, “내가 원수를 피하려는 것이지 도적질을 하려는 게 아니오. 주인장이 못믿겠으면 아침에 시장에 나가 물어보시오” 하였다. 그 말이 성실하여 집 주인도 문이 옳다 여겨 새벽에 놓아주었다. 문은 고맙다 인사하며 거적을 하나 얻어 나갔다. 주인이 괴상하다 여겨 따라가 보니 거지 아이들이 시체 하나를 수표교에 던지자 문이 다리 아래서 받아 거적으로 싸고는 서문 밖에 묻어주며 울며 말하는 것이었다. 집주인이 문에게 어찌된 일이냐 물으니 문은 그제서야 어제부터 지금 장사 지내줄 때까지의 이야기를 하였다. 집주인은 문이 의롭다 여기고 함께 집으로 돌아와 옷을 입히고 잘 대해 주었다. 나중에 문을 약방하는 부잣집에 품파는 사람으로 넣어 주었다. 그리하고 얼마 뒤에, 부자가 문을 나서며 여러 차례 돌아보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 빗장을 살피고는 다시 문 밖으로 나갔다. 그러다 야속한 마음이 들었는지 다시 돌아오다 문을 보더니 크게 놀라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낯색이 변해있지만 문은 알길이 없었다. 집을 나가겠다 할 수 없으니 그저 묵묵히 하루를 보냈다. 며칠이 지난 뒤 부자의 처형 아들이 돈을 들고와 말하길 “제가 돈이 필요해 숙부를 뵈러 왔는데, 안계서서 그냥 가져 갔었습니다. 아마 모르셨을 겁니다”하는 것이었다. 부자는 광문이에게 몹시 부끄럽다며 사과하였다. “내가 소인이라 큰 사람의 뜻을 상하게 하였네. 앞으로 볼 낯이 없구만”이 때부터 부자는 거래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광문이 의인이라고 말하였다. 이로서 광문을 칭찬하는 말이 종실빈객과 공경문하의 아랫사람들까지 돌았다. 종실빈객과 공경문하의 아랫사람들이 모두 위에 이야기를 하므로 몇 달이 되자 사대부들도 모두 광문의 일을 듣게 되었고 마침내 한양 사람 모두가 광문을 칭찬하였고 광문을 도운 집주인도 사람을 알아보는 현명한 사람이라 여겨지게 되었고, 약방 주인도 큰 사람이라 불렸다. 당시 전당포를 하는 사람들은 머리꽂이, 패물이나 옷가지며 그릇, 집, 밭, 종문서를 모두 제 값을 따져 저당잡지만, 문이 보증을 서면 묻지 않고 천금을 빌려 주었다. 문은 아주 못생겼고 말도 어눌한데, 입은 커서 두 주먹이 들어갈만 하고 만석희를 잘하며 곱사춤을 추었다. 삼한의 아이들이 서로 까불며 놀릴 때 “네 형이 달문이지?”할 정도였다. 달문이란 광문의 다른 이름이다. 광문이 지나가다 싸움을 보면 옷을 풀고 싸움판에 들어가 어어 거리며 땅에 금을 긋고는 잘잘못을 따져 주듯이 말하였다. 시장 사람들이 모두 웃으니 싸우던 사람도 웃을 수 밖에 없었고 모두 흩어지기 마련이었다. 문이 사십이 되도록 머리카락을 늘이고 다녀 사람들이 처를 얻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면, “아름다운 사람을 원하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도 모두 마찬가지인데, 어떤 여자가 날 바라보고 살겠나. 나는 내 얼굴을 바라보라 할 자신이 없네.”하였고, 사람들이 집이라도 장만하라고 하면, “나는 부모형제나 처자가 없는데 집을 가져 뭐하게? 아침에 노래부르며 시장에 나가고, 저녁에 부잣집 행랑에서 자면 된거지. 한양 가구수가 팔만인데 다 돌아다니기도 전에 내 목숨이 먼저 다하지.”라고 하였다. 한양에 이름난 기생이 아무리 조신하고 아리따워도 광문이 한 소리 해주지 않으면 한 푼도 얻지 못했다. 일전에 우림위며 아명전 별감들이며 부마도위에 딸린 종들이며 하는 사람들이 운심에게 몰려들었다. 심은 이름난 기생이라 마루에 술상을 차리고 북을 치고 가야금을 뜯으며 춤을 추라 재촉하였지만 심은 춤추지 않고 머뭇거렸다. 문이 밤에 마루 아래로 왔다가 섯다 앉았다 하더니 스스로 윗자리를 찾아 앉아 버렸다. 문은 허름한 옷을 입었지만 앞에 사람이 없는 듯 마음대로 굴었다. 눈꼽이 끼고 술에 취해 트림을 하는데 곱슬머리는 뒤에 갖다 붙여둔 모양이었다. 좌중이 모두 아연실색하여 문을 몰아내자 눈짓을 주고 받았다. 문이 더욱 앞으로 앉아 무릎을 치며 곡조를 흥얼거리며 콧노래를 높였다 낮추었다 하자, 심은 즉시 일어나 옷을 다시 여미고 문을 위해 검무를 추었다. 앉은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며 친구가 되어 돌아갔다.


書廣文傳後[편집]

余年十八時。甞甚病。常夜召門下舊傔。徵問閭閻奇事。其言大抵廣文事。余亦幼時。見其貌極醜。余方力爲文章。作爲此傳。傳示諸公長者。一朝以古文辭。大見推詡。葢文時已南遊湖嶺諸郡。所至有聲。不復至京師數十年。海上丐兒。甞乞食於開寧水多寺。夜聞寺僧閒話廣文事。皆愛慕感嘆。想見其爲人。於是丐兒泣。衆恠問之。於是丐兒囁嚅。遂自稱廣文兒。寺僧皆大驚時甞予飯瓢。及聞廣文兒。洗盂盛飯。具匙箸蔬醬。每盤而進之。時嶺中妖人。有潛謀不軌者。見丐兒如此其盛待也。冀得以惑衆。潛說丐兒曰。爾能呼我叔。富貴可圖也。乃稱廣文弟。自名廣孫以附文。或有疑。廣文自不知姓。生平獨。無昆弟妻妾。今安得忽有長弟壯兒也。遂上變。皆得逐捕。及對質驗問。各不識面。於是遂誅其妖人。而流丐兒。廣文旣得出。老幼皆往觀。漢陽市數日爲空。文指表鐵柱曰。汝豈非善打人表望同耶。今老無能矣。盖望同其號也。因相與勞苦。文問靈城君,豐原君無恙乎。曰皆已下世矣。金君擎方何官。曰爲龍虎將。文曰此兒美男子。軆雖肥。能挾妓超墻。用錢如糞土。今貴人不可見矣。粉丹何去。曰已死矣。文嘆曰。昔豐原君夜讌麒麟閣。獨留粉丹宿。曉起將赴闕。丹執燭。誤爇貂帽惶恐。君笑曰。爾羞乎。卽與壓羞錢五千。吾時擁首帕副裙。候闌干下。黑而鬼立。君拓戶唾。倚丹而耳曰。彼黑者何物。對曰。天下誰不知廣文也。君笑曰。是汝後陪耶。呼與一大鍾。君自飮紅露七鍾。乘軺而去。皆昔年事也。漢陽纖兒誰最名。曰小阿。其助房誰。曰崔撲滿。曰朝日尙古堂遣人勞我。聞移家圓嶠下。堂前有碧梧桐樹。常自煑茗其下。使鐵突皷琴。曰鐵突昆弟方擅名。曰然。此金鼎七兒也。吾與其父善。復悵然久之曰。此皆吾去後事耳。文斷髮猶辮如鼠尾。齒豁口窳。不能內拳云。語鐵柱曰。汝今老矣。何能自食。曰家貧爲舍儈。文曰。汝今免矣。嗟呼。昔汝家貲鉅萬。時號汝黃金兜。今兜安在。曰今而後吾知世情矣。文笑曰。汝可謂學匠而眼暗矣。文後不知所終云。

서광문전후[편집]


兩班傳[편집]

兩班者。士族之尊稱也。旌善之郡。有一兩班。賢而好讀書。每郡守新至。必親造其廬而禮之。然家貧。歲食郡糶。積歲至千石。觀察使巡行郡邑。閱糶糴。大怒曰。何物兩班。乃乏軍興。命囚其兩班。郡守意哀其兩班貧。無以爲償。不忍囚之。亦無可柰何。兩班日夜泣。計不知所出。其妻罵曰。生平子好讀書。無益縣官糴。咄兩班。兩班不直一錢。其里之富人。私相議曰。兩班雖貧。常尊榮。我雖富。常卑賤。不敢騎馬。見兩班則跼蹜屛營。匍匐拜庭。曳鼻膝行。我常如此。其僇辱也。今兩班貧不能償糴。方大窘。其勢誠不能保其兩班。我且買而有之。遂踵門而請償其糴。兩班大喜許諾。於是富人立輸其糴於官。郡守大驚異之。自往勞其兩班。且問償糴狀。兩班氈笠。衣短衣。伏塗謁稱小人。不敢仰視。郡守大驚。下扶曰。足下何自貶辱若是。兩班益恐懼頓首俯伏曰。惶悚小人。非敢自辱。已自鬻其兩班。以償糴。里之富人。乃兩班也。小人復安敢冒其舊號而自尊乎。郡守歎曰。君子哉富人也。兩班哉富人也。富而不吝。義也。急人之難。仁也。惡卑而慕尊。智也。此眞兩班。雖然。私自交易而不立券。訟之端也。我與汝。約郡人而證之。立券而信之。郡守當自署之。於是郡守歸府。悉召郡中之士族及農工商賈。悉至于庭。富人坐鄕所之右。兩班立於公兄之下。乃爲立券曰。乾隆十年九月日。右明文段。▼(厂+串)賣兩班爲償官糓。其直千斛。維厥兩班。名謂多端。讀書曰士。從政爲大夫。有德爲君子。武階列西。文秩叙東。是爲兩班。任爾所從。絶棄鄙事。希古尙志。五更常起。點硫燃脂。目視鼻端。會踵支尻。東萊博議。誦如氷瓢。忍饑耐寒。口不說貧。叩齒彈腦。細嗽嚥津。袖刷毳冠。拂塵生波。盥無擦拳。漱口無過。長聲喚婢。緩步曳履。古文眞寶。唐詩品彙。鈔寫如荏。一行百字。手毋執錢。不問米價。暑毋跣襪。飯毋徒髻。食毋先羹。歠毋流聲。下箸毋舂。毋餌生葱。飮醪毋嘬鬚。吸煙毋輔窳。忿毋搏妻。怒毋踢器。毋拳敺兒女。毋詈死奴僕。叱牛馬。毋辱鬻主。病毋招巫。祭不齋僧。爐不煑手。語不齒唾。毋屠牛。毋賭錢。凡此百行。有違兩班。持此文記。卞正于官城主。旌善郡守押。座首別監證署。於是通引搨印錯落。聲中嚴皷。斗縱參橫。戶長讀旣畢。富人悵然久之曰。兩班只此而已耶。吾聞兩班如神仙。審如是。太乾沒。願改爲可利。於是乃更作券曰。維天生民。其民維四。四民之中。最貴者士。稱以兩班。利莫大矣。不耕不商。粗涉文史。大决文科。小成進士。文科紅牌。不過二尺。百物備具。維錢之槖。進士三十。乃筮初仕。猶爲名蔭。善事雄南。耳白傘風。腹皤鈴諾。室珥冶妓。庭糓鳴鶴。窮士居鄕。猶能武斷。先耕隣牛。借耘里氓。孰敢慢我。灰灌汝鼻。暈髻汰鬢。無敢怨咨。富人中其券而吐舌曰。已之已之。孟浪哉。將使我爲盜耶。掉頭而去。終身不復言兩班之事。

양반전[편집]

양반이라는 놈은 사족의 존칭이럇다. 정선군[17]에 그런 양반이 하나 살고 있었는데, 어질고 또 글 읽기를 좋아했기에 매번 군수가 새로 오면 꼭 그 막집[18]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단다. 그런데 집구석이 가난해서 해마다 고을 쌀을 빌어 먹던 것이 쌓여서 천 석에 이르렀다. 관찰사[19]가 군읍을 순행하다가 쌀의 사고 팖을 보고 크게 노하여 말하길,

“어떻게 된 놈의 양반이 이렇게 군량을 축냈단 말이냐!”하고는 그 양반을 잡아 가두라고 명했다. 군수는 그 양반이 가난하여 쌀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잡아 가두지 않을 뿐, 어떻게 해야 할지 별 수가 없었다. 양반도 밤낮으로 울고불고만 할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부인이 꾸짖어 말하길,

“평소에 글 읽기를 그리도 좋아하더니, 현관에게 쌀 갚는 데는 아무런 보탬이 없구랴. 에잉 양반. 한 푼어치도 안 되는 그놈의 양반.” 하였다.

그런데 그 마을에 사는 부자가 가족들과 상의하여 말하길,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늘 지위가 높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늘 비천하여 감히 말도 타지 못하고, 양반을 보면 바로 허리를 숙이고 종종걸음쳐야 하며, 길에서는 엎드리고 뜰에서는 절하며 코를 처박고 무릎으로 기어야 한다. 우리 신세가 항상 이렇게 욕되다. 지금 양반이 쌀을 갚지 못해 매우 난감하게 되었으니, 그 꼴이 그 양반 자리를 보존치 못할 듯하다. 우리가 그 신분을 사서 가지도록 하자.”라고 하고 마침내 문앞에 나아가 그 쌀을 갚아주겠노라 청하자 양반이 크게 기뻐하며 허락했다. 그러자 부자는 그 자리에서 바로 쌀을 관아로 보내 버렸다. 군수가 이에 놀라 양반을 위로도 할 겸, 또 어떻게 쌀을 갚았는지 물어볼 겸 해서 몸소 양반을 찾아갔다.

그런데 양반이 전립[20]을 쓰고 단의[21]를 입고 길에 엎드려 자신을 ‘소인’이라 칭하며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것이 아닌가. 군수가 크게 놀라 양반을 붙들며 말하길,

“그대[22]는 어찌 스스로를 낮추어 욕되게 하시오?”하였다. 양반이 더더욱 두려워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려 말하길,

“황송하옵게도 소인이 스스로를 낮추려는 것이 아니라 그 양반을 팔아 쌀을 갚았으니, 마을 부자가 이제 양반입니다. 소인이 어찌 감히 옛 칭호를 다시 들먹이며 제 스스로를 높이겠습니까?” 하였다. 군수가 감탄하며 말하길,

“군자로다, 부자여. 양반이로다, 부자여. 부자면서도 인색하지 않은 것은 의로움이요, 어려운 남을 도와준 것은 어짊이요, 비천한 것을 싫어하고 존귀해지려 한 것은 지혜로움이니 이 사람이야말로 참 양반이로다. 그렇긴 하지만, 사사로이 만나 바꾸었을 뿐 문서를 쓰지 않았으니 송사[23]의 빌미가 될 것이다. 나와 너[24]는 고을 사람들을 증인으로 삼고 문서를 써서 이를 믿게 하자. 군수인 나도 마땅히 수결[25]할 것이다.” 하였다.


金神仙傳[편집]

金神仙名弘基。年十六娶妻。一歡而生子。遂不復近。辟糓面壁坐。坐數歲。身忽輕。遍遊國內名山。常行數百里。方視日早晏。五歲一易屨。遇險則步益捷。甞曰。褰而涉。方而越。故遲我行也。不食故人不厭其來客。冬不絮。夏不扇。遂以神仙名。余甞有幽憂之疾。盖聞神仙方技。或有奇效。益欲得之。使尹生申生陰求之。訪漢陽中。十日不得。尹生言甞聞弘基家西學洞。今非也。乃其從昆弟家。寓其妻子。問其子。言父一歲中率四三來。父友在體府洞。其人好酒而善歌。金奉事云。樓閣洞金僉知好碁。後家李萬戶好琴。三淸洞李萬戶好客。美垣洞徐哨官。毛橋張僉使。司僕川邊池丞。俱好客而喜飮。里門內趙奉事。亦父友也。家蒔名花。桂洞劉判官。有奇書古釖。父常遊居其間。君欲見。訪此數家。遂行歷問之。皆不在。暮至一家。主人琴。有二客皆靜默。頭白而不冠。於是自意得金弘基。立久之。曲終而進曰。敢問誰爲金丈人。主人捨琴而對曰。座無姓金者。子奚問曰。小子齋戒而後。敢來求也。願老人無諱。主人笑曰。子訪金弘基耶。不來耳。敢問來何時。曰。是居無常主。遊無定方。來不預期。去不留約。一日中或再三過。不來則亦閱歲。聞金多在倉洞會賢之坊。且董關梨峴銅峴慈壽橋社洞壯洞大陵小陵之間。甞往來遊居。然皆不知其主名。獨倉洞吾知之。子往問焉。遂行訪其家問焉。對曰。是不來者甞數月。吾聞長暢橋林同知喜飮酒。日與金角。今在林否也。遂訪其家。林同知八十餘。頗重聽曰。咄夜劇飮。朝日餘醉。入江陵。於是悵然久之。問曰。金有異歟。曰。一凡人。特未甞飯。狀貌何如。曰。身長七尺餘。癯而髯。瞳子碧。耳長而黃。能飮幾何。曰。飮一杯醉。然一斗醉不加。甞醉臥塗。吏得之。拘七日不醒。乃釋去。言談何如。曰。衆人言輒坐睡。談已輒笑不止。持身何如。曰。靜若參禪。拙如守寡。余甞疑尹生求不力。然申生亦訪數十家。皆不得。其言亦然。或曰。弘基年百餘。所與遊皆老人。或曰。不然。弘基年十九娶。卽有男。今其子纔弱冠。弘基年計今可五十餘。或言金神仙。採藥智異山。隳崖不返。今已數十年。或言巖穴窅冥。有物熒熒。或曰。此老人眼光也。山谷中。時聞長欠聲。今弘基惟善飮酒。非有術。獨假其名而行云。然余又使童子福往求之。終不可得。歲癸未也。明年秋。余東遊海上。夕日登斷髮嶺。望見金剛山。其峯萬二千云。其色白。入山。山多楓。方丹赤杻梗柟豫章。皆霜黃。杉檜益碧。又多冬靑樹。山中諸奇木。皆葉黃紅。顧而樂之。問轝僧。山中有異僧。得道術可與遊乎。曰。無有。聞船菴有辟糓者。或言嶺南士人。然不可知。船菴道險。無至者。余夜坐長安寺。問諸僧衆。俱對如初言。辟糓者。滿百日當去。今幾九十餘日。余喜甚。意者其仙人乎。卽夜立欲往。朝日坐眞珠潭下。候同遊眄睞久之。皆失期。不至。又觀察使巡行郡邑。遂入山。流連諸寺間。守令皆來會。供張廚傳。每出遊。從僧百餘。船菴道絶峻險。不可獨至。甞自往來靈源白塔之間。而意悒悒。旣而天久雨。留山中六日。乃得至船菴。在須彌峯下。從內圓通行二十餘里。大石削立千仞。路絶。輒攀鐵索。懸空而行。旣至。庭空無禽鳥啼。榻上小銅佛。唯二屨在。余悵然徘徊。立而望之。遂題名巖壁下。歎息而去。常有雲氣風瑟然。或曰。仙者山人也。又曰。入山爲仙也。又僊者。僊僊然輕擧之意也。辟糓者。未必仙也。其鬱鬱不得志者也。

김신선전[편집]


虞裳傳[편집]

日本關白新立。於是廣儲蓄。繕宮館。理舟檝。刮屬國諸島奇材釖客。詭技淫巧書畵文學之士。聚之都邑。練肄完具數年。然後乃敢請使於我。若待命策之爲者。朝廷極選文臣三品以下。備三价以送之。其幕佐賓客。皆宏辭博識。自天文地理算數卜筮醫相武力之士。以至吹竹彈絲謔浪戱笑歌呼飮酒博奕騎射以一藝名國者。悉從行。而最重詞章書畵。得朝鮮一字。不齎糧而適千里。其所居舘。皆翠銅甍。除嵌文石。而楹檻朱漆。帷帳飾以火齊。靺鞨瑟瑟。食皆金銀鍍侈靡。瑰麗千里。往往設爲奇巧。庖丁驛夫。據牀而坐。垂足於枇子桶。使花衫蠻章洗之。其陽浮慕尊如此。而象譯持虎豹,貂鼠,人蔘諸禁物。潛貨璣珠,寶刀。駔儈機利。殉財賄如騖。倭外謬爲恭敬。不復衣冠慕之。虞裳以漢語通官隨行。獨以文章。大鳴日本中。其名釋貴人。皆稱雲我先生。國士無雙也。大坂以東僧如妓。寺刹如傳舍。責詩文如博進。繡牋花軸。堆床塡案。而類爲難題强韻以窮之。虞裳每倉卒口占。如誦宿搆。步押平妥。從容席散。無罷色。無軟詞。其海覽篇曰。

坤輿內萬國。
碁置而星列。
于越之魋結。
笁乾之祝髮。
齊魯之縫腋。
胡貊之氈。
或文明魚雅。
或兜離侏佅。
群分而類聚。
遍土皆是物。
日本之爲邦。
波壑所蕩潏。
其藪則搏木。
其次則賓日。
女紅則文繡。
土宜則橙橘。
魚之恠章擧。
木之奇蘇鐵。
其鎭山芳甸。
句陳配厥秩。
南北春秋異。
東西晝夜別。
中央類覆敦。
嵌空龍漢雪。
蔽牛之鉅材。
抵鵲之美質。
與丹砂金錫。
皆往往山出。
大坂大都會。
環寶海藏竭。
奇香爇龍涎。
寶石堆雅骨。
牙象口中脫。
角犀頭上截。
波斯胡目眩。
浙江市色奪。
寰海地中海。
中涵萬象活。
鱟背帆幔張。
鰌尾旌旗綴。
堆壘蠣粘房。
屭贔龜次窟。
忽變珊瑚海。
煜耀陰火烈。
忽變紺碧海。
霞雲衆色設。
忽變水銀海。
星宿萬顆撒。
忽變大染局。
綾羅爛千匹。
忽變大鎔鑄。
五金光逬發。
龍子劈天飛。
千霆萬電戛。
髮鱓馬甲柱。
秘恠恣怳愡。
其民裸而冠。
外螫中則蝎。
遇事則麋沸。
謀人則鼠黠。
苟利則蜮射。
小拂則豕突。
婦女事戱謔。
童子設機括。
背先而淫鬼。
嗜殺而佞佛。
書未離鳥鳦。
詩未離鴂舌。
牝牡類麀鹿。
友朋同魚鱉。
言語之鳥嚶。
象譯亦未悉。
草木之瓌奇。
羅含焚其帙。
百泉之源滙。
酈生瓮底蠛。
水族之弗若。
思及閟圖說。
刀釖之款識。
貞白續再筆。
地毬之同異。
海島之甲乙。
西泰利瑪竇。
線織而刃割。
鄙夫陳此詩。
辭俚意甚實。
善鄰有大謨。
覊縻和勿失。

如虞裳者。豈非所謂華國之譽耶。神宗萬曆壬辰。倭秀吉潛師襲我。躪我三都。劓辱我髦倪。躑躅冬柏植於三韓。我昭敬大王避兵灣上。奏聞天子。天子大驚。提天下之兵東援之。大將軍李如松。提督陳璘,麻貴,劉綎,楊元。有古名將之風。御史楊鎬,萬世德,邢玠才兼文武。略驚鬼神。其兵皆秦鳳陜浙雲登貴萊驍騎射士。大將軍家僮千人。幽薊釖客。然卒與倭平。僅能驅之出境而已。數百年之間。使者冠盖。數至江戶。然謹體貌。嚴使事。其風謠人物險塞强弱之勢。卒不得其一毫。徒手來去。虞裳力不能勝柔毫。然吮精嘬華。使水國萬里之都。木枯川渴。雖謂之筆拔山河可也。虞裳名湘藻。甞自題其畵象曰。

供奉白。鄴侯泌。
合鐵拐。爲滄起。
古詩人。古仙人。
古山人。皆姓李。

李其姓也。滄起又其號也。夫士伸於知己。屈於不知己。鵁鶄鸂禽之微者也。然猶自愛其羽毛。暎水而立。翔而後集。人之有文章。豈羽毛之美而已哉。昔慶卿夜論釰。盖聶怒而目之。及高漸離擊筑。荊軻和而歌。已而相泣。旁若無人者。夫樂亦極矣。復從而泣之。何也。中心激而哀之無從也。雖問諸其人者。亦將不自知其何心矣。人之以文章相高下。豈區區釖士之一技哉。虞裳其不遇者耶。何其言之多悲也。

鷄戴勝高似幘。
牛垂胡大如袋。
家常物百不奇。
大驚恠槖駝背。

未甞不自異也。及其疾病且死。悉焚其藁曰。誰復知者。其志豈不悲耶。孔子曰。才難。不其然乎。管仲之器小哉。子貢曰。賜何器也。子曰。汝瑚璉也。盖美而小之也。故德譬則器也。才譬則物也。詩云。瑟彼玉瓚。黃流在中。易曰。鼎折足覆公餗。有德而無才。則德爲虛器。有才而無德。則才無所貯。其器淺者易溢。人參天地。是爲三才。故鬼神者才也。天地其大器歟。彼潔潔者福無所寓。善得情狀者。人不附。文章者天下之至寶也。發精蘊於玄樞。探幽隱於無形。漏洩陰陽。神鬼嗔怨矣。木有才。人思伐之。貝有才。人思奪之。故才之爲字。內撇而不外颺也。虞裳一譯官。居國中。聲譽不出里閭。衣冠不識面目。一朝名震耀海外萬里之國。身傾側鯤鯨龍鼉之家。手沐日月。氣薄虹蜃。故曰。慢藏誨盜。魚不可脫於淵。利器不可以示人。可不戒哉。

過勝本海作詩曰。

蠻奴赤足貌?魀。
鴨色袍背繪星月。
花衫蠻女走出門。
頭梳未竟髽其髮。
小兒號嗄乳母乳。
母手拍背鳴嗚咽。
須臾擂鼓官人來。
萬目圍繞如活佛。
蠻官膜拜獻厥琛。
珊瑚大貝擎盤出。
眞如啞者設賓主。
眉睫能言筆有舌。
蠻府亦耀林園趣。
栟櫚靑橘配庭實。

病痔舟中臥。念梅南老師言。乃作詩曰。

宣尼之道麻尼敎。
經世出世日而月。
西士甞至五印度。
過去現在無箇佛。
儒家有此俾販徒。
?弄筆舌神吾說。
披毛戴角墜地犴。
當受生日欺人律。
毒焰亦及震旦東。
精藍大衍都鄙列。
睢盱島衆怵禍福。
炷香施米無時缺。
譬如人子戕人子。
入養父母必不說。
六經中天揚文明。
此邦之人眼如漆。
暘谷昧谷無二理。
順之則聖背檮杌。
吾師詔吾詔介衆。
以詩爲金口木舌。

詩皆可傳也。及旣還過所次皆已梓印云。余與虞裳。生不相識。然虞裳數使示其詩曰。獨此子庶能知吾。余戱謂其人曰。此吳儂細唾。瑣瑣不足珍也。虞裳怒曰。傖夫氣人。久之歎曰。吾其久於世哉。因泣數行下。余亦聞而悲之。旣而虞裳死。年二十七。其家人夢見仙子醉騎蒼鯨。黑雲下垂。虞裳披髮而隨之。良久虞裳死。或曰。虞裳仙去。嗟呼。余甞內獨愛其才。然獨挫之以爲虞裳。年少俛就道。可著書垂世也。乃今思之。

虞裳必以余爲不足喜也。有輓之者。歌曰。

五色非常鳥。
偶集屋之脊。
衆人爭來看。
驚起忽無跡。

其二曰。

無故得千金。
其家必有災。
矧此稀世寶。
焉能久假哉。

其三曰。

渺然一匹夫。
死覺人數减。
豈非關世道。
人多如雨點。

又歌曰。

其人膽如瓠。
其人眼如月。
其人腕有鬼。
其人筆有舌。

又曰。

他人以子傳。
虞裳不以子。
血氣有時盡。
聲名無窮已。

余旣不見虞裳每恨之。且旣焚其文章無留者。世益無知者。乃發篋中舊藏。得其前所示纔數篇。於是悉著之。以爲之傳虞裳。虞裳有弟。亦能  缺。

우상전[편집]


易學大盜傳[편집]

本文缺

역학대도전[편집]

소실됨.


鳳山學者傳[편집]

竊聞之。

內舅芝溪公云。易學大盜傳。當時有托懦名而潛售權利勢焰熏灼者。府君作是文以譏之。葢與老蘇辨姦同意。後其人敗。府君遂焚棄此文。蓋亦不欲以先見自居也。上文之缺。下篇之失,以其聯卷。故並爲遺佚云。

봉산학자전[편집]

소실됨.

외삼촌 지계공[26]의 말씀이 다음과 같았다. “〈역학대도전〉은 당시 선비의 이름을 빌려 몰래 권세와 이득을 사던 자가 있어서 너희 아버지가 이 글을 지어 비웃은 것이다. 노소[27]의 《변간》[28]과 그 뜻이 대체로 같았다. 후에 그 사람이 쫄딱 망하자 너희 아버지는 이 글을 불살라 버렸다. 아마 선견지명이 있는 척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위의 〈우상전〉에도 소실된 부분이 있고 그 뒤의 두 글이 소실된 것은 한 권에 같이 실려 있었기에 한꺼번에 없애 버린 것으로 보인다.”



男宗侃。謹書。以上九傳。皆府君弱冠時作也。家無藏本。每從人得之。府君甞命毁棄曰。此吾少時有意作家。所以肄綴屬之法者。至今猶或有以此稱道。則余甚愧焉。不肖輩雖欲承命。亦無如人之傳布回也。昔日甞就質於內舅芝溪公。公曰。先公立論。固多典重。此等實是筆墨之餘瀾。不足爲有無。况少時事乎。且古來文章家。固有似此游戱之作。不必癈也。但兩班一傳。語多俚俗。是爲小疪。而此實做王褒僮約而作。非無謂也。不肖輩不敢妄有去就。並以附之別集之末。男宗侃。謹書。

아들 종간[29]이 삼가 쓰다. 이상 아홉 편의 소설은 아버지께서 약관[30] 때 쓰신 것인데, 우리 집에는 장본[31]이 없어서 매번 남들에게 얻어 왔다. 아버지께서 이전에 이 글들을 없애 버리라며 말씀하시길, “이것들은 내가 어렸을 때 작가가 될 뜻을 두고 글 짓는 법을 익히려고 써 본 놈들이다. 아직도 그런 글을 잘 썼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매우 부끄럽도다.”라고 하셨다. 불초한 우리가 그 명을 받들고 싶었으나 남들이 퍼뜨리고 다니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에 일찍이 외삼촌 지계공께 가 보았더니 말씀하시길, “너희 아버지가 지은 글에는 전아하고 장중한 것도 많다. 이것들은 사실 그 나머지에 지나지 않으니 있건 없건 문제될 것이 없다. 하물며 젊었을 때 쓴 것이니 더욱 그러하다. 또 예로부터 문장가들은 이렇게 장난삼아 글을 쓰기도 했으니 굳이 폐기할 필요는 없다. 다만 〈양반전〉 한 편은 상스러운 말이 많이 쓰였기에 허물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은 실로 왕포[32]의 《동약》[33]을 따라 지은 것이니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셨다. 불초한 우리로서는 감히 함부로 어느 것은 버리고 어느 것은 고르고 할 수 없기에 별집 말미에 한꺼번에 모아 둔다. 아들 종간이 삼가 쓰다.


역주[편집]

  1. 口腹. 먹고사는 문제.
  2. 鼎食. 솥을 늘어놓고 호화롭게 먹는 것
  3. 鼎烹. 사람을 솥에 넣고 삶아 죽이는 팽살을 이른다. 팽살은 본디 탐관오리에게 시행하는 형벌이었는데, 후대로 가면 빈 솥에 불을 때고 죽이는 시늉만 하는 명예형의 형태로 시행되었다.
  4. 饕餮.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동물. 이 단어 자체로 탐욕을 뜻하기도 한다.
  5. 팽살은 본디 탐관오리에게 행하는 처벌인데, 후로 갈수록 솥에 들어가 끓이는 시늉만 하는 명예형의 형태로 바뀌었다.
  6. 學道猶龍. 공자가 노자를 만나보고 ‘노자는 용과 같은 사람이다’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7. 天爵. 하늘에서 내린 벼슬이라는 뜻으로, 천부적으로 존귀함을 이른다.
  8. 士 + 心 = 志로 파자한 것이다.
  9. 大隱. 산 속에 숨어 사는 은둔자를 소은, 민중과 함께 살아가는 은둔자를 대은이라고 한다.
  10. 不忮不求. 《시경》 패풍(邶風) 웅치(雄雉)에 나오는 구절이다.
  11. 聲聞過情.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나오는 구절이다.
  12. 古文章. 박지원이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고문체에 그리 박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암집》 3권에서도 양반 사대부들이 쓰지 않는 고문체를 역관들이 쓴다고 개탄하는 대목이 있다.
  13. 禮失求野. 《한서》 권30 예문지(藝文志) 10에 나오는 구절이다.
  14. 장자》 외물(外物)에 《시경》의 시를 읊으면서 무덤을 파 반함(飯含)한 구슬을 시체의 입에서 빼가는 타락한 선비 이야기가 나온다.
  15. 논어》 양화(陽貨)에서 공자가 “향원(鄕愿)은 덕을 어지럽히는 도적이다,”“자줏빛이 붉은빛을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한다.”고 했다.
  16. 당나라 노장용(盧藏用)이 수도에 있는 종남산(終南山)에 은거함으로써 명성을 얻어 출세한 것을 비꼬았다.
  17. 旌善之郡. 강원도 정선.
  18. 廬. 논밭 가운데 대충 지은 집.
  19. 觀察使. 오늘날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지방관.
  20. 氈笠. 털로 만든 모자. 흔히 벙거지라고 하며, 포졸 및 병정들이 썼다. 보다 고급한 것은 장수들이 구군복과 함께 갖추어 썼다.
  21. 短衣. 잠방이. 가랑이가 무릎높이에 있는 바지.
  22. 足下. 대등한 관계에서 상대방에 대한 존칭.
  23. 訟. 현재의 소송 및 민사재판에 해당한다.
  24. 汝. 군수는 이제 양반을 아까의 ‘足下’보다 격을 낮추어 부르고 있다.
  25. 署. 성명 아래에 도장 대신 자필로 갈겨 쓰는 것. 싸인에 해당한다.
  26. 芝溪公. 이재성.
  27. 老蘇 소동파의 아버지 소순을 일컫는다.
  28. 辨姦. 소순이 왕안석을 혹독히 비판한 《변간록》을 말한다.
  29. 宗侃. 박규수의 아버지 박종채이다.
  30. 弱冠. 스무 살을 일컫는 관용어이나, 여기서는 ‘젊었을 때’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31. 藏本. 장서. 간직해 둔 책.
  32. 王褒. 전한 시대 인물이다.
  33. 僮約. 노비문서에 노비가 해야 할 일과 어길 때의 처벌사항을 세세하게 적음으로써 말 안듣는 노비를 길들인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