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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길이의 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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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습니다……. 외로운 사람의 가슴을 더울 쓸쓸하게 하는 봄이…….

꽃은 피고 새는 노래를 하지만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르고 혼자 떨어져서 남의 손에만 길리우는 영길이의 마음이야 얼마나 쓸쓸하고 슬프겠습니까? 기나긴 봄날이 오늘도 한심스런 영길이의 몸을 비추고 있습니다.

“네에, 할머니!”

그는 누구인지 알 까닭도 없으나 자기를 길러 주는 노파를 할머니라고 부릅니다. 뜯어 온 나물을 다듬고 앉았던 노파는 부르는 소리를 듣고 여전히 나물을 다듬으면서 천천히 대답하였습니다.

“왜 그러니?”

“정말 나는 누구의 아들입니까?”

“또 그런 소리를 하는구나. 누구의 아들은 알아 무얼 하니. 옷 잘 입고 밥 잘 먹으면 그만이지.”

영길이는 또 속으로,

“아 ─ 아!”

하고 탄식을 하였습니다.

“정말 누구의 아들입니까? 네 ─ 할머니…….”

“에그, 귀찮게도 묻는다. 망할 녀석 같으니.”

“나는 어머니 아버지 집에 가고 싶어서 그럽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보고 싶어요.”

벌써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득하게 고였습니다.

“가고 싶어? 가고 싶거든 가려무나. 네까짓 게 어머니 아버지가 있니? 가려면 어서 가거라.”

영길이의 가슴은 그만 쪼개지는 것같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눈물은 방울방울이 흘렀습니다.

‘조그만 새에게도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데 어째서 나는 어머니 아버지가 없이 살아 왔을까…….’

언제든지 그것을 생각하면 견딜 수 없이 슬퍼서 혼자서 울고 울고 하였습니다.

언젠지 하룻밤에는 늦도록 늦도록 자리에 누워서 울다가 그냥 잠이 들었는데 그 날 밤 꿈에 반가운 반가운 어머니를 만나 보았습니다. 물론 얼굴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희고 다정스럽게 생기신 어머니는 영길이 보러 왔다고 서울서 엿과 떡을 한 상자나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 밤에 어머니를 놓치지 아니하려고 무한 애를 썼습니다. 깨고 나니까 꿈이었습니다. 그는 얼마나 섭섭하였겠습니까. 그 날부터는 몇 갑절이나 더 어머니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꿈에 본 어머니! 그 얼굴이 한 시 잠시도 눈에 사라지는 때가 없었습니다. 생전에 단 한 번 처음 본 어머니 얼굴인걸 어떻게 잊어버리겠습니까.

그러나, 꿈에 본 어머니! 그는, 영길이 동무 창성이 어머니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창성이는 영길이와 매우 친한 동무이고 창성이의 어머니는 영길이를 불쌍한 아이라 하여 퍽 사랑해 주는 부인이었습니다. 꿈에 그이가 어머니로 보인 것은 영길이가 늘 그이를 잘 따르고 창성이에게 그런 어머니가 계신 것을 남모르게 몹시 부러워하면서 지내던 까닭이겠지요.

그 꿈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안했습니다. 노파는 그렇게 사납게 굴고, 누구에게라도 그런 말이라도 할 사람이 영길이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부터는 창성이의 어머니가 더 부럽고 잊혀지지를 아니 하여서 못 견디게 되었습니다.

한 번도 아버지! 어머니! 하고 불러 보지 못하고 자란 영길이는 창성이 어머니에게라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자기 입으로,

“어머니!”

하고 불러 보고 싶었습니다. 견디다 견디다 못하여 영길이는 휘적휘적 힘없는 걸음으로 창성이 집에를 갔습니다. 창성이 어머니를 보고 어머니! 하고 불러 보려고 꼭 결심하고 간 것입니다.

마침 영길이가 갔을 때 창성이는 있지 아니하고 창성이 어머니만

방문을 열어 놓고 바느질을 하고 계셨습니다. 반가운 반가운 그 부인이 몹시도 다정스러운 얼굴로 내어다 보면서,

“어서 오너라.”

할 적에 영길이는 정말 자기 어머니나 만난 것처럼 반갑고 기꺼워서 ‘어머니!’ 하고 소리치려 하였으나 웬일인지 목이 콕 막히고 어머니 소리가 나오지 아니하였습니다.

‘어서 오너라.’ 하는 소리에 대답도 못하고 벙벙히 부인을 쳐다보기만 하였습니다.

꼭 ‘어머니!’ 하고 부르고 그의 가슴에 덜썩 안기려 하였더니, 단 한 번 어머니! 소리를 해보려 하였더니 왜 그렇게 무진하기만 하고 소리가 안 나오는지 몰랐었습니다.

“너, 왜 어디가 아프냐?”

하고 걱정스레 물으시는 말에,

간신히 영길이는,

“아니요.”

대답을 하자,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아서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고개를 숙이고는 눈물을 아니 흘리려고 애를 무진 무진 썼으나 그래도 기어코 뚝뚝 옷자락에 떨어졌습니다.

“울지 마라. 영길아!”

부인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글썽하였습니다. 벌써 영길이가 부모 생각을 하고 우는 줄을 아는 까닭이었습니다.

“울지 마라. 울면 소용이 있니?”

하면서 부인은 영길이의 손을 어루만져 주시고 한 손으로는 눈물을 씻어 주었습니다.

“저는 단 한 번이라도 어머니 아버지를 내 입으로 불러 보고 싶어요.”

울음 섞인 소리로 훌쩍거리면서 이 말을 간신히 하였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부인은 다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 때에 창성이가 돌아왔습니다. 문간에서부터 그는,

“어머니!”

하고 크게 부르며 들어옵니다. 창성이가 부르는 그 어머니 소리에 영길이는 몸에 그만 소름이 쪽 끼쳤습니다. 창성이 어머니는 이 날 아무 대답도 아니 하였습니다. 창성이는 영길이가 와 있는 것을 보고 기뻐서 달려들었습니다.

“너, 언제 왔었니……. 너 왜 울었니?”

“…….”

창성이도 영길이의 신세를 생각하고 신이 나서 기꺼워하는 기운이 없어지고, 근심스런 얼굴로,

“어머니, 이 애가 벌써 왔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아 ─ 니, 온 지는 얼마 안 된다. 너, 갖다 두라는 것은 잘 갖다 두고 왔니?”

“에 ─ 그, 참 그 집 아주머니가요, 오늘 곗날이니 곗돈 갔다 주라고요.”

“에그 참, 나도 잊어버렸구나. 내 돈을 줄 것이니 얼른 가지고 갔다 오너라.”

어머니에게 하는 창성이의 말투까지 어떻게 영길이에게는 부러워 보이는지 몰랐습니다.

‘아 ─, 내게는 왜 어머니 아버지가 없을까…….’

부러워 견딜 수 없어서 영길이는 놀다 가라는 말도 듣지 아니하고 있다가 또 오겠다고 그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런 생각 너무 하지 말고 잘 놀아라. 너무 그러면 못 쓴다.”

하는 부인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집 때문을 나설 때는 몸이 으쓱하고 치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 ─ 하고 쓸쓸스런 걸음으로 걸어서 노파의 집으로 가는 언덕 위로 올라갔습니다.

언덕 위에서는 창성이의 집이 멀리 내려다보였습니다. 거기 서서 한참이나 우두커니 창성이의 집을 내려다보다가 영길이는,

“어머니!!”

하고 소리를 내어 불렀습니다.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고 눈물만 두 눈에 가득하였습니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