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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문화적 촉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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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말하고 있는 문화란 것은 역사적으로는 우리의 선대로부터 계승하야 온 것이며 지리적으로는 지구의 표리를 물론하고 선진사회로부터 흡수하여 온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계승 또는 흡수하는데는 우리는 그 수단으로써 활자(活字)의 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여왔다. 그래서 현재의 우리의 지식이란건 실로 이 활자의 문화적 위치와 정비례의 것이었다. 하지만은 금후로는 문화적 중임을 이 활자에 독담을 요구하지는 못할 것이란 것은 벌써 우리가 알고있는 정도에서도 [필림·라이브라러]같은 것이 얼마나 생겼다던지 이런 것은 말하지 않는다해도 오늘날의 영화라는것은 대중오락의 왕좌를 차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중에는 기다의 예술이 나왔으며 보는 그대로가 우리의 지식이었다는 사실만은 누구나 부정하진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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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운이 장성하는 여음으로 조선에서도 이 방면에 선각한 인사들이 혹은 영화제작소나 또 회사같은 기관을 만들어 년래에 많은 공력을 들여온 것은 실로 감사도 하려니와 앞으로도 더욱 정진이 있기를 바라는 바이지만은 우리가 여기에 한가지 더 요구하고자 하는바는 그들의 영화에 대한 문화적 임무의 수행이다.

우리들이 말로는 쉽게 문화문화하지만은 영화를 제작한다는 사실이 곧 문화란 것은 아니다. 훨씬 고급의 문화란 것은 보다 더 [문화적인]작품을 창조하는데 있는것이다. 그런데 여기 있어서는 제각기 보는 바에 따라 이론이 분분하다. 어떤 자는 푸로주-써의 제도를 완성하라고 하고 어떤 자는 씨나리오·라이터의 출현을 대망하고 있는 것이 작년 일년간의 대표적인 이론의 주조인 동시에 다소는 실천에 들어선 경향도 없지은 않은 것이나 이것도 한번 새로운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것은 이 푸로주-써의 제도를 확립키 위해서는 영화자본의 고도한 조직이 필요한 것이며 고도의 영화자본을 필요로 하는데는 배급시장을 확대강화하지 못하고는 가망할수 없는 것이니 이렇게 되자면 외국시장에의 수출이란 것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나 문제가 너무 호한해지므로 훨씬 그 초점을 줄여 말하자면 조선에서 영화자본을 그나마 조직화한 곳은 우선 조선영화주식회사가 있고 그 회사에서 작품으로두개째 제작중이라고하나 유감으로는 이 원고를 쓰는때까지는 개봉이 되지 않았으니 말할 만한 재료도 되지않음으로 다음 기회에 미루거니와 다음 씨나리오작가는 아니라 천일영화에서 극작가 류(柳)씨의 [도생록]을 영화한 것은 그 결과의 성(成) 불성(不成)은 고괄(姑括)하고 영화가 문단과 교섭을 가져 보려한 첫 계단인 줄로 보아서 한가지 의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의의란 마침내 의의대로만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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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또 각사의 제작능도는 어떠한가 조영에서는 앞에 말한바와같이 한개도 개봉을 않았으니 미지수에 속하기는 하지만 [무정(無情)]을 영화로 만드는데는 기획자로는 영리상 관계에서 한 개의 긍지일지모르나 화면은 보증할만한 것을 지금까지 못했으며 고려영화사(高麗映畵社)에서 [복지만리(福地萬里)]를 촬영중이라 완성은 시일이 남았으니 다음에 보아야 알겠지만은 만영(滿映)과 공동기획이란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여줄 것인가를 전연 모를바는 아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영화가 영화로써 성공을 한다면 그 기획과 그 연출을 촉망해두어도 조선 영화를 키우자는 마음으로 후일을 기다려볼 것이며 천일은 말한바와 같이 [도생록]은 그러했고 [국경(國境)]을 문예작품이라고 선전을 하는데 그도 성과는 알수가 없다. 다음으로 극광(極光)이 [어화(漁火)]을 내인 후로 그 조직을 주식회사로 변경을 한다고 활동중인 모양인데 제2회작품이 어떤 게 나올지 모르나 [한강(漢江)] 그것은 동영화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라도 상승이라고는 할수가 없었다. 그외 반도(半島), 한양(漢陽) 등 각사가 모두 제작에 있음으로 다 말하지 못함은 유감이나 다음 몇 작품으로라도 내놓은 후에라야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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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로 말하자면 조선영화란 아직 나이가 어리다고 하겠지만은 그래도 벌써 십여 성상을두고 그길에 일한 분들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희생을 거듭해온 결과라 현상보다는 좀더 진전이 있어야 할것이언만 현재의 범위를 졸연히 벗어나지 못함은 자본의 빈곤이나 기술의 미련이나 보다도 두뇌의 편협에 기인하는 바도 적지안으리라. 물론 무대위에서나 카메라 앞에서 십년가까운 세월들을 보낸 분들도 있으니까 개인으로는 한가지 자랑도 되겠지만은 한개의 위대한 예술품을 창조하는데는 그까짓건 아무것도 아니란것은 십년동안에 무대에 자라난 우리의 『로파-드·도-낱}를 아직 한사람도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제 자신을 아는데서만 다시 말하면 제 전통을 아는데서만 기술가는 기술가대로 연출가는 연출가대로 출연가는 연연가대로 난다. 제각기 무게있고 값비싼 스타일을 화면에 나타낼수 있을 것이다. 기사와 사무라이와 선비들은 걸음걸이조차 제모습이 다 달랐다. 돈은 돈이고 기술은 기술이지 만가지 돈에 천가지 기술을 가해도 결국 예술은 산산(山産)되지 않는 것이다. 문화를 사랑하는 양심적인 기획가와 숙련한 기술자, 사도에 정진한 분들이라도 좀더 널리 안목을 들어 문화전반에 향하여 양지의 인사들을 구해서 그 지식전체를 종합하고 처이할 만한 창조적 정신과 수법을 가져야 비로소 조선 영화가 영화로써 완성될 것이며 문화로써의 사명도 수행할것이다. 물론 이 외에도 영화이론의 전반에 대해서 또는 씨나리오는 씨나리오대로 감독론, 배우론 등등 될수만 있으면 졸열하나마 한번 언급하고자 했으나 지정된 지면도 다하였기에 다음 기회에 미루고 그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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